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이주노동자 안전·건강과 노동허가제 (매일노동뉴스)

이주노동자 안전·건강과 노동허가제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 승인 2018.10.18 08:00







“Free Job Change, Achieve WPS.” 지난 14일 이주노동자 대회 참석자들은 하늘색 바탕에 구름같이 하얀 글씨로 그들의 요구를 적어 들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허가제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WPS(Work Permit System)는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 대안으로 주장되는 노동허가제를 말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로 300인 미만 제조업, 건설업, 어업, 농축산업과 일부 서비스업에 적용된다.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외국인은 218만여명이며 단기체류자가 약 60만명, 불법체류자가 25만여명이다. 2018년 전반기 기준 고용허가제로 6만8천390개 사업장에 15개국 21만7천344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돼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515

[연구리포트] 경기화성지역 이주노동자 건강실태 / 2018.03

경기화성지역 이주노동자 건강실태

송홍석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장, 화성지역사회보장대표협의체위원)


화성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건강분과에서는 2017년 9월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이동 진료사업’을 아시아다문화소통센터에서 진행하였다. 이동 진료에 참여한 이주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실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설문에 응답한 이주노동자는 총 113명으로 이중 비 전문취업(E9비자)노동자는 101명, 미등록이주노동자는 12명으로, 등록이주노동자 중심의 설문조사였고, 경기 화성지역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첫 건강실태 설문조사 결과다.


1. 화성지역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실

○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3년 이상, 혹은 5년 이상 비교적 장기간 한국에 거주하였다. 한편,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10년 이상 거주한 경우가 58%, 5년~10년 미만이 25%로 체류 기간이 등록이주노동자보다 확연히 길었다. 


 


○ 81%의 이주노동자들이 50인 미만의 소규모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10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이 중 25%의 미등록이주노동자는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 더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 평일 평균 노동시간은 10.1시간으로 법정 하루 노동시간 8시간을 훌쩍 넘기며 일하고 있었다. 특히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토요일에도 8시간 근무를 하고 있었고, 27%의 이주노동자들은 일요일에도 일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초장 시간 노동을 하는것으로 나타났다.

○ 한 달 급여는 등록이주노동자들은 200~299만 원이 60%, 50~199만 원이 26%, 100~149만 원이 11%였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경우 100~149만 원을 받는 경우가 45.5%로 가장 많았고, 150~199만 원이 27.3%, 200~299만 원이 18.2% 순이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한 달 급여가 현저히 적었다.


○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작업장의 유해요인으로는 분진(47%), 소음(39.4%), 중량물 작업(37.5%), 화학물질(32.7%) 등을 꼽았다.


2. 산재 및 산재 예방 실태

○ 30%의 이주노동자에게 산재의 경험이 있었는데, 산재보험을 신청한 경우는 36%에 불과하였다. 설문참여자 수가 적어 통계적 의미는 없으나, 산재의 경험이 있었던 미등록이주노동자 전원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았다. 한편, 더 주목해볼 만한 통계는 다음이었다. 36%의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10명 중 7명에서 산재보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 이렇다 보니 일하다가 다쳤을 때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한 경우가 36.4%, 공상처리가 27.3%나 되었다. 반면, 미등록이주노동자 4명 중 3명(75%)은 본인이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였고,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산재보험은 물론이고 공상처리조차도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 사업장 배치 후 안전보건교육 실태는 50.5%의 이주노동자가 교육받지 않았다. 그런데 70%의 이주노동자가 안전보건교육이 실제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한 것으로 볼 때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교육이 절실히 필요함을 말해준다. 

○ 30%의 이주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매년 받을 수 있는 직장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동 진료 시 다수의 이주노동자에게서 당뇨, 고혈압, 간 질환 등 만성질환이 발견되었음을 고려하면 회사에서 법적인 의무사항인 직장검진을 매년 반드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3. 건강 및 의료기관 이용 실태

○ 이주노동자가 병원을 방문하는 질환은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감기, 위장질환, 두통, 치과 질환, 피부 질환, 고혈압 순이 병원을 이용하였다.

○ 33%의 이주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가 필요한 질병이 있었고, 그중 42%의 이주노동자만이 정기적으로 관리받고 있었다. 한편, 최근 1년 동안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나 가지 못했던 이주노동자는 34%나 되었는데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절반은 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이주노동자의 의료기관 이용률은 매우 떨어졌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 이를 반영하듯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유해한 작업장 환경과 장시간·고강도 노동, 그리고 건강검진 미수검을 포함한 제때 병원 이용을 못 하는 문제를 건강을 해치는 주요인으로 꼽았다.


○ 병원에 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일이 많아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77.6%)’ 였고, ‘의사소통의 문제(20.4%)’, ‘의료비용 부담(18.4%)의 문제’, ‘의료기관 정보의 부족(16.3%)’ 때문이었다. 한편,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병원 갈 시간 없음, 의료비용 부담,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 순이었다. 이는 대구 성서공단 이주민 건강실태조사나 부산·경남 미등록이주민 건강실태조사의 결과와 같았다.


○ 이주노동자들이 아플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의료기관은 병·의원 63%, 약국 21%, 무료 진료소 8.6%, 보건소 3.8%, 한의원 2.9% 순이었고,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약국 50%, 무료진료소 33.3%, 병·의원 16.7% 순이었다.

○ 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내국인의 일반적인 선택의 기준과 비슷하였고, 다만 보건소의 이용률은 타 의료기관보다 현저히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엔 일반 병·의원보다는 약국과 무료 진료소를 중심으로 이용함을 확인할 수 있다.

○ 의료기관 이용 시 의사소통 문제 해결은 72.2%의 이주노동자들이 본인이 직접 한국어로 의사소통하였고, ‘의사소통이 어렵다’ 25%,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나 통역사가 함께 가서 해결한다’ 16.7%, ‘본인이 영어로 소통한다’ 8.3%였고, 전화 통역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7.4%에 불과하였다.

○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병원 방문 시 의료비 지불은 본인이 의료비를 전액 부담하였고, 의료공제회를 통한 지불 방식은 없었다.

○ “수원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도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들은 17%에 불과하였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 12명 중 1명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공공보건사업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 의료기관 이용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이주노동자 전체적으로는 ‘건강보험/의료비 할인 등 경제적 부담문제 해결’과 ‘근무시간 중 병원 방문 허용’을 가장 우선순위로 꼽았고, ‘통역서비스’,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 순으로 해결 과제를 꼽았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경제적 부담문제 해결’, ‘단속 문제와 근무 시간 중 병원 방문 허용’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 보건소 이용율은 40%로 낮은 편이었는데, 그나마도 대부분은 ‘비자발급을 위한 결핵 검사’를 받기 위함이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보건소의 이용율이 25%로 훨씬 낮아서 건강과 의료서비스의 취약계층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보건소의 역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하겠다.


4. 정책 제안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병들고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는 국적을 이유로, 등록과 미등록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인권으로서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사업주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 ‘위험을 회피할 권리’,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실현할 책무를 다 해야 한다.

(1) 정부 당국은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를 제도적,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사업장 산재 예방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 근본적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일하다 다쳤을때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영세사업장에서 고위험·고강도·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법무부 공식통계로도 20만 명 이상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건강보험을 전면 적용하여 경제적 장벽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 단기적으로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유일한 의료 안전망인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의 예산을 확대하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있는 ‘외래진료 및 약제비의 본인부담금’을 지원하고, 사업수행 의료기관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

○ 노동부는 산재 은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산재 발생 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해야 한다.

○ 입사 전 형식적이고 일회적인 안전보건교육이 아니라, 입사 후 사업장별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지속적이고 실효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안전보건교육은 이주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된 자료로, 통역을 동행해서 진행해야 한다.

○ 또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단속의 두려움 때문에 병원이나 보건소를 이용하기 힘들다. 법무부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이러한 인권 침해적인 폭력적 강제 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2)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 건강보험에서 소외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외래 및 약제비를 지자체 예산확대를 통해서도 지원해야 한다.

○ 2000년 한국 정부는 지역보건소가 미등록이주민에게 최소한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외국인 근로자 건강관리지침’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화성시 보건소는 기본적인 건강관리와 건강검진,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지자체는 이를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적극적인 홍보와 관계 기관의 협조, 그리고 사업장을 찾아가는 보건교육 및 예방접종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한다.

○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의료기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당장의 노력으로 의료공제회 가입을 독려하고, 지역의사회는 의료공제회와 협약을 통해 일차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그리고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교육이나 재해 발생 상황에서 지자체 수준의 통역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 2016년 아시아 다문화소통센터에서 ‘화성 이주민실태조사’를 통해 ‘외국인 역량강화 네트워크사업’을 제안하였는데, 이사업으로 양성된 이주민들과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적정 수준의 활동비를 지원하여 상시 통역(전화,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화성시와 경기도는 이러한 모범사업을 통해서 여타 지자체에 확산시키는 선도적인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 모든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아프면 제때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재해 발생 시에는 산재로 처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원하면 사업장 변경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업주는 유해요인으로부터 안전한 작업장 환경을 만들고, 안전보건교육 의무를 실효성 있게 수행하고, 정부 관계 당국은 재정적, 행정적으로 충분한 지도와 지원을 해야 한다.

특집5.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 2018.01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

-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이야기

최수정 <담> 프로젝트, 수원이주민센터


“회사에 도착해서 보니까 엄청 시골 같았어요. 겨울이라 나뭇가지만 남아서 삭막했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밖에 이렇게 보고 ‘진짜 나 어디에 온 거야?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먼저 사장님하고 사모님이 있는 사무실에 들렀어요. 제가 사모님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는데 그분은 나한테 인사 안 했어요. 인사하라고 해서 인사했는데…. 그리고 사무실에서 나와 공장에 갔는데 건물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였어요. 화장실은 공장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화장실을 쓰고 물은 공장에 와서 다시 가지고 가야했어요. 그리고 집은 컨테이너였어요.”

처음 밟은 한국 땅, 처음 만난 한국 사람,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도 돈만 많이 벌수 있다면 참을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군인의 꿈도 포기하고 찾아온 한국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해도 한 달에 80~90만 원밖에 벌지 못하고 그 돈으로 하루 3번의 식사도 모두 해결해야 하는 그 회사에서 날라끄는 한 해를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일도 힘들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건 날라끄가 선택할 수있는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직장이동 자유와 직장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하에서 그건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3번밖에 회사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엄청 힘든 일이었어요. 철판 같은 거, 건물 지을 때 필요한 철근 만들었어요. 다행히 그 회사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일은 힘들었지만 2년 반 동안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다른 회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국 사람이 외국 사람한테 일 시킬 때 말하는 거나 큰소리치는 거 보면 자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회사에서는 다 욕부터 시작했어요. 아침에 올 때마다 욕하면서 ‘야, **! 이리 와’ 이렇게해요. 좋은 말 한 번도 안 해요.”

힘들고 고된 노동, 불편한 주거 환경, 외국인이라고 욕부터 시작하는 사람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왔다지만, 하루하루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 없이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 많았다. 게다가 언제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작업 환경의 위험 역시 감수해야 했다.

“기계에서 제품이 두 개씩 나오면 문을 열고 그 제품을 빼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계에 내 장갑이 끼어서 들어갔어요. 피가 엄청났어요. 병원에 가려고 밖으로 나와서, 같이 일하던 스리랑카 친구한테 기계에 있는 내 잘린 손가락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어요. 그때 병원에서 회사 사람들이 거짓말했어요. 제가 불량을 자르는 분쇄기에서 다친 거라고, 제품 기계로 다친 거 아니라고 거짓말했어요. 분쇄기는 우리가 실수하면 다칠 수 있어요. 그런데 제품 기계에서 다쳤다고 하면 센서를 새로 고쳐야 하고, 보험 문제가 생기고 그래요. 그때는 제가 회사 사람들한테 거짓말해도 괜찮으니까 내 손가락만 제대로 치료해주라고 했어요. 병원비 750만 원 정도를 회사에서 냈어요. 전에도 다른 사람이 이렇게 다친 적 있었는데 그때도 회사에서 병원비를 해 줬어요. 산재처리 해도 아마 100~200만 원 밖에 못 받을 거라고 들어서 안 했어요.”

갑작스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고 앞에서 날라끄는 다른 건 상관없이 손가락이 다시 제대로 붙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당장 내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의 거짓말이나 산재처리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회사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적법하게,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넘어갈 방법을. 회사가 왜 다른 기계에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왜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 돈으로 치료비를 내려고 하는지 날라끄는 모르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회사가 알아서 잘 치료해줄 테니 문제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했을 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여러 번의 수술과 오랜 치료 끝에 날라끄의 손가락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날라끄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도 그리고 한국에서 얻은 것도 첫 번째는 돈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억울함을 참았다. 이제 스리랑카로 돌아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날라끄. 힘들었던 나라 한국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그는 “다시 돈 벌러 가고 싶은 건 아니에요. 진짜 한국에 잘해주고 싶은 마음 있어요. 나한테는 고마운 나라니까. 한국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가보고 싶어요, 당연히. 그냥 내 나라예요, 거기도.”라고 말한다.

얼마 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5년 이상의 체류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또한, 숙식비를 월급에서 원천징수할 수 있게 한다고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은 나빠지기만 한다. 젊은 날, 그 빛나는 청춘을 한국에서 온전히 보낸 날라끄, 그리고 지금도 청춘을 바쳐 일하고 있는 수많은 날라끄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걸까?

특집4.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 2018.01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이야기

박유호 <담> 프로젝트, 노동당


아웅틴툰씨는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94년 18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습니다. 당시 미얀마의 정치상황이 좋지 않아 대학에 진학 할 수 없는 그는 외국으로 견문도 쌓고 공부도 하고 싶어 ‘산업연수생’제도를 신청하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합니다.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견문도 넓히고 배울 기회가 많아지겠다며 기대를 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습니다.

“‘산업연수생’ 이름만 듣곤 막 이것저것 대접 받으며 공부하며 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는 금방 깨졌어요. 이렇다 할 한국어 교육도 없이 3일 정도 딱 교육하고 나서, 바로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어요.”

그는 한국에 들어오자 마자 인천 제물포 인근의 한 선박엔진 주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서는 배우는 시간이 있기는 커녕 쉬는 시간조차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노동시간은 하루 12시간을 넘는게 당연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잠자리 또한 비가새고 좁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기대’는 이내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장시간 노동시간과 열악한 노동환경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차별 또한 무시 못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니 한국인 직원들이 기분 나쁜 장난을 많이 쳤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한국인 직원들이 한국어를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나쁜말(상대방을 비하하는 말이나, 욕설 등)을 해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이게 해야 할 말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어투를 보며 분간을 해야 하니까 이래저래 눈치보는 법부터 배우게 되었어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국어’에 서툴다는 이유로 무시받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는 1년정도 일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노동을 하다가 입은 부상인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거부 당했습니다. 산재신청을 알아보면서 이주노동운동을 하는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노동법을 배우고 동료들의 노동상담을 해주면서 그는 지금까지 이주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서 그는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집단 농성과 투쟁의 경험들을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지금 한국땅에서 이주민 영화제를 몇 년째 진행하고 있고이주민방송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방송 3년, 다른 데에서도 방송 일을 3년정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미얀마에서 한국의 EBS같은 교육방송사를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해요. 성인 청소년아이들 모두를 위한 교육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인들이 쉼 없이 살아가는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자기가 일하면서 보았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찾기보다는 무엇에쫓겨 사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여유롭지 못하게 사는 것 같아요. 너무 잘사는 미국이나 유럽만 쳐다보고 사는데 부족하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삶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그가 살았던 미얀마에서는 사람들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사람들에게 보고 배울게 많지만 여유롭게 사는 법은 미얀마사람들에게 좀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장시간 노동을 없애려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 노동시간과 열악한 환경은 계속되고있습니다. 우리에겐 여유로운 삶이란 굉장히 멀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아웅틴툰씨는 간단합니다. 좀 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겪어오면서도 활기차고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제게도 새로이 힘이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집3.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 2018.01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야기

푸우씨 <담> 프로젝트, 상임활동가


“고향 친구들 모두 한국에 왔어요. 다 여기 있어요, 한국에. 네팔에서 가족 중 한 명이 E-9 비자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다른 가족 모두가 살수 있거든요.”

태어나 자란 네팔을 떠나는 것,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는 것은 오쟈 씨와 또래의 네팔 청년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오쟈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필더보이’로 인도에서 일 했다. 회사의 지시에 따라 사무실로 서류나 돈, 책을 준비해 오토바이로 전달하는 일을 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한 달 꼬박 일하고 받는 월급은 한국 돈으로 20만 원, 많을 때는 25만 원 남짓한 수준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인도에 갔지만, 네팔과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그는 고향에 돌아와 친구들처럼 한국행을 택했다.

“5명이 한방에 자야 했어요. 기숙사 비용도 내야 했고요. 월급에서 10만 원씩 잘라갔어요. 하숙비, 전기비, 인터넷비. 이렇게 해서 1인당 10만 원씩 기숙사비용으로 잘랐어요.”

인도에서 네팔로 돌아와 카트만두에서 6개월가량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시험에 합격해 운 좋게 한국에 오게 된 오쟈 씨. 그는 인천 서구의 와이어 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한국생활과 달리 현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눕기에도 빠듯하고, 화장실도 없는 컨테이너에서의 생활이었다.

“회사에 가서 부장님한테,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니까 ‘안녕하세요 하지마. 안녕하십니까! 이렇게해’ 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한국에서 첫 출근길에 곤욕을 치렀다. 출근하며 인사를 건넨 오쟈 씨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잘라먹은 한국인 부장은, 출근할 때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눈을 깔고 다니라고 말했다. 심지어 사장과 부인은 오쟈 씨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네팔에서 오자마자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욕먹고, 맞고 그랬어요. ‘시발’, ‘이 새끼야’ 이런 욕을 했어요.”

업무지시를 하는 부장은 매일 같이 욕을 했고, 때로는 폭행도 가했다. 일도 많이 힘들었다. 그가 맡은 업무는 운반이었다. 60~70kg가량의 와이어 뭉치를 혼자서 들어 날랐다. 고된 업무로 1년 정도 지나자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허리가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무거운 물건을 운반해서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얘기했죠. 몸이 아프다고요. 회사를 옮겨 달라고요. 그러자 회사에 선 ‘일해! 일 안 할 거면 네팔 가!’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오쟈 씨는 넉 달 가까이 악몽 같은 일상을 보냈다. 출근한 그에게 부장은 아프냐고 묻곤, 아프다고 답하면, ‘일 없어! 가서 쉬어!’라고 하며 그를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때론 아무 의미 없이 무거운 재료를 이곳저곳으로 들어 나르도록 시켰고, 어떤 때는 2시간만 일을 시키고는 일이 없다며 돌려보냈다. 그가 아프다고 하니 회사에선 컨테이너가 아닌 다른 기숙사(아파트)로 그를 보냈다. 그리고는 월급에서 20만 원을 기숙사비로 잘라갔다. 결국,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쟈씨는 스스로 노동부를 찾았지만, 노동부 직원은 모르겠다며, 사장에게 말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라고 했다. 도움은 커녕,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부 직원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이주노조였다. 우연히 친구에게 건네받은 전화로 이주노조 위원장(네팔에서 온 우다야 라이)에게 사정을 말한 그는, 14개월 만에 사업장을 변경했다.

“평택에서 일하던 회사, 사장님도, 부장님도 안 좋은 사람이었어요. 회사에선 ‘네팔로 돌아가고 싶냐, 말 안 들으면 비자 연장 안 해줘!’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오쟈 씨는 우여곡절 끝에 안성·평택에 있는 플라스틱 사출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농촌에 있는 공장에서 오쟈 씨와 동료들은 일이 없을 때는, 회사 밖의 농장에 불려가 풀을 베야 했다. 정해진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해 묻자, 회사에선 ‘시키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3년 시효의 비자가 만료되면, 1년 10개월을 연장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허가제’의 비자 연장을 미끼로 회사에서는 부당한 일을 강요했다. 12개월이 넘게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도록 강요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공장의 다른 부서로 재계약을 맺게 하는 꼼수를 쓰는 회사였다. 오쟈 씨는 또 한 번 이주노조의 도움을 받아 사업장을 변경했다. 그렇게 지금 일하는 천안의 볼트·너트 제조회사에 터를 잡았다.

‘사장님’의 허락 없이는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고,‘사장님’이 3년을 근무한 이후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더 일하고 싶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재의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몸소 느낀 오쟈 씨는 이주노조의 활동과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행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해결하지 않고 선 그에게 기대고 있는 가족들의 삶도 보장이 되지않기 때문에, 오쟈 씨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이주노조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오쟈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한국경제의 필요에 부응한 많은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대로면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계속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특집2. 쑤쑤!1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요! -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이야기 / 2018.01

쑤쑤!¹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요!

-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이야기

정지윤 <담> 프로젝트, 수원이주민센터


스레이나 씨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그녀는 열두 살이 되던 때부터 항상 일하여 돈을 벌어야했다. 어머니를 도와 길거리에서 행상했고 열여덟 살이 되어서는 음식점의 종업원으로 일했다. 하루 1달러, 한 달 20달러의 월급은 동생들의 학비이자 엄마의 병원비이자 가족들의 생활비였다. 월급을 좀 더 많이 받기 위해 그녀는 남들이 꺼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맥주 파는 일을 하면 월급이 40달러나 됐어요.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술 파는 여자는 술만 파는게 아니라 다른 안 좋은 일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멸시해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진짜 그런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가족을 위해서, 내 일이기 때문에 떳떳하게 일했어요.”

스레이나 씨는 열여덟 살의 어느 날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떠났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그곳 음식점에서 숙식하며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을 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스레이나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프놈펜까지 찾아 왔지만, 그녀는 병든 어머니와 일곱 명의 동생이 있는 어려운 집안형편을 아버지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매몰차게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낯선 대도시에서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쉼없이 일했다. 음식점일 뿐만 아니라 3층짜리 가게를 새로 짓느라 벽돌과 시멘트를 나르는 일까지 사장이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해야만 했다. 

숙식을 조건으로 한 달 20달러 월급을 받고 시작했던 프놈펜 식당, 13년을 일한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은 100달러였다. 한국행은 그녀에게 13년간 일한 식당에서 받던 월급 100달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벌 새로운 기회였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한국은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6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하고 밥을 먹는다고 계약했는데 1시까지 일을 하고 밥을 먹었고 밥 먹자마자 바로 일을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 한 시간 쉬기로 한 건 어떻게 계산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일을 시키는 만큼 돈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한국 온 지 얼마 안 돼서 물어볼 수도 없었고 계속 일만 했죠.”

핸드폰도 없이 왕복 3시간을 걸어 나와야 마트가 나오는 시골, 비닐하우스로 둘러싸인 곳에서 충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스레이나 씨는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을 했다.

“사장님을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노동부에 가서 얘길 했어요. 한국에서는 노동부에 가서 신고를 해봤자 바로 이길 수는 없어요.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노동부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노동부에서는 자꾸 사장님이랑 화해하라고 자꾸 그렇게만 얘기했어요...(중략).... 한 번은 사장님이 일하는 시간이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던 걸 6시부터 7시까지 하라고 노동 시간을 바꿨어요. 사장님 말은 겨울에는 일이 적어서 아침 9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니까 그때일 안 하는 시간만큼 지금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그대로 일했어요. 10월 중순쯤 되니까 시골이니까 어둡고 추워요. 그때는 그럼 사장님 말대로 9시 시작해서 5시에 끝나야 하는데 그때도 6시에서 7시까지 똑같이 일했어요..”

스레이나 씨처럼 농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63조의 예외규정에 의해 추가 근로수당이나 휴일 보장을 받지 못한다. 수많은 농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은 한 달에 겨우 하루나 이틀을 쉬고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게다가 어떤 사업주들은 초과근로 수당은 고사하고 초과근로 시간에 대한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은채 60시간을 일하건 70시간을 일하건 주 40시간 기준의 최저임금만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런 척박한 한국의 노동 환경 속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는 순응하고 무릎 꿇지만은 않았다.

“처음에 농장에서 무작정 나온 뒤부터 크메르노동권협회를 알게 돼서 관계를 맺고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들은 협회 일이에요...(중략)...선생님은 한국 사람이고 나는 캄보디아 사람이에요. 한국 선생님 있지만, 캄보디아 사람인 내가 있으면 캄보디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더 잘 할 수 있어요,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증거 자료를 모으고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설명해 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E-9² 비자가 만료된 뒤 한국어를 공부하는 D-4³ 비자로 한국에 다시 들어온 스레이나 씨는 여전히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한국어를 배우며 크메르노동권협회를 대표하여 노동자들을 돕고 한국의 잘못된 고용허가제와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여성 이주노동자’로만 규정할 수 없다. 매 순간 땀 흘려 일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 평범함이 그래서 더욱 특별할지도 모른다.


* 각주

1) 캄보디아 말로 힘내라, 파이팅이라는 뜻이다.

2) 비전문취업비자, 고용허가제

3) 일반연수비자

특집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 2018.01

‘담을 허물다’를 시작하며

사월 <담> 프로젝트,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제7의 인간: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여전히 죽음으로 호명되며

2016년 겨울을 환히 밝혀주었던 빛은 크고 작은 변화들로 일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정의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던 촛불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열망하는 촛불로 이어졌습니다. 변화가 시작되었던 그곳, 광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날의 목소리는 변화를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변화의 길목에서 함께 불을 밝혔지만 이름이 아니라 죽음으로, 숫자로 불립니다. 올해도 몇 번을 새하얀 국화꽃을 놓으며 머리를 숙여야 했습니다. 산업재해나 사고, 강제추방과 단속, 신변 위협으로 인한 자살, 젠더폭력 등으로 많은 이주민이 망했습니다.

집이 된 비닐하우스, 빗물이 새서 전기가 흐르는 벽, 잠기지 않는 방, 휴식시간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생산량을 위해 제거되는 안전장치는 이주민에게 닥친 한국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가난한 나라에서 왔지?” “이상한 냄새 나.”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답답하게 굴어” “힘든 일 하러 온 건데. 뭐 어때”… 쌓인 담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더 늦출 수 없을 만큼 울부짖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차별의 시선을 혐오의 언어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가해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울부짖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그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안부를 묻고 삶에 말을 건네려 합니다. 그 사람들도 나도 사람이기에. 이보다 더 마땅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그저 우리는 같은 사람이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담’아, 높게 쌓인 ‘담’을 무너뜨리고

어느새 높다랗게 쌓인 회색빛 ‘담’은 목을 뒤로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가 나눈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그 사람들에게 붙인 부정적인 이름들을 떼어내려 합니다. 가난하고, 냄새나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떼어내고 개개인의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고 합니다.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삶에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네어,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합니다. 오가는 이야기는 오롯이 기록되어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을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록된 이야기는 꺼칠꺼칠하고 차가운 담을 흔들 것입니다. 사회가 붙여놓았던 이름들은 오롯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삶으로 불릴 것입니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으로 불리고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이야기될 때, 더욱 평등해지지 않을까요?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본다면 누군가를 담 너머로 밀어내지 않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벽을 쌓지 않을 테니까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며

경기이주공대위는 변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주민구술생애사 프로젝트<담>은 이러한 고민 끝에 꾸려진 기획단입니다. <담> 기획단은 이주민들이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기억되고, 혐오와 차별로 뭉뚱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담> 기획단은 여성 이주노동자 스레이나 씨, 북한이탈주민 김복주 씨, 이주노동자 오쟈 씨, 이주청소년 황윤호 씨, 이주노동자 영상활동가 아웅틴툰 씨, 종교적 난민신청자 ‘A’ 씨, 귀국 이주노동자 날라끄 씨 7명의 이주민을 만나서 삶에 말을 건넸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해오는 삶의 이야기를 빼거나 보태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삶의 목소리가 사회에 가닿아 지기를 바랍니다. 이주민의 목소리가, 목소리를 통해 울리는 마음들이 모여 높게 쌓인 담에 균열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균열이 일어날 ‘그 날’이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상상하며 한 걸음씩 내딛겠습니다.

한걸음에 다가감이, 다음 한 걸음에는 소통이, 그다음 한 걸음에는 울림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그 사람들의 삶이 오롯이 이야기되는 그 날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언론보도] 이주민 구술 생애사 ‘담’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미디어스)

이주민 구술 생애사 ‘담’ 프로젝트를 아시나요?[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을 허물다> 발간기념 토크콘서트
한국에는 다양한 체류 자격을 가진 이주민들이 대략 2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광주시를 제외한 전라남도의 인구가 179만 명임을 감안할 때, 정말 많은 숫자의 이주민들이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가 이주민 혹은 이주노동자를 떠올렸을 때의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소중한 책 한 권이 있다.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 프로젝트 <담을 허물다>가 바로 그 책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749

[언론보도] [‘이주민 생애사’ 연재④]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이야기…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네팔인 오쟈씨가 “박근혜 퇴진”을 외친 이유

[‘이주민 생애사’ 연재④]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오쟈 이야기…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푸우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1월 07일 일요일


“한국에 이주노조 활동하러 오신 분 같다니까요.” 오쟈 씨에 대해 이주노조 사무차장인 한국인 활동가는 그렇게 말했다. 최근 이주노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라고.

오쟈 씨와 인터뷰를 하기 전 여러 곳에서 그와 마주쳤다. 일요일, 이주노조 관련 활동을 하는 자리였다. 그는 매번 그 자리에 있었다. 낯선 이들에게 선뜻 건네기 쉽지 않은 유인물과 플랜카드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많은 인파속에 그가 서 있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0652#csidx4c54a3304421fc7a4a05f7a5f0e8522

[성명서]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성명서]



허울 좋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20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을 비판한다. 이주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지난 12월 22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제25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 「고용허가제 불법체류∙취업 방지방안」, 「농업분야 외국인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방안」등이 확정되었다. 2018년 외국인력 도입 운용계획은 17년도와 동일한 5만 6천명으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고용허가제 불법체류∙취업 방지 방안에서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왜 미등록체류가 되는지에 대한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오로지 단속인력을 대폭 강화하는 등 살인적인 단속 일변도로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관계부처간 미등록체류자 정보 등을 공유하고 합동 단속 기간도 기존 20주에서 22주로, 단속인원도 34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한 지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악으로 인해 최대 9년 8개월로 체류기간이 제한된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 체류기간 만료 즉시 전수관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등록체류율이 높은 송출국가에 대해서 국가별 외국인 도입규모 결정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6월 경기도 수원에서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 의한 이주노동자 집단 폭행사건, 7월 4일 경주공단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울산출입국 단속반의 토끼몰이씩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6m아래 펜스로 추락한 사건 등 올 한해에도 출입국의 집중단속으로 인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살인적인 강제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오로지 단속만이 능사라며 더욱 단속인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등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이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사업주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는 고용허가제도와 자의적 출입국 규제가 끊임없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집중단속이 심해질수록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음지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체류자격을 회복할수 있는 방안과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만 장기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건설업 불법고용 하도급자”와 “원도급자”에게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 등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사업주에 대한 불이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고용주들이 위험부담을 이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구실만 할 뿐이다. 결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아니라 건설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을 근절해야 한다.


한편 최근 국회토론회도 열리고 2017년 가장 뜨거운 이주노동자 이슈 중에 하나였던 농업분야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방안들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에는 신규외국인력 배정이 중단되고 자율개선기간 내 숙소를 개선하지 않는 경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도 허용된다고 한다. 또한 올해 2월에 시행된 이주노동자 숙식비 지침보다 과도하게 공제를 하거나 자국어로 된 서면동의서 없이 숙식비를 사전 공제하는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주노동운동진영에서 몇 년 동안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일부 개선된 내용이 방안에 포함되었지만 문제는 정부방안대로라면 비닐하우스만 기숙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외에도 컨테이너와 같은 임시거주시설에 숙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얼마 전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공장의 컨테이너 기숙사 화재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보여주듯, 열악한 주거시설 문제는 농업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을 포함한 이주노동운동진영이 올초부터 꾸준히 이주노동자 숙식비 강제징수지침에 대해서도 폐기할 것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전혀 폐지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혀왔다.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는 지침 기준은 전혀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들의 부담을 정부가 합법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꼴에 불과하다. 이주노동자의 자국어로 작성되는 서면동의서 역시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놓인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의 서면동의서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올 한해에만 적지 않은 숫자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돼지농장에서 똥을 치우다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한 네팔노동자 故 테즈 바하두르 구룽씨,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건강악화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노동자 故 께서브 스레스터씨, 가족의 병원비를 보내기 위해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를 했던 필리핀 노동자 故 다요 크리스티앙 구인또씨, 한국인 남성동료로부터 성폭행을 피해 저항하던 과정에서 살해된 태국노동자 故 추티마씨 등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적 탄압,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 노동, 사업장변경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도 등이 이주노동자들을 계속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스스로 촛불정부라고 자임하면서 당선된 문재인정부에서 이주노동자의 처우는 개선될 것인가? 얼마전 발표된 제3차외국인정책기본계획 초안과 몇가지 지침개정을 살펴보더라도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정책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있는 정책들 역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근본적인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은 현재로서 전망이 매우 어둡다. 


이주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허울 좋은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2018년도 외국인력 도입∙운용계획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개선대책을 즉각 마련하라!


2017년 12월 28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아시아의창,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기자회견]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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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1일 또 한명의 미등록 여성 이주노동자가 직장 동료인 한국인 남성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추티마씨는 한국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서 10년 동안 일한 여성이주노동자였다. 사건 당일 직장동료인 가해자 김씨는 추티마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점을 알고 단속이 있으니 따라오라며 경북 양양군의 야산까지 끌고가서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한 것으로 경찰에 최초진술을 하였다.

 

이 안타까운 죽음이 태국 현지 언론에 알려지고 추티마씨의 아버지가 유가족대표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이렇게 범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경우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따라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담당자에 따르면 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 지원 사례가 없어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태국어 통역을 도와줬던 한 활동가에 따르면 평상시에도 추티마씨가 아버님에게 아빠, 여기 한국인 남자가 자꾸 치근덕거려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작업장 내에서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일상적인 성희롱, 성폭력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제지가 되지 않았고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데 어떠한 공권력도 개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추티마씨의 사업장을 포함하여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속한 사업장 내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을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실이 있을 경우에 관련 기관에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접근성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지 등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발단에서 알 수 있듯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단속추방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매년 단속과정에서 수십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앞으로 5년내에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절반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단속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악순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고, 강제단속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방지하려면 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줄이려면 반인권적 강제단속이 아니라, 미등록을 만들어내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고,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만 있어서 언제든지 체류비자를 잃을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법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당하는 차별과 착취를 없애는 것, 노동권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미등록이 발생하는 원인을 줄이는 길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체류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방안을 마련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개선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또한 추티마씨와 같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사실이 생겼을 때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바로 관련기간에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법개정 역시 필요하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범죄피해사실이 있을 때 해당 공무원이 출입국에 통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현행 통보의무 면제조항은 현지 경찰들이나 공무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단순한 분실신고만으로도 출입국에 인계되어 추방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통보의무조항을 폐지하고 통보금지조항으로 개정하여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범죄피해 대상이 되지 않고 발 빠르게 권리구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다양한 체류형태의 모든 이주여성을 포괄하는 이주여성폭력피해지원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범죄피해 이주민의 체류를 보장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미등록이주민을 합법화하라!

 

하나. 공무원의 통보의무를 폐지하고 통보금지조항으로 확대 실시하라!

 

20171123

 

살해당한 태국이주여성노동자 추모와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민인권보장촉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경기이주공대위(노동당 수원오산화성당원협의회, 노동자연대 경기지회, 녹색당 경기도당, 다산인권센터,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사회변혁노동자당 경기도당,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이주노조, 지구인의 정류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화성이주노동자쉼터),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경기이주공대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노동자연대, 녹색당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인권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아시아의창,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정의당,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이주인권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주민센터친구, 공익법센터 어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지구촌사랑나눔,()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남양주샬롬의집,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의정부EXODUS,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파주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이주인권연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파주EXODUS, 한국여성민우회,고양인권연대 (이상 연명순)


기자회견자료_살해당한태국이주여성_171121 (2).hwp


[노동시간 에세이]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2017.10·11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선영 박사, 과로자살 연구팀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7년 여름, 네팔 출신 미디어 활동가의 페이스북에는 며칠 간격으로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경산의 한 재활용 처리 업체에서, 충주에서, 화성에서, 그리고 저 멀리 제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 소식이었다. 같은 국가 출신 이주자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에 네팔 공동체는 술렁거렸고, 대사관은 노동자들을 위한 요가와 명상 수업, 현장 순회교육을 기획하며 급하게 자살 방지 대책을 모색했다.

이주민지원단체는 자살한 노동자들의 사연과 유서 공개를 통해 고용허가제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성토했다. 하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도 잠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자살’은, 그것도 대통령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살은 쉽게 잊혀졌다.


계속 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라는 저서에서 자살은 더 이상 정신병리학의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결정적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자살 또한 한국사회 이주노동제도의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했던 현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과시킨 후, 11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시작하자, 단속추방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고, 연이어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참고: 오마이뉴스 “더이상 죽이지마! 강제 추방은 인간사냥”)

이들은 한국으로의 이주를 위해 본국에서 빌린 돈을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강제 추방의 위협에 놓이자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을 딛고 시행된 고용허가제, 이 새로운 제도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출신 노동자가 “집에 가고 싶은데,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는다. 오직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참고: 한겨레 “지하철 자살 중국노동자 “체불조사” 보름 넘게 미적), 이후에도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네팔 출신 연수생 등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졌다.(참고: 오마이뉴스 “고용허가제 1년…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죽어간다”)

특히 네팔 노동자들의 경우 양국 정부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한 2007년 이후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고용허가제 시행 14년째인 올해 8월에 자살한 한 네팔 노동자는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다.(참고: 오마이뉴스 “이주노동자 자살 급증, 무엇이 문제인가?”)


쓰고 버려지는 노동자들

유서를 남긴 이 네팔 노동자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라고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Disposable women and other myths of global capitalism」(「쓰고 버려지는 여성들,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다른 이야기들」)에서 멜리샤 롸이트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일회용 노동자로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는 이들의 죽음의 원인과 일상에서 보여지는 여러 삶의 측면을 통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유서에서 보이듯이, 이 네팔 노동자는 불면증의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노동 조건과 함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한국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4년 10개월 동안 쓰이고, 고용허가제가 정한 그 기간이 끝나면 출국해야 하는 ‘일회용 노동자’로서, 그가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상당 부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중국의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 어쩌면 우리 같은 폭스콘 집원에게는 […]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겐 절망뿐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참고: 엔드루 로스 「엑소시스트와 기계」)라고 이야기 했듯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절망적 현실을 알리려 했던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간단한 조사와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대사관과 협의 하여 빠르게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본국에 있는 가족들도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문제를 제기할 여력도 기회도 없이, 그렇게 자살 사건은 마무리된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단기 노동력으로 들어온 이들이 죽음을 통해 노동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들의 육체는 빠르고도 신속하게 폐기처분 되어지는 것이다. 그 사이, 인천공항에는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고, 바로 얼마 전 이들이 목을 매고 숨을 거둔 그 공장은 새로운 노동력을 투입해 주야간으로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지난 6월 한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한 공장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그 공장에서 이주노동자 자살은 2011년과 2017년 두 번이나 있었다. 공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자살한 이주노동자의 친구들은 그 사건 이후한동안 공포와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자살한 친구처럼 몇몇 동료들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과 극복방안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이야기 했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우울증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사업주가 지정해준 기숙사나 숙소에서 생활을 하는데, 공장과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경우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특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제한된 상황에서 주어진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니,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사업장 내에서의 관계, 작업 능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프랑코 베라르디가 “착취, 경쟁, 불안정성 등이 갈등적 사회관계의 효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자아의 결함이자 개인의 하자로 내면화된다”고 얘기한 것처럼,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조건으로 인한 문제들이 개인화될 때 우울증은 더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때로는 친척들 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에서의 불안정성은 이중의 고통을 야기시킨다. 즉, 한국의 노동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가족들의 경제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맞물려 이중, 삼중의 고통이 되고,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아의 결함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결국은 현실의 탈출구로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박한 바램

동료의 자살을 두 번이나 경험한 이주노동자들의 결정은 돈을 모아 운동기구를 사서 함께 운동을 하고,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생긴 동료들이 있으면 같이 병원에 가고 보살펴주는 것이었다. 작업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로움도 함께 극복하고, 서로 도와주면 괜찮을 수 있다는, 이들의 바람은 참 소박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미 자살의 물결은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노동자로 만들어, 집단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고용허가제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국제노동이주가 한국에서 시작된 시점, 즉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유연하게 이용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도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죽지 않고 노동하고 싶은, 바로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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