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2018.10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김재광 노동시간센터 회원


한낮 주인공 다카시는 약간 실성한 듯 기뻐하며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그에 비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이 없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마치 운동복을 입은 듯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롭다. 그는 방금 사표를 쓰고 회사에서 탈출했다. 반인권적 괴롭힘과 출근과 퇴근 그리고 평일, 휴일이 구분이 없었던 회사를 때려 치운 것이다.


다카시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카시와 같은 자유로움과 쾌감을 느낀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제목 자체로 탈주의 욕망을 '쿨(cool)'하게 대변한다.

이미 관용어가 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당장 가능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하다. 일에 종속된 피폐한 삶이 워낙 비일비재한지라, 지극히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휴가나 휴일을 제대로 누려야 된다는 사회적 요구와 방향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밤낮없이 일하고, 자살까지 감행한 <잠깐만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다카시의 고뇌에 찬 결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찜찜하다. 고뇌에 찬 결단이 분명 결단이 맞는데 말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이 서로 마주 본다. 일은 삶의 일부도 아니고 분명한 대칭이다. '워라밸'의 목표는 일에 포식된 삶을 일로부터 분리하여 삶의 독자적인 것을 구축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설정에 이르게 된 배경을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나, 노파심인지 몰라도 이러한 설정은 일이 삶에서 분리되어 노동자에게 주체적 영역이 되고, 일을 제외한 그 외의 삶만이 노동자의 주체적 영역으로 분리되는 기이한 이데올로기가 성립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분리 사고는 일은 사용자에 처분에 맡겨진 비주체적 영역으로, 삶의 방치영역으로 고립될 수 있다. 어떠한 자에게 일은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고, 어떤 자에게는 작은 부분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크건 작건 간에 일은 삶의 일부이고, 모두 주체적 영역이 되어야 하며, 일관된 자기 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것은 현실을 인정한 한편의 개량적 모색이기도 하고, 아예 현실을 은폐하고 현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노동은 소외되는 것이므로, 노동력에 대한가격에 대한 흥정이나, 그 외의 부수적 처우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노동소외 자체를 극복할 수 없으므로, 일(노동)을 삶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가능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아예 노동의 소외를 언급할 근거도 없이 판매된 노동력에 대한 독점적 처분권을 자본(사용자)이 행사하고, 나머지 시간만을 주체적으로 처분 가능한 삶으로 규정하여 판매된 노동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개입을 원천적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되었건 후자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일은 주체적 삶에서 분리되어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카시는 맨 처음 자기 일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가까이 일을 했음에도 일은 자기 삶의 일부 조차 될 수가 없었다. 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것이었다. 다카시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은 삶 속에서 방치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다카시는 괴로워는 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엄두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사표를 쓰고, 일을 삶 속에서 드디어 주체적으로 단절시켰다. 다카시를 응원 했던 것은 사표를 쓴 것이 아니라, 주체적 삶속에서 배치되는 일을 다시 용기 있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시의 선택을 모두가 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치가 당연시되고, 탈주가 마냥 칭송된다면 도대체 정작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일은 짧은 시간만 하는 것이 답이고, 휴일과 휴가를 가능한 많이 향유하면 되는 것인가? 일과 삶은 분리된 것이고, 분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과 직장은 그저 호구지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호구지책 이상의 일은 특정하게 한정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직장에서의 노동을 포함한 삶은 사용자의 것이고, 직장을 벗어나서야 온전한 내 삶이 성립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 삶은 실제 온전히 자신의 삶일까? 노동시간이 짧건 길건, 여유롭건 고되건 간에 그 공간과 시간에서 내가 내 노동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모두 다카시와 같이 먼 이국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과 삶을 가질 수 없기에 묻고 또 묻게 된다.

[간담회]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노동시간과 현장의 변화 연속 간담회 안내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노동시간과 현장의 변화 

연속 간담회 안내


2018년 7월 1일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습니다. 연장 휴일 노동 포함 1주 최대 52시간 노동, 노동시간특례업종 축소, 18세 미만 연소노동자 최대 노동시간단축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번 개정은 연장근로 주 12시간을 당연시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18년 7월엔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있어 아직 시행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노동시간센터는 이런 문제의식 하에 전반적 상황을 조망하고, 노동운동의 과제를 제안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연속 간담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 일정

1. 제조업 간담회

- 일시: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 19시

- 발제: 박현희,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

- 토론: 김영수,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노동시간센터 회원


2. 우편업 간담회

- 일시: 2018년 10월 24일 (수) 19시

- 발제: 허소연, 집배노조 선전국장

- 토론: 김형렬, 노동시간센터장 / 최승묵, 집배노조 위원장 


3. 노선버스운송업 간담회

- 일시: 2018년 11월 14일 (수) 19시

- 발제: 공공운수노조

- 토론: 엄도영, 협진여객지회 지회장


4. 유통업 간담회

- 일시: 2018년 11월 21일 (수) 19시

- 발제 및 토론: 추후 공지


5. 사무직 간담회

- 일시: 2018년 12월 5일 (수) 19시

- 발제: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

- 토론: 사무금융노조 조합원 


* 장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울시 동작구 남부순환로 2019, 501호)

* 간담회 참석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사전 신청을 해주세요

02-324-8633, laborr@jinbo.net 

<일터> 통권 174호 / 2018.08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4호 / 2018.8

특집 : 질판위 10년 평가와 과제 


4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의 기록  

8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바란다 

10 왜 

13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10년 노동자 직업병 산재인정의 성과와 과제는 무엇인가

16 노동자에게 필요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되어야 한다 

18 [지금 지역에서는] 

향남에서 '우편물에 담긴 일과 건강에 관한 토크콘서트' 열려

20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뜨거워지는 지구, 노동자 보호는?

22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농업

24 [연구 리포트]

인천공항 수하물시설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및 작업환경 실태조사 

2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폭염 속 노동시간 

30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편의점 알바, 누가 쉽다고 하나요? 

36 [현장의 목소리]

2018 여름건강현장활동 대학생, 모두의 건강을 고민하다 

44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48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폭염 속에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50 [노동자 건강 상식]

당뇨 이야기 

52 [문화읽기] 

사당동 더하기 25

54 [이러쿵저러쿵] 

문송면 · 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활동을 돌아보며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언론보도]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근면 이데올로기 뿌리 뽑고 시간권리 찾아야" (투데이신문)

노동시간센터 김영선 연구위원 “근면 이데올로기 뿌리 뽑고 시간권리 찾아야”
김도양 기자 승인 2018.07.28 14:36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동시에 의미 있는 여가시간을 누릴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이러한 가운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며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출처 : 투데이신문(http://www.ntoday.co.kr)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640

<일터> 통권 173호 / 2018.07


<일터> 통권 173호 / 2018.7

특집 : 노동자 건강권 vs 기업의 영업비밀


4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와 삼성의 몽니 
8 백혈병 소송을 통해서 본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 대한 소고 
10 노동자 건강권의 바로미터 
14 노동자 알 권리 거부하는 인천공항공사


16 [지금 지역에서는] 
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의 시작과 앞날


18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산재 사망증가와 트럼프 정부의 예산 축소


20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건설업 안전보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22 [연구 리포트]
경기도 버스 운전 노동실태(2)


26 [안전과 건강 칼럼]
빛바래선 안될 청사진


2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31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36 [현장의 목소리]
실적이 인격이라 하는 회사를 향한 IT노동자들의 싸움!


40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 현장에도 노조가 생겼어요!


4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48 [노동자 건강 상식]
B형 간염


50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근로감독관의 과로사와 워라밸


52 [문화 읽기]
“우리의 죄는 증대하다”

54 [이러쿵저러쿵] 
내 인생의 시간으로 기록될 노벗 수습 노무사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 2018.07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 영화 <히든피겨스>의 한 장면


인종주의가 씌우는 가면

제주도에 몰려든 480명의 예멘 난민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마치 이 민족이 평화로운 남쪽 섬을 침략이라도 했듯이 제주도의 여성과 아이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그렇다. 예멘 난민들의 90%가 20~30대 남성이며, 그들은 브로커를 끼고 입국했다. 이로부터 ‘가짜 난민’설까지 등장했는데, 저들은 인도주의적 보호를 보장받아야 할 난민이 아니라 잠재적이지만 곧바로 현실화할 (성)범죄자집단이자, 불법 체류자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멘에서 밀입국한 480명은 ‘예멘인’이거나 ‘난민’이 아니라 (성)범죄자로서 예멘인으로 표상된다.

인종주의는 ‘순수한 집단’으로 인종(race)을 지목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공격목표, 즉 사회적으로 정상화를 위해 배제되어야 할 집단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래서 인종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난민 혐오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불특정한 예멘인이어서가 아니라 ‘20~30대의 낯선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를 되짚게 하며, 또한 논란이 재활성화 되고 있다. 예멘 난민으로 인해 인종주의적 태도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통념들이 예멘 난민 문제로 더욱 격렬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와 혐오 등 인종주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매우 문제가 있는 이데올로기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는 늘 함께 기능하며, 나아가 “인종주의는 항상 성차별주의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여러 유형의 인종주의 형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는 늘 특권화된 집단을 보편의 얼굴로 내세우며,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평가절하하며 인종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종주의에 대항할 때 차별받고 배제되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위험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지를 분석해야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면을 씌우는 자가 누구인지, 보편의 얼굴을 한 지배적 표상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히든 피겨스>가 싸운 것은 어떤 인종주의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주의 영화라고 평가되는 작품 하나를 보자.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figures, 2016>는 19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나사(NASA)에서 근무했던 흑인 여성들의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흑인 여성들은 백인 남성들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들에게도 차별받는다. 그런데 백인 남성들과 백인 여성들이 흑인 여성에 가하는 차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우성 여성 전체는 나사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의 바깥에 있다. 이들은 전산원으로 별도의 독립적인 사무실에서 기능적인 계산을 하거나, 남성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필요한 사무 일을 하기 위해 배치될 뿐이다. 흑인 여성들과 직접적 갈등을 겪는 것은 백인여성들이다. 이들은 같은 전산원이자 다른 인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에게 직접 모욕을 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흑인 여성들의능력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정당한 역할을 주려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에서 실질적인 중책을 맡고 있는 캐빈 코스트너 역은 흑인 여성 전용 화장실 간판을 깨부수고 “이제 됐군. 유색인종 화장실은 없어. 백인 화장실도 없고. 그냥 변기 있는 화장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인종주의적 차별에 맞서 흑인 여성들이 ‘여성과학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성공했다고 영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이 영화를 실화에 바탕을 둔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빼어난 영화라고 할지라도 이 영화의 출발인 인종주의는 여전히 남는다. 

영화에서 백인 남성이 재현하는 것은 백인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다. 그것은 ‘나사’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미국이라는 국가이기도 하다. 나사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국가주의가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릴 우주선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화되었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상징적으로 자리한다. 백인 남성의 몇몇이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흑인 여성의 천재적인 두뇌를 인정한 것은 미국과 소련 간 벌어진 우주‘전쟁’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종주의의 얼굴, 보편을 가장한 지배적 표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흑인 여성들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은 당시에 정세적으로 요청된 적, “망할 소련 놈들”에 대한 타자화를 통해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즉 영화는 인종주의에 대항한다기보다 특정한 인종주의를 다른 인종주의로대체하면서 인종주의를 구성하는 교차적인 그물망들(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그물망 안에서 영화는 끝난다. 드디어 미국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흑인 여성들은 나사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되었다. 전쟁은 승리했다!

과로의 보편적 얼굴

인종주의적 접근 말고 다른 면에서 보자면 <히든 피겨스>는 ‘나사’에서 일하는 과학자이자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들의 살인적인 과로는 ‘로켓에 사람을 태워 달에 보내는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이어진다. 과로를 과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로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거나, 아니면 자기 일이 공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노동운동에서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보편적 노동의 표상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이미지는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시대에 ‘산업역군’의 표상이기도 하다. 즉,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얼굴은 곧 국가이자 혁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가장 비극적으로 균열이 난 채 극대화 되었을 때가 IMF 위기시의 정리해고와 그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IMF 위기 때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였다. ‘차 만드는 남성’과 ‘밥짓는 여성’이 함께 한 파업이었지만, 파업 이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거나, 식당 자체가 외주화되어 나빠진 노동조건과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파업의 패배로 남성 노동자들도 더 빨리, 더 많은 차를 만들어야 했다. 강화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컨베이어벨트에서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죽지는 않더라도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빨리 밥을 먹고 빨리 쉬고 싶었기 때문에 남성 노동자들은 더욱 급해졌고, 그리고 험악해졌다.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 식판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사회의 살벌한 과로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 과로는 동질적이지 않다. 차를 만드는 노동과 밥 짓는 노동의 분할,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분할은 분할 이전에 특정한 노동의 형태를 특권화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분할은 곧 차별과 배제의 선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8시간, 10시간 혹은 12시간으로 균질화된 노동시간의 질적 차이가 구성된다. 이것은 노동강도로 환원할 수 없는 과로의 질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과로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가 교차하며, 서로를 보충하는 메커니즘이 형성하는 분할의 선을 따른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신을 보편의 표상으로 재생산하는 이상 이러한 인종주의적 분할선 역시 재생산된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나 ‘혁명’을 상징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보편화한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를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 아니 700명 중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사측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단지 정규직의 횡포가 아니다. 정규직화하면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 여성 노동자를 배치 전환시키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역으로 남성 노동자도 조립라인의 노동강도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젊고 건장한 남성 하청노동자들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때 비가시화되는 건 여성노동자들의 과로다. 정규직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들은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서 일하기에는 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인 과로의 강도를 견뎌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이러한 차별의 논리 배후에서 작동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인종, ‘여성’이라는 인종이 교차하며 ‘여성 비정규직’은 여성의 문제로도, 비정규직의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차별의 선들 아래에 놓인다. 그리고 ‘남성정규직’이라는 일부 집단이 특권화 되면서 보편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자신들의 과도한 노동을 특권화 하는 순간 과로를 일으하는 인종적, 성적인 메커니즘은 사라지고, 더 많은 과로를 조직하는 경영기술이나 노동과정의 변형, 노동의 형태들도 사라지고 오로지 물리적으로 계량화된 과로의 수치만이 남게 된다. 그들의 과로를 가장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들이 입증하고 싶어 하는 과로 역시 가장 앙상한 것으로 남았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요청이 아니다. 스스로가 보편의 지배적 얼굴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위치를 점하는 것만이 모든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길이자, 자신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기득권’을 획득할 방법일 것이다.

<일터> 통권 172호 / 2018.06



● 특집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맞는 단상 

- 노동안전보건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 지금 지역에서는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정상화 이후 남은 숙제 

●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암 생존자들이 일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 특별기고

"죽음을 부르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사진으로 보는 세상

● 현장의 목소리

간호사 침묵을 깨다 

● 노동자 건강상식

진통제에 대하여 

●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최저임금법 개정의 1등 공신은 '더불어민주당' 

● 발칙 건강한 책방

지워지지 않는 기억

● 이러쿵저러쿵

있기 

● 한노보연 이모저모


[언론도보] 사용자 대 노동자로 갈린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 보도 (오마이뉴스)

사용자 대 노동자로 갈린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 보도

[미디어비평] 보수·진보 신문의 판이한 '노동시간 단축 보완책'

18.05.24 21:41l최종 업데이트 18.05.24 21:41l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이다. 당장 300인 이상 사업장에 오는 7월 1일부터 적용된다. 근로시간 단축 관련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다. 5년이 지나 20대 국회에 와서 겨우 통과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논쟁이 끝난 건 아니다. 개정안 통과 전후에 보수·경제신문과 진보신문은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전혀 다르게 내놨다. 


http://omn.kr/rdmv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 2018.03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집배원 노동자들의 강탈당한 시간

지난 2월26일 고 임선빈 집배원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을 포함해 지난 5년간 80여 명의 집배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과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한 사람의 죽음조차 다양한 원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죽음은 수많은 원인 중에서 공통적인 한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소식들이 모이는 곳,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안녕하지 않다. 이 죽음의 기이함은 범인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살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죽음으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했지만, 그 범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지휘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닮았다. 죽음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다음의 죽음을 예상한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 그러니까 살아있는 우리들이 죽음의 원인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하지 않은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3년간 전국 9개 우정청 중 서울, 강원청을 제외한 7개의 우정청에서 집배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 중 17만 시간이 삭제되었다. 장시간 노동의 은폐를 위한 초과 노동시간의 조작은 집배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근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실제 우정본부는 작년 6월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집배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52시간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4,452명의 집배 노동자의 노동이 삭제된 17만 시간, 1일 8시간으로 환산하면 21,250일, 이를 또다시 1년 365일로 환산하면 58년 2개월. 이들의 시간을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그 시간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강탈하지 않았다면 80여 명의 연쇄적인 죽음의 스릴러물은 상연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80명의 숫자가 채워지는 것을 고작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삭제된, 17만 시간의 노동시간은 연쇄적인 죽음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단서’다. 무엇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17만 초과노동을 감수하게끔 했는지, 우정본부는 어떻게 집배 노동자들의 과도노동을 강제해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단서 말이다. 집배노조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에 강요됐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초과근로시간을 축소, 조작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폐기될 예정이지만 과도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성과장치들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자살을 포함한 죽음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KT, 439명의 노동자 연쇄죽음의 아카이빙¹이 보여주는 것

KT노동인권센터는 2006년부터 자신들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죽음의 사례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439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들은 왜 하필 2006년이라는 시간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기입하고자 한다. 


KT노동인권센터와 ‘노동자의 벗’ 소속 7명의 노무사는 2017년에 무려 1,800여 쪽에 달하는 <KT노동인권백서>를 출간했다. 백서는 439명의 죽음이 KT 민영화와 노동탄압의 결과라고 그 원인을 지목했다. 

“KT 민영화는 1980년대부터 그 정지작업이 시작돼 사업 분리, 분할 매각, 정부지분 축소 등을 거쳐 2002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면서 완료됐다. 그 이후 15년이 흘렀다. 처음에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하면 국민들에게 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민영화의 결과는 해악적이었다. 국민들은 높은 통신비 부담에 고통 받고,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실적 경쟁에 시달리며 죽음으로 내몰렸다.”(<KT 노동인권 백서> 중)

2006년은 KT 내에서 CP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된 시기이다. 2002년 민영화되기 직전 7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민영화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가 수차례 진행되어 4만 명이 퇴출당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사측은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CP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지속적인 일터 괴롭힘과 강제적인전환배치 등에 노출했다. 업무상의 저평가자를 일컫는 ‘C-플레이어들(C-player)’은 신자유주의가 내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전략”이 탄생시킨 새로운 집단이자, 어떻게든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KT노동자들이 아카이빙한 죽음의 목록 중 눈에 띄는 것은 ‘명퇴 후 사망’과 ‘자살’이다. 통상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신분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퇴 후 죽음’까지 아카이빙한 것은 이들 죽음의 원인이 KT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작업장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맞이하게 된 죽음을 다시 불러들여 2006년-KT라는 시공간에 다시 배치함으로써 KT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가 여전히 ‘죽음의 KT’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41건의 자살을 함께 포함한 것이다. 이 중에는 ‘저항’의 맥락에서 의미화 할 수 있는 자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로자살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입증하기 힘든 문제다. 자살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선택이라는 허구적 믿음의 강력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고통들과 함께 배치되었을 때 과로자살은 맥락화된다. 과로자살은 심리부검과 같은 접근으로 개인으로부터 자살 원인을 추적한다고 해서 해명될 수 없다. 즉, 과로자살은 자살의 문제가 아니라 과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로자살이 발생한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노동자의 자살이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연결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개별 노동자가 고통을 드러내는 양상 중의 하나의 경우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다. 강제 전환배치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인한 노동자 자살은 한국사회에서 과도노동 즉, 과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체국 노동자의 자살처럼 한국사회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과도노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장시간 노동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맥락 하에 진행되고 있는 성과 프로그램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체계적으로 분쇄되어 노동자들이 개별화된다는 것에 있다. 성과 프로그램은 우체국과 KT에서 자본-노동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갈등의 원천이 된다. 우체국 관리직들은 자신들의 성과등급을 위해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종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시간 노동을, 높은 노동강도를 압박해왔다. KT 노동자들의 일터 괴롭힘 역시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장시간 노동의 보다 기술적인 적용으로 나아간다. 자본은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촘촘한 망으로 노동성과를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현장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타깃이 된다. 집합적 힘이 분쇄되었을 때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무력하다. 경쟁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관계를 냉소적 관계로 대체한다. 

집배 노동자들이나 KT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은 과로자살의 또 다른 잔혹을 드러내준다. 어제의 동료들이 오늘에는 성과 프로그램의 실행자가 되거나 혹은 그 앞에서 침묵하게 될 때, 노동자들의 자살은 고독사를 닮는다. 


강력한 처벌 이전에 ‘권리’를 보장해야 

문재인 정부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뒤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직무 스트레스나 일터 괴롭힘의 문제는 개정된 법안에서도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과로의 적극적인 해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법마저 때늦은 법으로 당도해 버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법 집행을 위해 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처벌도 노동자의 죽음이 발생한 그 장소에 당도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가장 발 빠른 집행자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집합적 힘을 모조리 분쇄한 뒤에, 강력한 법의 보호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이 의무와 처벌만을 명시하는 순간 ‘치안’이 된다. 특히나 노동법이지 않은가. 노동의 권리야말로 법의 언어 속에 각인해야할 단어다. 그것이 없다면 노동의 보호란 자본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함께 일한 동료가 죽었다면 그것도 연쇄적으로 죽었다면, 그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는 중대재해 현장이다. 이에 대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과로의 의미가 과도한 노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 각주

1) 데이터를 보관, 기록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보도]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 국회 통과] "노동환경 개선하려면 정부·지자체 현장실사 필수" (전북일보)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 국회 통과] "노동환경 개선하려면 정부·지자체 현장실사 필수"

  • 천경석
  •  승인 2018.03.01 20:47


근로시간 단축안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근로 형태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법 개정 취지와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직권조사와 현장실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고, 연장근로의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000930

[성명서] 손 봐야 할 것은 손보지 않은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반대한다!

[성명서] 

손 봐야 할 것은 손보지 않은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반대한다! 

- 노동자의 ‘몸과 삶’에 근거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지난 2월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계적 단축하고, 연장·휴일노동수당 중복할증은 적용하지 않으며, 특례업종을 5개로 축소하며 유지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촛불로 탄생한 현정부는 적폐청산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장시간 노동, 과로사 문제가 해결되길 바랐던 노동자, 시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번 개악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무제한 연장노동을 조장하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을 유지했다. 지난해 버스 졸음운전사고부터 집배 노동자, 게임개발 노동자, 방송 노동자, 병원 노동자 등 26개 특례업종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 되면서 전사회적으로 특례업종 완전 폐지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폐지가 아닌 5종으로 ‘축소’하여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운송서비스업, 보건업은 여전히 무제한 노동이 가능케 됐다. 근무일 종료 후 다음 근무 개시 전까지 연속 휴식시간을 최소 11시간 이상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특례제도를 유지한 것은 앞으로도 장시간노동으로 인한 사고와 죽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장시간 노동을 해도 되는 노동자는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보호되고, 벗어나야 한다.   

둘째, 마치 주 52시간이 기준처럼 다뤄지고 있다. 일주일을 7일로 명시하고 주당 최대 법정노동시간 한도를 52시간으로 합의한 것에 대해 국회와 언론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 주당 법정노동시간은 주40시간이다. 사실상 1일 노동시간 제한 규정이 없는 것 역시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다. 1일 제한이 없기 때문에 결국 12시간 연장 근무가 당연한 것처럼 얘기 되고, 이것이 혁신적인 노동시간 단축인 것마냥 다뤄지고 있다. 이런 개악안을 두고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 것 마냥 이야기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투쟁해온 노동자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호도하는 일이다. 

이로서 전면시행 시기인 2021년 7월1일까지는 법정노동시간이 주40시간이 아니라 주52시간제이며, 동시에 주 68시간 체제가 유지되게 되어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었다. 

셋째, 실제 법의 보호가 가장 필요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책이 없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최대 법정노동시간 52시간의 적용조차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받지 못한다. 소규모 사업장은 이미 노동시간 외에도 안전 문제, 고용 문제 등이 취약하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적용 범위에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계적 시행기간도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2021년 7월1일로 정해져 3년 뒤에나 겨우 적용받게 된다. 관공서 공휴일 도입도 역시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 1월1일에야 시행된다. 

지금도 노동자들은 무제한 연장노동에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시행일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고, 근로기준법 대상 확대와 적극적 지원이 이뤄져 그 어떤 노동자라도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국회의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8시간 특별연장근로시간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부칙에는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근로시간제도 확대적용을 논의하게 되어있다. 예외 조항을 두어 주 60시간을 허용하는 법안은 즉시 삭제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그간 노동시간 문제와 관련해 지적됐던 간주노동을 가능케 했던 근로시간 계산의 특례(제58조)와 농업, 수산업, 감시 또는 단속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조장했던 적용의 제외(제63조)는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물론 그동안 요구해왔던 관공서 휴일을 일반 사업장에 적용한 것, 연소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축소한 것 등은 진전된 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악화된 상황에서 이것만을 가지고 다행이라 여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정부의 역점 사업으로 꼽았다. 핵심 노동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강행으로 처리된 여러 문제점을 담은 개정안을 우리는 개악안이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다시금 확인됐다. 현 환노위의 방향과 위치가 여전히 적폐의 대상에 머물고 있음을, 이번 개악안은 헌법적 가치를 심히 훼손할 여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요구한다. 노동자의 몸과 삶에 근거한 노동시간 단축을. 


2018년 2월28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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