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2015.12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 주제전문 사서에게 듣는 도서관 노동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예전부터 궁금했다. 한 도서관 안에는 몇 권의 책이 있을까? 도서관의 그 많은 책은 누가 선별하고 구매해서 채워놓은 것인지, 그리고 책등마다 쓰인 암호 같은 번호는 누가 다 붙이는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일반 대학도서관 같은 곳을 기준으로 하여 대략 50만~100만 권 정도의 책이 있어요. 도서관의 성격에 맞게, 이용자의 필요에 맞게 책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채워 넣는 일, 바로 사서가 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각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가 어떤 책을 골라서 채워 넣는지에 따라 그 도서관의 성격이 디자인된다고도 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19일 서울에서 만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사서 김인희(가명)씨가 시원하게 대답해 줬다. 십만여 권의 책들 속에서 일하는 김인희씨는 도서관에서 '주제전문 사서(주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사서는, 많은 자료와 문헌을 잘 조직해서 정보이용자가 필요한 자료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중 주제전문 사서란, 특정 주제에 관한 자료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전문도서관? 주제전문 사서?

 

"저는 사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에요. 원래는 법학도였지요. 졸업한 지 꽤 지난 후에 사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서교육원에서 1년간 문헌정보학이랑 도서관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서 자격증을 취득하였어요. 주제 전문사서는 별도의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일하는 법학 전문도서관처럼, 한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특히 주제 사서를 필요로 하곤 하는데, 그때 채용요건으로 나오는 걸 참고해 말씀드리자면, 정사서 자격증을 가진 사서 중 학사·석사를 문헌정보학 외의 전공을 한 사람들이 주로 합니다. 다루는 주제에 대한 심화한 지식이 있어야 하니 그런 것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말씀드렸다시피 법학·법률을 좀 아는 쪽이니 여기에서 법학 주제 사서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인희씨가 일하는 곳은 '법학 전문도서관'이라 일반 도서관이랑은 다소 다르다. 해당 도서관은 현재 약 13~14만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분야의 책도 갖춰놓기는 했지만, 법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전문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곳이라 아무래도 법학 자료의 비중이 더 높다.

 

"법학 분야라고 해도 단순하지가 않죠. 헌법·형법·민법·상법·행정법·노동법·세법 등 엄청 종류가 많아요. 여러 가지 법학 자료 중에서 꼭 알아야할 핵심적인 게 있을 텐데, 근데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자료'라는 것은 그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죠.

만약 이용자가 일반 시민이라면 '생활법률'과 같은 실용 자료를 많이 갖춰야 하겠지만, 저희처럼 법학 전문도서관은 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를 위한 곳이니 또 다르지요. 이처럼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도서관이 제공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와 정보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약 70여 개의 전문도서관이 있다. 모든 분야의 책을 되도록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전문도서관의 경우 인문·철학·과학·의학 등 특정 분야 전문 서적과 자료를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 연구자와 같이 특정 이용자들을 위해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 많은 부모에게 주목받고 있는 어린이도서관 역시 전문도서관의 한 종류이다. 방송사 안에 있는 음악자료실 역시 음악 전문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들이 중앙도서관 외 몇 학문 과목을 특화해 해당 단과 대학 안에 전문도서관을 두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로펌이나 의료기관, 미술관 혹은 기업들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료를 모으고 검색할 수 있게 전문도서관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을 채우기 위해 사서가 하는 일

 

"대부분의 도서관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수서·정리·봉사 이렇게요. 첫째 수서(收書) 업무는 어떤 도서나 자료를 갖출 것인지 기준을 가지고 선별하는 일입니다. 사서 업무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도서관의 성격은 수서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신간 도서나 자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도서관에 이미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도 잘 알아야 하겠지요. 그래야 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고루고루 갖출 수 있게 되니까요."

 

수서 업무는 팀장급 되는 사람이 주로 맡는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직접 수서를 하기도 하지만, 이용객들에게 부정기적으로 신청도서를 받아 책을 고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문도서관으로서 보유도서를 잘 선별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법학 도서 외에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전문자료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수서를 잘해서 들어온 책들을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게끔, 잘 분류하고 종류별로 '정리'하는 업무가 있어요. 청구기호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 책등에 라벨링이 되어 있잖아요. 청구기호 중에서 제일 먼저, 책의 내용에 따라 주제를 정하는 분류기호를 부여하고 전산 목록화 하는 일도 바로 정리업무이지요. 자료가 단행본인지, 시청각 자료인지, 정기간행물인지 등 자료 성격에 따라 별치기호를 달아주고, 한국 십진분류표(KDC) 혹은 듀이 십진 분류법(DDC, 국제공인 기준)을 기준에 따라서 자료의 주제에 맞게 분류번호를 주는 것이죠. DDC를 예를 들면 사회과학은 300번대인데, 그중에서 법학은 340번대이지요. 주제에 잘 맞게 이 분류를 잘해서 정리해 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 그래야 전산 검색어를 넣어 문헌을 찾을 때도 이용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DDC 분류기준을 따르는 대학도서관의 책인데 KDC를 따라서 정리·분류를 했다든지, 미국의 계약법을 다룬 책인데, 민법 안에 계약법이 속해 있는 한국의 법체계에 맞춰 분류기호를 틀리게 넣는다든지 하면 안 돼요."

 

인희씨는 수서나 정리 업무보다는 데스크에 앉아 주로 도서관 이용자들을 직접 응대하는 봉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서관 장서 중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절차에 따라 대출해 주고 반납을 확인하는 것, 도서관의 전반적 이용안내를 해주는 것도 담당한다. 이 외에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로서 '참고' 봉사 업무도 한다. 이용자에게 각 주제에 관한 자료 조사를 도와주는 것이다.

 

"대출·반납이나 서가 정리 같은 일들은 사서 아닌 단기계약직 분들이 주로 많이 하세요. 제가 하는 일 중 참고 봉사 업무는 저희 도서관의 주 이용객인 연구자들이 연구주제에 맞춰 요청하는 자료를 찾아주는 일이에요. 한 달 평균 50~60건 정도 요청이 있는데 법학 주제사 서인 만큼 제가 무엇보다 신경 써서 잘해야 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이민법 자료를 달라고 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세요. 그럼, 저는 한 번 더 질문해요. '혹시 연구전공이 어떻게 되나요?'하고 여쭤보면 '헌법 중 행복추구권 쪽으로 논문 쓰려고 합니다' 등의 대답이 나오거든요. 그럼 그 주제에 맞춰서 키워드 세부검색해서 나오는 자료리스트랑 파일을 직접 전달해 드리는 것이지요."

 

책을 위해 존재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고객 응대를 하는 서비스 업무가 주는 피로도 왜 없겠느냐마는, '더 친절하게 이용자를 대하라'라고 하는 상사의 말이 인희씨에게는 그렇게 부대끼는 업무지시는 아니라고 했다. 현장업무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힘듦보다는 자료보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공간의 특성이 주는 불편함이 오히려 거슬린다.

 

"도서관들이 대부분 밤늦게까지 열지만 몸에 무리가 오는 교대근무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 도서관은 주간 조가 9시~오후 5시까지 일하고 야간 조가 오후 2시~오후 9시까지 근무하도록 되어 있는데, 저는 주간 조 전담으로 일해요.


도서관 내부 온도습도 같은 게 사람이 아니라 책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여름에 너무 춥거나 겨울에 너무 건조하거나 이런 게 좀 불편하지요. 그리고 손목이 좀 나가는 경향이 있죠. 책 중에서도 법전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걸 자주 드니까 아무래도 좀 그런 게 생기죠."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법학 자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인희씨는 전반적으로 사서 일을 즐기고 있었다. 더욱이, 특정 자료가 필요한 이용자에게 적절한 연구자료들을 잘 찾아서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자 보람이라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인희씨는 앞으로 소장자료를 선별·선정하는 수서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일하는 곳이 법학 전문도서관인 만큼, 연구에 필요한 희귀한 자료를 잘 찾아내고 갖춰 단골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연구재료를 제공하고 싶어요. 또, 다른 곳에서도 우리 도서관에 자료 공유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게 바로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가 할 일인 거 같아요."

[A-Z 노동이야기]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일하는 현정 씨의 하루 /2015.11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일하는 현정 씨의 하루
- 법률 사무소 소장 현정 씨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김앤장, 광장, 태평양, 율촌, 세종, 지평, 화우” 한번쯤 언론을 통해 들어보았을 법한 국내 최고 로펌으로 일컬어지는 법률 사무소들의 이름이다. 대형로펌들은 삼성, 현대, 기아 등 국내 대기업 물론 외국계 기업의 M&A, 구조조정, 인사 노무를 비롯해 지적재산권, 특허권 등 법적 분쟁을 해결한다. 거꾸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일터는 앞서 언급했던 로펌들과 달리 변호사 1명이 운영하는 작은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현정 씨를 만났다.

 

 

특별한 철학으로 운영하고 있는 법률 사무소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ㄷ법률사무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하는 현정입니다. 대학에서 법학 전공하고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어서,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벌써 6년이 지났네요.

 

 

법률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는 현정씨

 

다른 법률 사무소와 다르게 직함이 소장인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일반 사건이 아니라 노동인권전문 사건들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과 관련된 부당해고, 해고 무효 확인 소송, 체불임금,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이런 사건을 주로 맡아요. 그렇다보니 일하는 노동자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이 직함을 달고 있어요.

 

처음부터 특별한 사무소인줄 알고 오셨나요?

 

아니요. 처음엔 이럴 줄 몰랐어요. 면접 볼 때 여기는 일반적인 사건은 맡지 않고 노동자들 사건을 주로 맡는 사무실이라고는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어딜가나 다 똑같은 사건만 맡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특색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특별한 느낌이 있었어요. 채용 공고가 나서 서류 제출후, 보통은 사무실 직원들이 면접통보를 해주고는 하지만 변호사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마치 저를 모시는 듯한 대우를 해주셔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친절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품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면접을 봤는데 다행이 마음을 놓았어요.

 

어떤 점이 긴장, 의심을 풀게 되었을까요?

 

변호사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권위적일 것 같은데 변호사님이 너무 수수하시고 마인드가 보통 분들과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런 분과 함께라면 일하면서 배울게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를 대하실 때 나는 변호사고 너는 직원이다 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본인을 항상 낮추세요. 생각만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하시구요. 그런 부분이 존경스럽고 지금까지도 같이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현정 씨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오~ 좋은데서 일한다 이런 반응이었어요. 제가 맡고 있는 사건이 티비에 방송되고 보도될 때마다 가족들은 지금도 많이 자랑스러워하세요.  친구들도 저희 일에 특성상 집회나 이런 것들에 참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빨갱이? 이런 얘기도 하더니 지금은 아무래도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높게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6년 정도 일했으면 관성에 빠지거나 일이 지겨울 법도 할 것 같은데 슬럼프 같은 건 없었나요?

 

작년에 회의감이 크게 왔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번 회의감이 몰려오고 나니까 안 좋은 이야기를 듣거나 접할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령 저희 사무실에 오시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저희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힘들 때가 있어요. 왜 변호사를 산다고 하죠. 너는 내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소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노동조합 간부들이 보일 때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일부 그런 분들 있는데 정말 그럴 때는 회의감도 느끼고 참을 수가 없어요. 조합원들은 저런 분들을 믿고 따를 텐데 그런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 선들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그러면 변호사님은 또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제가 노동조합에 대해 왜곡되게 생각할 까봐 안타깝게 생각하시고요. 일부 몇 사람 때문에 왜곡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제 입장에서 허탈해요. 의욕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저런 분들을 위해 제가 열심히 해서 재판에서 이긴들 뭐가 달라질까라는 고민이 들어요.

 

 

법률 사무소 소장의 하루

 

하루가 정말 바쁘시죠? 일과가 대략 어떻게 되나요?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해요. 퇴근시간 잘 지키는 게 사무실 방침인데 일의 특성상 갑자기 사건을 맡게 되거나, 급하게 뭔가를 제출해야 할 때는 퇴근이 늦어질 때도 있어요. 재판은 기한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안 그러면 재판 결과에 불이익이 있거든요. 출근해서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진행 중인 사건을 검색 하는 거예요. 상대측에서 어떤 자료가 제출되었는지. 판사님이 명령을 내린 게 있나 그런 걸 파악해야 해요. 재판 기일이 잡혔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재판에 제출할 서면 검토하고, 제출 할 서류들도 챙기고요. 재판 전에 준비해야 할 자료들 있으면 그거 준비하러 법원이나 검찰청에 가서 서류를 등사 해 와야 해요. 또 신문기사도 많이 봐요. 사건 준비하면서 많은 사업장들을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보게 되더라고요. 여기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그런 것들. 일을 하다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 진 것 같아요.

 

기사들 접하다보면 대형 로펌들 얘기가 많이 나올텐데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들어요?

 

기사뿐만 아니라 지금도 거의 대부분 사건이 김앤장, 태평양, 화우 이런곳과 싸우는 거예요. 대기업 사건은 더욱 그래요. 그렇다보니 소위 대형 로펌에 대해서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하는 적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솔직히 없는 것 같아요.

 

재판 관련 업무 외에도 사무실 살림 꾸리는 게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사무실 특성이 있다 보니까 입사해서부터 지금까지 풍요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월급도 솔직히 넉넉하지는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고 또 돈은 쓰기 나름이라서 돈을 따진다면 지금까지 이 일은 못했을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무실 식구와 관계는 괜찮으세요?

 

직업의 특성상 항상 억울하거나 부당함을 많이 겪은 사건을 이겨야하는 그러나 이겨야 본전인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음적으로 많이 힘든 직업이에요. 얼마 전까지 웃으면서 같이 상담하고 재판 준비했던 분들이 상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요. 변호사님이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을 안 하시는데 전화가 오면 겁부터 나더라고요. 또 누가 돌아가셨나. 그래서 한때는 전화벨이 울리면 덜컥 겁부터 나고 공황장애 같은게 올 정도로 힘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고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뭔가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껏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내담자가 있나요?

 

쌍용차 사건인데, 처음에는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것도 기계적으로 일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쌍용차 사태 때 관련 영상이나 책을 접하고 한상균 당시 쌍용차 노동조합 위원장을 사건 맡으면서 피가 거꾸로 솓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현장에 있던 아이들을 접하면서 왜 정말 크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아 내가 몰랐던 것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사건마다 개인적인 감정 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저희 사무실의 특성이 저에게도 흡수가 되는 그런 느낌이었죠.

 

일하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 진행하는 소송들이 좋은 성과를 얻어서 또 하나의 판례를 남기면 뿌듯할 것 같아요. 기존에 저희에게 불리했던 판례가 있다면 뒤집었으면 좋겠고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법이 자리 잡는데 일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엇이든. 제가 겪고 있는 중에 한가지라도 작게나마 좋게 변화가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일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아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느끼고,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어요. 그런분들과 더불어 웃으며, 즐기며,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어요.

 

[A-Z 노동이야기]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2015.10

취객만 상대해야 하는 노동의 고달픔

- 주말 대리운전 아르바이트 박준형(가명)씨



정하나 선전위원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가, 팍팍해진 국민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외친 문구이다. 오늘 만난 박준형(가명)씨는 투잡(two-job)족이다.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녹록지 않아 투 잡을 뛰고 있다. 주말 저녁, 준형씨는 나이트클럽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나오는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콜을 기다린다. 겹벌이로 대리운전을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겨우 받다 보니 생활이 힘들어서요.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생활비 딱 떼면 단 얼마라도 저축도 하고 싶고, 하다못해 친구들이랑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영 여윳돈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대리운전이라도 해서 투잡 뛰는 거죠. 일반 대리기사들은 업체에 대리기사로 등록하고, 각자 휴대전화에 해당 업체 앱을 깔아서 손님 전화를 받잖아요. 저는 그렇게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나이트클럽 지배인으로 일하는 지인이 업소에서 직접 연결해 주는 대리기사 조로 일하고 있어요. 업체 애플로 콜을 받는 게 아니니 건당 수수료를 떼는 것은 없죠. 대신 4대 보험이 안 되니 산재 적용 같은 건 안 되고요."


치열한 업계, 그래도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평일 근무시간을 빼고 밤에, 그리고 출근 안 하는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대리운전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대 때 유흥업소에서 홀 관리 매니저를 한 경력이 있던 준형씨는, 과거 웨이터로 있었던 후배한테 연락했다. 지배인이 된 그 후배를 통해 지금 하는 일을 운이 좋게 연결받았다.


"한 달에 못해도 10번 정도는 나가려고 해요. 최소한 4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게요. 원래는 비정기적으로 그냥 돈 필요할 때 후배에게 전화해서 '오늘 콜 연결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3~4년 전부터는 주말에는 꼬박꼬박 안 빠지고 다 채워 나가려고 하고요. 주중에도 일이나 약속 없을 때는 대리 뛰어요."


2010년 한 취업정보업체가 직장인 7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투잡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0명 중 6명이었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은, 주로 직장생활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일, 집에서도 가능한 일, 퇴근 후 할 수 있는 단순 시간제 아르바이트,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운전은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시간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두 번째 일자리(second job)가 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시장 경쟁이 너무 치열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낸 '대리운전기사의 노동조건과 환경실태 분석(2015)'에 따르면, 대리운전 수입에 불만족한 비율이 62.6%다. 또한, 지난 3년간 수입이 줄었다는 응답이 80.4%에 이르렀으며 가장 큰 이유는 '건당 운임 감소'를 꼽았다고 하니 업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이 된다.


"밤에 하는 거라 피곤하고, 원래 일도 있으니 그리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죠. 용돈 정도 번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나이트 후배한테 전화해서 '형 오늘 한다'고 얘기하고 저녁 7시부터는 손님 연결해 주길 기다리고 있죠. 나이트클럽에 나가서 기다리는 건 아니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대기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가 전화 받으면 나이트클럽 주차장으로 손님 태우러 가는 거죠. 대부분 나이트 주변 강남 동네들로 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 시내 안에서는 2만~2만5000원 받거든요.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면 다 나이트 근방 고만고만한 행선지로 가는 사람들로 채워질 때가 있는데 그러면 손님 3~4명 받아서 1시간에 10만 원 훅 벌 때도 있죠."


수도권의 일반적인 대리운전서비스 요금은 2만5000원이다. 대리운전 업체의 대리운전 기사들은 소속된 대리업체와 대리운전 요청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업체에 이 중 5000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나이트클럽 전용 혹은 프리랜서 대리기사인 준형씨는 손님에게서 받은 돈이 온전히 자기 몫으로 들어오니 좀 나은 편이다. 


"나이트클럽은 저 말고도, 4개 대리업체에 손님을 나눠주고 있어요. 저랑 4개 업체에 웨이터(혹은 지배인)들이 적절히 손님을 나눠주는 그런 식인 거예요. 제가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대리 요청받으려고 대기를 타고 있는데요. 물론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지만, 만약 서울근교 원거리 가시는 분들이 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당장에 가죠. 근데 분당이나 성남 같은 특별케이스는 드물어요."


나이트클럽과 연결된 대리업체들도 자체적으로 기사수급이 안 되면 준형씨에게 콜을 넘겨준다. 그럴 땐 받은 대리비 일부를 수수료 조로 업체에 보낸다. 그 업체의 소속 기사가 아니라 수수료를 줄 필요가 없긴 해도, 나름의 상도를 지켜야 서로 좋고 오래 할 수 있다는 게 준형씨의 생각이다.


가장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자는 손님

택시 운전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야간 운전이 몸도 힘들지만, 취객들 주사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벌이는 좋지만, 일부러 야간 택시 안 뛰는 분들도 있을 정도이다. 유흥업소가 많은 시내에서 손님을 태울 때 일부러 너무 취한 사람은 태우지 않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준형씨 같은 대리기사들의 경우 늘 취한 사람만 태워야 하니 고충이 클 것 같았다.


"제일 편한 케이스는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죠. 다 취한 상태에서 대리를 부르는 거라서 보통 말이 짧습니다. 어느 정도 주사 부리는 건 기본이에요. 욕하는 손님도 많고요. 자꾸 반말하고 욕하면 '손님, 반말(혹은 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태워드릴 테니 주무시고 계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도 취기에 안 자고 더 뭐라 뭐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룸미러로 쳐다보면서 한마디 하죠. '저도 긴 시간 세상 험하게 살다가 최근 마음잡고 운전대 붙잡고 있는 겁니다, 착하게 살게 좀 도와주십시오!' 시커먼 놈이 저런 멘트 날리면 아무래도 좀 무섭겠죠?"


준형씨도 이쪽 업계 오래 하신 선배 기사분들한테 배운 말이다. 이런 위협적인 멘트를 날리고 나면, 손님들이 신기하게도 주사를 접고 뒷좌석에서 잠든다고 한다. 취한 사람만 태우는 운전이다 보니 '진상' 손님들이 정말 많지만 준형씨는 그런 일로 크게 스트레스받거나 마음에 담아두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그도 잊지 못할 희대의 진상을 한 번 만난 적 있다.


"한 번은 저보다 한참 어린 젊은 사람 2명이 탔어요. 어느 동으로 가자고 그래서 '네 손님, 알겠습니다'하고 출발했죠. 손님들이 보면 차에 탔을 때는 비교적 멀쩡한데 자기 차에 딱 타고나면 그때부터 긴장이 풀리는지 가다 보면 더 취하고 거칠어지는 손님들이 많거든요. 이분들 이 딱 그랬는데 한 몇 분 지나니까 말이 짧아지면서 계속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예요.


'아저씨, 어느 동으로 가 달라고요!'라고 그러면 제가 '네, 손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창밖 보세요. 지금 어디까지 왔고 가는 길이지 않습니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인 거죠. '아 씨! 야 어느 동으로 가 달라니까!' 이렇게 말이 짧아지더니. 막 상욕도 하더라고요. 둘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때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를 세우고 뒤에 두 손님 내리라고 했죠.


술 취한 사람들이 뭐 이성적인 얘기가 귀에 들어가겠어요? 내리게 한 다음 밖에 세워놓고 '나랑 싸우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그럼 한 번 싸워보자, 덤벼라'하면서 겁 좀 줬죠. 그랬더니 바로 깨갱 하고 그다음부터는 조용히 가더라고요. 대리운전 이용하는 사람들도 좀 알아야 해요. 기사들 우습게 보고, 함부로 대하고, 욕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손님들도 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서울시 대리운전 기사 300명 중 손님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85.9%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폭행 횟수는 한 해 3~5회가 47.2%, 10회 이상도 15.5%나 된다. 또한, 폭행을 당하고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57.3%나 나온 것을 보면 대리기사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참 만만치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대리기사가 노동과정 중 폭력을 경험하고 있지만, 박준형씨가 그랬듯 참고 넘기거나 자력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대리기사들을 위한 이렇다 할 법적 보호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인식도 저열하니,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퀵돌이 대리기사, 나름 단골도 생겼다

반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좋은 손님도 만났다. 가는 내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음이 잘 맞는 손님이 있었다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그 손님이 해 준 얘기가 준형씨에게 그날따라 위로도 되고 힘도 되었다. 행선지에 도착했는데 몸을 잘 못 가누시기에 집 대문 앞까지 부축해드렸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급기야 잠깐 들어와서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집 안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부축해서 집에 들어갔더니 가족들은 제가 같이 술 마신 지인인 줄 안 거죠. 아내 되시는 분이 처음에는 '우리 양반, 술을 왜 이렇게 먹었느냐, 좀 말리지 그랬냐'라고 핀잔을 주시다가 '저 대리기사인데요'하니 깜짝 놀라시면서 모시고 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과일 깎아 주시고, 커피 타주시고. 그런 좋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아무튼 제일 편한 손님은 타자마자 바로 자는 손님이고. 하하하."


준형씨는 벌써 6년째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를 특별히 지목해서 불러달라고 하는 손님이 생겼을 정도이다. 운전을 잘, 빨리하는 준형씨의 스타일이 맘에 드는 손님들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직접 소개해 주는 기사이니 신원도 확실해서 안심되어 준형씨를 찾는 듯하다. 인터뷰하는 날도, 술 마시러 오라는 친구의 전화를 거절하고 손님 태우러 대기하러 가던 퀵돌이 대리기사 준형 씨. 그의 늦은 귀갓길이 손님들만큼 편안하길.



[A-Z 노동이야기]“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펴드립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 씨 /2015.9

“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펴드립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 씨

 

 

 

문영, 유기훈, 이재중 (2015 여름 한노보연 학생실습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친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어딘지 모르게 진부함이 느껴지는 이 카피는 산모·신생아 건강 관리사를 소개하는 한 업체 광고에 나오는 문구이다.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연상하는 사랑 과 헌신의 속성을 광고 문구에서 보는 것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이 광고 한 줄의 광고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이선영(가 명) 씨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해가 넘어가는 초저녁, 산모의 집 에서 일을 끝내고 퇴근한 선영 씨를 만났다.

 

10년 넘게 집에만 있다 하게 된 일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라는 직업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계획해서 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제가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정부 하청 산하 기관에서 ‘내 일 찾기’라는 프로그램을 참여했거든요. 고용노동부 지원으로 취업 교육 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을 하던 중에 어떤 사람이 제 성격을 보고는 집에 있을 사람인 것 같으니까 그런 분야로 교육을 받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산모·신생아건강관리사 교육을 2주간 60시간 받았고, 일을 시작한 건 6월 초부터니까 지금 3달째네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란 전문 교육을 받은 관리사가 출산가정을 방문해 산모의 건강회복과 신생아 돌보기, 그리고 이에 관련된 범위 안에서의 가사를 주 업무로 하는 직업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경력단절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재진입 시키기 위해 ‘여성인력개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센터에서는 ‘여성 적합형 일자리’에 관련된 직업 상담, 직업교육훈련,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선영 씨 역시 여기에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일자리를 추천받아 교육을 이수하고 취업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전업주부였죠. 그러다가 작은아들이 커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어요. 그 때 큰 애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막내는 없을 때니까, 이제 가계 사정에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학습지 교사 일을 1년 정도 했죠. 근데 원래 학습지 교사가 하루 종일 나가 있잖아요. 거의 10시까지 밤늦게 일을 끝내고 집에 와보면 첫째는 컴퓨터 게임 하고 있고, 둘째는 방바닥에 엎어져 자고 있고... 그걸 보고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이런데 지금 내가 다른 아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할 때인가. 그래서 그만뒀어요.”

 

자식들 교육을 위해 큰 결단을 하고 일자리를 포기한 후, 선영 씨는 틈틈이 자잘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금액이 적더라도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시 직업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올해 54세의 10여 년의 경력단절 여성인 선영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뻔했다.

 

“16년 전, 학습지 교사 하면서 100만 원 이상을 받았어요. 당시 많이 받는다는 생각 안 했는데, 지금은 더 적게 받는데도 적다고 생각 안 들어요. 내가 지금 이 나이 되어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고, 내가 어딘가에 전문적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중간에 경력단절이 있으니까. 직업을 찾아도 50대 넘어가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그래도 집에서 단순한 알바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하는 게 몸은 힘들지만 좋은 것 같아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매뉴얼에 없는 한 가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요. 평일은 9시부터 5시까지 8시간, 토요일은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 이렇게 2주 동안 진행을 하거든요.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산모 아침 챙겨주고 청소하고, 어제 널어놓았던 빨래를 개요. 점심이 되면 점심을 챙겨주고 그사이에 제가 아기를 돌보죠. 그리고 아무래도 산모가 피곤하니까 낮잠을 자게 되면 그 때 아기를 돌보고, 중간에 아기 목욕시키고, 빨래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에요. 저녁 준비를 하고, 산모가 저녁을 먹는 동안 아기를 돌보고, 설거지를 끝내고 퇴근을 하고... 그런 식이에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제가 가사 관리사는 아니에요.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대청소를 하거나 이런 건 제 일이 아니고, 산모를 돌보고 신생아를 돌보는 개념의 일을 하는 관리사예요.”

 

사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서비스는 취약계층의 복지를 위해 시행하는 보건복지부의 바우처 제도 중 하나이다. <산후도우미>지원사업이라고 해서 전국 가구 월평균소득의 65% 이하인 출산 가정에 선영 씨와 같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정한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일하게 되어있다. 매뉴얼을 보면 산모와 신생아의 몸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영양 및 건강상태를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 서비스 항목별로 상세하게 업무지침이 나와 있다. 하루 제공한 서비스를 기록하는 보고양식도 따로 있다. 하지만 이 업무 매뉴얼에 휴식시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명시되어있지 않았다. ‘휴게시간 1시간, 이는 점심시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 정도만 쓰여있을 뿐이다. 선영 씨는 ‘스스로 쉬는 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했으나, 산모와 신생아의 생활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중에 자율적으로 1시간을 쉬는 게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중간에 산모 좌욕 돌봄도 있고, 산모 복부 마사지도 1주일에 3번 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아기 예방접종 스케쥴에 맞춰서 산모랑 같이 병원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요. 거의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원래 한 시간을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쉬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많아 봤자 30분 정도 쉬는데... 내가 잘못된 경우예요. 토요일도 30분 쉬도록 되어있는데, 아직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어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제가 어영부영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생각하게 된 게 제가 산후 조리를 정말 못 받았거든요. 첫째 낳을 때 뿐 아니라 둘째 때도요. 아니 막내 때는 더 심했죠. 그래서 정말 힘든 사람들 생각해서, 힘들지만 바우처 일 쪽을 제가 많이 하고 싶었어요. 일을 해도 좀 보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생각해서 일을 하는 거예요.”

 

선영 씨의 경우 일한 3달 동안, 2명의 산모와 아기를 만났다. 바우처 지원사업으로 파견되면 평균 한 가정당 2주 정도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3개월이면 더 많은 가정을 돌았을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첫 산모는 1달, 두 번째 산모는 2달, 한 가정에서 꽤 오랜 기간을 일했다. 다른 산모들이 자신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일을 한다는 선영 씨의 마음이 통했는지, 한번 만난 산모들이 더 일해 달라고 업체에 따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산모가정과 확실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힘든 일일 것이다.

 

“산모들이 처음에는 아무래도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조금 지나다 보니 달라지더라고요. 지금 산모는 산후조리원에 2주 있었고 1주를 친정집에 있다가, 집으로 오면서 저를 부른 거에요.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도와줄 수 없거나 조금 부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바로 옆에서 관리해줄 수 있고, 먼저 이런 경험을 해봤던 사람으로서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가 많죠. 그러다 보면 산모도 저를 믿어주시게 되고요.”

 

막 출산을 마쳐 힘들기 이를 데 없는 산모와 가장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신생아. 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 빨래, 위생 관리, 육아 지도, 정신적 지지까지 모든 부분을 ‘전문가’로서 관리해주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는 그야말로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단지 이 역할이 현대의 서비스 산업 형태로 전환된 것으로 보였다. 한 업체의 광고 문구처럼 이선영 씨는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 동안 다른 집 산모와 신생아의 ‘친정엄마’가 된다. 선영 씨의 집에서 자식들의 ‘어머니’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본인의 가정으로 돌아가 밀린 가사노동을 그대로 떠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해도 또 비슷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사실 나잇대가 비슷한 다른 동료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좀 다를 텐데요, 저희 집은 막내가 아직 어려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죠. 집안일까지 신경 쓰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생활하다 보면 몸이 힘들어서 고생이긴 하죠. 그렇게 힘들긴 해도, 애기가 너무 예뻐요. 지금 애기는 60일 되었는데, 뭔가 보이고 그러나 봐요. 막 웃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정이 새록새록. 끝날 때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선영 씨는 ‘산모들이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한다,’ ‘아기를 자주 안다 보니 손목이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냐’, ‘이 일 하니 4대 보험도 되고, 나이 들어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릴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로 오랜만에 직장생활을 재개한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습 속에서 ‘어머니인노동자’ 그리고 ‘어머니 노동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엄마’의 역할로 이 사회의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존재를 말이다.

[A-Z 노동이야기] 6만 명을 매일같이 안전하게 떠나 보내죠 /2015.8

6만 명을 매일같이 안전하게 떠나 보내죠

-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신용쾌 부장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푹푹 찌는 삼복더위, 그래도 휴가가 있어 다행이다. 7월 말 8월 초 피서철이 되면, 각지의 계곡과 해변이 인산인해를 이룬 광경이 뉴스에 종종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 휴가 기간에 마치 유명 관광지처럼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이다. 2014년 기준 1년 이용객이 4500만 명을 웃도는 인천공항은 명실상부 아시아 항공교통의 허브다. 하루 평균 6~7만 명이 드나들고, 요새 같은 휴가철 혹은 연휴 시즌이면 이용객이 2배 정도 증가한다. 신용쾌(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홍보부장)씨는 이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공항에서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안전하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나라의 '관문', 즉 국경과 같은 이곳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해외 출국비행기가 주로 아침에 뜨는 탓에 공항은 오전이 더 붐빈다고 들었는데, 저녁인데도 사람이 꽤 많다는 나의 지적에, 신씨는 "어휴, 7,8월에 이 정도면 정말 한산한 거예요. 올해는 메르스 여파가 있어서 휴가시즌답지 않게 정말 이용객이 적은 겁니다"라고 답한다.


청와대 빼고 다 있는 작은 도시


"인천국제공항은 거의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예요. 은행, 병원, 식당,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없는 게 없어요. 관세청부터 국토해양부, 법무부, 심지어 국정원까지 정부기관도 다 들어 와있죠. 청와대만 빼고 말이에요. 일하는 사람만 해도 거의 4만 명이에요. 면세점이나 커피숍 같은 입점업체 직원들 제외하고도 말입니다. 저는 공항공사 공항보안처 내의 보안경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항에 오면 맨 처음 탑승 수속하고 짐 부치지요. 그다음에 하는 게 출국장 들어가면서 본인인지 확인받고, 짐에 뭐 위험한 거 안 들어 있는지 검사받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저희 보안처 요원들이 하는 일입니다."


보안요원은 두 종류로 나뉜다고 했다. 신용쾌씨처럼 '보안경비' 요원은 주로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VIP 전용 출입구 바로 앞에서 승객들이 본인인지 확인하는 일, 그리고 공항 상주직원들의 출퇴근 시 신원 및 소지품을 체크하는 일을 주 업무로 한다. 그 외 '보안검색' 요원은 탑승객의 신체와 기내수하물에 폭발물이나 무기 같은 위험한 물건이 들어있는지 검색하는 일을 한다. 금속탐지기로 승객의 몸을 검색하는 것, X-ray 검색대에서 짐 가방을 검사하는 일을 이 팀 요원들이 담당한다.


"공항이라는 곳이 사실 그렇잖아요.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의 관문 같은 곳이지 않습니까? 국경과 같은 느낌도 들지요. 게다가 외국인들도 많이 드나들고. 그런 곳이다 보니 보안·안전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매 순간 주의를 듣습니다. '보안검색·보안경비가 뚫리면 공항 안전이 다 뚫리는 거다'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보안팀 직원들에게 반경찰, 반군인에게 하듯 엄밀함을 많이 요구하지요. 아이러니 한 건, 중요한 직무라며 엄청난 주의를 요구하면서 정작 신분이나 권한은 비정규직으로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검색대에서 잡아내려고 하는 물건들이 '대테러 관련 유해 물품'이거든요. 승객들 보시는 안내문에는 '기내 반입금지 물품'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런 물품들이 테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일단 잡아내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솔직히 제일 잘 걸리는 건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시는 미용용 눈썹 칼이나 손톱깎이 같은 것이긴 해요. 아, 9.11테러 이후에는 기내 소지할 수 있는 액체량도 엄격하게 제한하니 더 걸리는 게 많아졌지요. 만에 하나 이런 종류의 물건들이 다른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나 폭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 생활용품도 공항에서는 엄격하게 제한을 하는 것입니다."


밤이고 낮이고 고도로 집중해야 하는 보안요원


▲  출국장 앞에 줄지어 서있는 여행객들. 경비보안요원은 몇몇씩 조를 이루어 각 출국장 문 앞에서 티켓을 소지했는지, 그리고 여권 사진과 승객 얼굴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낸다.


'보안' 업무라는 것은 일하는 곳, 지키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매우 집중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공항의 경우 신용쾌씨처럼 보안경비요원일 경우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승객들의 얼굴이 여권 사진의 그가 맞는지 잘 살펴야 하고, 티켓의 작은 글씨도 주의해서 봐야 한다. 13년째 이 일을 해온 신씨 같은 경우라면 노하우가 생길 법도 한데도, 까딱하는 사이에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자매인 분들이 오셨단 말이에요. 자신들도 모르게 여권을 바꿔 들고 출국장 경비요원한테 검사를 받아요. 여권이 바뀌었다 한들, 자매이다 보니 얼굴이 아주 비슷할 거 아닙니까? 사진이랑 약간 달라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거죠. 본인으로 판단해 들여보냈는데, 출입국심사대(법무부 소속)에서나 아니면 비행기 탑승 직전 티켓이랑 여권 이름 재확인할 때 걸린 겁니다. 그럼 바로 보안처 실책으로 접수되어 버리는 거죠. 보안검색에서도 마찬가지예요. X-ray 통과할 때 앞뒤 손님들 짐 정리를 한다든지 잠시 고개 돌리는 사이에 가방에 있는 금지 물건을 못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다 탑승 후 어떻게 알려지면 비행기가 떴다가 다시 돌아오는 상황도 있을 수 있죠."


안 그래도 일하는 시간 내내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 게다가 하루에도 몇만 명씩 드나드는 곳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장시간노동에 어떨 땐 밤샘근무까지 해야 하니, 있던 집중력도 다 닳아 없어질 판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국제공항'이기 때문에 김포공항 같은 곳과는 달리 24시간 운영한다. 그래서 보안부문 노동자들은 야간노동을 기본으로 하게 된다.


"밤샘 교대는 정말. 10년 넘게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전혀 적응이 안 되고, 하면 할수록 더 힘든 거 같습니다. 제가 있는 보안경비 팀은 24시간 공항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3조2교대로 하루는 주간(08:30~18:30), 하루는 야간(18:30~08:30), 그리고 비번 이렇게 돌아갑니다. 쉬는 날요? 주로 잡니다! 정작 잠자리에 누우면 항상 잠이 잘 안 오고, 다음날 또 피곤하고. 시차 바뀌는 거 때문에 아주 미칩니다. 그리고 제가 원래 혈압이 없었는데, 공항 근무 10년 넘게 하면서 혈압 딱 30 올랐어요. 검색 쪽은 밤새는 날은 없습니다. 올데이(all-day)근무라고 아침 6시 반부터 저녁 8시 반까지 하루 14시간 꼬박 일하는 날 하루가 있어요. 보안검색 동료들, 올데이 뛰는 날은 얼굴이 아주 말이 아니지요. 그 다음 날엔 오전 6시 반 출근해서 오후 1시까지, 셋째 날에는 오후 출근(1시)해서 밤 10시까지 일하고 하루 쉬는 4조3교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보안검색 팀은 비록 밤샘근무는 없지만 그래도 노동 강도가 경비 못지않아요. 검색 요원들은 기내 가지고 들어가는 짐들도 계속 들었다 놨다 해야 하고, 근무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도 잘 보장이 안 되는 분위기입니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에요. 승객들 없는 한산한 시간에 눈치껏 구석 소파 몇 개 놓여있는 데에서 쪽잠 자고 다리 잠시 뻗고 그게 다인 거죠."


이처럼 긴 시간 서서 일하면서 휴식도 잘 못 취하고, 식사도 불규칙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안요원 노동 몇 년이면 만성 위장병, 손목이나 어깨 등의 관절질환,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발생하는 족저근막염 따위는 달고 산다고 한다. 


안전 업무를 충실히 하다 보면


이런 만성 신체질환과 더불어, 보안요원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했다. 사람이 특별히 많은 방학, 연휴 기간에도 물론이지만, 국제행사가 잡혀 보안등급이 올라가는 경우에 출국장의 줄이 길어지고 검색을 보다 꼼꼼하고 오랫동안 하게 되면 탑승객들의 불만이 바로 앞에 있는 보안요원들에게 쏟아지는 까닭이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인원보충이 꼭 되어야 해요. 아니 평상시, 장시간·주야 교대하며 일하는 것도 힘든데 보안등급까지 올라가서 손님들 많아지고, 검색시간 길어지면 정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닙니다. 하기야 오랫동안 서서 짐 들고 기다리다 보면 저 같아도 짜증 날 텐데, 거기에 짐 다 뜯어보면서 이것저것 검사하고 안 된다고 하면 승객들이 화 폭발하는 게 당연지사 아니겠어요? 보안단계라는 것이 5단계로 되어 있는데요, 아무 특별 상황이 없는 경우가 '평시', 최근 메르스 사태처럼 외국에서 발생한 특수 사안이 있는 경우가 '관심', 한국에서 국제행사가 개최된 경우가 '주의', 그 다음이 '경계', 마지막으로 9.11 때처럼 테러가 발생한 매우 위험한 단계가 '심각'이에요. 각 보안등급에 따라 손 검색이나 가방을 열어보는 개장 검색, 그리고 승객 아무나 찍어서 검색하는 랜덤(random) 검색의 빈도가 확연히 늘어나거든요. 그럼 가뜩이나 서 있는 사람도 많은데, 기다리는 시간이 확 늘어나는 거죠."


아무리 '평시'인들 매일 몇만 명의 사람들을 일일이 돌아봐야 하는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부디 이 여름, 즐거운 바캉스의 안전한 출발을 위해 애쓰는 인천공항 보안요원 노동자들에게도 유쾌하고 안락한 휴가가 꼭 허락되길 기원한다.

[A-Z 노동이야기]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2015.7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요

- 은행 퇴직 후 병원에서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 김민숙(가명) 씨

 

 

장영우 선전위원

 

 

 

 

나는 약 350병상의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내과 의사이다. 병원이란 공간에서 10여 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청소노동자와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여러 직종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곳인데, 나와 같은 종류의 일하는 분들 외에 다른 직종의 직원들하고 대화를 나눈 경우가 없었다. 사실, 병원 청소 노동자 인터뷰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병원에 있고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인터뷰를 하려고 다가가면, 인터뷰의 '인'자만 들어도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루 일과가 바쁘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을 얘기하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러 번의 거절. 쉽게 생각했던 섭외가 되지 않아 고민하던 중(어쩔 수 없이 병원 내에서 나 의 '지위'를 이용하여...) 평소 인사하고 지내던 청소 소장님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소장님은 "말씀 잘하는 분을 보내겠다"며 김민숙씨를 소개해주었다.

 

"이런 일 할 수 있겠어요? 은행 퇴직 후 시작한 이 일"

 

"제가 원래는 은행에서 약 20년 정도 근무하고 명예퇴직했어요. 그리고 보험설계사 일을 잠시 했지요. 은행에서 명퇴했을 땐 퇴직금을 좀 받았지요. 퇴직금을 잘 관리했으면 여기서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지요. 근데 퇴직금을 빌려주고 못 받기도 했고 강원도에 땅도 좀 사서 퇴직금이 거의 안 남은 거죠. 퇴직금을 확 날린 건 아닌데, 점점 없어지다가 이젠 유동자금이 없어요.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딸은 회사 다니고 아들은 지금 호주에 가서 워킹홀리데이 하는데, 타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대요. 자기 생활비는 벌어서 쓰고 있어요. 아들, 딸은 자기 밥벌이를 하는데 정작 내 수중에 생활비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구청을 통해 이 병원에서 청소 아줌마를 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난 6월 1일에 첫 출근 했으니깐 정말 얼마 안 된 거죠. 채용면접 볼 때 소장님이 내 이력 보고 이런 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는데 남들도 다 하는데 못할 거 뭐 있느냐고 대답하니 바로 뽑아 주시더라고요. 중졸 이상, 60대 이하의 나이 제한이 있었는데 몇 년 더 나이 먹었으면 이 일도 못 할 뻔 했어요. 이 병원이 총 25명의 청소 아줌마들이 있는데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요. 근데 이번에 16명을 뽑은 거죠. 내가 지원번호가 25번이더라고요. 이런 일도 요즘은 지원 많이 해요. 근데 막상 일 해보면 힘드니까 금방금방 그만둬요."

 

그러고 보니, 한 달 전 내 방을 청소하던 노동자 분 생각이 난다. 일하러 방에 들어오시면 간단한 인사 정도 나누던 차였는데, 갑자기 다른 분으로 교체되었었다. '그만두셨나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병원 청소 일이 너무 힘들어서 딱 보름 일하고 그만두셨던 거였다. 그분은 그만둔 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신다고 한다. 인터뷰 시도를 몇 번 해보면 대부분이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할 말이 없다'고 곤란해 하셨는데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5시 반, 무료노동 30분으로 시작해서 하루 10시간 노동

 

"우린 평일에는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1시까지 일해요. 하루 10시간을 일하니까 근무시간은 긴 편이죠. 대부분 이 시간에 일하는데, 야간에도 청소할 구역이 생기니까 야간조 두 명이고요. 주말엔 사람들 출입이 적으니까 이때를 이용해서 복도 왁스 작업을 해요. 그래서 주말에도 일하는 조가 따로 있어요. 또 누가 휴가가거나 결원이 생겼을 때 일하는 사람도 있어요. 난 5시 30분에 출근해요. 그나마 근처에 사니까 걸어서 20분 정도 걸려 도착해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버스 타고 출근해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도 버스가 있나 봐요."

 

아무리 근처에 사신다지만 새벽 5시 30분까지, 그것도 하루 9~10시간씩 꼬박 일하고 다음 날 새벽에 또 나오려면 얼마나 피곤할까? 그것도 정시 출근 시간보다 30분이나 당겨서 말이다. 단 30분이지만 좀 더 자지 않고 나오시는 이유는 뭘까?

 

"아침에 진료 시작하기 전에 청소를 다 해놓아야 하는데 여섯시부터 출근하면 너무 바빠 요. 그래서 30분 일찍 출근하죠. 1층 외래 담당인데 외래 진료실이 10개가 넘잖아요. 우선 외래 진료실부터 청소해요. 쓰레기통 비우고 로비도 닦고 화장실 네 군데 청소, 창문, 창틀 청소, 외래대기실, 의자 청소 등등 생각보다 일이 많아요. 게다가 의료용 폐기물은 또 따로 분류해서 버려야 하잖아요. 귀찮지요. 제가 만보기를 차고 다녀요. 보통 2만5000보에서 3만 보가 찍혀요. 이렇게 많이 몸을 움직이니. 힘들죠. 근데 병동은 더 힘들더라고요. 잠시 거기 대타로 일해 봤는데 거긴 오물이며 세탁물이며 의료폐기물이 더 많잖아요."

 

1만 보는 약 4~5km 정도 된다고 한다. 이 노동자는 일하면서 10~15km 정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은 힘들지만, 은행 다닐 때보다 맘은 편해

 

"점심은 도시락 싸 온 걸로 먹어요. 엊그젠 병원 직원식당에서 밥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아침에 귀찮게 도시락 싸느니 앞으론 간편하게 병원식당에서 밥 먹어야겠어요. 점심 먹고 또 오후에도 청소일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서 일찍 자게 돼요. 내가 지병은 없는데도 새벽에 손발이 저리고 아파서 자주 깨요. 손마디, 허리, 무릎 뭐 온몸이 아파요. 전에 은행에서 돈 세고 만지고 나르는 고된 일을 몇 달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아프고 저려 서 밤에 자다가 자주 깼거든요. 거의 퇴직을 앞두었을 때였는데 위에선 내가 나이가 많으니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내보내려고 나를 그런 일 시킨 거 같아요. 나름 잘 버티고 명예퇴직했죠. 대신에 여긴 몸은 힘들어도 맘은 편해요. 전에 보험설계사 일 할 때는 육체적으론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근데 실적에 따라 월급을 받다 보니 실적이 적으면 월급이 거의 없어요. 또 상대방 만나서 밥도 사고 선물도 주면서 마음을 움직여서 계약을 따내는 게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가족 친구를 상대로 영업하다가 그게 다 떨어지면 좀 더 발을 넓혀서 계약을 따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또 계약했던 사람들이 보험금 안 내면 계약 유지하려고 내 돈 박기도 했고요. 근데 여기는 각자 맡은 구역 청소하는 단순한 일이라 은행 다닐 때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보험 일처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아도 돼요. 스트레스, 동료와 갈등 이런 건 없어요. 이런 건 장점이겠네요."

 

고된 노동, 겨우 최저임금

 

"근데 솔직히, 일하는 거에 비해 월급이 진짜 적어요. 제가 하루 10시간 일하잖아요. 근데 월급이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되거든요. 거기다 4대 보험 다 떼니까 손에 쥐는 건 100만 원이 될 진 모르겠어요. 7월 7일 첫 월급 받으면 알 수 있겠죠. 지금 최저임금이 시간당 5580원이잖아요. 딱 최저임금으로 받는 거죠. 내년에 최저임금이 6150원으로 오른대요. 그래서 계약도 올해 말까지 6개월로 시급 5580원으로 계약한 거죠. 과거에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했는데 지금은 다 외주를 주잖아요. 내가 일하는 곳도 외주하청업체인데 중간관리자가 월급을 낮출 수가 있으니 이렇게 낮은 거 같아요."

 

딱 최저임금 5580원. 병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 5580원에 걸려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올해 최저임 금이 많이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래 일하면 허리 휠까 무서워

 

은행보다 마음은 편하지만, 고된 노동에 최저임금인 이 직장. 명예퇴직하고도 일을 해야 해서 시작했지만, 다들 힘들어서 쉽게 들고 나는 이 직장. 김민숙씨는 이 일을 얼마나 할 생각일까?

 

"하하. 여긴 진짜 금방 그만둬요. 면접만 보고 안 나오기도 하고 하루 일하고 그만두기도 하고. 오래 일한 사람들은 일년 정도 하더라고요. 근데 오래 일한 사람을 보니 허리가 휘었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밀대 질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 같아요. 나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는 일이 어렵진 않아도요. 일단 6개월 계약했으니까 올해 말까진 일할 생각인데. 모르죠."

 

 


[A-Z 노동이야기]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2015.6

마트에는 ‘까대기 치는’ 그 사람이 있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

선전위원 정하나



물류창고에서 L카로 물건을 실어와 신선가공쪽 매대에 물건을 진열하고 있는 권혜선 조합원(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작은 애가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간 해에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일 시작하기 전이야 큰 마트 장 보러 가면 ‘깨끗하고 좋네~’ 이렇게만 생각했죠. 그게 다 저절로 된 게 아니더라고요.”


마트에 가면 과일도 있고, 채소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홈플러스 합정점에서 일하는 권혜선 씨는 지난 13년 동안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기보다는 물건을 채우러 다녔다. ‘까대기’. 그녀가 마트에서 하는 일을 부르는 속칭이다. 화물차로 배달 온 제품들을 창고에서 실어와 매대에 보기 좋게, 사기 쉽게 진열하는 작업을 말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많은 물건 중에서도 혜선 씨는 신선가공품, 즉 우유를 비롯해 각종 유제품, 햄과 반찬류 등 각종 냉장식품을 진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깨끗한 매장, 절로 되는 게 아니다


만나자마자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갓 지점에서 도착해 혜선 씨의 정리 손실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물건이 물류창고에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얼기설기, 플라스틱 팔레트 위에 각종 식품이 쌓여있었다. 포장김치 같은 상품도 신선가공 쪽에서 취급하는데, 그런 것들은 혹시나 떨어져서 터질까 봐 옆의 다른 제품들과 랩으로 칭칭 감아놓았다. 쌓은 높이가 성인 키보다 높다.


“오픈 시간 전까지 모든 물건을 체크해서 진열해야 해서 정말 바빠요. 아침에 출근해서 창고에 가면 이런 팔레트가 매일 아침 적게는 6개, 제일 많을 때는 8개가 꽉꽉 채워져서 저희 지점으로 배달이 와 있거든요. 낑낑대면서 랩 같은 거 다 벗겨내고 L카에 품목별로 실어서 매장까지 옮겨가는 거죠. 저희 매장은 아침 10시에 오픈인데, 8시에 출근해서 오픈하기 전까지 다 비우고 매대에 가져다 놔야 해요.

아, 저희 마트는 2교대인데요. 오전 팀은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까지 근무하고, 오후 출근 할 때는 오후 3시 반부터 12시까지예요. 신선가공 쪽은 전부 6명인데, 오전 조는 2명이 다 해요. 손님이 아무래도 오후에 더 많으니까 그렇게 인력배치를 한 건데, 매장 오픈 준비해야 하는 아침도 정말 정신이 없거든요. 물류가 우리 출근 시간 전에 배달 오기도 하지만, 전날 밤 10시에 한 번 더 오는데, 오후 근무 조에서 이걸 진열하고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전조가 출근해서 매장오픈 가능할 정도로 다 옮겨놔야 하니 엄청나게 바쁘지요. 예전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바로 일 시작하고 그랬어요. 휴식시간이요? 요즘에는하루 30분 쉴 수 있게 보장은 되어 있는데, 물론 잘 챙겨서 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 신선가공 쪽 2명은 중간에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잘 못해요.”



진열도 경력자가 하면 다르다


혜선 씨는 마트 진열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매장과 고용형태만 몇 번 바뀌었을 뿐 취급 품목은 계속 식품/신선가공 쪽이었다. 현재는 마포 쪽 대형마트에서 직고용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2012년 가을, 이 지역에 마트가 새로 생기면서 회사는 혜선 씨를 신선가공 쪽 ‘알바’에서 ‘담당’으로 계약을 변경해 주고 새 마트로 발령을 내었다. 나름의 승진이었다. 마트가 정식으로 입점오픈을 하기 전 매대를 설치하고, 같이 일할 팀을 짜는 등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그녀를 ‘개점공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트에 보면 파견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파견이었어요. ○○햄 소속으로, 대형마트는 아니고 동네에 있는 큰 슈퍼마켓으로 파견되어 1년 정도 일을 했지요. 그러다가 일 잘한다면서 영등포에 마트 들어서는데 거기서 일해 보겠느냐고 하대요. 그때부터 대형마트 파견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 ○○라면으로 옮겼는데 한 2년 정도 일하다 본사에서 라면 매출이 별로 안 좋다면서 전체 파견직 줄인다고 하기에 또 그만두었어요. 그때 완전히 일 그만두려고 했는데, 당시 마트 우리 담당 선임님(관리자)이 ‘여사님 그만두지 마세요. 알바로 쫌만 참고 계시면 신선가공 담당으로 올려드릴게.’ 라고 해서 그 약속 믿고 또 계속 일했어요. 그러다가 여기 새로 지점이 생기면서 이쪽으로 온 거에요.

여기 매장이 다른 데에 비해 크지는 않아도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라 고객 수가 정말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물류양도 많고, 매대도 수시로 빨리빨리 채워 넣어 줘야 해요. 게다가 저희는 ‘유통기한’도 체크해야 하지요. 마트 일이라는 게 힘들어서 가뜩이나 안 해 본 분들은 오래 버티기 힘든 일인데, 이 일은 더 그렇죠. 유통기한까지 있어 매대 상황을 이중삼중으로 확인해야 하니 신경이 더 쓰이지요.

물건 채워 넣는 게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도 다 노하우가 있어요. 배치하는 안목도 있어야 하고 시야도 넓어야 일을 ‘잘’ 할 수 있어요. 처음 들어오신 분들은 매장확인 할 때 백이면 백, 우유 빈 곳, 치즈 비어서 빵꾸난 곳 딱 그거 하나만 보고 와서 빈 제품 그거 딱 하나만 깔고 오시죠. 근데 경력이 쌓이면 다르죠. 이를테면, 한번 딱 둘러볼 때 한 매대에 있는 제품 전부가 한눈에 들어와요. 어떤 물건이 비었고, 얼마큼 어떻게 추가 진열해야 하는지를 한 번에 하는 거죠. 아침에 엄청나게 바쁘다고 그랬잖아요. 그때 이렇게 시야가 넓은 사람이 진열을 맡으면 오픈준비가 훨씬 원활하죠.

그리고 물건이 잘 팔리게 하려면 솔직히 진열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매대에서 고객님들 눈높이 라인을 ‘골든라인’이라고 하는데 여기를 중심으로 물건을 어떻게 진열할지 짜임새 있게 잘 판단해야겠죠. 잘 나가는 물건이나 유통기한 짧은 거 위주로 돌아가면서 잘 배치해 주는 것도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잘할 수 없어요.”




사진 : 아침이면 배달되어 있는 물류들, 파렛트 위에 얼기설기, 랩으로 감겨 쌓여 있다. (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마트 노동 그리고 직업병


오랫동안 물건을 나르고 위에서 아래로 옮기는 노동을 해온 혜선 씨. 특히나 아침부터 물류양이 많은 신선가공 식품을 주로 취급해, 손님이 없는 오전 시간에도 늘 시간에 쫓기듯 일해 온 그녀의 건강 상태가 걱정됐다.


“지금 매장에서 일하면서 더 힘들어 진 거 같기도 해요. 예전에 파견일 때는 다른 제품 진열해야 할 때도 종종 있긴 했지만 일단 자기회사 물건만 잘 깔면 되거든요. 지금은 다른 제품도 다 진열하고 관리해야 하는 ‘담당’이 되기도 했고, 직영은 다른 곳보다 직영물류센터 통해서 오는 물건들이 더 많아서 저희가 직접 깔아야 하는 제품양이 훨씬 많거든요. 예를 들면, 영등포점 같은 경우는 우유 업체의 물류배달해 주는 소장들이 진열까지 해주고 그쪽 파견 직원들이 나중에 없는 물건 채워 넣는 걸 다 해줬어요. 그런데 지금 여기는 우유 업체 8개 사의 제품 전부가 본사를 통해 한꺼번에 오고 그걸 우리가 전부 매장에 깔아야 하니 어마어마한 거죠. 사실 인력이 문제인데, 회사에서는 절대 사람 더 보충해 주진 않을 거 같아요.

다른 쪽은 아침 배달량이 많지 않고 손님도 오후에나 몰리니 한 10시 반쯤이면 쉴 틈이 나거든요. 저희는 정말 전화 한 통, 문자한 통이 와도 받을 수도 없고 받지도 않아요. 게다가 우유 1리터짜리 같은 건 너무 무겁잖아요. 오전 중에만 창고와 매장을 L카로 몇 번은 왔다 갔다 하는데, 점심시간이면 진이 쭉 빠져서 밥 먹는 것도 귀찮고 힘도 없고 그래요. 제가 팔이 후들후들 거려 반찬을 그냥 숟가락으로 떠먹고 그런다니까요. 오후 출근일 때가 좀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12시 퇴근이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 씻고 잠자리에 누우면 2시죠. 어떨 때는 들어가자마자 이불에 쓰러져요. 애들이 ‘엄마 안 씻어? 그러고 그냥 잘 거예요?’ 이러는데 ‘엄마 잠깐만 누워 있을게.’ 그렇게 대답하고 아침 녘 깨서 화장 지우고 다시 잔적도 많아요. 아휴 정말 그런 거 생각하면 대한민국 마트 제~발 10시까지만 했으면 좋겠네요.

저희는 또 냉장창고를 들락날락해야 하니 1년 내내 냉방병을 달고 살죠. 원래 열이 많은 사람이라 더위도 잘 참았는데, 요즘에는 마트에서 꼭 입어야 하는 반소매 유니폼이 입는 게 싫을 정도네요. 감기에 안 걸려도 평소 기침도 많이 해요. 마른기침 같은 건데 지금처럼 한번 하면 길게 하더라고요.혜선 씨는 인터뷰 중간 서너 차례 기침을 했다. 한번 하면 1분 정도 지속되어 잠시 인터뷰를 끊고 물을 가져다 드리기도 했다.

사진 설명 : 아침이면 배달되어 있는 물류들, 파렛트 위에 얼기설기, 랩으로 감겨 쌓여 있다. (사진제공: 홈플러스 노동조합)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판매가격이 재래시장보다 높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대형마트 가는 걸 선호한다. 대형 마트의 잘 정리된 물건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때문일 것이다. 환한 조명 아래 잘 포장되어 반듯하게 놓여있는 물건들은 어느 누군가의 손을 타 비로소 바로 내가 눈에 익은 그 자리에 내가 사기 좋게 놓여 있게 된다. 혜선 씨 말마따나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그렇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마트에서 내가 사야 할 ‘물건’ 생각만 하지 않았는지, 내가 그 물건을 사서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노동하고 있는 그 ‘사람’을 주목한 적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A-Z 노동이야기] 취미로 하던 운동을 ‘업’으로 삼았더니 /2015.5

AZ 노동이야기 / 서른번째 이야기

취미로 하던 운동을 ‘업’으로 삼았더니

그룹운동(GX) 트레이너, 하지윤 씨


선전위원 정하나


오후 2시.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인터뷰 약속을 잡기 어려운 시간대이다. 대부분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 7시쯤이나 아예 주말을 선호하는데, 하지윤(가명) 씨는 그 시간이 제일 편하다며 자기 집 근처인 신도림역에서 만나자 했다. 부천 헬스장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GX(Group Exercise, 그룹운동) 강사로 일하고 있다.

요즘 헬스장 광고를 보면 **개월 등록비 얼마에 에어로빅이나 요가, 재즈댄스 같은 프로그램을 요일별·시간대별로 제공한다고 쓰여있다. 이런 운동프로그램이 바로 GX이다. 지윤 씨는 그중에서도 다소 생소한 운동인 ‘스피닝’을 가르치는 전문 강사이다.



다이어트하려 시작한 운동, 직업으로 삼기까지

“스피닝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발은 자전거 페달을 밟고, 상체는 간단한 안무를 해서 상·하·좌·우로 움직이거나 웨이브를 주면서 하는 운동이에요. 제가 앞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동작을 가르치고, 회원들은 제 동작과 구령에 맞춰 운동하지요. 운동량이 엄청나서 살 빼 는데 좋다고 요즘엔 많이들 하세요. 저 역시 처음 스피닝 하게 된 계기가 살 빼려는 거였죠. (웃음)”

지윤 씨는 작년 9월까지만 해도 전업 스피닝 강사가 아니었다. 5년 전 스피닝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야근과 회식에 찌들어 있던 중소기업 팀장이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자꾸 살도 찌던 중 친구가 재미있는 운동이 있다며 권했다. 처음에는 안 쓰던 근육을 총 가동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6개월 등록비가 아까워서 꾸준히 다녔고 어느새 슬슬 재미가 붙었다.

“어느 순간부터 막 빠져들었어요. 너무너무 재밌는 거 에요. 제가 가는 날 저녁 스피닝 수업이 세 타임 있었는데 다 들어가서 연달아 몇 시간 동안 타고 있으니, 선생님도 놀라더라고요. 점점 욕심이 생겼어요. ‘선생님처럼 나도 더 예쁘게 동작을 하고 싶다,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당시 강사 선생님께 물어봤죠. 그랬더니 자기가 속한 협회에서 하는 3주짜리 전문가 트레이닝 코스를 소개해줬어요.

직장인에겐 금쪽같은 주말에 5시간 이상을 ‘운동’만 하며 보냈던 그때에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코스 소개해준 선생님이 하다 보면 욕심 생길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처럼 취미로 시작했다가 강사 되는 케이스를 몇 번 보셨는지 말이에요”

‘업’으로 삼고자 시작했던 게 아니었기에 자격증을 딴 후에도 바로 출강에 나서진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자격증까지 생기고 나니 일반회원으로 헬스장에 앉아있기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월수금은 야근할 각오하고 화목만 수업을 나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격증을 부여한 협회에 다니던 회사 근처로 화목 저녁에만 할 수 있게 센터(헬스장)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아, GX 강사는 프리랜서예요. 나중에 경력이 생기면 헬스장에 이력서 들고 찾아가서 직접 계약 맺을 수도 있지만, 처음에는 저처럼 협회 소속 강사로 센터를 소개받는 형태가 많아요. 즉, 협회랑 계약 맺은 헬스장에 파견을 나가는 거지요. 수업횟수(타임 수)에 따라 해당 헬스장에서 강사료를 받는데, 협회에서 소개비 조로 몇 프로 수수료를 떼고 임금을 주고요.”

한 2년 동안 회사 일과 강사 일을 병행했다. 운동과 별도로 사내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걸 보면서 회사생활을 지속하는 것에 점점 염증을 느꼈다. 잘되는 일 없이 매일 야근에 바쁘기만 하니 지쳐만 갔다. 성취감은 없는데 늘 마감이 있어서 마음을 졸여야 하고 그 와중에 윗사람들 눈치도 보면서 비위도 맞춰야 하니, 그 스트레스가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이직을 고려하며 퇴직을 했는데, 몇 주 쉬면서 생각해보니 GX 강사로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취미가 일이 되던 순간

“물론 취미로 운동하던 시절이랑은 많이 다르죠. 일단 운동을 쉬엄쉬엄할 수 없어요. 회원 시절 두세 타임 연달아 자전거 탈 수 있었던 건 힘들면 동작도 설렁설렁하고 내 컨디션에 맞춰서 운동해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 가능했던 거지요. 강사는 10명 이상 회원들 앞에서 늘 웃으면서 구령도 힘 있게 외쳐가며 타야 하는 거잖아요. 기분이 안 좋을 때나 몸이 아플 때도 전문 강사로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니 늘 긴장된 상태이지요. 또 헬스장 이용도 회원으로 헬스장 다니면서 온갖 시설 마음대로 이용하던 때와 달라졌어요. 파견 나가는 곳이니 센터 사장님이랑 관계도 잘 맺어야 하고, 운동시설 이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요. 쉬는 시간(대기시간)에 강사도 센터 내 시설 이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돈 내고 그 헬스장 등록한 회원들이 우선일 테니 사람이 좀 많으면 알아서 안 써요.”

여러 개의 센터를 돌면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인지라 수업시간 소통을 포함한 회원 관리가 강사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일 텐데, 그녀는 이 점도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다.

“수업 하나 마치면 다음 타임까지 3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 솔직히 좀 쉬고 싶죠. 강사는 가뜩이나 더 힘차게 운동했으니 기운도 빠졌을 테고, 어떤 날은 누구랑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컨디션일 때도 있잖아요. 그래도 회원들이 ‘선생님~’하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 걸어오면 당연히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죠. 이런 게 성격상 별로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다만, 오랫동안 운동해 오신 분들이 많은 곳의 경우 회원들이 새 강사에게 텃세를 부릴 때가 좀 힘들 수 있는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합해도 회사 다니면서 받던 스트레스의 반도 안 돼요. 아직까진 만족도가 높아요.”

예전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덕(?)인지, 아니면 본인이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서인지 지윤 씨는 대체로 지금 일에 대한 만족과 활력이 넘쳤다. 과거 두 가지 일을 병행하던 때랑은 노동시간도,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서 일 것이다. 대신 수입은 줄긴 했다.

“투잡을 안 하니 수입은 많이 줄었지요. 강사 일은 저한테 알바였거든요. 부수입이었던 건데, 회사 관두고 나서는 저녁 수업도 늘리고 오전 시간에도 수업을 잡아서 수입보전을 하려 노력하지만, 예전에 비할 수는 없어요. 보장된 월차나 연차 같은 것도 없고, 수당 받으면서 육아휴직 같은 것도 쓸 수 없게 되긴 했어요. 이런 게 프리랜서 직업의 한계이겠죠.”

스피닝 강사로 현재 그녀는 하루에 두 군데 씩, 일주일에 총 네 군데 헬스장을 순회한다. 월수금 오전은 부천, 저녁은 지하철로 이동 가능한 경기 남부에서 총 네 번의 수업을 한다. 화목에도 오전은 부천에서, 저녁에는 서울 북부에서 2~3회 수업을 진행한다. 지금 출강하는 센터는 모두 거주지와 거리도 멀고, 하루 동안 이동해야 하는 센터 간 거리도 상당하다. 중간에 수업이 비는 7시간 중 2시간 남짓은 이동하는 시간이다. 집 근처, 동선이 좋은 곳 수업이 날 때까지 센터배정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하루에 뛰는 수업만큼 임금이 결정되니 1일 스피닝 수업이 최대한 많이 배치된 헬스장 중심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아침에 한 타임하고 나서 다른 센터에서 하는 저녁 수업 하러 가기 전에 한 4~5시간 시간이 남아요. 오늘처럼 사람들 만나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그래요. 7시 반부터 시작하는 저녁 수업이 연달아 세 개가 있는 날은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아예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나가기도 하고요. 그리고 매일 수업이 있으니, 이때 최소한 1시간 정도는 저녁수업 준비를 하죠. 운동할 때 어떤 노래 틀지 순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안무도 다시 정리하지요. 음악 파일도 USB에 담아 준비해 놓고요.”

빼곡하게 노래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며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 가는지도 설명해 줬다. 한 회 수업시간 40분을 노래 35개 곡 정도로 채우는데 이것도 회원들 구성에 따라 매일 바꾼다. 오전 11시 타임에는 중년여성들이 주로 오기 때문에 최신히트곡보다는 트로트나 90년대 유행곡들을 많이 넣는다. 7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진행하는 저녁 수업에는 퇴근한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사진 설명 : 수업준비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지윤 씨는 ‘일일 수업 순서(노래제목 리스트)’가 적힌 쪽지를 보여주었다> 


임신·출산 후에도 좋아하는 일 계속하고 싶어

“처음에 재밌어서 시작한 운동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나중에 결혼하고 임신·출산하게 되면 한동안 쉴 수밖에 없겠지만, 계속하고 싶긴 해요.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놓고 오전 시간에 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막상 일이 되고 보니 신선한 긴장은 좀 사라졌지만, 여전히 스피닝이 재밌고 직업강사로 계속하고 싶다는 지윤 씨.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오래 강사를 해온 동료 중에는 무릎이나 허리가 안 좋은 사람도 꽤 있다던데, 다른 이의 건강한 삶을 도와주는 지윤 씨가 아무쪼록 건강하게, 출산 후에도 경력단절 없이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A-Z 노동이야기] 미디어로 운동하자? 미디액트 활동가 개미 인터뷰 / 2015.4

스물 아홉 번째 이야기

미디어로 운동하자?

미디액트 활동가 개미 인터뷰

선전위원 정하나



사진출처: 서울 마을미디어 뉴스레터 ‘마중’ 블로그


“적대적인 신문 4개가 1,000개의 총검보다 더 무섭다!” 그 유명한 장군,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자고로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다. TV를 '바보상자'라고 까지 칭하는 것 역시, 전기통신 기술력 발전과 더불어 일반 대중에 대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극대화됐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 만난 개미(별명) 씨는 미디어의 대중적 파급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더 가깝게 사회문제 아니 바로 자신이 봉착한 삶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와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말하게 하기 위한 ‘소통과 참여’를 확산시키는 일(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상,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반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시(언론고시)라고 하잖아요. 방송사 PD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제가 합격할 거 같지도 않았어요. (웃음) 게다가 방송국에 들어가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풀어낼 수는 없을 거로 생각했어요. 실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나’인데 데스크에서 원하는 것만 결국 방송되잖아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묻히고 말죠.”


학생 때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영상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던 때부터 미디어에 대한, 미디어를 통한 열망은 시작되었다. 졸업 직전이던 개미 씨가 학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당장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대자보 글을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것 같았어요. 사실 자기 얘기인데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잖아요. 대자보가 형식 면에서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이 그래도 짧은 영상은 재미있게 보니까. 6mm 테이프 들어가는 캠코더 있잖아요. 지금은 다 디지털로 바뀌어서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그 캠코더를 친구들이랑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었죠. 등록금 인상에 대한 거나 학교 안에서 청소 일하시는 미화 노동자들 이야기처럼 대학생들이 학교 다니면서 직접 겪을 수 있는 주제부터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같은 조금 더 넓은 주제까지요. 그때가 한창 지식채널-e 프로그램이 떴을 때거든요. 그 컨셉 그대로 가져다가 만들기도 했죠.”


그전까지는 카메라로 뭘 찍어본 적도, 동영상 편집도 해본 적 없던 개미 씨, 학원에서 영상편집 기술도 배우고 곧이어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강좌도 들었다. 제대로 배워보니 한 사안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란다.


“영상은 아주 직관적인 미디어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생각도 아주 명확해야 하고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한 사람에 한 편씩 수료 작을 만들었거든요. 20분 안쪽으로 단편작품을 만들어 제출하는데, 저는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주제로 삼았어요. 주인공은 야간에 편의점 알바하는 청년이었어요.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 하는 생산직 노동자 얘기랑 게임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친구 얘기도 같이 섞어서 만들었어요. 나름으로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러면서 느꼈죠. 하고 싶은 얘기는 이만큼 있는데, 그게 다 글로만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었구나, 영상 만드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하고요.”


지금은 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를 지향으로 대안적 미디어 활동을 만들어 가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라는 곳에 속해 있다. ‘퍼블릭 액세스’란 누구나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창작물을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액트>는 이를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으로 보장하기 위한 활동해 온 곳이다. 노동자·장애인·이주민·노인·청소년과 같은 미디어 소외계층 교육부터 공영방송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의무편성 법제화, 제작부터 방송운영까지 시민이 직접 하는 ‘시민채널 RTV’ 설립, 지역 미디어센터 설립 지원 등이 그동안 <미디액트>가 해온 일이다.


“<미디액트>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다가 인연이 시작되었죠. 웹진도 같이 만들고, 강의 보조도 하고, 그러다가 정식으로 일하게 된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저는 미디어교육,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를 맡고 있어요. 내가 만든 매체를 가지고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대신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라디오나 지역신문 같은 걸 만들어보고자 기획을 내면 그걸 컨설팅하고 지원해주는, 일종의 후방 활동이에요.”


동네 미담에서 지역 현안까지, 마을 미디어


최근 <미디액트>는 서울시로부터 ‘마을 미디어 지원센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개미 씨가 맡은 업무 중 대부분은 바로 이 센터의 일이다.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란, 지역의 풀뿌리 미디어를 발굴하고 독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구현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개미 씨는 숨겨져 있던 목소리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일도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해마다 서울시 전역에서 4~50개 단체(혹은 주민모임)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요.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나누기부터 미디어 제작 실습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받고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고요. 이미 지역에서 모여진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처럼 하나의 매체를 만들 수 있도록 제반 경비나 장비, 혹은 기획컨설팅을 제공받을 수도 있죠. 2~3년 이상 꾸준히 지역라디오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온 곳도 있어서, 선정된 곳들의 상황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세금으로부터 할당된 지원금을 서울시 사업 기준에 맞게 쓰면서, 사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에요. 가장 재미있을 때는, 마을 미디어 주체들을 만날 때죠. 작년만 해도 40개가 넘는 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어떻게 해야 참여자를 확대할 수 있는지, 만들고자 하는 미디어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려면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마을 미디어의 나아갈 길은 도대체 어디인지. 이런 고민을 나누는 과정 역시 민중주도형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스스로 주민주체, 민중주체의 미디어로 자처하며 활동하는 곳은 많지 않다. 지원을 하다 보면 주민참여 확대 측면에서도, 만든 콘텐츠 구성 면에서도 마을공동체 미디어들이 성장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 그걸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것이 강한 참여 동기이지만 점점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하게 되고, 담아내고 싶은 주제들도 개인취미나 동네 미담에서 지역의 이슈와 현안들로 확장되기도 한다.


“영상이나 신문보다는 아무래도 팟캐스트를 활용한 ‘라디오’ 형태가 제일 많아요. 영상의 경우 어느 정도는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신문 역시 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게재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라디오는 녹음 후 편집하는 작업 외에는 편하게 한 두 시간 신나게 수다 떠는 거로도 생산이 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동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창신동 라디오방송국 덤’이라는 방송국의 활동이 인상적이에요. 종로구 창신동에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많이 모여 있잖아요. 그 공장 안에 스피커를 달아주고, 실제로 그 동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분들이 일 끝나고 녹음해서 비정기적으로나마 틀어주는 그런 방송이에요. 다들 일하느라 힘들고 바쁘셔서 방송이 자주 나오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의 꿈


이런 마을 미디어 지원활동 외에도 개미 씨는 국내외 다양한 미디어 동향과 정책을 탐색하는 웹진 <진보적 미디어 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다.


“처음에 꽂혔던 건 ‘우리가, 민중이 우리 채널을 가져야 한다. TV든, 라디오든 간에 틀면 딱 나오는 매체, 그 채널에서 누구나 무슨 얘기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였어요. 때로는 지금 일이 처음 생각했던 목표에서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지원 사업 실무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구체적인 미디어 제작 활동을 직접 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웹진 <ACT!>만들면서 해외의 독립채널 운동 사례나 새로운 장비, 기술 정보를 접하다 보면, 이런 걸 어떻게 한번 써먹어 볼까 자연스레 고민이 되지요. 아직은 발등에 떨어진 일만으로도 벅차지만, 그래도요!”


‘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던 개미 씨의 첫 마음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지원 업무를 하고,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 마음이 ‘마을공동체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민중의 채널’을 이미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A-Z 노동이야기] 네이티브 뺨치게 잘 가르쳐도 안정적으로 가르칠 순 없어요 / 2015.3

AZ노동이야기 28번째 이야기

네이티브 뺨치게 잘 가르쳐도 안정적으로 가르칠 순 없어요

방과후학교 영어강사, 고미래(가명)

 


선전위원 정하나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 배우고, 혼자 공부했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한테 따로 수업용 테이프 빌려달라고 해서 녹음해서 늘어질 때 까지 듣고 발음 따라하고 그렇게 했더니 꽤 잘하게 되었네요.”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고미래(가명) 씨는 공부가 제일 좋았어요타입이다. 영어가 좋아서 놀 듯 공부했더니 특기가 되었고, 그 특기를 살려 일을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영어강사 경력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었다. 유치원 영어수업, 어학원, 중고등학생 내신·수능대비 학원, 특목고 준비반, 직장인 강의, 1:1 회화과외 등 그간 가르친 학생, 소속됐던 학원도 다종다양하다.

 


어느 순간 학원에 속해 일하는 것이 좀 불편해졌다. 가르치는 것 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특히 대형학원으로 갈수록 배정받는 수업시수 때문에 선생님들끼리 일종의 눈치싸움을 벌이게 되는 상황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수업도 가뜩이나 늦은 밤에 끝나는데다가, 회식이 잦은 것도, 그걸 거절하는 것도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됐다. 그러던 중 공교육에 도입된 방과후학교를 알게 되었다.

 


학원이나 과외하던 중 몇 번 크게 데고, 맘 상하는 일도 좀 겪고 하다가 방과후학교를 알게 되었어요. 밤 늦게 까지 학원 몇 개씩 하는 것보다 점심에 시작해 늦어도 6시에는 끝나는 것도 참 매력적이었죠. 초등학교에 주로 나가고, 중학교도 해본 적 있어요. 수업 종류는 뭐, 정말 많아요. 제가 하는 영어처럼 일반 학교 교과목들은 다 있고요. 가야금, 오카리나, 난타, 양궁, 골프 같은 신기한 예체능 수업이나 여러 창작·문화교실이 학교마다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어요. ‘돌봄교실이라고 해서 늦게 맞벌이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방과후학교2004년부터 시작된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따라 수준별 보충학습과 특기적성교육, 방과후 보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다가, 이듬해 3월 이들 프로그램을 '방과후학교'로 통합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2007년 정식사업으로 전국시행을 시작되었다. 미래 씨는 이명박 정부가 한참 열을 올리며 방과후학교를 확대·추진하던 2008년부터 이쪽 일을 시작했다.

 



해 주는 것도 없이 수수료 떼어가는 송출업체

 


 처음에 들어갈 때는 브로커업체(송출업체)를 통해 들어갔어요. 학교와 강사가 직접계약을 맺는 게 기본방식인데, 당시에는 방과후학교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교사 지원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막막하고 해서 업체를 통해 취업을 했어요. 기본급에다가 제가 데리고 있는 학생 머릿수 곱하기 얼마 해서 업체에서 월급을 주었고요. 원래는 임금(수업료)도 학교가 직접 강사 통장에 쏘아주는 건데요, 업체를 끼었기 때문에 수수료를 냈어야 했죠.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학교 월급(수업료)통장을 브로커업체에서 뺐어가 수수료 제하고 저의 제2통장으로 월급을 송금해 줬어요.”

 


현행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많이 있으나 학교의 시설이나 지도교사가 부족하여 학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강좌가 있는 경우, 비영리단체(기관)에 프로그램 전체 또는 일부, 영리단체에 개별 프로그램 단위로 위탁 운영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체 프로그램 없이 강사 송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송출업체와의 계약은 금지되어있다. 인천시 26개 학교가 관할교육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자체강사가 없는 인력송출업체인 비영리법인 2곳과 방과후학교 운영위탁 계약을 체결한 것이 2014년 감사원의 감사로 밝혀지기도 했다.

 


처음 1년 정도 해보다 보니 브로커나 위탁업체가 정말 안 좋은 거라는 의식이 커져갔어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뿐만 아니라, 교육내용을 기획하고 일일 교육계획안 같은 것도 만들어 올리고 학부모에게 학생 발달향상 알림 같은 상담을 하는 것도 저 같은 선생님들인데, 세금에도 안 잡히는 수수료 이익을 챙기는 업체들이 얄미운 정도를 넘어 정말 비윤리적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업체로부터 어떤 특별한 관리나 복리후생 같은 걸 제공받아본 적이 전혀 없거든요. 사실 강사구인 정보나 관련자료 같은 것은 각 시·도 교육청별 지원센터 홈페이지만 가도 다 볼 수 있는 것인데, 교육에 기여한 바는 없이 소개료 조로 수업료의 30%나 가져가는 건 좀 이상하죠.”



 




학교 직원이 아니니, 학교시설 이용료 내래요

 

이제 미래 씨는 단독으로 일한다. 학교에 직접 이력서 넣고 연락이 오면 면접을 보러 간다. 이제까지 강의안이나 가정통신문을 모아 만든 포트폴리오도 몇 권 챙겨가 보여주기도 하고, 영어인터뷰나 강의 시연을 요청하면 그것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학교 수업강사로 발탁되면 학교와 3개월(한 학기)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방과후학교 출강을 시작한 이래 네번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 미래 씨가 맡고 있는 학생은 130명 정도. 한 반에 12명에서 20명 까지 8개 반 수업을 월-, -, -, --금 이렇게 나눠 수업진행을 한다. 영어가 인기과목이기도 하겠거니와 다년간의 노하우를 쌓은 미래 씨의 수업은 학생이 끊이지 않고 늘 많은 편이다. 원어민 강사 수업도 있지만 학생수 경쟁을 크게 의식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만큼 안정적인 teaching know-how를 가진 영어 선생님인 것 같았다.

 


수업 신청이 5명 미만이면 수업폐강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꼭 배워야 하는 언어,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 주요과목이잖아요. (웃음) 계약은 별 일 없으면 계속 연장되기는 하는데, 저는 나름 별일이 계속 생겨서 4번을 옮겼어요. 처음 학교는 업체 통해 들어간 거니까 업체계약 해지 후 옮긴 거고, 두 번째 학교에서는 갑자기 학교장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져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첫째로 갑자기 11시 출근을 강요하더라구요. 원래 방과후 강사는 수업 20분 전에만 출근하면 되는 건데요(현재는 직전 출근으로 지침 변경됨). 그리고 저한테만 수용비도 확 인상해서 받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방과후 교사들은 학교소속이 아니니까 학교시설이용료 조로 수용비라는 걸 학교에서 받아가는데, 세후 월급액 3~10% 이내(당시 기준)로 받도록 되어 있었어요. 올린 금액도 기준 최대치 10%에 딱 맞춰 불법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20만원 대로 확 올려 받겠다고 한 거죠. 금액 차 때문에도 놀라긴 했지요. 하지만 뭐 그거 못 내겠어요. 기분이 너무 나빴던 건, 일괄로 올린 게 아니라 저한테만 따로 요구하셨기 때문이었죠. 아마 제 수업 신청학생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그러신 것 같아요.

 


그 다음 세 번째 학교에서는 위탁업체 때문에 또 그만두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긴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위탁운영을 안하고 있었어요. 교장이 부임한 첫 해라 위탁 추진은 부담스러웠을 테죠. 위탁이 사실 말이 많거든요. 방과후 선생님들 처우문제도 그렇지만, 위탁업체와 학교 혹은 학교장 사이 비리문제나 수수료 때문에 전반적으로 수업료가 올라가는 등 학부모들도 반기지 않는단 말이죠. 그러다가 다음해 위탁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위탁업체가 들어와 학교 전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저처럼 단독 계약한 선생님들은 나가야 하거든요. 그때 그 업체는 현재 있는 선생님들 자리와 수업을 보전해 주겠다. 대신 수수료는 내야한다. 우리 업체 소속이 되면 점점 수업료단가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방과후 시작할 때 생긴 업체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기도 했고, 그냥 감언이설로 들리더라고요. 그 학교에 계속 남고픈 맘도 컸기에 며칠간 고민하다 결국 그만두겠다고 학교에 말했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위탁계약이 1년 만에 해지됐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업체가 했던 얘기는 감언이설 맞았던 거죠.”

 


옮길 때 마다 미래 씨도 아쉬움이 크다. 1년이든, 2년이든 몇 학기 이어 미래 씨 수업을 듣던 친구들을 계속 만나며 연속성 있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어떻게 보면 이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미래 씨는 어느 순간부터 거리두기하는 편이라고 했다. 영어를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미래 씨인데, 그 일상에서 적당히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방과후학교를 포함한 사교육 시장에서 계속 일하는 한,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일터를 자주 옮겨야만 할 테니, 학생에 대한 애정과 영어에 대한 열정을 다 쏟아내기 보다는 적당히 쏟고 적당히 거두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A-Z 노동이야기]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희망하는 노무사 / 2015.2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을 희망하는 노무사
노동자 측 사건만 맡는 공인노무사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우리가 흔히 노무사라고 부르는 공인노무사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유일한 노동법률 전문가이다. 노동관계법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분쟁에서 당사자가 해결을 못할 경우 그 분쟁을 대리하거나, 때론 기업을 위해 각종 인사노무관리 상담이나 자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얼마 전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카트>에서 노무사가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면서 노무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기업을 위한 자문, 분쟁해결업무는 일체 보지 않고 10여 년간 노동자들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공인노무사 김가명(가명) 씨를 만났다.

 

 

노무사를 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

 

“저는 딱히 처음부터 무슨 생각이 있거나 그래서 노무사 일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제가 대학을 조금 오래 (10년) 다니다 보니까 졸업을 하고 취직하기가 뭣하더라고요. 그래서 지도교수를 찾아가 대학원을 갈 테니 조교로 선임해달라고 요청하니까 교수님이 네가 나한테 10년을 배웠는데 뭘 또 배울게 있냐고 하더니, 노무사란 직업이 있으니 이걸 하면 너한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도교수의 조언과 달리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은 노무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자 기대보다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더 컸다고 한다.

 

“졸업하고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 일반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이때 아니면 언제가나 싶어서 한 1년 정도 여행을 다녀왔죠. 그 뒤에 이제 맘 잡고 좀 살겠거니 했는데 덜커덕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집에서는 걱정을 많이 하셨죠. 다행히 보통 남들 준비하는 시간만큼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어요. 사실 제가 공부를 잘한 편이 아니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험 직전에 책에서 본 내용이 시험 문제로 2개나 나오고, 운이 억세게 좋았던 거죠.”

 

 

오로지 노동자의 편에서 일하는 김가명 씨

 

그렇게 시작한 노무사 생활도 올해로 어느덧 9년째 접어들었다는 김가명 노무사. 그는 이 노무법인에서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노무법인이 만들어진지 올해로 만 10년인데 저는 수습부터 시작해서 햇수로 9년째 줄곧 여기에서 일했어요. 노무법인의 특성상 돈 때문에 사람들이 이합집산해서 개업하고 동업을 하고 그러다, 결국 돈 때문에 싸워서 찢어지고 그런 일이 많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일하는 동안 단 한 차례 분쟁도 없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뿐만 아니라 아내들,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리고. 아마 이런 직장은 어디 가도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곳은 다른 노무법인과 달리 사용자 자문과 사건을 안 하고, 노동조합 자문과 노동자 사건만을 담당하는 곳이에요. 이런 데는 서울에 5~6군데 정도, 전국을 통틀어도 10개가 안 될 거예요. 저희 같은 노무사들이 모여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회원 130여 명과, 모임엔 없지만 노동조합에 있는 노무사들 등등 따져보면 총 160~170명 정도가 저희와 같은 삶을 사는 노무사들이죠. 전체 노무사가 3,000명이 넘는다고 봤을 때 5%가 안 되는 것 같네요.”

  

 

노무사는 해고, 노동조합 활동, 산재 관련 사건을 대리하거나 노동조합 활동 또는 기업의 인사경영자문을 한다.

출처: 민주노총 서울남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카페


노동자 측 사건만 맡는 공인노무사 인터뷰

 

노무사들 수입은 자문을 하는 사측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노무사 중에는 몇 십억씩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는 노무사도 꽤 있다. 한번은 같은 사건에서 노동자를 대리한 김가명 노무사의 노무법인과 사측 노무법인의 수임료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저는 처음 노무사가 됐을 때 ‘사용자 측 사건은 안 하겠다’,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수습기간을 보내면서 많은 걸 보고 생각하게 되니 사용자 측을 대리하는 건 뭔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싶어서 이렇게까지 왔죠. 아무래도 사용자 측 자문을 안 하다 보니 다른 노무법인에 비해 수익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근근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랜드 투쟁 때의 기억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김가명 씨가 일하는 노무법인의 특성상 노동자(노동조합) 자문을 주로 하는 곳이다 보니, 인상 깊었던 사건도 보통의 노무법인들과는 다를 것 같았다.

 

“여러 사건을 맡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2007년 이랜드 파업할 때 인 것 같아요. 2008년 10월 29일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이 있던 날이었어요. 10월 29일은 원래가 제 생일인데 그날 조합원들 해고 재심판정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당시 이랜드 노조 사무국장님의 남편도 생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무국장님이 작년엔 구속 중이라 생일 못 챙겨줬는데 이번에는 챙길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수석부위원장님은 자기는 결혼기념일이라며 세 명 모두 승리의 기념일을 챙기자고 했는데 사건을 져서 굉장히 마음 아팠던... 그런 날이었죠.”

 

“또 하나는 첫 사건이에요. 2년간 2,600만원 임금을 한 푼도 못 받고 일하다가 찾아오신 방글라데시아 이주노동자 분이었어요. 당시 1월의 굉장히 추운 겨울날 노동부에서 조사가 있어서 먼저 가 있는데, 그때 이 분이 가죽점퍼에 안에 반팔 티셔츠 하나 입고 온 거에요. 그게 어찌나 짠하던지.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아요. 당시 사장이 도망간 상태라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는데요. 어쨌든 기소되고 그러니까 사장이 밀린 돈을 일부 주고, 국가에서 보장하는 체당금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건이었죠.”

 

 

사용자 측 대변하는 노무사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의 편에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노무사로서 심종두(‘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대표, SJM·유성기업 등이 그 예)같은 노무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자못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선택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그렇게 사는 삶이 자기 가치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저도 처음엔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사람을 짓밟으면서까지 저런 짓을 하나, 몹쓸 것들, 하면서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사용자의 입장이 돼서(그 사람들 생각에) 회사 말아먹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걸 자기 사명으로 생각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이해는 안 되지만 애초에 다른 생명체라 생각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쪽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하루빨리 노무사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저는요 제가 이렇게 안 살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도 있는데... 사실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 주변에 우리 같은 사람의 도움이 절박한 사람이 있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사측과 대등하고 평등하게 부당한 일을 겪지 않고도 살 수 있어서, 저희 같은 사람이 필요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살면서 혹은 활동하면서 노무사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은 내가 있는 현장에서 노·사간 풀기 어려운 분쟁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측과의 다툼은 그 과정만으로 노동자에게 분통터지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김가명 노무사가 노동자들이 노무사를 찾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상상이 된다. 하루빨리 그런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고, 김 노무사가 품은 희망을 함께 마음에 담아본다.

 

[A-Z 노동이야기] 새해, 우리의 노동을 응원해줘 / 2015.1

새해, 우리의 노동을 응원해줘

- 작년에 만난 노동자 5인의 인터뷰 그 후의 이야기




정리 : 정하나 선전위원



을미년 새해를 맞아, 작년 이 코너를 통해 자신의 소소하고도 굵직한 일과 삶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주었던 인터뷰이 5인을 다시 찾았다. 과거 인터뷰 이후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청하였다. 


▮ 아파트 경비아저씨, 분신사건 그 이후 (인터뷰 : 송홍석 선전위원)

“3개월 전에 잘렸어. 관리실 눈 밖에 난 거야. 한번은 허리가 아파서 전지 작업, 토공 작업 못 한다고, 우리 일도 아닌데 왜 시키느냐고 따졌거든. 그랬더니 관리실에서 사람을 시켜 경비실에서 밥 먹는데 사진 대놓고 찍어가고, 일도 더 시키고... 나가란 얘기지. 엄청나게 화가 나서 고발한다 했었는데, 결국 우리한테 피해간다고 그냥 사표 쓰고 나갔어. 입바른 소리도 곧잘 하고, 나랑도 마음에 맞고 참 좋았었는데...”


작년 7월 인터뷰했던(「일터」126호) 경비아저씨(익명)를 만나 뵈려 했으나 도통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경비노동자께 여쭤보니 그만두셨다는 소식이었다. 그제야 아파트 내에서 못 뵌 지 한참 됐다는 생각이 스친다. 지난 10월 7일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노동자가 입주민의 괴롭힘과 인격 모독으로 분신자살한 비참한 사건도 있던 터라 동료 분을 붙잡고 이것저것 여쭈어 보았다.

Q. 그 사건 이후 입주민들이 대하는 태도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A. 뭘 변해. 여전히 삿대질은 보통일이고 ‘잘라버린다’, ‘당신 이름이 뭐냐’며 갑질 여전해.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야. 기자 양반, 세월호 사건 봐봐. 안전 문제? 처음에만 반짝하고 말걸. 하기야 유치원은 교육했나, 애들이 인사를 하고 그러데. 근데 어른은 안 바뀌어.




▲ 민주노총에서 지난 12월부터 진행한  <경비노동자 후퇴 없는 노동환경과 고용안정을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캠페인 포스터

 

Q. 내년 최저임금 100% 적용에 따라 경비 절감을 위한 경비노동자들의 해고가 우려되는데요.

A. 우리는 해고할 것도 없어. 최소 인원으로 굴러가거든. 3명씩 24시간 맞교대로 돌아가니까. 한 사람은 정문 지키고, 나머지 사람은 순찰하고 분리수거 해야 하니까 자를 것도 없어. 다른데 보니까 휴식시간을 늘려서 임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더라고. 24시간 근무 중 휴식시간이 6시간(수면 4시간+식사 2시간)인데, 8~9시간으로 늘려서 월급을 줄이는 거지. 문제는 휴식시간이 늘어난 대로 쉬게 해주면 좋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될 거라는 거지. 말이 휴식시간이지, 지금도 휴식시간 중 밥 먹으면서 일하잖아.


Q. 경비노동에 대한 바람, 사회적으로 요구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A. 우선은 우리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 주민들의 태도가 달라졌으면 좋겠어. 경비 보기를 뭣같이 여기니까. 하대하지 말아야 해. 우리 노고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선 우리를 부르는 명칭부터 달라졌으면 해. 청소부도 환경미화원으로 바꿨듯이 우리도 ‘안전 관리원’ 이런 식으로. 우리 하는 일을 더 정확히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 환자·의사 모두 만족하는 진료를 꿈꾸던 의료생협 주치의 (인터뷰 : 최민 선전위원)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살림의원의 주치의로 ‘나는 든든함을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던 무영(「일터」121호). 단순히 환자가 아닌 조합원의 권리와 자격으로 내원하는 지역주민과 함께 병원과 진료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을까?


Q. 살림의료생협 조합원은 늘었나요? 

A. 조합원은 크게 늘진 않았습니다. 사실 살림의원 단골 중 비조합원이 많아요. 이용에 불편함이 없으니까 자주 드나들면서도 조합가입 안 하는 경우가 꽤 됩니다. 너무 오래 단골이셔서 이제 와서 가입 권유하기 민망할 때도 있는데, 이분들이 조합원이 되도록 만드는 활동을 더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조합원들이 신뢰한다는 것이 의사로서 좋은 직장이 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했었는데요. 故 신해철 의료사고 같은 일을 겪으면서 혹시 조합원들이랑 이런 얘기를 나눠본 적 있나요? 

A.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얘기한 적은 없지만, 조합원들이 페이스북 같은 데에 '이런 사고를 보니 주치의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살림의원 주치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글을 많이 올리시긴 했어요. 주치의가 있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정해주는 믿을만한 의사가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와 반대되는 길인 영리병원이나 의료민영화도 반대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Q. 지속 가능한 진료를 위한 진료시간 단축계획이 인상적이었는데, 노동조건 개선이 잘 되어가고 있나요?

A. 일단 의사선생님이 한 분 더 들어오셨습니다. 역시 조합원이시고요, 몇 개월의 적응기간을 거쳐 올 1월부터는 확실히 2인 분담 진료체계로 갑니다. 주4일 둘이 합쳐서 총 31시간 진료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2014년은 입사한 모든 사람이 자리를 지킨 첫해였습니다. 간호조무사들 임금상승도 중요한 요건이었겠지만 복리후생도 많이 좋아졌거든요. 무엇보다 토요일에 돌아가면서 쉴 수 있었습니다. 병원 대부분이 주말에도 진료하는 것에 비하면 이게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에게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올해부터는 간호조무사도 주5일 근무제이고, 토요일근무는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토요일까지 주 6일 출근하게 되면 그다음 주엔 4일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요. 점점 더 꿈의 직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1년씩 계약갱신을 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 (인터뷰 : 흑무 상임활동가)

딱 1년 전, 그러니까 「일터」2014년 1월호(통권 120호)에서 만났던 기간제 교사 이원숙(가명) 씨. 역사과목 교사로 10년의 경력을 가졌지만, 계약이 갱신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매해 연말 노심초사하던 원숙 씨의 소식도 물어보았다. 


Q. 재계약은 되셨나요?

A. 네. 여긴 2년 정도 다닌 학교인데, 작년 12월 중순 정도 ‘내년에 자리가 있으니 의향이 있으면 남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보통 다음연도 2월 초~중순이 돼야 그해에 기간제 교사 자리가 나는지 결정이 나거든요. 그에 비하면 빨리 결정이 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Q. 작년 한 해 동안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을까요?

A. 여기는 공립학교라 그런지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간 차별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다녔어요. 누가 기간제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죠. 아. 2학기 때 교장이 바뀌었는데 비민주적 행보의 최고봉을 달리고 있어요. 교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를 피해 다른 학교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교장의 독재에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화가 나고 답답해요. 제가 정교사이기만 했어도 전교조 등 어떤 활동이라도 하면서 문제를 제기했을 거 같거든요. 교장 행보에 제동을 건다거나, 학교의 문제점 중 작은 부분부터 목소리를 모아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저 개인적인 불평불만으로 그치거나, 문제를 제기해도 마음만큼 확산시키지는 못하니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네요. 비정규직 신분의 한계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 추석과 연말연시 너무나 바빴을 우편집중국에서는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12년째 동서울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양영순 씨,「일터」통권 124호에서 밝히길 안 아픈 곳이 없는 ‘종합병원’이라고, 그래도 여성으로서 시간과 임금 그리고 연차가 보장된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노라고 했었다. 요즘엔 어디 아픈 데 없으신지, 추석과 연말연시 시즌에 죽음의 물량공세는 잘 버티셨는지 제일 궁금했다. 


“우편업이 사양산업이잖아요. 소포도 경쟁업체가 많고.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물량은 줄은 편이에요. 우편 분류 작업하는 기계가 새로 바뀌었는데, 기계 성능이 좋아서 한 번에 분류하는 편지봉투가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이 하는 동작도 더 빨라져야 하니까, 일이 편해진 것은 없죠. 더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몸은 뭐, 오늘도 한의원 갔다 왔고, 그래요. 큰 변화는 없는데 그래도 지난번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어요. 직업병이니 일을 안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고. 여기 하는 일이 똑같은데 이게 어디 가겠어요.”



▲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집배노동자들을 중대재해 등의 위험으로 몰아넣는다.(그림: 박원종 화백) 



▮ 학생 가르치는 알바하며 대학원 다니던 논술 첨삭 알바 선생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비대해진 한국사교육계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논술학원에서 고3 수험생과 1년 일정을 같이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있던 박다현 씨(「일터」 통권 127호).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들은 요즘 대입을 앞두고 있을 터, 그녀는 올해에도 첨삭알바를 계속 할 계획일까? 


“2014년 수능 때(최종 기간, 약 2주)에는 거의 일 안 하고 하루 이틀만 나갔어요. 저도 이제 대학원 수업도 있고, 조교 일도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많이 가난해졌어요. (웃음) 올해도 시간 나는 대로 계속 첨삭알바는 할 생각이에요. 학교공부 하면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으니까요. 생활비가 필요하니 지금처럼 대학원 방학기간에는 논술 학원 일을 되도록 많이 해야 할 거 같네요.”


2015년, 오늘 다시 만난 5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터」가 만나왔고 또 만나게 될 모든 노동 이야기가 안녕하길 기원한다.

[A-Z 노동이야기] 기술과 예술의 사이에서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 2014.12

기술과 예술의 사이에서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

- 사운드 엔지니어, 허정욱 녹음실장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걸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처럼 소리인데 색깔과 촉감까지 느껴지는,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이 동시에 느껴지는 언어표현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종을 쳐서 소리를 내되 그 소리가 분수처럼 허공에 산산이 부서지게 하려면, 그리고 그 부서진 소리가 푸른색을 내게 하려면?



“이 소절에서 기타소리를 좀 따뜻하게 해주세요”



홍대 부근의 한 녹음 스튜디오(‘석기시대’)에서 만난 허정욱 씨는 실제로 기타 소리를 따듯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따듯한 기타 소리를 도자기 그릇을 깨버릴 것 같은 소리로 만들기도 하고, 부모가 어린아이의 등을 토닥토닥 쳐주는 것 같이 부드러운 드럼 소리를 군인이 철문을 발로 차듯 거친 느낌으로 바꾸기도 한다. 소리를 만지고 만드는 사람, 그는 사운드 엔지니어(음향 기사, 사운드 프로듀서)이다.



“음악이 대중들의 귀에 들리기까지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작사 ․ 작곡가가 곡을 먼저 만들면 이 음악의 느낌을 잘 살려줄 악기와 소리, 리듬을 배치하는 편곡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완성된 곡의 악보대로 보컬을 포함한 각 주자들이 연주하면 녹음을 하는데, 그때부터가 제 역할이죠.”



작곡된 곡이 하나의 완성된 음악으로 되기 전, 각각의 소리를 녹음하고 그걸 한 곡으로 조화롭게 섞는 작업, 그것이 정욱 씨가 하는 일이다. 스튜디오에 찾아오는 음악가들의 음반 작업도 참여하고, 때때로 밴드들의 라이브 현장 녹음도 한다. <브로콜리너마저>, <델리스파이스>,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 등도 음반을 만들기 위해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뮤지션들하고 이렇게나 많이 만난다니, 일터가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 작업을 같이 한다는 게 재미있죠. 그런데 제일 재미있는 건 어떤 처리도 되어 있지 않은 ‘날 것의 녹음 데이터’를 듣게 된다는 점입니다. 팬들 앞에서는 한없이 멋진 스타인데 녹음된 거 들어보니 실력은 사실 그에 못 미친다든지, 무대에서 소극적이고 자신 없어 보이던 친구들인데 ‘와 대박이다, 너무 잘한다’ 싶을 정도로 놀라게 된다든지 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관객은 물론이고, 제작자도 잘 모를 수 있는 원초적 상태의 실력과 소리를 컴프레서나 이퀄라이저 같은 음향장비를 사용해 장점은 더 부각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과 음악가가 직접 소통하도록


인터뷰를 진행한 공간은 수십 개의 버튼과 레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름 모를 기계로 꽉 차 있었다. 


▲ 정욱 씨가 일하는 스튜디오의 녹음실 (출처: 석기시대 스튜디오 페이스북)


“전자기기들이 많으니까 기계에서 나오는 열 덕분에 오늘같이 추운 날씨에 스튜디오는 난방을 안 해도 될 정도입니다. 이런 장비를 사용해서 녹음․믹싱을 하는데요. 좋은 사운드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거슬리는 게 없는 사운드가 아닐까요? ‘이거 소리가 왜 이렇지?’ 혹은 ‘오~ 소리 좋다’, 이런 생각 자체가 안 들고 음악이 주려고 한 느낌과 감동 그 자체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음반을 듣는 사람과 뮤지션이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만약 슬픈 발라드 음악을 듣는데 높은 음이 너무 뾰족하고 또렷하게 들린다면 방해가 될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실황 녹화비디오를 보며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데, 가수의 노랫소리가 적당한 울림이나 퍼짐 없이 너무 깨끗하게 들려도 문제일 것이다. 



“영상과 소리가 같이 있는 경우에는 대중들이 노래에서 주는 느낌과 영상에 깔리는 그림에서 일치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소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녹음할 때 선명하게 잘 녹음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예전에 한 뮤지션의 유럽투어 프로젝트에 함께 했습니다. 유럽 아름다운 성이나 호수를 배경으로 그 가수가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영상을 만드는 일이었죠. 제가 혼자 일할 때였는데, 현장 동시 녹음하는 이동용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60kg짜리 장비를 무거운지도 모르고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면서 레코딩을 했습니다. 녹음 후 후반 작업을 할 때에도, 만약 한적한 호숫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라면 야외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소리의 공간감을 달리해야지요. 영상은 광활한 대지와 넓은 하늘을 보여 주는데 노랫소리는 마치 좁은 방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처럼 들리면 곤란하겠죠?”



사운드 ‘엔지니어’는 기계를 다루는 일인 만큼 여러 가지 음향기기의 성능과 사용도 잘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사운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음악과 예술을 느끼고 이해하는 감성도 그 못지않아야 할 것이다. 작곡가가 어떤 의도와 심정을 가지고 이 곡을 썼는지를 이해해야 녹음된 이 소리가 좋은 소리인지, 아니면 효과를 덧입혀 다른 감성의 소리로 바꿔줘야 하는 건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스튜디오에서 한창 작업 중인 정욱 씨(출처: 석기시대 스튜디오 페이스북)


“뮤지션들이 녹음하면서 ‘엔지니어님, 이 부분에서는 제 악기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게 해주세요’라고 요청은 하지만 악기 소리가 시원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인지 본인도 막연할 때가 많아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샘플을 가져와 들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듣고 바로 알죠, 저희는. ‘어떻게 만들면 되겠구나!’ 해서 바꿔서 들려주면 그분들은 저희보고 예술가라고 합니다. 각 장르에서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을 들으면서 면밀하게 분석을 해 보아야 해요. 많이 들어보고 사운드가 맘에 드는 부분은 실제로 직접 만들어보면서 연습을 해 봅니다. 한 번에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리고 여러 장비를 실제로 다루어 보면서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게 됩니다.” 



일 시작하고 초기에는 정말 돈이 없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1,500원짜리 제일 싼 햄버거랑 맹물로 끼니를 때우던 그때에도 가끔 돈 생기면 무조건 마이크를 사거나, 새로운 이퀄라이저를 샀다. 중고로 사고팔면서 그를 스쳐 지나갔던 여러 장비, 이것저것 다뤄 본 경험과 기억이 다 실력으로 남았다. 



쉴 때는 음악 못 들어요



허정욱 씨도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는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를 했고, 클래식 등 다방면의 음악을 듣고 즐겼다. 그러나 듣는 것 자체가 일이 된 지금은 새로운 음반을 찾아서 듣는 것이 부담스럽다. 



“막상 음악을 많이 못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걸 찾아서 듣는 건 어느 순간 멈췄네요. 아마 이쪽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고칠 점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쉬면서도 또 ‘듣기는’ 솔직히 좀 힘들거든요. 귀도 지치고 마음이 지치니까요.”



연말이면 공연이 많다. 무대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에 음악이 주는 위로와 쉼을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만지고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자리를 이렇게 확인한다. 이번 연말 콘서트에서는 그 자리를 확인하며 들어봐야겠다.



[A-Z 노동이야기]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2014.11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13년 베테랑 출판 기획편집자와의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당신에게 ‘책’이란?” 모 예능프로그램 MC가 초대 손님에게 하듯, 나도 다짜고짜 이렇게 묻고 싶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장장 13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계속 해 온 그녀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출판사는 몇 번 옮겼지만, 딱히 쉰 적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 질문부터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지현(가명) 씨. 대체 이 사람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Q. 와! 대체 13년 동안이나 출판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A.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이러다가 출판계의 조상, 화석이 될지도? 하하하. 계속 책을 만들고 있었죠 뭐. 출판 편집자(에디터)이니까요. 전반 7~8년은 주로 원고 교정·교열을 했어요. 저자가 완성해서 가져온 원고를 보고 문장을 잘 다듬어서 책으로 낼 수 있게 하는 일이요.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출판 분야에서 ‘기획편집’에 대한 요구가 훨씬 커졌고 저도 경력이 쌓이면서 업무가 진화해 갔어요.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구상을 한 후 신간 기획서를 내고 회의를 거쳐 승인이 떨어지면, 저자를 섭외하고 원고 받아 교정 교열하고, 책으로 만들어서 판매 홍보하고. 정말 책 한 권을 만들어서 독자 손에 전달하기까지 필요한 전 과정을 다 핸들링하는 일이지요.

 

 

Q. 흔히 출판 쪽은 박봉이고 일도 힘들다고 하던데, 무슨 마력이 있었나 봐요, 계속 편집자의 길을 가시는 걸 보니. 책 만드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나요?

 

A. 처음 출판사 쪽으로 취업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이쪽 일이 엄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요. 칼럼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으니 배워야겠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돈도 벌고 글 쓰는 법도 배울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문을 두드렸어요. 첫 직장은 정말 작은 출판사였는데 초봉 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고, 출근한 첫날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어요. 거기서 한 5년 반 정도 일했는데 책 제목 짓기는커녕, 왜 책 앞뒤 표지에 있는 카피 문구 있잖아요? 그런 것도 한번 안 써 보고 내도록 교정교열만 했었지요. 그 다음에 갔던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업무는 똑같았는데, 일은 더 많았어요. 신간 출판량이 워낙 많았던 곳이라 밤새서 일하고, 사무실에서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일하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때가 지금보다 젊었고 일하는 데 시간도 훨씬 많이 썼지만, 책 만드는 사람으로 진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건 기획편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나 가치관을 담은 책을 만들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의미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이전에도 분명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었지만 보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느껴요. 물론 신경 쓸 일은 훨씬 늘어났지만요. 

 

 

Q. 아까 편집자가 신간 구상과 기획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저자보다 책을 먼저 만들기 시작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A. 일단, 회사에 나는 ‘어떤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서를 써내요. 주제를 잡고 주제를 살릴 수 있는 컨셉을 명확하게 잡아서요. 예를 들면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굉장히 큰 소리로 떠드시는 노인 한 분을 거의 매일 뵙는데요. 볼 때마다 큰 목소리로 떠드시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는 행동을 하고 계셔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예쁘게 늙는 법’에 대한 책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그런데 주제를 잡은 것만으로는 책을 절~대 낼 수 없어요. 노인복지를 전공한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노인에 대해 잘 아시죠. 책 한 권 내시면 어때요?’ 한다고 해서 책 원고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늙는 게 문제인지, 교양이란 대체 무엇인지, 대체 어떤 독자층에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등 세부 컨셉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제안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트렌드를 잘 꿰고 있어야 해요. 기획서를 받는 편집장님과 사장님이 1차 설득대상인데 ‘이런 책이 진짜 없느냐? 없으면 왜 없겠느냐, 안 팔리니까 없겠지.’라고 하시면 대답할 말이 있어야겠죠. 요즘 대중들이 원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면서도 살짝 방향성이나 컨셉이 새로운 신간 출판을 설득력 있게 제안할 수 있으려면 많이 보고 듣는 과정이 필요해요.

 


Q. 시중에 있는 듯하면서 없는, 신선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지 않은, 그야말로 대중과 ‘썸’타는 책이어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신간 아이디어는 얼마나 자주 제출해야 하나요?

 

A. 출판사마다 다른데, 저희는 신입 포함 모든 편집자가 한 달에 한 번은 기획서를 제출해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얘기도 나누면서 기획할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많이 넣어두어야 하지요. 저도 업무 중에 SNS 확인, 주요 일간지 및 잡지 기사 읽기, 각종 포탈의 메인이슈 클릭해 보기를 열심히 해요. 어떤 때는 내가 노는 건가 일하는 건가 약간 애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봐두면 다 쓸데가 있더라니까요. 아! 전번 다니던 회사에서 스타 에디터급 선배가 계셨어요.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분이시죠. 이분 같은 경우 대중음악이나 영화 인기순위 1위부터 10위를 매일 숙지하고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회 각 분야 최신 소식이나 유행은 다 섭렵하고 계셨어요. 출근해서 ‘어제 ○○○영화 관객 몇 명 들었대요?’라고 여쭤보면 즉각 대답해 주시곤 했죠. 기획 들어가기 전에 유사도서 20권 읽기, 저자 섭외 단계에서는 저작 몽땅 섭렵하기. 이런 게 그 선배의 ‘기본’이었어요. 대충 느낌 오시죠?

 

 

Q. 잘 만들어진 기획서가 통과되면 그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A. 이제 바로 저자를 컨택(섭외)하는 단계입니다. 사실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운 단계에요. 실제로 저는 신간 기획서가 거의 통과되는 편인데 저자 컨택이 어려워서 좌초된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칼럼이나 논문 같은 걸 보고 기획안을 만들었을 경우 특정 저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이미 책을 낼 수 있는 원고를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 즉, 편집자가 발굴한 저자인 경우 제가 먼저 기획취지를 잘 설명하고 샘플 원고를 써 보시게 합니다. 한 챕터(장) 분량만 받아서 읽어보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고요. 괜찮으면 계약을 하고 정식원고 집필을 진행하는 거죠. 원고가 그렇게 완성이 되면 교정교열 단계인데요. 교정교열은, 하아. 장담컨대 앞으로 이 일을 10년을 더 해도 절대 빨리 단축해서 할 수 없을 거예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거기 나오는 달인들이 눈감고 초밥을 쥐어도 밥풀 300개, 종이 대충 잡아도 A4 한 권 분량 딱딱 나오는 것처럼 한 10년 일했으면 교정교열 1회만 보면 완벽하면 좋겠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교정교열은 무조건 최소 3교, 많을 때는 6교~10교까지도 봐야 하고, 그것도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동료들과 돌려보는 협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수정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보는 적자대조, 그리고 최종교를 보게 됩니다.

 

교정교열 할 때 책 디자인도 함께 진행해요. 편집 디자인이라고 하죠. 표지와 내부 디자인을 맡기는데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저희 출판사는 내부에 디자이너가 있어요. 그 다음이 인쇄죠. 디자인, 인쇄의 단계에서도 역시 편집자가 책의 컨셉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표지의 색감과 선명도를 체크하는 일까지 모두 하나하나 함께 확인합니다. 디자이너와 인쇄 담당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마지막 책이 나올 때까지 그야말로 같이 책을 만드는 거지요. 책이 나온 후엔 마케팅팀과 홍보 전략을 같이 짜고요.

 

 

Q. 과정을 들어보니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스트레스이진 않나요?


 

A. 출판 쪽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과정마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됩니다. 아까 설명해 드린 교정보는 것만 해도 혼자서는 완벽한 교정이 절대 불가능해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일과 일정을 조정하는 게 물론 쉽지는 않지요. 다들 각 분야에서 전문가이신 만큼 각자의 스타일과 주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대하기 힘든 존재는 ‘원고’님입니다. 사람은 그에 비하면 어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좀 과장인 듯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자의 거룩함이랄까? 문자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이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교정보다가 우리‘는’ 으로 할까 우리‘가’로 할까 몇 십 번을 고민합니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원고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붙들고 저희는 수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13년, 유지현 씨가 출판 노동에 더욱 즐거움을 느끼며 베테랑 편집자로 발전해 간 세월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출판 노동자로서 살면서 직업병 한두 개 안 생겼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예전보다 눈이 침침해졌고 목 어깨가 종종 뻐근하다고. 이는 비단 유지현 씨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출판사에서는 직원복지 차원으로 몸살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지현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고. 이 잘못 굴러가는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는 책, 그런 목소리를 내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현 씨가 낸 책을 읽고 세상을 바꾸는 독자들, 나도 사뭇 기다려진다

[A-Z 노동이야기]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 / 2014.10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

'건축 설계사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장



초과노동 200시간, 병 나는 게 당연


30대 후반, 이승현(가명)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제법 큰 규모의 건축 설계회사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있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대학에 가고, 전공 살려 대기업에 취직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니 꽤 안정적인 인생이다. 


그런 이승현 씨가 얼마 전 아주 호되게 열병을 앓았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걸을 수조차 없었다. 뇌수막염이 아닌가 걱정됐지만 아직 취학 전인 아이가 셋이었다. 부인은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혼자서는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아파, 주말 내내 집에서 끙끙댔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앓고 나니 열은 떨어졌는데 월요일 출근하자 온몸에 반점이 올라왔다. 덜컥 겁이 나서 그제야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했다. 다행히 열이 떨어졌으니 특별한 치료는 필요 없다 했고, 그 뒤로 잘 회복되었다. 


아직 어린 셋째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은 것 같다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냐는 의사 말에 이승현 씨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전 달 초과 근무가 200시간이었다. 주 5일, 40시간 근무로 치면 근무 시간을 모두 합쳐도 200시간이 안 돼야 맞다. “초과 근무가? 정규 근무 빼고?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이 나오지?” 하는 질문을 혼잣말처럼 계속 터뜨리는 내게 덤덤하게 답한다. 


“새벽 4시에 퇴근하고, 그날 아침에 다시 9시까지 출근하면 그렇게 되지요. 주말에도 출근하고요. 그 와중에 3일 휴가도 다녀왔다니까요. 물론 매일 그렇게 사는 건 아니죠. 그렇게 어떻게 살겠어요. 1년에 3-4번 정도 큰 프로젝트 할 때만 그렇게 심해요. 1-2달 정도?”


1년에 3-4번, 각각 1-2달이면 1년에 절반은 이렇게 산다는 거 아니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당연히 저도 쉬고 싶죠. 전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아프고 나니 정말 몇 달 쉬고 싶더라고요. 와이프한테도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나 이렇게 못 살겠다, 쉬고 싶다. 그런데 와이프는 불안한가 봐요. 한 번 쉬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저는 사실 몇 달 쉬어도 충분히 재취업하거나 새로 시작할 자신이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안 그런가 봐요.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데 말리더라고요.”



회의하다 회사에서 자살했다는 선배 이야기


“사실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소개해 드릴 수 있어요. 주변에서 누가 심장병이라더라, 누구는 자고 일어났더니 죽었다더라 이런 흉흉한 얘기가 많아요. 일의 양이 많기도 하고,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도 심하죠. 최근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저희랑 비슷한 규모의 꽤 큰 회사에서 임원진 회의 하던 도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회의실 창문으로 걸어가 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를 바이러스성 열병에 걸리게 했던 것은 병나기 직전 그가 이끄는 팀이 맡았던 경쟁 입찰이었다. 


“공공기관에서 건물을 짓기로 했어요. 이 경우에는 설계만 가지고 먼저 공개 입찰을 했지요. 거기서 설계를 선정하게 되면, 그 설계를 가지고 다시 건설사를 입찰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이때는 건축 설계랑 건설사랑 개별로 선발하는 거죠. 설계에 세 개 회사가 경쟁 붙었는데 다행히 됐어요. 병나도록 일했는데 떨어졌으면 속상했겠죠.”

 

다행히 이승현 씨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나머지 두 회사에서도 그의 회사와 비슷한 규모의 팀이 꾸려져 그들도 한 달에 200시간 초과 근무를 했을 것이다. 그 중 한두 명은 이승현 씨처럼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는데도 입찰에서 떨어진 그 회사 팀장은 회의 도중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투명하게 결정한답시고 이렇게 경쟁을 시켜요. 서류 심사 같은 걸로 2팀으로 미리 줄여서 경쟁시킬 수도 있는데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거잖아요. 꼭 이렇게 안 해도 돈 줄이고 투명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 같은데. 나 시키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계획 세우는 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만 일해서 그래요. 자기들이 일을 만들면,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는 거죠.” 



어디 가세요? 퇴근 하세요?

 

발주자가 이렇게 설계사와 건설사를 따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설계와 시공을 한 업체에 맡기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 일명 턴키(Turn-key, 일괄수주) 방식이 있다. 자체적으로 설계 회사도 가진 재벌기업이 아니면, 건설사가 설계회사와 팀을 이뤄서 경쟁에 나선다. 이렇게 되면 설계비와 시공비가 모두 합쳐져 입찰 규모가 어마어마해지고, 건설사가 이 경쟁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러면 건설사까지 그의 상사가 된다. 건설사에서는 대리를 한 명 파견해 설계회사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감시한다. 


“턴키 설계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모아 큰 방을 하나 쓰거든요. 2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하는 거죠. 그러면 건설사에서 대리를 한 명 보내요. 사실 그 사람이 정말 대리인지도 모르겠어요. 비정규직, 알바 쓰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튼 대리 한 명이 나와서 뭐 하는지 아세요? 그 턴키 방 출입구 앞에 책상 하나 갖다 놓고 앉아서 엑셀 파일 만들어, 우리 턴키 팀 직원들 출퇴근 시간을 적는 거예요. 설계하는 기간 동안 그 일밖에 안 해요. 

밤에 나가려고 하면 ‘어디 가세요?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뇨, 커피 마시러 가요.’ ‘에이, 가방 가지고 가시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이런다니까요.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그 때 바로 퇴근하셨죠?’ ‘아니요.’ ‘에이, 제가 보니까 안 들어오시던데.’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하하하.” 


유머감각이 있는 이승현 씨는 건설사 직원과 설계회사 직원 사이의 실랑이를 능청스럽게 흉내 내며 재밌게 얘기했지만, 12시 전에 퇴근하면 일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니냐고 설계회사 사장이나 팀장에게 항의하고, 심지어 설계팀 직원들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계약금보다 덜 지급하려는 건설사의 횡포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승현 씨도 젊었을 때는 건설사 직원이 말려도 ‘나는 피곤해서 더는 일 못 한다, 사장이나 팀장이랑 얘기해라’ 하고는 집에 가버리곤 했다. 그러나 사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제 저도 슬슬 간부급이에요.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달라져요. 연차가 높아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 받는 평가 중 충성도 부분이 늘어나요. 젊은 직원은 그 사람이 회사에 충성하냐 아니냐는 안 중요하고, 일만 제때 잘하면 되거든요. 그 때는 저도 건설사 직원 신경 안 쓰고 집에 일찍 가고 그랬죠. 나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임원이 되어 갈수록, 능력 못지않게 충성도가 중요한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못 하죠. 아래 후배들이 그렇게 집에 가면 저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출처 : v3wall.com


아직은 욕심도 있고, 꿈도 있어요


모든 건축 설계사가 이승현 씨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회사 내에서도 그는 큰 기획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예를 들어 그가 이번에 기본 컨셉을 잡고, 큰 틀의 설계를 해서 입찰을 따내면, 그다음에 일을 이어받아 구체적이고 자잘한 설계를 하는 팀도 있다. 그 팀은 일도 적다. 대신 돌아오는 성취감, 회사에서의 인정, 급여도 적다. 


“그래도 저는 아직은 버틸 수 있고, 욕심도 있으니까 이렇게 남아서 오버하며 일하는 거죠. 아직은 할 수 있고, 좀 더 해내고 싶으니까. 회사 내에서도 좀 더 편한 부서가 있고 나가서 제 사무실 내고 다세대 주택이나 작은 상가들 설계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게 재미있어요.”


이런 욕심과 꿈이 이렇게 경쟁적이고 이렇게 쥐어짜는 시스템에서도 승현 씨가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동력일 것이다. 이승현 씨가 지금 직장에서 법정 노동시간만큼 일하면서도 꿈과 열정을 담아 설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몇 달은 쉬고 싶은 것 역시 승현 씨의 꿈과 욕심이다. 이런 꿈과 욕심을 일에서의 꿈과 욕심과 함께 채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숙제가 많아진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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