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통권 176호 / 2018.10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6호, 2018년 10월호


[특집]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바로잡기

1.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실태

2.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지금 지역에서는] 

사망사고 반복하는 삼성을 뜯어고쳐 보자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번아웃 증후군 예방을 위한 프랑스의 시도

[연구리포트]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안전과 건강 칼럼]

골병의 악순환을 끊는 단초,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시도

[사진으로 보는 세상]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작품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현장의 목소리]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을 묻고 대답하는 불편함을 넘어

[노동자 건강상식]

독감예방접종 이야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똑바로 제대로 살아야 한다

[발칙 건강한 책방]

'오빠'가 읽은 '오빠는 필요없다'

[문화읽기]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이러쿵 저러쿵]

과로사의 나라, 일본에 다녀오다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특집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치유활동가 허윤제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해서 현장에서 함께했던 활동,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치유활동가 허윤제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1일 충남아산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활동

"저는 2011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두리공감은 충남도, 아산시, 금속노조, 공동으로 활동하는 현장, 개별 등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첫 활동은 지역에 있는 유성기업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노조파괴 문제로 조합원들 정신건강 문제에 개입하면서였어요."

허윤제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인데 이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다치거나, 자살하는 경우를 해마다 보면서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죽지 않게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활동해왔는데 유성기업에서 한광호 열사 돌아가셨을 때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2차, 3차 피해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긴급하게 위기 지원 활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이 활동으로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노동자 개인적 원인이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나쁘게 하는 건 노동조건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이거든요. 회사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지난 시간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이후에 5년 동안 꾸준히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어요. 개인, 집단 상담은 물론이고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도록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사업단을 구성하게 하고 늘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어요.

그러다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일단 현장에서 상주하자는 생각으로 1주일에 2~3일 정도 내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저희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있으니까 경계심도 풀고 마음을 열고 각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갑을오토텍 역시 직장폐쇄 이후였는데 투쟁 과정에서 분임조를 운영할 때라 분임조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조합원들 상황을 같이 점검해보고, 몇 달간 집단 상담 등을 해왔어요."

유성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차량에 자살 도구를 가지고 다니거나, 정신을 차려 보니 베란다나 옥상에 있었다는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조합원에 대한 산재 인정을 촉구하고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임시건강진단 등을 요구했으나 관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현장 노동자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으나 아직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 역시 두리공감 활동가들이 함께해왔다.

모두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문제

"개별 기업이나 자본, 정부, 지자체, 국회, 전문가들까지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인 것 같아요.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게 만약 노동자가 일하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거나 다쳤다, 그러면 원인이 너무나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질병처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업무로 인해 우울증 증상이 있는데 가정에서의 분란 등으로 인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하면 정신건강의 원인이 현장에서의 상황 때문인지 개별적인지 명확하게 밝히기가 어렵잖아요. 이렇다 보니까 개별 기업은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개별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개별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있겠어요."

허윤제님은 일부 개별 기업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현장 내 자체적인 상담실을 마련해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대응하는데, 이 역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의 정신건강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니까 정신건강을 돌봐서 생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예요. 회사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회사가 운영하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해요. 상담 과정에서 개인 정보도 많이 요구하고 나한테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인사고과나 구조조정 등에 있어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가 자신을 보호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모든 이야기를 다하겠어요.

심지어 저희 두리공감에도 말씀을 꺼리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거든요."

허윤제님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은 노동조건이나 업무 스트레스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연구나 사례들을 전문가가 많이 발견해서 개별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이나 자본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아직은 고민이 부족한 문제

"유성기업 문제 이후로 노동조합에서 투쟁이 어렵거나 뭔가 돌파구가 없을 때 정신건강 문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는 중요한 일인데, 문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실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저희가 현장과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어요."

허윤제님은 이런 사례들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일상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거나, 고민하기 어려운 점이라며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해결하려면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일환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담당자도 세우고 이 문제를 적극 고민이 가능하도록요.

그런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 고민을 주도적으로 하는 주체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두리공감에선 이제부터라도 현장 주체를 발굴해보자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은 시작으로 상담, 치유활동에 대한 양성과정과 매뉴얼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상당히 고무적인 게 유성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해 보겠다 이야기 나오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투쟁할 시간도 없는데 뭘 이런 거까지 해야 하느냐 이야기도 있고, 주요 투쟁 일정에 밀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된 거예요."

허윤제님은 갑을오토텍의 경우 투쟁 백서를 만들고자 하는데 이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상담, 치유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주체 발굴 활동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가장 큰 원인

"현장에 가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태조사 등을 해보면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노동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생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인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여러 논문을 검토해보고 현장에 가서 봤을 때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계가 너무 힘들고, 고용이 늘 불안하고,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겠더라고요. 아직 사회적 인식이 기업이 잘 살아야 나도 잘산다고 생각하잖아요."

지금까지 활동의 성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라는 게 집단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우리를 탄압해서 힘들어도, 노동자들이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지 투쟁해서 이기면 괜찮아 지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제는 공동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인식한 거예요.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치유활동가의 의미

"제가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상담사라거나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는 활동이 현장과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그들에게 현장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과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치유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특집2.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 2018.10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본인의 일, 직업에서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시 로또에 당첨되어 10억 원 정도의 돈을 받게 되더라도, 지금의 일을 계속할 생각인가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매년 500명~600명이 일과 관련된 이유로 자살하는 한국에서 얼마나 되는 노동자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2017년 프랑스 민주노조총연맹이 프랑스 노동자 19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4%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의 70.5%는 '일을 하면서 가끔 웃는다'고 답했고,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 이상, 자부심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이 넘었다. 39%는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금의 업무를 계속하겠다고 응답했다.¹⁾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질병 예방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이렇게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활동을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까지 폭넓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라고 하면 흔히 우울증과 같은 중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을 떠올리게 된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보호 활동으로는 심리 상담이나 치료 지원, 직업병 인정 등이 제안된다. 직장 내 스트레스나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 사건에 대한 산업재해 승인과 보상 역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노동자의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논의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줄이기 위한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직무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과제로 인식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직무스트레스를 평가하는 여러 모델을 활용하여 ▲업무의 양과 요구가 적당할 것 ▲업무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가능한 보장할 것 ▲고용 불안정을 가능한 낮출 것 ▲직장 내 조직 체계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할 것 ▲업무환경이 심리적 안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것 ▲동료, 상사와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제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것 ▲평등한 조직 문화를 구축할 것 등의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전사회적으로 높아지는 고용 불안정이나,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 요구, 노사갈등이나 노조 탄압에 업무를 활용하는 행태 등은 모두 노동자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요인들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문제 제기가 더 높아져야 한다.

정신 질병에 대한 관심 역시 질병에 도달하기 전 상태인 소진 증후군, 병가 사용 증가, 업무 만족도 감소, 이직 의도 상승 등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의학적 진단명이 아닌 '소진 증후군'도 업무와의 관련성이 증명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노동자가 산업재해와 관련된 각종 보상을 보장받는다.

실제로 2011년 스웨덴에서 총 451건의 번아웃 증후군 관련 질병이 산업재해 승인 신청됐고, 이 중 70건이 인정되었다고 한다.²⁾ 보상에서의 확장뿐 아니라, 직종별, 세대별로 질병 이전의 이런 실태에 대한 조사와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개선을 위한 정부, 기업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활발히 토론돼야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보호를 사업주의 법적 책임으로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책임이라는 것이 법적 수준에서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보건조치' 조항에는 물리적 요인, 화학적 요인, 인간공학적 요인에 대한 조치는 담겨있지만, 정신건강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 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사업주의 의무를 가장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보건조치 조항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조치 의무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① 사업주는 사업을 할 때 다음 각 호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원재료·가스·증기·분진·흄(fume)·미스트(mist)·산소결핍·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
2. 방사선·유해광선·고온·저온·초음파·소음·진동·이상기압 등에 의한 건강장해
3.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기체·액체 또는 찌꺼기 등에 의한 건강장해
4. 계측감시(計測監視), 컴퓨터 단말기 조작, 정밀공작 등의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5.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6. 환기·채광·조명·보온·방습·청결 등의 적정 기준을 유지하지 아니하여 발생하는 건강장해
<추가 제안> 7. 업무 수행 및 이와 관계된 인적, 물적 환경에 의한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물론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가 부여된다고 현실에서 바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건강 문제를 전체 산업안전보건관리의 영역 내로 포함하여 규율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유럽 기업체 조사를 기반으로, 유럽 나라들의 직장 내 심리적 위험요인 관리를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도 나라에 따라 심리적 위험을 관리하는 정책, 수단의 차이가 크고, 일반적인 산업안전보건관리가 잘 되는 나라가 심리적 위험관리도 잘 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노동자, 경영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계획과 주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³⁾

개별 사업장의 과제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이 노사 간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사업장마다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직무스트레스나 정신건강과 관련된 교육 활동, 직무스트레스 요인과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조사·연구, 조사 결과에 기반한 스트레스 저감계획 시행, 시행 이후 평가와 새로운 목표 설정 등이 모두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사업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구체적인 할 일이 된다.

앞서 강조한 대로, 이런 활동이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체계 내에 통합되어 진행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예방 활동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의 중요한 안건이 되고, 법적 의무로 실시되는 안전보건교육의 일부로 직무스트레스 교육을 진행되는 것이다. 직무스트레스 관리나 술·담배 의존 관리가 노동자 뇌심혈관질환 예방 활동과 통합되고, 근골격계질환에 따른 통증 관리가 다시 정신건강 증진 활동과 통합되는 사업장 보건관리도 모색돼야 한다.

또, 노동자들에게 주요 스트레스가 될 문제들에 대해 미리 회사 차원의 규정을 수립해두는 것도 중요한 예방 활동이다. 예를 들어, 사내에 일터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일터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처리를 신속히하고,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일터괴롭힘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인식을 높여 사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일가정양립과 관련한 정책, 업무 평가 등 조직 체계상의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 미리 노사 합의로 수립되어 공표되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 정책과 법 개정에서 출발하자

사실 노동은 많은 경우 살아갈 힘을 제공한다. 급여와 복지 등 기본적 토대를 제공하고, 불안하거나 우울한 노동자에게도 규칙적인 일상을 부여해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일터는 살아갈 힘을 제공하기는커녕,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파탄내고,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던 노동과 자살이, 지금의 불안정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는 지극히 가까워졌다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노동자가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혼자라고 느끼며 폭력과 모욕에 노출되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생산성과 이윤 대신 노동자의 몸과 삶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될 때, 혹은 최소한 노동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상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냉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정부와 법적 차원에서 먼저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폭넓게, 전향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 각주 
1) 황재훈, 프랑스의 번아웃 증후군 예방을 위한 시도, 국제노동브리프 2018.9,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재인용
2) 위의 글과 같은 재인용
3) https://osha.europa.eu/en/tools-and-publications/publications/management-psychosocial-risks-europeanworkplaces-evidence/view

[연극] 노동안전뮤지컬 빨간우산 안내


노동안전 뮤지컬 빨간우산

- 일시: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저녁6시

- 장소: 민주노총 안산지부 1층 대강당

- 극단: 동네풍경 

- 주최: 금속노조 경기지부, 민주노총 안산지부, 안산노동안전센터 


[긴급논평] 행정의 무지와 보신주의가 삼성의 반복되는 화학사고를 부추긴다

[긴급 논평] 행정의 무지와 보신주의가 삼성의 반복되는 화학사고를 부추긴다


지난 4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는 논란이 필요 없는 명백한 화학사고입니다. 하루빨리 그에 걸맞는 환경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합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한 환경부의 대응계획을 묻는 ‘삼성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1. 이번 사고를 화학사고로 볼 것인지 아닌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결정한 바 없다. 현재 검토 중이고 사고원인 조사결과가 나오면 판단할 예정이다. 

2. 화학사고로 규정되면 그에 따른 즉시 신고의무 위반 등 화관법 위반사항을 조사, 조치할 방침이다. 

3. 이산화탄소는 화학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화학사고 규정에 해당되는 물질이긴 하다. 하지만, 질식사고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인지, 산소결핍에 의한 것인지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또한, 경기도 관계부서는 명확한 근거도 없고 확인된 사실도 없음에도 환경부에서 화학사고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화학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관계부서가 민관합동조사단에 대한 참여를 스스로 차단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질식사고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인지, 산소결핍에 의한 것인지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는 환경부의 답변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합니다. 산소결핍에 의한 질식이면 화학사고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산소결핍 상황 자체가 이산화탄소라는 화학물질의 유출로 벌어진 것입니다. 

「화학물질관리법」 화학사고 즉시 신고에 관한 규정 2조 3항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화학사고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화학사고"란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 결함·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하여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되어 발생하는 일체의 상황을 말한다.

이산화탄소라는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사람이 다치고 사망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이산화탄소 누출사고는 논란이 필요 없는 명백한 화학사고입니다. 환경부는 수많은 화학물질 질식사고에 대응했던 지금까지의 활동을 스스로 부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화학사고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화학사고의 예방과 대비체계는 우리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화학사고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명확한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환경부는 더 이상 사고의 본질을 외면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정부부처의 역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8. 9. 14.

삼성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 노동자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


20180914_긴급논평_환경부는_화학사고로_규정하고_즉각적인.hwp


특집3.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 2018.09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보건의료노동조합 가천대길병원 강수진 지부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의사

최근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다 태움으로 자살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후 병원에서 일터 괴롭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일터 괴롭힘, 태움이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만난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지난 19년간 극심한 슈퍼 갑질을 견뎌왔다. 최근 정부에서 병원 내 태움 등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확정한 바있는데, 실제 현장에서의 상황이 어떠한지 이야기를 듣고자 강수진 지부장을 지난 8월 23일에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가천대길병원의 노동 환경은 어떠한가요?
"병원이 다 비슷하겠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상명하달식의 업무수행, 그리고 병동이나 부서별로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해왔어요. 서로 소통하지 않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조직 문화가 많았고,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준이 되는 업무 지침이 없었어요. 관리자들 역시 업무 지시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기준이라고 하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같은 법과 제도일 텐데 관리자들이 이런 것들을 잘 모르니 현장에서 지켜질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천대길병원의 상황은 일터 괴롭힘을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봐요."

강수진 지부장은 명절 이후 받게 되는 대체휴일이나 임시공휴일과 관계없이 늘 일해왔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대체휴일은 진료부 재량에 따라서 업무를 하도록 공문이 내리는데 실제로는 모든 부서가 다 근무를 했어요. 정부에서의 대체휴일이 가천대길병원에서는 적용이 되고 있지 않는 거죠."

강수진 지부장은 근무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간호사들의 경우 병동에서 본 업무 시간에 앞서 30분 ~ 1시 정도 먼저 출근해서 일하는 게 다반수였다고 하였다.

"출근 전과 일 마칠 때 인수인계를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업무가 미진했던 거에 대해서 지적도 받고 교대를 해도 문제가 없도록 중요한 사항들을 공유하는데 길게는 2시간 정도 걸려요. 그런데 이 추가 노동에 대해서 수당이나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않고 있어요. 병동 뿐만 아니라 외래에서도 전혀 수당이나 보상 없이 일을 하고 있어요. 문제는 저희 병원이 외래 접수를 당일 접수로만 받기 때문에 늘 외래환자들이 많거든요. 결국 보상이 없이 추가 근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강수진 지부장은 쉴 틈 없이 오전에 외래 환자들을 보다 보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아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바로 오후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말하였다. 병동에서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관련되어 있는 다른 부서도 퇴근이 늦어지고, 모든 직원이 평균 1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병원의 슈퍼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회장 생일에 전 직원 축하 동영상을 만들고 공연을 해야 하고, 회장의 사택(私宅) 관리와 사택 내 행사에 직원들을 동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온갖 갑질로 병원 노동자들은 마음에 멈이 들어 가는데 회장은 단 돈 18원에 VIP 병실을 이용하며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고, 잊을만하면 비리를 저질러 언론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라고 한다.

- 태움, 갑질 문제도 결국 인력 부족의 문제로 시작된 것 아닌가요?
"네 아무래도 인력 부족이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그래서 최근 병원 측과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요. 초과근무를 하고 노동강도가 높은 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인력 부족이 원인인데요. 병원에서는 보조 인력의 확충을 비정규직으로 하
고 있어요. 1년 계약으로 고용하는데 몇 개월의 교육 기간을 거쳐 업무에 익숙해지려고 하면, 바로 계약이 끝나서 다른 사람을 재교육해야 하거든요. 이런 과정 자체가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어요."


강수진 지부장은 인력 부족이 낳는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에 투입되면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일을 빨리 배워야 해요. 선배간호사들 역시 주어진 업무량은 이전과 같거나 더 많아졌는데, 추가로 신규 간호사를 가르쳐야 해요. 이렇다 보니 선배간호사들 입장에서 후배간호사들을 잘 가르치기 보다 혼내고 강압적으로 업무를 빨리 배우게끔 하게 되는 상황이에요. 후배를 보듬어주거나 세심하게 가르쳐주는 분위기가 잘 안 되거든요."

강수진 지부장은 태움도 인력부족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하였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다 보니까 많은 간호사가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병원을 그만 둬요. 사직이 줄을 잇다 보니까 임신순번제처럼 사직순번제라는 것도 생겼어요. 신규 직원이 충원되어야 그 사람이 그만둘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기간이 교육기간 포함해서 5~6개월 정도 걸리니까 바로 퇴사를 못 하고 대기하는 경우도 생겨요. 상황이 이래서 연차도 못 써요."

- 노조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앞서 얘기한 노동강도, 업무환경, 조직문화 등 전반적으로 기존 기업노동조합에 대한 불만 등이 누적되어서 제대로 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가천대길병원은 기업노동조합 간부가 누구의 사위, 누구의 조카 이런 식으로 병원 경
영자의 친인척으로 엮여 있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허수아비라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의료기관 평가에 대한 불만도 있었는데 평가 준비를 위해서 서류 업무는 늘었지만, 인력이 보충되지 않으니 우리에겐 노동 착취로 다가왔어요. 제대로 된 시설 개선도 하지 않고 평가 기간에만 반짝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평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거든요."


강수진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평가를 준비하고 마쳐도, 병원에서는 애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전 직원에게 모두 만원만 지급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고충을 말해도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부서장은 없어요. 부서장은 인사팀에게 미루고 인사팀은 정해진 기준이나 지침이 없으니 고충 해결을 다시 부서장에게 미뤘죠. 기존에 있던 노동조합에 찾아가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어
요. 그래서 우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찾아갔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보건의료노조 인천지부를 만나게 해줘서 노동조합을 결성했어요."


한편, 가천대길병원은 민주노조 설립 이후 노조 간부의 밤 늦은 퇴근길을 미행하고, 업무시간 내내 바로 곁에서 감시하는 등 노조탄압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또, 노동조합 가입 활동을 병원 보안요원(외주용역)을 동원하여 가로막고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일부 관리자가 조합원에게 고성을 지르며 방해하거나, 많은 동료가 보는 앞에서 위세를 떨며 큰소리로 하대하며 비속어로 언어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
러한 병원의 노조 탄압으로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극도의 위화감과 공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 노조가 새로 결성되고 시작한 변화가 있었나요?
"공식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교섭하려고 할 때도 기존의 기업노조가 있고 새 노조가 있으니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긴 해요. 예를 들어 임산부는 야간
노동을 공식적으로 못하게 되어있지만, 본인이 원하면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요. 여긴 임신하자마자 동의서를 들이밀면서 출산 마지막 달까지 근무하기도 했어요. 임신 초기와 말기에 사용 가능한 근로시간 단축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그림에
떡이었어요. 하지만 임산부의 야간 노동 문제를 우리가 계속 제기하니깐, 이제는 동의서를 받고 있지 않고 임산부는 야간 노동에서 제외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 조합원이 우리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임신하고 밤에 일하기 막막했는데 밤에 일하지
않게 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가천대길병원, 슈퍼갑질 중단해야

공짜노동, 인권유린 등 슈퍼 갑질을 당하며 일해왔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일터 괴롭힘 없는 현장을 위해 특별근로감독과 기획 수사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하루 빨리 가천대길병원이 반인권적 노동탄압과 슈퍼 갑질을 중단하고 노동조합과 이전과는 다른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집2.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 2018.09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재현 선전위원장


노동자들이 일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터 괴롭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과 제도로 처벌하거나, 예방 대책 마련 등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은 일터 괴롭힘을 단순히 일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을 파괴하거나, 노무 관리를 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노동·인권 운동 진영은 일터 괴롭힘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시작으로, 그 실태는 어떠한지, 일하는 사람들의 개선 요구는 무엇인지, 해외 사례는 어떠한지를 연구하고 법과 제도, 현장에서 운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해왔다.

2017년에는 노동조합·현장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 등이 모여 직장갑질 119를 만들고 전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터 괴롭힘 신고를 받고 해결하며, 근본적인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방안과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고민하고 활동해왔다. 한편 정치권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7월 18일 정부가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그동안 방치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한국 일터 괴롭힘, EU국가들 2배

정부는 한국의 일터 괴롭힘 피해율이 업종별로 EU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3.6~27.5%로서 2배 이상 높은 점, 일터괴롭힘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연간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점, 일터 괴롭힘에 따른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심각한 점, 직장 괴롭힘 피해자의 자녀가 학교 괴롭힘의 피해자로 대물림되는 점 등을 이번 대책을 마련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을 정의함으로써 문제에 개입할 계기를 마련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터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 등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또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터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운 불안정 노동자(파견 노동자, 일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이 대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노동자가 일터 괴롭힘을 인지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이 사회에서 일터 괴롭힘 문제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특정 개인, 회사의 일로 치부되어 오면서 피해자들 역시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8월부터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나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범정부차원으로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사건을 접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정부는 이번 기회에 사용자에게도 일정 책임과 역할을 당부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사업장에서는 일터 괴롭힘 신고·대응부서를 설치하거나 지정(노사협의회, 인사·감사부서 등 활용) 하도록 했다. 하지만 범정부차원의 신고센터 설치가 예정한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정부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사용자가 일터 괴롭힘 사실을 인지 또는 신고 접수 시 해당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무화했다. 만일 사업장에서 일터 괴롭힘 관련하여 관련 법 위반행위를 인지 · 신고 접수한 경우 정부가 직권조사를 실시하며 그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 과태료 부과 등도 이뤄진다.

또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한 사업장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필요 시 임시건강진단명령 등 조취를 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임시건강진단명령이 물리적 상해 위주로 진행되는 점을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확장해서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 또는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자 및 신고자에 대한 징계, 해고 등 보복행위 및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도록 했다. 또 피해자의 심리·경제·법률 지원프로그램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재해 문제에 있어서도 보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자살, 우울증, 법정싸움 등 지원 넓혀

그동안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부상, 질병, 우울증 등을 산재 보상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협소했다. 또 법률적으로는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범죄 피해자가 된 경우 손해배상 청구소송만 지원했다. 앞으로는 복직 소송 및 보복소송에 대응할 때도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가해 입증자료가 부족해 소송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위해 행정청이 직권·현장조사, 감사자료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는 일터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가 피해자 의견을 들어 가해자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사용자가 피해자 불이익 처우 금지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 등 관련 법령을 어길 경우 형사 처벌, 과태료 부과 등 책임을 묻는 기준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취업규칙필수 기재사항에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의무, 예방 및 해결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가령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 의무, 괴롭힘 예방 · 해결을 위한 사용자의 책무, 괴롭힘 발생 시 처리 절차 및 조치, 고충처리 시스템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사업장 실태에 맞는 자율적 예방·대응 시스템 구축을 위한 컨설팅 지원에도 나선다. 또 사용자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실시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해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표준안과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과 관련하여 '간호사 태움' 문제가 불거졌던 서울아산병원처럼 병원 업종을 대상으로 TF도 수시로 운영하는 한편 '(가칭) 존중받는 일터 조성을 위한 노사정 선언'도 추진한다. 일터 괴롭힘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노동자 정신건강 연구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 대책을 실천하기 위해 일터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캠페인 등으로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국회 등과 논의해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터 괴롭힘 방지법 제정을 검토할 계획이다.

늦었지만... 이제는 구체화하고 실천해야

정부의 이번 대책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일터 괴롭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정부와 사업주의 역할과 책임을 강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관건은 정부가 대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예산과 인력 등 집행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방향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구체화하고 집행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물음표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결국 입법 기관인 국회가 법·제도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과연 국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질적인 입법으로 나아갈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일터 괴롭힘 예방을 특별법으로 해결하려고 모색 중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중 하나로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문제에 따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왔다. 이 점에서도 정부와 국회가 시민사회와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2018.09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

나래 노동시간센터 회원, 상임활동가

[영화 패터슨 스틸컷]


사무실 창밖을 넌지시 바라본다. 익숙한 풍경이 곧 선명하게 들어온다. 4차선 도로 위를 무심히 달리는 차 중 버스가 보인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 출근을 위해 파란색의 기다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빨리 내리기 위해 뒷문에 가까이 앉은 내 자리에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버스운전 노동자다. 빨노초 신호에 맞춰 적절한 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속도를 내는 그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2017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패터슨>이 불현듯 떠올랐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이야기다. 스크린 속 패터슨의 삶은 단조롭고, 평온하다. 매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기상한다. 침대에서 일으킨 몸을 끌고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직장까지 걸어가 PATERSON(패터슨)이라 쓰여 있는, 그가 담당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기가 사는 도시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그가 입고 있는 푸른색의 유니폼이다. 버스 운전기사인 그가 하는 행위 중 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시(時) 쓰기’이다.

꽤 단조롭고 단순 반복되어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꿈틀대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그의 비밀수첩에 적는 시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영감을 준다. 출근해 동료에게 듣는 비슷한 푸념, 운전석 뒤로 오가는 버스 승객들의 다양한 이야기,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항상 들리는 단골 바(bar)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패터슨이 가장 사랑하는 동반자 아내 로라의 이야기 등 무궁무진하다.

이렇듯 패터슨의 반복되는 매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패터슨을 오로지 패터슨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바로 매일 써 내려가는 시(時)이자, 그 시를 쓰는 바로 그 ‘시간’이다. 패터슨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버스 운전 노동자인 것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순간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도 패터슨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마음이 묵직해지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버스 운전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5년 시행된 「버스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에 따르면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 경기 광역버스는 70.1%를 나타냈다. 장시간 노동을 가중시키는 격일제, 복격일제 등 교대제 근무제도 문제다. 격일제란 하루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 복격일제는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을 말한다. 격일제의 경우 하루 평균 17~19시간 근무한다.

이들이 호소하는 노동, 건강문제는 심각하다. 기본적 욕구 해결을 위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한국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국물을 잘 안 먹어요. 소변 때문에. 2, 3시간 가는데 소변 마려우면 고속도로에서 어떡할거야. 기사들이 그런 거 다 감안해서 물도 잘 안 마시려 해. 딱 맞춰서 가서 소변 볼 거 생각하고. 커피도 이뇨작용 땜에 안 마시는 사람들 많아요. 그만큼 힘들고, 우리가 다 모든 걸 신경 써서 해야 되고.” (인터뷰 H, 2018년 경기도 버스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연구)

작년 노동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지준법 59조 폐지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뜨거웠다. 노동자들은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장시간 노동 근절을 요구했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시민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2월 28일 특례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줄었다. 시내버스로 대표되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버스업체와 정부는 대규모 인력채 용과 근무체계 개편이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중노동, 과로사 위협이 1년 연장됐다. 지금도 하루 10시간, 20시간 가까운 장시간 운전을 하고 있다.

만약 패터슨이 한국에서 일하는 버스 운전 노동자였다면 그 주옥같은 시(時)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 그의 푸른색 유니폼은 언제나 반짝였을까? 캄캄한 새벽에 출근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식판에 겨우 배고픔을 잊을 밥을 먹으며 다시 버스에 올라타는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 2018.09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이유숙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는 많은 사람이 전화, 문자 연락부터 카메라, SNS, 게임, 인터넷뱅킹 등까지 사용하는데 필요한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 이유숙 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1년 중 많은 야외 활동가 휴가 등으로 인해 가장 일이 바쁘다는 8월에 진행하였다.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의 하루

“저는 삼성전자서비스 동인천 센터에서 애니콜 수리 업무를 하는 이유숙이라고 해요. 쉽게 말해 스마트폰 수리 엔지니어인데 제가 일하는 파트를 애니콜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우리 센터에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TV, 청소기, 컴퓨터도 고치고 있어요.”

이유숙 님은 아침 9시부터 18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하루에 20명~30명 정도 고객을 상대한다고 한다. 특히 동인천 센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고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업무 중에서도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간단 고장 업무가 제일 많아요. 충전이 안 되거나, 폰에 이상이 있어서 전원을 껐다 켜야 한다든가 하는 업무도 많고요. 기계가 고장 난 거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문제로 방문하는 분들도 많아요.”

이유숙 님은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열리지 않아서 고쳐달라는 고객, 불량 어플을 삭제해달라는 고객 등을 하루에도 수없이 만난다고 한다. 한편, 아무래도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고객은 액정이 깨져서 오는 분들이라고 한다. 

“여름엔 사람들이 바깥 활동이 많아지니까 휴가에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분들도 많고 더운 곳에서 과열로 인해 오작동하는 경우고 있고요. 여름에도 8월이 제일 바빠요. 6월에서 8월까지 이름을 성수기라고 보고요. 반대로 2~4월은 그나마 비수기인 것 같아요.”

서비스센터는 간단 점검은 기본 무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고객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받는다고 한다. 다만, 자재를 사용해서 수리해야 하는 경우엔 소비자보호원에서 정한 가격에 맞춰 고객이 비용을 지급한다고 한다.

노동 시간과 휴가 시스템

“서비스 센터는 아침 9시에 오픈하는데 우리는 8시 40분까지 출근해요. 아침에 조회도 있고 업무 준비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루 30분씩 고정 연장수당이 있어요. 퇴근은 18시인데 바로 퇴근해요. 6시 즈음 되면 콜 전화를 안 받거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주일에 3~4번은 바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팀장님한테 눈치가 보여서 정시 퇴근을 못 했어요. 연장 근무를 해도 왜 연장 근무를 했는지 굉장히 까다롭게 심사해서 줬거든요.”

휴식의 경우 토요일에 정상 근무를 해서 일요일과 평일 1일 대휴를 쓰고 있지만, 이 역시 개인 약속이나 모임 등과 관계없이 매월 초 무조건 정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여름 휴가도 따로 없어서 기본 연차에서 사용하게 하는데 회사가 상황이 어렵다고 노동자들에게 9월부터 연말까지 남은 연차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된 일

“사람들이 대학 때 전공인으로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무역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2010년도에 입사를 했는데요. 시에서 직업 교육 많이 하잖아요. 그거 교육 받다가 일하게 됐어요. 입사할 때 조건이 운전할 줄 알고 IT 관련 업무에 대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했는데, 제가 사실 몇 년 동안 남편이랑 PC방을 했었거든요. 그때 경험을 많이 인정해줬어요. PC방이 프렌차이즈 회사라서 기술직 사원이 돌아가면서 지원해주고 그랬는데 제가 성격상 남한테 뭐 맡기고 그런 거를 안좋아해서 매일 그분 귀찮게 물어보고 공부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다시 직장 구할 때는 고정적으로 월급 받는 직장에 가고 싶었는데 삼성이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그때는 우리가 협력업체 일줄은 몰랐어요.”

이유숙 님은 당시 첫 월급으로 120만 원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외근직으로 TV, 컴퓨터를 고칠 때라 차 기름값 내고 밥 먹고 그러면 50~60만 원정도 남았다고 한다. 이유숙 님께 여성으로서 기술직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2010년에 조두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고객들이 여성 엔지니어가 오면 편해하고 좋아할 거로 생각해서 30명을 뽑았어요. 삼성 연수원에서 3개월 합숙하고 27명이 졸업해서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지금은 3명이 남아있고 외근 일하는 사람은 1명이에요. 저도 작년 9월부터 내근직으로 옮겼거든요. 혼자 남으신 분은 이제 세탁기를 열고, 에어컨을 수리한다고 하는데 저는 냉장고나 에어컨 수리를 힘이 부족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유숙 님은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기에 차별당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차별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혼자 냉장고를 뒤집어서 수리해야 하는데, 제가 그걸 혼자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너는 냉장고 일 못 받으니까 남자들인 지저분해서 안하고 싶어하고 돈도 안 되는 더러운 일을 저한테 시켰죠. 같이 1시간 일하는데 남자들은 한 시간 일해서 2~3만원 받고 저는 5천원 받았거든요.”

이유숙 님은 여자라고 해서 남성과 다르지 않게 매일 피나는 교육을 해왔다고 말했다. 연수원 시절 아침 9시부터 저녁 18시까지 매일 시험을 봤고 입사해서도 매월 공부는 기본이고, 1년에 2차례 국가고시처럼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진짜 사장이 삼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교육을 주관해왔던 삼성전자가 직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그룹 차원으로 진행했던 교육과 시험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한다.

업무가 바뀌면서 변화한 것

“외근 업무를 할 때는 여자라 힘든 게 많았는데 내근일 때는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무조건 고쳐달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어서 힘든 거 같아요. 무조건 고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래 우리가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대화가 안 되는 분들이 있거든요.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서 업데이트해 보라고 했더니 그걸 왜 자기가 하냐고 네가가 하라는 거에요.”

수많은 고객과 겪은 일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뭔가 일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나 방식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일단 고객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요. 그래도 이야기가 잘 안 되면 팀장 상담을 유도해요. 그러면 팀장도 우리랑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대화가 안 되면 우리 센터는 수리를 거부할 테니 매장에서 퇴장해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경찰 부르고요. 모든 센터가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센터 팀장님이 많이 배려해주는 데다 요즘 갑질이다 뭐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고 그래서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이유숙 님은 예전에는 무조건 목소리 큰고객이 이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사실 고객들을 이렇게 만든 건 삼성이에요. 옛날에는 소리 지르면 무료로 수리해줬 거든요. 돈을 깎아주기도 하고요. 요즘이야 경찰 부른다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제품을 그냥 던진다거나 하는 분들은 예전에 삼성이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길들여진 거에요. 삼성가서 일단 소리지르면 다해줄 거야 라는 인식이 팽배거든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

“일하면 가장 즐거운 건 아무래도 월급 받을 때죠.. 웬만한 제 나이 여자들보다 많이 받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또 월급이라는게 단순히 돈에 문제가 아니라 나 의 능력치를 평가받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내가 100만 원, 200만 원, 300만 원받는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300만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회에서 300만 원짜리 능력이 있구나라는 인정받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만족도 있는 것 가고요. 사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도 자기만족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대화하면 아줌마라고 무시하거나 소외는 있었는지 노동조합을 하면서 나름 동등한 것도 있고 내가 아는 것을 피력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나의 단점을 커버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많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누구보다 일에 대해 즐거움도 많고 만족도도 높은 이유숙 님이 일할 때 원칙 같은 게 있을지 궁금했다.

“글쎄요 저는 최대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말하는 조건에 부합한다면 최대한 무상으로 서비스를 해드리고 가급적 친절하게 수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일 많이 하는 분들은 한번 일할 때 평균 10분 정도 하는데 저는 고객이랑 대화도 많이 나누고, 웬만한거 물어보면 다 답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많이 못 하고 월급이 적기는 한데 그래도 앞으로도 이렇게 일하려고 해요.”

이유숙 님은 이러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앞으로 오래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포부도밝혔다.

“앞으로 저는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일하고 싶어요. 아이가 조금 지나면 다 크는데 그때는 저의 만족을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노동조합 만들고 힘들었지만 회사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요. 예전에는 우리가 회사한테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귀는 생긴 거 같거든요.”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 2018.05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 시내의 지하철 건설 현장으로 출장 검진을 나간 날이었다. 새벽부터 때 묻은 작업복에 안전화 차림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한창 정선에서 채광이 한창이던 때 갱도로 내려가려는 광부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1970년대 광부들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던 것도 잠시, 이내 정신없는 문진이 시작되었다. 문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볼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매년 똑같은 폐기능 검사, 청력 검사를 뭐하러 하느냐." 
"검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는 그런 검사들을 병원이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더 써주던가, 환풍기를 좋은 걸로 바꿔주던가, 소음이나 좀 줄일 수 있게 개선해 달라."

실제로 지하철 건설 현장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예를 들면, 지하철 건설 현장 위의 도로를 뒤덮은 철판 소음 같은 것이 있다. 밖에서는 그 위를 차로 지나면서 잠깐 소음을 접하지만 지하의 건설 현장은 그 소음을 직접, 그것도 작업 시간 내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 특성상 산재 사고의 위험이 크고 작업자들 간 의사소통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귀마개에 귀덮개 까지 할 정도로 차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다른 건설 현장에 비해 소음성 난청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그 정도도 심각했다.

아무리 청력 검사를 하고 수십 명의 소음성 난청자가 나와도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위험해서, 작업의 특성상 귀마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대로 청력 손상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럴 경우 매우 큰 소리는 줄여주고 주변의 작은 소리는 반대로 적정 수준으로 증폭시켜주는 귀덮개를 적절히 사용하면 청력 손상을 다소 완화 할 수 있다. 실제로 공항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공군에서도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만 개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하철 건설 현장에는 매년 반복되는 청력 검사보다 위와 같은 보호구가 더욱더 절실하다. 이러한 보호구로도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시설 개선도 필요할 수 있다. 즉, 검사를 통한 진단보다 문제 되는 질환에 대한 치료가 시급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감기 환자가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항생제 치료 없이 감기약만 주는 것과 같다. 좀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폐렴이 악화되는 것을 매년 강제적인 엑스레이 촬영으로 확인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는 전혀 하지 않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절한 치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폐렴을 다시 예로 들면,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여러 종류 세균 중에 정확한 원인균이 세균 배양 검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정황상 예상되는 세균에 대해 효과가 좋을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항생제'를 통해 치료를 먼저 시작한다. 더 큰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치료가 정확한 진단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건강진단,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위험성 평가, 직무스트레스 및 뇌심 발병 위험도 평가 등 노동자들은 수많은 '진단' 과정을 매번 겪고 있고 이를 통해 발견된 노동 환경 문제들에 대한 개선 '처방'까지 그 안에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을 바꾸는 '치료'는 얼마나 되고 있는가. '치료'에 해당되는 시설 및 보호구 개선, 인력 충원 등에 '진단'에 사용되는 비용만큼이라도 사용되고 있는가. '진단'으로 행해지는 항목을 일부 조정해서라도 '치료'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실제로 특수건강진단으로 청력검사를 재검까지 모두 시행하는 경우 비용은 6만 원 정도. 반면 귀덮개 정가는 18만 원 정도다).

핸드폰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대, 청소 로봇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그만큼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도 크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진단'과 '처방'에 사용될 비용이 있을 뿐 발전된 기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쓰일 비용은 필요 없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건강진단을 위해 길게 줄지어선 노동자들 사이의 볼멘소리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진단'과 '치료' 상황에 대한 당연한 불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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