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4. 구의역 참사 1년이 남긴 숙제 / 2017.5

구의역 참사 1년이 남긴 숙제


재현 선전위원장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함께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시는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원회와 (운영기관 서울시,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전문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을 출범하여 이번 참사의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 결과 작년 6월과 12월 2차례에 걸쳐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서울시는 안전 분야 업무의 외주화를 전면 중단하고, 안전보다 우선한 건 없다는 사회 인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중앙정부,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권은 법을 통해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구의역 참사 이후 정치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구의역을 찾아 김군을 추모하며 머리를 숙였다. 이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6월 총 6개 법안을(△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철도안전법 개정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구의역 참사가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가면서, 정치권은 약속을 잊고 서로 싸움하느라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각 대통령 후보가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고 공약했지만 100%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현재는 어떠한가? 서울메트로는 구의역 지난 4월 121개 전 역사에 스크린도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상황 발생 시 조처를 할 수 있는 종합관제시스템을 도입했다. 각 역에 설치한 CCTV 정보를 종합관제소에서 한눈에 확인하여 고장, 끼임 사고 등 사태를 파악하고 이후 조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김군처럼 승강장 안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강장 바깥쪽에서도 점검하고 정비할 수 있도록 스크린도어 장애물 감지 센서를 교체했다. 그 결과일지 몰라도 하루 평균 발생하는 스크린도어 장애 건수가 67건에서 37건으로 약 45% 줄었다고 한다.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풀이된다.


반면 기술과 설비 측면에서는 개선했을지 몰라도 정작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는 또 다른 김군들의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안전업무의 외주화를 중단하겠다며 또 다른 김군들을 직영회사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정규직이 아닌 무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고용만 보장되었지 비정규직과 다를 것 없는 고용조건에서 일하는 것이다. 


인원충원 역시 1년 전과 비교해서 38명만이 늘었다. 그 결과 또 다른 김군들은 지금도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인력만 부족한 게 아니다. 서울메트로 121개 역에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승강장 안전문 관리소는 아직도 고작 4개뿐이다. 만일 한 역에서 스크린도어가 장애를 일으켰다면 현장으로 출동하는 데만 40분이나 걸리는 상황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는 이윤만능, 효율만능으로 제2의 구의역 참사를 막을 수 없다. 구의역 참사는 국가가 안전을 비용으로 치부하고, 비용을 아끼도록 하는 공공부문 효율경영의 결과다. 효율만능주의 경영은 안전 업무를 해야 할 인력을 줄이기 바빴고 각종 규제는 걸림돌로 치부했다. 그러한 결과가 김군과 같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위험한 일을 떠맡고, 매뉴얼을 지킬 수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도록 했다. 


따라서 제2의 구의역 참사를 낳지 않는 방법은 이윤만능, 효율만능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하청노동자라고 해서, 파견노동자라고 해서 차별과 멸시 받지 않고,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존엄한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일 때 가능할 것이다.

[작업중지권 기획] 위험 상황을 인지했을 때 작업중지 절차 2 /2016.7

구의역 참사를 막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이렇게 개정하자!

 


당장멈춰 팀


 

연이은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사망 사고를 보면서, 위험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안전매뉴얼에 있는 대로 두 명이 짝을 지어 출동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못 나간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식하게 된다. 둘이 일해야 하는 위험 업무를 혼자 하다 젊은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가 겨우 1년 전에 있었고, 그에 따라 21조로 일한다는 매뉴얼을 확인하고, 메트로와 서울시가 재발 방지를 약속한 터였다. 승강장 바깥 쪽 센서를 고치는 업무를 혼자 하는 것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2명이 일할 수 있을 때 하겠다고 말하고 대기할 수 있었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안 중 하나로 작업중지권을 강조한 카드뉴스에 혼자서는 못 나간다고 했으면 짤렸겠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댓글의 냉소는 옳다. 2명이 일할 수 있을 때 하겠다고 말하고 대기했다면, 동료들의 눈총을 받고 괴롭힘의 대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개인이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도급 업체가 아예 계약이 해지되는 등 불리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법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는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일을 멈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냉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참사 이후 다양한 과제 중 작업중지권 얘기는 왜 충분히 되지 않는지, 왜 우리는 위험을 피하고 거부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는지, 누가 어떻게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지 얘기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우리는 강제로 지워진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위험으로부터 도피할 권리, 위험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킬 권리를 누리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함께 토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 개정하자

그래서, 먼저 한계가 많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권 조항 개정을 제안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 작업중지권은 1990년 도입 당시 사업주의 지시가 있어야만대피할 수 있었으므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이후 운동 진영과 노동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2항과 3항이 차례로 신설됐다. 2항은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것이고, 3항은 작업 중지로 인해 회사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 노동자가 생명에 위협을 느껴 작업 중지를 실시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판명나면 회사가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민형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형국이다.

결국,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은 외형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중 일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업주가 언제든 그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들을 이면에 깔아놓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노동자가 제시하지 못하면, 사업주는 언제든 해당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개선해온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단체협약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활용해 제26조의 한계와 법률상 맹점들을 메워내기 위한 요구들을 전개하고 있지만, 모호한 법이 사업주 편에 서고,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제하는 한국사회 현실에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실에서 위험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의 힘과 권리의 문제를, 법적 의미에서의 작업중지권으로 축소할 수 없는 것은 공유하는 전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조합도 조직되어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집단적/조직적 힘이 약한 불안정 노동자들일수록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측면에서, 작업장 수준에서의 변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작업장 정치를 거들어 줄 수 있는 법적 개선은 필수적이다.

 

노동자 대표에게 작업중지권을!

더불어 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에서 올 6월에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도 작업중지권개정안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로 근로자 대표에게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불균형 문제가 있다. 현재의 규정은 위험에 처한 노동자 개인이 피할수 있게 돼 있고, 그 외에는 사업주가 작업을 중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등하기 어려운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근로계약의 당사자인 노동자가 개인으로서 작업을 거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근로자 개인이 징계 등을 두려워하여 본인에게 닥치고 있는 재해를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고, 어렵게 작업중지권을 이용하였더라도 합리적 근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는 사례도 나타난다는 것이 개정안 제안의 요지다.

이를 개선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자격을 갖는 노동자대표에게 위험을 피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합리적 근거를 요구하는 대신, ‘판단한 근로자의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다면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않도록 했다. , 이렇게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행한 자에 대해 벌칙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있을 때는 모두 작업 중지를!

여기에 몇 가지 더 고려할 문제들이 있다.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조건을 현재의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있거나, 이에 대한 예방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와 제24조의 안전과 보건의 예방조치와 이를 구체적으로 정해둔 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을 때 모두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의 범위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 작업을 중지한 뒤, 다시 작업을 재개하기 위한 조건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위험이 있어 대피한 것을 인정하더라도, 작업 중지 시간이 과도하다며 업무방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노동법에서는 현 상황이 작업을 중단할 만큼 위험한지에 대해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에 이견이 있을 경우, 3번까지 중재 절차를 규정해두고, 이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사업주가 보기에 위험하지 않다 하더라도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근로자는 사업주가 적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작업에 복귀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항목이 명시되는 것이 좋겠다.

 

당장멈춰 팀이 제안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다음과 같다.

현행

개정

26(작업중지 등)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26(작업중지 등) 사업주는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위험있거나, 이에 대한 예방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로부터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근로자는 안전과 보건에 위험이 있을 경우이거나, 이에 대한 예방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였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바로 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바로 위 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에는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사업주는 안전과 보건의 위험이 있거나, 이에 대한 예방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근거가 있을 때에는 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해설> 안전과 보건의 위험은 제23와 제24조의 안전과 보건의 예방조치에 관한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에 의한 것이다.

 

근로자 대표는 안전과 보건의 위험이 있거나 이에 대한 예방조치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대피시키며 사업주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여야 된다.

<해설> 근로자대표의 중지권 및 적정조치 요구를 의무화하였다.

근로자는 사업주가 적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작업에 복귀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업주는 이 같은 이유로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해설> 개별근로자의 복귀 전제를 규정하였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 규명 또는 예방대책 수립을 위하여 중대재해 발생원인을 조사하고,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보건진단이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하여 제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좌동

좌동

 

참여와 권리를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작업중지권 조항의 개선은, 한 조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가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참여를 확대하여 노동안전보건을 달성하려 하기보다, 노동자를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주로 기술적인 접근으로 안전과 보건을 달성하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 조항은 없고, 노동자의 의무(6조 근로자의 의무.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사항을 지켜야 하며, 사업주 또는 근로감독관, 공단 등 관계자가 실시하는 산업재해 방지에 관한 조치에 따라야 한다)만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현장의 안전을 지키는 주체로서 노동자에게 적극적인 힘을 부여하는 작업중지권 조항 개정의 의의가 있다.

 

[권역별 토론회 알림] ‘금속노동자를 위한 작업중지권, 이렇게 쓰자 

당장멈춰 팀은 작업중지권을 현실화하기 위해 2014년부터 현장 활동가 인터뷰, 단체협약 연구, 작업중지 투쟁 사례 사회화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활동의 성과를 모아 <금속노동자를 위한 작업중지권 이렇게 쓰자 매뉴얼>을 준비했습니다. 현장의 고민과 실제 필요를 담아내는 책자가 되고, 매뉴얼을 계기로 곳곳의 현장에서 꼭 필요한 순간에 직접 작업중지권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뉴얼 출간 전, 매뉴얼과 작업중지권 관련 과제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권역별 간담회를 엽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일시 및 장소]

- 75일 저녁 7시 경기지역,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 713일 저녁 7시 인천지역, 장소 미정

- 마산창원, 울산 지역에서도 7월 중 개최 예정입니다.


[노동시간에세이] 시간의 두 결: 시간 적대에 대하여 /2016.7

시간의 두 결: 시간 적대에 대하여

 


강수돌 노동시간센터 회원,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하루 24시간. 일 년 365.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이다. 오늘날 우리는 평균 80년 산다. 물론 최근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노동자나 공고 실습생처럼 10대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도 많고, 90~100세를 넘기며 장수하는 노인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 하루 24시간은 동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다 같은가? 다르다. 시간의 결이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결이 있다. 하나는 돈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시간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규율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의 말이다. 그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이다. 그는 정치가이자 발명가이기도 했으며 사상가였다. 프랭클린의 사상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실용주의적으로 살아가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느 젊은 상인에게 주는 충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시간이 돈임을 명심하라. 하루 종일 일해서 10실링을 벌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만일 그가 한 나절 동안 밖에서 놀거나 그냥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자. 그러면서 설사 그가 6펜스만 썼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만이 비용의 전부라 생각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외도 5실링을 낭비하거나 포기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1848년에 끌로드 F. 바스티아의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다 발전 되었고, 마침내 1914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뷔저(von Wieser)에 의해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개념으로 각인되었다. 시간이 돈이므로, 돈 버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엉뚱한일만 하면 그 엉뚱한 일을 하느라 든 직접비용 (explicit costs)만이 아니라 원래 그 시간에 벌어야할 돈까지 벌지 못한 간접비용(implicit costs)이니, 이중의 손해(기회비용)를 본 셈이다. 이런 논리다. 어디,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렇다. 오늘날 수 많은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의 시간이 아닌 삶의 시간으로 

그러나 또 다른 시간의 결도 있다. 돈의 시간이 아니라 삶의 시간이다. 이것을 잘 표현하는 소설이 있는데, 독일 작가 미햐엘 엔데가 1973년에 쓴 <모모>.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무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주인공 모모는 시간을 돈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이나 자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생명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은 생명의 흐름, 한마디로 삶이다. 현재 우리는 여기서 존재하며 살고() 있다.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연속적인 시간 속에 생명의 에너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느끼고 생각하고 관계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에너지의 흐름 속에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고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모모>에 나오는 다른 등장인물을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모의 이웃인 청소하는 노인 베포는 천천히, 한 호흡씩 즐기며 나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이 모든 구절은 모모의 말, 베포의 말이기도 하지만, 바로 작가 M. 엔데이 현대인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일 것이다. 그는 아무리 긴 시간, 많은 일이 쌓여 있어도, 한 걸음씩 한 호흡씩 즐기면서 천천히 해나가면 어느 새 모두 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특히 현재에 집중해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는 효율이 아니라 호흡이 중요하다. 효율이 돈이라면 호흡은 삶이다. 효율이 죽음이라면 호흡은 생명인 것이다.

 

<모모>에서도 효율과 이윤의 시간을 따르는 이가 등장한다. 바로 시간저축 은행에서 일하는 회색신사들이 그렇다. 그들은 죽음을 뜻하는 효율이 생명을 뜻하는 호흡을 망가뜨리는 장면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은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를, 좋지만 값이 싼 양로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고스란히 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다리아 양을 만나야 한다면 두 주에 한 번만 찾아가세요! 15분 간의 저녁 명상은 집어 치우세요.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충고하는데, 잘 맞는 커다란 시계를 하나 이발소에 걸어 놓으세요. 견습생이 일을 잘 하고 있나 감시할 수 있게 말이지요.”

 

이 모든 충고는 다시 18세기 B. 프랭클린의 말로 돌아간다. “시간은 바로 돈이니, 시간 낭비는 죄악이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그리하여, 무노동 무임금. 같은 맥락에서 파업 시 임금 지불은 불법이다. 이제, 일하는 시간, 돈 버는 시간만이 바르게 사용된 시간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 공부하지 않은 시간, 돈 벌지 못하는 시간은 인생 낭비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교실에 이런 급훈이 나왔겠는가? “네가 잠든 사이 경쟁자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강남엔 내 집 마련, 주차장엔 페라리.” 이런식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미래의 돈(성공)을 위해 현재의 삶(행복)을 포기하게 만든다.

 

돈의 시간에 되어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삶은 이 두 결의 시간이 대립한다. 시간 적대다. 생명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대립한다. 물론,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에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자본의 논리는 권력의 힘을 업고 생명의 논리를 무참히 박살내려 한다. 이제, 계급 적대는 시간 적대로 현상한다.

 

자본은 시간을 압축하고 밀도를 높여 이윤율을 높이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자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무덤을 파고있다. 세계시장이 급속도로 포화 상태로 치달았고, 원료나 에너지도 급속히 고갈된다.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대량 생산하면서 구매력을 급속히 떨어뜨렸다. 은행 이자가 제로로 치닫고 재벌들이 수백 조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배경이다. 효율(축적)의 논리가 자가당착이 되어 호흡(흐름)을 방해한다. 하지만 자본은 자성하지 않고, 오히려 허튼 소리만 무한 반복한다. “조금만 더 일하면 선진국 된다. 조금만 더 !”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덤 앞에 선 좀비 시스템을 구덩이 속으로 살짝 떠미는 일이다.

 

비록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를 압도적으로 굴복시킬 힘은 없지만,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에 자발적 복종을 하지 않고 스스로 꿈틀거리며 더불어 어깨를 거는 한, 좀비가 되어버린 시스템을 구덩이로 떠밀어 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생명의 시간이 빛을 발할 때가 다가온다. 우리 자신이 생명의 철학, 삶의 철학으로 무장하는 만큼 가까워지는 법!

 

최근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이 미국 사람 1,226명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다. “여가 없이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돈을 포기하고 여가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그 중 60.9%는 돈을 선택 했고 30.1%는 시간을 선택했다. 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분석한 결과, 돈을 선택한 이들보다 시간을 선택한 이들이 행복했다. 돈을 선택한 이들이 많이 버는 것에 집중한다면, 시간을 선택한 이들은 어떻게 쓸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런데, 돈이 충분히 있어도 쉬지 못하고 놀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론은, ‘중독이 문제다. 돈 중독, 일중독, 출세중독, 권력중독이 그것이다. ‘충분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독은 왜 생기는가? 내면의 공허함 때문이다. 속이 허하니 외부로부터 뭔가 채우려는 것이 모든 중독의 핵심이다. 내면의 느낌으로 표현되는 인간적 필요욕구’, 즉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모르거나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생명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제 우리는 우리의 공허한 내면을 삶의 시간으로, 생명의 시간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내면의 느낌과 필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신뢰하면 된다. ‘자기 해방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의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 큰 장벽이 된다. 일단 뒤틀린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자기 해방)이 출발점이요, 그 다음은 생명의 시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부터 먼저 생명의 시간을 온전히 음미하고 향유하는 연습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상호연대). 나아가, 그렇게 삶의 시간을 알차게 누리는 실천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삶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끔 사회 구조를 바꿔내야 한다(사회 해방). 사회적 실천과 운동, 이것이 절실하다. 구체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 증대, 삶의 시간 계획과 신바람 나는 프로그램 만들기 등을 가능케 할 노동 및 경제 시스템,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복지 시스템, 점수 따기 식 공부가 아닌 꿈과 개성을 살리는 공부를 돕는 교육 시스템 등을 패키지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자본의 시간도 쉬이 사라질 것이고 좀비 같은 시스템을 땅 속에 파묻는 일도 쉬이 가능 할 것이다. 자기 해방에서 상호 연대로, 또 사회 해방으로 진전해야 한다. 바로 그 길 위에서, 시간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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