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산업안전보건법 A~Z 모음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지키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제대로 알기!

<산업안전보건법 A~Z> 카드뉴스 목록 


1. 산업안전보건법의 역사와 현황

http://omn.kr/rp3k


2. 산업안전보건법 개요 및 권리 주체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

http://omn.kr/rqfy


3.[알권리] 법령요지 게시, 안전보건표지, 노동안전보건교육

http://omn.kr/rs0g


4. [알권리] 작업환경측정과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http://omn.kr/rvt6


5. [알권리] 건강검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ss_pg.aspx?CNTN_CD=A0002452805&PAGE_CD=&CMPT_CD=


6. [거부할 권리] 작업중지

http://omn.kr/rzre


7. [참여할 권리]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http://omn.kr/s2eu


8. [참여할 권리] 근골격계 부담작업 유해요인조사

http://omn.kr/s4fr


9. [참여할 권리] 위험성평가

http://omn.kr/s6kd


10. 산업안전보건법 패러다임의 전환

http://omn.kr/s8sr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 2018.06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정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전공의 3년차가 되어 처음으로 출장 검진을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그 날 방문한 곳은 경북 고령에 위치한 사업장으로 불과 8명의 노동자들이 공업용 줄을 만드는 영세한 곳이었다그 곳에서 줄의 표면을 가공하기 위해 탁상 그라인더를 3년 째 다루고 있는 한 50대 노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라인더와 같이 진동이 발생하는 공구를 쥐고 장기간 사용할 경우에는 손에 있는 말초혈관과 말초신경 등에 손상이 생기는 수완진동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그래서 근로자 특수건강진단에서는 착암기연마기굴착기 등 진동공구를 취급하는 작업자들이 진동과 관련된 문진 및 진찰을 받도록 되어 있다. 

손가락이 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증상은 없으세요?

"얼마 전부터 양쪽 손이 다 좀 저리고요특히 두 번째 손가락은 좀 얼얼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세요혹시 겨울철이나 추울 때 손가락 색깔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으세요?

"맞아요어떻게 아셨습니까추울 때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본 적 있습니다." 

진동공구를 다루는 직업력저리거나 감각이 떨어지는 신경 증상그리고 혈액순환 저하로 인해 추운 환경에서 악화되는 손가락 창백 현상까지수완진동 증후군의 전형적인 소견이었다손톱 압박 검사에서도 혈색이 금방 돌아오지는 않는 듯 보였다이러한 증상이 그라인더 사용에 의한 직업병일 수도 있다는 설명과다른 원인의 배제 및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후 병원 방문 및 추가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안내를 드렸다. 

이후 몇 명의 검진을 더 진행한 뒤 다른 어떤 직원이 씩씩거리며 내 앞에 앉았다자신은 이곳의 관리자인데 조금 전 그라인더 작업자와의 대화를 들었다며 갑자기 직업병이 대체 무슨 말이냐고 다짜고짜 따졌다. 

"그 사람보다 그라인더 작업을 오래한 사람들도 다 멀쩡한데 그게 무슨 직업병이요그리고 그런 걸 다 직업병이라고 하면 대체 그 작업을 할사람은 누가 있단 말이요?" 

예상치 못한 항의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나는 그 사람이 직업병이라는 게 아니라 직업병의 가능성이 있으니 설명만 드린 것이고 정확한 진단은 추가 검사를 해보아야 알 수 있다는 식으로 답을 했다. 

더 큰 사건은 출장검진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온 이후 발생하였다그 관리자로부터 병원에 직접 전화가 와서 아까 그 직업병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은 바로 해고시켜 버릴 거라며 아까 그 의사 전화 바꿔보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나는 허락도 없이 개인 검진 내용을 엿들은 것도 모자라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그렇게 협박조로 나오는 그 관리자에게 언짢은 감정이 들었다나는 우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2차 검사는 시행해 보려고 했다하지만 2차 검사 비용은 사업주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 사업주가 그 비용을 낼 수 없다고 버텨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년 검진을 해오던 사업장에서 강한 불만이 나오니 병원 직원들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나에게는 무엇보다 직업병 판정이 나면 그 사람을 해고시켜 버릴 거라는 그 관리자의 엄포가 가장 무겁게 다가왔다노동자 본인에 있어서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은 자신의 손가락 색깔이 창백하게 변해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해'일 수 있었다관리자의 협박은 무섭지 않았지만 나의 결정이 그 분의 삶에 도움은커녕 도리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에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결국 2차 검사는 시행되지 못하였고 '보호구 착용 철저추적관리'라는 다소 무책임한 조치명이 새겨진 결과지를 발송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고 나서 나는 아내에게 그날 겪었던 일과 고민에 대해 털어놓았다직업병의 조기 발견을 위해 시행하는 검진이지만 직업병을 발굴해 내는 과정에서 때로는 회사병원심지어 노동자까지 그 어느 누구도 그 과정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를 겪고 난 이후의 혼란스러움과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즈음부터 나는 의학 서적 내용만 읽어 내려가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우리나라의 안전보건 및 산재보상 제도노동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 등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그러한 모순에 빠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며 그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도록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 조건이 필요할까나의 생각에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노동자들의 적극적 참여'의 두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야 하며 바퀴가 도중에 멈추지 않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개별실적요율제검진기관이 사업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계약방식 등 현재의 제도에 대해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노동자의 건강보호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을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또한 고용에 있어 건강상의 이유로 부당하게 가해지는 불이익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 아래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목소리를 낸다면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도 안심하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필요 시 행정절차를 밟는 것이 '불만이 많고 별난일부의 행동이 아니라 노동자라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고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당연한대응 방식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된다면 노동자들도 비로소 주변의 시선을 불편해 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권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그 사업주도 더 이상 "직업병 받으면 해고시켜 버리겠다와 같이 법과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발언을 그토록 당당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그러한 사회로 한 발짝 더 내딛는 만큼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노동자 건강을 위해 더 신명 나게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다한편으로는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수동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노동자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리라 다짐해본다.

특집2.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2018.06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아이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예방에 앞서 드러나지 않은 직업병을 찾아야 

일하다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들며 죽는 현실은 노동존중의 실상을 보여준다. 인권 유린 생명경시 그 자체다. 노동자의 몸, 마음, 삶보다는 이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 특히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아 왔다. 자본은 법 뒤에 숨거나 법 자체를 우롱해왔다. 법에 걸리더라도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금속 및 중금속 중독, 유기화합물 중독, 기타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중 질병사망자 현황 (안전보건공단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자료중 인용)


 2017년 정부 통계상 사고 사망자 수는 964명이고, 질병 사망자 수는 993명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고사망자 수를 질병사망자 수의 14%로 추정한다. 대략 5890명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재래형 사고로 인한 재해가 만연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한 업무상 재해 즉 직업병에 대한 인식과 대응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직업성 암을 비롯한 희귀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직업성 사망 재해가 심각하게 은폐되고 있는 현실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직업성 질환 재해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병 예방을 위한 과제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인식, 제도, 체계, 행동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노동자들이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의 삶까지 망가졌다. 참혹한 인권유린과 생명경시의 현실이 지속되어 온 이유는 명백하다. 제대로 바꾸지 않고 생색내기식의 대응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서 경제력 강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는 헛소리가 여전하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고, 재해율과 사고율을 낮추겠노라는 말뿐이다.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는데 말이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는 거짓이다. 경제와 산업의 필요에 종속된 접근으로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막거나 줄일 수 없다.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 각자에게도 스스로의 몸과 삶을 보다 건강하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턱없이 부족한 보호 예방을 위한 예산과 인력의 문제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직업병을 일으키는 유해위험요인을 실질적으로 없애고 개선할 힘을 갖출 수 있다.

 정부의 책임을 노사자율에 떠넘기는 짓은 당장 멈추고 재해 발생 후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이 아니라 보호와 예방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에 기획재정부와 같은 위상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실효성조차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안전보건 관련 사적 시스템을 공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첫걸음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만들고 지키는 것을 통해 직업병은 물론이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호 예방의 의무를 정부와 사업주들이 다하는 것이다. 특히 유해위험요인이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떠넘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도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해야 할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이를 위해 필요한 쾌적한 작업환경에 대한 요구를 분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지속해서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태를 파악·평가하여 관리·개선하는 권리 주체로 경험과 행동을 쌓아나가는 것에 애써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관행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검진, 측정, 점검, 근골조사, 위험성평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일상적인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해당 사업장에 납품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처한 유해위험요인을 들여다보고 개선할 힘을 보태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다. 단위 사업장의 벽을 넘어 지역과 업종차원의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해보면 좋겠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최우선시하고 제대로 지킬 경험과 힘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읽어보고, 자신과 현장의 노동을 제대로 보고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과제는 인식, 제도, 체계, 실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싶다. 그 과정에서 대행적인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 걸고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을 주체들을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실천하며 힘을 키우는 것. 노동자들과 노동안전보건 활동 관련 주체들이 그 중심에 있다. 현실로 만들기 위한 꿈을 꾼다.

 

2015년의 경우, 암으로 사망한 76855명중 5% 내외가 직업성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하면 직업성 암 환자의 예상 수는 3500명에 이르지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35명뿐이었다. 

뇌심질환으로 인한 사망역시 업무관련성 여부를 제대로 따지기 보다는 개인질환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현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 2018.05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 시내의 지하철 건설 현장으로 출장 검진을 나간 날이었다. 새벽부터 때 묻은 작업복에 안전화 차림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한창 정선에서 채광이 한창이던 때 갱도로 내려가려는 광부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1970년대 광부들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던 것도 잠시, 이내 정신없는 문진이 시작되었다. 문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볼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매년 똑같은 폐기능 검사, 청력 검사를 뭐하러 하느냐." 
"검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는 그런 검사들을 병원이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더 써주던가, 환풍기를 좋은 걸로 바꿔주던가, 소음이나 좀 줄일 수 있게 개선해 달라."

실제로 지하철 건설 현장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예를 들면, 지하철 건설 현장 위의 도로를 뒤덮은 철판 소음 같은 것이 있다. 밖에서는 그 위를 차로 지나면서 잠깐 소음을 접하지만 지하의 건설 현장은 그 소음을 직접, 그것도 작업 시간 내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 특성상 산재 사고의 위험이 크고 작업자들 간 의사소통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귀마개에 귀덮개 까지 할 정도로 차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다른 건설 현장에 비해 소음성 난청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그 정도도 심각했다.

아무리 청력 검사를 하고 수십 명의 소음성 난청자가 나와도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위험해서, 작업의 특성상 귀마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대로 청력 손상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럴 경우 매우 큰 소리는 줄여주고 주변의 작은 소리는 반대로 적정 수준으로 증폭시켜주는 귀덮개를 적절히 사용하면 청력 손상을 다소 완화 할 수 있다. 실제로 공항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공군에서도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만 개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하철 건설 현장에는 매년 반복되는 청력 검사보다 위와 같은 보호구가 더욱더 절실하다. 이러한 보호구로도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시설 개선도 필요할 수 있다. 즉, 검사를 통한 진단보다 문제 되는 질환에 대한 치료가 시급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감기 환자가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항생제 치료 없이 감기약만 주는 것과 같다. 좀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폐렴이 악화되는 것을 매년 강제적인 엑스레이 촬영으로 확인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는 전혀 하지 않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절한 치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폐렴을 다시 예로 들면,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여러 종류 세균 중에 정확한 원인균이 세균 배양 검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정황상 예상되는 세균에 대해 효과가 좋을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항생제'를 통해 치료를 먼저 시작한다. 더 큰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치료가 정확한 진단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건강진단,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위험성 평가, 직무스트레스 및 뇌심 발병 위험도 평가 등 노동자들은 수많은 '진단' 과정을 매번 겪고 있고 이를 통해 발견된 노동 환경 문제들에 대한 개선 '처방'까지 그 안에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을 바꾸는 '치료'는 얼마나 되고 있는가. '치료'에 해당되는 시설 및 보호구 개선, 인력 충원 등에 '진단'에 사용되는 비용만큼이라도 사용되고 있는가. '진단'으로 행해지는 항목을 일부 조정해서라도 '치료'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실제로 특수건강진단으로 청력검사를 재검까지 모두 시행하는 경우 비용은 6만 원 정도. 반면 귀덮개 정가는 18만 원 정도다).

핸드폰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대, 청소 로봇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그만큼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도 크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진단'과 '처방'에 사용될 비용이 있을 뿐 발전된 기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쓰일 비용은 필요 없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건강진단을 위해 길게 줄지어선 노동자들 사이의 볼멘소리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진단'과 '치료' 상황에 대한 당연한 불만인 것이다.

특집3.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2018.05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웹디자이너 소리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성소수자 동료가 있을까. 이상한 질문 같지만 우리 사회, 일터의 성평등, 인권감수성을 돌아보게 하는데 중요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직장에서 진짜 자신을 꽁꽁 감춘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전보다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 노동과 성소수자, 그리고 건강 문제를 나눠보기 위해 마케팅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성소수자 노동자 소리 님을 지난 4월 24일에 만났다.

“지금 다니는 직장까지 총 4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지금 제가 28살인데, 20대 초반부터 일했죠. 그때부터 겪은 일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게 됐어요.”

웹디자이너 소리 님은 게이이면서 HIV/AIDS 감염인이다. 일하게 된 계기도 군 휴학을 하고 입대를 앞둔 찰나 에이즈 확진을 받게 됐고, 군대 면제가 됐다. 애니메이션 전공을 한 그는 당장 복학을 하기 어려웠고, 마침 아는 지인이 회사를 소개해줘 웹디자인과 연을 맺게 되었다. 현 직장은 1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SNS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인데, 소리 님은 콘텐츠 제작 업무로 기획이 완성되면 웹자보, 카드뉴스 등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웹디자이너의 하루는 어떨까?

“집이 멀어서 회사까지 1시간 반이 걸려요.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담배 한 대를 피우죠. 그래야 정신이 들어요. 앉아서 하루 스케줄 확인을 하는데 SNS콘텐츠를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잔업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고 만약 잔업이 있으면 오전에 잔업을 처리해요. 그 이후에 콘텐츠 작업을 하죠. 보통 SNS콘텐츠 작업을 끝내면 오후 4시 정도가 돼요. 추가업무로 블로그 체험단 운영 관리도 하는데, 이 일을 끝내면 딱 퇴근 시간이예요. 그런데 꼭 퇴근 시간에 대표가 일을 줘요. “이거 해야돼.” 이러면서 휙 던지죠. 그러면서 내일까지 해야한데요. 그런 일이 잦아요.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야근이에요. 얼마 안 하면 저녁 8시에 퇴근하는데, 아니면 밤 12시죠. 모아니면 도에요.”

야근 문제는 웹디자이너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첫 직장도, 지금 다니는 직장도 야근이 일상적이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 많게는 4일 야근이다. 개인에게 떨어지는 할당량이 항상 두 배로 떨어지고,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도 매번 많다. 소위 을입장의 회사이다 보니 의뢰인의 말대로 무리하게 작업을 한다. 결국 ‘과로’는 웹디자이너의 몫이다.

또 한 가지 소리 님을 힘들게 하는 건 체계적이지 않은 회사 운영 구조다. 

“문제는 회사의 체계적이지 않은 운영구조예요. 보통 회의를 통해 기획이 완성되고 디자이너에게 업무를 주는데 그런 게 없이 일이 막 떨어져요. 대표가 일을 막 던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직률도 높아요. 제가 들어오고 나서 이미 절반 이상이 나갔어요. 보통 마케팅 회사는 기획자가 많아야 하는데 이 회사는 1명이에요. 얼마나 문제인지 아시겠죠? 심지어 제가 입사하고 1개월도 채 안 됐을 때 명함 디자인 업무를 줬어요. 디자인을 새로 하자고 해서 12개 시안을 만들었죠. 수정도 네, 다섯 번을 했어요. 처음엔 대표가 만족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다음주에 저한테 와서 ‘이거 너무 쓰레기 같아서 못쓰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속상했죠.”

그래도 일의 보람은 본인이 했던 작업물이 많은 곳에 뿌려졌을 때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고, 새로 창작하는 디자이너에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쓰레기’라고 평가당했을 때의 참담함은 곧 자신의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로지 그 즐거움과 보람으로 회사생활을 버티는데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마저 무너지면 너무 힘든 일이 된다고 서글프게 말했다.

당연히 과로와 스트레스는 몸에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장염,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린다. 소리 님은 덤덤하게 ‘장기는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당연히 심각하다. 목, 허리, 손목,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아예 직종을 옮기지 않는 이상 똑같은 문제를 겪죠. 어디를 가도 똑같으니까요. 하다 정 힘들면 퇴사하고 다른데 들어가서 똑같이 스트레스받잖아요. 그렇다고 무급휴가를 회사에서 선뜻 내줄리도 없고요. 그러니 차라리 월급을 덜 받고, 덜 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예요.”

성소수자 노동자인 소리 님에게 직장 내 스트레스 문제는 더 복잡하고, 괴롭다. 단순히 스트레스 수준이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문제다. 그는 평균적인 틀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회사라고 했다. 처음 다녔던 곳도, 2개월 짧게 다녔던 회사도 3년 가까이 일하는 지금의 직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회사에서 제가 들은 말이요, ‘게이처럼 굴지마라’였어요. 제가 첫 직장 다닐 땐 마른 체격이었거든요. 그때 저한테 ‘너는 너무 말라서 밤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냐’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성차별적 발언에 쉽게 노출됐고, 심지어 성소수자인지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모든 회사에 꼭 한 명씩 있었죠.

지금 직장에선 무슨 얘기까지 들은 줄 아세요? ‘너는 성소수자이고, LGBT¹ 쪽인거 상관없는데, 제발게이인거 티 좀 내지마라’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한 사람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남성이에요. 사실 그 상황이 두렵기도 했죠. 아마 첫 직장이었으면 아무 얘기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엔 무서운 것도 잊을 정도로 화가 났죠. 그래서 ‘내가 게이이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지금 말한 거 불쾌하다. 그 말은 장애인한테 장애인 티 내지 말라고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만약 진짜 게이면 어쩔거냐, 말실수 했다고 생각하지 않냐.’라고 물으니깐 그러더라고요. ‘아직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다’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웃으면서 상황을 마무리하기 했는데,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그 상황이 무섭더라고요.”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직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곳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곳이다.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언행이 대부분 직장에서 벌어진다. 사실 혐오와 차별, 배제는 약한 사람에게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의 경험이 여성인 필자에게도 낯설지않다.

“어디를 가든 물어봐요. 여자친구 있냐, 결혼할 거냐, 결혼 생각 없냐. 계속 물어봐요. 여자친구 없고, 결혼할 생각 없다고 한번 말을 하면 안 해야 되는데 결혼이 얼마나 좋고, 여자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설교를 해요. 심지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혹시 남자 좋아하냐고 얘기하는데 정말 스트레스예요. ‘아니 왜 여자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생각부터 들죠. 저는 굳이 애인이 있는지를 회사에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저보고 매정하데요. 인정머리가 없다고요.”

최근 결남출이란 신조어가 있다. 면접을 보는 구직자에게 ‘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관해 묻는 면접관의 질문을 줄인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과정부터 직장생활까지 성차별을 당하는 대표적 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검열을 하듯, 세상이 정해놓은 평균을 강요하듯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들에게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소리 님에겐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질문이다.

“이거는 포괄적 문제죠. 여자면 무조건 남자친구가 있을 것이고, 남자면 여자친구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중심적이죠. 그리고 연애도, 결혼도 내가알아서 할 문제잖아요.”

소리 님은 커밍아웃²을 하지 않았다. 본인의 성정체성, 적적지향은 극히 개인적인 정보이고 사생활인데 그것을 굳이 회사에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최근 ‘게이 티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건을 겪은 후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최근 그 일을 겪고 나서 되게 무서워졌어요. 내가 게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게이 티를 내지 말았으면 좋겠단 얘기를 들으니깐 회사에서 커밍아웃 했을 때 엄청난 후폭풍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민은 드는데, 얘기해야지 편해지지 않을까 싶기도하고요. 그런데 후폭풍이 두렵죠.”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밝히는데 가장 큰 벽은 사람들의 차별, 혐오다. 문제는 그것이 일터 괴롭힘으로 작용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한 따돌림, 협박, 반복적 지적, 비난, 조롱, 물품훼손, 신체적 폭력, 성희롱, 성폭력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 전체 516명 중 41.7%(215명)에 달했다.



“성소수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또 달라요. 차별적인 단어를 들었을 때 밝힐 수도 없고, 오히려 숨겨야 하죠. ‘게이들 너무 더러운 것 같아,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혐오/차별적 말을 듣고 심지어 맞장구를 쳐야할때도 있어요. 자기를 숨기고, 부정까지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정말 심각하죠. 그래서 우울증도많아요.”

그렇다면 성소수자 차별, 혐오 문제에 대해 정부관계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을 순 없을까? 하지만 소리 님은 있는 법제도 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은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했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애 차별 금지를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등 자치규범이 있지만 최근 기독교, 보수집단 등에 의해 조례가 폐기 되거나 성적지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삭제되고 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이 후퇴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중단할 것을 한국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혐오, 차별, 폭력 없는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의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요구되는데 노동조합,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물었다. 

“차별/혐오로 인한 폭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요. 일터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 규제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폭력이죠. ‘너는 게이처럼 굴지마, 여자처럼 굴지마, 남자처럼 굴지마, 화장하고 다녀’라는 식의 표현은 문제가 있는거잖아요.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다보면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일터에서 풀어내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지 않을까요.”

소리 님은 성소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HIV/AIDS 감염인으로서 겪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에이즈는 ‘죽음의 병’,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뒤엉켜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왜곡된 것이다.

“채용 건강검진, 직장 건강검진에 혹시 HIV/AIDS항목이 있진 않을까 두려움이 커요. 회사에 알려지면 어쩌지, 알려서 내가 해고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많이 해요. 만약 입사 해도 계속 두려움에 떨어요. 감염인은 하루에 한번씩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낮에 복용할 땐 주변 눈치가 보여요. 몰래 숨어서 먹기도 하죠. 사람들이 ‘무슨 약이냐, 비타민이냐, 나도 달라’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약값 지원 문제도 심각해요. 대상은 늘고 있는데, 예산이 감소하고 있거든요. 약값을 선불로 내는 병원이 있어요. 그런데 예산이 부족해서 약값 환급금을 1년 뒤에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일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 게 치료제 예산이예요. 예산이 부족하면 약을 못먹는 사람이 발생하게 돼요. 그러면 감염인수는 증가할 테고, 감염인이 크게 고통받게 되죠. 그런데도 최대로 잘 하는 게 현상유지예요. 아니면 심지어 예산을 깎기도 하고요.”

감염인을 터부시하고, 감염의 책임을 개인의 부주의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감염 사실을 알리기는 더욱 쉽지 않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모임에서 발행한 「행성인 회원을 위한 HIV/AIDS 가이드북」엔 10가지 에티켓 항목이 있다. 항목 중 가장 첫번째가 지지와 공감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지지와 공감이 성소수자를, HIV/AIDS 감염인을 평등한 사회, 일터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저는 사람들이 오지랖 좀 그만 떨었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가득찬 오지랖이요. 오지랖을 필거면혐오와 차별 없이 상대방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 각주

1)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transgender)를 가르키는 말로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2)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일터> 통권 143호 / 2015.12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차례 -


[특집] 노동자 건강, 지옥문이 열린다

28 노동개악과 노동자 건강

30 일반해고의 도입과 고용불안 확대

32 비정규직 늘리는 힘, 노동자를 불건강하게 만드는 힘

34 산재법 개정에 대한 간단한 소고

36 내용없는 당근책으로 이용된 노동안전의제들


4 [노동안전건강뉴스]

 

8 [지금 지역에서는]

주간연속2교대 전환, 가학적 인사관리 다룬 2015 현장연구나눔마당

 

10 [달려라 건강권, 날아라 노동자]

보건의료노조, 고려대의료원지부 인터뷰

 

12 [안전보건활동 참고서]

감정노동 문제를 노동안전보건활동으로

 

14 [현장의 목소리]

청년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1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주제전문 사서에게 드는 도서관 노동이야기

 

22 [연구소 리포트]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26 [사진으로 보는 세상]

 

38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는 건겅검진

 

40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노동자가 라인 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44 [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

적정 소득, 적정 시간 그리고 건강한 삶

 

48 [문화읽기]

패션, 광고모델 비자로 배추를 절이는 이주노동자들

 

50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검진뿐인 건강검진은 소용없다

 

52 [일터 다시 보기]

더 늦기 전에 석면피해 구제해야!

 

54 [이러쿵저러쿵]

변화, 그리고 오버로딩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2015.9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

 

 

김세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던 작년까지는 이주노동자 진료소에 나가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일하면서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가끔 만나게 된다 해도 몸짓, 손짓, 간단한 그림으로 미흡하게나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면 더는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자주 접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큰 관심도, 그럴만한 별다른 계기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공단 지역이 있는 중소도시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다. 공단과 다소 거리가 있는 집 근처의 동네마트에서도 이주민들을 심심찮게 만날 정도이니, 공단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장검진을 가면 회사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이전보다 상당히 자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본디 ‘검진’이라는 업무가 가진 특성상, 그리고 여러 현실적 여건 때문에 검진하면서 만나는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는 힘들다. 이미 파악되어있는 유해인자 목록이 대체로 정확할 거라는 믿음 아래 그에 따라 핵심적인 증상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고, 신체진찰도 꼭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길어질라치면, 간호사가 다가와 ‘선생님, 조금 더 서둘러주셔야 해요.’라고 다급하게 속삭이기 일쑤. 테이블 옆에 길게 늘어져 서 있는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말과 손이 빨라진다. 하지만 1:1로 대면하는 검진만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상황 봐가며 가능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늘 여유롭지는않다. 짧은 시간 내에 문진과 진찰을 해야 하고, 간략한 교육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짧은 검진시간, 말 안통하는 이주노동자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강검진 자체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들은 더욱더 고민거리다.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없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국적을 물어보진 않지만, 이름이나 외모로 보아 대부분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으면 일단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본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된 경우는 한국말이 꽤 능숙하거나, 최소한 질문 내용을 이해하고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러면 아픈 곳이 있는지, 일할 때 보호구를 착용하는지 등 간단한 단어나 손짓을 통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핵심적인 내용의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한국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첫 번째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여러 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채로 처음으로 그런 상황을 맞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서로 멀뚱멀뚱 눈만 바라보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손짓을 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뭐든 말해봤자 전달이 되지 않을 테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개인의 병력이나 주요 증상 유무에 대해 미리 스스로 점검한 문진표를 건네받지만, 한국어로 된 문진표를 그가 정확히 표시했을 리 없다. 국적에 따라 간단한 영어로 소통할 수 있거나, 한국어가 능숙한 같은 나라 출신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그것은 운이 좋은 경우다.

 

의사소통도 어려운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이들이 어떻게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어로 된 매뉴얼이나 MSDS(Material Safety Data Sheet,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읽을 수 있고, 동료와 문제없이 소통이 가능한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일터는 안전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거나 죽는다. 하물며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어떨까. 그나마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한 허리통증이나 어깨통증은 어떻게든 몸짓으로라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늘 일하며 다루는 물질이 훗날 암이나 진폐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인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로 일하면 왜 위험한지를 그들은 알고 있을까. 혹은 그런 것을 알 기회가 주어지기는 할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쓴 채로 일하고 있는 걸까.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출장검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 날에는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답답하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고, 내가 뭔가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하겠지만, 이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중 한 명인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해봐야겠다. 예를 들어, 기존에 나와 있는 외국어 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에서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 외국어 문진표를 우리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을지 다른 직원들과 의논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 2014.2

보건관리대행과 노동자 건강


직업환경의학의 이선웅

 

현재 50인 이상의 전임보건관리자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의사, 간호사 및 산업위생기사가 방문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보건관리대행(이하 보대)을 받고 있다. 이 보대 업무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산업보건전문가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필자 역시 2년 전부터 지방의 소규모 보대업체에서 보대업무를 하며 100개가량의 사업장 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하지만 내가 만난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는지, 심지어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동떨어져 있는 형식적 업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현재 보대의 주요 업무는 처방 및 치료가 허용되지 않는 상태에서 건강검진결과를 토대로 하는 건강 상담과 간이검사(혈당, 혈압, 간이콜레스테롤 검사), 그리고 현장순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통상적인 업무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체감적으로 도움 되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검진 결과로 진단 가능한 질환에서 투약이 필요한 노동자를 병원에 의뢰하게 되거나, 생활습관에 대한 상담으로 질환이 호전되는 경우가 그렇다. 또 특수검진 결과 관찰이 필요한 노동자(요 관찰자)들의 증상이 작업과 관련성이 있는지, 작업 전환을 해야 하는지 평가하는 경우도 그렇다. 물론 후자의 사례는 전자보다 훨씬 적다. 어쨌든 현실에서 약물치료 의뢰는 위에 언급한 질환으로 제한되고 추적 상담 시에도 혈액검사가 제한되어 반복되는 생활습관 상담만으로는 만족감을 주기 어려워 노동자들이 정기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직업병을 발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작업 관련 증상을 가진 노동자가 알아서 상담을 받으러 오기 힘든 면도 있고, 짧은 상담시간 안에 유해공정 노동자를 모두 상담하기도 힘든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근무시간 내 상담을 기피하여 점심시간 내 상담을 계약 시 요구하는 사업장도 다반사인 현실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법에 명시되어 있는 공적 서비스임에도 민간시장에 완전히 일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약 주체가 사업주인 관계로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에는 관심이 없고, 서비스의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사례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질 낮은 서비스와 맞물려 악순환한다. 그래서 많은 사업장에서는 노동부 감사에 대비하는 형식적 서류업무에 능숙하고 서비스 질과는 무관한 단가가 싼 보건대행업체를 선호하게 된다. 게다가 노동부는 이를 바로 잡을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보건대행서비스가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산업보건서비스 중 매우 큰 부분이라면 현재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먼저 상담에서는 처방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면 외래치료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투약이나 정밀검사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현재 이러이러한 상태니 어느 과로 가세요”라고 구두로 설명하는 것보다 1차 진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진료의뢰서를 의료진이 사용하도록 한다면 좀 더 책임 있는 의뢰가 되어 보대서비스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약물치료는 필요 없으나 관리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검사가 필요한 내당능장애, 고지혈증 등의 질환에서는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검사 등의 혈액검사를 의료법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하는 것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또 만성질환 생활습관 관리에 대해서는 뇌심혈관발병위험도나 심혈관위험지수 등의 성과지표를 사업장에 제공하도록 하여 성취정도 및 추이를 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면 좋을 것이다.

 

직업병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현장 파악은 위생기사의 업무로 되어 있지만, 의사 역시 건강위험요인을 확인하여 적극적으로 상담에 이용하도록 현장 위험요인을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 위생기사의 상태보고서 작성 의무를 의사에게도 부과해 건강위험요인 상태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작성토록 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의 성과에 큰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주와 갑을관계에 놓여 있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이로 인해 실제 사업장 담당자를 만나는 간호사들이 계약 해지의 두려움으로 사업장 담당자들과의 관계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 업무의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노동자의 보대이용을 독려하는 사업주도 일부 있지만 이에 무관심한 사업주 역시 많을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보대팀이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이런 사업장에 검진결과마저 입수되지 않아 유소견자마저 파악되지 않으면 상담 인력이 없어 업무자체가 힘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반적 변화나, 노동부의 보대업무에 대한 책임 강화가 필요할 것 같다. 제도적 변화는 ‘3자지불제도’나 ‘보대업체의 지역별 제한’과 같은 공공성 강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이러한 제도적 공공성강화 방안은 꼭 논의되어야 한다.

일단 당장에는 노동부의 치밀한 감시 감독과 체계적인 기관 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만 상담을 강요하는 사업장 재제를 명확히 하고(현재의 갑을 관계에서 보대업체는 이런 정보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사업장의 무작위 감사와 노동자모니터링 방법이 유효하겠다), 상담이 필요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담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임을 명확히 하며, 유소견자의 상담율이 일정기준 이하로 낮은 사업장 역시 재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또 보대 기관에 대해서도 성과지표와 같은 보대업무의 구체적 성과를 제시하게 하고, 서비스 질 평가를 강화하여 질 저하가 명확한 기관은 업무정지와 같은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