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리포트] 2015 산업단지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2015.9

2015 산업단지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최민 선전위원장
* 일부 내용은 지난 7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도 기사로 실렸습니다.

 

 

산업단지 노동자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있을까?

올해 4월, 민주노총과 함께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8개 산업단지에서 전국산업단지 노동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출퇴근 시간 거리에서 혹은 점심시간 식당 근처에서 무작위 설문조사를 시행해 총 1,494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8개 산업단지 중 서울 구로, 경남 녹산, 울산 매곡, 대구 성서 산업단지 네 곳에서는 설문조사 내용 중 건강권 실태를 함께 물었다. 중소영세사업장은 사업규모가 영세하여 사업주들이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나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작업환경은 더 위험하고 열악하다.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는 이런 산업단지 내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알 권리, 치료받을 권리, 위험 작업을 중지할 권리 등을 얼마나 보장받고 있는지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내용을 조사한 것이다. 건강권 실태조사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는 총 757명으로, 응답자 대부분이 중소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이 없는 이른바 ‘미조직’ 노동자들이었다. 이 조사과정에는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구)산업보건연구회,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함께하였다.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 노동자가 65%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아야 한다. 또 업무로 인해 발생 가능한 사고와 질병이 무엇이며 어떻게 예방 가능한지도 알아야 한다. 사업주는 위험성을 알리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달에 2시간 혹은 분기에 6시간 안전교육을 유급으로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안전보건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응답이 54.8%에 이르고, 교육을 받지 않은채 사인만 했다는 응답도 10.1%나 됐다. 65%의 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니, 본인 직업에서 일하다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사고에 대해 알고 있다는 노동자가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다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사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388명(52.8%)이 알고 있다고 답변했으며 347명(47.2%)이 모른다는 답변을 하였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산단 노동자들

 

조사팀 중 한 명이 공단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선전물을 나눠주다 허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동자를 만났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 허리를 다쳤는데 병원에 가니 허리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산재신청 하셔야죠” 하니 “내가 산재 신청하면 회사가 보험료도 올라가고 민폐여서...”라며 말끝을 흐리며 가더라고 한다. 일하다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어떻게 하였는지에 대해 겨우 131명(19.1%)이 산재로 처리한다고 응답했다. 회사부담으로 공상 처리한다는 응답도 106명(15.4%)밖에 되지 않았다. 개인 치료 355명(51.7%), 그냥 참는다 63명(9.2%) 등으로 60%의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개인 치료하거나 그냥 참고 있었고, 80.9%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노동자들이 산재처리를 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은 노동부에 사고 발생이 보고되지 않는다. 그럼 그 사고는 사회적으로 은폐되고 사고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사고가 난 현장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다시 돌아가고 사고 대책은 마련되지 않는다. 그 결과 유사하거나 똑같은 사고가 재발한다. 그러면 노동자가 다치고 노동자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된다. “출퇴근 시간 공장 앞에 서 있으면 발목에, 팔이나 손목에 깁스하고 출근하는 노동자들 종종 볼 수 있어요.” 라는 다른 조사팀의 얘기가 오늘날 한국사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 현실을 한 번에 보여주는 말로 들린다.

 

위험 감수하고 일하는 산업단지 노동자들

 

“일하다가 위험하다고 느낀 적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많죠.”하는 대답이 나온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아울렛 분회 윤유석 부분회장이다. 주말에는 10만 명도 찾는다는 대규모 아울렛 매장에서 시설 관리 업무를 했기 때문에, 일도 많았고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 2014년 여름, 폭염주의보가 자주 내리던 그 때,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물류센터 외벽 도색 작업을 지시했다. 외부 업체에게 맡길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1층은 그나마 할 만 했지만, 2층(약 7M높이)은 너무 높아 작업 자체가 어려웠다. 노동자들은 비계나 사다리 설치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페인트 붓을 장대로 길게 연결하여 사용하라며 무시했다. 어떤 곳은 안전 난간이 없는 2층 발코니에서 칠하기도 하였다.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 도구인 안전모와 안전화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한참을 뜸들이다 작업이 끝날 때쯤에야 선심 쓰듯이 가져다 주었다. 쉴 공간도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어지러움증과 구토를 호소했다. 한 노동자는 너무 어지러워 병원에 가던 도중 구토를 하며 쓰러져 구급차로 실려 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폭염 주의보 속에서는 작업을 자제 해 달라고 수 차례 요청 하였지만 회사에서는 요청을 묵살했다. 쓰러졌던 노동자 병원비 지급마저 거부당하였다. 이렇게 일하다 위험하다고 느낀 경우, ‘못 하겠다’고 회사나 관리자에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걸까? “못 하겠으면 나가라는 식이니까요. 항의하면 해고라고 어디 써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지속해서 외주화를 추진하면서, 신규입사자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누구도 ‘위험해서 못 하겠다.’ 말을 못 하는 거죠.”

 

일하다가 위험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제조업이나 건설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윤유석 부분회장처럼 제조업에서 일하지 않는 경우에도 일하면서 위험한 일은 많다. 일할 때 위험하다고 항상 느끼는 노동자가 12.2%, 가끔 느끼는 노동자는 41.7%에 달했다. 업종에 따라 나누어 보았을 때도, 제조업 노동자들이 위험을 조금 더 자주 느끼지만, 비제조업 노동자들도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는 노동자든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경우에도 작업을 중단하기 어렵다. 이번 전국 산업단지 노동실태조사 건강권 부문 조사에서도, 일하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응답자 22.6%는 노동자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작업 중단은커녕,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일하다 위험을 느꼈을 때, 회사에 개선을 요구했다는 응답은 21.7%에 불과했다. 절반정도는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했고,30.8%는 위험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고 응답했다. 무시하고 일했다고 응답한 88명 중 39명은 개선을 요구해도 회사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37명은 늘 있는 일이라서 매번 개선을 요구 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불이익이 걱정돼서 개선 요구를 못 했다는 답도 18명이었다.

 

제 역할 못 하는 정부와 사업주, 대신 노동조합에는 기대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84.9%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사업주가 제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응답에서도 58.0%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산업단지 사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사업장이 산업안전의 사각지대라는 것을 노동자들도 느끼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등 산업안전보건체계와 안전보건관리규정, 안전보건교육을 모두 면제받는다. 사업장 규모가 작아서 자체적으로 안전보건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면 이를 공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대책은 부족하기만 하고 지금으로써는 방치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 결과의 한 지표가 산재다. 고용노동부 산재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년간 산업재해를 당한 90,909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32.4%,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81.0%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00명당 1.19 명이 산재를 당해,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재해율 0.42%의 3배에 달한다.

 

산단 내 건강권의 그늘, 비제조업 노동자

 

공단 구조 고도화와 함께 산업 단지에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 산업 역시 산업안전의 또 다른 취약 분야다. IT 산업(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정보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등)은 사업 규모와 관계없이 안전보건교육 의무가 면제된다. 사무직으로만 구성된 사업장은 산업안전 보건체계와 안전보건관리규정, 안전보건교육을 모두 면제받는다. IT 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질환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렇다.


실태조사 결과를 제조업과 비제조업으로 나누어 비교해보았다. 안전교육의 경우 제조업 노동자는 46.8%가 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지만, 비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그 비율이 25.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본인 직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사고에 대한 인지도도 제조업의 경우 절반이 겨우 넘는 58.2%의 노동자가 알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비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알고 있다는 응답이 46.4%에 그쳐 절반이 되지 않았다. 치료받을 권리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비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일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산재로 처리한다는 응답은 12.1%에 불과해 제조업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79.6%가 자기 돈으로 치료하거나 참고 넘어간다고 응답해 문제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산업단지에서 건강하게 일하기 위하여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공단 구조 고도화와 더불어산단 내 비제조업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데, 비제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 수준이 제조업 노동자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공단 구조 고도화에 따른 산단 내 노동자 건강권 악화에 대한 관심과 주시가 필요하다. 산업단지 내 서비스, 판매, IT 등 안전보건 취약 업종에 대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업주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생기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려 40.6%의 노동자가 매우 그렇다, 42.3%의 노동자가 그렇다고 응답하여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노동조합을 향한 이런 기대는 근거가 있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자들이 집단 교섭을 통해 작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고, 작업환경 및 유해요인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며, 작업장 내 안전 문화를 조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기대는 아직은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산업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조 조직률은 2%라고 한다.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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