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 2014.10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기륭전자분회, 다시 싸움을 시작하며'


재현 선전위원



2010년 11월 1일 금속노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1,895일 투쟁 끝에 모든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에서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맺으며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다. 사회적 합의 당시, 기륭자본은 국내 생산 설비가 없고, 경영상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현장복귀까지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결국, 조합원들은 2년 6개월을 기다린 끝에 2013년 5월 2일 설렘을 가득 안고 정규직으로 당당히 현장에 복귀했다. 


현장 복귀 9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사는 업무배치를 하지 않았다. 월급은커녕 4대 보험도 들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지난 8월 최동열 기륭 회장은 “일을 하지 않으면 너희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조합원들은 화가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래도 사회적 합의가 있으니 회사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13년 12월 30일 꼭두새벽 최동열 회장과 몇몇 직원이 회사 집기를 들고 야반도주를 했다. 아침에 출근한 조합원들은 회사 총무부장에게 항의하고, 어디로 공장을 이전하는지 밝히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틸 수밖에 없다고 했다. 1,895일을 투쟁하며 그토록 바라던 일터가 하루아침에 농성장이 되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많은 없었던 조합원들은 8월 29일 ‘사회적 합의 이행 촉구, 경영 투명성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선포했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최동열 회장을 사기죄로 구속하기 위한 고발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지난 9월 27일 고발인 대회를 마치고 다음 투쟁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유흥희 기륭 분회장을 만나 고발운동의 취지와 당일 현장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듣기위해 10월 어느 날 제법 내리는 소나기를 뚫고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한 ‘사회적 합의’


2004년 순이익 200억 이상의 알짜배기 회사였던 기륭전자는 2006년 에스에인베스트먼트 투자회사를 거쳐 2008년엔 최동열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다. 그 뒤로 공장부지 매각을 시작으로 소위 투기 놀음과 무리하게 회사를 인수하면서 경영 상태가 악화하였다. 2012년엔 지금의 사옥까지 매각하고 다시 임대로 들어오면서 지금 현재 생산시설도 자산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올해 2월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회사를 지속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상장 폐지까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경영상의 악화로 인한 피해를 온전히 노동자들이 입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무너뜨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물론 지금껏 기륭 자본이 워낙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서 여러 정황상 우려가 컸죠. 그래서 투쟁이 끝나고 힘들어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쉬지 못했고, 현장 복귀를 기다리는 2년 6개월 동안 조합원들이 사무실 하나 내서 거기서 먹고 자면서 기륭 자본을 계속 감시하고, 일상적 긴장을 놓지 않았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했으니 기륭 자본이 사회적 합의를 이렇게 쉽게 어기고 야반도주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운동의 두 가지 의미


출처 : 기륭전자분회


“고발 운동을 하게 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2010년 기륭의 사회적 합의는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부당해고는 정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기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사회적 연대투쟁의 힘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사회적 합의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를 뒤로하고 야반도주를 한 최동열 회장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고발운동은 기륭뿐만 아니라 다시는 투쟁하는 동지들이 이러한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기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하는 투쟁의 의미도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2011년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한진중공업 투쟁에서도 국회가 보증을 서서 사회적 합의를 맺었었는데요. 이후 사측이 기존 합의를 어기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두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가뜩이나 요즘엔 투쟁을 시작했다 하면 장기투쟁으로 가면서, 대개 투쟁을 정리할 때 사회적 합의를 맺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거든요. 그런데 사실 사회적 합의는 이행하지 않아도 법적 처벌의 근거가 없어요. 그러니 이를 이용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본가들이 사회적 합의를 너무나 쉽게 어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자본가들의 인신 구속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에서 지금의 고발운동을 시작했어요.”


기륭 조합원들은 올해 2월엔 2010년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 이행하기 위한 법·문화예술·인권·종교 등 각계각층의 운동진영과 토론회를 진행했다. 또한, 지금껏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유성기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 자본가의 처벌을 요구하는 ‘잡아라 기업사기꾼’ 문화제를 진행하는 등 고발 운동의 취지를 나누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투쟁을 발판삼아 지난 9월 27일 11,800여 명 동지들의 서명을 모아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투쟁을 전개했다.




고발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첫 발걸음


기륭조합원들은 무엇보다 이번 고발 운동이 사회적 합의를 이해하지 않는 자본가를 처벌하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이번 고발 운동을 시작으로 ‘기륭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 조항을 만드는 입법의 밑거름이라도 만들어보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소위 기륭 자본의 투기 놀음과 ‘먹튀’ 전략이 신경영이라 불리며 벤치마킹하는 자본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최근 스타케미칼을 비롯해 금속노조 내에도 투기 자본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사례를 더 모으고 사회적 대안까지 마련하는 투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투쟁을 고민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기륭동지들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오랜 투쟁으로 건강도 좋지 않고, 경제적인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참 무거웠다.


출처 : 기륭전자분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봤을 때도 지금 활동이 힘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막바지로 가고 있는 기륭 투쟁에서 마지막 남은 10명의 조합원 모두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어떤 의미를 남기는 투쟁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로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견디며 1,895일의 싸움 끝에 정규직화를 쟁취한 기륭 동지들이지만, 지금은 돌아갈 현장도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투쟁은 마치 자전거와 같아서 더디게 가더라도 페달을 계속 밟아야 쓰러지지 않는다 생각하기에, 지금의 투쟁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고 있다. 어떤 시의 한 구절처럼 언제나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투쟁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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