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 2015.2

[특집3]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기
- 그녀들의 일하는 이야기

 

 

우리 아이가 컸을 때는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19살, 가을 1994년 9월 26일에 회사에 첫 출근을 했어. 시골 촌구석에서 여고를 다녔는데, 3학년이 되니까 회사에서 사람을 뽑으러 학교로 오더라고. 어리바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면접 보라고해서 면접을 보고 지금은 이름이 바뀐 ◯◯◯◯◯에 오퍼레이터로 첫 출근을 했어. 회사에 들어가 3개월은 공부만 했던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내가 쓸 케미(화학물질)는 뭔지에 대해서. 물론 그 케미가 내 몸에 좋은지 어쩐지는 안 알려주지. 근데 어렴풋이, 눈치로는 알겠더라. 이게 이런 역할을 하니까, 독하겠구나…. 몸에 좋지는 않겠구나…. 하고.


10년 동안 3교대로 일하면서 공장과 기숙사만 오갔지. 일은 엄청 힘들었어. 그래도 교대수당 붙고 성과급 붙으면 월급은 주변 보다 훨씬 많았는데……. 돈 다 어디 갔나! 모르겠네. 내 10년 세월인데.

 

29살, 가을 거기서 10년 일하고 서울로 왔어, 동생이 서울에 같이 있자고 해서. 10년을 지방에서 공장과 기숙사밖에 모르고 보냈더니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 일자리를 구하려면 벼룩시장 같은걸 보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봇대를 살폈어. 왜냐고? 옛날처럼 전봇대나 담벼락에 구인광고가 붙어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지역을 몇 바퀴 돌아도 구인광고가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이 지역에는 공장에 빈자리가 없는 줄 알았다니까, 참.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0년인데 주로 전자제품을 조립하거나 검사하는 일을 했어. 50명도 안 되는 회사도 있었고 100명 가까이 되는 큰 회사도 있었어. 생산라인은 다 여자지. 아무래도 핸드폰같이 작은 건 손을 쓰는 거니까 여자들이 많은 거 같아. 그래도 처음에는 일하는 회사에 취업했는데, 점점 파견회사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더라고. 요즘! 다 파견이지. 근데 일은 점점 많고 힘들어지는 것 같아.

 

한 번 들어가면 보통 1년 정도 다녔어. 오래 다닌다고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딱 ‘최임’에 맞춰주거든. 1년 일해도 3년 일해도 다 똑같아 월급은. 사람보고 다니는 거지, 정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그 사람들 보고 다니는 거야. 근데 옮기기도 많이 옮겨. 다른데 가봐야 다 똑같다는 거는 아는데, 주임이나 계장이나 못된 놈 만나면 안 옮길 이유가 없는 거지. 그 전에 다니던 데도 관리자가 어찌나 무시하고 성질을 부리던지……. 근데 그렇게 옮기잖아? 그러면 거기서 또 만나! 그 전에 같이 다니던 사람들을. 다들 상황이 비슷한 거지.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만나고.

 

또 어려운 건 물량 따라서 일도 월급도 들쑥날쑥 이라는 거야. 미리라도 얘기해주면 좋은데 안 그러지. 오늘 아침에 출근했는데 점심 먹기 10분 전에 주임이 들어와서 ‘오늘은 12시에 퇴근합니다!’ 이러는 거지. 아니면 3시 10분에 쉬는 시간인데 3시에 라인 들어와서 ‘오늘은 3시에 퇴근합니다!’ 하고. 우리는 딱 일한 만큼만,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으니까 이렇게 되면 생활할 수 있는 월급이 안 되지. 라인에 있는 언니들, 10명 중에 2~3명은 가장이거든. 그래서 이런 언니들은 부동산 전단지 알바도 뛰어야해.
전자산업이라고 특별할 건 없어. 오히려 전자산업이라고 부르는 게 싫어. 그렇게 부르면 뭔가 “내가 못나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 이런 느낌이 들거든. 기분이 안 좋아. 자존심도 상하고.

 

39살, 가을 임신을 해서 이제 아이를 낳아야하는데, 이 회사에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같은 게 없는 줄 알았어. 한 명도 쓴 사람이 없었거든. 경리 보던 여자 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임신 초기에 관두고, 또 한 사람은 7개월쯤 되니까 그냥 관두더라고. 그래서 나도 배가 더 부르면 관둬야겠다고 생각했어. 경리부서만이 아니라 (생산)라인에서도 7개월 정도까지는 일하고 그 뒤에는 관두더라고. 근데 남편이 아니라는 거야. 법으로 보장된 거라는 거야. 그래서 되든 안 되든 한 번 얘기나 해보자, 싶어서 회사에 얘기를 했더니 회사도 몰랐더라고, 그런 게 되는 줄. 회사도 잘 몰라서 우왕좌왕 하던 걸! 우리 회사에서 사무나 생산, 통틀어서 내가 처음으로 출산휴가를 썼어. 근데 출산 휴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서 회사가 문 닫은 거 있지. 얼마 전에 00사 문 닫았잖아, 우리 회사가 거기 납품했는데 거기가 망하니까 여기도 문 닫은 거지. 참 나……. 아직 퇴직금도 못 받아서 체당금인가 뭔가 그거 신청하려고 하고 있어. 우리 회사 최초로 육아휴직도 한 번 써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컸을 때는 세상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 | 정리 및 재구성: 흑무(상임활동가)

 

 

꽃다운 나이에 피크타임 단시간알바로 살기

 

꽃다운 나이? 내 나이 스물둘. 남들은 “꽃다운 나이다, 부럽다, 나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피자가게, 커피숍, 빵집, 술집 등에서 단시간 알바로만 생활한지 벌써 3년째. 대학은 지금 당장 뜻이 없어서 진학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집에서는 내가 골칫거리가 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부모님 잔소리가 너무 힘들어서 월세 방을 구해 독립했다. 내가 원하는 삶,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때론 불규칙한 생활, 쉼 없는 노동에 따른 육체적 힘듦, 또래와 다르고, 20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들로 고단하다.

 

주방이모&손님 요즘엔 홍대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사장님도 지금껏 일한 곳에 비하면 나쁘지 않고, 서빙일엔 대부분 최저시급(5,580원) 주는데 여긴 시급도 7,000원이니 꽤 센 편이다. 그래서 7개월째 일하고 있다. 출근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퇴근이다. 피크타임에 일하다 보니 숨 한번 돌릴 틈 없이 정신없이 바쁘다. 매번 단시간 알바를 하다 보니 대개 가게들이 가장 바쁜 3~4시간 몰아서 일하는 데는 최적화된 알바생이다.

 

식당 서빙일이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사장님의 갈굼, 진상 손님과의 실랑이 등 힘든 구석이 꽤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홀과 주방과의 신경전이 가장 힘들다. 주방은 음식을 다 만들었는데 서빙 알바들이 주방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제때 음식을 못 내보낸다고 알바 생들을 크게 다그친다. 음식을 밖으로 내려면 손님이 나간 테이블을 치우고, 그 틈에 다른 테이블 음식 주문부터, 휴지 달라, 숟가락 달라 등등 주문사항을 듣다보면 주방 속도에 맞추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주방은 남의 속도 모르고 화부터 낸다. 그렇다고 이모뻘인 분들에게 뭐라 대꾸하기도 어렵다. ‘서로 바쁘고 몸이 힘드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렇겠지.’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기분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주방 이모 주방에 있는 이모들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 나이도 많은데다 대개 12시간씩 종일 서서 칼질하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하니 목·손목·어깨·무릎에 파스가 떨어진 날을 본 적이 없다.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지금이야 나도 버티고는 있지만 밤만 되면 손목, 무릎, 종아리 등등 안 아픈 곳이 없다. 일하는 내내 서있거나 주방과 홀 사이로 그릇 들고 뛰어다니니 안 아픈 게 이상할 정도다. 주방에서 음식을 갖고 나올 때면 미끄러운 바닥을 지나야 하니 허리나 발목을 삐끗하는 일도 늘 있다. 서빙하면서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고 하거나 술주정하는 진상 손님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피크타임에만 일하면 남들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짧은 시간 알바 하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한다. 24시간 중 절대적으로는 일하는 시간은 짧지만, 가게에서 가장 바쁜 4~5시간을 쉬는 시간 없이 압축적으로 일하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커피숍 알바를 할 때인데 손님이 너무 없어서 잠깐 계산대에 있는 의자에 앉았더니 나중에 사장님이 의자를 치워버리더라. 지금 식당 서빙일은 피크타임이 끝난 후 3시에 점심을 먹게 된다. 이때가 하루 중 첫 끼니다. 이렇게 점심시간이 늦어지니 저녁식사 시간도 당연히 보통 사람들과 밥 먹는 시간이 달라진다. 퇴근하고 6시쯤 활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일도 논의할 겸 같이 저녁을 먹는데 나는 배가 불러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10시쯤 넘으면 배가 고파온다. 그때 대충 집에서 밥을 차려 먹거나 귀찮을 땐 편의점에 들려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좋지도 않은 음식을 밤늦게 먹으니 살은 찌고 소화는 안 되고 밥을 먹어도 문제 안 먹어도 문제다.

 

외모와 서비스업의 관계 최근엔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지금 일하는 곳에 정이 꽤 들었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가게 장사가 어려워서 아무래도 오래 있기 힘들 것 같다. 알바자리가 넘치는 것 같지만 요새는 경기 침체 여파가 심각해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단시간 알바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더군다나 알바를 구할 때마다 매번 쓰는 이력서에 면접은 생각만으로 넌덜머리가 난다. 대학은 왜 안다니느냐, 키랑 몸무게는 어떻게 되느냐 등등 음식 서빙하고 설거지 하는데 하등의 필요 없는 질문들은 왜 그렇게들 하는지 생각만으로 스트레스다.

 

그렇다고 알바를 쉴 수 없다. 한 달 월세에 교통비, 생활비까지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최소한 70만 원은 필요하다. 딱 1주일만 알바를 안 하고 걱정 근심 없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데 내겐 너무 먼 이야기다. 옷 입는 것도 그렇다. 원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일 알바를 해야 하니까 항상 티셔츠에 바지 입고, 그 흔한 구두 하나 신을 수가 없다. 화장도 해봐야 땀범벅으로 안 하니만 못하다. | 정리 및 재구성: 재현(선전위원)

[특집] 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2015.2

[특집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경희 후원회원(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5년만의 산재승인

 

2014년 12월 19일, 임시로 만들어진 단체대화방의 메시지 도착 알림이 울린다. “원고승!” 병원에서 일하다가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출산한 간호사 4명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이다. 태아의 질환이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다. 2014년 12월 30일, “띠릭!”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오늘 질판위에서 집단유산 4명 모두 산재로 인정 되었다고 합니다!” 이 메시지는 곧장 산재 당사자들에게 전달되어 당사자들을 마음을 울린다. 뱃속의 내 아이와 이별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유네스코 3관왕에 빛나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제주의료원의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은 약 40%로서 일반인구의 2배였고,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은 일반 인구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문제를 감지한 노동조합은 노사합의를 통해 집단유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집단유산이 업무상 연관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유산한 간호사 중 4명,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간호사들에 대하여는 “아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신청 반려 처분을 하였고, 당사자들은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하였다. 집단 유산의 건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 신청 후 2년 만에 승인처분이 내려졌다.

늦었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산업재해가 모두 인정되었다. 비록 행정소송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건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에 대하여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이고. 특히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과 관련하여서는 태아의 질환을 산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관련 최초 요양급여신청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 본인이 아닌 자녀의 질병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행정법원에서는 태아가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행법상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으며,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에게는 독립적인 법인격이 없으므로,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권리·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되며, 이는 산재보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재해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 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태아의 건강손상은 곧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므로,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태아는 모체의 출산과 동시에 독립적인 법주체가 되므로 아이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지만, 현행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재해가 발생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지 질병의 발병시점이나 보험급여의 지급시점에까지 근로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의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예컨대 은퇴자가 20년 전 석면으로 인하여 발생한 폐질환이 있다면, 현재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산재요양이 길어져 재해자가 실업상태라고 하여 보험급여가 정지되지는 않으며, 중대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근로자가 아닌 유족들에게 산재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현재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인 것이다.

행정법원은 덧붙여 태아를 보호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더욱 두텁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하면서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보험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고 국가의 모성 및 태아 생명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산재보험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요약하면, 모체와 일체인 태아시절 발병한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면, 그에 대하여 산재보험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인 것이다.

 

 

 

▲ 2013년 4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노동과 건강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의 출범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업무에 기인한 여성노동자들의 유산 등이 최초로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집단유산 산재신청 후,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간호사들의 유산이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결과는 유산과 업무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료원의 노동환경에 많은 유해요소들이 감지되었다. 주요하게는 1) 약품분쇄작업, 2) 인력감소에 따른 노동 강도 및 시간 증가, 3) 3교대근무로 인한 생물학적 주기의 장애, 4) 체불임금과 휴무일 근무 등 높은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제주의료원에는 중증질환자가 많은데, 환자가 알약을 먹지 못할 경우 간호사들이 막자로 알약을 가루로 분쇄하여 복용하도록 하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산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을 5개 등급(A, B, C, D, X)으로 분류하고 있고, X등급은 인체와 동물 모두 태아의 기형이 증명된 약물로서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에게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분쇄 약품 중에는 D등급이 37종, X등급이 17종 포함되어 있었다. 약품 취급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안전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교대근무에 대하여는 생물학적인 주기의 장애로 인한 호르몬 교란, 수면장애 등의 효과로 임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포면역 반응의 균형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정하여 간호사들의 유산과 3교대 근무와의 관련가능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평균 1주일에 45시간을 일하였는데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주당 근무시간이 41시간 이상인 경우에 20~40시간인 경우와 비교하여 유산발생 위험도가 1.5(95%, CI :1.3~1.7)로 나타났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여성노동자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산업재해는 승인되었지만 제주의료원의 현장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재해가 발생한 2010년과 달라진 것은 체불임금과 약품분쇄작업이 없어진 것뿐이다. 여전히 간호사들은 부족한 인력으로 불안정한 교대근무를 하고, 휴무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정원대비 현원의 비율은 2010년 61%에서 2015년 56%로 오히려 더 낮아졌다. 현장에는 재해발생 책임자로부터 산재발생에 대한 사과를 받고, 간호 인력충원과 교대제 개선에 대해 요구하고 쟁취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업무에 기인한 유산 등에 대한 제주의료원 산재승인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시민단체·여성단체들과 함께 제주지역과 중앙에 공동대책위원회를 각각 구성하였다. 이번 산재승인의 결과에 힘입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대위의 지속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집] 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 2015.2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권리는 가려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더 주의를 기울여 조명할 필요가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있어 견지해야할 젠더관점, 최근 승소판결을 받은 ‘제주의료원 집단유산 산재인정’ 사례, 여성주체들이 전하는 여성노동의 생생한 노동현실을 확인해 보자.


[특집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공유정옥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의대생 때 병원으로 실습을 갔었다. 몸통과 팔다리에 전극을 붙여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기록하는 심전도 검사를 맡았다. 환자를 아프게 하는 검사가 아니라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갈비뼈를 기준으로 지정된 위치에 전극을 붙여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젖가슴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맨살에 손을 대는 일이라 젊은 여성 환자들은 같은 여성끼리인데도 민망해했다. 남성들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서 힘들었고, 별 일도 아닌데 부끄러워하며 시간을 끄는 환자가 야속했다.

 

한 두 해가 지나 인턴(수련의) 신분으로 병원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인턴의 수많은 업무 중 수술을 앞둔 남성 환자들에게 소변 줄을 끼우는 일이 있었다. 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여성 환자는 간호사가, 남성 환자는 인턴이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요도를 통해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동안 환자들은 아파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는 게 내겐 가장 중요했다.

 

어느 날 소변 줄을 넣던 중에 환자가 발기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때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음경을 쥐고 오른손으로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이 일을, 왜 내가 하는 건가. 수술을 앞두고 소변 줄을 넣는 일이며 사타구니를 면도하는 일이 하나같이 여성은 간호사가, 남성은 의사가 하기로 되어 있는 불문율은 왜 생긴 걸까.

 

 

 

▲ 윤필 작가가 그린 ‘성별분업’에 대한 그림. 출처 : 인권운동사랑방

 

 

세상에는 성별에 따른 촘촘한 규칙들이 있었고, 나도 그것들 속에 있었다. 젠더는 권력 관계였고, 그래서 상대적이었다. 환자나 간호사 앞에서 나는 남성 젠더인 의사로 일해야 했고, 의사들 내부로 돌아와 ‘진짜’ 남성 의사들 사이에 있으면 여성 젠더로 자리매김 되었다. 내가 배운 의학 교과서의 지식은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심전도 검사의 표준도 그러했다. 심전도 검사를 받을 환자의 절반이 젖가슴을 가진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표준에 길들여졌기에 교과서대로 검사할 수 없는 환자를 불편해할 뿐이었다.

 

노동자 건강권에서도 젠더 문제는 촘촘하고 강력하다. 안전보건 문제가 아직 덜 알려진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 답하면 된다. 마트 계산원, 식당 홀 서빙, 어린이집 교사나 병의원 간호사 등 사회적으로 여성의 얼굴을 가진 직종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도움과 챙김을 받아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가족을 챙기며 치료를 받지만, 이들의 건강이나 권리에 대한 얘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운동 속에도 젠더는 있다. ‘산재 노동자’ 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단연코 남성, 아버지, 혹은 남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은 ‘소녀’ 이거나 ‘누이’ 로 불렸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유해요인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이 각별히 처한 위험으로 인식되기 전에, 숭고한 모성을 보호해야 하거나 저 출산 문제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와 범벅되곤 한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는 <안전보건의 젠더 감수성을 위한 10항>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노동안전보건에서도 젠더 차이를 고려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 위험성 평가와 연구, 교육과 훈련 등을 평가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전보건지표에 여성이 처한 문제들이 담기지 않는다는 지적, 작업도구나 개인보호구도 일정한 체격의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이런 권고안을 만들게 된 배경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감추어져 있다’ 는 인식에 있다. 보이지 않던 문제를 누군가 말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이런 인식이 생겼을 거다. 우리가 여성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 문제를 말하기까지 힘들었을 누군가, 그 말 때문에 힘들었을 누군가에게 그 지식을 빚진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촘촘하고 강력하고 당연해 보이는 젠더 구조 속에서 누군가 여성 노동자로서의 건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내 눈으로 못 보았던 문제를 대신 알려주고 있는 목소리들이다. 마땅히 귀 기울이고, 같이 메아리를 만들어갈 방법을 생각해볼 일이다.

 

[특집] 3. End 2014, And 2015 / 2015.1

End 2014, And 2015



정리 : 선전위원회



선전위원회는 연구소 소장을 만나 지난 한 해 소회와 함께 2015년 새해 연구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Q. 2014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에게 의미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유산, 선천성심장기형 등의 발생에 대해 산재 인정이 된 사례,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해달라고 산재 신청한 사건, 7년의 싸움을 통해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故 황유미 씨 백혈병이 법원에서 최종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사건, 계속되는 중대재해·화학물질 폭발 사고, 지하철 기관사들의 자살,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안전보건 문제,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2교대 전환, 안전보건위험성평가 시행, 야간노동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실시, 근로자건강센터 확대, 감정노동과 관련된 안전보건이슈 사회화 등등 그 어느 때 못지않은 중요한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 중 감정노동과 유산의 직업병 인정, 노동자의 자살 문제 등, 노동안전보건의 문제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부각된 점이 2014년의 가장 큰 변화이자 과제였다고 생각된다. 


Q. 지난 한 해 노동시간, 특히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 2교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이후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노동시간단축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더는 시간을 늘려 생산을 유지하는 방식이 자본에게도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자에게 최대한의 여유를 주는 것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할 시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노동시간단축을 만들어 내느냐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한 이후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 역시 줄었고, 공장 운영시간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교대제 변화전과 동일하게 유지된 사업장들이 다수다. 노동시간단축이 겉으로는 노동자 계급에게 유리하게 보였지만, 결국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고, 생산량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노동 강도가 증가하거나 비정규직의 투입 등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불안이 증가되는 변화가 있었다. 


임금, 노동 강도, 고용의 문제를 모두 쥐고 갈 수 있어야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 개선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변화에 대한 노동계급의 올바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노동시간센터(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동차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 조사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변화 연구’는 이후 노동시간단축과 관련된 노동운동의 방향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지난 한 해 연구소는 집중사업의 하나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통한 공공영역 현장의 조직화와 공공성 강화’를 고민했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작년 말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철도산업 민영화, 공공병원의 폐쇄 및 병원노동자 해고, 공공병원 노동조합 무력화 시도,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이슈 등 다양한 공공영역의 이슈가 있었다. 연구소에서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건강 문제에 관한 실태조사와 사회화에 개입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였고, 기관사 1인 승무화 시도 등과 관련된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년 한 해 병원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이슈가 어느 해보다 부각되었던 시기였으나, 이를 주요 투쟁의 과제로 가져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공공영역의 민영화 시도와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공공영역의 공적 내용을 지켜내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막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안전보건영역의 개입이 2015년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이 투쟁에 연구소도 함께 할 것이다. 

[특집] 2. 자살과 죽음 / 2015.1

자살과 죽음 

- 2014년 노동안전보건 열쇳말 中



이혜은 회원



2014년 마지막 달의 삭풍이 몰아치던 날, 두 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평택공장 70m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했던 바로 그 날, 2009년 쌍용차 집단정리해고 이후 26번째 사망이 있었다. 해고노동자와 가족들 스물여섯명의 안타까운 죽음 중 자살이 절반이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40% 급증한 우리나라의 자살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가슴 아픈 자살, 2012년 겨울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한 달 새 연달아 벌어졌던 노동자의 자살, 이 모든 자살은 개인적인 선택이나 정신적 장애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100년 전에 에밀 뒤르켐이 주장했던 ‘자살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적 사실’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국가마다 자살률이 크게 차이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대표적 저작인 <자살론(1897)>을 저술하게 되었고 자살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가 우리 시대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한국은 가장 연구할 가치가 높은 나라였을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4년 발간한 『OECD 국가의 사망원인별 사망률 비교』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연령표준화 사망률은 2002년 인구 10만 명당 1천54.6명에서 2012년 753.8명으로 28.5% 급격히 줄었다. 그에 비해 자살 사망률은 2002년 인구 10만 명당 22.7명에서 2012년에는 29.1명으로 28.2% 급격히 증가했다. 대한민국은 2012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2.1명의 두 배를 넘어선다.


절대로 익숙해져서는 안 될 문제인데 10년째 자살률 OECD 1위를 지키고 있다 보니 어느덧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고통에 무뎌져 가고 점차 포기나 냉소의 반응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은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한 자, 힘든 투쟁으로 지친 자들의 끊이지 않는 자살 소식에 다시금 쓰라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해였다. 외환위기 이후 국민총소득은 계속 늘어왔고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선 지도 한참인데 삶의 벼랑 끝에서 제 손으로 세상과 인연을 끊은 이들의 사연은 더 비참해져가고 있다. 어쩌면 그 정도의 비참함이 아니면 세상에 알려지기도 힘든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 17일 해맞이 장소로 널리 알려진 정동진에서 한 청년이 자동차 안에서 타고 남은 번개탄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분회장이었다. 고인은 노조에 남긴 유서에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2013년 노조 출범 이후 힘들고 지치는 싸움에도 결국 삼성전자서비스가 경총에 단체교섭을 위임, 실질적인 교섭에 나아가지 못하는 숨 막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탓이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2014년 9월 26일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던 25세 여성노동자는 계약 만료를 통보받아 해고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년 전 입사해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고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거짓 다독임에 상사의 성추행까지 견디며 버텨냈으나 결국 해고되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꽤 긴 시간, 2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정을 쏟고 기대하고 미래를 그려나갔던 그 경험들이 날 배신하는 순간, 나는 그동안 겨우 참아왔던 내 에너지들이 모조리 산산조각 나는 것 같더라…내가 순진한 걸까?” 라는 절망이 담겨있다. 


2014년 11월 7일, 한 달 전 자신이 근무 중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경비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는 입주민들의 폭언과 인격모독행위에 시달리면서도 언제 계약해지 될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 때문에 비인간적인 처사로 인한 모멸감을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근무하던 바로 그 일터에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음에도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회는 “우리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며 오히려 경비업체를 변경하여 우리를 경악시켰다.  


2014년 11월 6일,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울산지회 조합원 한 명이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자살을 기도하였다. 2005년부터 현대차 울산 공장 하청업체에서 일해 온 그는 동료들과의 휴대전화 단체 채팅방에 “너무 힘들어 죽을 랍니다.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사세요.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올해 법원은 ‘현대차 사내 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고 ‘그동안 밀린 정규직 임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현대차 회사 측은 즉각 항소하여 판결 이행을 하지 않은데다가 이어서 ‘2010년 비정규직노조의 공장 점거 파업’과 관련, 70억 원의 손배가압류 판결까지 나오자 극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선택이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이들의 자살을 어떻게 막아야 했을까? 자살 예방 교육에서 강조하는 점 중 하나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갖게 하고 빨리 전문가에게 의뢰를 하라는 것이다. 자살에 이르는 많은 경우 치명적 순간을 잘 넘기면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절망감을 안겨준 바로 그 조건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기란 쉽지 않다. 이들의 자살은 개인적인 마음가짐, 병적인 상태 또는 분에 맞지 않는 욕망을 비우지 못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가슴 먹먹하게 하는 것은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이 투쟁에 도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쓰러져 간 것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자했던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제2, 제3의 전태일이 요구되는 현실의 조건, 삶의 조건이 바뀌어야만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뒤로 하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당장 벼랑 끝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내 주위에 있는지 살피고 손 붙잡아 끌어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모두 같이 달려들어 높은 벼랑을 깎아내려 아무도 뛰어내릴 필요가 없는, 삶에 지친 이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집] 1. 2014년 노동안전보건 열쇳말 / 2015.1


2014년 노동안전보건 열쇳말



선전위원회



한국 사회 전체가 무거운 짐을 진 채로 2015년을 맞았다. 새해를 시작하는 희망과 설렘 못지않게 답답하고 불안하다. 그래도 일터 독자들과 함께 2014년 노동안전보건 사안을 함께 정리하고, 2015년을 전망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세월호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도 2014년 최고의 이슈는 세월호다. 사고 이후 전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은 먼 얘기다. 노동자의 안전 즉 일터에서의 당신과 나의 건강과 안전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안전을 가로막는 제도와 체제가 드러나야 한다.


자살과 죽음 안타깝게 스러져간 목숨은 세월호 탐승객만이 아니었다. 하루 6명씩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2014년은 자살을 택한 노동자도 많아 유난히 속이 탔다. 입주민의 비인간적 대우에 분신한 경비 노동자, 모멸감을 참게 했던 정규직 약속이 헌신짝이 되자 목숨을 끊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위험의 주변화가 이제 자살까지 이어진 야만적인 사회가 드러난 것이었다.


감정노동과 노동자의 인격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노동자에게 자존감을 허용하지 않는 ‘감정 노동’이다. 땅콩 회항이 연말을 장식했지만, 우리는 이미 비행기에서 라면을 끓여내라거나 계산대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던 ‘고객님’을 만난 적이 있고, 이들을 부추기며 노동자의 자존심을 뭉개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던 사장과 관리자를 잘 알고 있다.


노동자의 정신건강 점점 더 많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함께 거센 감정노동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그 동안 ‘직무스트레스’로 막연하게 얘기되던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중요한 노동안전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 역시 2014년 노동안전보건의 중요한 열쇳말이다. 故 황유미 씨 죽음이 긴 싸움 끝에 산업재해로 인정됐고, 반올림과 유가족은 처음으로 삼성과 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 뿐 아니라 다른 반도체, 전자 회사에서도 암이 다발했다는 의문이 본격 제기되기도 했다. 

 

노동시간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방안, 노동시간 연장하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제출 등으로 노동시간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편에서는 주·야 맞교대 사업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이 늘어나고, 야간 교대근무자에 대한 야간 노동 특수건강진단이 시작되는 등의 변화도 있었지만, 과제가 더 많아 보인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 중 자살과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분석하고 2015년 과제를 나누고자 한다.


[특집] 5. 올해의 현장 ➋ 자동차 판매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 / 2014.12

올해의 현장 ➋ 자동차 판매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

 


 

정리 : 선전위원회

 


 




현대자동차 안에는 울산이나 전주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도 있지만 완성된 차를 팔기 위해 고객을 만나는 영업노동자 그리고 차 계약과 출고를 처리하는 등 영업지원 업무를 하는 사무노동자들도 6,800명이나 있다. 바로 이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판매위원회(이하 판매위원회) 조합원들과 함께 수행한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 사업 결과를 이번 <현장연구나눔마당>에서 발표했다. 



정하나 연구원(연구소 상임활동가)은 “연구의 주된 목적은 판매위원회의 경우 2007년에도 직무스트레스 조사를 한 바 있었기에, 그 후 7년이 흘러 조합원들의 평균연령이 약 48세가 된 현재 직영영업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에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개선이나 악화된 것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인지를 확인하고 그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판매위원회의 주요한 직무스트레스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관계갈등과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요인이었다. 과거에도 이 세 가지가 주요인으로 도출되긴 하였지만, 이번 연구결과로 새롭게 확인된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직무불안정의 경우 직무와 성별에 관계없이 2007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는 점, 영업직의 경우 성별과 무관하게 관계갈등 악화가 관찰되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조직체계는 영업직 여성을 제외한 모두에게서 여전히 참고치보다 높고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편, 근태관리의 형식을 취하지만 미행·감시와 같이 반인권적인 행태를 일삼는 노무관리,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CS평가와 교육, 7년 전에 비해 턱없이 올라간 변동급(성과급) 비율 등의 문제들이 이번 연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음을 밝혔다. 이는, 연구소가 2007년 이미 이 사업장의 직무스트레스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는 ‘고객만족 이데올로기’와 ‘실적 중심주의 구조’가 계속 강화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이에 김정수 연구원(연구소 운영집행위원)은 “후속사업을 통해 실제로 조합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매위원회 조합원들이 높은 정도의 불안감을 상시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우울증상 및 자살관련 설문에서 다른 집단보다 훨씬 높은 위험수치를 보여준 것, 직장 내 폭력 등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응답이 훨씬 높게 나온 점 등의 결과에 대하여 심층인터뷰나 간담회 같은 방법을 동원해 현상을 더 명확히 드러내고, 더 나아가 함께 대안을 마련할 현장활동가를 발굴해 나가는 행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유정옥 연구원(연구소 회원)은 “판매위원회 조합원들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와 다를 바 없는 영업직이다. 또 한편으로는 최대 20명 정도 같이 근무하는 작은 분회(영업점)들로 전국 방방곡곡, 뿔뿔이 흩어져 있다. 조직을 다시 일구고 조직력을 복원하는 작업이 결코 쉬운 조건은 아니다. 이 자리에 계신 동지들이 고민과 경험을 나누어 주시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판매위원회 정책기획실장 조창묵 현장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실제 우리 조합원들이 어떤 필요를 느끼고 있는지, 정신건강 등 어디가 얼마만큼 힘든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자본의 공세에 수세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의 필요를 새롭게 구성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 조합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집] 4. 올해의 현장 ➊ 체신 노동자 재해 실태 : 집배원을 중심으로 / 2014.12

올해의 현장 ➊ 체신 노동자 재해 실태 : 집배원을 중심으로


 


정리  : 선전위원회

 

 

 


 


2014년 연구소가 주목한 현장 중 하나인 우정사업본부 집배원의 최근 3년간(2011-2013) 재해발생 경위 내역을 분석해서 발표한 이진우 연구원(연구소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집배원이 연평균 3,379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근골격계 및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직업병과 온종일 오토바이 운전을 하는 업무 특성상 빈발하는 사고로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연구원은 최근 3년간 집배원 1,434명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는데, 그 중 사망재해가 27명에 달했다고 밝히며, 이는 2012년 기준 한국 사회 전체 노동자 산업재해율 0.59%와 비교했을 때 집배원은 2.54%로 무려 4.3배나 높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사망만인율[각주:1]의 경우 교통사고는 전체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약 200배,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약 6배, 사고성 재해의 경우 무려 약 8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연구원은 한국 사회 노동자의 사망재해 요인이 다양하지만, 집배원의 경우 주 60시간 이상 노동과 도로명 주소 변경에 따른 업무 부담, 명절·선거·김장철과 같은 특수기에 따른 과로와 피로 누적의 영향으로 집배원의 판단력과 집중력이 감소해 잦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집배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통사고와 뇌·심혈관계 질환에 따른 위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현장 개선 방안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고 이진우 연구원은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현장 개선만큼 우정사업본부는 반복되는 집배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7조에서는 구체적으로 작업 중지 상황을 세분화하여 ‘비·눈·바람 또는 그 밖의 기상상태로 인하여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는 폭우·폭설 등 기상상태가 불안정하고 집배원에게 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작업을 중지해야 함에도 법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2조에서는 사업주로 하여금 보호구 지급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제33조에서는 사업주로 하여금 보호구의 관리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현장 증언에 따르면 보호구를 지급하긴 하지만 제때 교체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전모 이외의 보호구는 전혀 지급하지 않은 곳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한 뇌 ․ 심혈관계 질환이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조 직무스트레스 요인 평가조차 충실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원은 집배원 안전 및 보건에 관해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의무도 다하지 않는 우정사업본부와 체신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 및 전국 우체국을 대상으로 한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력부족에 따른 만성적인 장시간 중노동으로 법상 휴일에 쉬는 것도 그림의 떡인 집배원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반드시 예비 인력을 포함한 적정 인력이 충원되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토론자로 나선 문백남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 조직위원장 (서울 금천우체국 집배원)은 집배원이 공무원 신분이고, 한국노총 사업장이라는 특성도 있는데다,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장 현장의 성과에 조급해하지 않고, 운동의 씨앗을 뿌린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오늘 여기에 모이신 분들이 앞으로도 집배원 현장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의 마음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1. 노동자 수 1만명 당 사망자 수 지표 [본문으로]

[특집] 3. 작업중지권, 오늘과 내일 / 2014.12

작업중지권, 오늘과 내일

 


정리 : 선전위원회

 






이번 현장연구나눔마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주제는 금속노조 작업중지권 실태조사 보고인 ‘작업중지권, 오늘과 내일’이었다.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 멈춰’ 팀이 금속노조 노안실과 함께 진행한 이 연구는, 총 7개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작업중지권 실태에 대해 심층 면접을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업중지권의 실태를 확인하고 이후 더 많은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실현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연구에 참여한 최민(연구소 운영집행위원) 연구원은 발제를 통해, 작업중지권이 일상적인 안전보건활동으로 자리 잡은 현장이 있는가 하면, 회사의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로 작업중지권이 매우 위축된 현장도 있었으나 이것은 단순히 업종 간의 차이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이 현장에서 어느 정도 힘을 가지는가에 따라 현장에서의 작업 중지권 행사가 결정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은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구사대를 동원하고, 징계와 손해배상을 남발하고, 경영위기를 핑계로 작업중지권 반납을 요구하며, ‘급박한 위험’ 대신 ‘사람이 다쳤을 때’로 작업중지권 발동 조건을 제한하는 등 작업중지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사법부도 자본과 이런 인식을 같이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안전을 위한 작업 중지와 당장 경제적 이해가 대립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현실도 지적했다. 


이런 작업중지권의 오늘을 넘어서기 위해서 ‘당장멈춰’ 팀은 널리 알려지고 공유돼야 할 투쟁을 나누고 작업중지권 관련 전략을 기획할 수 있는 단위로 작업중지권 네트워크를 제안하고, 민주노총과 금속 노조를 중심으로 법 개정 투쟁에 시급히 나설 것을 요청했다. 더 나아가 판매 서비스, 공공부문 등 다른 노동자들도 인격권을 침해받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거부, 거절, 중지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보편화’해나가는 활동을 제안했다. 



작업 중지, 해 보는 게 중요하다


발제 이후, 당장 멈춰 팀 안규백(한국지엠 조합원) 연구원의 진행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던 현장 노동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2014년 작업중지권 발동으로 사측과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기아자동차 홍진성 대의원은 “선배노동자들이 만든 작업중지권을 보다 나은 조건에서 활용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많이 지지해주고 있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조합원이 라인을 세운다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현재는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도 직접 실천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동료들도 라인을 탈 때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설명해도 잘 듣지 않았는데, 라인을 멈추고 왜 라인을 멈췄는지, 왜 안전이 중요한지 얘기하니까 집중도 되고 설득력도 있었다. 결국, 투쟁을 통해 돌파하는 것이 자본을 이기기 위한 유일한 길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갑을오토텍 안재범 노안실장 역시 “한 공정에서 유리섬유 분진이 발생하는데, 회사에서 집진 시설 등 아무 대책이 없고, 어느새 직접 작업자뿐 아니라 주변 작업자들까지 가려움증이 발생해서 처음 작업 중지를 내렸다. 그때는 조합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같이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서너 시간 작업을 멈춘 후, 병원 진료와 시설 확충 등 대안이 나오자 그제야 현장에서 작업 중지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두 번째부터 작업 중지하면 박수를 쳤고 세 번째부터는 작업 중지해야 할 상황이라고 조합에 전화한다.”며 작업 중지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안 부장이나 노동조합 간부가 아닌 조합원들은 작업 중지를 부담스러워하고 징계나 고발을 두려워하는 현장 분위기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작업중지권,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


대우조선 박호빈 산안실장은 현장에서는 작업 중지를 내리는 것 못지않게 어떤 조건에서 다시 가동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우조선에서는 작업 중지, 현장 확인과 보고서 제출, 노사 협의, 문제 해결방안 보고서 제출, 검토 후 재가동에 이르는 일정한 절차를 마련해서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고 있다. 박호빈 실장은 또 “모여서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안실이 그나마 회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부서이다. 조선분과 내 노안 담당자 회의나 작업중지권 네트워크 모두 소통의 구조다. 소통을 통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안규백 연구원 역시 본인이 대의원으로서 작업을 중지했을 때,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노동조합마저 자신의 버팀목이 되지 않는다는 고립감에 힘들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작업중지권 네트워크가 이런 현장 활동가들에게 힘이 되고, 사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구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작업중지권 네트워크, 현장 기반을 다지는 실천을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창현 노안실장은 “작업 중지를 내리고 있으면, 회사가 아니라 조합원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 1주일간 전 공정 작업이 중지되자, 조합원들이 불안해했다.” 며 조합원들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가 작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안실장은 “작업중지권에 대한 내용은 금속노조 단체 협약안이나 노안 활동가 교육 등에 이미 모두 포함돼있다. 그런데도 항상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가 고민”이라며, “조합원이 다칠 수 있고, 병들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사측이 비협조적이면 고소·고발, 신고하는 기본적인 일상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최민 연구원은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라는 기간조직을 통한 활동도 중요하나, 개별적으로 투쟁하는 활동가들의 사례를 공유하고 보편화하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활동도 따로 일구어져야 한다. 그것이 ‘당장멈춰’ 팀이 작업중지권 네트워크를 제안하는 이유이다. 2015년에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 작업중지권을 보편화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특집] 2.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와 향후 연구 방향 / 2014.12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와 향후 연구 방향



정리 : 선전위원회




노동시간센터(준)에서는 올해 ‘자동차 부품사업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 이행 실태 조사’ 와 ‘장시간 노동의 요인’ 에 관한 두 가지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중 첫 번째 주제에 대한 김형렬 연구원의 발제와 청중토론이 있었다.



연구의 배경


자동차산업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은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 모두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2013년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의 시행은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단축하는 분명 긍정적 변화였다. 하지만 야간노동 단축의 효과가 크지 않고, 주말 특근이 다시 시작되고, 노동 강도가 증가하는 등 불완전한 변화라는 면도 존재한다. 이는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만들어갈 수 있는 노동 측의 기획과 현장통제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완성차 노사관계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자동차 부품사에서 주간연속 2교대 이행의 실태는 어떠할까? 일부 부품사의 경우 사측 주도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시행되었고, 노동조합의 주도면밀한 준비는 태부족한 상황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로의 전환은 물량 보존을 내세운 사측의 공세에 노동 강도와 임금, 고용을 양보(비정규직 확대)하며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연구의 내용과 목적


1) 이에 이행의 과정에 노동 강도, 임금, 고용의 문제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노동조합의 대응은 어떠했는지(노동조합 지도부의 준비과정, 조합원과의 논의 과정, 사측에 대응 과정) 현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확인을 통해 향후 노동자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그 활동의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 연구의 주된 목적이고, 발굴된 모범사례도 함께 공유하고자 했다. 

2) 또한, 근무시간대의 변화나 조합원 개인 생활의 변화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어려움이 있다면 극복 방안은 무엇인지 제시해 보고자 했다.

3) 마지막으로, 교대제 변화 전후로 건강과 생활의 변화를 조사하고자 했다.



이행 실태와 기초 면접 조사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금속노조 산하 111개 지회 중 이행한 사업장이 26개 지회(23.4%), 이행을 논의 중인 사업장이 17개 지회(15.3%), 미파악 혹은 논의조차 안 된 사업장이 68개 지회(61.3%)나 되었다.


지난 11월 5일에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 중인 금속노조 충남지부 산하 2개 자동차 부품사업장에서 기초면접 조사를 해보았는데, 고용불안의 정서가 여전히 깔려 있었고, 제도 시행에 있어 임금이 조합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일정 정도의 노동강도 강화는 수용하거나 문제가 없다는 평이었고, 토요일 특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즉, 제도는 시행되었지만 실노동시간 단축, 임금, 노동 강도, 고용의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개별 현장의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지부 단위, 금속 중앙 차원의 견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연구는 2015년 4월 완료할 예정이다. 이후 금속정책연구원과 함께 연구조사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청중 토론


이훈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는 “근무형태가 바뀌면 조합 활동 방식과 활동 시간이 바뀌어야 한다. 조합 활동시간의 변화에 대응하여 현 타임오프제[각주:1]와 무노동 무임금에 시비 걸기를 해야 하고, 물량과 시간에 구속된 임금이 아닌 생활 임금과 같은 다른 임금 체계가 필요하다. 이행 과정에서 현장의 힘에 기초한 조직력 강화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본 연구가 그런 지침과 안내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미조직 ․ 비정규직 부장은 “고용불안, 노동 강도, 임금의 문제들을 완성차도 극복 못 했는데, 부품사가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단사 지회 차원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지역 지부에서 TFT팀을 꾸려 진행하기도 했는데, 지회별 상황도 다르고 활동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안재범 갑을오토텍 노안부장은 “3(고용불안, 임금저하, 노동 강도 강화)무 원칙을 세우기 위한 상급단체의 지도와 지침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 강도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 대응이라든지, 임금의 경우 다른 임금체계에 대한 정책과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 근로시간면제 한도제라고 하며 노조전임자가 급여를 받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이다. 유급 노조활동 시간 제한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특집] 1. 2014 현장연구 나눔마당 / 2014.12

2014 현장연구 나눔마당

 

 


정리 : 선전위원회

 


 


 

2014 현장연구나눔마당이 11월 29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렸다. 지난 10년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매개로 한 연구와 활동에 참여해 노동 운동에 기여하고자 노력해 왔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연구는 현장과 연구소가 양쪽 주체로 참여하며, 양측의 운동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현장참여연구를 지향한다. 현장참여연구를 통해 연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현실에 대해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대안을 모색할 수 있고, 이것을 실천할 때 현장과 세상뿐만 아니라 연구에 함께 한 우리 자신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현장연구나눔마당은 올 한 해 연구소가 함께했던 여러 연구결과 중 더 많은 이들과 나누어 평가를 듣고,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싶은 네 개의 주제를 선정해 발표하고 공유했다. 특집을 통해 현장연구나눔마당의 토론과 열기를 일터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연구의 결과와 성과도 나눠야 맛이다. 2014년 연구를 물고, 뜯고, 씹고, 맛보면서, 2015년 한 발 더 나아가는 활동을 기획하길 기대한다.



[특집] 3. 진상고객만 사라지면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을까? / 2014.11

[특집]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웃음과 눈물


11월 특집에서는 감정 노동을 중심으로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본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 노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최초로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해낸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사례로 현장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감정노동에 국한되지 않는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를 짚어보았다.

 

 

 

진상고객만 사라지면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을까?


 

최민 선전위원장

 

 

 

판매‧서비스 노동은 복잡한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조밀하고 촘촘한 노동 중 하나다.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판매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2010년 261만 명, 2011년 268만 명, 2012년 277만 명으로 추산된다. 자영업자를 제외더라도 판매‧서비스 노동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최근 판매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 노동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이 되고 있지만 감정 노동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 3년간,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150만 명 정도의 도소매 및 소비자용품 수리업종 종사자 중 매년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해를 입어 산재 요양을 받았고 사망자도 매년 40~50 여 명씩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고, 상처받고 있다.

 

 

사고

산재 요양을 받은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재해는 사고로 인한 재해가 대부분이다. 2012년 안전보건공단에서 발행한 도소매판매 직종 안전 매뉴얼에서는 특히 상품 진열과 상품 입고, 적재 및 저장 과정을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업무로 보고 있다. 이 과정은 대부분 중량물을 좋지 못한 자세에서 취급하는 업무이다. 물건을 싣고 가던 대차 바퀴에 발이 끼거나 상품 운반 중 계단에서 넘어지는 등의 사고는 흔히 발생할 수 있고, 그 외에 상품 운반 중인 지게차와 충돌하는 경우 사망과 같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근골격계 질환

마트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서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의자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계산대에 의자가 설치되지 않은 마트에서 ‘왜 의자를 설치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하자, 관리자가 ‘우리 마트는 작업 중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의자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육류 판매 노동자는 하루 종일 냉장고 앞에서 얼린 고기를 썬다. 종일 차가운 환경에서 하는 육류 가공 업무는 수근관증후군 등 손목과 팔에 근골격계증상이 잘 생길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작업 중 하나다. 무게가 10kg 이상 나가는 상품을 종일 쌓고, 나르고, 진열하는 노동자들은, 삐끗하는 사고 위험도 높지만 요추간판탈출증과 같은 허리 질병이 발생할 위험도 높아진다.

 

 

교대근무

동네 소규모 상점들과 공생하려고 24시간 영업을 안 한다지만, 대부분의 대형 마트는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교대 시간에 따라 불규칙하고 부실한 식사, 부족한 수면 등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 된다.

 

 

폭력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은 판매직 노동자들이 처할 수 있는 안전보건 상의 중요한 문제로 안전사고, 중량물 취급과 함께 직장 내 폭력을 꼽는다. 앞서 인용한 2011년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에서도, 마트 관리자들 전원이 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 언어 및 신체적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하고 있다. 마트 계산원 40대 여성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에 의해 중등도의 우울증,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고 일부 산재 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다.

 

 

건강권은 노동권의 지표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는 이렇게 다양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노동자들의 이런 건강문제는 어쩔 수 없는 작업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을 전혀 고려치 않는 회사 측의 작업배치와 노동환경에서 비롯된다.

회사 측에 맞서 스스로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지 못한 많은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파도 산재보험을 청구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 발생은 축소 보고되고, 예방은 뒷전이 된다. 안전사고는 근속 기간이 짧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마트에서는 70% 이상의 사고가 근속 기간 1~2년 사이에 발생한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잦은 이직은 지속적인 사고의 원인이 된다. 네이버 웹툰 <송곳>은, 하루아침에 판매직 직원들을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다 내보내라는 지점장의 지시에서 시작한다. 영화 <카트>에서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용기를 낸 계기도 일방적인 해고 통지다. 한 대형마트가 수년 동안 직원들을 사찰하고 감시해온 사실이 드러난 게 바로 작년 일이다.

 

판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만을 부각하며, ‘진상 손님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안일한 대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의 생계를 손에 쥐고 노동자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부리다가 수틀리면 해고와 계약해지를 남발하는 회사에 맞서야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특집] 2. 조합원과 감정노동의 고충을 나누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 2014.11

[특집]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웃음과 눈물


11월 특집에서는 감정 노동을 중심으로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본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 노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최초로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해낸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사례로 현장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감정노동에 국한되지 않는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를 짚어보았다.

 

 

조합원과 감정노동의 고충을 나누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로레알 코리아는 랑콤·비오템·키엘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적인 화장품 그룹의 한국 지사다. 로레알 노동자들은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 특성상 발생하는 감정노동과 장시간·저임금·열악한 노동환경에 따른 직무스트레스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인터뷰를 통해 2005년 노동조합 결성 이후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쳐왔는지 되짚어 보면서 최근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감정노동’의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지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 인터뷰 : 로레알 노동조합 이은희 위원장, 하인주 사무국장, 문준이 조직국장

 


로레알 코리아는 지난 2005년 6월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임금체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임금 및 수당 문제로 화장품 판매·영업 사원 1,000여 명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와 싸움을 통해 한국 사회 최초로 단협을 통해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했다. 현재는 수당뿐만 아니라 감정노동 휴가, EAP 프로그램(근로자 지원 프로그램)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가입하면서 우리 노동이 ‘감정노동’임을 알게 됐어요. 이후에 보상을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기본권을 보장받는 의미에서 감정노동 수당을 회사에 요구하게 되었죠. 회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정노동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싸움 끝에 결국 얻어냈는데 문제는 회사가 2008년까지 월급명세서에 서비스 수당이란 명목으로 지급해서 조합에서 이 이름을 바꾸려고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갔어요.”

 

 

감정노동의 검은 그림자

 

노동조합 출범한지 10년, 타 외국계 화장품 업체 노동조합에선 로레알 노동조합을 다들 부러워하지만, 감정노동의 그늘은 이곳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일인데 보통 매장에서 행사를 하면 대개 고객들에게 참여하라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요. 그런데 우리 직원이 다른 매장 고객에게 연락을 메시지를 보낸 거죠. 그랬더니 그 고객이 너희 고객도 아닌데 나한테 문자를 어떻게 보냈느냐며 개인정보유출이라고 욕하면서 백화점 담당 직원을 때리기까지 해서 경찰을 부른 적이 있었어요. 이후에 우리 직원이 외상 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몇 일 일을 쉬고, 출근하러 매장으로 오는데 그때 충격으로 매장까지 걸어서 들어오지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어요.”

 

“한번은 고객이랑 전화 상담을 잘 마쳤는데, 그 고객이 남편에게 직원이 자기를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하면서 무시했다고 했나 봐요. 곧장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직원에게 한 시간 동안 욕을 퍼붓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칼 들고 매장으로 갈 테니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한 거죠. 이렇게 되면 진짜 매장으로 오면 어쩌나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퇴근을 할 수도 없어 백화점 보안팀에 연락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미스터리 쇼퍼[각주:1]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나라마다, 브랜드 별로 조금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가이드가 있어서 1년에 두 번, 큰 매장은 네 번씩 진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제도가 고객 서비스가 어떻게 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넘어 친절한 직원과 불친절한 직원을 구별하는데 쓰이고 있고, 무엇보다 평가 기준도 굉장히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평가 항목에 감성평가라고 해서 고객에 대한 직원의 진심이 담겨있는지 아닌지가 점수에 포함돼있어요. 얼마 전 제 평가에서도 굉장히 노하우가 많은 사원처럼 느껴지나 진정성이 담겨있지 않다고 해서 점수가 50% 깎였어요. 제 목소리가 상냥한 편이 아닌데 비디오가 아니라 녹음기로 체크하다 보니까 내가 아무리 미소를 지어도 소리로는 확인이 안 되고,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하니, 아니 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성이 느껴지는 건가요?”

 

본사뿐만 아니라 입점해있는 백화점에서도 미스터리 쇼퍼를 통해 직원을 평가하고 점수에 따라 퇴출도 시킨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의 반감이 워낙 강해 서비스연맹과 투쟁 끝에 백화점에서 하는 미스터리 쇼퍼는 폐지 시켰다.

 


우린 고객보다 직원을 먼저 생각 합니다

 

한국 사회와 달리 본사가 있는 프랑스나, 해외에서도 감정노동 관련한 사례는 어떨까.

 

“얼마 전 노동조합에서, 독일을 다녀왔는데 거기는 진상 고객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하더라고요. 직원들은 자기 할 일을 하면 되고 손님은 물건을 사기만 하면 되는데 왜 고객 비위를 맞춰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거죠. 만약 고객과 분쟁이 일어나도 자기들은 고객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원을 먼저 생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현실이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진상 고객으로 인한 감정노동은 개별 사람들에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녀들의 문제라고만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유통시장의 손님이 왕이라는 그릇된 판매 전략이 직원에게 과도한 친절과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백화점 담당 직원이나 입점 회사의 경우 고객들과 마찰이 생기면 자신들 인사고과에 문제가 생기니까 가장 힘이 없고 약자인 입점 직원에게 무릎을 꿇어서라도 무조건 사과하고 조용히 끝내길 바라다보니 강요된 웃음과 친절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 감정노동뿐만 아니라 매장에서 고객과 문제가 생겼을 때 직원들이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소위 ‘갑’인 백화점 측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 이 매뉴얼이 현장에서 잘 써먹힐 수 있도록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면서 보완할 점이 많아요”

 

 

로레알 노동조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여전히 부족하지만 05년부터 조합원과 함께해온 결과 현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고충이 있어도 말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얘기할 수 있는 권한과 루트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 일상에서 불만이 있으면 수시로 얘기하고 조금이라도 개선해 나가면서 노동조합의 힘, 필요성을 확인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 몇 년간 정부 기관을 비롯해 사업주까지 감정노동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회사 내 고충처리부서 운영, 직무 스트레스 상담, 감정 휴가 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과거보다 감정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유의미한 발전이다. 그러나 ‘미스터리 쇼퍼’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노동 탄압, ‘갑’ 백화점과 ‘을’ 지점의 관계, 열악한 장시간 노동 및 근무환경에서 오는 직무스트레스의 총 집합이 감정 노동임을 생각해 봤을 때 지금의 해결책은 진상 고객의 문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로 한정시키는 한계가 있다.

감정노동의 문제를 보다 구조적이고 본질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측면에서 감정노동의 아픔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땐 현장에서 조합원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 관리자들과 부딪혀야 할 땐 조합원과 함께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자부심이라는 로레알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주목하자.

 

  1. 일반 고객으로 가장하여 매장을 방문하여 물건을 사면서 점원의 친절도, 외모, 판매기술, 사업장의 분위기 등을 평가하여 개선점을 제안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미스터리 쇼퍼라고 부른다. 내부모니터요원이라고도 한다. [두산백과사전] [본문으로]

[특집] 1. 미소의 무게 / 2014.11

[특집]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웃음과 눈물


11월 특집에서는 감정 노동을 중심으로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살펴본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 노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최초로 감정노동 수당을 쟁취해낸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사례로 현장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감정노동에 국한되지 않는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의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를 짚어보았다.

 

 

 

미소의 무게


정하나 선전위원

 

 

매우 만족…….하십니까?

 

오래전 모회사 휴대폰 구입을 만류하던 직장동료에게서 들은 말이다.

 

“제 친구가 **전자 단말기 개발 연구원이잖아요. 옛날에는 ○○콜이 부품도 좋고 튼튼했는데, 요즘엔 정책이 바뀌었대요. 중국산 부품 쓰고 대신 A/S센터에서 고객서비스 친절하게 해주는 걸로 승부 보기로…….”

 

며칠 뒤 **전자 A/S센터에 방문했던 나는 이 ‘서비스’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엔지니어’ 직원이 현관 앞에서 나를 맞이하고 손수 의자를 빼주었다. 시종일관 웃으며 눈을 맞추고 민원사항을 접수했다. 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 마시기를 권했다. 수리를 다하고 물건을 돌려주며 친절한 설명을 해주었다. 마지막 서비스로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전화가 올 거예요. 서비스에 대해 꼬~옥 ‘매우 만족’ 한다고 답해 주세요~”

 

문을 나서기 무섭게 전화가 왔고, 당부 받은 대로 ‘서비스에 매우 만족했다.’ 고 답했다. 내가 답한 ‘매우 만족’은 무엇에 대한 만족인가? 나의 ‘매우 만족'을 얻어간 그는 정말 ‘매우 만족’ 했을까?

 

 

서비스 사회와 감정 노동, 그 속성

 

위의 이야기는 서비스업의 속성과 판매 ‧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형태를 아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① 대면서비스 부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 측의 경영전략 ② 원래의 업무 외 감정 노동을 포함한 서비스 노동에 적극적으로 투입되는 노동자 ③ 기업의 더욱 정교해진 관리·감독 즉, ‘노동자들이 생산물을 잘 생산하였는가’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생산물을 구입하러 왔을 때 기분 좋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는가’, ‘소비자의 기분을 만족시켰는가’ 등 이른바 감정까지 관리·감독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제조업 위주에서 서비스업이 주종을 이루며 ‘서비스 사회(산업)’ 로 전환된 현재, 산업 경향 혹은 소비 성향은 ‘더 좋은 서비스’로 수렴된다. 질 좋은 상품들끼리 대결하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입 전후 서비스도 좋은 상품’ 이 진짜 질 좋은 상품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생산하거나 소비할 때 어느 것이 더 흡족하고 감동스러운 느낌을 주는가도 기준이 되었다. 이미 포화상태였던 시장으로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공략할 수 있는 소비자 욕구(감정)에 대한 발견이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에 개인의 감정과 정서 같은 영역마저 상품화되었다. 노동자들은 생산물을 제조하는 노동(육체 및 지식 노동)과 더불어, 그 생산물을 제공하는 것이 자기의 기쁨인 냥 표현해야 하는 노동(감정 관리의 노동) 모두를 해내야 한다. ‘더 공손하고 더 친절하게 그리고 더욱 진심으로’ 고객을 응대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며, 나아가 당시 고객을 대면한 노동자의 감정관리(노동)을 통해 긍정적인 기업의 이미지를 판매, 추후 ‘재구매’로 연결되도록 하는 이른바 ‘고객만족경영’ 전략의 출발도 맥을 같이 한다.

 

 

구조적 감정 착취, 가장 심각한 노동 소외로

 

이제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을 내 마음 가는 대로 표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감정 상태로 보이게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할 때도 왕왕 있다. 속한 조직(기업)의 감정표현 규칙대로 감정의 표면과 내면을 길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감정이 노동이 된 서비스 사회에 추가된 노동규범이다.

하지만 감정 관리의 수준이 심화될수록, 감정노동을 자주 깊게 할수록 실제 자신의 감정(인격)과 분리되는 감정부조화 현상이 일어나 노동자의 마음은 병들 수 있다. 감정부조화의 병리적 예로는 화병, 우울증, 폭력성이 비치는 히스테리, 자기비하 등이 있고 이러한 정신적 불건강은 육체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울증의 경우 여러 가지 질환 및 사회적·직업적·신체적 장애를 가져오기도 하며,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 10~15%가 결국 ‘자살’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스트레스 달고 사는 직장인들…….정신질환 자살자 갈수록 늘어, 산재신청 4년 새 5배 껑충……. 실적 경쟁·감정노동 탓” 이는 작년 4월 1일자 한국경제 기사 제목이다. 기사에서는 최근 4년 간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자살한 근로자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건수와 실 승인 건수의 증가치를 보여주며 그 심각성에 주목했다. ‘업무 관련’ 자살의 증가원인으로 ①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지며 생긴 감정노동의 스트레스 ②근로환경의 변화로 인해 장시간 홀로 업무상 긴장상태에 놓이는 것 ③실적에 대한 과도한 부담 ④고용 불안정을 꼽았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건수

(제공 : 근로복지공단)

 

2009

2010

2011

201206

신청

24

22

46

28

승인

9

7

14

7

사망원인 : 자살(투신, 음독, 목맴 등)

 

이 통계는 판매를 포함한 생산 과정에서 기업과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는 노동자의 감정에 대해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순전히 ‘개인의 것’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업팀장과 텔레마케터들은 좋은 물건임을 소개하고 많이 팔기 위해, 그리고 불만에 가득 찬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소와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노동을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숨을 끊을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감정 노동. 그런 강도 높은 감정 관리의 업무를 지시하고 스트레스 낮춤 조치는 없는 기업. 아프고 죽어도 산재 승인은 잘 안 해주는 정부.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쓸 데로 써먹은 후 노동자의 감정이 마모되고 녹스는 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본래 인간의 노동은 육체·정신·감정의 다양한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고강도의 감정 관리까지 해야 하는 현대의 노동자들은 육체 및 정신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소외현상과 부가적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까지 더하면, 이중고, 삼중고의 소외를 겪는 셈이다. 앞서 짚었듯 서비스업 종사자라고 해도 감정만으로 노동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존의 업무에서 감정노동을 추가로 한다. 휴대폰 A/S센터의 엔지니어가 기계도 고치고 고객을 직접대면하면서 친절기업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입출금 수납업무를 전담하던 은행원들이 금융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바쁜 중에도 일일이 기립인사를 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노동자들은 구조적으로 더욱 치밀하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가장 적극적인 소외로 몰리고 있다.

 

 

외주․하청, 감정 착취의 수직계열화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처음으로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주창했을 때만 해도 감정노동은 한정된 직업군이 경험하는 노동의 형태였다. 당시에는 이런 직업군이 변호사나 상담가, 의사, 스튜어디스 정도였고, 이들의 서비스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높은 편이었다.

서비스에 대한 산업적 기대치가 확연히 달라진 지금, 감정을 동원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군 및 서비스의 질과 제공범위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희소성의 가치가 사라져서일까? 많은 노동자들이 마트, 식당, 주유소, 고객센터 등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기업에게는 이윤을 벌어다 주고 소비자에게는 더한 만족감을 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있건만 이에 대한 가치는 전에 없이 떨어져 있다. 아마도 서비스업의 대부분의 일자리가 하청의 하청, 외주의 외주를 거쳐 만들어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나쁜 일자리로 고착되는 것이 큰 영향인 것 같다. 판매와 실적, 고효율과 고이윤을 둘러싼 기업의 노동자 감정 팔기 횡포가 심해지는 만큼, 소비자들 역시 감정노동자의 감정을 인간의 그것이 아닌 쉽게 사고팔고, 망가지면 뚝딱 고칠 수 있는 물건으로 대하는 풍토가 강해지는 게 아닐까?

 

 

무거운 짐을 진 감정노동자의 미소

 

‘나’를 ‘매우 만족’ 시키기 위해 짓는 판매․서비스 노동자의 미소는 쓰디쓰고 무겁디무거운 것이다. 실적과 평가의 압박, 이와 연결되는 고용의 불안정성, 매일 수차례 진상 손님들로부터 받는 인격모독, 직장의 동료를 판매․서비스업 특성상 동료라기보다 경쟁상대로 대할 수밖에 없는 외로움. 이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괴로움이 아니다. 서비스산업 비중이 이미 50%가 넘는 한국 노동시장과 그 시스템 속에 있는 많은 수의 우리,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다.

 

감정노동이 자본의 필요에 따라 구조적으로 발생·심화되듯 감정노동으로 인한 부정적 후과 역시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노동의 후유증과 그 책임은 노동자 개인에게만 지워지고 있다. 이 모든 무거운 짐을 개인이 홀로 몽땅 짊어지고 웃음 지어내야 한다는 것, 이는 참 폭력적이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손의 거대한 주먹, ‘서비스 압박’ 폭력에 의해 노동자의 감정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감정 노동자들이 미소를 띤 채, 미소의 무게에 눌려서 말이다.

 

[특집] 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특집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최민 선전위원장


일터에서는 지난 9월,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된 것을 계기로 반올림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았다. 여러 사람의 힘과 땀, 눈물이 7년간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반올림은 이름 그대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울타리가 돼 왔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출발한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삼성 전자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반도체 산업, 전자 산업 전반의 노동안전 문제를 제기하고 대변해 왔다.    

반올림에게는 수많은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항소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법정 투쟁, 새로운 산재 신청자들의 산재 인정 투쟁, 삼성과의 교섭 등 지금까지 해 왔던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더불어 일터라는 지면을 통해 반올림만이 아닌 우리가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 앞으로의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보며 새로운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돋움 하고자 한다.


백혈병, 암을 넘어 ‘건강권’ 쟁취로


처음 반올림이 결성되게 된 계기가 백혈병이었고, 이번에 법정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것도 백혈병이다. 올 여름에는 같은 반도체 생산업체인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도 백혈병 발병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고,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도 백혈병 환자가 연이어 발생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얻게 된 건강 문제가 백혈병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방암이다. 2012년에는 19세부터 5년간, 유기용제와 방사선 및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했다.

생식 건강문제도 관심사 중 하나다. 생식 건강 문제에는 임신, 출산과 관련된 건강문제 뿐 아니라 가족계획, 인공임신중절, 성병 등 생식기관이나 생식 기능과 관련된 건강문제가 포함된다. 이미 대만, 영국, 미국 등에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며 화학물질을 취급했던 여성 노동자의 자연유산 위험이 증가하거나, 가임 능력이 감소해서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남성 노동자 역시 가임 능력이 감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노동자는 같은 나이대의 일하지 않는 여성과 비교했을 때 자연유산이 57%, 생리불순이 54% 많다는 보고가 있었다. 

백혈병과 암을 넘어 이런 다양한 문제, 좀 더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실제 위험이 높은지, 높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 에 대한 민감한 조사가 필요하다. 전자 산업에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젊고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지만 ‘질병’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질병이 없는 상태’ 를 넘어 보다 확장된 ‘건강하게 일할 권리’ 를 얘기해야 한다. 화학물질 뿐 아니라 야간작업, 인간공학적 위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건강권, 주민들의 환경권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늑장 신고했을 때, 사망자 과실이라며 사고 발생 경위에 거짓을 섞어 해명했을 때, 공장 주변 지역 거주자들의 이해가 회사보다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일치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 쉽게 알 수 있듯, 화학사고가 일어나면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 피해자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사고 예방 체계, 응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또 그에 앞서 지역 사회에 공존하고 있는 공장이 어떤 위험 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야 한다. 

1980년, 90년대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 때문에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지역 주민들이 오염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 국가에서 반도체 산업에 의한 환경 파괴를 감시해 온 활동가들은 기업이 지역사회의 의혹과 비판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며, 국가와 지역사회가 기업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와 환경’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우기는 기업들에 맞서 노동자, 지역사회, 환경을 잇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올림 역시 이미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지역사회 알 권리 획득을 위한 활동에 함께 해 왔다. 비교적 건강한 성인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에 비해, 지역 주민 중에는 어린이와 노인과 같이 유해물질에 특별히 취약한 사람들도 많아 비교적 낮은 농도의 유해물질 노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자 산업 나아가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주민들의 감시 강화와 알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


전자산업은 전 지구적 분업이 매우 발달한 산업이다. 미국의 애플 본사에서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 영국에서 주로 발전했던 반도체 산업이 1990년대에는 타이완, 한국으로 이전했고, 이후 중국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자산업 공장들이 들어서다가, 최근 노동환경 개선 요구가 높아지자 중국에 있던 공장들이 남미로 이전하는 것이 모두 전 지구적 분업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자산업의 국제적 분업 가장 말단에는 전자산업 폐기물 문제가 있다. 잘 사는 지역의 전자산업 쓰레기들이 못 사는 지역에서 처리된다.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이나 교역을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있지만 여전히 중고 전자제품이라는 미명으로 전자 쓰레기들이 수출되고, 이런 폐기물 해체 작업 도중 많은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 인도 델리의 전자 폐기물 재활용 현장 


인도에서는 2011년 전자산업 폐기물 법이 시행되어 일정한 요건을 갖춰 정부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전자 폐기물 해체 사업을 못 하게 됐고, 수도인 델리는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작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한 환경 단체에 따르면 2013년, 14년에도 델리 내 여러 지역에서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사업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납, 수은, 카드뮴 등 유독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전자산업 폐기물이 조악한 방법으로 해체되는 사이 인도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성과 아동 노동자들은 이런 독성 물질에 마구 노출된다.


국제연대가 거창하거나 먼 얘기만은 아니다. 전자산업과 관련된 국제환경협정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도록 강제하거나 이런 표준에 맞는 국내법을 만들고 정비하는 제도 개선 활동, 한국의 활동과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교육해 새로 전자산업이 발흥하는 지역에서 우리가 겪은 지난한 투쟁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 지원하는 활동,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적절한 노동, 환경 규제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활동 등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이 본격화되어야겠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문제들


반올림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청정산업’ 이라던 반도체 산업의 맨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반올림 덕에 우리는 공기 샤워와 방진복으로 상징되던 먼지 하나 없는 반도체 공장이라는 이미지가 사실은 노동자의 건강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더니, 사실은 물도, 화학물질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널리 쓰이지 않던 인듐이라는 희귀 광물은 LED나 LCD 만드는 데 유용해서 최근 20여 년간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일본과 한국이 주요 사용 국가이다. 그런데 이 물질을 사용한 노동자들에게서 폐 조직이 섬유화 되는 증상이 발생해 새로운 직업병으로 알려졌다. 하루가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산업은 우리가 아직 모르던 새로운 위험의 등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위험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사전 예방 원칙에 입각해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유해요인, 새로운 노동자 집단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위험에 민감해지는 길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반올림 투쟁은 고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투쟁,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에 이어 한국 노동안전보건 역사에 큰 획이 되는 투쟁이다. 지난한 투쟁을 거쳐 이제 한 계단 올라섰다. 한 숨 고르면서 다음 걸음을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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