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 2018.09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검토해 몇 차례 기고하였고, 최근에는 국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면개정과 관련해 다른 국가들의 산안법을 살펴보고 있다. 첫 시작으로 독일의 안법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독일과 한국은 법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고, 산안법이 다루는 범위가 워낙 넓어 전부 살펴보기엔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산안법 전면 개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쟁점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하려 한다. 독일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 인력에 대한 법, 화학물질 관련 및 위험성평가 등은 산안법 외에 따로 있어 추후에 다루기로 한다. 독일 법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13년 발간한 「독일 노동법전」 등을 참고하였다.

폭넓은 법 보호대상과 사업주 안전보건조치의 원칙

‘일하는 사람’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도입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정의가 부재해 결국 법 보호대상에 일부 직종만 추가 포함되었으며,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장실습생은 여전히 제외되었다. 독일 산안법 2조 정의규정에서, 산안법 적용대상인 ‘취업자’는 노동자, 군인, 공무원, 법관, 장애인을 위한 공장에 취업중인 자 등을 포함하며,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자’도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 일반적 원칙 <독일 노동법전>, 한국 노동연구원, 2013.

사용자는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일반적 원칙에 근거하여야 한다.


1.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이 최대한 예방되고 현존하는 위험이 가능한 한 최소화될 수 있도록 근로형태가 조직되어야 한다. 
2. 위험은 그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3.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는 기술, 노동의학, 위생 및 기타 노동학술상 확립된 이론이 고려되어야 한다. 
4. 산업안전보건조치는 기술, 근로체계, 기타 근로조건, 사회적 관계, 작업장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적절히 연관시킬 목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5. 개인을 위한 보호조치는 다른 조치보다 후위에 있다.
6.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취업집단에 대하여는 특수한 위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7. 취업자에게는 적절한 지시가 부여되어야 한다.
8. 직·간접적으로 성별에 따른 효과를 미치는 규정은 생물학적 사유에 의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또한, 독일 산안법에는 사용자가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 지켜야할 일반적 원칙이 기술되어 있다. 최대한의 건강 예방과 위험의 최소화를 위한 근로형태 조직, 위험의 근원적 제거, 공학적 제어 등 보다 개인보호구는 후순위 조치라는 점, 기술·근로조건·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산업안전보건조치의 계획 등이다. 이는 ILO 산업안전 분야 협약의 원칙들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원칙적인 수준일 수 있으며 처벌 규정은 없지만, 중요하고 실제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이기에,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5조 (사업주 등의 의무) 등에도 이런 원칙이 기술되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은 근무시간 중에, 파견노동자 교육도 원청의 의무

국내 산안법 및 하위 규정 상 안전보건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외에 안전보건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 도입 시에는 못 받는 경우도 많다. 독일 산안법 상 사업주의 안전보건교육은 취업자의 근무시간 중에 충분하고 적절히 해야 하고, 채용 시 · 업무 범위 변경 시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수단·기술 도입 시에도 시행해야한다. 그리고 독일 산안법 상 파견근로자 안전보건교육의 의무는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그렇다고 파견사업주의 산안법 상 다른 의무가 제외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중 원청의 책임 확대가 주요내용 중 하나이나, 제64조에 의하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안전보건교육 책임은 장소 및 자료의 지원에 한정된다. 독일과 같이 안전보건교육의 의무에 대한 원청의 책임도 명확히 규정해야 산업재해 예방에 더욱 일관적이고 실효성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험 업무 재개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와 공동 결정 하에

독일 산안법 9조에서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는 작업장을 즉시 이탈할 수 있고, 이 위험이 지속되는 경우 사용자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에게 업무 재개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위험상황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대책 계획 및 시행은 사업장 ‘종업원평의회’01와 공동결정 하에 이루어진다. 국내는 작업 중지 후 위험이 여전하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업무 재개를 요구하여 2차 사고가 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작업중지 명령과 해제에 대해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서 일부 진전된 절차가 마련되긴 했으나, 현장 안전보건에 대한 해당 작업 노동자 및 노동자대표의 주체적 참여 보장이 여전히 부족한 국내 산안법에 이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위험 업무 재개에서 일부 살펴봤듯이,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에 있지만 한국 산안법에는 거의 없는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 개인 및 단체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및 사업장 공동결정권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 농업 / 2018.08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 농업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선전위원) 

2013년 6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경기 이천의 농장에서 일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차이 스레이 오운(24, 여) 씨의 하루는 아침 6∼7시 시작됐다.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치커리, 상추, 겨자, 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일을 했다. 6월부터 9월까지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처럼 더웠고, 허리를 펴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을 먹는 30∼40분 정도였다. 10월에는 특히 일이 많아 하루 11시간씩 29일을 일하고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 한 달간 일한 시간은 309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가장 일을 많이 한 10월에 차이 씨가 받은 월급은 118만 5천100원에 불과했다. 지난해(2013년)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86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그가 받아야 할 월급은 150만1천740원이다. 비닐하우스 일은 겨울로 접어든 11∼12월에도 별로 줄지 않아 하루 9∼10시간씩 꼼짝없이 일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각각 246시간씩 일하고 받은 돈은 107만 3천320원과 102만 4천770원이었다. 법정 최저임금대로라면 119만 5천560원을 받았어야 했다.

1월이 되어 일감이 확 줄자 고용주 이모(62) 씨는 열흘간 "일이 없다"며 차이 씨를 강제로 쉬게 하고 달랑 66만 9천940원의 월급을 줬다. 차이 씨가 "휴업 급여를 주든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근로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이 씨는 "쉬는 동안 다른 곳에 다녀오라"며 숙소의 전기와 난방을 끊어버렸고, 차이 씨는 비닐하우스 가건물 숙소에서 혹독한 추위에 떨며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다. - <농업 이주노동자에게 인권을> ① 2만 명 농촌 잔혹사 2014/03/24 연합뉴스

위의 사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농업에 종사한 이래 현재까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실이 열악한 것은 어느 현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농림축산, 어업(이하 포괄적 의미로 농업)에서 발생하는 노동 착취와 비인간적 처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 이는 한국의 법제도 어디서도 관리 감독받지 않는 농업 노동의 특성 때문이다. 유일한 한국 근로기준법상 농업에 대한 언급은 '제63조 적용의 제외' 부분에서 근로시간과 휴식, 여성과 소년에 해당하는 부분마저 농업 부분에는 적용을 제외한다는 부분이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면 임신한 여성이라도 농업 부분에서는 연장 노동, 야간노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노동 인권의 심각한 침해가 가능한 것인가. 이는 농업 부문에서 엄연히 존재할 수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보호가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되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 농업인은 자영업자에 해당하고, 임금노동자는 매우 소수였다. 하지만 농업 지역이 급격한 고령화와 규모가 커지는 농산업화를 동시에 겪으면서 현재의 농업 현장에서는 임금노동자의 필요성이 매우 커졌다. 문제는 이렇게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규모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법적 보호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주노동자를 이용한 노동 착취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농업 부분에서 노동 착취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과거에 한국인도 이주노동자로 많이 갔던 플랜테이션 농장이 대표적이다. ILO의 '제184호 농업 안전 보건 협약'은 그렇게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 인권이 유린당할 수 있는 농업 현장의 문제를 특별히 다뤄 관리하기 위해 1958년부터 있었던 '플랜테이션 농업에 관한 협약 및 권고'부터 1999년의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에 관한 협약'에 이르기까지 농업에 적용될 수 있는 모든 협약을 총망라해 2001년 제정되었다.

이 협약은 농업을 작물 생산, 임업 활동, 목축, 잠업의 직접 생산은 물론이고 사업장의 운영자에 의한 농산품 및 축산품의 가공과 농업설비의 사용과 유지보수 등을 포함한 농업 사업장에서 행해지는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하여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 1차 산업 부분을 광범위하게 다루도록 하였다. 또한 특별한 예외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 이유를 명확하게 기술하며 이에 대한 개선 대책을 마련하고 대책 이행에 따르는 후속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있다.

이 협약의 세부 내용은 한국의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노동 시간, 복지, 산업 안전, 보건 등 대부분의 사항을 농업 분야에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그에 따라 위험성평가 시행, 관청의 관리 감독, 작업중지권, 안전 보건 관련 정보 제공 및 협의, 기계 · 유해 화학물질 및 생물학적 물질로부터의 위험 예방은 물론이고 아동 · 여성 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 임시계절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 노동시간, 야간 노동, 휴식 시간 등의 일관된 적용 등을 모두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근로기준법 제63조에서 아동 · 여성 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노동 시간의 제한 사항을 농업 등 광범위한 1차 산업에서 모두 제외해 버린 점은 매우 심각한 노동 인권 침해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 가입도 법인 또는 상시 5인 이상 농작업장 노동자로 한정하고 있어 대부분의 농업 노동자는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국의 현행법은 열악한 농업 현장의 노동자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애써 배제하고 있다. 

농업에서 임금 노동자의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이를 이주노동자를 통해 충당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법 제도의 문제는 농업을 심각한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서 ILO 제184조 농업 협약은 매우 중요하다. 이 협약의 비준을 위한 법 제도 정비 과정을 통해 농업 현장의 노동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제안전보건기준에관한 검토] 개별 노동자에게 정보 접근권을! 소득 보장되는 작업전환을! - ILO 162호 석면 협약 검토 / 2018.04

개별 노동자에게 정보 접근권을!

소득 보장되는 작업전환을!

- ILO 162호 석면 협약 검토

최민 상임활동가


석면은 일찍부터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다. 국제암연구소는 1973년 석면을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평가했다. 하지만 열에 강하고, 부식이나 마모가 잘 안 되고, 보온성이 좋아 20세기 내내(국제암연구소의 평가 이후에도) 산업적, 상업적으로 널리 이용됐다. 세계보건기구는 2006년에도 매년 1억 2천5백만 명이 직업적으로 석면에 노출되고 있다고 추산했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작업 중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의 건강상 위험을 예방하고, 석면 사용을 통제하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1986년 석면 협약을 채택했다(ILO 제162호 협약). 

한국은 2007년 이 협약을 비준했으며, 이후 단계적으로 석면 사용을 금지해오다, 현재는 모든 석면, 석면함유제품의 제조, 수입, 양도, 제공, 사용이 금지돼 있다. 이미 석면 사용이 금지됐는데도, 이 협약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전에 사용된 석면에 뒤늦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건물을 철거하는 건설노동자나 폐선박을 수선·정비하는 노동자의 경우다. 또, ILO의 석면 협약은 1조에서 ‘노동자의 석면 노출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적용하고 있다. 즉 석면을 직접 다루는 일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업무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될 경우 모두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석면과 전혀 관련 없는 제조업 노동자가 낡은 공장 설비에 포함된 석면에 노출되거나,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가 사용된 학교에서 일하던 교사 등 노동자의 경우가 해당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도 석면함유물질 가공 등의 업무 외에도, 건축물이나 설비의 천장재, 벽체 재료 등의 손상이나 노후화로 석면 분진이 발생해 노동자가 노출될 우려가 있을 때 조치를 취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석면 노출과 관련돼 작업환경 측정, 노동자 건강진단, 석면 폐기물 처리, 보관 용기 및 작업복 관리까지 매우 자세하게 사업주의 의무와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ILO 협약의 중요한 원칙을 빠뜨리고 있다.

첫째, 적극적 주체로서의 노동자다. ILO 협약은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사업주로 하여금 작업장 공기 중 석면 먼지의 농도를 측정하고, 공인된 방법으로, 주기적으로 노동자의 석면 노출을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산업안전보건법도 보장하는 바이다. 그런데, ILO 협약은 ‘관련 노동자들과 그 대표자, 감독기관은 이러한 기록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또는 근로자대표가 요구하는 경우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대해 설명회 등을 열도록 하고 있고, ‘근로자대표가 요구하는 경우’ 근로자 대표가 입회하게 돼 있을 뿐이다. 개별 노동자들이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다. 꼭 석면 노출 기록뿐 아니라,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정보에 개별 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둘째, 건강 검진 시행 관련 원칙이다. ILO 협약은 석면의 사용과 관련한 노동자 건강검진은 노동자 소득에 손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무료여야 할 뿐 아니라, ‘가능하면 근무 시간 중에 행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 부담으로 진행되지만, 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진행되는 경우는 흔히 볼수 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검진을 받고 나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간혹 휴가를 사용하고 검진을 받는 노동자도 만날 수 있다.

또, ILO 협약은 건강 진단 결과 석면에 대한 노출이 수반되는 작업에 계속 배치되는 것이 의학적으로 권할 만하지 않은 경우, 관련 노동자에게 ‘그들의 소득을 유지하는 별도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국가의 상황과 관행에 부합하는 모든 노력’이 행하여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모든 특수건강진단에서도 검진한 의사가 작업 전환 등을 권고할 수 있지만, 고용을 보장한 작업 전환의 강제력이 없어 현실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 특별히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받는 진폐 환자의 경우에만, 지방고용노동관서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장이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노동자에게 작업전환조치를 권고하거나 명령할 수 있지만, 진폐로 인한 9급 이상의 장해등급 판정 등 비교적 진폐가 심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석면뿐만 아니라, 분명한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건강진단 결과에 따라 고용이 보장된 작업 전환을 강제하거나 노동자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의 상황과 관행에 부합하는 모든 노력’이 행해지는 것이 노동자 건강진단과 관련된 분명한 원칙으로 법에 도입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보호구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이 역시 비단 석면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ILO 협약은 사업주에게 작업장 내 석면 노출 기준이 반드시 준수되도록 하고, 노출을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한 최저 수준으로 줄이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조치를 취했는데도, 석면 노출이 여러 가지 노출 기준을 준수하기 어려운 경우, 사업주는 적합한 호흡용 방호 기구와 특수방호복을 근로자의 비용 부담 없이 적절하게 제공, 유지, 교체해주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호흡용 방호 기구는 ‘보조적, 일시적, 비상시 혹은 예외적 조치로만 사용되고 기술적 통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작업장 유해요인은 덜 위험한 요인으로 대체하거나, 최대한 격리하는 등의 공학적 제어를 우선으로 하고, 보호구 사용은 ‘보조적, 일시적, 비상시 혹은 예외적 조치’로 활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손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보호구 착용’이 작업환경 개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ILO 석면협약에서처럼 작업환경 제어에 대한 원칙을 법적 수준에서 명시하는 것이 작업 현장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노동자 건강 관련 ILO 협약을 살펴보기에 앞서 / 2017.12

노동자 건강 관련 ILO 협약을 살펴보기에 앞서

콜라비 선전위원

 

연구소에서는 올해 3월부터 회원 몇 명이 팀을 이루어 안전보건 관련 국제적 기준을 국내 현황과 비교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유럽과 북미 여러 국가의 교대제, 노동시간 관련 기준을 살펴보았고, 그 내용을 일터에도 실었다. 

이어서 다음 과제로,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중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협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 정부에서는 ILO4개 핵심협약 결사의 자유(87, 98) 강제노동 철폐(29, 105) 등을 비준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최근에는 UN에 구체적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환영할만한 소식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ILO 협약 189개 중 한국은 29개를 비준한 상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평균이 61개임을 생각하면 양적으로 뒤처지는 데다, 질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ILO 협약 중 그야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1 8개 중 4, 우선적 비준을 권고하는 거버넌스 협약(governance conventions) 4개 중 1개를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노동기본권의 완전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로 지목되어온 이유다. 

물론 ILO 협약을 비준한다고 해서 한국의 노동 현실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47호 주 40시간 근로 협약에 비준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이며, 주 노동시간 40시간은커녕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 문턱을 넘을지 미지수다. 

한국이 비준한 협약 중 아동노동 관련 협약인 제182호는 아동에게 심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한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아동노동의 범주는 만 18세 미만이고, 한국의 고등학생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달 제주의 음료업체에서 현장실습중 사고로 사망한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협약 비준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적극적인 감시와 촉구가 필요할 것이다. 

본 연구팀에서는 한국이 노동자 건강과 관련해 비준한 협약과 비준하지 않은 협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준하지 않은 협약과 국내법을 비교해보고 비준을 촉구하는 데 도움이 될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비준한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따져보기도 할 것이다. 먼저 다음의 표에 제시한 노동시간, 산업안전보건 관련 협약을 먼저 살펴보고, 그 외 아동노동 및 청소년의 보호, 모성보호, 사회보장 관련 협약 등을 고려할 예정이다. 그 내용 역시 일터를 통해 알리려 한다. 많은 분의 관심과 의견 부탁드린다.



(1) 중요성 내지 지위를 기준으로 하면 ILO협약은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거버넌스협약(governanace conventions), 전문협약(technical conventions)으로 구분된다. 기본협약은 1998년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들과 권리에 관한 선언(기본원칙 선언)”에서 열거한 4개 원칙(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금지)과 관련된 8개 협약이다.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 2017.10·11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종호 선전위원


#1 마타와 존은 만 12세, 만 10세, 만 5세, 6개월의 네 아이의 부모로, 마타는 치과 간호사, 존은 자동차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 마타는 주 2일 16시간, 존은 주 4일 36시간인데 하루 9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는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직 아기인 막내는 하루는 보육시설에, 하루는 존과, 나머지는 마타와 함께 보내고 있다. 첫째, 둘째, 셋째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존이, 다른 하루는 할머니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시간부터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돌봐주고 있다.

#2 아나와 케이스는 만 5세, 만 3세 두 아이의 부모로, 아나는 사회복지 기관장의 비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12시간 일한다. 목요일 하루는 종일 근무로 8시간 일하고, 4시간은 자택 근무를 한다. 목요일 하루는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일하고 있는 케이스가 아이를 돌본다. 이 부부는 둘 다 당분간 이렇게 육아휴가를 파트타임으로 받아 사용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끝날 때는 육아휴가를 다 쓰고, 둘 다 정상근무를 해야 한다.

#3 여름방학 후 부터, 아나는 주 2일 종일근무 16시간에, 자택근무 4시간을 해야하고 케이스는 주 5일 근무를 해야 한다. 아나가 근무하는 주 2일은 엄마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조금 늦게 출근을 하고 늦게 퇴근을 하는 대신, 아빠가 이틀 일찍 퇴근을 하고 학교가 끝나는 시간인 3시 30분에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기로 했고 직장에 일주일에 이틀 수업을 일찍 빼달라고 신청한 상태이다.

이상은 네덜란드 맞벌이 부부들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사례다. 유연한 노동시간 제도와 노동시간에 따른 차별의 금지 조항 등을 통해 기본적인 보호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육아를 위한 시간에 자율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독일, 영국, 핀란드 등의 근로 기준 관련 법률을 살펴보면 일·가정 양립에 관한 세심한 배려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입양했다면 입양된 아이와 부모의 적응을 위해 2주에서 4주의 입양 휴가를 주게 되어있는 것, 미성년자 혹은 직업 교육 중인 자가 출산한 경우, 낳은 아이의 조부모가 육아 휴직을 쓸 수 있게 하는 것, 노동자가 임신했음을 알리면 고용주가 노동자의 업무에 대한 위험성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나 작업 전환 등을 시행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이러한 사례와 제도는 꿈같은 이야기다. 맞벌이하던 부부는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종일 육아 시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도 있고 심지어 아빠의 육아 휴직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인사상의 불이익과 경제적 어려움을 생각해 쉽게 포기해버리게 된다. 육아휴직을 적절히 사용한다 하더라도 1년이라는 기간 자체가 매우 짧아 네덜란드의 사례와 같이 일상적인 단시간 노동이나 출퇴근의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육아를 위해 퇴사나 종일 보육 위탁을 결정하게 된다.

한국의 일·가정 양립에 관한 법률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별도의 법을 통해 꾸준히 발전되어 가고 있고, 임신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시행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74조의 2. 태아 검진 시간의 허용'을 보면 임신 중 태아 검진과 관련된 시간을 임금 삭감 없이 확보해주도록 되어있고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은 연차 사용을 강요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4년부터 같은 법 74조 7항에 임신 중 일정 기간 동안의 매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도 임금 삭감 없이 가능하도록 명시했지만 이에 대한 신청도 시행도 거의 되지 않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디언 오마스 족의 격언은 부족사회를 한참 벗어난 현대사회에서도 아직 통하는 진리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온 마을이 아닌 사회와 제도가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2014년 한국 노동연구원은 여성 고용률이 높은 국가에서 출산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정성미 연구원은 "영유아 자녀 양육지원, 육아휴직, 유연한 근무 시간제 등 일·가정 양립 관련 제도의 차이뿐만 아니라 제도 사용이 가능한 기업문화와 육아·가사가 여성에게만 집중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진 선진국은 높은 고용률과 함께 출산율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온 마을의 노력이란 이런 것이다. 단순한 제도의 차이에 더해 사용 가능한 기업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나아가 노동 시간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유연한 변경이 가능한 노동 시간 제도의 적용 등 아이의 양육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 많다.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사업주에게 노동시간 기록과 제출 의무를 부과하자 / 2017.9

사업주에게 노동시간 기록과

제출 의무를 부과하자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내 노동시간 기록에 대한 권리가 내게는 없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일하던 한 IT 노동자는, 10년간 일하던 중 계속된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져, 결핵에 걸려 폐절제 수술까지 받게 됐다. 큰 수술 후 복귀했지만, 그 다음 해까지 완쾌되지 않아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회사는 수술한 이듬해, 휴직 상한기간 1년을 채운 이 노동자를 해고했다. 해고까지 당하고 나니 억울했다.

"과로로 면역력이 약해졌고 폐 절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는 점을 입증해 산재 인정을 받고자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면역력이 떨어질 정도로 과로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해고까지 한 회사가 근로 시간 관련 자료를 순순히 내놓을 리 만무했다. 결국 이 노동자는 시간외근로 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했고, 자신의 주장보다는 적지만 1천 427시간의 시간외근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시간외근로를 강요당했다는 점을 입증한 1심 판결 이후에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할 수 있었다. 이후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공단의 심사 결과는 요양불승인 처분, 결국 항소심까지 가는 소송을 통해 산재를 인정받았다. (2016.6.2. 서울고법, “폐 잘라낸 SW개발자 산재 인정하라"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602151425)

올 해 5월 게임업체 넷마블의 계열사 12곳에서 법정 노동시간 초과와 연장근로수당 체불이 대대적으로 적발됐다. 지난 한 해만 해도, 전체 노동자 3250 명 중 2057 명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서 일했고, 체불된 연장 근로수당은 44억 원이나 됐다.

그 동안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던 회사가 자발적으로 노동시간 기록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광역근로감독과 디지털증거분석팀에서 건물 출입 기록 880만 건, 시스템 접속 기록, 컴퓨터 사용 기록, 야근 교통비 및 식대 지급 내역 등을 모두 찾아내 분석해서 잡아낸 것이다.

이 팀은 파리바게뜨에서 협력업체 제빵기사들의 연장근로수당을 축소 지급한 사건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해냈다. 아예 출퇴근 시간을 전산 조작해 임금을 떼먹던 회사 내 별도의 서버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입력한 출퇴근 시간 원데이터를 찾아낸 것이다. (2017.8.6. 넷마블 체불 잡아낸 디지털 포렌식, 노동법 위반 꼼짝 마)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05733.html)

노동시간 기록과 보관을 법으로 규정한다면

현행법상 사업주에게는 노동자 노동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다. 체불임금, 불법적인 연장근무 적발을 목적으로 근로감독을 하더라도, 회사에서 “근로시간 기록이 없다”고 버티면 디지털 포렌식 등을 동원하지 않으면 장시간 노동을 적발할 수 없다. 건강 문제때문이든, 떼어먹힌 임금 때문이든 노동자가 자신이 일한 노동시간 기록을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위 두 사례는, 체불임금 소송까지 불사하며 본인의 장시간 노동을 밝혀내고 인정받은 노동자의 노력과 신기술로 무장한 성실한 공무원에 의해 장시간 노동 실태를 숨기려던 회사의 장막을 거둬낸 사례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두 사례를 미담으로 기억할 것인가? 애초에 노동시간 기록을 강제하고, 이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나 당국이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가 될 수는 없을까?

노동시간법을 따로 제정하여 노동시간을 세밀하게 규정하는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기록을 2~3년간 보관해야 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핀란드의 노동시간법은 각각의 노동자가 노동한 시간, 그에 해당한 보수를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노동시간은 정규 노동시간, 연장근로 시간, 일요일 노동시간, 초과 노동시간 등을 모두 분류해서 기록해둬야 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보수도 따로 기록해둬야 한다. 기록 보관 기간은 2년이다. 영국의 경우는 최대 노동시간과 야간 노동시간을 따로 기록을 남겨 2년간 보관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도 정해진 하루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무 시간을 기재하고, 이 근로시간 연장에 동의를 표시한 노동자의 목록도 작성해서 2년간 보관하게 돼 있다.

기록된 노동시간은 장시간 노동 예방으로

기록과 보관은 활용을 위해서다. EU 노동시간 관련 가이드라인은, 각 나라에서 국내법으로 이런 노동시간 기록을 법적 의무로 할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노동부 등 관할 주무 기관의 감독 하에 두도록 권유하고 있다. 관할 주무 기관이 이 기록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사후에 확인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노동 시간의 상한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데에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기록해서 보관할 의무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노동시간이 법적 기준을 넘지 않도록 미리 제한한다고? 과로로 산재가 발생한 다음에도 노동시간 기록 얻는 게 하늘의 별 따기고,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을 하려고 해도 노동시간 기록을 얻는 게 쉽지 않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적정한 노동시간’이라는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데, 어떤 상황이 더 적절할지 물을 필요가 있을까?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대기시간과 휴식시간은 노동시간인가? / 2017.8

대기시간과 휴식시간은 노동시간인가?

이혜은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구인 공고>

모집직종 : 병원 및 공공시설 경비원

경력조건 : 관계없음

학력 : 학력무관

고용형태 :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 12개월

임금조건 : 월급 1,690,000원 이상

식사(비) 제공 : 미제공

근무시간 : (오후) 4시 30분 – 익일 (오전) 8시 30분 (휴게시간 9시간 근무시간 7시간)

소정근로시간 : 48시간 (“소정근로시간" 이란 근로자와 사용자가 정한 1주 동안 근로하는 근로시간을 말합니다)

근무형태 : 주 7일 근무


학교경비원으로 검색하면 상당수의 구인공고가 이렇게 뜬다. 위 내용은 대구지역 한 고등학교의 경비원을 구하는 공고이다. 오후 4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학교를 지키지만 이 중 휴게시간이 노동시간보다 길다. 실제 이 노동자는 하루 16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지만 임금을 지급받는 “소정근로시간”은 주당 48시간에 불과하다.

학교 숙직실에서 밤에 잠을 잔다면 그건 노동이라고 봐야 하는가? 이런 상황을 볼 때 현재 한국에선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학교 내에서 잠을 자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깨어나 이를 처리하기를 원하기에 야간경비라는 직무로 고용했다. 노동의 강도는 매우 낮을 수 있지만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대기하는 시간이라면 역시 노동의 범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경비원, 당직근로자 등 업무가 간헐·단속적으로 이루어지고, 휴게시간·대기시간이 많은 경우를 감시(監視)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노동에 종사하는 자로 부르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이들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책정하고 규제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먼저 한국은 감시 단속 근로자의 경우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 7일 하루 16시간 일하는게 가능하다. 게다가 형식적으로는 주 48시간 노동하는 것으로 것으로 평가되니 어떻게 보면 노동시간 규정에서 벗어나지도 않는 셈이다.

영국의 경우 대기시간에 대해 노동시간으로 보는 경우와 보지 않는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당직의 의미인 “on call”은 사업장 내에 있을 경우에는 노동으로, 사업장 밖에서 당직일 때는 노동이 아닌 것으로 구분한다.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노동시간 규정보다 좀 더 완화해서 야간노동시간이나 휴식시간 규정 등에서 몇가지 예외를 두고 있기는 하나 최대노동시간 규정 (17주간 평균 주당 노동시간 48시간)은 감시단속 노동자라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핀란드 역시 사업장에서의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노동시간법 4조의 ‘노동시간의 정의’에 의하면 일하는 데 사용한 시간, 노동자가 사업주의 처분(배치)에 따라 일터에 존재하도록 요구되는 시간을 노동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시간법 5조 ‘대기시간’에서는 노동자가 대기하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최소 절반은, 임금이나 이에 상응하는 정규 업무 중 휴가 시간으로 보상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예외 없이 법적으로 최대 가능한 노동시간 규제 (주당 평균 노동시간 40시간) 를 받는다.

결국 이런 국가들에서는 한국과 같은 매일 16시간 경비업무, 혹은 24시간 맞교대와 같은 근무형태는 불가능하게 된다. 고령노동자들이 주로 하게 되는 아파트 경비업무의 경우 전국적으로 24시간 맞교대 형태로 수행되지만 “소정근로시간”은 하루 16시간 혹은 17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주간에 3시간, 야간에 4-5시간 (비록 경비초소에서 합판에 박스 깔고 잠을 청하는 시간일지라도)을 휴게시간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당 노동시간은 실제 아파트에 출근해 있는 84시간이 아닌 56-59.5시간으로 계산된다. 이런 노동시간 계산을 보고 있자면 뇌심혈관질환의 만성과로 인정기준인 주당 평균 60시간을 교묘히 피해가려는 속셈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작년에 열악한 학교경비원의 노동환경과 연이은 뇌심혈관질환 사건으로 이슈가 되면서 서울의 학교에서는 이제 1인이 주7일 근무를 하지 않고 2교대를 하는 근무형태로 바뀌었다. 전체 임금 총액은 떨어지긴 했으나 시간당 임금수준은 올리면서 개선을 하였으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당장 핀란드처럼 갈 수는 없겠지만 감시단속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대로 산정하고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시간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더 많은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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