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2014.11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13년 베테랑 출판 기획편집자와의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당신에게 ‘책’이란?” 모 예능프로그램 MC가 초대 손님에게 하듯, 나도 다짜고짜 이렇게 묻고 싶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장장 13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계속 해 온 그녀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출판사는 몇 번 옮겼지만, 딱히 쉰 적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 질문부터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지현(가명) 씨. 대체 이 사람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Q. 와! 대체 13년 동안이나 출판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A.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이러다가 출판계의 조상, 화석이 될지도? 하하하. 계속 책을 만들고 있었죠 뭐. 출판 편집자(에디터)이니까요. 전반 7~8년은 주로 원고 교정·교열을 했어요. 저자가 완성해서 가져온 원고를 보고 문장을 잘 다듬어서 책으로 낼 수 있게 하는 일이요.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출판 분야에서 ‘기획편집’에 대한 요구가 훨씬 커졌고 저도 경력이 쌓이면서 업무가 진화해 갔어요.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구상을 한 후 신간 기획서를 내고 회의를 거쳐 승인이 떨어지면, 저자를 섭외하고 원고 받아 교정 교열하고, 책으로 만들어서 판매 홍보하고. 정말 책 한 권을 만들어서 독자 손에 전달하기까지 필요한 전 과정을 다 핸들링하는 일이지요.

 

 

Q. 흔히 출판 쪽은 박봉이고 일도 힘들다고 하던데, 무슨 마력이 있었나 봐요, 계속 편집자의 길을 가시는 걸 보니. 책 만드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나요?

 

A. 처음 출판사 쪽으로 취업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이쪽 일이 엄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요. 칼럼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으니 배워야겠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돈도 벌고 글 쓰는 법도 배울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문을 두드렸어요. 첫 직장은 정말 작은 출판사였는데 초봉 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고, 출근한 첫날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어요. 거기서 한 5년 반 정도 일했는데 책 제목 짓기는커녕, 왜 책 앞뒤 표지에 있는 카피 문구 있잖아요? 그런 것도 한번 안 써 보고 내도록 교정교열만 했었지요. 그 다음에 갔던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업무는 똑같았는데, 일은 더 많았어요. 신간 출판량이 워낙 많았던 곳이라 밤새서 일하고, 사무실에서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일하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때가 지금보다 젊었고 일하는 데 시간도 훨씬 많이 썼지만, 책 만드는 사람으로 진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건 기획편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나 가치관을 담은 책을 만들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의미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이전에도 분명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었지만 보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느껴요. 물론 신경 쓸 일은 훨씬 늘어났지만요. 

 

 

Q. 아까 편집자가 신간 구상과 기획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저자보다 책을 먼저 만들기 시작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A. 일단, 회사에 나는 ‘어떤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서를 써내요. 주제를 잡고 주제를 살릴 수 있는 컨셉을 명확하게 잡아서요. 예를 들면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굉장히 큰 소리로 떠드시는 노인 한 분을 거의 매일 뵙는데요. 볼 때마다 큰 목소리로 떠드시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는 행동을 하고 계셔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예쁘게 늙는 법’에 대한 책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그런데 주제를 잡은 것만으로는 책을 절~대 낼 수 없어요. 노인복지를 전공한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노인에 대해 잘 아시죠. 책 한 권 내시면 어때요?’ 한다고 해서 책 원고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늙는 게 문제인지, 교양이란 대체 무엇인지, 대체 어떤 독자층에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등 세부 컨셉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제안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트렌드를 잘 꿰고 있어야 해요. 기획서를 받는 편집장님과 사장님이 1차 설득대상인데 ‘이런 책이 진짜 없느냐? 없으면 왜 없겠느냐, 안 팔리니까 없겠지.’라고 하시면 대답할 말이 있어야겠죠. 요즘 대중들이 원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면서도 살짝 방향성이나 컨셉이 새로운 신간 출판을 설득력 있게 제안할 수 있으려면 많이 보고 듣는 과정이 필요해요.

 


Q. 시중에 있는 듯하면서 없는, 신선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지 않은, 그야말로 대중과 ‘썸’타는 책이어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신간 아이디어는 얼마나 자주 제출해야 하나요?

 

A. 출판사마다 다른데, 저희는 신입 포함 모든 편집자가 한 달에 한 번은 기획서를 제출해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얘기도 나누면서 기획할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많이 넣어두어야 하지요. 저도 업무 중에 SNS 확인, 주요 일간지 및 잡지 기사 읽기, 각종 포탈의 메인이슈 클릭해 보기를 열심히 해요. 어떤 때는 내가 노는 건가 일하는 건가 약간 애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봐두면 다 쓸데가 있더라니까요. 아! 전번 다니던 회사에서 스타 에디터급 선배가 계셨어요.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분이시죠. 이분 같은 경우 대중음악이나 영화 인기순위 1위부터 10위를 매일 숙지하고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회 각 분야 최신 소식이나 유행은 다 섭렵하고 계셨어요. 출근해서 ‘어제 ○○○영화 관객 몇 명 들었대요?’라고 여쭤보면 즉각 대답해 주시곤 했죠. 기획 들어가기 전에 유사도서 20권 읽기, 저자 섭외 단계에서는 저작 몽땅 섭렵하기. 이런 게 그 선배의 ‘기본’이었어요. 대충 느낌 오시죠?

 

 

Q. 잘 만들어진 기획서가 통과되면 그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A. 이제 바로 저자를 컨택(섭외)하는 단계입니다. 사실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운 단계에요. 실제로 저는 신간 기획서가 거의 통과되는 편인데 저자 컨택이 어려워서 좌초된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칼럼이나 논문 같은 걸 보고 기획안을 만들었을 경우 특정 저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이미 책을 낼 수 있는 원고를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 즉, 편집자가 발굴한 저자인 경우 제가 먼저 기획취지를 잘 설명하고 샘플 원고를 써 보시게 합니다. 한 챕터(장) 분량만 받아서 읽어보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고요. 괜찮으면 계약을 하고 정식원고 집필을 진행하는 거죠. 원고가 그렇게 완성이 되면 교정교열 단계인데요. 교정교열은, 하아. 장담컨대 앞으로 이 일을 10년을 더 해도 절대 빨리 단축해서 할 수 없을 거예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거기 나오는 달인들이 눈감고 초밥을 쥐어도 밥풀 300개, 종이 대충 잡아도 A4 한 권 분량 딱딱 나오는 것처럼 한 10년 일했으면 교정교열 1회만 보면 완벽하면 좋겠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교정교열은 무조건 최소 3교, 많을 때는 6교~10교까지도 봐야 하고, 그것도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동료들과 돌려보는 협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수정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보는 적자대조, 그리고 최종교를 보게 됩니다.

 

교정교열 할 때 책 디자인도 함께 진행해요. 편집 디자인이라고 하죠. 표지와 내부 디자인을 맡기는데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저희 출판사는 내부에 디자이너가 있어요. 그 다음이 인쇄죠. 디자인, 인쇄의 단계에서도 역시 편집자가 책의 컨셉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표지의 색감과 선명도를 체크하는 일까지 모두 하나하나 함께 확인합니다. 디자이너와 인쇄 담당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마지막 책이 나올 때까지 그야말로 같이 책을 만드는 거지요. 책이 나온 후엔 마케팅팀과 홍보 전략을 같이 짜고요.

 

 

Q. 과정을 들어보니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스트레스이진 않나요?


 

A. 출판 쪽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과정마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됩니다. 아까 설명해 드린 교정보는 것만 해도 혼자서는 완벽한 교정이 절대 불가능해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일과 일정을 조정하는 게 물론 쉽지는 않지요. 다들 각 분야에서 전문가이신 만큼 각자의 스타일과 주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대하기 힘든 존재는 ‘원고’님입니다. 사람은 그에 비하면 어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좀 과장인 듯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자의 거룩함이랄까? 문자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이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교정보다가 우리‘는’ 으로 할까 우리‘가’로 할까 몇 십 번을 고민합니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원고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붙들고 저희는 수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13년, 유지현 씨가 출판 노동에 더욱 즐거움을 느끼며 베테랑 편집자로 발전해 간 세월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출판 노동자로서 살면서 직업병 한두 개 안 생겼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예전보다 눈이 침침해졌고 목 어깨가 종종 뻐근하다고. 이는 비단 유지현 씨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출판사에서는 직원복지 차원으로 몸살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지현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고. 이 잘못 굴러가는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는 책, 그런 목소리를 내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현 씨가 낸 책을 읽고 세상을 바꾸는 독자들, 나도 사뭇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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