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밥하고 국 끓여도 죽지 않는 학교를 위해 / 2018.11

밥하고 국 끓여도 죽지 않는 학교를 위해

[인터뷰] 김영애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번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 듣는다'는 학교에서 행정 업무 및 지원 역할을 하는 사무직, 특수 지도사, 과학실 실무사, 도서관 사서, 시설, 청소, 경비 노동자, 급식노동자 등이 모여 있는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김영애 부본부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10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학교 노동자들 

"안녕하세요. 저는 학교에서 급식 일을 하고 있고, 올해 2월부터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부본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또, 올해는 노동안전보건 담당 임원 역할도 같이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안양지회장, 경기지부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해 왔어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본인뿐만 아니라 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들 대부분이 업무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 부담이 있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처럼 급식 노동자들이나 시설, 청소 노동자들은 근골 문제가 없는 경우가 드물어요. 특수지도사 선생님들도 장시간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 업무를 하면서 근골 부담이 높고요. 문제는 노동부, 교육부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식이 이러하니 개선을 요구하는 건 더 어렵고요."

잊을 수 없는 산재 인정 투쟁의 기억

"제가 2014년에 경기지부 부지부장, 안양지회장 역할을 했는데 근골 산재 노동자이기도 했어요. 그때는 학교 급식 노동자가 활발하게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서 산재 신청부터 인정받는 것까지 투쟁의 연속이었어요. 그때 왜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노동조합이 같이 대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개별적으로 힘들게 싸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노동조합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고, 그해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하도록 계기를 만들었다.

학교를 바꾸기 위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시작

"노동조합에서 당장 활동을 시작할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경기 지역에 있는 저를 서울에 있는 본부로 발령을 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시작했어요. 다음 해인 2015년에는 노동조합에 노동안전보건국을 만들었고 지역별로 노동안전보건 활동 담당자를 조직했어요. 그러다 노동조합 전체 선거가 있었는데 제가 경기 지역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다시 지역에 내려가야만 했죠."

결국 김영애 부본부장은 지역으로 내려갔다. 다만, 골병으로 아픈 조합원들을 생각해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유실되지 않도록 담당 활동가를 배치해달라고 요구했고, 올해 초까지 이 활동가와 함께 많은 활동을 만들어갔다.

"처음에 지역별로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세우고, 지역 담당자들이 정기 회의를 해서 현장 상황 공유하고, 조합원들과 함께 공부하고, 산재사건 현황 공유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았어요. 올해 여름엔 폭염이 큰 문제여서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힘써왔고요. 최근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투쟁 관련해서 꾸준히 논의 해왔어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꾸준히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제가 이 활동을 할수록 느끼는 건데, 노동조합은 기본 임금단체협상 투쟁을 열심히 하잖아요. 그리고 이걸 제대로 하려면 간부나 조합원들이 기본적으로 현장을 잘 이해하고 이후에는 어떠한 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활동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 이야말로 간부나 조합원들이 현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받지 못했던 학교 급식 노동자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일상 활동을 바탕으로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교육 서비스 업종이라는이유로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제가 학교 급식 일을 시작한 게 2004년 4월이에요. 그리고 그해 12월부터 병원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이유는 다 골병이었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저랑 다를 게 없었는데 2009년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너무 아파서 결국 잠깐 일을 쉬었는데 그때 누가 산재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산재는 일하다 다치거나 사고를 당한 노동자만 가능한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인식도 없었는데, 산재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저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때 산재 인정도 인정인데, 우리가 산업안전보건법상보호를 받지 못해서 산재도 발생하고 현장을 개선하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면서, 노동부나 교육부가 학교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노동부가 예외적으로 학교 급식, 청소, 경비 노동자를 교육 서비스업에서 구내식당업 노동자로 분류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적용을 받도록 내부 지침을 바꿨다. 아주 큰 결실이었다.
 
"노동부가 2017년에 학교 급식실, 청소, 경비 노동자를 교육 서비스업이 아닌 구내식당업 노동자라고 판단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라고 교육부로 공문을 내렸어요. 그런데 교육부가 이 문제를 계속 손 놓고 있다가 올해 4월에서야 각 시도 교육청에 산업안전보건법상 중요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를 명령했어요."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은 현재 교육청 측과 노동조합에서 이 문제를 협의하는 기구를 구성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아직 협의체를 구성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 시행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 변한 학교 

"산재를 신청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일하다 다치면 개인 실비보험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신청이 많아졌고 인정받은 사례도 늘어났어요. 결과가 이렇다 보니 조합원들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높아졌고요. 결과적으로 조합원이나 노동조합 자체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높아졌죠. 물론 지금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투쟁만 해도 노동조합이 더 노력할 게 많아요.

지금까지 현장에선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 기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이걸 이해시키는 교육과 노동조합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교육청과 동등한 힘을 가지고 제도를 만들 수 있게 모의실습도 하고 있어요. 비슷하게 정부기관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현장 사례 교육도 공부하고 있구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김영애 부본부장은 아직 교육공무직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교육의 필요성은 동감하고 열심히 참여하지만 아직 법과 제도가 익숙하지 않고, 평일 내내 일하다 주말에 시간 내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시작했던 투쟁은 위험수당을 확보하는 싸움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작업 환경에 대한 싸움이었고요. 급식실은 정기적으로 후드를 청소하는데 그때마다 낙상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전장비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일하는게 아니라 교육청이 후드 청소 전문업체를 선정해서 진행하도록 요구했어요. 폭염에 대응하는 투쟁도 중요했죠.

급식실은 불, 물을 많이 사용하니까 안 그래도 찜통인데 폭염 때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요. 그래서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고, 오래돼서 성능이 약한 에어컨을 새것으로 바꿔달라 요구했어요. 또, 음식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식기 청소를 할 때 근골 부담이 있는데 100% 수작업으로 했거든요. 그래서 1차로 식기를 애벌 해주는 세척기도 제공하라고 요구했고요."


김영애 부본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를 세우고, 조합원의 필요와 문제의식을 반영한 활동이 중요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여전히 과제가 많은 현장

"어제 인천 지역에서 가스 누출 사고로 조합원 한 분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됐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바로 현장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니 설비에 큰 문제가 있더라고요. 신축 건물인 학교인데 급식실이 양쪽 건물에 꽉 막혀 있고 천장은 낮아서 환기 자체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교육부 관계자에게 이야기 했어요. 여기서 밥하고 국 끓이면 급식실이 아니라 죽음의 공간이 된다고요. 문제는 여기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교 급식실이 전혀 일하는 사람을 고려해서 만든 공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김영애 부본부장은 기본적으로 교육부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가 학생들을 위해서 급식실 위생 점검은 굉장히 철저하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급식 노동자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후드, 가스 이런거에 대해서는 전혀 검사를 안 해요. 그나마 신경 쓴다고 하는데 위생 점검할 때 곁다리로 점검하는 정도, 아니면 후드를 몇 년에 한 번 청소 전문업체를 불러서 관리하는 정도예요.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린 것도 1년간 다시 법적으로 해석을 요청하면서 시간을 끌고 어떻게든 면피하려고 했던게 바로 교육부에요."

이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교육부가 산업안전보건법 1조 목표인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기 위해 해야 할 역할과 의무를 과연 다할지 걱정과 의구심이 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조 목적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해두었다. 교육부와 노동부는 학교 노동자들이 이 법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다짐

"지금까지 활동 중 잘했다고 생각하는 거는,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도 못 받았던 우리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투쟁했던 결과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조합원들이 일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기 위해 요구하고 투쟁에 나서는 게 참 뿌듯해요.

예전에는 일하다 아프거나 사고가 나도 뭐 하나 바꿔 달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꾹 참고 일했으니까요. 또, 산재 인정만이 아니라 현장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도 꾸준히 활동해왔으니까, 이런 거는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문제를 시작하는 만큼 현장에 잘 안착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김영애 부본부장 개인의 평가와 소회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전까지 노동조합에 대해서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동안 일하면서 억울했던 부분,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 거 그게 제일 좋아요. 처음 기자회견이라는 걸 하면서 이야기 했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그때 이런 말을 했어요. '왜 학교는 급식 노동자를 후미진 곳에 처박아 놓고 사람대접도 안 해 주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라고 차별하는 거냐'고요. 그런데 이제는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우리 조합원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현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게 굉장히 뿌듯해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잘 하지 못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활발한 활동이 있었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이 아파도 말하지 못하고 참고 일하는 게 사실이에요. 아직 노동조합의 활동이 부족하고 조합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게 많지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신체 포기각서를 쓰고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꼭 이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현장 상황이 참 슬프기도 하지만 그 슬픔이 앞으로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고, 조합원들에게도 꼭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또, 임금투쟁 하는 것만큼 노동자 건강권 투쟁도 해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우리도 그렇고 많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우선순위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사후약방문처럼 누가 다쳐야 대응하고, 사고가 있어야 조합원들이 위험성을 깨닫는 게 현실이고요. 앞으로는 정말로 예방 활동에 힘쓰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여전히 의식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모두 조합원들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노동조합에서 임금 인상, 고용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투쟁하는 것만큼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권에 대해서 깊게 자각하고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 2018.09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2004년 개봉했던 영화 <인어공주>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 배우 전도연과 박해일이 출연해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광과 부모님의 과거 시절로 돌아가 비로소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극 중 전도연은 아름답지만 거친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치는 해녀로, 박해일은 섬마을의 몇 안 되는 가구에 반갑고, 슬픈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집배원)으로 나온다. 영화 속의 우체부 박해일은 아름다운 섬마을을 오토바이로 타고 다니며, 보람있게 살아가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2018년 집배원 노동자의 표정에 행복함을 찾기란 어렵다. 작년 19명, 올해 14명의 집배원이 노동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희망은 있다. 작년 한 해 장시간 노동 근절,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를 외쳤던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을 지난 8월 24일에 만나 집배 노동자의 장시간 중노동을 없애기 위한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았다.

허소연 선전국장은 집배노조가 출범한 2016년부터 함께 했다. 노동조합 일을 하기 전 대학교에서 학생운동하며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계기였다. 


[출처: 집배노조]


“집배노조 설립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됐던 건 토요택배 부활이었어요. 기존 노조 체계로는 우리가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장시간 노동, 중노동 근절은 몇몇 사람에게서 나온 요구가 아니었어요. 기층에 있는 우정노조 조합원들에게부터 올라왔던 요구였죠. 그래서 노조를 새로 설립하게 됐어요. 당연히 설립한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 상급단체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민주노총을 선택했죠. 그렇게 대중의 요구로 만들어진 노조이기 때문에 집배원의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가 가장 핵심적 요구였습니다.”

지금의 집배노조는 2016년 전국의 집배원 ‘전국우정노조’를 탈퇴한다. 그리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가입을 결정하며 집배노조를 세웠다. 변화를 갈망하는 움직임은 2013년 집배원장시간 중노동없애기운동본부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화됐다. 우정노조에서 나온 노조들은 기존 노조에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토요 택배 폐지, 장시간 중노동 폐지 등 같이 싸우자고 말이다. 

“집배원분들은 대안적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토요 택배가 재개됐지만 위원장 간선제 등 기층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이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정노조는 오랜 역사, 큰 규모인 대단한 노조죠.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복수노조가 7개가 있고, 직종별로 분리된 현실에 대한 책임은 제일 먼저 생긴 우정노조에 있다는 것도 같이 통감해야 할 부분이에요. 복수노조를 만든 사람들이 노조가 없어서 새로 만든게 아니고, 기존 노조에서 탈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우정노조를 탈퇴한 이유 분석을 철저히 해야죠.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노조가 많아서 관리하기 힘든 측면이 있겠지만 한편으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집배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들을 받아 안고 활동하는 집배노조는 최근 새 식구를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여름에만 담양우체국, 북광주우체국, 춘천우체국 등 전국 곳곳에서 지부가 설립되고 있다. 

“공동의 승리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함께 뭉쳐 요구하면 실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요. 기존의 긴 역사 속에서 그런 성취감이라고 할 게 많지 않아요. 집배노조 설립 초기에도 ‘될까?’가 있었죠.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장시간 중노동 쟁점화시키고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도 요구하고, 집배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도 꾸려졌죠. 그건 상층부의 제도이지만 실제 일하는 분들에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어요.


[출처: 집배노조]


정규직 집배원은 근속연수가 15년 정도로 길어요. 긴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바뀐 게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뭔가 바뀐 거죠. 하다못해 관리자들이 집배원을 대하는 태도, 표정이 바뀐 거예요. ‘왜 바뀌었을까?’ 했었을 때 집배노조가 생기고 난 다음에 변화한 걸 체감하고 있어요. 최근 가입하신 분들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태까지 보고만 있었는데 내가 가입하면 더 많이 바뀔까?’ 그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오시는 분들이요.”

허소연 선전국장은 한 가지 기억을 꺼냈다. 조합원의 99%가 남성, 평균연령대도 49세다. 한 조합원의 가족이 요즘 출근할 때 왜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가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거의 죽지 못해 나가는 표정으로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집배원 그만두고 자영업이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얘기를 하고, 가족들이 서로 안타깝고 미안해하고. 하지만 최근 들어 근무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진 않지만 본인이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하다못해 정수기 밑에 물이 떨어져 미끄러운 문제를 관리자에게 말할 수 있는 것, 택배 쌓는 팔레트 철이 어긋나서 일하다 다칠 것같은 문제를 과거엔 알아서 조심히 사용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바꿔달 라고 요구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집배노조는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집배노조의 핵심 요구는 장시간 노동 해결이에요.제도적으로 근로기준법 59조에 우편업이 제외되긴 했지만, 공무원 집배원은 현역 공무원이라 무제한 노동이 허용돼요. 우체국은 무료노동, 중노동이 허용된 사업장이에요. 그래서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내가 일한 시간만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투쟁을 주요하게 하고 있어요. 과로사 관련해서 우정사업본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사업장이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형식적으로 하고 있어요. 사망사고 발생했을 때 체계적으로 보고하고 원인 분석을 내놔야 하죠. 사고다발 군을 미리 찾아내 예방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집배노조에서는 그런 걸 요구하고 있죠. 그런데 정말 황당했던 것 중 하나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안건 중 ‘잘 씻고 다니게 해라, 팬티를 잘 갈아입어라’ 이런 내용이 었더라구요. 그게 안건이었어요. 그게 뭘 뜻하는 걸까요? 집배 노동자들이 지저분하니 개인 위생관리 해라 이런거죠. 또 한 곳의 사례는 샤워시설이 고장 나서 1층 영업장으로 물이 새니까 아예 샤워를 못 하게 했어요. 그러면 안건 1번으로 샤워시설 문제를 다뤄야 하는거 아니닌가요? 모든 걸다 개인 책임으로 돌려요.”

이처럼 안전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우정사업본부의 태도는 노동자를 사고와 죽음으로 내몬다. 지난 8월 30일 부산지방우정청 거창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인력부족으로 시간에 쫓기면서 일 하는 바람에집배원들은 사고 위험이 높다. 그런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 토요택배를 비정규직 위탁배달원에게 맡기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것이다. 

“집배노조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죠. 고용형태에 따라 누구는 토요일에 쉬고, 누구는 일하고. 토요 택배완전 폐지 요구는 같이 쉬고, 같이 일하자는거예요. 택배업은 40대 남성분들이 많아요. 이 분들은 IMF 이후 정리해고 당하고 자영업, 물류사업으로 갔던 분들이죠. 정부는 그걸 악용해 열악한 일자리에 이 분들을 몰아넣고 있어요. 악순환이에요. 장시간노동이 만연해 오후시간에 택배를 못 받고, 밤늦게 받아야 하고, 그러니 밤늦게 배달을 해야 하죠. 어디서는 끊어내야 해요. 우정사업본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배달, 물류 산업 자체가 바뀌어야 해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는 육체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정신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작년 7월 6일 한 집배원이 자신이 일하던 우체국 계단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틀 뒤 끝내 그는 숨을 거뒀다. 21년 차 집배원이었고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존 업무 구역에서 7년 일했지만 업무 구역이 바뀌고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은 단 3일 주어졌다.

“처음 과로사를 생각했을 땐 노조도 협소하게 뇌심혈관계질환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과로자살 비중이 뇌심혈관계질환만큼 높더라고요. 자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두는 분들도 많아요. 국민에게 서비스 제공하는 것과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괴리가 심해요. 대부분 정신적 스트레스는 고객, 관리자에게 받아요. 

그런데 우체국에는 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시스템이 없어요. 오히려 집배원에게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하죠. 이번에 기획추진단에서 집배원 1만5천 명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직무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우정사업본부를 비롯해 정부가 집배 노동자들의 노동안전, 건강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게 사실 가장 화나고, 일이 안 풀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정사업본부는 개인이 건강관리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주장해요. 관리자들이 봤을때는 집배원들이 담배 많이 피고, 술 많이 마시고 그런거죠.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장시간 중노동 스트레스를 풀어낼 방법은 이분들에겐 가장 쉽게 담배와 술인 거죠. 사실 우정사업본부도 알 거예요. 원인이 장시간 중노동이란 걸요. 외면하는 거죠.”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를 위해 열심히 싸워왔던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에게 노동안전 과제에서 장시간 중노동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높아져야 해요. 그러려면 노조가 기본적으로 임금인상, 복지증진을 해야죠. 문제는 노조가 어떤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만날거냐예요. 적정의 일을 하면서 삶을 잘 유지해나가는데 요즘 화두죠. 이걸 위해서라도 노조는 장시간 중노동 관련 의제를 계속 가져나가야 해요. 안전 문제도 부차적인 게 아니죠.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노조에서 장시간 중노동, 안전 문제를 계속 다루는 것이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어요.”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 2018.08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삶도 바꾼다- 이준상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노동안전부장 인터뷰                                                                                                                                           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건설노조 토목분과 노동안전보건 담당자 회의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이준상 노동안전부장의 모습 [출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건설 노동자들이다. 목수, 철근공, 건설기계, 타워크레인, 전기원 등 다양한 분야의 건설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상가, 주택, 빌라, 아파트의 다양한 건물을 완성해 나가는데 이들의 땀과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은 위험천만하다. 건설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 소식은 하루가 멀다고 들려온다. 

최근에는 전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20년 경력 베테랑 목수 노동자가 폭염 중 계속된 작업으로 정신을 잃고 추락해 사망했다. 광주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건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다.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이하 광전본부) 노동안전부장 이준상님을 지난 7월 19일에 만났다.
"목수 일을 3년 정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쳐서 산재로 쉬는 중에 노동조합 지도부가 투쟁하다 구속됐고, 건강이 회복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 만 4년 됐네요."

10여 년이 넘은 광전본부는 목수 중심의 200여 명 조합원의 규모였으나 2014년 말 현장 투쟁이 크게 벌어지면서 규모가 10배 이상 늘었다. 그 과정에 함께 했던 이준상님에게 노동조합은 소중한 곳이다.

"원래는 급한 시기에 활동하고 다시 현장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간부도 부족하고, 큰 투쟁에 승리해서 조직도 확대되니 여러 일이 생겼죠. 그때 마침 전기원지부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신청 하는 일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조직사업 경험은 부족해도,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관련 법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현장을 돌아보니 아픈 사람이 정말 많았던 거죠. 그때부터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건설현장의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0년까지 산재 사고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건설현장 사망자 수는 매해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5년간 건설업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총재해자 수는 11만 878명이다. 사망재해도 문제지만 추락과 부딪힘 등 전형적인 재래형 사고가 흔하다. 도대체 왜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단순히 사고 문제만 놓고 접근할 것은 아닙니다. 건설 현장은 근본적, 절대적으로 적정 공사비와 공사 기간이 확보되지 않아요. 불법 하도급 문제도 심각하죠. 짧은 기간 안에 부족한 비용으로 일을 하려고 하니깐 당연히 급하게 공사 기간을 맞추게 되죠. 그러면 안전문제는 뒷전이고요. 이게 가장 핵심적 문제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 역시 이렇게 방치되어 일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안전시설이 부족하지만 갖춰져도 불편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사측이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하는 거죠."

현장에서 계속해서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 비용 문제를 제기하며 여러 노력을 하는 와중에도 이준상님의 눈길은 노동안전보건 영역으로 향한다.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를 물었다.

"가장 먼저 근골격계 질환 사업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1~2년 이내에 관심을 둔다고 바뀌는 영역은 아니에요. 구조적, 관행적 문제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이죠. 2~3년 동안 기초를 쌓고 안정화 되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노동조합에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성과를 바탕으로 토대를 어떻게 구축할지가 핵심이죠. 건설현장에서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공상 처리도 너무 흔하고 노동자들 역시도 익숙해서 이런 것들을 바꿔야 근골격계 질환도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 있겠죠. 최근 하는 중요한 고민입니다."

목수로 일을 하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여러 좌충우돌이 있었다. 물론 이준상님에게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이 쉽지는 않았다. 낯설고 어려웠다. 그런데도 어떻게 돌파해 나가며 꾸준히 활동해올 수 있었는지 노하우가 궁금했다.

"방법보다는 당장 목적의식 때문에 여기저기 부딪혔어요. 그냥 했죠. 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현실적 한계는 직면했지만, 생각도 못 했던 일이 되다 보니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죠. 더디게 가더라도 갈수는 있겠더라고요. 여기저기 자문도 구하고, 자료도 찾아보고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되더라고요."

지금도 많은 조합원과 산재 문제로 상담하고, 술잔도 기울이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조합원은 마음 한편에 있었다. 이준상님에게는 그분들이 힘들더라도 다시 활동을 다짐하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2015년 말에 처음 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을 냈던 조합원 두 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분은 60대 중반이었고, 한 분은 50대 초반이요. 처음에 조합원들에게 꼭 산재 인정받을 거라고 했는데, 조합원들도 안 믿었어요. '노가다 골병'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건설 노동자 스스로에게도 있었던 거죠. 산재가 되겠냐, 안 되는 거 해서 회사 불편하고 우리 불편하게 하지 말자는 인식이요. 두 분 다 수술하고 집에서 요양 중인데 산재신청 설득하려고 집까지 찾아갔어요. 가족들도 만났고요. 그렇게 신청하고 결국 인정받았죠. 너무 기뻤어요. 본인도 어려울 거로 생각하면서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생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소식을 듣고 나서 그분들이 지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물론 아쉬운 경험도 있다.

"근골격계 질환 산재 인정받고 나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전체 교육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한달 반 동안 조합원 대상으로 하루 2시간씩 교육을 했어요. 산재신청 기본 절차, 법적 구조, 사측 압박 문제 등에 대해 이해와 설득시키고 교육했죠. 교육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소음성 난청 문제를 얘기하더라고요. 교육 때 소음성 난청 있는 분들을 개별적으로 면담 받아서 취합해보니 350명 중 10% 정도 해당됐어요. 알아보니 소음성 난청은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길래 안전보건공단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죠. 특히 건설노동자들은 검진을 받으려면 일을 하루 빼야 하는데 그러면 일당을 포기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업체 찾아가서 설득해서 특수검진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죠. 산재신청 추진도 했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작업환경측정도 준비가 안 되어있어서 장기적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노동조합 조직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접게 됐어요. 노동조합에서 집중하고 역량을 투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죠. 일단 상황을 파악한 수준에서 중단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어서 굉장히 아쉬워요."

그간 경험을 토대로 본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화들이 이준상님을 비롯해 건설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에너지가 된다.

"확실히 많은 변화가 있죠. 쉽게 산재 신청을 하고 승인받는 게 지금 구조에서 쉽지 않아요. 그래도 분명 인식은 변했죠. 조합원들도 많은 상담을 해와요. 초기에 본인의 질병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했어요. 몸이 경쟁력인 건설 현장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고용 문제이기도 하니까 동료와 경쟁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요. 사회 관심은 둘째치고 노동조합도 관심이 없으니 본인이 참고 버텼는데 지속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주변 동료들도 건설현장에서 골병든 게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고 산재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최근 노동조합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는 현장에도 있지만, 생활 전반에 놓여있다. 바로 '휴식' 문제다. 건설현장은 촉박한 공사 기간 때문에 날씨 영향만 없다면 주말, 공휴일 없이 매일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몸은 지치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집에 돌아가서 바로 기절하듯 자도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은 삶은 위태롭다. 

이런 문제에 대해 7월 12일 국토교통부는 공공 건설공사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고 공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 현장부터 견실시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공공 공사로부터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며, 적정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데 일요일 휴무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한 것이다. 올해 9월부터 시범 도입되며 내년 상반기에는 모든 공공 공사에 적용된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안정적 휴식이 보장되는 건 정말 중요해요. 그러기 위한 전제는 일상적 고용문제가 안정화 되고, 임금이 보전이죠. 쉬고 싶고, 그러면 정말 좋은데 건설현장 작업 특성상 눈, 비가 오면 쉬어야 해요.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다른 현장에 가기 전까지 일을 못 해요. 당연히 생계 위협을 받죠. 이런 문제들이 해소되는 게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이준상님은 정부와 건설 자본의 건설 노동자 안전, 건강 문제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지적했다.

"무지하고 무관심해요. 피상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구조는 전무해요. 여전히 빠른 시일 안에 공사를 끝내서 이익금을 최대한 많이 남기기 위해 수단으로 활용하죠. 그나마 최근 전국 토목건축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이 힘을 가진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 개별 노동자들의 안전, 복지, 건강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진 않아요. 굉장히 형식적이죠."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어떻게 하는 게 잘 되는 거라는 조언을 해줄 사람이 많지 않아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죠. 일단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힘들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분명 변해가는 흐름이 있어요. 건설노조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에서도 하면 좋은 사업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구조적으로 사업에 대한 장기적 대책과 관심,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노동조합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인 거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 현장에도 노조가 생겼어요! -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인터뷰 / 2018.07

우리 현장에도 노조가 생겼어요! 

-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업체가 다르다고 말도 못섞게 했다.”

“아내가 출산하기 직전인데 네가 가서 뭐 할 게 있냐고 응급차 부르고 계속 일하라고 했다.”

“아버지 임종도 못 지켜드리고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며 일해왔다. 회사가 하라는 대로 길들여져서 그게 문제인 줄도 몰랐다던 그들이, 최근 노조를 만들고 인간임을 선언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UPH 속도에 내 삶을 맞추는 게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속도에서 일하겠노라 외치며 투쟁에 나섰다. 이후 10년, 20년 일해도 바뀌지 않던 현장이 개선되고 있다. 투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현장에 다녀왔다. 인터뷰는 지난 5월 30일에 황원준 부지회장, 오성민 조직부장, 박흥일, 서동영 노동안전보건부장이 함께 했다.


▲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노동조합으로 하나된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화성지회 조합원들  


‘그렇게 할 거면 집에 가라’

“현대모비스 화성지회는 기아자동차에 직서열 납품하는 회사고 최근까지 8개 업체가 있었어요. 지금은 노조를 만들고 나서 조직 체계 개편한다고 3개 업체로 통합해서 정리한 상황이에요. 주로 하는 일은 자동차 운전석, 엔진 바디 등을 만들어요. 아무리 밤낮으로 일해도 월급은 늘 최저임금이에요. 물론 성과급은 있지만요. 10년을 일하나 이제 막 들어오나 월급이 같아요.”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해 작업자들은 수시로 일을 그만뒀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회사가 무조건 집에 가라고 했어요. 일하다 부품에 불량이 나도 집에 가라, 아프다고 해도 집에 가라 그랬죠. 일을 조금 늦게 하거나 못해도 집에 가라고 압박하고요. 어떻게든 집에 가라고 하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면서 일하려고 하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버티기가 힘든 상황이라 많이들 그만뒀어요.”

이렇게 노동자들이 그만두면 남은 이들은 더 고되게 일해야 했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최대한 늦게 채용하거나 아예 채용하지 않았다.


변화를 싹틔운 축구 동아리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바로 옆 라인에 있어도 서로 대화를 전혀 못 했기 때문에 누가 다쳤는지 그런 걸 전혀 몰랐어요. 그나마 같은 업체에서 사고가나면 알 수 있었는데, 회사가 본인 부주의로 다쳤으니 개인 비용으로 치료받든지 그냥 출근하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산재처리는 꿈도 못꿨어요. 산재 신청하면 인생이 망가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세뇌를 시켰거든요.”

사고가 나도 모를 정도로 교류가 없던 현장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기 시작한 건 축구동아리였다고 한다.

“회사에서 사내 복지를 너무 안 하니까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진행하려고 축구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업체별로 팀을 만들어서 시합도 하고 연습하면서 인사도 하고 서로 현장에 관해서 이야기도 하면서 노조를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도 자동차 부품회사고 일도 많아서 다들 지역에서 오고 싶은 회사 아니었냐고 묻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지인 소개로 많이 오지만 대부분 못 버티고 그만둬요. 아예 소개를 못 해주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일하면서 인격 모독당하고 자존감 떨어져서 언제 그만둘까 그러는데 누구를 데려오기는 창피하죠. 지역 공단이 워낙 열악해서 밖에서 봤을 때는 좋아 보이는데 자랑할 만큼 좋지 않아요.”


노동조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어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자동차 하청업체에 노동조합이 많은 줄도 몰랐어요. 그나마 동료들끼리 술 먹으면서 ‘노조가 있었으면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무관심했던 노조를 어떻게 하게 된 건지 물었다.

“일하면서 부당한 게 너무 많았어요. 지인이나 친인척이 사망했는데 조문을 못 가게 하거나, 아내가 출산이 임박했는데 응급차 불러서 가면 되지 네가 거기 가서 뭐하냐고 일이나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지인 결혼식도 그냥 봉투나 하라 그러고. 아버지가 많이 위독해서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임종을 못 보게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3명이 해야 할 일을 2명이 하고 사람은 계속 그만두고 채용은 늦고 이러니 친구나 지인들하고 약속하는 게 불가능했어요. 결혼한 분들은 더 힘들어했고요.”


계약직 채용합니다

“현대모비스와 도급 계약을 맺는 상황이다 보니 사장들 대부분이 현대차나 모비스 출신이에요. 보통 5년 정도 계약을 하는데 그 기간 안에 돈을 남겨야 하니까 사람을 자르거나 계약직을 쓰거나 사람장사를 하죠. 연차를 강제로 보내서 돈을 남겨 먹고요. 결국 모든 피해는 일하는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현재는 업체 사장들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들은 현대모비스에 충성을 다해야 계약 기간을 연장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사람 없으니까 철야 하고 집에 가라는 회사

“예전엔 하루 10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일했어요. 1조가 아침 8시 반에 출근해서 19시 반에 업무 마치고, 2조가 20시 반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7시 반까지 이렇게요. 매주 교대했고 한 달에 주말 특근이 한 번, 많으면 세 번 있었어요.”

만일 급여를 덜 받더라도 몸이 힘들어서 상시주간 업무만 하게 하는 조치가 있었는지 물었더니 절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아마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 집에 가’ 그랬겠죠.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엔 현장에서 무슨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 했어요. 우리 스스로도 ‘남들 다하는데 야간 뛰기 싫으면 집에 가야지, 혼자 왜 유별나게 굴어’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을 거예요. 회사에 길든 거죠.”

조합원들은 장시간 노동 못지않게 조금도 쉴 틈 없는 빡빡한 노동밀도가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도했다.

“저희는 직서열이다 보니 기아차가 하라는 대로 맞추느라 늘 오버타임하고 개처럼 일했어요. 2시간 일하고 10분 쉬어야 하는데 4시간 연속 일하고 쉬는경우가 태반이었죠. 아침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더 일찍 오라고 해서 청소시키고 조회 수당은 안주고 그랬었죠. 점심시간 40분 중에서 20분간 밥 먹고 남은 20분은 또 일했어요. 퇴근 시간 넘기면 통근버스 잡아놓고 계속 일 시키고요. 만일 피치 못 할 사정이 생겨서 반대조에 한두 명이 빠지면 철야까지 뛰었어요. 주간에 출근해서 야간까지 뛰고 다음 날 점심시간까지 일하다 퇴근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일하고 돈은 주간 근무 2번 한 거로만 쳤어요. 일하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오죽하면 조합원들이 일하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 노조 만들었다고 하거든요.”

2013년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하면서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똑같아서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노동조건과 관련해서 연차나 휴가는 제대로 썼는지 휴식은 어떻게 취했는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인력 운영이 빡빡해서 연차를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아파도 일했는데요. 연차 수당안 주려고 강제로 쉬게 할 때만 쉬었어요. 날짜는 회사가 며칠 전에 정해줘요. 다음 주 화·수·목 이렇게 쉬라고요. 이러면 어디 여행도 못 가요.”


‘그냥 여기에 싸인해’

“출근 시간에 청소시키면서 조회도 같이하는데 수당으로 월 2~3만 원 줬어요. 회사는 그걸 안전교육이라고 주장했어요. 한창 일할 때 사인하라고 종이가져오니까 다들 내용 확인도 못 하고 서명했어요. 안전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서류를 꼭 일할 때 가져 왔어요.”

“사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취업규칙을 자세히 읽어보면, 관리자한테 반동분자로 찍히고 면담했어요.”

작업환경측정의 경우 외부 기관에서 진행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도 회사에서는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노동자들을 지정해서 그들만 측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노동자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조합 만들고 당시 8개 업체와 통합 산보위를 하자고 제안해서 지난해 4/4분기부터 시작했거든요. 산보위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개선을 위해서 돈, 시간, 인력, 실행방안 등을 논의하는데 진행이 너무 더디더라고요. 회사와 노동조합의 눈높이도 너무 다르고요. 산안법을 알고 보니까 현장에 위험한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1/4분기까지 협의를 계속 했는데, 회사가 돈 안 드는 건 바로 개선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개선을 안 하고 산보위도 파행시키더라고요. 그래서 회사가 우리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산안법을 준수해서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을 거라고 엄포를 놨어요.”

이후 노동조합은 안전센서를 끄고 일하던 공정에서 센서를 켜고 일하며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부품 생산이 늦어지면서 기아차가 납품을 드문드문 받았고, 결국 라인을 멈추게됐다.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화성 때문에 라인이 끊어져서 손해를 봤으니 작업자에게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 할수 있다고 협박했다.

“문제는 이때 회사가 소장을 조합원들이 현재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본가로 보내서 가족들이 다 알게된 거예요. 그래서 괜히 걱정 끼치고 개별 조합원도 괴롭고 두렵고 그랬어요. 노동조합에 소장을 보냈으면 단체로 싸우면 되는데 개인에게 보냈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어요.”

회사가 징계위를 열어 처벌하려고 하자 노동조합은 전체 카톡과 SNS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간부 회의, 통합지회 회의 등을 통해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모든 조합원이 ‘나도 징계하라’는 내용의 변론서를 쓰고 대표이사 항의 방문을 하러 가는 등 투쟁에 나섰다.

“이 정도 되니까 회사가 징계위가 열리기로 한 당일에 고소를 취하했어요. 안전센서 켜고 일했던 설비는 3일 만에 80% 정도 개선했고, 민·형사상 소송하겠다고 한 조합원한테는 사과문도 발송했어요.”


투쟁으로부터 얻은 것, 자신감

“저희가 이 투쟁을 하면서 얻은 것은, 적어도 회사가 뭐 때문에 개선이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에요. 회사는 단 며칠이면 바꿀 수 있더라고요. 산안법에 대한 회사의 인식 수준이 밑바닥에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은 정신 차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로 느꼈을 거 같은데 개인은 힘이 없지만, 개인들이 뭉치니까 이런 힘이 나온다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합원들은 투쟁 과정과 결과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이번 투쟁 과정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사고순간부터 대응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조합원들 인식도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 같아요. 이제 매달 한번 통합으로 현장점검도 하려고 준비 중이고,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서 노안 관련 교육이 있으면 반드시 참여해서 공부하려고 해요.”


앞으로는 아픈 동료들이 없었으면

“산안법, 산재법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단순반복 업무를 많이 해서 근골 문제가 심각하든요. 어떻게 아픈 사람을 치료받게 하고, 예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프지 않은 조합원이 없는데 지금은 마땅한 대책이 없네요.”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쉬운 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시작하면서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은 못 했거든요. 물론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데 힘든 건 현실인 거 같아요.”

“앞으로 조합원 중에 아프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일을 마쳤을 때도 건강하고 편안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걸 위해서 올해 위험성 평가나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시행을 고민하고 있어요.”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회사와 협상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고요. 조합원이든 간부든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보면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는데, 오해가 쌓이게 두거나 감정싸움이 되지 않도록 했으면 해요. 처음 노조 만들 때 그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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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선전위원장


황재민씨 산재 인정 투쟁에 돌입

"황재민씨 산재는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보니 워낙 복잡한 문제여서 이것저것 확인할 자료가 많이 필요했다. 회사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는 자료에 대해서도 반박할 근거를 만드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내용적인 준비를 마치고 근로복지공단에 갈 때도 이미 불승인한 사건을 재심사해달라고 요청하는 초유의 일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다. 동료들도 마음이 통했는지 사전에 무슨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끝장을 보고 갈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생각보다 쉽게 재심사를 받는 것으로 결정했다. 회사가 자료를 거짓으로 제출한 점, 노동조합이 대응해서 싸우고 있는 점, 공단 내 여러 복잡한 문제로 잡음을 만들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운이 좋다면 좋았다. 다시 산재를 신청하면서 현장 재해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과는 이야기가 풀리는 데 문제는 회사를 설득하는 거였다. 회사는 현장 조사를 하면 노조에서 누가 참여할 거냐, 민주노총 조합원은 때려죽여도 참여시킬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논의해서 노조 추천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훈구 활동가가 현장에 들어가기로 결정해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처음으로 현장 조사를 나오다 보니 회사는 물론 동료 노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컸다.

"동료가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를 신청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재해 조사를 나오고 산재 인정까지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처음인지라 현장 이슈가 됐었다. 이후 투쟁 끝에 결국 황재민씨는 산재를 인정받았다. 다들 고생 많이 했는데 무엇보다 황재민씨가 장해가 계속 남을 건데 그나마 산재를 인정받아서 앞으로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보상을 얼마 받았느냐보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었다."

산재인정 투쟁 이후 조금씩 변화하는 현장

"동료들이 산재인정 투쟁 전체를 지켜봤기 때문에 현장에 민주노조가 있다는 게 알려졌고, 저 친구들이 몇 안 되지만 제대로 활동한다는 인지도가 생겼다. 그리고 현장 노동조건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체조를 근무시간 15분 전에 의무적으로 했는데, 현장조사가 시작될 즈음 체조를 자율적으로 바꿨다. 설비도 변화가 있었는데 자동차 테일게이트(뒤 뚜껑)과 후드(앞뚜껑)를 이송하는 리프트를 설치했다. 설치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황재민씨 산재 인정 이후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지속해서 이어나갔다.

"노동강도가 워낙 높으니까 현장에서 근골 환자를 찾는 캠페인, 잠깐 쉬는 시간에 앉을 수 있는 의자놓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현장엔 의자랄 게 없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박스를 깔고 앉았었다. 그래서 노동부에 진정하고 현장조사 하면서 현장을 휘젓고 다니니까 회사에서 의자를 주더라. 조금의 변화는 만들었는데 제일 문제인 노동강도 자체를 낮추는 것까지는 아직 못 가고 있다."

지역 활동을 고민하게 한 '행복한 서산을 꿈꾸는 노동자 모임', 행서모

"조합원이 소수다 보니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막연한 게 사실이었다. 사실 동희오토에 있는 활동가들은 지역에서 하는 역할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인데 현장에서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는 게 뭐랄까, 되게 아까웠다. 동희오토에서 민주노조 운동이 안 되고 힘든 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전체 비정규직 운동, 전체 노동조합 운동이 침체되는 거랑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건 지역 운동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하는 고민을 하다가 행서모 활동을 고민하게 되었다."

행서모는 몇 달씩 지역 운동에 대한 토론과 의제별 소모임 등을 진행했고, 박근혜 퇴진투쟁과 세월호 3주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회원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기획들이 제출되었고 그중의 하나가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되기'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 안전보건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모였다.



"한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여기 모였던 사람들이 '노안활동가모임'를 구성해서 지금 두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문제 외에도 3.8 여성의 날 행사나 청소년 대상으로 헌법을 강의하거나 지역에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 등이 들어오는 문제가 있어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같이 대응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새움터'라는 노동안전센터를 만들었는데 그 활동에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4주기 추모행사는 '안전사회를 위한 실천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안전과 생명에 관한 의제를 다루는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제가 상근자처럼 활동하고 있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요즘

"개인적으로는 지금 운동의 문제, 위기를 편하게 얘기해보자면 여러 '경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와 대중,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 그렇다면 이런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지역 운동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조직 자체도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행서모는 대표자나 집행국을 두지 않고 여러 팀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개인들 차원에서는 수평적인 연대와 협력을 지향한다. 그런 지향에 맞게 모임을 운영할 생각이다."

최진일 조합원은 충분히 능력과 의지가 있지만, 기존의 노동조합 체계에서는 활동을 펼치기 막막했던 사람들이 지역에서 능력을 펼치는 것을 보면 즐겁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 동희오토에서 현장활동에 공백이 생기는 건 아닌지 물었다.

"동희오토와 지역 활동,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솔직히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다. 동희오토는 노동조합 회의도 있고 하니까 논의를 하는데 사실 지금은 답이 안 나온다. 당장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고 주간 연속 2교대와 같이 현장에 쟁점이 있을 때 노동조합에 입장을 내고 선전하는 활동을 하게 될 것 같다."

지역과 현장을 꼭 나눠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역에서 활동이 활발할수록 현장에서의 활동 시간과 고민이 부족한 문제는 계속 고민이 될것 같아 이점에 관해서 물었다.

"동희오토를 보면 현장 노동자들이 사측에 압도적으로 장악 돼 있다. 그러니 조합원을 조직하고 활동가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아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민주노조가 있다가 깨진 사업장이라 더 어려운 것도 같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활동가들이 자기랑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거 그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서모는 굉장한 모순덩어리인 곳인데. 활동 목표나 방식은 활동가와 대중의 경계를 넘어서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한다. 그런데 실제로 행서모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며 활동을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좀 더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대중→조합원→간부→활동가→혁명가 이런 단계와 경계를 두는데 사람들은 무조건 단계적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결국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텐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활동의 끝은 조직을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조직을 만들고 나니까 결국엔 여기도 저기도 조직만 다를 뿐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러면 그 조직은 활동력도 힘도 없다. 지금은 우리가 3.8 여성의 날 집회를 한다고 하면 어떤 내용을 준비해서 어떻게 그 운동을 발전시킬 건지가 중요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열심히 뭔가를 했으니 그걸 계기로 모임이나 단체를 만드는 걸로 귀결되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행서모는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을 크게 두지 않을 거다. 기존에 운동 관행과 질서와 다르게 의제와 가치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면서 틀과 형식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조합 운동이 기존에 틀을 벗어나서 다른 활동을 고민해보거나 기획해보는 것 자체가 너무 없는 것 같아 이런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꿈과 목표는

"사실 동희오토 들어갔을 때 즈음 너무 나대지 말고 그냥 내 주변 사람들만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아서 활동에 있어서나 개인적으로 꿈, 목표 그런 건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넘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사회적 자아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개인적 자아가 부딪히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서산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것인지 물었다.

"지금 같이 활동하는 분들과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 비슷한 연배인 활동가들이 땅을 사서 같이 노후 대비를 한다는 얘기도 있더라. 이제 저도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나이인가 싶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행서모가 만들어질 때 종종 하던 이야기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운동이 이 만큼 망했다 그럼 우리가 잘못해서 망한 거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가 밥 먹듯 하는 활동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다는 의심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고 해왔던 방식에 대해 의심해봐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아차 하면 어떤 문제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돌이켜보면 잘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앞으로 이런 고민을 같이 나누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1)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조합원 인터뷰 / 2018.04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는 지난 2010년부터 3년여간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를 통해 전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고민과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지, 새롭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다시 시작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충남 서산에 있는 동희오토에서 자동차를 만들면서 지역에서 행복한서산을꿈꾸는노동자모임(행서모)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최진일 조합원를 시작으로 연재를시작한다.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화나 문자로는 몇 번 이야기 나눴는데 이렇게 뵌건 처음이다.

최진일 조합원은 전날 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민주노총 서태안 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터에서,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 만나 다양한 고민과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잘 부탁드린다. 우선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동희오토에서 일하고 있다. 동희오토는 2006년 입사해서 일하다 2008년 해고되고 현대차 본사 앞에서 투쟁하면서 2011년 말에 다시 복직했다."

최진일 조합원은 함께 해고 된 8명의 동료들과 복직 투쟁을 했다.

"회사에서 법적인 해고 사유를 '이력서 허위 기재'라고 했는데, 그거야 회사 주장이고 현장에 투쟁이 있었다. 그때가 피치업이라고 회사가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한국노총 조합원이었는데 대의원들 중심으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대응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회사에 난리가 났다. 제가 있던 업체는 폐업하면서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해고됐다. 이후에 민주노총에 가입해서 쭉 복직 투쟁을 했다."

당시 투쟁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었지만, 사실상 노조 민주화에 대한 투쟁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는 아주 완강히 저항했다.

"동료들이 투쟁하기 이전에 동희오토에서 민주노조 투쟁을 시작한 게 2004년부터였다. 그때는 조합원도 300∼400명 정도 됐는데 그때도 노조 활동을 하려고 하면 조합원 소속 업체가 폐업되고 다시 업체가 들어오고 그런 게 반복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이미 민주노조 투쟁이 쉽지 않은 현장인데 여기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만 해도 동희오토처럼 완성차가 아닌 수십 개의 하청 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완성차를 만드는 현장이 여기 말고 없었다. 그래서 동희오토는 자본에는 꿈의 공장이라고 불렸다. 동희오토라는 현장이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여서 여기를 왔는데, 와보니까 활동가들이 곳곳에 있었다. (웃음) 입사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회사가 나를 뒷조사하고 해고까지 됐다."

현장에서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시간들

언제부터 이른바 현장에 투신해서 운동해야겠다 생각했는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선배들은 등록금 투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수석 선배라고 시위 중에 돌아가셔서, 입학하자마자 열사 투쟁을 했고 그게 제일 큰 계기였다. 사실 동기들이나 선배들한테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에 갔을 때 운동권이 많이 있었으면 나는 안 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만 활동하다 보니 절실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 일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동희오토 가기 전에 이미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은 해봤는데 컨베이어 노동은 여기가 처음인 데다 여기는 워낙 노동강도 자체가 높으니까 힘들었다. 게다가 노동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UPH라고 한 시간에 자동차가 나오는 속도가 32대였는데 지금은 60대가 나온다. 속도는 2배가 빨라졌는데 당연히 인원이 두 배가 늘지는 않았으니 힘들다. 교대하고 야간에 일하는 것도 처음 입사했을 때는 30대라 버텼는데 이제는 슬슬 힘들어진다."

최진일 조합원은 강도가 높은 일을 하면서도 소소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처음엔 제가 일하던 업체 안에서만 알음알음 활동을 했다. 4∼5명이 소소하게 회사의 속셈을 알아야 한다고 (웃음) 속셈학원 모임을 만들고 활동했다. 얼마 하지는 못했는데 그러다 처음 집단행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분이 신입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한 분이 야간에 일 적응을 못 해서 반장이 엄청 갈궜다. 면담 들어가면 울면서 나오고 그래서 마침 저랑 같은 조원이라 쉬는 시간에 조원들이랑 의논을 했고, 한국노총 위원장한테 이야기해서 해결해달라고 하자고 결정해서 10명 정도가 찾아갔다. 그때 한국노총 위원장이 안타깝다고 알겠으니 회사에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는데, 다음날 현장을 가보니 업체 사장이 노발대발 난리를 쳤다. 한국노총 위원장이 문제 해결은 커녕 업체 사장한테 우리가 한 이야기를 고자질했다. 그 뒤로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한국노총이 누구를 위한 노동조합인지 분명이 알게 됐다."

온갖 멸시와 왕따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활동

이른바 현장 활동 주범으로 찍힌 최진일 조합원은 복직 이후에도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단속을 받고 있다.

"동료들이랑 같이 해고됐을 때 아예 민주노총 조합원은 없었고 현장이 한국노총으로 싹 정리된 상황이었다. 회사는 우리가 복직하기 전까지 현장 관리를 했다. 민주노조 조합원 하고는 아예 말도 못 섞게 단속을 한거다. 물론 업체가 많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는데, 의장 쪽에서 일했던 동지는 관리자들이 대놓고 욕하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만들길래 우리가 모여서 그 업체를 쳐들어가서 관리자랑 푸닥거리를 했던 적도 있다. 관리자들은 우리를 늘 감시하니까 동료들이 말 섞는 것도 못 했다. 밥 먹을 때도 옆에 아무도 앉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제가 한 번 동료들 옆에 가서 앉아봤는데 한 이틀인가 지나서 한 놈이 따로 얘기 좀 하자더라. 그러더니 하는 말이 미안한데 애들이 네가 옆에 앉아서 정말 불편해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래 그러냐 그랬다."

복직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분위기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막 복직했을 때처럼 긴장이 있는 건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관리는 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회식이 있었다. 회식 때도 다들 제 옆에 오기 힘들어하는데 조금 말이 통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술이 좀 들어갔는지 저한테 사장하고 너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그러면서 나랑 같이 가서 사장한테 술 한잔 따라주고 오자는 하더라. 저는 됐으니까 너나 갔다 오라고 그래서 혼자 갔는데 다시 오더니 표정이 일그러져서 오더라. 이 친구 딴에는 뭔가
관계를 풀어보려고 한 건데 사장이 진일이랑 친하게지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왔다."

이런 회식 자리도 너무 괴롭고 힘들 것 같았다. 나라면 저란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맞다. 사실 회식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일부러라도 꼭 갔었는데, 그때는 아예 회사가 회식 때 제가 앉아야 하는 자리를 만들고 옆에 관리자들로 포위시켜 버리기도 했는데 그나마 싸워서 관리자들이 옆에 없는 거다."

큰 전환점을 맞은 산재 인정 투쟁

동희오토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에게 황재민 씨 산재인정 투쟁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전환점을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사람이 쓰러질 정도면 뭔가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저희랑 알고 지내는 공장 형님이 정문 앞에 어떤 여성분이 피켓을 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다음날 동료들이랑 가봤는데 황재민 씨 아내분이었다. 일단 연락처 주고받고 다음에 상황을 들어보니 이미 산재를 한창 진행해서 심사청구가 끝나고 재심사청구를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저희가 노안투쟁이나 산재 관련해서 고민이 적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충남 갑을오토택에 있는 안재범 동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이훈구 동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들은 두 분에게 이번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복직은 했지만 별다른 활동을 못 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듣는다못하면 민주노조가 있는 게 별 의미 없지 않겠냐. 그래서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다시 산재를 신청해서 진행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투쟁하면 회사가 황재민 씨에게 보상하고 산재는 법원에 가서 다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재범 동지와 이훈구 동지가 회사에서 공단에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등 산재 조사 과정이나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근로복지공단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줬다. 비록 전례는 없지만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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