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문제는 노동이야 /2016.5

문제는 노동이야
- 경제민주화와 최저임금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수유너머N

 

 

여소야대 총선이후, 첫 번째 선물이 도착하다

 

‘새누리당 참패’로 귀결된 총선 직후 야권에서는 총선 내내 제기해온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꺼내 들었다. 정확히 야권이 아니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그랬다. 그는 총선 내내 ‘문제는 경제’라며 배신의 경제를 이번 총선에서 심판할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선거 후 그는 ‘불쑥’ 구조조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중심으로 제기된 ‘선제적 구조조정’은 본격적 구조조정에 앞서 실업대책 등 사회안전망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IMF 위기 이후 진행되어왔던 구조조정과는 다른 구조조정을 제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은수미 전 의원은 ‘어제는 경제민주화, 오늘은 구조조정’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총선 시기의 ‘배신의 경제’ 심판론과 총선 후의 구조조정의 중심에는 더불어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있다. 그에게 구조조정과 경제민주화는 총선 민심에 대한 배신인가, 아니면 김종인표 경제의 동전의 양면인가?

다른 한편, 총선 전으로 돌아가 지난 4월 6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2017년 최저임금 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매년 이뤄진 ‘노동계’만의 최저임금투쟁은 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슈가 되면서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총선 공약이 쏟아져 나왔다. 세부안은 다르지만 모든 정당이 9천 원~1만 원 가량의 인상안을 제시했고, 정의당과 더민주당 등은 노동계와 함께 기존에 주장해왔던 최저임금 1만원 안을 제시했다.

 

* 지난 5월1일 노동절, 알바데이 집회에서 맥도날드 알바 노동자가 봉투를 쓴 채 발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늘리는 파견법 등의 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그에 대한 대책으로 파견법이 포함된 ‘노동개혁 4법’의 국회 처리를 또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최저임금과 ‘노동개혁 4법’, 더불어민주당의 구조조정과 박근혜 대통령의 구조조정이 총선 이후 국민들에게 각기 다른 포장을 하고 국민들 앞에 도착했다. 어느 선물 포장지를 풀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가장 허망한 것은 어느 포장지를 풀어도 모두 같은 내용물이 나오게 되는 경우이다.

 

지금 어떠한 경제민주화인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행 헌법 119조 2항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말을 넣었다고 해서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로 대접받는 인물이다. 법제정 이전에 법을 가능케 했던 것은 87년 민주항쟁이었다.당시 민주화 운동의 바람은 경제 영역에서도 시장 혹은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의 요구로 나아갔다.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경제민주화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반면 민족경제론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국가권력의 민중화였고, 정경유착과 매판적 독점자본의 거부는 사회주의를 전망한 것이었다. 법제정 이전에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의미화가 서로 각축을 벌였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대중적인 의미화의 과정 자체가 헌법 119조 2항의 표면을 구성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87년 이후 민주화 10년은 IMF 협약으로 매듭지어졌고, 그 뒤 10년은 사회 양극화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민중들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불안정노동자가 되었거나, 대출을 끼고서라도 집을 사야 안심이 되는 불안정소유자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경제민주화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재벌개혁이 중심이 되었던 경제민주화의 방향은 자본에 대한 규제와 노동의 권리 실현이라기 보다는 시장의 효율성 제고에 있었다. 시장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독점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제한했고, 시장의 효율성을 가로막는 노동이 유연화되었으며, 강경한 노동조합이 후진적이라는 이름으로 철퇴 되었다.


자본에 대한 규제의 효과가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돌아가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신한국,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몫을 체계적으로 강탈해갔다. 배신의 경제에 대한 심판은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87년 당시 경제민주화의 요구를 가장 약한 수준으로 관철시킨 김종인에게도 해당된다. 김종인 대표가 2012년 출판한 제목이기도 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는 다시 물어져야 한다. 지금 어떠한 경제민주화인가?

그런 의미에서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구조조정은 선거 이전과 이후의 말 바꿈의 처세가 아니다. 그에게는 87년 이후 일관된 하나의 이념에 대한 두 표현이다. 지난 4월 25일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김종인 대표는 그동안 지녀온 경제민주화 이념과 현실의 구조조정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피력했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룰을 만들자는 게 핵심” 이라며 “재벌개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가는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인해 시장의 질서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시장의 룰이 잘 지켜지도록 관리하는 ‘정원사’의 역할을 가질 뿐이라는 주장은 정확하게 신자유주의의 이념이다. 김종인 대표가 젊은 시절, 독일로 건너가 배워온 것은 신자유주의의 조상 격인 독일 질서자유주의의 이념이었다.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어려운 중소기업 보호라는 온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이다. 시장의 경쟁의 룰을 다시 짜는 것, 곧 구조조정의 다름 아니다.

 

“문제는 노동이야”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정한 룰’의 의미

 

시장의 공정한 룰을 다시 구성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87년 이래 체계적으로 배제된 노동의 몫이다. 경제적인 몫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몫을 둘러싼 싸움, 그것은 권리를 둘러싼 정치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싸움은 이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다. 9천 원이냐 1만 원이냐 흥정의 문제가 아니고, 2020년까지냐 2019년까지냐 조정할 문제가 아니다. 김종인 대표를 비롯해 정치권에서 이야기하는 구조조정이 또다시 노동자들의 정치적 배제와 경제적 희생으로 점철되는 것인지, 아니면 공정한 룰을 재구성하기 위한 노동의 권리가 이제야말로 경제민주화의 전면에 등장할 것인지는 지금,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에 상응하는 법으로 미국에는 공정근로기준법이 있다. 미국 사회는 ‘공정함’이 어떤 의미인지 오랜 시간 사회적 논쟁을 벌여왔으며, 그 의미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공정함의 의미가 생활임금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자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교섭력의 대등성으로 정의되기도 하였다. 그중 “공정성은 공정경쟁”이라는 의미가 있다. 노동과 자본 간의 공정한 계약이 이뤄지려면 자본 간의 공정한 경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즉 자본 간의 경쟁 격화와 불공정한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장시간 저임금으로 귀결될 뿐만 아니라 대자본의 횡포는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해 경제성장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이다. 더불어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유지의 비용은 자본이 사회적으로 전가시킨 것-노동손실의 사회화!-이므로 이에 대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종인 대표와 더민주당, 국민의 당은 구조조정의 선결 전제로 실업수당 등, 사회안전망의 보완을 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자본의 손실을 국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복지정책의 전면적인 확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주사위를 던져도 이길 수밖에 없는 자본불패의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다. 때문에 공정한 시장의 룰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구조조정에서 자본의 경영과 주주들의 부당한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하고 법적 처벌을 하는 것이 먼저 전제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정치적 목소리를 배제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그동안의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김종인표 구조조정에 여전히 노동의 자리는 없다. 배신의 경제는 다시 각색되어 재상영할 준비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동의 권리로 재구성되는 경제민주화는 총선 이후 지금의 문제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고용보장을 둘러싼 노동의 정치는 구조조정 시기에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세적 구조조정을 선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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