[특집] 3. 작업중지권의 현재(1) / 2014.5

[특집3] 작업중지권의 현재(1)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한국지엠은 지난 1999년 대우그룹 부도와 함께 2001년 1750여명이라는 대규모 정리해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대우자동차에서 초국적 자본인 GM으로 매각 된 종합 자동차 제조 기업이다. [일터]에서는 2회에 걸쳐,

대우자동차에서 GM으로 매각된 후 한국지엠에 이르기까지  노동 안전 분야 현실을 함께 짚어보면서,

작업중지권을 현장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1회 -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 2006년 이후 한국지엠


2회 - 신음하는 현장, 다시 꿈틀대는 현장
- 2011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 발동 사례
- 실질적 작업중지권 쟁취를 위하여

 

 

GM으로 매각 전 대우자동차에서의 작업중지권


2000년 이전 대우그룹 시절 대우자본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신 경영전략을 실시한다. 이에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이 현장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일본 SUZUKI OJT[각주:1] 반대 투쟁과 일방적인 잡수 증가 저지, 노동강도 강화 반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며 현장의 저항을 조직해 나간다. 이에 저항의 방식으로 컨베이어 라인을 정지시키는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이런 사례는, 안전 분야에만 제한적인 작업중지권이 아닌 적극적인 작업중지권의 행사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각주:2]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를 사업주로만 한정 해두었던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가 1995년에 와서 실행주체가 노동자도 될 수 있다는 사항을 신설 2항에 명기하게 된 후, 자본에게 작업중지권은 곧 일상적인 파업을 의미 할 만큼 껄끄러운 존재였고, 반대로 노동자들에겐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커다란 무기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주체는 투사로 불렸던 일부 현장 활동가들로 한정됐지만 말이다[각주:3]

 

이 시기에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일어났지만 작업중지권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앞서 얘기했던 잡수 투쟁의 여파였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은 현장투쟁의 강력한 무기로서 힘은 발휘했지만 작업자들 누구나 쉽게 행사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서는 인식되지 못했다. 평범한 작업자들이 받아들이기엔 징계와 해고를 감당할 수도 있는 어려운 결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은 당시 실제 안전사고 발생 사례이다.

 

[일본인 금형기술자 도자끼라는 사람이 작업도중 금형사이에 끼어서 즉시 사망함. 사후 프레스라인만 작업 중지 후 프레스 조합원 대상 안전교육 실시. 생산라인은 정상 가동됨.-1997년][각주:4]

 

위 사례를 보면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 재해는 작업자가 사망한 중대재해에 속한다. 그런데 작업 중지는 프레스 부서에서만 행사되는 것이 타당한가?
둘째,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되었는가?
셋째, 재발방지 대책은 수립되었는가?
넷째, 사고사례가 전 공장에 전파되었는가?

 

GM대우의 탄생, 사라진 현장통제권과 작업중지권


2001년 GM이 인수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전면에 내걸자 정권과 자본은 1750여명의 정리해고를 밀어붙인다. 그렇게 공장은 하루아침에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고 현장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된다. 이때부터 현장에서는 무시 못 할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공장 밖에선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한 처절한 복직투쟁이 시작되었으나 현장은 조속한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다시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앞장서 활동했던 대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를 당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곧이어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서는 그동안 직장으로서 조합원이었지만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이 대거 대의원에 출마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현장은 급속도로 회사 통제 하에 들어갔다.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만 3년여의 시간이 흐를 즈음인 2002년 7월 25일 300여명의 정리해고자의 복직 방침이 노사 합의하에 결정되었다. 복직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나름 원칙과 기준[각주:5]이 있었지만 1차 대상자에서 제외된 조합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직도 논란이 되는 우여곡절 끝에 다수의 현장 활동가들이 복직하기에 이르렀고, 복직자를 중심으로 현장조직과 계파를 떠나 정리해고 원상회복 투쟁동지회(이하 ‘정원투’)를 결성했다. 정원투를 중심으로 한쪽에선 나머지 정리해고자들의 완전복직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나머지 한쪽에선 무너져 있던 현장의 기운들을 살려내고자 노력했다. 이후 2006년 1750여명의 정리해고자 중 희망자가 최종적으로 복직을 완료했다.

 

이 시기 조합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경위이다[각주:6]

 

사고 경위 : 프레스 4라인 자동화 공정으로 개선이후 8월 8일(월)부터 시운전을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생산 테스트 작업을 계속실시하고 사고당일인 18일에도 판넬 생산을 테스트 중이었다. 사고당일인 18일 09시10분경 이○○ 조합원이 이곳(4라인 1호기)에서 생산테스트 작업을 하던 중 1호기의 금형 상/하형 에 머리가 협착되어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였으나 사망하였다.

 

사고조치 :
19일 09시27분경 인천 북부 소방서 119 구급대 도착, 09시30분경 세림병원으로 후송 조치함.

09시34분 세림병원에 도착하여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였으나, 사망하였음.

10시00분부터 12시00분까지 전 공장 조합원 안전교육실시

10시30분 노동조합 상집간부 비상회의를 실시함(사고대책, 등 전반에 관한사항을 논의함)

13시00분에 노동조합 간부 합동 비상간담회 실시를 통하여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함. 

 

이후 노동조합에서는 긴급 속보 2호로 ■ 야간조는 엔진부와 K.D를 제외한 전 공장 70% 휴무를 실시하고 ■ 다음 날 근무는 금일 18:00에 진행되는 비대위[각주:7]에서 결정한다고 안내했다

 

위 사고경위 및 이후 대응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의 의문이 생긴다.

 

첫째, 사고자의 응급처치 및 후송이 제때 이루어졌는가? 사고 발생 후 119가 도착할 때까지 촌각을 다투는 상황임에도 17분이 흘렀다. 그리고 사내 구급차는 어디 있었나?
둘째, 작업중지권 발동이 엔진부와 KD(각 부위, 부품 등 포장 수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제외되었다. GM의 법인 분리 인수로 엔진부와 KD는 GM대우 소속이고, 나머지는 대우 인천자동차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사고이후 비상 대책위가 구성되고 비대위에 의해 재발방지대책은 수립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각주:8]

 

2006년 이후 한국지엠 : 세대의 변화와 잦은 안전사고


2006년 중형세단인 토스카와 한국지엠의 첫 SUV였던 윈스톰(현 캡티바)을 출시하면서 부평 2공장은 수 년 만에 다시 2교대 가동을 하게 되었다. 이에 정리해고자들이 모두 복직했고, 상당수의 사내 비정규직들과 군산과 부천에서 운영 중인 사내 기술교육원 소속 인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행운(?)을 맛봤다. 현장은 한동안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았던 자와 복직자, 그리고 신입이라는 세 부류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한 동안 부평공장은 출신에 따른 갈등과 세대에 따른 갈등 등이 맞물리면서 현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지엠에서 2004년 이후 입사자들은 한동안 신입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각주:9] 우리는 기존 선배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세대였다. 이것은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작용되었다. 하지만 현장에 새로운 흐름이 이 세대들의 출현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정리해고의 광풍이 휩쓸고 간 현장은 완전히 무너졌다. 임단투 기간에 노동조합이 파업 지침을 내려도 현장의 컨베이어는 거의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다. 말 그대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물론 소수였지만 정원투에 소속되어 있었던 인원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파업코드[각주:10] 적용을 감수하며 파업지침을 사수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정원투의 헌신적인 현장투쟁과 젊은 세대들의 등장에 따라 현장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시기의 잦은 안전사고는 대부분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작업중지권 발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장면1 : 머플러를 장착하는 공정에서 4인이 머플러를 힘겹게 들어 올려 장착하다가 그만 한 사람이 머플러를 놓치면서 상대편 작업자의 이마 부분이 찢긴다. 동료가 직장에게 보고해 병원 응급실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후 5바늘 봉합 후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묵묵히 컨베이어 조립작업을 수행한다.

 

장면2 : 일부 조립된 엔진이 마무리 배선작업 장소로 이동하기 전 적재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보전인원 2명이 호출되었다. 작업자 한 명은 직접 확인을 위해 좁고 위험한 적재 공간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명은 동작 스위치 앞에서 대기한다. 엔진 이동 랙이 가동되면서 협소한 적재공간에 들어갔던 작업자의 다리가 짓이겨진다. 구급차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주변 작업자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이곳과 동떨어져 있는 컨베이어 라인 작업자들은 사고 상황 자체를 모른 채 열심히 라인을 탄다. 이 작업자는 오른쪽 다리뼈 3군데가 복합 골절되어 큰 수술을 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요양 후 복귀했다.

 

장면3 : 엔진을 자동차에 장착하려는 순간 한 작업자의 손가락이 엔진과 차체에 협착되었다. 뼈가 으스러져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이 사고 사실 또한 주변 작업자들이 전하는 소문 외에 아무도 몰랐다.

 

장면1의 작업자는 봉합한 부위가 다 나을 때 까지 상처부위에 거즈를 덧대고 묵묵히 작업에 임했다. 정규직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비정규직들은 어땠을까?


장면2의 작업자는 회사 안전 담당자가 병원으로 찾아와 치료비 전체를 부담할 테니 그냥 공상 처리를 하자며 한참을 설득했다. 이 작업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산재 요양 절차를 진행했고, 이후 핀 제거 수술을 할 때 재요양 신청으로 치료 완료 후 복귀했다.


장면3도 결국 공상 처리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공상 처리[각주:11]거짓이 대부분이다. 치료비와 치료기간의 근태만 인정을 해주는 것이 전부다. 이 중 단 한 차례도 안전사고에 따른 작업중지권이 발동 된 사례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작업중지권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망사고가 때에만 행사 할 수 있는 것인가?

 

 

  1. off-the-job training. 업무수행 중단없이 작업자를 교육시키는 방법 [본문으로]
  2. 한국지엠 부평1공장 고남권 조합원 구술.(고남권 조합원은 일방적 잡수 증가 저지 투쟁과 일본 OJT 반대투쟁으로 정직과 두 번의 해고를 당한다.) 즉, 이때의 작업중지권은 현장통제권을 누가 가지느냐를 결정짓는 싸움이기도 했다. [본문으로]
  3. 물론 이때에도 현장 활동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그 법규를 근거로 투쟁에 임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의 열악했던 작업환경과 일방적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표현으로 작업중지권이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안전보건법이 투쟁의 무기로 활용되었다기보다는 자본 주도의 생산과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함으로서 현장 작업통제권을 강화해 나가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본문으로]
  4. 15,17대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김성갑 구술.(현 툴링센터 대의원) [본문으로]
  5. 2001.2.16. 정리해고가 통보된 이후 2.19 공권력에 의해 공장이 침탈되면서 당시 17대 노동조합(위원장 김일섭) 지도부는 공장 밖으로 밀려나 투쟁의 거점을 천주교 산곡동 성당에 마련하고 농성에 돌입한다. 이때부터 매일 출근투쟁을 시작으로 공장탈환 투쟁을 준비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참여도(출근부)등이 최우선 되어 선정되었다고 했지만 아직도 각종 억측과 왜곡 등을 낳고 있다. [본문으로]
  6.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2_1&wr_id=254 참조. [본문으로]
  7. http://www.gmno.or.kr/bbs/board.php?bo_table=new2_03_2_tod&wr_id=2381 참조. [본문으로]
  8. 현장조직 민노회의 홍보물 ‘민주노동자’ 제25호(2005년 9월 7일자)를 보면 회사에서는 이 문제를 단순하게 유족들의 보상 문제로서만 마무리 하려 하고 보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떠한 예방대책도 내 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노동자 현장투쟁 10년 자료집344Page 참조. [본문으로]
  9. 이들은 2004년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의거 고정연차(월차) 폐지를 골자로 한 별도 조항의 단협을 적용 받고 있던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별도의 단협을 적용받는 세대가 생긴 것이다. 이후 2012년 임단투 투쟁을 통해 이 조항은 완전히 사라진다. [본문으로]
  10. 파업 참여 조합원과 불참 조합원을 차등 대우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참여자의 임금공제 및 인사고가 불이익 등의 처우에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11. 부서 자체 공상 이라는 이름으로 부서에서만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사고사실 자체는 보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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