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귀족노동자?의 실체 /2016.8

귀족노동자?의 실체



김정수 (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작년 9월에 개원한 우리 병원 인근에는 K자동차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부 언론에서 종종 '귀족노동자'로 불리곤 한다. 


작년 말 한 노동자가 우리 병원을 찾았다. 이 공장에서 10여 년간 일한 30대 후반의 남성 노동자로, 우측 어깨에 통증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진단을 받고 산재 처리가 가능할지 (업무 관련성 소견서 발급이 가능할지) 상담 차 내원한 것이다. 혼자 오신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 담당자와 함께 오셨다. 


진단이 비교적 명확해서 작업 공정상 어깨 부담 작업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이 분이 어느 한 공정에서만 일했던 것이 아니라 부서 내 20개쯤 되는 공정에서 번갈아가며 일을 했던지라 전체 공정을 다 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두 달 뒤 이 분이 다시 병원을 찾아 왔다. 이번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형님과 함께 오셨다. 일하는 부서 내 전체 공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각 공정에 어깨 부담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 공정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는지 등에 대해 사진까지 첨부해서 아주 자세히 정리해 오셨다. 함께 오신 분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신 것이라고 했다. 


정리해온 자료를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업무 관련성 소견서를 작성했고 올해 1월 산재 신청을 했다. 4월에 산재 승인이 났고, 두 번의 연장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8월 말쯤 종료 예정으로 현재 열심히 치료 중이다. 


이 분과 함께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받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귀족노동자'의 실체를 좀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이 분은 산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산재 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부터 산재 승인까지 6개월이 걸렸으나 이 기간은 그나마 짧은 편이다.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인데, 같은 부서 내에 아픈 분들이 또 있는데 잘 몰라서 혹은 회사의 눈치가 보여 그냥 적당히 개인적으로 치료받고 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산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산재를 신청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 보면 산재 승인을 미끼로 접근하는 각종 브로커에게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승인되는 경우보다 불승인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회사에 찍히고, 브로커에게 돈 뜯기고, 동료들에게 꾀병 환자로 낙인찍히고... 노동조합도 없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강성노조로 유명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다. 


이들에게 '귀족'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무슨 특별한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인 이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귀족'이라니... 게다가 '귀족'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이러한데, '평범한'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떨까? 생각하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런 막막한 현실 속에서 이 분이 산재로 요양하면서 열심히 치료에 전념하며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필요하면 산재 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노동조합(단결)과 산재에 대해 좀 아는 직장 동료(지지)와 우리의 도움(연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괄호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구소 리포트] 어느 완성차 생산 공장의 교대제 변화 후 삶과 건강의 변화 / 2014.8

어느 완성차 생산 공장의 교대제 변화 후 삶과 건강의 변화


김형렬, 최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1. 연구 배경 : 주간연속 2교대제, 정말 몸과 생활이 나아졌을까?


한국 완성차 생산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실상은 장시간 노동과 그 대가에 따른 임금을 받아가는 ‘생계형 장시간 노동자’다.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은 전체 제조업 평균 근로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장시간 노동을 해 왔다.


본 연구 대상 사업장 역시 10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특근을 밥 먹듯 하는 전형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7명의 노동자 중 2013년 12월 주·야 맞교대 시절, 2주 근무 중 4일 쉰 사람은 2명뿐이었다.


이러던 회사에서 올해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10시간씩 하던 맞교대가 전반조 8시간(오전 7시~오후 3시 40분), 후반조 9시간 20분(잔업 1시간 20분 포함, 오후 3시 40분~새벽 1시 50분)으로 노동시간이 줄었다. 


주간연속 2교대가 전격 도입되고 3개월 후,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노동강도가 증가하지는 않을까? 임금이 줄어들지는 않았을까? 노동자들의 몸과 삶은 정말 나아졌을까? 이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 본 연구를 기획했다. 


2. 객관적 지표를 활용한 연구 과정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후 삶과 수면의 질이 좋아졌음은 이미 몇 개 회사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소규모라 하더라도 교대제 변화의 영향을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여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매일 생활일지를 직접 적어보기로 했고, 24시간 측정하는 혈압계와 신체활동 측정기기를 활용하여 교대제 변화에 따른 차이를 비교해 보았다. 

측정은 주야 맞교대와 주간연속 2교대 시기 각각 2주간 진행하였다. 먼저 주야맞교대를 하던 2013년 12월, 주간 근무 한 주, 야간 근무 한 주 동안 혈압과 신체활동도를 측정하고 생활일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주간연속 2교대를 3개월가량 겪은 뒤인 2014년 3월, 전반조 한 주, 후반조 한 주 동안 다시 측정을 실시했다. 가장 규모가 큰 조립부서에서 근무하는 7명의 노동자가 연구에 최종 참여하였다. 


3. 주요 연구 결과


1) 다시 찾은 여유와 가족생활


주간연속 2교대로의 변화 이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증가하였고, 이를 가장 긍정적인 변화로 꼽는 조합원이 많았다. 


“저는 훨씬 좋아요. 저 뿐 아니라 사람들도 아무래도 일찍 끝나니까 술도 덜 먹는 것 같고요. 같이 축구하는데 사람들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요.”

“4시 반에 집에 갈 때 어린이집 끝날 시간이니까 둘째 데리고 집으로 가고... 밥을 일찍 먹고 저녁에 애들이랑 놀거나 공부 가르치거나 하는 시간이 늘었죠.”


하지만 새로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등의 적극적 여가 활동은 아직 많지 않아, 새로운 노동자 여가 문화의 형성을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편, 연구에 참여한 조합원들 대부분은 임금이 감소했지만, 이에 대한 불만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저는 매달 30만 원 정도 월급이 줄었는데, 이 정도면 바꿀만한 거 같아요. 몸이나 생활이 훨씬 좋아요.”


하지만, 임금 감소가 3~4개월 이상 지속되자 슬슬 특근 등 장시간 노동으로 이를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안정적인 임금체계 도입이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에 중요한 지점임을 알 수 있었다. 


2) 피로는 감소, 수면 질은 향상


주간연속 2교대 도입 이후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피로 감소, 체감하는 노동강도의 저하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후반조 근무는 이전 야간조에 비해 노동시간이 40분 줄어들었고, 여전히 야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감소 효과가 적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여러 조합원들은 그 40분 감소의 차이가 확연하다고 진술했다. 


“야간 때보다 지금 후반조 근무는 실제로는 40분만 줄어들었거든요. 근데 부담감이 훨씬 적고, 몸이 달라요. 다리 아프고 그런 게 훨씬 덜 하고요.”



교대조에 따른 주관적 노동강도 (12; 약간 힘듦)


이런 변화는 생활일지에 표시한 주관적 노동강도 점수에서도 나타났다. 6점(아주 편함)에서 20점(최대로 힘듦)까지 본인이 느끼는 노동강도 점수를 표시하도록 했고, 주간조에 비해 전반조가, 야간조에 비해 후반조가 노동강도가 낮다고 응답해 우려했던 노동강도 증가는 발생하지 않았고 피로도 감소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수면의 질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런 결과는 두원정공이나 기아자동차 등 주간연속 2교대 변화 이후 수면의 질을 조사한 다른 사업장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다만 전반조 근무 시작 시각이 이전 주간근무 때보다 한 시간 앞당겨지면서 아침 근무 시간에 피로와 졸림 증상을 호소하여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교대조에 따른 평균 수면의 질 점수 (낮을수록 좋음)


3) 더 활동적으로 변한 여가시간


주간연속 2교대 변화 후 신체활동량이 늘었다. 그런데 근무시간 중 활동량은 감소한 반면, 여가시간 활동량은 증가해서 총 신체활동량이 늘었다.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은 근무 시간과 여가시간에 모두 증가했다.

주간연속 2교대 이후 근무 시간 중 시간당 칼로리 소모가 많아진 것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감소, 실질적인 노동강도 강화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여가시간의 시간당 활동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누워서 TV를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면, 이제는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가사 일을 하거나, 운동이나 등산을 하는 등 더 활동적인 여가를 보내게 된 것이다. 


“취미생활로 헬스장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애들하고 놀고 공부 가르치고, 부인이랑 마트 같이 다니는 정도였는데, 최근에 좀 멀리 이사하면서 차라리 집에 일찍 가버리거든요. 그러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여가 시 신체활동의 증가는 심혈관질환, 암 예방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교대조에 따른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


4.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숙제


주간연속 2교대제의 도입이 노동자의 삶과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을 확인했던 선행 연구들에 비교하여, 본 연구에서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 신체활동의 증가, 수면의 질 향상, 피로도 감소 등의 건강의 긍정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자유시간의 증가, 적극적 여가활동의 증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증가 등 삶의 변화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한계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여전히 후반조 근무가 새벽까지 이어져 야간 노동시간 감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후반조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새벽 3시경 취침하는 조합원이 많았다. 반대로 전반조 아침 출근 시간은 너무 빨라서 전반조 근무 때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강 영향 중 수면의 양이나 질, 신체활동량은 상당히 개선되었으나 혈압 감소 효과는 기대했던 것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앞으로 대상자 수를 늘려 지속적인 변화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속 가능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하여, 임금감소를 벌충하기 위해 또다시 잔업과 특근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 임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본 연구 사업장인 대기업도 그럴진대,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사정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전반적인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업장 차원의 과제로는 조합원들이 새로 생긴 여가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지원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새로운 노동자 문화를 형성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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