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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간 「일 터」/[직업환경의사가 만난...]

[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저도 노동자입니다 / 2017.5 저도 노동자입니다. 조이 산부인과 전공의 추운 겨울이 아닌 5월의 장미대선을 앞두고 TV와 신문, 인터넷은 대선 관련 보도가 넘쳐났습니다. TV 토론에 대한 관심도 제가 기억하는 그 어느 대선보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학 병원에는 20~30대의 전공의와 간호사부터 60대의 교수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에 정치적인 이슈가 등장했던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이 최근 저를 좀 불편하게 합니다.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저 자신, 대학병원의 전공의입니다. 대학병원의 전공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 면허를 득한 의사의 신분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임과 동시에 전문의 시험 자격 조건을 얻기 ..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 2017.4 일하다 걸리는 폐병은 쌍팔년도 얘기 아닌가요?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전공의 저는 대학병원에서 직업환경의학 전공의를 하고 있으며, 특수 능력(?)을 가진 별종 의사입니다. 보통 병원에서 폐질환 환자들은 호흡기 내과에서 진료를 보지만, 제가 속한 병원은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진폐증 환자 진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 중에서도 소규모 과를 전공하며, 특수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의 주치의 경험을 가진 저는 어찌 보면 별종 의사인 셈입니다. 입원 환자의 대부분은 과거 광부나 석공으로 일하다 생긴 진폐증으로 산재 승인 받아 외래 치료를 받던 중 폐렴, 흉수, 결핵, 폐암 의심 등으로 입원하는, (서른네 살인) 저의 아버지 세대이거나 할아버지 세대인 분들입니다. 비슷한 직업력을..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 2017.2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할석(割石). 돌을 나누거나 베어낸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잘못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얼마 전 이 작업을 30년 해온 한 분이 배치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셨다. 이 분의 청력은 소음성 난청 진단 기준 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를 30 년 깨는 동안 청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귀마개는 좀 사용하셨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다는 대답 이 돌아왔다. 그에 덧붙여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깨는 동 안 나는 소리를 들어야 어떤 부분을 깨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더보기
[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 2017.1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송홍석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장 우리 병원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 향남지역은 근처에 기아자동차 완성차 공장이 있고, 그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 제약단지, 그 밖에 많은 영세한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강해야 할 나이에 건강과 삶이 위태로운 노동자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환자 1.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의 여성이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전혀 안 되고 뭘 먹어도 속 쓰리다며 병원을 찾았다. 식욕도 없고 두통도 생겼다. 딱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었다. 위내시경을 했는데 전날 먹은 음식이 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상 6시간이면 연동운동으로 비워졌어야 할 위의 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그 원인으로는 .. 더보기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2016.12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양민재 회원, 내과 전문의 저는 대학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은 담도 결석, 췌장염, 담도/췌장암이고 이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췌담도 내시경을 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입니다. 저는 환자를 책임지는 주치의임과 동시에 은퇴를 앞두신 스승님께 아직 시술 노하우를 더 배워야 하는 미생의 신분이고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학문적 업적도 내야하고 재계약을 위해 진료 실적도 쌓아야 하는 자기 만족도가 높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인 췌담도 치료 내시경은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시술 관련된 합병증이 많아서 항상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처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좋은 가장은 못.. 더보기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2016.11 어느 하청 노동자의 건강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전문의 저는 올해 2월부터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300병상 규모의 녹색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로 보는 내과환자들은 대부분 노인환자로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고, 제 역할은 입원환자나 외래 환자의 당뇨, 고혈압, 심부전 등 만성질환을 관리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입니다. 며칠 전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노동자는 목포 조선소에서 하청업체에서 7년간 일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으나, 7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일했고 중간 관리자도 했다고 합니다. 관리자면 몸은 덜 쓰지 않느냐물었더니 관리자였지만 직원들이 야간작업, 휴가 등 손이 모자라는 시간에는 이른..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2016.10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 배우며 일하는 노동 김형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종합병원 외과병동에 신입 간호사가 외래에 들어 왔다. 수면건강을 평가하는 설문도구의 점수가 매우 높았다. 이제 막 병원에 들어와 한 달에 6-8일 가량 야간 근무를 하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면장애가 없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야간 근무를 해야만 한다면 효과적인 적응을 위해 수면위생과 관련된 설명을 한다. 최근 “예방적 수면”, 혹은 “쪼개어 자기”라고 해서, 야간 근무 후에 아침에 퇴근하고 바로 수면을 취한 후 낮 1시 혹은 2시에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일하러 가기 전에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가는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예방적 수면을 취하면 밤 근무..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밤을 잊는 그대에게 /2016.8 밤을 잊은 그대에게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1964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현재까지 50년 넘게 같은 시간, 같은 이름으로 방송되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멘트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공부 때문이건 이런 저런 고민 때문이건 모두 잠들었을 시간에 혼자 남은 외로움을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는 뉘앙스가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잠이 많아서 지금 저 방송을 듣지는 못하지만 요즘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저 멘트를 되뇌이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밤을 잊은 그대'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2014년 1월부터 '야간작업'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실시되면서 교대근무와 관련된 건강 영향이 조금이나마 ..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귀족노동자?의 실체 /2016.8 귀족노동자?의 실체 김정수 (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작년 9월에 개원한 우리 병원 인근에는 K자동차 공장이 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부 언론에서 종종 '귀족노동자'로 불리곤 한다. 작년 말 한 노동자가 우리 병원을 찾았다. 이 공장에서 10여 년간 일한 30대 후반의 남성 노동자로, 우측 어깨에 통증을 느껴 찾아간 병원에서 회전근개 파열이라고 진단을 받고 산재 처리가 가능할지 (업무 관련성 소견서 발급이 가능할지) 상담 차 내원한 것이다. 혼자 오신 것이 아니고 노동조합 담당자와 함께 오셨다. 진단이 비교적 명확해서 작업 공정상 어깨 부담 작업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이 분이 어느 한 공정에서만 일했던 것..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2016.6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제 그 기억을 놓아주세요- 칠순 노동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회원 머뭇머뭇 지인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 문을 들어선 칠순의 노동자. 단정한 옷매무새와 차분한 말투, 오랜 시간을 두고 일터에서 그을려 온 특유의 구릿빛 얼굴과 미간을 가로지르는 세월의 주름, 거기에 더하여 뭔가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어둠이 더해진 낯빛. 내 아버지 세대의 노동자와 마주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동을 시작했을 그가 아들뻘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찾아온 사연은 무엇일까? 한자리에 머물지 못했던 시선이 조금씩 내 시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직 어색했지만, 언뜻 엷은 미소가 깊은 주름으로 굳어진 미간을 부드럽게 풀어주니 진즉부터 가지고 계셨을 듯한 순박하고 인자한 .. 더보기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나의 그녀들에게 /2016.5 나의 그녀들에게 조이 회원, 산부인과 전공의 저는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생명탄생의 순간에 대한 경외심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생명 탄생을 돕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수많은 사연의 그녀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주치의로 첫 산모의 출산을 지켜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마음속에 오랜 고민으로 남은 그녀들은 따로 있습니다. A씨는 50대의 난소암 환자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내던 중 암이 재발하였을 때 담당 교수는 그녀에게 경제적 여유가 되는..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2016.4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2016.3 노동자의 건강지킴이가 되려는 이유 김정수 (한노보연 회원,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원장) 저는 올해 11년 차가 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입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제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특히 최근에 잇따라 터져 나오는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 등 7~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사고들을 접하다 보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 군 복무를 제외하고 주로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특수건강진단 업무를 했습니다. 저와 같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주로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특수건강진단은 소음이나 분진, 중금속이나 유기용제와 같은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노..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 더보기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2016.1 관절염은 나이 때문이라고요? 백리마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50대 후반의 조선소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위해 찾아왔다. 손을 보니 누가 보더라도 엄지손가락이 이상하다고 눈에 띌 정도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니 쇠를 녹여 제품을 만드는 주조작업을 약 37년간 수행하면서 크레인 리모컨과 콘트롤박스의 버튼을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반복적으로 누르는 작업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힘을 주어 버튼을 누르다 보니 엄지손가락이 정상적인 위치를 벗어나서 탈골되고 또한 심한 관절염이 있는 상태였다. 이 환자는 엄지관절염으로 산재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고 요양 중이다. 관절염은 많은 사람이 직업병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절 중에서 관절염이 가장 많이 생기는 부위는 무릎관절로서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