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꿈의 공장을 찾아서 / 2014.7

꿈의 공장을 찾아서


재현 선전위원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유기용제를 다루며 손가락 지문이 없어져라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빼돌린 사장은 이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내쫓았다. 그렇게 거리에서 싸운 지 어느덧 2709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래가 노래를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삶을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꿈의 공장을 찾아서 싸우고 있는 콜텍 이인근 지회장 동지를 만났다.


최근 대법원의 재상고 판결이 있었다. 이번 판결 내용은 무엇이었나?

지난 6월 12일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판결 내용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취지에서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내린 이번 판결은 근로기준법에 정해져 있던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이 완전히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동시에, 자본가들에게 정리해고에 대한 부분을 활짝 열어준 계기가 된 판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판결에 기대하는 바가 남달랐을 텐데, 실망이 컸겠다.

전혀 기대를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인 거고, 내심 고법 판결을 따라갈 거다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참담하고 힘든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고법 파기 환송심 때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했었다. 심리과정에서 진행되었던 회계 특별 감정도 좋게 나왔고, 기대했는데 실질적인 판단이 감정을 통해 밝혀진 결과는 대법 판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 앞에서 25일 간 24시간 내내 1인 시위가 있었다.

대법에 상고가 됐고, 고등 법원 판결이 그렇게 나다 보니까 대법원에 있는 대법관들에게 올바르게 판결을 해달라고 하는 그러한 취지에서 대법원 1인 시위를 계획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 좋지 않겠냐는 연대하는 동지들의 의견들이 있어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참 많은 연대 단위들이 함께해주셨다. 감사하다.


재판 과정에서 콜텍 자본이 경영상의 위기가 없었다는 것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는데도 이렇게 나온 이번 판결은 정치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회사에서는 콜텍 본사와 대전 공장을 분리해서 경영해왔는데 2003년부터 대전 공장이 적자가 났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고법이 콜텍과 대전 공장은 하나의 기업으로 봐야 한다며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사측에서 대법에 상고했고 3년 가까이 사건을 끌면서 결국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대법 판결을 내렸을 때 판사 중 1명이 얼마 전 총리 내정자였다 사퇴한 안대희였다.


▲ 콜텍 동지들은 대법 판결 규탄을 위한 1인 시위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심리하는 과정에서 사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고법으로 환송했을 당시 대전 공장의 적자가 구조적인 문제인지, 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결정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심리하는 과정에서 콜텍에 대한 특별 감정을 요청했던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원이 지정한 회계사가 특별 감정을 했다. 그 결과 콜텍과 대전 공장은 독립체로 볼 수 없고, 대전 공장의 적자가 미비하므로 기업 전제로 전위 될 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정리됐다. 그런데 전혀 대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사측으로 기운 판사가 립서비스 차원으로 너희가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그런 거였지 않았나 싶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감정 결과를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


2,000일을 넘어 3,000일 투쟁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투쟁할 수 있었던 버팀목,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내가 몸담아 왔던 열심히 일했던 일터에 대한 애정, 사장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지금까지 견디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또 많은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가 지금까지 콜트콜텍 투쟁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모든 조합원이 다 콜텍에 근무하면서 늘상 주인의식을 갖고 내 몸 아픈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아침에 출근하러 가보니 출입문이 잠겨있더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배신감이 너무 크더라.

▲ 이 팻말이 필요 없는 그 날은 언제일까


낙 긴 시간 싸우면서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다 했다. 이후 투쟁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대법원 판결에 규탄하는 1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콜밴 연습, 지역 연대 단위 동지들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모임, 공동투쟁단 활동, 본사 집회, 유랑 문화제 등 일상적인 투쟁을 하면서 이후 장기적인 투쟁을 고민 중이다. 사실 우리가 노동조합을 해산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것 자체로 박영호 사장이 압박을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콜텍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일은 해외에서 하고 반제품으로 만들어 들여온 기타를 마지막 조립 및 튜닝을 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팔아먹는 것이 경영방침이었는데 그게 안 되고 전 제작을 해외공장에 의존하고 있으니, 상품질도 떨어지고 브랜드 이미지도 나빠지고 그러면서 판매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후 투쟁도 현재 박영호 사장이 가장 많이 압박을 받는 부분인 매출에 직접적인 타결을 줄 수 있도록 뮤지션들에게 콜트콜텍 문제가 더욱 확산되고 알려질 수 있게끔  고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직은 초벌 단계인데, 그동안 투쟁이 법적 싸움과 투쟁이 다소 분리됐었다면 이후 투쟁은 사회적 연대체 구성을 통한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대 단위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건 안정적인 농성 거점과 생계를 함께 보존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려고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후원을 조직하려고 한다. 일터 독자들도 우리를 포함해서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더욱더 많은 관심 기울여주시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법
1. 매달 마지막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열리는 수요문화제에 함께한다.
2. 기타노동자를 착취하는 콜트기타를 사지 않는다.
3. 콜트콜텍 동지들과 친구가 된다.
(트위터 @NoCort / 페이스북 www.facebook.com/groups/nocort)
4. 콜트콜텍 동지들을 후원한다. (외환은행 620-216112-483 이은성)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