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 2014.9

도서관 선생님을 꿈꾸는 서점 직원



최민 선전위원장



대형 서점에서 일했다는 손00 씨를 소개받았을 때는 당연히 ‘매장 직원’일 줄 알았다. 책을 사는 일 외에 대형 서점과 관계할 일이 없는 내 눈에는 매장 직원들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손00 씨가 한 대형 서점의 직원으로 1년 남짓했던 일은 ‘검수팀’ 업무였다. 

오히려 매장 직원들은 모두 이 대형 서점 직원이 아니라고 한다. 제조업 공장에 하청업체가 들어와 있는 것처럼, 백화점 안에 있는 각종 매장이 해당 업체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매장은 2개 소사장이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에게 고용돼 있다. 


“일반서적과 전문서적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소사장이 있어요. 매장 직원들은 이 소사장이 거느린 직원이죠. 물론 거기에도 정직원, 계약직 직원, 알바생이 있고요. 서울에도 이 서점 매장이 여러 군데인데 모두 각각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매장 뒤에도 수많은 서점 직원이 있어요.


대신 대형 서점의 역할은 매장 전반적인 관리와 영업이다. 매장의 소사장이 팔 책을 대형 서점의 이름으로 들여온다. 


“대형서점의 직원으로는 매장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도 하고 기획도 하는 영업지원부가 있어요. 홈페이지 관리하는 분들이 3명 따로 있었는데, 홈페이지 관리에는 책 스캔하고 초록, 목차를 쳐서 홈페이지에 올릴 내용 만드는 일이 모두 포함되죠. 가끔 출판사에서 파일을 같이 보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 쳐서 우리 홈페이지용으로 편집해요. 


신간팀은 하루에 70~80종 정도 쏟아지는 신간 정보를 서점 자체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일을 해요. 이 정보에는 일반 고객들이 보는 정보뿐 아니라 매입율(정가 대비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구매하는 금액), 출판사 정보까지 포함된 것이죠. 이 정보를 모두 만들어 두면 이걸 보고 매장에서 주문을 해요. 매장 각 파트별로 주문서를 입력하면 이를 출판사에 보내서 책이 서점으로 배달오는 거죠. 제가 일한 검수팀의 기본적인 업무는 여기서 시작되는데, 책이 도착하면 매장에서 애초 발행했던 주문서 내용과 도착한 책이 맞는지 확인하고 매장으로 올려보내는 일이에요.


차이가 뭐가 그렇게 날까 싶은데, 이게 그렇지가 않아요. 같은 책을 50권 주문하면 48권 들어올 때도 있고, 50권 중에 한 두어 권 예전 판이 끼어 있거나 심지어 다른 책이 끼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라도 안 맞으면 매장에 확인 전화하고, 필요하면 출판사에 확인 전화하고 어느 쪽 실수인지 확인해서 다시 맞추는 일을 하는 거죠. 이게 딱 맞아야만 매장으로 책을 들여놓을 수가 있어요.”



갑질하는 대형 서점, 직원 월급은…


하루에 열 통 이상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이런 전화에서는 ‘갑’의 역할이었다. 의외로 이 ‘검수팀’에서 출판사를 상대로 거래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일단 매장에 있는 직원들은, 이 대형서점 직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서점 직원이고. 그리고 제가 전화해서 매장 직원이 주문서를 맞게 작성해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책을 잘못 보낸 것인지 확인하는 거니까요. 출판사랑 중간 연결하는 전화를 직접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지난 겨울에 ‘겨울왕국’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책이 여러 가지가 갑자기 나왔잖아요. 그림책, 동화책 등등. 그러면 영업지원부에서는 ‘겨울왕국은 매입률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고 현금 거래로 받아라’는 정도의 큰 가이드라인을 줘요. 그러면 주로 매입률을 보고 각 출판사에 우리 이 책 받겠다, 혹은 안 받겠다 전화를 하죠. 그러면 거절당한 출판사에서는 다른 출판사에서 받는지 물어보고, 자기들 매입률을 낮춰 주겠다고 하기도 하죠. 그러면 다시 매장에 연락해서 매입률 바뀌었으니 원래 했던 주문을 취소하고 주문장을 바꿔 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는 원래 주문하려던 출판사에 또 전화를 해서, ‘다른 출판사와 낮은 매입률로 거래하겠다’ 얘기하는 거죠. 매일 이렇게 말을 바꿔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출판사들은 정가의 60~70% 정도 가격에 책을 서점에 공급해야 하지만, 대형 서점들에는 40~50% 가격에 책을 보내기도 한다. 몇 개 대형 서점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이들 대형 서점에서 책이 좋은 자리에 진열되고 팔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서점은 당연히 이런 걸 못 한다. 작은 서점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을이다. 


“저희 이모부께서 대학로에서 ‘풀무질’이라고 작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풀무질 거기에선 이렇게 못 하죠. 출판사에서 80%에 보낸다 하면 ‘네’하고 받는 거죠 뭐. 대형 서점에서는 이렇게 싸게 책을 들여오니 할인 행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서점에서 일한 뒤부터는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 쇼핑몰 같은 데서 하는 반값 도서 할인전 봐도 놀라지도 않아요. 그렇게 할인해도 남겠네 하는 거죠.”


반값 할인을 해도 남는 장사라는 대형 서점 직원으로 손 씨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2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추석처럼 명절 있는 달에는 상여금이 100% 나왔다고 하니 1년 전체 평균 내면 한 달 130만 원 정도 되었을 거라고 했다.



일만 한 게 억울해서 사표 던졌죠


지금은 서점일을 그만두고 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손00 씨. 서점을 그만둔 건 너무 못 논 것이 억울해서, 제대로 좀 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던 대학생활, 졸업 후엔 조교로 일하다가 대형 서점에 입사해서 1년 넘게 일하기까지 몇 년 동안 그녀는 여행 한 번을 가본 적 없다.


  출처 : www.flickr.com


“2년 내내 매일 9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집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일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서점일 시작하고 나서요? 연월차도 있다고는 하고 아프면 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직원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 한 적 있었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에서 전화를 했대요. 오늘은 무슨 검사 했냐고. 심지어 지금 무슨 주사 맞고 있냐고 묻기도 했대요. 그런 일 당했다는 얘기 들으면 누가 휴가를 쓰고 싶겠어요.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억울하더라고요.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행도 가고 싶고. 그래서 사표 쓰고 나와버렸죠.”


사표까지 쓰고 손00 씨가 다녀온 휴가는 제주도 2박 3일이 전부. 막상 가려고 보니 같이 갈 친구들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렇게 몇 일 쉬고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 5명이 일하는 약국에서 처방전을 입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빨리 구했냐고 묻자, ‘알바 천국’이라고 답한다. 놀지 말고 알바나 하자고 급히 구한 일인데, 일하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 달 만에 정직원 하자고 해서 근로계약을 다시 했다니 잘 됐다.   



손00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하지만 손00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근처 고등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이모부가 하는 서점을 통해서 매 학기 책을 사시거든요. 일부는 이모부가 아예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요. 도서관 책들 보면 청구 기호 매겨져 있고, 라벨도 다 붙어 있잖아요. 이모부가 책을 보낼 때, 그 책들에 라벨을 다 매기고, 그 사서 선생님네 학교 도서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표지 스캔하고 목차, 색인, 페이지 수를 모두 등록해드렸어요. 


사실 그 전에 있던 그 도서관 분류가 엉망이었거든요. 역사면 900번 한 가지로 붙여 놓은 거예요. 생각해보면 한국사, 서양사, 일본사 등 얼마나 많겠어요? 제가 책 보내면서 분류를 제대로 해 준거죠. 색인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면 애들이 이름을 다 기억 못 할 수도 있잖아요. ‘어? 베르 뭐였는데?’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베르’만 쳐도 나오게. 저자 색인, 제목 색인 다 열심히 만들어줬죠. 


그러면서 보니까 이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예전에 다른 중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본 적 있는데 아이들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 준(准)사서거든요. 4년제를 졸업하면 2급 정사서 자격이 나오는데, 정사서 자격도 따려고 해요.”



문헌정보학과가 옛날 문헌 보는 과인 줄 알고 들어갔지만, 들어가서 책 분류하고 라벨 붙이는 게 재미있었다며 웃는 이 밝은 청년이 하고 싶던 일, 재미있는 일을 할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제는 좀 더 긴 휴가도 마음껏 다녀올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A-Z 노동이야기]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 2014.8

고3이 안 쉬면 학원 알바도 못 쉬죠 

'수험생처럼 쉴 틈 없는 일 년을 보내는 논술첨삭 선생님'


정하나 선전위원


직장인에게 7, 8월은 휴가철이지만 학생들에게는 방학이다. 오늘 소개하는 박다현(28세) 씨의 여름방학은 대입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 다현 씨는 서울의 유명 학원가에 있는 논술학원에서 첨삭지도 아르바이트 중이다. 


사교육계의 하청, 논술 첨삭 알바


올해 대학원 입학 전, 사회단체 활동을 하던 다현 씨. 벌써 4년 차에 접어든 이 논술 첨삭지도 알바는 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가 너무 적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주말에만 하면 되고, 시간당 임금이 높은 편이라 좋았다고 했다. 그럼 다현 씨는 말로만 듣던 연봉이 몇 억씩 된다는 ‘○○동 스타강사’인가? 알고 보니 논술학원 구조상 첨삭지도 선생님은 그런 위치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학원의 고용구조는 기본적으로 특수고용 형태예요. 원장과 강사 간의 계약도 다 일대일로 하되, 강사가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따라 애들 내는 학원비 나눠 갖는 비율을 정하죠. 논술강사들 역시 이렇게 계약을 해요. 이 논술강사들이 자기 반에 한 타임 당 한 20명, 많으면 30명까지 학생들을 받는데, 앉혀놓고 강의하는 것 외에 애들이 써온 1천 몇 백자 글에 빨간 펜으로 줄긋고 별표치고 첨삭해서 학생 한사람씩 불러서 대면지도를 해줘야 한단 말이지요. ‘네 글의 포인트는 ~~~인 것 같은데, 여기에 있는 문장은 적절치 않다/적절하다’는 식의 코멘트를 해줘야 하는 거죠. 근데 수업 시간상 수강생이 혼자 다 커버가 안 되니까 ‘첨삭 지도’만 하는 선생들을 따로 섭외(고용)하는 거예요. 자기 밑으로 한 서너 명씩. 학생 1명당 15~20분 정도 소요되니, 클래스의 수강인원에 따라 필요한 첨삭지도 선생 숫자가 나오겠죠. 일종의 하청, 하도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제 위치가 바로 여기죠.” 


사교육계의 하청노동자라고 할 수 있는 논술 첨삭 선생님의 급여는 자기를 섭외해서 데리고 있는 논술강사가 알아서 개별적으로 결정한다. 즉, 원장과 나눈 논술강사 수입 중에서 논술강사 본인이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첨삭 선생들의 임금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저희 선생님은 첨삭 원고 한 장당 10,000 원씩 쳐 줬어요. 거기에 일한 지 1년이 지나면 장당 1,000 원을 올려주는 정책을 썼는데, 저는 4년 차니까 장당 14,000 원이 되었죠. 이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10장으로 치면 40,000 원 차이 나는 거니 크죠. 그리고 대학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재작년부터 작년까지는 첨삭 선생님들 중에서도 ‘관리’하는 직책이었거든요. 그러면 첨삭비 외에 수강학생 1명당 10,000 원씩 더 얹어주었죠. 대신 수업이 있는 모든 날 관리 차 학원에 나가야 해서 주말 이틀 모두 출근하고 평일 중 하루나 이틀 더 출근했어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해서 200만 원 넘게 벌었죠.”


주말특수 논술학원, “주말까지 일하니 죽을 것 같아”


처음에는 월급 금액만 듣고 “어휴~ 그래도 아르바이트치고는 돈 많이 벌었네요.”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아뿔싸! 놓친 게 있었다. 다현 씨는 애초에 논술학원 주말알바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일에는 사회단체 상근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정말 일만 해 왔을 터였다. 


“주중에 하루도 못 쉬는 생활을 한 2년 하니까 정말 죽을 거 같더라고요. 수업이 9시부터 시작인데 저는 8시 반까지 가서 첨삭 준비 먼저 좀 해놓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집에서 7시 반에 나와야 하는 거죠. 9시부터 두 시간 학생 5~6명 만난 후, 강사가 강의하는 두 시간은 좀 쉬고 다음 첨삭 준비하며 대기해요. 또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6시부터 두 시간 첨삭지도 후 대기. 이렇게 하루에 3타임 수업, 학생 한 15~20명 정도 만나서 떠드는 걸 하는 거예요. 마지막 클래스가 6시에 시작해서 8시에 딱 끝나면 좋은데 좀 말이 길어져서 늦게 끝나면 강사 강의가 종료되는 밤 10시까지 학생을 기다렸다가 첨삭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집에 가면 11시 반 정도가 돼요.”


물론 학원도 쉬는 주기가 있긴 했다. 학생들이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는 몇 주는 논술학원은 잠시 방학이다. 논술학원은 내신 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시기 동안 논술 첨삭 알바비가 끊긴다. 몸은 좀 편안해졌지만, 생활비는 끊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첨삭관리일도 그만두고, 일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는 몸과 정신의 신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신만의 공부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기로 했다.  


“남들 쉴 때 쉬고 싶은 욕망이 아주 커요. 논술 학원은 방학 때라도 수업을 주말에 잡아요. 평일에는 주요과목인 국․영․수 학원 가고 논술은 주말에 하루 오거든.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약속 잡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학원은 남들 쉴 때 더 바쁘거든요. 예를 들면 요즘 같은 여름방학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개설되고, 아. 특히 추석! 추석특강반이 개설되면 앞서 설명한 하루 4시간씩 3타임(오전 9시~오후 10시)을 연휴 내내 진행하는 거죠. 그래서 추석 연휴 길면 정말 죽음이죠. 요즘엔 토요일 하루라도 쉬잖아요. 토요일은 이제 안 나간다고 마음먹고 무조건 비웠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첨삭 관리할 때는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 또 좋고.”







출처 : KBS 화면 캡쳐


수험생과 같이, 1년 내내 긴장된 노동


학원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다현 씨의 주간·연간 알바 일정을 듣고 있노라니 한국 사교육 현장을 깊숙이 알아버린 느낌이다. 방학 따위 꿈도 꿀 수 없는 대한민국 고3과 그 부모들이 제일 가까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만, 사교육 시장의 시간표도 그에 못지않게 종종걸음 치며 발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가 노동자들의 생활 시간표가 수험생의 그것에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출정시기인 겨울방학을 기점으로 중간고사·기말고사 기간 지나서 7월 중순부터 여름방학 특강, 추석특강, 그리고 제일 중요한 ‘파이널(final)’ 시기가 있어요. 파이널은 수능 직후 2주간을 부르는 말인데, 이때 각 학교 논술고사가 집중되어 있죠. 이때는 추석특강보다 더 죽음의 주간이에요. 혹시 ‘농활’ 가보셨나요? 저도 안 가봤는데, 다들 농활 온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2주간 매일 김밥 먹고 말하고 김밥 먹고 말하고. 이렇게 쉼 없이 일하면 사람이 혼이 나간다고 해야 하나, 찌들어 버린다고 해야 하나?”


‘파이널’은 논술학원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시기.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생들이 모든 에너지를 논술고사에 쏟는 만큼 학원도 총력을 쏟는다. 수업 시간, 학생, 할 일이 모두 많아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입 당락이 결정되는 워낙 긴장도가 높은 시기라서 학생과 학부모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학원가에 떠도는 전설이 있어요. 파이널 때 어떤 선생님이 원고지를 한 장 분실했는데, 학부모가 달려와서 학원을 다 뒤집어놨다고. 실제로 분실한 적은 없었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복사를 해서 한 부는 학원에 보관하고 한 부는 가지고 다녀요. 빈틈없이 하려는 거죠. 문제 생길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이 시기에 애들이 예민해져 있는 게 이해는 가요. 강의 듣고 첨삭 받은 대로 잘 쓰고 싶은데, 자기 생각만큼 실력은 좋아진 것 같지 않고 입시는 코앞이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글을 잘 써서 ‘잘 썼다’고 칭찬해줘도 곧이 안 듣고 대충 시간 때우려 한다고 오해해요. 그래서 첨삭지도 할 때는 칭찬 반, 비판 반 섞어주는 기술이 필요해요. 칭찬하면 오히려 애 표정이 굳는 게 보이거든요. 그러면 여지없이 클레임이 들어와요. ‘선생님 바꿔주세요’라고.”


폭풍과 같은 파이널,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날에는 같이 첨삭지도를 하는 동료와 함께 어떻게든 일을 일찍 끝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늦어도 9시에는 무조건 일을 정리하고 다현 씨와 동료들은 택시를 타고 와인이 무제한으로 나오는 뷔페 레스토랑을 향해 달린다. 그리고 레스토랑 마감시간 까지 남은 1시간, 뒤풀이로 딱 1시간을 신나게 즐기는 것이다. 대면 첨삭 알바 선생님들끼리의 파이널 뒤풀이면서 조촐한 위로회이고, 그 해 다현 씨의 송년회이기도 했으리라. 


대학원 공부 마칠 때까지는 논술첨삭 알바를 계속 할 거라는 다현 씨. 공부를 마치고 “4대 보험도 적용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적을 두기 전까지는 또 몇 고비의 대입 파이널을 고3들과 함께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도 돌아오는 추석 연휴, 아니 추석특강일이 짧아서 참 다행이다. 

[A-Z 노동이야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만나다 / 2014.7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만나다

송홍석 선전위원


“안녕하세요? 저...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인데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잡지에 경비 아저씨들의 일하는 이야기를 실으려고요.”


매일 아침 출근길, 말없는 인사만 받고 주며 스치듯 지나쳤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찾아 갔다. 이런 인사말을 건내자니 좀 뻘쭘하다. 연 3,600시간, 24시간 맞교대 노동, 최저임금도 못 받는 저임금 노동을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한 채 한 공간에서 살아가다가 말이다.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나의 인사말에 아저씨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의자 하나를 빼 주신다. 그리고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셨다.


총 11개 동, 580세대가 모여 사는 우리 아파트에는 6명의 경비아저씨가 3명씩 24시간 맞교대로 일하고 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6시에 퇴근한다. 감시 순찰, 차량 진출입 관리뿐 아니라 각종 조경작업, 분리수거 등 경비 외 업무도 하고 있다. 그런데 자는 시간, 식사 시간 말고는 따로 정해진 휴식시간은 없다. 깨어서 일하는 시간이 무려 18시간. 식사시간 2시간마저도 업무의 연장선에 있다.


일하시면서 어떤 점이 힘드세요?


“일을 하는데 돈을 안 줘. 무급으로 일하는 시간이 있단 말이야. 24시간 근무 중 4시간 휴식시간(자는 시간)에 점심, 저녁 1시간씩 식사 시간을 주는데, 그 2시간의 식사 시간에 실제 일은 하는데 무급이야. 경비실에서 밥 먹으면서 차량 들락날락 거리는 거 봐주면서 차단기 올려주고, 택배도 받고 일한단 말이지. 또 우리가 해야하는 건 경비일인데, 풀베기나 나무 가지치기도 시켜요. 조경업체에서 해야하는 일을 관리사무소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지.”


지금껏 업체에 3,200만 원에 외주해왔던 단지 내 조경관리를 이번엔 내부에서 하다 보니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항의를 해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나마도 해고를 각오했을 때 가능했다.


“또 있어. 우리가 경비일 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거든. 첫 2달 내에 총 42시간을 교육받아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 하루 8시간 교육을 쉬는 날에 받아야 하는데, 쉬어야 하는 날 쉬지도 못하고 다음날 일해야 하는데 말이지. 근데 교육시간이 유급이 아니야, 무급이라구. 이건 고쳐져야 해. 회사에선 교육비를 마치 자기들이 내는 것처럼 하는데, 실제 보니까 경찰청에서 내더라고. 왜냐하면 우리가 실제 경찰 역할까지 하고 있고 우리 교육받은 명단이 경찰청에 Fax로 가더라고.”


월급은요?


“최저임금에도 못 미쳐요. 지금 최저임금이 5,210원이잖아, 근데 그것도 다 안 준다고.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나? 작년엔 4,800원이었나? 하루 24시간 중, 휴식시간 4시간, 식사시간 2시간 빼면 18시간을 유급으로 인정해줘요. 한 달 월급이 142만 원인데, 건강보험이다 뭐다 해서 공제되면 137만 원뿐이야. 수당 같은 거 전혀 없어. 일 년에 두 번 명절 때 떡값으로 5만 원 주는 게 전부야.”


급여액을 들으니 더 기가 막히다. 하지만 이게 다 합법적이다. 경비 노동자들은 2005년 개정된 최저임금법에 의해 2007년부터 최저임금의 70%로, 2008년엔 80%, 2012년부터는 최저임금의 90%로 감액적용 받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규제로 보호받지 못하여 주 40시간제나 주 12시간 이내의 연장근로 제한도 없고 유급으로 쉴 수 있는 일요일도 보장받지 못한다. 근무 중 휴식 시간도 보장받질 못한다. 노동시간 연장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다. 해서 연장근로나 휴일 특근 할증도 없다. ‘심신의 피로가 적은 노무에 종사하면서, 당사자 간 합의가 있고 근무 다음날 24시간의 휴식이 보장되어 있으면 감시단속근로자로 분류되어 법 적용의 예외로 둘 수 있다’는 현 근로기준법이 경비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박탈하는 근거다.


하루 중 맘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시간도 없이 20시간을 일해야 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노동을 심신의 피로가 적은 노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노동 후 허락되는 24시간의 휴식이 과연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의 합리적 근거라 할 수 있을까?



잠은 언제 주무세요? 주무시는 데는 편안하세요?


“4시간 주는 휴식시간이 자는 시간인데, 이동시간도 있고 해서 바로는 못 자고 3시간 정도 자. 밤 9시나 새벽 1시에 자는데 나이도 있고 피곤하니까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지.”


식사 시간 포함해서 20시간을 노동하고 잠깐 자는 공간에는 온돌방이 아닌 라꾸라꾸 침대만 겨우 놓을 공간이라고 한다.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다른 오래된 아파트는 공간이 더 좁아서 그냥 의자에 앉아서 잔다고 하신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은 없으세요?


“우리 근무 지침이기도 하지만, 우리들 월급이 주민들한테 나오니까 당연히 잘 하려고 하지. 근데 아파트 입구 차단기가 안 열린다고 클락션 울리잖아. 그럼 우린 좀 뒤로 후진했다 천천히 들어오면 올라간다고 설명을 하는데, ‘빵빵 했으면 바로 올려줘야지 불친절하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관리사무소에 민원 넣는단 말이야. 술 먹고 괜히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어요. ‘경비가 모자를 왜 벗냐, 경비 제대로 서라’면서. 내가 나이가 68인데... 싸울 수도 없고. 경비실 들어와서는 흥분돼서 손이 벌벌 다 떨린다니까. 그렇게 스트레스 받다 보니 머리도 빠지고 희끗희끗해지고...”


그렇다면 24시간 노동 후 주어지는 24시간의 휴식일은 그분에게 어떤 시간일까?


쉬는 날엔 뭐하세요?


“6시에 퇴근해서 씻고 아침 먹고 자야 해. 다들 나이가 들었으니까. 근무 때 3시간 자는 거 가지고는 부족하니까, 오후 3시까지 자요. 그 다음날 근무해야 하니까 어딜 멀리도 못 가고. 잘해야 근처 산에나 좀 가고. 저번 친척 제사 때도 못 갔어. 근데 사람들은 돈만 번다고 안 내려온다고 그랬대. 허허~”


“연차? 하나도 못쓰지. 관리사무소 눈치 봐야 하니까, 눈치 안 보더라도 쓰기 어려워. 일하는 리듬이 깨지니까. 셋이 하는 일이 다 정해져 있는데, 하루 이틀은 봐주더라도 오래는 봐주기 힘들거든. 한 사람은 무조건 정문 앞 관리실을 지키고 있어야 하고, 두 사람이 11개 동 감시 업무를 다 책임져야 하는데 연차 쓰면 남은 한사람이 그걸 다 해야 하는데 무리지. 그래서 3명 다 하나도 못 써. 가까운 산이나 한 번씩 갈까? 멀리 지방엔 놀러 못 가. 명절도 없는데 뭐. 또 연차 15개 안 쓰면 수당으로 62만 원 주니까 생활에 도움도 되거든.“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아프시면 병가는 쓸 수 있어요?


“다들 나이가 65살 이상인데 병가 쓰게 되면 퇴사를 해야 해. 대체인력 안 들어오고 남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데 못하니까 그냥 퇴사시키고 새 사람을 뽑거든. 치료하고 오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든지 해야지.”


인터뷰 중 최저임금이나 야간노동 할증률, 연차 개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게 놀라웠는데,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젊은 시절 노동법 관련 책 좀 읽으셨다 하신다.


“난 애국자야. 20대에 월남 참전하고 중동에 갔어. 사우디, 바레인, 쿠웨이트 건설현장으로. 중동에 한 6년 있다 보니 결혼도 늦어졌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 저학력이야. 뭐 달리 할 게 있겠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받을 거 못 받아도 그냥 감지덕지하고 살아, 뭐 이렇게 일하는 것만 해도 어디야.”


‘감시단속근로자’로 분류되는 경비노동자들에게 내년엔 최저임금의 100% 시행이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 많은 분들은 잘릴까봐 시행을 반대한다고 한다. 7~80년대 산업 역군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했던 우리의 아버지들이 지금은 ‘노인 일자리 복지’라는 이름으로 주말도, 명절도, 휴가도 없이 오늘도 하루 20시간 밤샘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A-Z 노동이야기]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2014.6

나는 뮤지컬 노동자다
- 15년 베테랑 뮤지컬 배우 전준성 님 인터뷰 -


정하나 선전위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인터뷰를 빌미로 상대방의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는 게 재미있다. 이번 만남은 더 설레었다. 내 일상에서는 도통 만나지지 않을 만한 ‘예술계’ 인사, 그것도 ‘뮤지컬 배우’를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배우의 질문, “이렇게 인터뷰하러 많이 다니세요?”


자리에 앉자 오늘의 주인공, 배우 전준성 씨는 도리어 질문을 던져왔다. “이런 일 하시면, 다양한 직업 가진 분들이랑 인터뷰 자주 하시겠네요?” 일반인의 ‘발성’과는 좀 다른, 약간은 부러워하는 목소리. 배우로서 늘 다른 사람의 삶을 탐구하고 연기로 담아내야 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관심이었으리라.

 

문득,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슬퍼서 오열할 때도 어느 순간엔 울고 있는 나 자신을 관찰한다. 우는 씬(scene)을 연기할 때를 위해.’ 타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까지도 관찰하는 배우들, 그들의 일상을 준성 씨의 삶을 꼬치꼬치 캐물으며 들어보았다.

 

배우의 하루, 그의 시계는 느지막이 돌아간다


“지금 이 시간대는 사실 평소 저한테는 이른 아침 정도 되는 시간이에요. 공연이 보통 평일 저녁 8시쯤 시작하잖아요. 대충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공연하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 1~2시죠. 배고프니 잠깐 요기할 때도 있고, 바로 씻고 자기도 하고. 어쨌든 공연 시작하면 이런 패턴이 되기 때문에 낮 12~1시는 저한테는 아침이죠.”

 

점심시간에 만나서 같이 식사하던 중, ‘오늘 처음 식사라 밥이 많이 안 들어간다’며 숟가락을 나보다 먼저 놓던 그의 변이다. 좀 미안해졌다. 이 인터뷰에 응하느라 평소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하루’를 시작했을 그였다. 다행히 바로 전 작품인 서편제 이후, 다음 공연연습 들어가기 전까지 몇 주간 휴지기를 갖고 있기에 망정이었다.

 

“문화공연이 월요일에는 쉬는 경우가 많잖아요. 뮤지컬의 경우도 그런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회씩, 그리고 관객이 많은 주말에는 2회 공연을 합니다. 주 6일 동안 무대에는 8회 정도 서는 거죠. 요즘엔 티켓파워를 의식해, 아이돌 연예인들을 주․조연급에 더블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이들 빼고, 규모가 작은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8회 공연에 모두 출연합니다. 공연 시작 4시간 전 정도에 모여서 몸도 풀고 의상 확인하고 분장하고 그래요.”


막간의 휴식을 즐기는 요즘, 준성 씨는 친구들과 함께 마련한 개인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도 하고 뮤지컬배우 지망생들에게 1:1 연기지도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다시 새 작품 연습 들어가면 10시부터 6시까지, 중소규모 창작공연의 경우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실 붙박이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말이다.

 

배우의 자세, ‘몰입’ 준비하기

 

가장 최근 출연한 작품을 물어봤다. <레미제라블>과 <명성황후> 그리고 <서편제>까지, 관람권 비용 부담 때문에 평소 뮤지컬을 즐겨 보지 못하는 나도 다 알만한 작품들이었다.

 

제까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이 큰 건 <레미제라블>이에요. 몸은 너무 힘들었어요. 10개월 동안 전국을 다니는 장기공연이기도 했지만, 주인공 ‘장발장’이랑 평생 그를 쫓는 ‘자베르 경사’ 역을 맡은 주․조연 빼고는 모두 10~15개씩 배역을 맡았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번 시작하면 3시간 동안 잠깐도 쉴 틈 없이 계속 왔다 갔다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연습 때도 잠깐 앉아 있을 틈이 없어요. 저는 도망자인 장발장에게 은촛대 주는 ‘미리엘 주교’라는 꽤 큰 역을 맡았는데, 그거 외에도 10개의 다른 역할을 연기해야 했죠. 갈아입어야 하는 옷만 해도 20벌 정도였으니 얼마나 바빴는지 아시겠죠? 하지만 이때만큼 배우들 ‘앙상블’이 좋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10개월 장기공연이라 거의 한해를 같이 보낸 덕도 크지만, 한 회 공연으로만 따져도 무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빈도가 훨씬 높으니 더 그랬겠죠.”                                                              

 

그는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에 임하기 전 미리엘 신부, 아베세 단원(극 중 혁명을 계획하는 청년모임의 일원), 거지, 일반 군중 등 수많은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사전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발장」이란 한 권짜리 책에서 시작해, 빅토르 위고 원작 「레미제라블」을 독파했고, 더 나아가 작품이 쓰인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사에 대한 책과 영상물을 독파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현재 한국 상황이랑 겹치는 부분이 많았어요. 게다가 공연시기가 대선 때랑 맞물리기도 했잖아요. 마침 선거 날이 대구 공연이었는데요. 아시잖아요, 경상도 쪽 특히 TK권이 저쪽 성향이 강한 거. (웃음) 숙소에서 개표방송 보며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바로 다음날 대구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려니 참! 그날은 거의 ‘분노의 공연’을 했지요. ‘들리는가, 민중의 노래(원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그 노래 할 때는 관객들을 꾸짖다시피 불렀어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15년간 연기를 해왔지만 한 번도 공연이 끝나고 울거나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레미제라블 마지막 공연 날에는 그렇게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함께 출연했던 동료들도 본명보다 당시 맡았던 역 이름으로 기억된다고. 작품 역할과 자신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메소드’ 연기의 깊이, 그리고 무대에서의 협업을 통해 느끼는 ‘앙상블’의 느낌, 일반인으로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10개월이란 장기간 동안 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서 준비했을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뮤지컬 배우로 먹고살기

 

준성 씨는 스타 배우는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작품을 하며 뮤지컬 배우의 이름을 지켜 온, 이제 슬슬 중견급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다. 뮤지컬 산업이 최근 2~3년간 2천5백억 원대의 시장규모로 성장했지만, 배우 개인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데뷔까지 좁은 관문과 실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감내해야 하는 이 업계에서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자기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는 배우로서 작품만으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어요. 근데 그게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일 겁니다. 같은 공연 예술이더라도 연극판은 정말 열악해요. 뮤지컬은 1970년대 현재와 같은 공연형태와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 계속 성장하고 있거든요. 제가 39살인데, 일반회사 다니는 분들 이 정도 나이 되면 과장급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 정도 수입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 계약이 끊이지 않아야 하겠지만요.”

 

데뷔했을 때만 해도 연습시간이나 공연 횟수에 상관없이 작품 하나마다 출연료 계약을 했었지만, 이제 15년의 연기경력을 인정받아 출연료도 ‘회당 얼마’로 계약한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경력 없는 배우에겐 출연 자체가 큰 기회이기 때문에, 노력하고 일한 만큼 절대 다 보상받지 못하죠. 혹시 ‘열정페이 계산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무대에 설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니, 내 생활에 필요한 만큼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일단 무대에 서는 것을 택하게 되는 거죠, 자연스럽게. 작품이 끊기거나 계속 적은 임금만 받고는 생활할 수 없으니 10년 동안 하던 뮤지컬 접은 친구들도 주위에 꽤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준성 씨는 며칠 전 그의 아내와 나눈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가 자신을 부를 때 장난스레, “어이, 뮤지컬 배우!” 했는데, 준성 씨는 거기에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나 뮤지컬 노동자야.” 라고 답했다고 한다. 뮤지컬 배우 아니 예술가 전준성 씨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여러 말보다 이 한 문장으로 그가 뮤지컬 연기로 뿜어내는 노동이 설명될 것 같다.  


“나의 예술은 무대가 아니어도 계속될 것입니다.”

[A-Z 노동이야기]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 2014.5

우체국에서 보내는 편지
'동서울우편집중국 양현순 조합원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

 

‘동집’. 동서울 우편집중국을 동집이라고 한다. 서울 지역의 우체국에서 모아 온 우편물을 권역별로 분리하여 보내는 곳이다. 통신회사의 청구서와 같은 대량 우편물은 동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다루는 우편물 양이 어마어마하다. 소포와 택배, 등기 우편물을 모두 합치면 1일 평균 600여만 통의 물량을 처리한다. 대량 우편물은 대부분 기계로 분류하지만, 개인들이 보내는 우편물, 대량 우편물 중 반송 물량 등은 일일이 손으로 분류해야 한다. 양현순 씨는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저는 지금은 ‘소형계’에서 일해요. 일반 우편물을 분류하는 부서예요. 잡지나 책자 다루는 ‘대형계’, 등기나 카드 배송 등을 분류하는 ‘특수계’, 택배 물건 다루는 ‘소포계’, 우편물 뭉치를 차에 싣고 내리는 ‘발착계’로 나뉘어 있어요. 소포계는 3g짜리 일반 우편물을 분류하는데, 한 박스가 4~5kg 쯤 돼요. 이걸 꺼내서 분류하고 다 되면 또 박스를 올려놓고 또 분류하지요. 이러니 근골격계질환은 누구나 가지고 있죠.

 

여성 노동자의 몸, 엄마 노동자의 몸


양현순 씨는 동집에서 근무한 12년 중 10년을 야간 근무로 일했다.

 

두 가지 이유죠. 첫째는 애들, 둘째는 임금이에요. 처음에는 오로지 애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애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린 애들이 학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집이 텅 비어 있는 게 싫었어요. 애들 집에 오면 숙제나 밥 챙겨주고, 잠자리 봐 주고 나서 밤 10시에 출근하는 거죠. 그리고 아침에 들어가서는 애들 등교 준비 챙기고요. 지금 와서 보면 정말 못 할 짓 한 거예요.


다른 이유는 임금입니다. 요즘 주변에는 급여 때문에 야간 하는 동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야간 근무를 하면 주간보다 쩜오(야간 수당 0.5배)를 더 받잖아요. 그런데 돈 때문에 야간 근무하는 것은 정말 말리고 싶어요. 제가 10년 근무하고 남은 건 골병뿐이에요. 골병 든 것 때문에 쓴 돈이 천만 원은 넘는 것 같아요. 지금도 9개월째 한의원 다니고 있거든요. 약값, 차비, 침 맞는 돈, 그 전에 다녔던 정형외과, 원인 찾아보겠다고 갔던 대학병원, 마사지, 부황... 거기다 아파서 쉰 날도 있고. 그렇게 치면 돈 때문에 야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래도 버티는 이유요? 지금 나이에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빙이나 설거지뿐이죠.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공휴일에 쉴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어요. 주부들은 대소사가 많잖아요. 그런데 식당에서 일하면서 연차를 쓸 수 있나요? 이런 게 장점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어도 못 벗어나는 거죠.

 

근로기준법에서는 여성의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를 제한하고 있다. 18세 이상의 여성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이 경우에는 여성의 무거운 육아 부담, 낮은 임금, 중년 여성에게 닫혀 있는 취업 기회가 ‘근로자의 동의’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전적으로 야근만 하는 기업이 있을까요? 웬만한 데는 3교대는 하지 않나요? 이렇게 따져 물으면 관리자들도 말을 못 해요. 기능직 공무원들은 같은 일을 하지만, 24시간씩 교대근무를 하거든요. 그 사람들은 양반이고 우리는 상놈인가요? 야간 10년 하는 동안 하루에 잠을 3~5시간밖에 못 잤어요. 이러니 몸이 망가지지 않고 배기겠어요? 

 

 

낮은 임금, 고된 노동, 차별과 갈등


교대제뿐이 아니다. 임금을 보면 무기계약직 동료들이 야간 노동을 선호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급여를 받으면 기뻐야 하는데, 받으면 다들 인상을 써요. 급여가 그만큼 적어요. 이러니 또 연장, 시간 외 근무에 목을 매는 거죠. 아프다고, 이렇게는 일 못 한다고 하다가도 시키면 다 해요. 시간 외로 근무하면 1.5배를 받잖아요. 지금 시급이 5,410원인데, 이게 쩜오가 되면 7,500원이 넘잖아요. 일하는 노동자들이 연장 근무를 받아들이니까, 인력을 충원 안 하고 연장으로 이걸 다 돌려서 처리하는 거죠.

 

실제로 우편물량이 양현순 씨 입사 초기였던 10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 택배가 늘었지만 출혈 경쟁으로 수익이 남지 않아 통신 회사 등의 대량 소형 우편물이 주된 수입원이라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에서도 적자라고 볼멘소리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비정규직을 골자로 하는 인력 계획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동서울 우편집중국은 직접고용 노동자 600여 명 중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비율이 60~70%에 이른다. 우편집중국까지 오는 시간 하루, 집중국에서 하루, 발송에 하루. 이렇게 3일 내에 우편물을 배송한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지금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 시간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강화한다.

 

2년 전부터 ‘중근’을 하고 있어요.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는 조를 그렇게 불러요. 그런데 2시간 연장하면 새벽 1시, 집에 가서 씻고 나면 3시에 자게 돼요. 그러니 중근을 해도 4~5시간 자는 거죠. 근로기준법에 8시간 일하라고 돼 있잖아요. 왜 그렇겠어요? 8시간은 일 하고 나머지는 쉬고, 자기 일도 하고 해야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8시간 일한 뒤에 2~3시간 연장근무 하고 나면 몸이 녹아나죠. 이걸 다 비정규직이 감내하는 거예요.

 

임금이나 교대제뿐 아니라, 일하면서 현장에서 부딪치는 기능직 공무원과의 갈등도 스트레스다.

 

기능직 공무원들은 정말 우리랑 똑같은 일 하거든요. 그런데도 자기들은 관리자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를 막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도 못난 사람 아니거든요.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고 떳떳하죠. 그런데도 말투, 태도에서 벌써 권력 있는 사람 행세를 해요. 이제라도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하면 공부해서 보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비정규직만 뽑잖아요.

 

기능직 공무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공공기관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어디나 있는 것 같다. 이런 고용 구조는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을 만들고, 각자 서로 다른 작은 이해에 집중하게 하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조직화를 저해한다. 우체국에는 총 5개의 복수노조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현순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에 속해있는데, 우정노조 조합원인 기능직 공무원들은 우편지부의 싸움이 자기들 밥그릇을 뺏어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거나 거부감이 많다.

 

꿈이 없는 일


양현순 씨는 노동조합 활동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여전히 하고 있지만, 우편집중국이 ‘꿈이 없는 직장’이라고 한다.

 

우리 기본급이 108만 원이예요. 저야 나이 50에 아줌마지만, 젊은 총각이라면 이걸로 결혼 못 하죠. 처음에는 취직만 해도 좋고, 기쁘죠. 신나게 일하고 인생에 계획도 있어요. 그런데 일하다 보면 꿈이 없어져요. 그러니 늘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술값은 어디서 나와요? 겨우 그 108만원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옆에서 보면 속상하죠. 젊은 애들 들어오면, 좀 쓸만하다 싶으면 나가라고 해요. 여기 있지 말라고. 다른 데 가서 일자리 찾으라고요.

 

양현순 씨는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1개월 치 한약 상자를 들고 스스로 ‘종합병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연신 웃으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노조 활동 탄압하는 관리자에게서 언제든 문제의 발언이 튀어나오면 녹취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다니는 배짱 있는 ‘언니’이며, 우편지부 활동이 매스컴에 많이 나오게 됐다며 기분 좋아하는 멋진 ‘언니’였다.


이런 선배가 ‘우리 일은 이런 점이 좋다, 우리 잘해 보자’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꿈이 없는 직장’이라고, ‘너는 젊고 쓸 만하니 나가라’고 말한다니 씁쓸하다. 12년간 일하고 얻은 것은 골병뿐이라고 말하니 안타깝다. 우편집중국에서 새로 일하게 된 젊은 노동자가 ‘나도 십년 일하고, 이런 선배같이 되고 싶다’고 꿈꾸고 희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현순 언니도, 공공노조 우편지부도 파이팅!

*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2013년 12월 발간된 ‘전국우편지부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연구보고서’를 볼 수 있습니다.


[A-Z 노동이야기] 사회적 돌봄의 최전선에서 / 2014.4

사회적 돌봄의 최전선에서
'방문간호사 전미옥 씨를 만나고'


정하나 선전위원

 

돌봄. 어쩐지 글자 생김부터 뜻까지 봄과 닮았다. 따뜻하고 외롭지 않은 느낌, 겨우내 침체되어 있던 대지를 살살 달래 일으키는 봄과 닮아있다. 국어사전에서 [돌봄]과 기본형 [돌보다]의 뜻을 찾아봤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는 뜻을 같고 있었다. 내친김에 [보살피다]도 찾아봤다. 뜻은 “정성을 기울여 보호하며 돕다, 이리저리 보아서 살피다”이다. 그리고 며칠 전 4월 어느 봄 돌봄과 뜻이 똑 떨어지게 어울리는 방문간호사 전미옥 씨를 만났다.

 

방문간호사, 사회적 돌봄서비스

 

대부분에게 개념도 생소한 방문간호사는 2007년부터 도입된 일자리로, 보건복지부 정책인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 내 배치된 인력으로 빈곤·질병·장애·고령 등 건강위험요인이 큰 취약계층 가구에 대해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이 직접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에서 제공하는 ‘사회적인 돌봄 서비스'[각주:1]이다.

 

“이 제도는 전 국민 건강관리사업인데, 있는 제도를 지침대로만 잘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한편 취약계층 대상에는 노인들뿐 아니라 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족, 새터민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전미옥 씨는 보통 아침 9시 지역 보건소로 출근해서, 전산 작업을 마치고 10시 반부터 방문 업무를 시작으로 6시 퇴근까지 약 여덟 가구를 돈다고 했다. 방문한 가구들에서는 주로 주기적인 건강문제 스크리닝을 하는데, 건강행태 및 건강위험요인을 측정하고 영양·운동·절주·금연 등 생활 지도도 했다고 한다.
 
“그냥 간이로 혈당 체크 하는 그런 걸로는 정확하게 진단이 안 나오거든. 난 그래서 이~~따만한 거, 큰 기계 그런 거 맨날 들고 왔다 갔다 그랬죠. 무겁지만 난 꼭 그걸 들고 갔어요. 제대로 해야지. 그러려고 하는 사업인데.”

 
꼼꼼하게 측정해주고 잔소리해가며 건강을 챙겨주는 전미옥 씨 덕에건강 인식도와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알게 된 어느 할아버지는,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이면 담배를 끊지는 못했어도 많이 줄였다 자랑하시려고 방에 배인 담배냄새 빼기에 열중하셨던 분도 계셨다고 한다.

그런 분들 애정에 대한 예의일까? 아니면 전미옥 씨의 책임감에서 나온 행동일까? 전미옥 씨는 남다르게 명함에 일부러 개인 휴대폰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퇴근 시간 이후에, 주말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무조건 받았다고 한다.
 
“혼자 사는 어른들은 갑자기 아프시기도 하고 다치시면 또 큰일 나니까요. 그리고 저 말고 다른 데에 할 데가 없는 거 같더라고”

 

최말단이지만 돌봄의 최전선

 

“우리는 추우나 더우나 집집이 방문하는 게 원칙이잖아요. 일반 병원에도 방문간호사가 있기는 한데 근데 그분들은 환자가 집에서 콜 하면 그제야 가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와 달라’하기 전에 먼저 명단 받아서 사례를 발굴하죠.”

 

전미옥 씨와 같은 시(혹은 군/구)와 계약된 방문간호사들은 현재 시 직영 소속이 아니다. 위탁업체의 소속으로 계약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을(乙)도 아닌 병(丙)이다. 그래서 집집이 방문했을 때 공무원 인줄 알고 요청할 경우에 충분히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답이 감동적이었다.

 

“저희는 솔직히 최말단에 공무원 신분이 아니니까 행정상으로 무언가를 해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잖아요. 이 집에 장판이 얼마나 뜯겼는지, 문이 내려앉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가 다 눈에 보여요. 방문하는 집에 어르신, 그 가정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복지문제 전반을 발굴하는 거죠. 근데 저는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 적어서 실제로 사회복지사나, 반찬 지원이나 벽지기부 해줄 수 있는 가게 등 타 기관이랑 연계하고 그렇게 했어요. 월급은 적어도 그게 너무 보람 있었어요. 내가 정말 일을 많이 물어다 줬는데 상대들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웃음)”

 

인터뷰 내내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지 느껴졌다. 방문간호 일을 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람들의 삶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서일까? 전미옥 씨는 몇 주 혹은 몇 달에 한 번 와서 측정하고 말 한 번 나누고 가는 의료 전문인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시키지 않았다.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돌봄 주체의 역할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한창 일하던 시절에 만났었더라면 서비스 수혜자분들의 건강보다 전미옥 씨의 과로를 도리어 더 걱정했을 것 같다.

 

위탁운영, 저질 방문간호의 지름길
 

 

현재 전미옥 씨는 해고 상태이다. 2012년 12월 31일 자로 계약이 만료됐다. 그리고 어느새 복직 투쟁을 시작한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2007년 사업 초기에 입사해서 해고될 때까지 휴직 없이 쭉 5년을 일했는데 그중 단 6개월도 그녀는 시(화성) 소속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다. 처음에 단기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매년 재계약하는 형식이었다가, 업무대행으로 체계를 바꿨다가, 급기야 2011년 민간위탁으로 바뀌면서 그녀는 비정규직, 개인사업자를 거쳐 지금은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위탁으로 바뀌면서 여러 가지 바꿨죠. 저희는 방문하는 게 가장 중요해서 일부러 ‘방문’ 간호사라는 직함을 준거잖아요. 근데 방문간호사가 아니라 연구요원, 교수님으로 바뀌었어요. (웃음)” (학교법인에 위탁을 해서 대학 산학협력단 소속이 됨)

 

위탁운영 체제로 바뀐 이유는 비용문제가 가장 크다. 정부가 고령화, 핵가족화, 여성노동시장 진출 등 사회 환경이 바뀌고 복지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06년부터 <사회서비스 확충전략>을 발표한 이후 실제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정부에서 비용의 임계치를 넘어선 사회적 돌봄서비스를 민영화하면서 팔아넘기고 있다.

 

“1년에 한 번 행안부 평가가 있는데, 평가기준이 이상해졌어요. 민간위탁으로 바뀐 후로부터는, 양적인 향상만 중요시 여기는 거예요. 건강증진이 목적인데 말이죠. 참나, 예전에는 조절률 같은 부분을 많이 보았거든요. 당뇨나 혈당이 얼마나 많이 조정되었는지, 그게 제일 중요했는데 이런 게 다 없어졌어요. 무조건 양적 기준 중심이에요”

 

또한 평가를 통해 지역마다 경쟁을 부추기는 가운데, 1등한 지역에는 상장을 준다고 했다. 1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위탁운영 체제다 보니, 1등 한 지역 법인은 다음 연도 계약에 유리하다고 한다. 또한, 하루 방문건수가 중요하지, 그 외에 방문해서 서비스 수혜자와 어떤 대화를 했고 시급한 필요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쌓을 것이며 건강관리 도움을 줄 것인지 등의 과정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 결과 방문간호사 파견이 목적대로 집집이 방문을 통해 각 가구의 필요도나 긴급함에 대해 세밀하게 관찰해 연계를 맺게 해주거나 보고하는 등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맺어왔던 기존의 방식은 번거로운 사업, 미련한 돌봄 노동이 되어버렸다.


“사례 발표회 같은 걸 하거든요. 요즘엔 보면 경로당 가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 그것도 못하면 당신이 정말 수완이 없는 거다, 뭐 이런 발제들을 해요. 하지만 제가 있는 봉담읍은 도농복합 지역이라 외진 데는 정말 외지거든요. 서울 경로당 분위기랑 다를뿐더러, 정작 이 서비스가 필요할 거라 예상하는 분들은 경로당에 절대 나오지 않으셔요. 돈도 없고. 자식도 없고 자랑할 게 없는 분들은 그렇거든요. 그러니 애초 사업 취지상 그분들 만나러 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원칙대로 집으로 다시 방문하는 게 맞는 거죠. 평가에서 말하는 실적은 못 채워도요”

 

원칙의 열정을 응원하며

 

방문간호사 전미옥 씨와 인터뷰에서 몇 번이나 나왔던 말은 지침·원칙이었다.

 

“원칙을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사실 원칙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도 원칙을 얘기했다. 방문간호사의 직업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돌봄의 마음으로 원칙의 노동을 하는 전미옥 씨의 건투를 빈다.

 


 

방문간호사제도란?

 

2007년부터 국민건강증진을 위하여 방문건강관리사업이 시작되었다. 방문건강관리사업은 건강문제가 있는 취약계층을 우선 대상자로 하고 있기에 그야말로 건강 취약계층에게는 단비 같은 복지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이 사업에 있어 집집이 방문하는 방문간호사는 필수적인 성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간호사의 고용형태나 질은 열악하다. 방문간호사의 고용형태는 보건소에서 직접 고용하는 무기계약직, 기간제와 외주위탁 업체에 고용된 기간제 노동자로 분류된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보건소에 기간제로 방문간호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기간제로 유지하거나, 외주위탁을 시행하고 있다.

의료 취약계층에게는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수행하는 자의 신분이 불안정한 이유는 첫째, 공무원조직의 확대를 정책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무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보건복지 관련 일선 종사자의 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이유는 예산절감과 배정의 문제이다. 방문간호사의 직접고용 또는 적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간호사 서비스를 받는 취약계층의 사회적 요구와 영향력이 적은 관계로 이들에 대한 서비스 질 향상에 예산을 배정하기보다는 지역유지의 관심인 개발과 전시 행정이 앞으로 지자체장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1. 공공부문의 직간접 개입을 전제로 하는 서비스로서 대개 노인, 장애인, 아동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대인돌봄 서비스(사회적 돌봄서비스 공급체계 현황과 특징. 김은정. 20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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