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2018 전국평등행진 부산기자회견

[기자회견문]

사람이 이유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어느덧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인천퀴어퍼레이드 사태 등에서 목격했듯 혐오단체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여러 목소리를 내는 현장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각종 법률의 제정도 가로막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인권교육지원법이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허용하는 법안이라며 혐오단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결국 법안이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14년에도 인권교육지원법은 혐오세력의 강력한 항의에 의하여 철회되었고 이 법안뿐 아니라 인권 강화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이런식으로 철회되어 왔다. 국회는 시민들을 향한 공격들을 방조해왔고 국회로 쏟아지는 혐오세력의 공세에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조용히 법안을 철회하는 등 그들의 행위에 동조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국회가 집중공격을 받는다면 당사자들에게 쏟아지는 공격과 그들의 아픔은 어떠하겠는가. 실제 이번 인천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정신적 상처가 극심하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지난 토요일 치러진 제 2회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해운대구청이 중립이라는 이름뒤에 숨어 혐오세력들의 행위를 방조하면서 준비과정과 진행과정 동안 극도의 불안속에서 치러졌다. 축제는 퀴어와 퀴어들과 함께 연대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무사히 치러졌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심리적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성소수자들의 우울증과 자살율은 이미 적신호가 켜진지 오래이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난민, 장애인, 여성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차별금지법 발의를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 사람이다. 국회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여야 한다.

 

작년 2017, 부산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대중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열망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 차별금지법 발의와 제정을 향한 열망을 다시 한 번 모아 여기 모였다. 지금 이 시간,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오는 1020일 광화문부터 국회까지 평등행진을 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시민들의 염원을 국회는 똑똑히 보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인 2018년의 남은 시간,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방방곡곡 캠페인과 평등을 발의하라 온라인 행동 등 국회를 움직이기 위한 다양한 직접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국회는 지금 당장 평등을 발의하라! 부산시와 각 구청은 혐오세력들의 인권침해행위에 방조하지 말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 힘써라!

 

20181016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 2018.07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 영화 <히든피겨스>의 한 장면


인종주의가 씌우는 가면

제주도에 몰려든 480명의 예멘 난민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마치 이 민족이 평화로운 남쪽 섬을 침략이라도 했듯이 제주도의 여성과 아이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그렇다. 예멘 난민들의 90%가 20~30대 남성이며, 그들은 브로커를 끼고 입국했다. 이로부터 ‘가짜 난민’설까지 등장했는데, 저들은 인도주의적 보호를 보장받아야 할 난민이 아니라 잠재적이지만 곧바로 현실화할 (성)범죄자집단이자, 불법 체류자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멘에서 밀입국한 480명은 ‘예멘인’이거나 ‘난민’이 아니라 (성)범죄자로서 예멘인으로 표상된다.

인종주의는 ‘순수한 집단’으로 인종(race)을 지목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공격목표, 즉 사회적으로 정상화를 위해 배제되어야 할 집단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래서 인종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난민 혐오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불특정한 예멘인이어서가 아니라 ‘20~30대의 낯선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를 되짚게 하며, 또한 논란이 재활성화 되고 있다. 예멘 난민으로 인해 인종주의적 태도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통념들이 예멘 난민 문제로 더욱 격렬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와 혐오 등 인종주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매우 문제가 있는 이데올로기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는 늘 함께 기능하며, 나아가 “인종주의는 항상 성차별주의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여러 유형의 인종주의 형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는 늘 특권화된 집단을 보편의 얼굴로 내세우며,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평가절하하며 인종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종주의에 대항할 때 차별받고 배제되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위험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지를 분석해야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면을 씌우는 자가 누구인지, 보편의 얼굴을 한 지배적 표상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히든 피겨스>가 싸운 것은 어떤 인종주의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주의 영화라고 평가되는 작품 하나를 보자.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figures, 2016>는 19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나사(NASA)에서 근무했던 흑인 여성들의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흑인 여성들은 백인 남성들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들에게도 차별받는다. 그런데 백인 남성들과 백인 여성들이 흑인 여성에 가하는 차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우성 여성 전체는 나사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의 바깥에 있다. 이들은 전산원으로 별도의 독립적인 사무실에서 기능적인 계산을 하거나, 남성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필요한 사무 일을 하기 위해 배치될 뿐이다. 흑인 여성들과 직접적 갈등을 겪는 것은 백인여성들이다. 이들은 같은 전산원이자 다른 인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에게 직접 모욕을 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흑인 여성들의능력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정당한 역할을 주려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에서 실질적인 중책을 맡고 있는 캐빈 코스트너 역은 흑인 여성 전용 화장실 간판을 깨부수고 “이제 됐군. 유색인종 화장실은 없어. 백인 화장실도 없고. 그냥 변기 있는 화장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인종주의적 차별에 맞서 흑인 여성들이 ‘여성과학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성공했다고 영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이 영화를 실화에 바탕을 둔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빼어난 영화라고 할지라도 이 영화의 출발인 인종주의는 여전히 남는다. 

영화에서 백인 남성이 재현하는 것은 백인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다. 그것은 ‘나사’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미국이라는 국가이기도 하다. 나사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국가주의가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릴 우주선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화되었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상징적으로 자리한다. 백인 남성의 몇몇이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흑인 여성의 천재적인 두뇌를 인정한 것은 미국과 소련 간 벌어진 우주‘전쟁’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종주의의 얼굴, 보편을 가장한 지배적 표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흑인 여성들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은 당시에 정세적으로 요청된 적, “망할 소련 놈들”에 대한 타자화를 통해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즉 영화는 인종주의에 대항한다기보다 특정한 인종주의를 다른 인종주의로대체하면서 인종주의를 구성하는 교차적인 그물망들(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그물망 안에서 영화는 끝난다. 드디어 미국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흑인 여성들은 나사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되었다. 전쟁은 승리했다!

과로의 보편적 얼굴

인종주의적 접근 말고 다른 면에서 보자면 <히든 피겨스>는 ‘나사’에서 일하는 과학자이자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들의 살인적인 과로는 ‘로켓에 사람을 태워 달에 보내는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이어진다. 과로를 과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로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거나, 아니면 자기 일이 공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노동운동에서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보편적 노동의 표상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이미지는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시대에 ‘산업역군’의 표상이기도 하다. 즉,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얼굴은 곧 국가이자 혁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가장 비극적으로 균열이 난 채 극대화 되었을 때가 IMF 위기시의 정리해고와 그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IMF 위기 때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였다. ‘차 만드는 남성’과 ‘밥짓는 여성’이 함께 한 파업이었지만, 파업 이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거나, 식당 자체가 외주화되어 나빠진 노동조건과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파업의 패배로 남성 노동자들도 더 빨리, 더 많은 차를 만들어야 했다. 강화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컨베이어벨트에서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죽지는 않더라도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빨리 밥을 먹고 빨리 쉬고 싶었기 때문에 남성 노동자들은 더욱 급해졌고, 그리고 험악해졌다.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 식판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사회의 살벌한 과로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 과로는 동질적이지 않다. 차를 만드는 노동과 밥 짓는 노동의 분할,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분할은 분할 이전에 특정한 노동의 형태를 특권화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분할은 곧 차별과 배제의 선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8시간, 10시간 혹은 12시간으로 균질화된 노동시간의 질적 차이가 구성된다. 이것은 노동강도로 환원할 수 없는 과로의 질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과로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가 교차하며, 서로를 보충하는 메커니즘이 형성하는 분할의 선을 따른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신을 보편의 표상으로 재생산하는 이상 이러한 인종주의적 분할선 역시 재생산된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나 ‘혁명’을 상징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보편화한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를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 아니 700명 중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사측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단지 정규직의 횡포가 아니다. 정규직화하면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 여성 노동자를 배치 전환시키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역으로 남성 노동자도 조립라인의 노동강도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젊고 건장한 남성 하청노동자들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때 비가시화되는 건 여성노동자들의 과로다. 정규직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들은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서 일하기에는 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인 과로의 강도를 견뎌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이러한 차별의 논리 배후에서 작동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인종, ‘여성’이라는 인종이 교차하며 ‘여성 비정규직’은 여성의 문제로도, 비정규직의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차별의 선들 아래에 놓인다. 그리고 ‘남성정규직’이라는 일부 집단이 특권화 되면서 보편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자신들의 과도한 노동을 특권화 하는 순간 과로를 일으하는 인종적, 성적인 메커니즘은 사라지고, 더 많은 과로를 조직하는 경영기술이나 노동과정의 변형, 노동의 형태들도 사라지고 오로지 물리적으로 계량화된 과로의 수치만이 남게 된다. 그들의 과로를 가장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들이 입증하고 싶어 하는 과로 역시 가장 앙상한 것으로 남았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요청이 아니다. 스스로가 보편의 지배적 얼굴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위치를 점하는 것만이 모든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길이자, 자신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기득권’을 획득할 방법일 것이다.

[기자회견] 제주 예멘 난민에게 혐오가 아니라 지지와 연대를!


죽음의 위협에서 탈출해 온 난민들에게

혐오와 배제, 인종차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환대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1. 지금 대한민국은, 500여명의 난민의 처우와 관련하여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청와대 청원, 날선 혐오와 배제의 언어들이 몰아치고 있는 SNS, 부정확한 사실과 자극적으로 편집되고 과장, 왜곡된 뉴스가 줄을 잇고, 난민반대집회가 열리며, 난민을 강제송환하자는 요구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중 일부라고는 하더라도, 지금의 이 상황은, 불과 1년전, 전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촛불을 들었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 이주인권노동단체들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착잡함과 함께 깊은 우려를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2. 예멘은 4년째 내전 중인 국가로서, 국가로서의 기능이 무너지고,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은 송두리째 파괴되었습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1만 명 이상, 부상자는 5만 명이 넘습니다. 국내 피난민은 2백만 명에 달하고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이 2십여만 명입니다. 인구 3분의 22천여만 명이 식량과 생필품 부족으로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고, 매일 130명의 아동들이 질병과 기아로 숨지고 있습니다. 700만 명이 굶주림으로 아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정부군과 반군, 무장세력들은 각 지배 지역에서 정치적 반대의견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강제징집을 실시합니다. “21세기 최대의 비극”, “예멘의 현 상황은 세계 종말과도 같다”, “지구에서 가장 비참한 곳등의 말이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사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한 그곳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겨우 빠져나온 예멘인 5백여 명이 살아남고자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하였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따뜻한 연대를 맺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3. 그러나 애초 정부의 경솔한 대책, 정보의 부족으로 시작된 막연한 불안감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어 어떤 팩트로도 어떤 해석으로도 설득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금방이라도 우리들의 일상에 들이닥칠 듯한 실재화된 위험인 것처럼 변모하면서 난민들을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이라는 인식조차 없이 무슬림, 난민에 대한 반대가 불안감과 결합되어 우리의 이성과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30세대가 겪고 있는 취업난, 실업, 경쟁 압박, 여성의 안전에 대한 불안 등이 적확한 원인 규명과 해법없이 이방인을 희생양 삼아 분노로 표출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요?

 

4. 난민을 배척한다고 내국인의 안전과 인권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난민 배척으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이나 여성을 비하하는 한국문화가 개선되는 것도, 범죄율이 낮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빈곤과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두의 안전과 인권을 높이는 길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주민들의 범죄율은 낮습니다.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에서조차 최근 내무장관이 “30년 이상 통틀어 가장 범죄율이 낮은 수준(전년대비 9.6%감소)이고 비독일인 범죄율은 22.8% 감소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에도 한국의 이주민들의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습니다.

 

난민들이 일자리를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국인이 일하려 하지 않는 3D업종에서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들은 열악하게 일해 왔습니다. 통계적으로도 실업과 이주민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경제규모 세계 12위인 한국이 현재의 난민들을 수용 못할 규모가 아닙니다.

5. 이미 많은 분들이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곳곳에는 난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과 징병을 피해 피신했던 젊은 조선인 남성들, 한국전쟁이라는 내전 속에서, 4.3 과 같은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한국은 수많은 난민을 양산하였으며, 현재 해외에 거주중인 해외동포의 절반 이상이 난민의 후손이라고도 합니다.

유엔 설립후 최초로 도움을 받은 난민이 한국 난민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6. 정부의 경솔하고 무책임한 난민정책을 비판하며, 난민 인권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수립을

촉구합니다.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한국정부의 경솔하고 무책임한 정책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정부는 그 동안 난민에 관한 국제협약 비준과 난민법제정을 정부의 치적으로 치장해왔지만 정작 세심하고 배려깊은 난민정책을 시행해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극히 낮은 난민인정률, 열악한 지원, 긴 심사기간과 심사과정에서의 난민조력미흡, 부족한 전문인력, 난민과 이주민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확대정책 부족 등 난민정책이 안고 있던 허점과 부실은 이번 제주도 예멘 난민 유입사태를 맞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법무부가 29일 내어놓은 보호의 필요성과 관계없이 경제적 목적 또는 국내체류 방편으로 난민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난민법 개정을 하겠다는 대책 역시 적절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근거 없는 가짜 난민논리를 더욱 확산시키고 난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것입니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난민 인권에 기반한 정책의 내실화이며, 난무하는 인종주의적 혐오와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난민신청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제주도의 출도제한을 해제하고 신속한 절차를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그 동안 인권단체들이 줄기차게 강조해왔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방기해왔습니다. 점차 발현하기 시작하는 인종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혐오발언규제와 같은 법과 제도의 정비를 요구하였지만 역시 미온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국사회는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학습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모호한 입장이, 현 상황에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7. 대한민국은 점점 늘어나는 이 땅의 이주민들, 사지를 탈출해온 난민들과 함께, 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연대하면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에서 탈출해 온 난민들에게 혐오와 배제, 인종차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환대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연대를 파괴합니다.

 

이미 각국 정부들은 난민, 이주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약속으로 난민에 관한 국제협약 외에 난민과 이주민에 관한 각각의 글로벌컴팩트를 만들어 채택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일원인 한국정부도 보다 책임있게 난민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난민과 이주민의 증가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의 연대가 없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와 시민정신의 위기입니다. 우리 이주인권노동단체들은 난민, 이주민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모두의 인권과 평등을 진전시켜 나가고자 다음을 정부와 우리 사회에 촉구합니다.

 

1. 난민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존을 위한 탈출과 정착을 응원합니다.

2. 난민 강제송환은 곧 사지로 내모는 것입니다. 강제송환 요구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3. 전쟁과 죽음의 상황에 가짜는 없습니다.

4. 난민인정을 더 어렵게 하는 정부의 법개정을 반대합니다.

5. 예멘 난민의 제주도 출도제한을 해제하고 신속히 난민 지위를 부여하여야 할 것입니다.

6. STOP WAR NOT PEOPLE ! 사람이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멈춰야 합니다.

 

 

2018712

 

 

제주 예멘 난민에게 혐오가 아니라 지지와 연대를보내는 이주인권노동단체 일동

 

경기지역이주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 14개단체(노동자연대 경기지회, 노동당 수원오산화성당원협의회, 녹색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변혁당 경기도당,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포천이주노동자상담센터)

난민네트워크 15개단체(공익법센터 어필,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공익사단법인 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난민인권센터, 동두천난민공동체, 세이브더칠드런,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이주여성을위한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 이주민지원센터친구, 이주민공익지원센터 감사와 동행, 재단법인 동천, 한국이주인권센터, 휴먼아시아)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 16개단체(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땅과자유, 민주노총경북본부, 민주노총대구본부, 민중행동, 대구사랑장애인자립센터, 장애인지역공동체, 성서공단노조,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운동연대, 지구별동무, 대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북부노동상담소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14개단체(()지구촌사랑나눔 중국동포의집,()한국이주민건강협회희망의친구들,남양주샬롬의집,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외국인노동자와함께,아산외국인노동자센터,아시아인권문화연대,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용인이주노동자쉼터,의정부EXODUS,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파주샬롬의집,포천나눔의집,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공동행동 34개단체(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아시아의창,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부산울산경남공동대책위원회 9개단체(가톨릭노동상담소, 민주노총부산본부,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울산이주민센터, 이주민과함께, 희망웅상, 김해이주민인권센터, 거제고성통영노동건강문화공간새터, 녹산선교회)

이주배경아동청소년기본권향상을위한네트워크 14개단체((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아시아의 창,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안산글로벌청소년센터, 이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이주와 인권연구소, 재단법인 동천, 천주교 의정부교구 파주 EXODUS,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TAW() 네트워크)

이주인권연대 12개 단체(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이주민과 함께, 아시아의 창, 안산이주민센터, 양산외국인노동자의 집, 울산이주민센터, 이주민노동인권센터, 이주와 인권연구소, 지구인의 정류장, 천안 모이세, 한국이주인권센터)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 37개단체 (201879일 기준) 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제주교구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제주불교청년회,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민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역본부, 정의당 제주도당, 녹색당 제주도당, 노동당 제주도당, 민중당 제주도당, )4·3연구소, 강정국제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정친구들, 개척자들, 글로벌이너피스, 기억공간re:born,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제주생태관광협회,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바라연구소-평화꽃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제주다크투어, 제주민권연대, 제주민예총, 제주장애인연맹DPI,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차롱사회적협동조합,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주평화인권센터, 진실과 정의를 위한 교수 네트워크, 지구마을평화센터,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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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 2018.0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사월 <담> 프로젝트,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제7의 인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여전히 죽음으로 호명되며

2016년 겨울을 환히 밝혀주었던 빛은 크고 작은 변화들로 일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정의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던 촛불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촛불로 이어졌습니다. 변화가 시작되었던 그곳, 광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의 목소리는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변화의 길목에서 함께 불을 밝혔지만 이름이 아니라 죽음으로, 숫자로 불립니다. 올해도 몇 번을 새하얀 국화꽃을 놓으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산업재해나 사고, 강제추방과 단속, 신변 위협으로 인한 자살, 젠더폭력 등으로 많은 이주민이 망했습니다.

집이 된 비닐하우스, 빗물이 새서 전기가 흐르는 벽, 잠기지 않는 방, 휴식시간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량을 위해 제거되는 안전장치는 이주민에게 닥친 한국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 “이상한 냄새 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게 굴어” “힘든 일 하러 온 건데. 뭐 어때”… 쌓인 담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더 늦출 수 없을 만큼 울부짖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차별의 시선을 혐오의 언어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가해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그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안부를 묻고 삶에 말을 건네려 합니다. 그 사람들도 나도 사람이기에. 이보다 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담’아, 높게 쌓인 ‘담’을 무너뜨리고

어느새 높다랗게 쌓인 회색빛 ‘담’은 목을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가 나눈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그 사람들에게 붙인 부정적인 이름들을 떼어내려 합니다. 가난하고, 냄새나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떼어내고 개개인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고 합니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삶에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어,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오가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록되어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을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록된 이야기는 꺼칠꺼칠하고 차가운 담을 흔들 것입니다. 사회가 붙여놓았던 이름들은 오롯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삶으로 불릴 것입니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리고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이야기될 때, 더욱 평등해지지 않을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담 너머로 밀어내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벽을 쌓지 않을 테니까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경기이주공대위는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담>은 이러한 고민 끝에 꾸려진 기획단입니다. <담> 기획단은 이주민들이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되고, 혐오와 차별로 뭉뚱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담> 기획단은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주청소년 황윤호 씨,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씨, 종교적 난민신청자 ‘A’ 씨,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 7명의 이주민을 만나서 삶에 말을 건넸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해오는 삶의 이야기를 빼거나 보태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삶의 목소리가 사회에 가닿아 지기를 바랍니다. 이주민의 목소리가, 목소리를 통해 울리는 마음들이 모여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균열이 일어날 ‘그 날’이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며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한걸음에 다가감이, 다음 한 걸음에는 소통이, 그다음 한 걸음에는 울림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이야기되는 그 날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홍보] 이주민 구술사 프로젝트 <담> 단행본 사전주문 안내

<안내> 이주민 구술사 프로젝트 <담>

 단행본 사전 주문


-프로젝트 <담>은

‘외국인’으로 타자화되며 경계 밖에 놓인 이주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이주청소년, 난민신청자 등 다양한 이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로 국민국가라는 견고한 경계와 구분 짓기의 담장을 넘고 싶었습니다. 


경기이주공대위가 2017년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또 다른 대화의 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로젝트 <담>의 단행본은 사전 주문을 받고있습니다.  


배송은 15일 (금)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주문 후 아래의 계좌로 입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가격 : 1부 1만 원(배송비 2500원), 10부 이상 주문시 배송비 무료. 

* 신청기간 : 12월 15일 (금) 까지 

* 배송기간 : 12월 17일 (월)~18일(화) 사이 발송예정

* 입금안내 : 기업 168-019282-01-043 수원이주민센터


https://goo.gl/forms/CfxYgQGrU3LkA7pI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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