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적정 소득, 적정 시간 그리고 건강한 삶 /2015.12

적정 소득, 노동 시간 그리고 건강한 삶

 

 

 

조성식 노동시간센터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40세 미만, 주야 맞교대, 근무 월 250만 원 이상 지급.'

 

직장 근처 인력 파견 업체의 네온사인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인력 파견업체에서 광고하는 곳에서 일하고 250만 원을 월급으로 받으려면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해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을 일해서 250만 원이 월급이 노동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250만 원의 월급을 받으려면 보통 주 6일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해야 한다. 일주일은 주간에 12시간 일해야 하고 다른 일주일은 밤에 12시간을 일해야 250만 원의 임금이 노동자들에게 주어진다결국 250만 원의 돈은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기본급에, 연장 노동에 대한 가산, 야간 노동에 대해 가산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에선 많은 노동자가 저임금의 노동을 보충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거기에 심야 근무까지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주당 7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은 법에 맞는 내용일까?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 얼마나 지켜질까

 

국제노동기구에 의하면 한국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잘 준수되지 않아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나라에 해당한다. 물론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과 같은 형식적인 법조차도 없는 나라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법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상태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지만 한 해에만 산업재해와 업무상 질병으로 한 해에 2000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그렇다면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살펴보자. 근로기준법 50조와 53조가 노동시간과 직접 관련된 조항이고 59조는 예외 조항이다. 이 법 조항들을 보면 한국의 정규 노동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할 경우에는 52시간까지 연장 노동을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인력사무소의 광고 내용 '주야 맞교대, 250만 원'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조장하는 광고인 셈이다.

 

한편 평소 노동부에서 정기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지, 특례 업종이 아닌 산업에서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한 경우 처벌을 하는지, 만약 처벌을 한다면 어떠한 처벌을 하는지 잘 알려진 바가 없다. 실제로 언론 기사나 노동자들의 경험을 살펴본다면, 노동 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시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아마도 드물 것이다. 또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켜서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사업장이 노동시간과 관련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동부에서 2012년에 발표한 자료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표는 2012년도 일부 사업장에 대해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수시로 감독한 결과이다. 140개 사업장 중에서 124개의 사업장에서 노동시간 관련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감독 결과에서 80%가 넘는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업장에는 대부분 가벼운 벌금조차도 부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근로기준법 적용은 선명한 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법 조항이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대부분 사업장에서 무시하고 지키지 않고 있다.

 

 

<업종별 근로기준법 53조 위반 사업장 비율> (2012년 수시감독 결과)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의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저임금 체계라고 본다.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전일제 노동자 중위임금 3분의 2 이하) 비율은 25.1%OECD 평균은 16.3%인 훨씬 높은 비율이고 이는 OECD 국가에서 2위에 해당한다또 최저 임금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만일 2015년도의 최저임금인 5580원으로 주 40시간 일하고, 하루의 유급 휴일을 받는다고 가정해서 주 6일의 임금을 받는다고 계산하면 월 107만 원 정도의 매우 낮은 소득으로 살아야 한다만일 부부가 맞벌이한다고 하더라도 215만 원 내외의 낮은 소득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많은 노동자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상황에서 연장근무 추가 50% 가산, 야간노동 50% 가산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큰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물질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표준노동 시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72시간의 주야 맞교대 노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이 한국사회 저임금 노동자들의 비극이다. 그러면서 장시간·야간 노동으로 노동자의 건강은 지속해서 손상당하고 있다건강해지려면 적절한 소득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을 섭취해야 하고, 적절한 주거 공간에서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계절에 따른 여러 종류의 의복도 필요하고, 적당한 강도의 운동도 해야 한다. 적절하게 여가를 보내야 하고, 경조사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이 같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소득이 필요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사회가 최저 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개념을 '건강 최저소득'이라고 하는데, '건강 최저 소득'을 개념을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이자 보건학자인 '제리 모리스'이다. 한국에서도 이 개념에 따라 건강생활을 위한 최저 생계비가 계산된 바 있다. 계산된 금액은 2009년을 기준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한 가구에 최소 약 250만 원의 돈이 매달 필요하다고 조사되었다2009년에 조사된 결과이므로 그간의 물가를 상승을 반영하면 2015년 현재는 조금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로 판단된다. 6년간의 물가 상승률이 10%라면, 건강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한 가족의 월 275만 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보장하려면, 최저 임금으로 표준 노동시간인 주 40시간 이상 일했을 때 '건강 최저 소득' 이상의 소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는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올려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살려야 한다. 경제민주화!" 노동자, 중소상공인, 청년, 학생,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출처 : 참여연대)

 

2013년 멕시코에 빼앗긴 'OECD 국가 중 평균 노동시간 1'2014년에 다시 되찾았다는 반갑지 않은 기사를 보았다. 또 유럽의 여러 국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에서는 주당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뇌졸중이 증가하며, 주당 노동시간이 55시간이 넘을 경우 뇌졸중의 위협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이 연구는 한국 사회와는 좀 맥락이 다른 면이 존재한다.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의 노동자들이 주된 연구 집단인데 서유럽은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보다는 전문직이나 고위직의 사람들이 성과를 높이고자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근로 감독의 수준도 한국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또 근로기준법을 강화해서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서도 한국노동사회 연구소에서 발간되었다.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 체계, 부실한 근로감독 시스템과 맞물려 노동자들의 건강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저임금 체계·제 역할을 못 하는 근로감독 체계가 맞물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정치·사회적 요구와 투쟁이 시급하다.

 

근로기준법 중 노동시간과 관련한 조항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②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1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 제52조제2호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에 12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제52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③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제1항과 제2항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사태가 급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사후에 지체 없이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개정 2010.6.4.>
④ 고용노동부장관은 제3항에 따른 근로시간의 연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하면 그 후 연장시간에 상당하는 휴게시간이나 휴일을 줄 것을 명할 수 있다.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에 대하여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제1항에 따른 주(週)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1. 운수업, 물품 판매 및 보관업, 금융보험업
2. 영화 제작 및 흥행업, 통신업, 교육연구 및 조사 사업, 광고업
3. 의료 및 위생 사업, 접객업, 소각 및 청소업, 이용업
4.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노동시간에세이] 밤을 잊은 그대가 놓치고 있는 밝은 시간들 /2015.11

밤을 잊은 그대가 놓치고 있는 밝은 시간들

 

 

 

정하나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센터 회원

 

 

 

심야 라디오와 함께 시작된 올빼미형 습관

 

수면패턴에 따라 흔히,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으로 나눈다. 나는 주로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더듬어보면 초등학교 때에는 깨우지 않아도 7시에 바로 일어나 아침 어린이 프로그램도 보고, 밥도 먹고, 씻고도 시간이 남아 심지어 아이 걸음으로 30분은 넘게 걸리는 학교까지 걸어가기까지 했던 거 같다. 생각해 보면,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다음부터 올빼미스러움이 내 안에 배양되기 시작했던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이제는 고인이 된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듣고 잤던 기억이 있다. 종종 새벽 2시 음악도시가 끝난 후 ‘***의 영화음악을 듣고 3시에 잤다. 왜인지 모르게 컨디션이 좋은 날이나 다음날 학교 안 가는 토요일 같은 날에는 영화음악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후 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방송까지 들었다.

 

당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모두 그랬듯, 9시 정식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침 자율학습이 우리 학교에도 있었다. 아침 7시 반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매일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고 잠드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집에서 뛰어가면 10분이면 주파할 수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아침 7시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 일어나서 세수만 겨우 하고 교복 챙겨 입고 넘어질 듯 뛰며 겨우 등교했다. 학교에 가서도 정신이 차려질리 만무했고, 남들 다 긴장하고 공부하는 고3 때에도 나는 새벽 라디오 청취를 끊지 못해 2교시까지는 거의 비몽사몽 공부 포기 모드의 학생이었다.

 

유흥가에 접근성이 커진 성인이 된 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밤의 자유를 즐기는 것은 나름의 조절을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 근거는 첫째, 전날 일찍 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는 것. 물론 (아직 젊다고는 해도) 20대 후반을 지나 30대를 지나면서 나도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예전처럼 하루 12시간씩 자거나 하지 않게 되고, 피곤해도 아침 8시면 눈이 떠지긴 한다. 그렇지만 아침은 늘 피곤한 시간이고 그리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둘째, 하루 중 집중력이 제일 발휘되는 시간은 오후 3~4시 정도, 그리고 밤 10시 경이다. 읽히지 않던 자료, 안 써지던 글도 이 시간에는 속도가 휙휙 잘 나간다. 비교적 시간 활용이 자유롭던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수면시간에 변화를 줘보면서 집중력 폭발시간을 바꿔보려고 해봤는데 결과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고딩시절부터 단련한 올빼미 스타일이 이미 몸에 각인되었나 보다.

 

심야에만 운영하는 N버스 생긴 서울, 한 블로그에는 올빼미족들에게 심야버스 퇴근노선도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한화생명 블로그)

 

노는 것도 밤이 편한 올빼미? 실은 시간이 없다

 

이런 몸이다 보니, 노는 것도 밤에 노는 게 좋다. 일없는 주말에 영화를 한 편 보려고 해도 4시 이후 저녁 타임 걸 예약하게 된다. 가격도 싼 조조할인도 있는데도, 영화는 날 밝을 때 보는 게 왠지 이상하다. 도리어 새벽에야 끝나는 심야영화를 선택하는 판이다. 하루 일과 중 을 하는 시간이 늦게 종료가 되는 탓도, 습관이 그렇게 배긴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뿐 만 아니라 임노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 중에 여가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소한 퇴근 시간인 6시 이후부터야 가능하다. 9시 출근 전에 수영을 하러 다니거나 외국어 공부학원을 다니는 직장인 친구들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1~2달 하다가 퇴근 시간 이후로 시간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그리 넉넉한 여가는 가질 수 없다. 출근 시간 지옥철부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빨리 집에 들어가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든다. 게다가 칼퇴근하는 날이 뭐 얼마나 많으랴. 체력의 잔여량 정도로나, 하루 중 남은 시간의 양으로나 그리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방송작가를 하던 지인이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늘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라는 불평을 하는 걸 들었다. 시사라디오 방송의 대본작가였던 그녀는, 매일매일 새로운 대본을 써야 했다. 당일 방송 녹음이 끝나면 다음 날 아이템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계속 실시간으로 뉴스검색 등을 하면서 대본을 완성해 간다고 했다. 녹음과 회의를 마치면 반드시 방송국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본 초고를 잡아놓고 퇴근해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즐기긴 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완성해야할 일이 있으니 언제나 여유가 없고 뒷 꼭지가 늘 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때 위로랍시고 나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일반 직장인들 대부분이 그렇긴 해요. 다음날 출근이 부담스러워서 주중에 약속을 잘 안 잡더라고요.” 물론 그녀에게 전혀 위로가 안 되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밝은 시간의 여유

 

아무리 내가 올빼미이다 손, 요즘 같이 하늘이 높고맑은 날이 많은 이 계절을 이렇듯 스치듯 나가야 하는 게 아쉽다. 나뭇잎의 색깔이 변해가고, 그것이 파란 하늘과 콜라보레이션되어 함께 그려내는 운치는 해 떠 있는 시간에야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풍경이 그려내는 시간의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출근 시간 45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슬프다. 물론, 사회단체는 일반 기업처럼 엄격한 출퇴근 근태관리가 없으니 커피 한잔을 사서 가느라 늦게 간다 해도 크게 염려할 게 없긴 하다. 그래도 아쉬우면 사무실 옥상에 괜히 더 자주 나가 허리도 펼 겸 가을 공기를 마신다. 건물 앞쪽에서 예쁘게 물들어가는 관악산이 훤하게 보이지만 아쉽게도 옥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무실 안쪽에 있는 큰 유리창으로는 관악산이 훤히 보이긴 하지만, 정작 실내에 있을 땐 창문 쪽으로 고개를 잘 안 들게 된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시간이 좀 늦었더라도 생각나는 친구에게 전화한다. 언제 만나자거나 특별히 상의할게 있다거나 하는, 그런 전화는 아니다. 그야말로 안부 전화. 약속을 잡아 실제로 면대면으로 보는 건 좀 미루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지금 바로 생각날 때 전화라도 안 하면 점점 더 관계가 소원해질 거 같아 안부로 마음을 전한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관계에 공들이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넉넉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한다.

 

하는 활동이 노동안전보건이다 보니,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많이 알게 된다. 생체리듬을 교란하고 수면장애를 유발한다, 오래 앉아 있으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을 높인다, 과로사의 원인이 된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들이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야간노동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유해요인’(Group 2A)으로 분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인이야기를 마치 증명이라 하듯, 내 몸이 이미 변해가는 것을 본다. 성인이 된 후 알게된 심야까지 이어지는유흥과 공부, 노동은 무엇보다 먼저, 야식습관을 일상화했고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다. 수면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없으면 코티솔 (코티솔은 혈액 속 지방과 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코티솔 수치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비만, 고혈압, 당뇨, 피로, 우울증, 기분저하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고, 비만하게 된 다더니 내가 딱 그렇구나 하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감기 따위 잘 걸리지 않았는데, 요즘 보면 1년에 한 두 번은 꼭 감기몸살을 앓고 지나간다. 면역력이 확실히 떨어진 것이다. 확실히 나이도 좀 더 들었지만 면역력을 보강할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않았으니, 계속 이런 식이면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

 

인생이 하나 쥐면 하나 놓아주는 것이라 그런가. 올빼미형 인간이 밤을 쥐고, 낮을 놓아주며잃고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특히나 건강영향은 인류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 피해가기 어렵다. 올빼미로 살기로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서 그리 택해진 것인지부터 잘 따져봐야 할 노릇이다. 어느새 놓치고 있는 풍경과 관계, 잃어버린 몸과 정신의 건강 중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없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올빼미처럼 해가 뉘엿한 시간부터 에너지가 더 나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올빼미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할 필요도 능력도 없긴 하지만, 날 밝은 시간에 가질 수 있는 삶의 소중함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에세이] 헬조선에 부는 '공정해고' 바람 /2015.10

헬조선에 부는 '공정해고' 바람



전주희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 회원, 수유너머N회원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지난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다짐이다. 한 달이 조금 더 지나고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고 발표했다. 이 합의안의 백미는 무엇보다 '일반해고'의 도입이다. 계약과 계약해지가 일상이 된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별 관심을 못 끄는 '일반해고'는 과연 철밥통 정규직들만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일까? 계약기간과 무관하게 저성과자가 되면 언제든 퇴출할 수 있다는 것은 계약과 계약해지라는 제도적 약속마저 무화시킨다. 퇴출이란 쌍방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명령권이다. 따라서 이번 노사정합의는 IMF로 시작된 노동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마침내 정점을 찍은 모양새다.


헬조선의 딸과 아들

대통령이 결단하고 실천할 때마다 재앙이 되는 이 나라를 두고 언젠가부터 '헬(hell=지옥) 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한국사회는 가난이 대물림 되어 역병처럼 퍼져나가는 조선으로 퇴행 중이다. 헬조선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무형의 족쇄와 굴레의 촘촘한 망에 청년들을 가두는 감옥 사회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은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을 대신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얼마 전 상영한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내는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꼬." 덕수의 가슴 벅찬 헌신과 선한 호의에는 오만한 비수가 숨겨져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독기 가득한 독단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느라 왼쪽 가슴에 오른 손이 자동으로 올라가던' 시대를 추켜 세웠을 때, 그것은 아버지 시대에 대해 딸이 가질 수 있는 존중의 감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 번도 아버지의 딸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라를 일으켜 세운 아버지였고, 국가였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력한 딸과 아들들을 대신해 결단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한 번도 국가의 미래를 젊은 세대들에게 맡긴 적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넘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건국신화는 아버지 세대의 몫이다. 파독 광부로, 베트남 전사로, 사우디 수출 역군으로 세운 한국은 그들이 수출한 청춘에 대한 보상물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의 딸 아들은 아버지의 국가에서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딸 아들을 대신해 결단을 내리면 내릴수록 그들은 무능력하고 패기 없는 조국의 루저들이 된다. 



한 게임 유저가 그린‘헬조선 지옥불반도’지도 [출처: www. inven.co.kr]


헬조선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국가'에 대한 조롱이다. 국가로부터 배제되었지만 청년세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을 맹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제된 장소에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려내는 지옥도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냉소와 조롱으로 뒤범벅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에 대한 분노가 자리한다.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사랑?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아들, 딸들을 국가로 호출했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위해 기득권을 챙기던 아버지들을 정리하겠다고 나섰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채 밥만 축내고 있는 무능력한 아버지들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노동개혁의 목표는 청년들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보다 쉽게 구하고 더 많은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와 공정해고에 대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 9월 7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회의, 김무성 대표의 발언 중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에 청년의 자리는 없다. 더불어 아버지의 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그들은 국가에서 추방되어 헬조선의 난민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에는 대체 누가 있는가. 누구를 위하여 대통령은 입술을 앙다물며 다짐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국가 자신이다. OECD 회원국으로서의 국가, 수출 대국으로서의 국가, 경제 대국으로서의 국가. 화폐가 24시간 막힘없이 흐를 수 있는 국가 말이다. 


화폐가 흐르는 자리에 아버지의 장시간 노동이 있었고, 청년세대들의 '노오력'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허리띠를 졸라매도 즐거운 나라사랑은 불가능하다. 노오력은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사랑'하라는 국가의 명령이다. 헬조선 사이트 대문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 문구가 박혀있다. '각자도생'이란 각자 노력해서 살아남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 유행어가 된 '각자도생'에는 각자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라는 폭력이 포함된다. 여성혐오와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동성애자 혐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력한 꼰대'라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공정한 기준이란 기준에 대한 합리적인 척도를 마련한다는 뜻도 있지만, 기준선의 이하를 처리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그리고 이는 종종 현실에서 역전된다. 공정한 해고의 기준이란 특정한 집단을 기준선 이하의 사람들로 지목하고, 여론은 이들을 주목한다. 이들의 무능력함은 불공정한 무임승차의 파렴치함이 되어 대중들의 분노를 산다. 그렇게 되면 공정한 기준에 따라 기준선 이하의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공정한 기준 다음에 기준선의 위와 아래가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들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공정한 기준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노동개혁 영상을 비판한 포스터 [출처: 공공운수서울지하철노조 / 5678 도시철도노조]


박근혜식 평등주의, 그 잔혹함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말인 줄 알면서도 그들, 나와는 다른 그들의 '기득권'은 불공정하다는 정서를 박근혜 정부는 간파했다. 노사정합의까지 박근혜 정부가 집요하게 공격한 것은 '무능력하지만 시대 잘 만나 밥만 축내고 있는 꼰대들'에 대한 불만이었고, 이 최전선에 국가의 아들, 딸들을 불러낸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찬양하던 대통령은 이제 헬조선의 딸과 아들이 들고 있는 죽창으로, 오늘의 새로운 적으로 지목된 무능력한 노동자들을 겨누고 있다(헬조선 사이트 대문에는 '죽창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구호가 박혀있다). 대통령이 감복한 것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덕수와 덕수의 처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때 국가는 사건의 피해자였던 세월호 유족들과 메르스 감염자들을 사회의 질서를 헤치는 가해자로 역전시켰다. 보상금을 타 먹으려는 불공정한 사람들, 안전한 사회를 위협하는 '슈퍼전파자들'이 된 피해자들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각자도생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는 게임의 법칙 앞에 정작 국가는 제외된다. 


박근혜 정부의 평등주의는 잔혹하다. '공정해고'라는 말은 잔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나도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열망의 불가능함이 너도 나처럼 같이 잘려야 공정하다는 자기 파괴적 욕망으로 전화되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격차를 줄이는 방법도 있지만, 한쪽의 극을 없애는 길도 있다. 정규직은 시대에 뒤처진 공룡으로, 모두의 어깨에 짊어질 짐으로, 염치없는 기득권을 지닌 특수한 인종이 되었다. 공정해고는 그 극을 없앨 것이므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기우뚱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귀퉁이에 헬조선이 모두를 향해 평등하게 입 벌리고 있다. 

한 줄 요약 헬조선 한국

[노동시간에세이] '나인 투 나인 9 to 9'의 사회 -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2015.9

‘나인 투 나인 9 to 9’의 사회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신경아 노동시간센터 회원,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인간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변은 무엇일까? 내 상상엔 이렇게들 답할 것 같다.

 

초등학생 :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
중학생 : “일하기 싫다.”
고등학생 : “글쎄 안 하면 좋겠지만, 조금만 하고 놀고 싶다.”
대학생 : “나도 일할 수 있을까?”
취업준비생 : “일만 하게 해준다면 24시간 한다.”
직장인 : “퇴근이라도 정해진 시간에 하면 소원이 없겠다.”

 

이 질문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수 세기 전 ‘노동’에 관심을 가졌던 사상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일치된 답변을 했다. 태양의 도시』의 저자인 16세기 사상가 캄파넬라는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시간은 하루 5시간 노동이라고 썼다. 15세기 철학자·정치가이자 신학자였던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은 오전 3시간과 오후 3시간, 합해서 하루 6시간 노동이라고 보았다.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싶은가? 그리고 실제로 몇 시간 일하는가? 시간제 근무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하루 8시간 이상, 10시간에서 12시간 일하지 않을까? 물론 그 이상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최근 인터뷰한 여러 기업에서 실제 근무시간은 ‘나인 투 나인(9 to 9)',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이 가장 많았다.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바치는 셈이다.‘나인 투 나인’이 왜 나쁜가? 열심히 오래 일해서 승진하고 월급도 많아져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낡은 차도 바꾸면 좋은 삶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허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긴 시간 노동으로 잃어버리는 것은 없을까? 건강, 가족과의 저녁식사, 아이들의 웃음소리, 친구, 영화, 산책, 운동, 여행, 늦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 읽기, 광화문 집회 가기... 생각해 보니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노동의식의 역사

 

인간의 역사에서 ‘노동’이 오늘날처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불과 2~3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기독교 신화에 따르면.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낙원,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아무 일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의 노여움을  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아담과 이브는 “땀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는 먹을 수 없으리라”는 저주의 메시지를 받는다. 이처럼 서구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기독교 사상에서 노동은 신의 처벌이었다. 중세시대까지 서구에서 노동은 사회적 하층계급의 의무였다. 노동은 안 하면 안 할수록 좋은 것이었다. 오죽하면 중세의 귀족들이 글씨 못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글씨를 쓰느라 모양이 망가진 손을 가진 이를 경멸했을까. 생계를 위해 글씨를 써야했던 사람들은 낮은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의무에서 자유로운 자. 그들이야말로 선택받은 계급이었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양반 남성들은 농사나 수공업에서 면제되었고 글을 읽을 자유와 책임이 주어졌다. 노동은 노비와 농민, 여성의 몫이었다. 한 예로,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저자 서포 김만중은 양반 가문이었지만 벼슬을 그만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의 바느질로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과거에 급제한 양반들은 관직을 얻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양반계급 남성들은 과거 준비를 하며 일생을 보냈고 먹고 살기 위한 농사와 길쌈, 수공업은 농민과 여성과 수공업자 그리고 노비들이 수행했다.

 

노동이 모든 사람들의 의무이자 권리가 된 것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서구의 프로테스탄트혁명을 거치며 직업은 신이 내려준 소명(calling)이 되었고 부(富)는 근면의 표식으로 신의 선택을 예고하는 기호(a sign)가 되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구호는 고아나 가난뱅이, 알콜 중독자들을 가둬 강제노동을 시키는 구빈원(救貧院)에서부터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노동자가 될 권리를 부여받으며 노동자가 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우리 안의 일중독 DNA, 다른 욕구를 억압한다

 

한국인들은 오래 일한다. 세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휴가가 적어 연간 노동일수가 많고 1일 노동시간도 길다. 또 노동을 그만두는 시점, 최종 은퇴연령도 높다. 지난 세기말 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퇴직 연령을 높여 연금 수급시점을 늦추려는 법안이 통과 되면서 노조를 중심으로 강한 저항이 있었던 데 비해, 한국에서는 노동자들 스스로 퇴직을 늦추고 싶어 한다. 70살까지는 일하고 싶다는 것이 내가 만나본 중고령 노동자들의 희망이었다.

 

한국인들이 장시간 노동지향의 DNA를 갖게 된 것은 20세기 산업화의 산물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는 길고 긴 레이스에서 쉼 없이 뛰고 또 뛰었다. 그 결과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한 빈곤국에서 아시아의 용(龍)이 되었고 세계적인 대기업도 몇 개 등장했다. 인터뷰하며 만난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이 길고 늘 피곤하며, 가족과 함께하거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임금이나 승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찬성하는 사람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실 노동시간을 줄이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도 걱정스럽다.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 여교사는 자신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해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 궁금했다. ‘4시에 퇴근해서 뭘 하지?’ 반대로 그녀는 한국에서는 7~8시에 퇴근한다는 나의 말(더 늦게 퇴근하는 곳도 많지만 말하기가 창피했다)을 듣고 물었다. “그 시간까지 회사에서 뭘 하나?” 일과 가족을 양립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부모휴가 등 가족돌봄 시간을 넉넉히 준다는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에서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수많은 공원, 산책 나온 아이들과 부모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놀잇감이었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수많은 결사체들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은퇴한 노인들도 서너 개의 사회적·정치적 모임에 소속해 있으며 토론과 정치참여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을 비롯한 EU 국가들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적 참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몇 해 전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EU와 같은 설문조사를 했는데,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가족생활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많았지만, ‘사회 참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매우 적었다. 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휴식과 가족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활동에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 것이다. 너무 긴 노동시간은 인간의 내면에서 다양한 욕구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짧아진 노동시간이 가져다 준 삶의 변화

 

노동시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나는 남성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남성들의 구술 생애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남성들이 어떻게 일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의 남성성과 가족, 젠더관계에 가져온 변화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때 인터뷰한 내용을 잠시 소개한다.

 

Q. (과거에) 선생님은 일요일 날 쉬실 때에 보통 뭐하셨습니까?

박영수(가명) : 쉴 때 그때는 주로 자는 경우가 많았었어요... 그 전에는 주로 잠을 많이 잤어요. 피곤하니까... 주야간 하고 오면. 그것도 야근, 며칠씩 일주일 내내 야근할 때가 있어요. 그리되면 그 다음 일요일 날은 꼼짝을 못해요. 그냥 하루 죙-일 잤어요.

 

Q. 직장을 바꾸신 후, 좋은 점이랄까요, 그런 게 있으십니까?

박영수(가명) :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내가 책을 볼수도 있고,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시간이 많아서 좋아요. 금요일 날 5일 근무인데도, 우리는 한 십 년전부터 5일 근무를 했어요. 저는 금요일 한, 세시 되면 와요, 집에. 한가하니까. 그 대신 그 전에 일은 다해놓고 오죠. 시간이 많은 게 제일 좋아요. 근데 저 사람(부인) 같은 경우 토요일 오전근무까지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하고 시간이 안 맞아요. 어딜 갈라면 금요일 날 오후에 가면 딱 좋은데, 그럼 한 이삼일 쉬잖아요. 저 사람은 토요일 날 오전까지 근무를 하니까 오후 돼야 시간이 나거든요. 저 는 시간이 많은 게 제일 좋아요. 책도 볼 수 있고 밭에 정원에 쑥도 캘 수 있고, 나물도 있으니까. 가을 같은 때 밤도 딸 수 있고. 그게 한 가지가 제일 좋아요.

 

일요일만 되면 피곤에 지친 몸을 누이고 밀린 잠을자는 일상과, 주 5일제 근무로 책을 읽고 운동하고 들로 나가는 삶에 대한 진술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매우 다른 정서를 담고 있다. 때로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해야 하는 지치고 피곤한 모습과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을 쉬는 덕분에 책도 읽고 자연도 즐기는 서정적인 인간의 모습,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인터뷰에 응한 박영수 씨는 "시간이 많은 게 제일 좋다"고 되풀이했다. 일에서 벗어난 ‘시간’이 자기 삶에서 어떤 다른 의미를 갖는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중독’은 일이 곧 자아의 중심이며 일 이외의 다른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 일이 없어지면 자신의 삶도 끝난다고 느끼는 의식상의 특징을 말한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는 산업화 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일중독을 보편적 정서로 만들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일중독은 좋은 삶이라는 20세기적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00여 년전 토마스 모어나 캄파넬라는 어떻게 5~6 시간 노동을 주장했을까? 생산과 배분이 적절히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부의 지나친 불균형을 막을 수 있고 덕분에 사람들은 너무 오래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은 사회적 불평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속의 일중독 DNA가 지워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시간 단축요구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가야 한다.

[노동시간에세이] 영화 <인타임>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2015.8

영화 <인타임>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김영선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우리는 자주 "시간이 없다"고 되뇌곤 한다.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박탈, 시간 소외, 시간 강박 등.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든 핵심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간이 부족할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텐데, 이번엔 영화에서 설명을 찾아보자. 영화를 보면 가끔은 정말 그런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속 가상세계가 우리의 현실을 진짜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의 초 현실이 꼭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를 만들었던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 <주피터 어센딩>은 상당히 섬뜩한 영화다.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에 배두나가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며 한국에서는 그녀의 출연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사도 거의 없고 존재감이 미미한 배역에 그쳤다. 전체적으로 평점도 높지 않았고 관객도 많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영화에서 우주의 모든 행성은 여러 왕족이 지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브라삭스 왕족의 권력이 가장 막강하다. 지구 또한 아브라삭스 왕족이 지배하는 농장 가운데 하나다. 지구의 인간들은 '농장의 수확물'로 그려진다. 아브라삭스 왕족은 우주 행성들을 지배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수확물을 에너지 삼아 영원을 구가한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인데 시간 에너지는 수확물인 인간 생체에서 추출한 것이다. 아브라삭스 왕족은 인간 100명의 목숨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이용한다. 유리병에 담긴 시간 에너지로 몇 번이고 세포를 교체하면서 10만 년을 살아간다. 이는 <매트릭스>에서 인체를 기계에 필요한 '배터리'에 비유했던 장면과 닮았다. 


영화 <주피터 어센딩>은 말미까지도 흐름이 다소 산만하고 늘어지기는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외계 왕족의 인간 수탈이라는 이야기를 자본의 노동 착취라는 관점에서 읽는다면 메시지는 더욱 명쾌해진다. 왕족은 자본을, 아브라삭스 왕족은 독점자본을, 행성은 공장을, 왕족들의 행성 쟁탈전은 자본들의 경쟁을, 지구의 인간은 노동자를, 수확된 인체는 잉여와 축적을, 유리병에 담긴 인체 에너지는 착취의 결과물을 상징한다. 우리의 시간 빈곤의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섬뜩할 정도다.


모든 비용을 시간으로 차감하는 세계


▲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인타임>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은 꽤 많다. 대부분은 시간 여행을 소재로 다룬다. 기억에 선명한 <백 투 더 퓨쳐>부터 최근작 <어바웃 타임>이나 <타임 패러독스>, <엣지 오브 투모로우>까지. 그런 걸 보면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바꾸고 싶은 욕망은 보편적인가 보다.이외에 산업화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재치있게 그려낸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도 있다. 나이를 역행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를 연대기적인 구성으로 그려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있다. 이 영화 또한 많은 사람이 회자하는 시간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상상력 넘치는 여러 영화 가운데 <인타임>은 시간 그 자체라 생명인 가상 세계를 그려낸 영화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영화이고, 여러 면에서 다시 볼만하다.


<인타임>의 핵심 역시 '시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에 대한 착취, 불평등한 시간의 분배가 핵심이다. 시나리오상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왼쪽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을 제공 받는다. 팔뚝에는 년, 주, 일, 시, 분, 초 단위로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낸다. 이를테면, 커피 1잔은 4분, 버스 요금은 2시간, 권총 1정은 3년, 스포츠카 1대는 59년의 시간으로 구매할 수 있다. 시간(생명)과 재화의 교환은 전자화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비용은 자신의 시간으로 차감된다. 마이너스는 없다.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 13자리가 0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즉시 사망한다. 시간을 다 쓴다는 것은 생명이 다함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렇게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되는 가상의 미래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한 장면을 보자. 주인공의 엄마 역 올리비아 와일 드는 은행에서 버스요금(1시간)과 약간의 여유 시간을 남겨 두고 밀린 이틀 치의 대출금을 갚는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려는데 버스 기사는 버스 요금이 올라서 2시간을 내야 탈 수 있다고 한다. 1시간 30분밖에 없었던 그녀는 '30분이 부족해'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2시간 거리를 필사적으로 뛰어야 했다. 그래야 일당을 받은 아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만, 아들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시간을 다 써버린 그녀는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시간이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시간 낭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매일매일 노동을 해도 시간이 빠듯하게 주어지니 항상 시간 부족인 사람들은 부산스럽고 걸음걸이는 빠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생명인 세계'를 보여주는 <인타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 낭비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치 있게 그린다.


데이톤 사람의 모습은 우리네 자화상 


▲ 타임푸어란


<인타임>은 시간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데이톤'이라 불리는 구역의 사람들은 고작해야 하루 이틀 치의 시간(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종의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표상한다. 남자 주인공인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데이톤 출신이다. 


이에 반해 '뉴 그리니치'라 불리는 구역의 사람들은 몇백 년, 몇천 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종의 '시간을 독점한 사람들'인 셈이다. 여자 주인공 실비아 와이스(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뉴 그리니치 출신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데이톤의 일상적 풍경과 뉴그리니치의 그것은 많이 다르다.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것을 시간의 소비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이런 처지에서 데이톤 사람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매일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벌어도 벌어도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 데이톤 사람들에게 매일의 고된 노동은 '생명 연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들에게 쉼과 여유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데이톤 출신인 윌 살라스가 뉴 그리니치 지역으로 넘어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윌 살라스가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식사 하는 내내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윌이 잘 생겼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걷는 속도나 먹는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빨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넘쳐나는 뉴 그리니치 사람들에게 바쁨과 서두름이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타임푸어의 세계에서 '시간 권리'란

쉼과 여유 부리기가 불가능한 데이톤 사람들! 그것은 영화 속 가상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에 휩싸인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지하철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리듯 걷는 사람들. 뛰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가장 빠른 환승 칸을 찾는 사람들. "지난 석 달 중 한번 쉰 게 고작"이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 느릿느릿 가는 자동차를 보면 숨 막혀 하는 사람들. 신호대기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이라도 하면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들. 이런 모습은 수도 없이 많고 흔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다. 시간 박탈,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압박, 시간 강박 등 어떠한 것으로 표현해도 핵심은 여유 시간의 부족에 있다. 시간이 빈곤한 세계에서 주체적인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까? 이를 위한 시간 권리란 가능한 것일까? 


정말 가능한 문제설정일까? <주피터 어센딩>이나 <인타임>은 이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설정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보여주듯 시간 빈곤의 세계에서 자유시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든 것들은 허구에 불과하다. 자유시간이 가능한 세계, 그것은 비현실이다. 아브라삭스 가문이 지배하는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지 못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두 영화의 결말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인타임>의 윌은 '시간 은행'을 폭파해 그곳에 꼭꼭 쌓아 둔 수억 년의 시간-생명을 데이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들의 노동 시간 차이와는 별개로 말이다. <주피터 어센딩>의 주인공은 시간 착취의 근원인 아브라삭스 가문을 처단한다. 물론 두 영화의 초현실적인 결말은 작금의 현실과는 판이하다.

[노동시간에세이]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2015.7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김세은 노동시간센터(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3년 전인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마무리 단계 작업이 내게 몰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게 떨어졌고 혼자서 마무리를 감당했다. 기한이 촉박하게 정해졌던 일이라,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며칠간 지속했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가서는 정말 최소한의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다. 생애 처음으로(!) 식욕 저하를 겪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밤늦게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 마음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날의 순간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한 가지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그 시기의 어느 날 새벽 퇴근길,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변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30m 정도의 거리를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물론 실제로 숨이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과로사 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어떤 상태일지 짐작할 수 있었고,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별 탈 없이 그 일을 곧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국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원래의 적절한 출퇴근 패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 하루 이틀씩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휴식 없이 며칠을 연이어 밤늦도록 일한 적은 다시 없었고, 숨이 턱 막히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 뉴욕 마천루 꼭대기에서 낮잠자는 노동자들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가' 없는 며칠

 

이전에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많은 이가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내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대해 늘 관심을 놓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써 왔다. 장시간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왔다.

 

그 숨 막히던,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 후 나는 장시간 노동이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얼마나 피폐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연이나 수업, 문헌 등을 통해 알아왔던 장시간 노동의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일부나마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 체험은 괴로움 투성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그 자체였다. '느긋하게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책이나 주간지를 읽고 싶다'와 같은 소박하고 사소한 바람조차 이루기 힘들었다. 원래의 적절한 노동 시간을 유지할 때는 늘상 하던 일인데도 말이다.

 

또한, 다른 이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그런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동료 여럿이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나 혼자였던지라,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외로움과 고립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행히 사려 깊은 나의 동료들은 내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다(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낸 동료에게서도 도움을 얻기 어려웠으니, 당연히 친구나 가족에게 하소연조차 하기 어려웠다.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는 동안 나 자신이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자료 출처 : 2014 국민여가활동조사보고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라는 인간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감정들은 완전히 배제된 채, 그저 최소한의 잠을 자고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그 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해진 목표대로 일하는 생활. 단 며칠뿐이었지만 그 동안 내 삶은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거나 경제적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무리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이라고 해도, 그 노동으로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바람직한 상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역시 분명히 사회적으로 좋은 목적을 가진 일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달리며 일상을 빼앗긴 나는 어느새 그 일이 지닌 훌륭한 가치 나 목적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내달려야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괴롭도록 일에 내몰렸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가 지속돼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어느 정도 의욕을 회복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약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겐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남긴 셈이었다.

 

일상이 무너진 노동, 그 삶의 주인은?

 

그 후로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또다시 이전과 같은 괴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주어진 시간에 대해 좀 더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 그나마 이러한 고려와 선택이 가능한 것은 내게 일에 대한 선택권이 있고 시간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허락된 덕분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팍팍한 사회에서는 비교적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저 며칠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을 오래 지속해야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면서 어떻게든 견뎌냈을 수도 있다. 견뎌냈더라도 그 후 더 오랫동안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참다 못해 사표를 쓰고는 일터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거의 내내 장시간 일하도록 내몰리는 많은 이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특정 업무를 약속한 기한에 맞춰 마무리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낮은 임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훨씬 절박한 이유로 긴 시간동안 쉼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면, 과연 그 삶이 어떨지...

 

내가 단지 며칠간 겪었던 여러 괴로움을 오래도록 감내해야 한다면, 그가 과연 그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동안 일에 얽매여 일상이 무너진 삶, 그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노동시간에세이] 표준적으로 혹은 비표준적으로 일한다는 것 /2015.6

 표준적으로 혹은 비표준적으로 일한다는 것 


송한수

노동시간센터(준), 광주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 조선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노동자 대상으로 건강검진·상담 업무를 하다보니, 노동시간의 특성에 따라 건강수준이 패턴화되어 있다는 점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어 하루 12시간 정도 연장근무를 하는 제조업 노동자들에게서 콜레스테롤 수치들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나빠져 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이유에 대해 면담하다보면, 과도한 음주, 피로의 누적, 영양의 불균형이 있었고, 그 이면에는 장시간노동이 있었다.


시내버스 운전자들의 노동시간을 보자. 그들은 오전근무조와 오후근무조로 나뉘어 1주일 단위로 근무를 순환한다. 오전근무조의 경우 새벽 5시에 업무를 시작하려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출근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다 보니 아침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 아침근무를 마치고 오전 10시경에 30분 간의 휴식시간 동안 버스 기종점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먹는다. 그리고 낮 근무를 마친 후 오후 3~4시쯤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집에 귀가하면 가족들의 저녁식사시간과 엇갈린다. 그래서 늦은 밤 시간에 식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들에게서 발견하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를 대상으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을 하였는데, 100kg이 넘는 고도비만자가 여럿 생겼다. 이들은 병원근무를 시작하면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빈번한 야간당직과 과중한 노동이 일상화된 전공의들에게 차분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밤늦게 과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먹을 수 있는 식사는 고열량의 배달음식뿐이었다.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응급구조사, 장례지도사와 같은 야간작업 종사자들은 언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긴장도가 매우 높은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업무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를 정도의 혹독한 노동을 감당하기도 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음주와 흡연과 같은 나쁜 생활습관을 갖고 있고,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밤에 일해도 야간 특수건강진단 못받는, 이상한 기준


2014년부터 야간작업 종사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야간작업 종사자들도 특수건강진단을 받게 된다. 야간작업으로 인한 생체리듬의 교란이 건강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취해진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연속되는 작업을 월 평균 4회 이상 수행하는 경우를 특수건강진단 대상 야간작업으로 보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야간작업을 32시간 이상 수행하면 특수건강진단 대상에 해당된다.


그러나 교대근무 중 야간작업을 밤 10시가 아닌 밤11시나 12시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새벽에 몇 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시간대의 작업을 월 평균 60시간 이상 수행했을 때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 대상이 된다. 야간근무의 시작 시간이 오후 10시가 아니라 오후 11시라면 적용기준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3교대 간호사들의 한 달에 4~8회, 보통 40~60시간 정도 야간근로를 수행한다. 월평균 야간작업 시간이 60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르게 되면 상당수의 3교대 간호사들이 야간근로 특수건강검진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아파트경비원은 일반적으로 격일제로 근무하면서 하루15~17시간을 근무한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에 약 4~5시간 정도 수면시간이 주어진다. 한 달에 15일을 근무한다고 하면 야간작업시간은 약 45시간 정도여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간호사나 아파트 경비원은 특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할 야간작업 종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폐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야간작업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수많은 근거들 때문에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더 엄밀하게 말하면 비표준적 노동시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다. 낮근무, 저녁근무, 야간근무를 교대로 순환하는 경우는 단순히 야간작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어진 노동시간에 따라 수면시간, 식사시간, 여가시간, 가사노동시간이 달라지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의 규칙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식사 전에 퇴근하는 것을 ‘표준적인 노동시간’이라고 하자.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표준적인 노동시간’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들이 있다. 여기에는 규칙적으로 노동시간이 변화되는 순환교대근무도 있으나, 노동시간이 과도하게 연장된 경우도 있고, 통상적인 노동시간대에서 벗어나 일하는 경우도 있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노동자에게 ‘적응’이라는 과제를 부여한다.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잘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교대근무 부적응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 증후군은 교대근무자가 수면을 적절하게 취하지 못하여 주간졸림증이나 업무효율저하를 경험하거나, 소화불량, 속쓰림, 위산역류와 같은 위장증상을 빈번하게 경험하거나, 혈압이나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는 등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일컫는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비표준적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김현주 등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야간작업 종사자의 규모는 약 127만 명∼197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10.2∼14.5%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주당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자의 수는 약 170만∼410만 명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15.0∼31.9%에 해당한다. 이들 중 야간 및 장시간 근로에 동시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은 약 49만 명∼약 76만 명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3∼5.8%에 해당한다.


비표준적 노동시간 종사자들의 상당수는 산업보건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가령 50∼60대 고령노동자들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원과 요양보호사다. 이들의 대부분은 산업보건 관리 역량이 부족한 5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해 있다. 고령 노동자들은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수면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청장년층보다 더 높다. 게다가 격일제 장시간 노동과 야간작업에 종사하게 됨으로써 건강에 더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주목하자



비표준적 노동시간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선택의 자유일 수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에게는 일상생활의 안정성을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야간작업은 이제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주목받으며, 산업보건관리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야간작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표준적 노동시간’ 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노동시간에 일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비표준적 노동시간에 종사하게 할 경우에는 적응을 돕는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 두 번째는 제시간에 좋은 질의 식사를 보장하는 것, 세 번째는 업무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편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에세이] 심야노동과 서비스 정신 / 2015.4

[시간의 재발견] 노동시간 에세이

심야노동과 서비스 정신



노동시간센터(준) 이혜은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 중에 직접 간호사나 의사를 고용하지 않은 사업장들에게 위탁받아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수행하는 일이 있다. 주기적으로 계약을 맺은 사업장들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의 다양한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게 되는데 시간도 절약하고 편하게 다니고자 주로 택시를 이용하여 이동한다. 



한 달쯤 전 역시 낮에 택시를 타고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택시 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갑자기 기사님께서 음량을 높이셨다. 가만히 들어보니 서울시에서 택시 운행과 관련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었나 보다. 그 중 특히 개인택시에게 밤 12시부터 2시까지의 시간에 대해 의무적으로 운행하도록 한다는 내용에 대한 서울시 관계자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집중해서 듣고 있던 기사님은 이내 “이런 탁상머리들!” 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침 차에 타고 있던 내게 하소연하신 내용은, 몸도 힘들고 취객들 상대하는 것도 스트레스 받아서 수입을 좀 포기하더라도 주간에 주로 운행을 하고 있는데 강제로 밤에 운행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다, 밤에 택시 잡기 힘들다고들 하지만 특정지역에, 주로 주말에 쏠린 문제인데 이렇게 해서 해결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시간 문제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함에도 이런 뉴스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끼며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2월에 발표된 <서울형 택시 발전모델>에 포함된 사업이었다. 아마도 서울시가 택시와 관련된 민원 때문에 꽤나 골치가 아팠던 모양이다. 민원의 두 축은 ‘승차거부’와 ‘불친절’이었는데 이번 개인택시 심야 의무운행은 승차거부를 해결하겠다고 제시한 방법이다. 



서울시 발표자료에 의하면 개인택시가 서울 택시의 67%로 법인택시의 두 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심야시간대 영업이 매우 저조하다고 한다. 서울시가 작년 12월 한 달간 24시~02시의 개인택시 결제실적을 분석해 본 결과 심야시간대에 한 번도 운행하지 않은 개인택시가 15,261대(30.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달에 20일 운행하고 있는 개인택시들에게 의무적으로 24시~2시 운행을 하도록 하고 6일 미만으로 운행 시에는 12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10일 미만으로 운행할 때는 카드결제 수수료와 관련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불이익이 없으려면 일하는 날의 절반은 새벽 2시까지 운행을 해야 하다니 평소 야간 운행을 안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쉽게 예상된다. 


이후 다른 기사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택시를 탈 때 시간이 있으면 노동시간과 서울시 정책에 대해 여쭤보았다. 한번은 꽤 젊은 기사님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전 어차피 회사택시라 상관없어요. 2교대로 일하니까 절반은 야간에 일하고 있으니까요. 만약에 돈 벌고 나이 들어서 개인택시 하게 되었는데 강제로 밤에 운전시키면 당연히 싫겠죠”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투에서 살짝 체념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법인택시 노동자의 심야노동과 장시간 노동은 훨씬 심각한 문제인 게 틀림없다. 또 다른 기사님께 자세히 들어보니 보통 2인 1차, 즉 2교대로 운행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교대를 하지 않는 ‘1인 1차’의 경우 노동시간은 더 길어서 보통 15시간 많게는 17시간까지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이 있지만, 택시의 경우 ‘공익성 사업의 근로시간 특례’라는 제도에 따라 연장근로에 대한 제한 규정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이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된다. 만났던 분 중 한 분은 장시간 노동에 대해 “사납금이란 게 있어서 12시간씩 하고 야간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요” 라고 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12시간씩 일하는데 근로계약에는 왜 6시간 반 일하는 거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시에서 노사합의로 결정된 임금지급 시간이 6시간 40분이기 때문이다. 2012년도 서울시 조사에 의하면 법인택시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월 187만 원에 불과했다.[각주:1]

 


심야의 택시수급 문제에 대해 여쭤봤던 기사님들께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던 얘기는 심야의 택시 수요는 종로와 강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고 90% 이상의 손님들이 유흥을 즐기고 귀가하는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는 곳은 몰려있는데 내리는 곳은 서울 전 지역으로 흩어지니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강남이나 종로로 돌아가기에 시간이 걸린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역시 강제 택시 운행보다는 심야시간대에만 합승을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수요 분석을 더 자세히 해서 심야버스를 충원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운수업에서의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은 노동자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서울시 조사결과, 택시 관련 교통사고 건수는 2011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23.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특히 법인택시 교통사고가 개인택시 교통사고의 5.7배 수준으로, 전체 택시 교통사고의 80.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대당 교통사고 건수를 비교하자면 법인택시는 2,092건이었던 것에 비해 개인택시는 366건에 그쳤다. 사납금을 채우기 위한 무리한 운전과 장시간 노동이 개인택시와 확실히 비교되는 부분으로 이러한 법인택시의 높은 교통사고율 원인으로 추정된다. 2006년에 출판되었던 우리나라 법인택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한 달 중 야간운행 비율과 수면시간은 교통사고 건수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성이 있었다.[각주:2] 



공익성 사업의 근로시간 특례’라는 말처럼 공공성을 내세워서 심한 노동강도를 강요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법인택시에서도 장시간노동과 심야노동을 줄여야 할 텐데 이것으로 모자라니 개인택시에도 심야 운행을 의무화하자는 서울시의 발상은 참으로 폭력적이다. 더욱이 개인택시 운전자들은 현재 60대 이상이 절반을 넘는다. 고령자는 야간노동에 더욱 민감한 집단으로 건강에 대한 영향이 더욱 클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찾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모 인터넷 신문에서 뽑은 기사 제목으로 “서울 심야택시, 서비스정신이란 이런 것” 이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밤의 도시이다”로 시작되는 기사는 “서울 심야택시, 말 안 들으면 면허 취소를 해서라도 관철해야 한다” 와 같은 이를 지지하는 일부 과격한 누리꾼들의 반응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밤의 도시인 것이 별로 그리 자랑스럽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밤에 일하지 않고 잘 수 있는 서울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심야의 교통 서비스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공되는 게 아니라 착취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노동을 통해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1. https://traffic.seoul.go.kr/archives/11838 [본문으로]
  2. 윤간우 등. 일부 법인 택시노동자의 교통사고와 불안전운전행동에 미치는 인적요인. 대한산업의학회지 제 18 권 제 4 호 2006년 ; 307-317. [본문으로]

[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 2015.5

[시간의 재발견-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출퇴근 시간도 노동시간의 일부로 인정해야


노동시간센터(준) 김재광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가을 지속되는 전세난 와중에 다행히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듯 한 서울인 이곳은 주변에 텃밭이라고 하기는 상당히 넓은 경작지가 있고, 새로 들어선 교회 이름도 전원교회다. 말인 즉 공기는 좋으나, 참 외진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출근 시간이 40여 분 더 늘어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 40 여분이 되었다. 이 긴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려니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듣고, 이러 저러하게 의미 있게 써보려 앙탈을 부려보지만, 피곤하고 무료함을 이겨 낼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필요가 없는 직업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지 일반 직장이라면 아마도 우울과 무기력에서 못 벗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무언가는 다행히(?)나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질도 좌우하는 통근시간

OECD는 Well-being 측정 지표로 진작에 ‘통근시간’을 놓고 있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OECD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길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의 평균 통근시간은 38분(편도)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58분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리저스 그룹 조사(2010년)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네 명 중 한 명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90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에 안에 있으며, 평균 통근 시간(편도)은 62분이며,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직장인도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0년 통계청 조사를 근거로 하여 추산할 경우 2015년 현재 출근 소요시간이 1시간 이상인 직장인의 수가 5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역시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택비용으로 인해 직장이 있는 도심에서 외곽으로의 이주하는 경향이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을 고려하면 그 수는 좀처럼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얼마 전 방영된 [MBC 다큐스페셜]은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만성피로와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다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조사를 하였는데 출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 집단에서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 의학적으로도 1시간 30분 이상 출근 시간이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밖에도 장시간 통근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혈압 상승, 근·골격계 질환, 적대감 증가 및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국의 ‘The Argus’지는 통근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영국 브라이튼 앤 호브 지역 주민 중 런던으로 통근하는 근로자들의 기대 수명이 평균 1년 단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생체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관계까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출근시간이 1시간 증가하면 수면시간은 13분이 줄어들고, 이혼율은 약 53%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정치참여에 연관이 상당하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접하면 장시간의 출퇴근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앞서 밝힌 리저스의 조사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의 설문(복수응답)에 ‘운동과 몸매 관리에 시간을 보내겠다’(82.0%), ‘가족친구 연인과 시간을 갖겠다’(76.0%), ‘학술적 능력제고에 투자하겠다’(65.0%)로 답한 점을 비추면 장시간 출퇴근 시간이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통근시간 스트레스, 결국 노동시간의 문제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흥미로운 보고를 한 바가 있다. 보고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서울(강남 기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통근시간에 따른 행복상실을 분석한 결과 통근시간(편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상실, 그 가치가 월 94만원이라는 것이다. 수치로 나타난 행복상실의 정도가 실로 충격적이다. 행복의 가치를 단순 산술화 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주요하게 결정하고 있다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월 94만원이면 최저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이 보고의 조사에 의하면 대상자의 62.7%가 통근시간의 불만족 하며, 응답자의 69.8%가 통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으며, 46.6%는 업무효율에 지장을 주며, 29.6%는 이직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니 수도권 출퇴근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이렇듯 익숙하면서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과 그에 따른 건강상, 사회관계상의 문제는 교통체계의 혁신, 주택 및 거주 방식의 혁신 등도 있겠으나, 노동시간의 문제로 따지자면 우선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집중된 출퇴근 시간을 피한다면 상대적으로 덜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들 출퇴근 시간 자체가 혁신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출근 시간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의 불가피한 시간으로 이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필요하다. 즉 통근시간의 전부 또는 일정 시간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그만큼 실 노동시간을 면제하는 것이다. 최근 ‘벼룩시장 구인구직’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의 66% 정도가 30분 이내의(편도) 출퇴근 시간을 원한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30분 이상의 통근 시간에 대해서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면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의 부담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에 여러 가지 반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부담을 사업주가 분담하는 것이 옳지 않다’ 라든가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장거리 출퇴근자의 고용이 불안해 질 것’이라는 등등의 주장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자는 나의 발상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장시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이로 인하여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사회의 존립 이유가 누구를 일부러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며 노동생산성에서도, 행복의 척도에서도, 사회관계 및 정치의 참여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장시간 통근시간의 문제를 모른척하는 것이 정당한지 묻고 싶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 그것에 부수하는 시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출퇴근, 휴식, 재충전) 모두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노동시간의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