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2018.10

일, 방치나 탈주 혹은 주체되기 

-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김재광 노동시간센터 회원


한낮 주인공 다카시는 약간 실성한 듯 기뻐하며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그에 비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별다른 표정이 없다.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마치 운동복을 입은 듯 사뿐사뿐 발걸음이 가볍고, 자유롭다. 그는 방금 사표를 쓰고 회사에서 탈출했다. 반인권적 괴롭힘과 출근과 퇴근 그리고 평일, 휴일이 구분이 없었던 회사를 때려 치운 것이다.


다카시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카시와 같은 자유로움과 쾌감을 느낀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제목 자체로 탈주의 욕망을 '쿨(cool)'하게 대변한다.

이미 관용어가 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당장 가능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된 듯하다. 일에 종속된 피폐한 삶이 워낙 비일비재한지라, 지극히 당연히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고, 휴가나 휴일을 제대로 누려야 된다는 사회적 요구와 방향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자면 밤낮없이 일하고, 자살까지 감행한 <잠깐만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다카시의 고뇌에 찬 결단도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찜찜하다. 고뇌에 찬 결단이 분명 결단이 맞는데 말이다.

'워라밸'은 일과 삶이 서로 마주 본다. 일은 삶의 일부도 아니고 분명한 대칭이다. '워라밸'의 목표는 일에 포식된 삶을 일로부터 분리하여 삶의 독자적인 것을 구축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설정에 이르게 된 배경을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나, 노파심인지 몰라도 이러한 설정은 일이 삶에서 분리되어 노동자에게 주체적 영역이 되고, 일을 제외한 그 외의 삶만이 노동자의 주체적 영역으로 분리되는 기이한 이데올로기가 성립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분리 사고는 일은 사용자에 처분에 맡겨진 비주체적 영역으로, 삶의 방치영역으로 고립될 수 있다. 어떠한 자에게 일은 대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고, 어떤 자에게는 작은 부분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크건 작건 간에 일은 삶의 일부이고, 모두 주체적 영역이 되어야 하며, 일관된 자기 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일과 삶을 분리하려는 것은 현실을 인정한 한편의 개량적 모색이기도 하고, 아예 현실을 은폐하고 현실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노동은 소외되는 것이므로, 노동력에 대한가격에 대한 흥정이나, 그 외의 부수적 처우에 대해 논할 수 있지만, 노동소외 자체를 극복할 수 없으므로, 일(노동)을 삶의 영역에서 분리하여 가능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는 아예 노동의 소외를 언급할 근거도 없이 판매된 노동력에 대한 독점적 처분권을 자본(사용자)이 행사하고, 나머지 시간만을 주체적으로 처분 가능한 삶으로 규정하여 판매된 노동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개입을 원천적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되었건 후자가 되었건 결과적으로 일은 주체적 삶에서 분리되어 방치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카시는 맨 처음 자기 일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가까이 일을 했음에도 일은 자기 삶의 일부 조차 될 수가 없었다. 일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것이었다. 다카시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은 삶 속에서 방치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다카시는 괴로워는 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엄두도, 시도도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사표를 쓰고, 일을 삶 속에서 드디어 주체적으로 단절시켰다. 다카시를 응원 했던 것은 사표를 쓴 것이 아니라, 주체적 삶속에서 배치되는 일을 다시 용기 있게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시의 선택을 모두가 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치가 당연시되고, 탈주가 마냥 칭송된다면 도대체 정작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일은 짧은 시간만 하는 것이 답이고, 휴일과 휴가를 가능한 많이 향유하면 되는 것인가? 일과 삶은 분리된 것이고, 분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일과 직장은 그저 호구지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호구지책 이상의 일은 특정하게 한정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직장에서의 노동을 포함한 삶은 사용자의 것이고, 직장을 벗어나서야 온전한 내 삶이 성립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 삶은 실제 온전히 자신의 삶일까? 노동시간이 짧건 길건, 여유롭건 고되건 간에 그 공간과 시간에서 내가 내 노동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모두 다카시와 같이 먼 이국땅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일과 삶을 가질 수 없기에 묻고 또 묻게 된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2018.09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

나래 노동시간센터 회원, 상임활동가

[영화 패터슨 스틸컷]


사무실 창밖을 넌지시 바라본다. 익숙한 풍경이 곧 선명하게 들어온다. 4차선 도로 위를 무심히 달리는 차 중 버스가 보인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 출근을 위해 파란색의 기다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빨리 내리기 위해 뒷문에 가까이 앉은 내 자리에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버스운전 노동자다. 빨노초 신호에 맞춰 적절한 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속도를 내는 그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2017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패터슨>이 불현듯 떠올랐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이야기다. 스크린 속 패터슨의 삶은 단조롭고, 평온하다. 매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기상한다. 침대에서 일으킨 몸을 끌고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직장까지 걸어가 PATERSON(패터슨)이라 쓰여 있는, 그가 담당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기가 사는 도시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그가 입고 있는 푸른색의 유니폼이다. 버스 운전기사인 그가 하는 행위 중 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시(時) 쓰기’이다.

꽤 단조롭고 단순 반복되어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꿈틀대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그의 비밀수첩에 적는 시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영감을 준다. 출근해 동료에게 듣는 비슷한 푸념, 운전석 뒤로 오가는 버스 승객들의 다양한 이야기,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항상 들리는 단골 바(bar)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패터슨이 가장 사랑하는 동반자 아내 로라의 이야기 등 무궁무진하다.

이렇듯 패터슨의 반복되는 매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패터슨을 오로지 패터슨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바로 매일 써 내려가는 시(時)이자, 그 시를 쓰는 바로 그 ‘시간’이다. 패터슨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버스 운전 노동자인 것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순간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도 패터슨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마음이 묵직해지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버스 운전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5년 시행된 「버스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에 따르면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 경기 광역버스는 70.1%를 나타냈다. 장시간 노동을 가중시키는 격일제, 복격일제 등 교대제 근무제도 문제다. 격일제란 하루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 복격일제는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을 말한다. 격일제의 경우 하루 평균 17~19시간 근무한다.

이들이 호소하는 노동, 건강문제는 심각하다. 기본적 욕구 해결을 위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한국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국물을 잘 안 먹어요. 소변 때문에. 2, 3시간 가는데 소변 마려우면 고속도로에서 어떡할거야. 기사들이 그런 거 다 감안해서 물도 잘 안 마시려 해. 딱 맞춰서 가서 소변 볼 거 생각하고. 커피도 이뇨작용 땜에 안 마시는 사람들 많아요. 그만큼 힘들고, 우리가 다 모든 걸 신경 써서 해야 되고.” (인터뷰 H, 2018년 경기도 버스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연구)

작년 노동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지준법 59조 폐지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뜨거웠다. 노동자들은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장시간 노동 근절을 요구했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시민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2월 28일 특례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줄었다. 시내버스로 대표되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버스업체와 정부는 대규모 인력채 용과 근무체계 개편이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중노동, 과로사 위협이 1년 연장됐다. 지금도 하루 10시간, 20시간 가까운 장시간 운전을 하고 있다.

만약 패터슨이 한국에서 일하는 버스 운전 노동자였다면 그 주옥같은 시(時)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 그의 푸른색 유니폼은 언제나 반짝였을까? 캄캄한 새벽에 출근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식판에 겨우 배고픔을 잊을 밥을 먹으며 다시 버스에 올라타는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폭염 속 노동시간 / 2018.08

폭염 속 노동시간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그림] 카유보트, 마루를 깎는 사람들(1875, 오르세 미술관)


남성 노동자 세 명이 마룻바닥을 대패로 긁어내고 있다. 건축 막바지에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다듬는 작업이다. 날씨가 몹시 더운지 세 명 모두 웃옷을 벗어 던졌다. 한여름에 무릎을 꿇고, 힘을 다해 바닥을 긁어내는 일을 하다 보면, 옷이고 뭐고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서너 시간 같은 일을 하다보면, 무릎, 허리, 어깨, 손가락 어디든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오늘이 이 일을 처음 하는 날이 아닌 이상, 어쩌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여기저기 아파질 것이다. 꿇어앉아 체중을 지탱해야 하는 무릎은 뻐근할 것이고, 뻗었다 당겼다 반복해야 하는 어깨는 묵직하고, 대패를 꼭 쥐어야 하는 손가락은 뻣뻣할 것이다.

일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려면 적당한 알코올은 필수. 그림 한쪽에 큰 술병이 하나 놓였다. 더울 때 알코올 섭취는 위험하다는 조언이나, 작업 중에 술을 마시지 말라는 훈계는 통할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더운 날, 저렇게 힘들게 일한다면 평소 8시간씩 일하던 노동자도 네 시간이면 진이 다 빠질 것 이다.

그나마 그림 속 노동자들이 건물 안 그늘에서 일하고, 서로 얘기도 나누는 모습은, 요즘  뙤약볕에 밖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에 비하면 여유마저 느껴진다.

올여름, 유난한 더위 폭염으로 인한 희생자도 여럿 발생하면서, 폭염 속 노동자들의 건강에도 언론이나 정부가 관심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 하는 경우에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또,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를 발행하여, 휴식, 작업중지, 음료수 제공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폭염 시 주의할 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늘막 제공, 식수 제공, 휴식 장소 제공 등도 필요하지만, 너무 더운 시간에는 작업을 아예 중단하는 것, 일을 할 수 있는 기온에서도 충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열작업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는데, 폭염 시 옥외 노동자의 경우 이를 준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쓰는 7월 30일 오전 9시에 이미 더위체감지수는 29로 건설 노동자라면 15분 일하고, 45분 쉬어야 하는 기상 상황이다. 기계 조정을 하기위해 손 또는 팔을 가볍게 쓰는 경작업조차 오전 9시가 넘으면서는 45분 일하면 15분 쉬어야 한다. 전체 노동시간의 25%는 쉬어야 한다고 돼 있다.

7월 30일 정오 서울특별시 더위체감지수는 33이다. 곡괭이질 또는 삽질하는 중작업은 물론, 모든 옥외작업은 작업을 중지해야 하는 온도다. 이런 날 건설 노동자를 비롯해 힘을 많이 쓰는 옥외 작업자들은 평상시 노동의 1/4~1/2만 일해도, 평소 하루 노동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다 쓰게 된다.

그러니, 폭염 시기 하루 노동일은 8시간이 아니라, (노동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6시간이나 4시간, 심지어는 2시간이나 0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더울 때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시간은 곧 임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위로 인해 줄어든 노동시간은 반드시 유급으로 보상되어야 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도 날이 더워 일을 못 하는 것은 노동자 탓이 아니니까.

뜨거운 차량으로 종일 이동하며, 중량물을 싣고 내려야 하는 택배 노동자의 경우 건당 수수료는 여름에 더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폭염 시간대에는 배달을 중단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지 않을까. 집배 노동자에게도 폭염 시간 노동을 제한하고 대신, 여름에는 배달이 늦어지는 것을 우정본부가 감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낮에 쉰만큼, 밤늦게까지 일해서 메우거나, 폭염 이외의 시간에 노동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당장의 손실은 고용보험 일부를 활용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적정 노동강도와 적정 임금이라는 측면에서 임금 산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더위로 인해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니, 공사 기간을 정할 때 처음부터 7~8월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공사 기간을 2배 이상으로 넉넉하게 산정해야 한다. 이 기간에 맞춰 하루 일당으로 계산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급여가 미리 책정되면 된다.

폭염 아래 하루 노동/ 천근 만근 짓눌러오네/ 이러케 살아야 쓰는 거시냐고 차라리 하루/ 포기해버리자고/ 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네 

철근공이면서 시를 쓰는 김해화 시인의 시 <새벽 세시>의 일부다. 폭염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폭염 아래 노동마저, 포기하지 못 하고 새벽 세시에 일어나 나갈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이 문제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 2018.07

과로와 인종주의

영화 <히든 피겨스>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서교인문사회연구실


▲ 영화 <히든피겨스>의 한 장면


인종주의가 씌우는 가면

제주도에 몰려든 480명의 예멘 난민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마치 이 민족이 평화로운 남쪽 섬을 침략이라도 했듯이 제주도의 여성과 아이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그렇다. 예멘 난민들의 90%가 20~30대 남성이며, 그들은 브로커를 끼고 입국했다. 이로부터 ‘가짜 난민’설까지 등장했는데, 저들은 인도주의적 보호를 보장받아야 할 난민이 아니라 잠재적이지만 곧바로 현실화할 (성)범죄자집단이자, 불법 체류자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멘에서 밀입국한 480명은 ‘예멘인’이거나 ‘난민’이 아니라 (성)범죄자로서 예멘인으로 표상된다.

인종주의는 ‘순수한 집단’으로 인종(race)을 지목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선호하는 공격목표, 즉 사회적으로 정상화를 위해 배제되어야 할 집단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그래서 인종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난민 혐오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불특정한 예멘인이어서가 아니라 ‘20~30대의 낯선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난민 문제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문제를 되짚게 하며, 또한 논란이 재활성화 되고 있다. 예멘 난민으로 인해 인종주의적 태도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통념들이 예멘 난민 문제로 더욱 격렬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성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장애인에 대한 동정과 시혜와 혐오 등 인종주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매우 문제가 있는 이데올로기다.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는 늘 함께 기능하며, 나아가 “인종주의는 항상 성차별주의를 전제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여러 유형의 인종주의 형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는 늘 특권화된 집단을 보편의 얼굴로 내세우며,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평가절하하며 인종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인종주의에 대항할 때 차별받고 배제되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위험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지를 분석해야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가면을 씌우는 자가 누구인지, 보편의 얼굴을 한 지배적 표상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히든 피겨스>가 싸운 것은 어떤 인종주의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주의 영화라고 평가되는 작품 하나를 보자.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figures, 2016>는 196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나사(NASA)에서 근무했던 흑인 여성들의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흑인 여성들은 백인 남성들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들에게도 차별받는다. 그런데 백인 남성들과 백인 여성들이 흑인 여성에 가하는 차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우성 여성 전체는 나사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의 바깥에 있다. 이들은 전산원으로 별도의 독립적인 사무실에서 기능적인 계산을 하거나, 남성들이 일하는 공간에서 필요한 사무 일을 하기 위해 배치될 뿐이다. 흑인 여성들과 직접적 갈등을 겪는 것은 백인여성들이다. 이들은 같은 전산원이자 다른 인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에게 직접 모욕을 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흑인 여성들의능력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정당한 역할을 주려고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에서 실질적인 중책을 맡고 있는 캐빈 코스트너 역은 흑인 여성 전용 화장실 간판을 깨부수고 “이제 됐군. 유색인종 화장실은 없어. 백인 화장실도 없고. 그냥 변기 있는 화장실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인종주의적 차별에 맞서 흑인 여성들이 ‘여성과학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성공했다고 영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이 영화를 실화에 바탕을 둔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여성들의 연대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빼어난 영화라고 할지라도 이 영화의 출발인 인종주의는 여전히 남는다. 

영화에서 백인 남성이 재현하는 것은 백인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다. 그것은 ‘나사’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대 미국이라는 국가이기도 하다. 나사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국가주의가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릴 우주선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화되었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상징적으로 자리한다. 백인 남성의 몇몇이 인종차별의 벽을 깨고 흑인 여성의 천재적인 두뇌를 인정한 것은 미국과 소련 간 벌어진 우주‘전쟁’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종주의의 얼굴, 보편을 가장한 지배적 표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흑인 여성들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은 당시에 정세적으로 요청된 적, “망할 소련 놈들”에 대한 타자화를 통해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즉 영화는 인종주의에 대항한다기보다 특정한 인종주의를 다른 인종주의로대체하면서 인종주의를 구성하는 교차적인 그물망들(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그물망 안에서 영화는 끝난다. 드디어 미국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흑인 여성들은 나사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되었다. 전쟁은 승리했다!

과로의 보편적 얼굴

인종주의적 접근 말고 다른 면에서 보자면 <히든 피겨스>는 ‘나사’에서 일하는 과학자이자 공무원의 이야기다. 그들의 살인적인 과로는 ‘로켓에 사람을 태워 달에 보내는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 이어진다. 과로를 과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과로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거나, 아니면 자기 일이 공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노동운동에서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보편적 노동의 표상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이 이미지는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시대에 ‘산업역군’의 표상이기도 하다. 즉, 제조업 남성 노동자의 얼굴은 곧 국가이자 혁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가장 비극적으로 균열이 난 채 극대화 되었을 때가 IMF 위기시의 정리해고와 그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IMF 위기 때 98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였다. ‘차 만드는 남성’과 ‘밥짓는 여성’이 함께 한 파업이었지만, 파업 이후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거나, 식당 자체가 외주화되어 나빠진 노동조건과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파업의 패배로 남성 노동자들도 더 빨리, 더 많은 차를 만들어야 했다. 강화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컨베이어벨트에서 과로사하는 노동자들이 늘어가고, 죽지는 않더라도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빨리 밥을 먹고 빨리 쉬고 싶었기 때문에 남성 노동자들은 더욱 급해졌고, 그리고 험악해졌다.

“씨발년들아 빨리 밥줘.” 식판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남성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사회의 살벌한 과로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 과로는 동질적이지 않다. 차를 만드는 노동과 밥 짓는 노동의 분할,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분할은 분할 이전에 특정한 노동의 형태를 특권화 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분할은 곧 차별과 배제의 선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8시간, 10시간 혹은 12시간으로 균질화된 노동시간의 질적 차이가 구성된다. 이것은 노동강도로 환원할 수 없는 과로의 질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과로는 종족적 인종주의와 성적 인종주의가 교차하며, 서로를 보충하는 메커니즘이 형성하는 분할의 선을 따른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자신을 보편의 표상으로 재생산하는 이상 이러한 인종주의적 분할선 역시 재생산된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나 ‘혁명’을 상징하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보편화한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를 한명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 아니 700명 중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를 포함시키지 않기 위해 사측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단지 정규직의 횡포가 아니다. 정규직화하면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 여성 노동자를 배치 전환시키겠다고 겁박하는 것은 역으로 남성 노동자도 조립라인의 노동강도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젊고 건장한 남성 하청노동자들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이때 비가시화되는 건 여성노동자들의 과로다. 정규직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들은 남성도 하기 힘든 조립라인에서 일하기에는 약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보편적인 과로의 강도를 견뎌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체를 가졌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이러한 차별의 논리 배후에서 작동한다. ‘비정규직’이라는 인종, ‘여성’이라는 인종이 교차하며 ‘여성 비정규직’은 여성의 문제로도, 비정규직의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차별의 선들 아래에 놓인다. 그리고 ‘남성정규직’이라는 일부 집단이 특권화 되면서 보편의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자신들의 과도한 노동을 특권화 하는 순간 과로를 일으하는 인종적, 성적인 메커니즘은 사라지고, 더 많은 과로를 조직하는 경영기술이나 노동과정의 변형, 노동의 형태들도 사라지고 오로지 물리적으로 계량화된 과로의 수치만이 남게 된다. 그들의 과로를 가장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들이 입증하고 싶어 하는 과로 역시 가장 앙상한 것으로 남았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요청이 아니다. 스스로가 보편의 지배적 얼굴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위치를 점하는 것만이 모든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길이자, 자신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기득권’을 획득할 방법일 것이다.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세상의 중심에서 ‘과로죽음 이후의 무거운 짐덩어리’를 외치다 -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들의 이야기 / 2018.04

세상의 중심에서 ‘과로죽음 이후의 무거운 짐덩어리’를 외치다

-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들의 이야기

강민정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운영자


1. ‘무거운 짐덩어리를 어떻게 하라고’

과로 죽음 유가족과의 대화에서 들은 말이다. 과로 죽음 유가족들이 지니고 있는 ‘복잡·미묘한 마음 상태’를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미디어 등을 통해 과로사, 과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크게 일어나자 혹자는 과로 죽음 피해자인 망인에 대해 안타까움을 크게 표현하기도 하고, 과로하게 만드는 회사 더 나아가서는 이를 방관하고 있는 정부에 커다란 질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로 죽음으로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 속에 숨어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남겨진 유가족들의 ‘무거운 짐’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절실하다. 가족의 과로 죽음사건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의 ‘무거운 짐덩어리’가족의 과로 죽음은 늘 예견 없이 찾아온다. 과로 죽음 사건을 갑작스레 겪게 되는 대부분의 유족은, 죽음에 대해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가족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리고 타인의 불편한 시선과 함께 ‘일하다가 죽었는데... 이건 뭐지?’와 같은 약간은 ‘어딘지 명쾌하지 않은 감정’을 시작으로 일명 ‘과로 죽음의 뒤처리’를 시작하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유가족은 장례를 치루며 사측 이해관계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때 부검을 진행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매우 커다란 감정적, 심리적 동요를 겪게 된다. 노동조합이 있지 않은, 개별화된 유가족의 경우에는 그 동요가 더욱 극심하다.

“새벽에 야간근로 중 회사에서 그렇게 된거라고 갑자기 전화가 왔길래.. 우리 애기아빠가 그냥 사고는 아닌건가? 그런 찜찜한 생각이 계속 들긴 했어요. 근데 마침 회사에서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장례마치면 산재처리랑 전부 해준다고 했어요. 근데 발인 마치니깐 말이 바로 달라지더라고요. 알아서 하란거에요.회사에서 진심어린 사과만 했어도 어쩌면 산재 안넣었을꺼에요. 내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키워놓은 회사인데... 내가 산재신청해서 그런 회사에 피해가 간다면 그건 남편도 원하지 않을 수 있으니깐.. 근데 세상에.. 회사에서 이렇게 나오니깐...어이가 없더라고요. 근데 뭘 어떻게 누구한테 이 문제를 말해야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장례를 치르고 가족이 없는 빈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가족의 황망한 과로 죽음에 대한 의문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과로 죽음 해결을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는지 지식의 한계에 봉착한다. 나아가 가족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남에게 섣불리 조언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고립된다. 앞으로 자신이 홀로 풀어나가야 할 ‘산업재해 인정문제’와 ‘회사 일은 혼자 다 하냐며 핀잔을 줬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이라는 커다란 짐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오늘도 과로사·과로 자살 유가족들은 사회에 무언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가족의 과로죽음사건에 대한 산재인정과정에서의 ‘무거운 짐덩어리’

과로사·과로 자살은 궁극적으로 인사노무관리과정에 생기는 산업재해로 의학적, 법률적, 사회학적 인과관계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절대 유가족의 경험에 근거한 지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변호사, 노무사, 의사, 연구자 등 전문가들과의 결합 하에서만 온전하게 수행될 수 있다. 특히 의학적 진단과 사고에 대한 법률소송 진행은 제도화된 자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유족이 독자적으로 진행이 어렵다. 이에 유가족들은 다양한 창구를 통해 노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을 선임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가족의 과로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늘 여러모로 바쁜 전문가들은 조력자일 뿐이다. 절대 알아서 잘해주지 않는다. 현재 과로사·과로 자살에 대한 입증책임은 유가족에게 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산재처리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가져다줘야 하는 것은 온전히 유가족의 몫이다. 망인의 과로 생활을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유가족이기에, 자꾸만 관련 자료를 숨기는 회사에 대응하여 온종일 아니, 꿈 속에서도 과로를 입증할 수 있는 단서는 무엇이 있을까? 이 자료를 가져다주면 도움이 될까? 망인의 목소리, 생활을 되짚으며 치열하게 고민한다. 소장, 의견서, 진료기록감정서 등 관련 서류를 자세히 검토하고 끊임없이 전문가들과 의사소통하며 발벗고 나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정신적, 심리적 소진을 경험한다. 

아빠의 산재 인정을 준비하고 있는 딸 민희 씨(28세)의 자화상이다. 현재 그녀는 가족 중 가장 앞장서서 고군분투 중이다. 민희 씨에게 산재 인정은 늘 든든했던 아빠에게 ‘당신! 참 열심히 살았네요. 수고했어요.’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 나무는 저에요.’ 라는 말로 그녀는 자기 자신의 현 심정을 설명해줬다.

(사진출처: 본인제공)

“저는 나무인데 제 밑에 뿌리가 참 많아요. 뿌리는 저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산재를 준비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이런 뿌리가 저의 양분을 뺏어먹고 있어요. 나무는 뿌리가 깊어지면 거기로 양분이 전부 가잖아요. 그런것처럼요. 아빠 사고 이후 산재를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뭐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은 있는데 뭐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너무 힘들어요. 노무사님이 어드바이스를 해주셔도 결국은 제 몫이거든요. 하루종일 어떤 자료가 유리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는데 이 자체도 스트레스에요. 답이 없는데 그것을 찾아야 하는게 너무 어렵고, 뭐를 준비해야할지 모르니 엄마와 분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내가 힘들다고 이미 시작한 이상 그만둘 수도 없어요. 내 마음을 추스릴 시간조차 없어요.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관련 자료가 다 없어질 것 같으니깐... 마음은 급한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답답해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풍성한 나뭇잎을 가진 조금은 슬프지만, 긍정적인 나무라며 애써 자신을 다독인다. 비록 산재 인정과정이 너무 외롭고 힘들지만 그래도 아빠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기에 좋은 결과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가지에 싹을 틔우고 있는 그녀는 오늘도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가족의 과로 죽음사건에 대한 산재 처리 마무리 후의 ‘무거운 짐덩어리’

산재 인정결과는 그것이 ‘승인’이든 ‘불승인’이든 유가족들의 이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불승인된다면, 좌절감은 물론이고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의 경제적 여건 문제 등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승인된 유가족의 경우는 어떠할까? 혜원씨(48세)는 남편의 과로 자살에 대하여 산재 인정을 받은 후 3년 동안 지속적해서 근로복지공단에 전화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하루하루 생각나는 것에 대하여 낙서하듯 작성한 그녀의 핸드폰 메모장에 그 이유가 있다.

(사진출처: 본인제공)

물질적, 경제적 보상으로는 절대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 즉,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아빠의 과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등 과로 죽음 이후의 가족해체 문제 등에 대해 늘 고민이었던 혜원 씨는 스스로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싶었던 것이었다. 산재승인 된 이후 3년 동안 혜원 씨는 사회에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2. 무거운 짐덩어리 덜어놓을 수 있는 ‘유가족모임’

그렇다면 이러한 과로사·과로 자살유가족들의 ‘짐덩어리’를 덜어낼 방안은 무엇일까? 바로 ‘유가족모임’이다. 일본에는 현재 약 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과로사·과로 자살유가족모임이 존재한다. 공식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全国過労死を考える家族の会)’이다. 1981년 7월 오사카에서 과로사·과로 자살의 심각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노동조합, 유족, 변호사, 의료관계자 등 55명이 참가하여 ‘급성사등’ 산재인정연락회(急性死等労災認定連絡会)가 처음결성되었다. 이후 1988년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과로사변호단전국연락협의회(過労死弁護団全国連絡協議会)가 결성되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유족들이 중심이 되어 모임이 소규모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에는 나고야, 도쿄, 교토 3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89년 각 지역 모임의 제안을 계기로 1991년 11월22일 근로감사의 날(勤労感謝の日)을 앞두고 전국 조직인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이라는 유족모임이 결성되었다. 

일본의 유족모임을 연구해본 결과 다음의 역할이 수행되고 있었다. 

일상적인 연락 및 공동양육, 1박2일 캠핑: 유족모임을 통한 심리적 지원

지역별 유족모임 지부가 있으며 친구 혹은 가족에게 연락하듯 서로 간 일상적인 상호작용을 도모한다. 나아가 공동양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다 함께 낚시, 스키 캠핑을 가기도한다. 아빠 혹은 엄마가 존재하지 않을 때의 빈자리를 서로가 채워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가족들은 소중한 가족의 과로사, 과로 자살이라는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입장을 공유함으로써 유대감과 일치감을 느끼고 심리적 안정감 및 지지를 얻게 된다. 분명한 점은 다른 유족과는 달리 과로사, 과로 자살 유가족들은 이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1박2일 학습회: 유족모임을 통한 지식획득

일본의 유가족모임은 1년에 한 번 1박2일 학습회를 진행한다. 전국의 유가족, 연구자, 기자, 변호사, 의사, 심리상담가, 단체 활동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1박일 함께 숙박하며 과로 죽음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는 것이다. 유족들은 같은 일을 경험한 타인으로서 다른 유족 및 전문가들과 정기적인 학습회에서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앞으로의 대응원칙과 구체적인 대응 방향, 목표 지점을 공유하게 된다. 즉 과로 죽음에 대한 체화된 지식을 유족 간에 공유하는 한편, 경험적인 원칙을 스스로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로죽음에 대한 승소율 등도 높아지게 되며 설사 패소하게 되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로사방지법제정: 유족모임을 통한 법·제도 개선

일본에서는 2014년 11월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過労死等防止対策推進法)이 제정되었다. 이는 일본의 과로사 유족회가 해낸 일이다. 과로사방지법은 노동 관련 입법 중 유일하게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요청된 것으로 국회의원의 100% 찬성을 받아야만 제정이 가능한 실정이었다. 이에 일본 유가족모임이 주축이 되어 2013년 11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집중적으로 연 3회 집회를 여는 등 의원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였다. 특히 일본유족모임 대표 테라니시 씨를 중심으로 의원실에 직접 찾아다니며 과로사 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물론 법적 근거 등을 설명하기 위해 변호사 단체, 교수진 등과 함께 했지만, 진정한 과로사, 과로 자살에 대한 실태 설명, 산재 신청의 어려움, 인정받기의 어려움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라고 볼수 있는 유족만이 할 수 있는바 유족회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의원들은 유족들의 호소를 듣고 심각성을 인식, 100% 찬성을 받아 과로사 방지법 제정을 이뤄냈다.

유족들은 과로 죽음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움직임의 당사자로 조직화하는 전후 과정에서 의식의 전환을 맞이 한다. 개인화된 유가족들은 개인화되었을 때보다 집단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겪은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목소리 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함께 법, 제도 등의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하게 된다. 특히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아 법, 제도 개선이 된다면 이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화하여 나타날 수있다는 이점이 있다.

3. 한국 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2017년 7월, 한국에서도 첫 번째 과로사·과로 자살유가족모임이 있었고 현재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매달 함께 모여 예술치료를 통해 심리치유를 진행하고 있으며, 과로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지난 가을엔 다 함께 손잡고 단풍구경을 갔다 왔다. 모임 날에는 늘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모임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가족들 간의 관계도 깊어져 이젠, 모임에서 보이지 않은 가족이 있으면 안부를 걱정하기도 한다. 올 해엔 다 함께 힘을 합쳐 스토리펀딩도 준비 중이다. 과로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활발히 활동하자며 서로 굳은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일본 유가족모임과의 교류도 준비 중에 있다.

앞으로 한국의 과로사·과로 자살유가족모임이 과로 죽음 유가족들의 무거운 짐 덩어리를 덜어내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 2018.03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집배원 노동자들의 강탈당한 시간

지난 2월26일 고 임선빈 집배원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을 포함해 지난 5년간 80여 명의 집배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과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한 사람의 죽음조차 다양한 원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죽음은 수많은 원인 중에서 공통적인 한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소식들이 모이는 곳,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안녕하지 않다. 이 죽음의 기이함은 범인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살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죽음으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했지만, 그 범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지휘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닮았다. 죽음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다음의 죽음을 예상한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 그러니까 살아있는 우리들이 죽음의 원인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하지 않은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3년간 전국 9개 우정청 중 서울, 강원청을 제외한 7개의 우정청에서 집배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 중 17만 시간이 삭제되었다. 장시간 노동의 은폐를 위한 초과 노동시간의 조작은 집배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근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실제 우정본부는 작년 6월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집배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52시간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4,452명의 집배 노동자의 노동이 삭제된 17만 시간, 1일 8시간으로 환산하면 21,250일, 이를 또다시 1년 365일로 환산하면 58년 2개월. 이들의 시간을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그 시간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강탈하지 않았다면 80여 명의 연쇄적인 죽음의 스릴러물은 상연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80명의 숫자가 채워지는 것을 고작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삭제된, 17만 시간의 노동시간은 연쇄적인 죽음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단서’다. 무엇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17만 초과노동을 감수하게끔 했는지, 우정본부는 어떻게 집배 노동자들의 과도노동을 강제해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단서 말이다. 집배노조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에 강요됐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초과근로시간을 축소, 조작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폐기될 예정이지만 과도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성과장치들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자살을 포함한 죽음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KT, 439명의 노동자 연쇄죽음의 아카이빙¹이 보여주는 것

KT노동인권센터는 2006년부터 자신들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죽음의 사례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439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들은 왜 하필 2006년이라는 시간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기입하고자 한다. 


KT노동인권센터와 ‘노동자의 벗’ 소속 7명의 노무사는 2017년에 무려 1,800여 쪽에 달하는 <KT노동인권백서>를 출간했다. 백서는 439명의 죽음이 KT 민영화와 노동탄압의 결과라고 그 원인을 지목했다. 

“KT 민영화는 1980년대부터 그 정지작업이 시작돼 사업 분리, 분할 매각, 정부지분 축소 등을 거쳐 2002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면서 완료됐다. 그 이후 15년이 흘렀다. 처음에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하면 국민들에게 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민영화의 결과는 해악적이었다. 국민들은 높은 통신비 부담에 고통 받고,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실적 경쟁에 시달리며 죽음으로 내몰렸다.”(<KT 노동인권 백서> 중)

2006년은 KT 내에서 CP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된 시기이다. 2002년 민영화되기 직전 7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민영화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가 수차례 진행되어 4만 명이 퇴출당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사측은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CP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지속적인 일터 괴롭힘과 강제적인전환배치 등에 노출했다. 업무상의 저평가자를 일컫는 ‘C-플레이어들(C-player)’은 신자유주의가 내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전략”이 탄생시킨 새로운 집단이자, 어떻게든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KT노동자들이 아카이빙한 죽음의 목록 중 눈에 띄는 것은 ‘명퇴 후 사망’과 ‘자살’이다. 통상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신분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퇴 후 죽음’까지 아카이빙한 것은 이들 죽음의 원인이 KT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작업장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맞이하게 된 죽음을 다시 불러들여 2006년-KT라는 시공간에 다시 배치함으로써 KT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가 여전히 ‘죽음의 KT’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41건의 자살을 함께 포함한 것이다. 이 중에는 ‘저항’의 맥락에서 의미화 할 수 있는 자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로자살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입증하기 힘든 문제다. 자살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선택이라는 허구적 믿음의 강력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고통들과 함께 배치되었을 때 과로자살은 맥락화된다. 과로자살은 심리부검과 같은 접근으로 개인으로부터 자살 원인을 추적한다고 해서 해명될 수 없다. 즉, 과로자살은 자살의 문제가 아니라 과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로자살이 발생한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노동자의 자살이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연결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개별 노동자가 고통을 드러내는 양상 중의 하나의 경우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다. 강제 전환배치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인한 노동자 자살은 한국사회에서 과도노동 즉, 과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체국 노동자의 자살처럼 한국사회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과도노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장시간 노동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맥락 하에 진행되고 있는 성과 프로그램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체계적으로 분쇄되어 노동자들이 개별화된다는 것에 있다. 성과 프로그램은 우체국과 KT에서 자본-노동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갈등의 원천이 된다. 우체국 관리직들은 자신들의 성과등급을 위해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종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시간 노동을, 높은 노동강도를 압박해왔다. KT 노동자들의 일터 괴롭힘 역시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장시간 노동의 보다 기술적인 적용으로 나아간다. 자본은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촘촘한 망으로 노동성과를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현장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타깃이 된다. 집합적 힘이 분쇄되었을 때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무력하다. 경쟁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관계를 냉소적 관계로 대체한다. 

집배 노동자들이나 KT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은 과로자살의 또 다른 잔혹을 드러내준다. 어제의 동료들이 오늘에는 성과 프로그램의 실행자가 되거나 혹은 그 앞에서 침묵하게 될 때, 노동자들의 자살은 고독사를 닮는다. 


강력한 처벌 이전에 ‘권리’를 보장해야 

문재인 정부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뒤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직무 스트레스나 일터 괴롭힘의 문제는 개정된 법안에서도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과로의 적극적인 해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법마저 때늦은 법으로 당도해 버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법 집행을 위해 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처벌도 노동자의 죽음이 발생한 그 장소에 당도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가장 발 빠른 집행자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집합적 힘을 모조리 분쇄한 뒤에, 강력한 법의 보호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이 의무와 처벌만을 명시하는 순간 ‘치안’이 된다. 특히나 노동법이지 않은가. 노동의 권리야말로 법의 언어 속에 각인해야할 단어다. 그것이 없다면 노동의 보호란 자본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함께 일한 동료가 죽었다면 그것도 연쇄적으로 죽었다면, 그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는 중대재해 현장이다. 이에 대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과로의 의미가 과도한 노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 각주

1) 데이터를 보관, 기록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복지’라는 이름으로 착취되는 노동자, 사회복지사 / 2018.02

‘복지’라는 이름으로 착취되는 노동자, 사회복지사

천주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몇 달 전, 문재인 정부의 정책 플랫폼이었던 <광화문 1번가>에는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제안(“복지사도 복지가 필요해”)이 올라왔다. 제안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 사회복지 종사자는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특례업종 분야에서 제외하라는 것. 다음은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 표준임금을 지급하라는 것. 마지막으로 돌봄 영역뿐만 아니라 학교, 의료 등 사회복지 영역의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표면에 드러난 문제만 보더라도, 사회복지사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인력난으로 과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면하는 사회복지사는 감정노동에 시달리거나 복지제도에서 탈락한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등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는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2011년) 제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과 지방자치단체장은 3년마다 한 번씩 실태조사를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2013년 네 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했다. 이들은 20~30대 사회복지공무원이었다.

한 사회복지공무원의 유서를 통해 사유를 짐작하건대, 그는 일터에서 비인격적인 대우, 직장 내 위계적 관료문화, 업무 압박, 과로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의 죽음 이후, 사회복지사의 처우에 관한 문제가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여전히 현장의 사회복지사는 제도 개선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나는 아웃소싱 직원입니까?

고우리(가명, 35세) 씨는 7년 차 사회복지사다. 그녀는 현재 지역사회교육 전문가로 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한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현재 우리 씨가 일하는 곳은 세 번째 일터이다. 사회복지사로서 그녀의 이력을 보면, 2~3년 단위로 일터가 바뀌었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지만,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규직이라고 하면 안정된 고용형태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계속 일을 할 수 있고, 연차에 따라 임금도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정규직이란, 다른 의미였다.

정규직이긴한데, 사회복지는 정규직이 특별히 크게 의미가 없는 게 워낙 위탁사업이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위탁이 종결되면 사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좀 있어요. 지금은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위탁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어요. (...) 조건부 정규직? (웃음) 뭐라고 따로 붙이진 않는데 저희는 정규직이라는 정체성은 없어요. (...) 평가가 연 단위로 이루어지고, 3년 단위로 법인 운영 평가가 같이 이루어져요. 법인이 잘 운영하고 있는지 평가해서 재위탁 심사에 들어가는 거죠. 탈락되면 더 운영할 수 없어요. 이게 사실 사회복지사업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이걸 민간위탁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아웃소싱 같은 거.

우리 씨의 고용구조를 보면, 교육청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교육복지센터에서 일한다. 상세하게 말하면, 교육청에서 법인에 위탁하고, 위탁업체에서 우리 씨를 고용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과 업무규칙은 교육청에서 받는다. 사회복지사는 취직하더라도 2~3년마다 기관의 위탁 기간에 따라 불안정한 고용을 경험한다.

우리 씨뿐만 아니라, 시설 사회복지사들 또한 지자체에서 법인에 위탁을 주면, 그 위탁업체에서 사회복지사를 고용하여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씨가 자신을 “정규직”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아웃소싱”에 채용된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조 때문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불안정한 노동 구조의 골자가 되는 것은 우리 씨가 말한 것처럼 “위탁사업”구조이다. 사회복지사는 개인의 업무 실적이나 만족도에 따라 평가받는 대신, 기관의 평가를 위해 일한다. 그로 인해 사회복지사는 자신과 기관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높다. 자신의 고용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3년마다 행해지는 기관평가에서 기관이 좋은 점수를 받아야 위탁이 갱신되고, 사회복지사의 고용은 연장된다.

어느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업무가 “(위탁)평가를 위한 평가”에 따라 배치되고, 연중 프로그램이나 행사 또한 최대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한 방식으로 조직된다고 했다. 프로그램 이용자의 수,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 등은 전년도보다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설이 독립적인 재정구조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관은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프로그램과 더 많은 이용자가 필요하다.


과로의 다른 언어들

: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 '깔때기',

그리고 '양심 없는' 사회복지사

운영비가 부족하고 프로그램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는 본인 업무 외에 외부 사업을 지원해서 운영비를 마련한다. 외부 사업의 경우 10원을 쓰더라도 기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 작업으로 인해 야근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일은 추가되고, 그것이 곧 조직의 실적으로 쌓인다.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은어 중 하나는 ‘복지 깔때기’이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는 민원에 ‘복지’만 들어가도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에게 업무가 몰리고, 사회복지사들은 하나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에 “깔때기”라는 말을 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이유리(가명, 26세) 씨는 자신의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표현했다. 지역아동센터에는 센터장과 본인만 일한다. 그러니 토요일에도 프로그램이 있으면 외근해야 하고, 휴가는 엄두조차 못 낸다. 자신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회복지사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주말에 외부 행사에 참여하면, 평일에 대체휴일을 쓸 수 없다. 이런 시간은 ‘(담당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관행 때문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야근이 많은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 건 기본이고, 계약서를 쓸 때 추가근무나 당직을 하더라도 추가수당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에 서명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곳은 야근이나 주말에 일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휴가를 요구해도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임금을 많이 줄 수 없다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상식이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한다. 따라서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곧 ‘양심 없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고, 추가 노동은 사회복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장려된다.


‘헌신’과 ‘후원’을 강요당하는 사회복지사

다시 우리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녀의 한 달 임금은 190만 원 정도이다. 7년 차 사회복지사 임금이 190만 원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래도 자신은 낮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씨는 교육청에서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나마 급여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복지사가 더 많다고 했다. 사회복지사가 각각 다른 임금을 받는 이유는 2005년 지방분권화 정책으로 복지시설 운영비 책임은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있으며, 지자체에서는 법인에 사회복지 사업을 위탁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운영비에서 지출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는 자신이 속한 지자체와 법인에 따라 각각 다른 임금을 받게 된다.

김가람(가명, 26세) 씨는 지난해 인턴 2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임금이 인상됐다. 그녀는 월 195만 원을 받는다. 임금은 기본급 178만 원(복지관)+5만 원(재단)+12만 원(지자체 사회복지종사자 특별수당)으로 구성된다. 가람 씨가 있는 곳은 되도록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급하려고 하지만, 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에 임금 차이는 큰 편이라고 했다.

한편, 이유리(가명, 26세) 씨는 임금이 기본급 150만 원(센터)+20만 원(지자체 사회복지종사자 특별수당)으로 구성된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현재 다른 지역, 다른 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특별수당이 차이가 난다. 또한 재정이 튼튼한 시설의 경우, 사회복지종사자에게 임금을 줄 수 있지만 영세한 시설(아동, 장애인 등)이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이처럼 저임금 구조가 지속되는 데는 사회복지 사업의 재정구조도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 사회복지사를 “봉사자”나 “헌신”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여 임금 인상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관리자나 후원자들에 의해 지속되기도 한다.

한 사회복지사는 주변에서 “사회복지사는 그래야(가난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듣거나, “후원금으로 어려운 사람들 돕는 데 쓰라고 했지, 너희들 주려고 하는 거 아니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도 노동하는 사람이지만, 그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복지사로서 일의 가치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인터뷰에서 만난 네 명의 사회복지사는 낮은 임금에도 자신이 일하는 곳에 후원금을 내고 있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냈다기보다, “암묵적으로 대부분 후원을 하는” 문화 때문에 월 10만 원씩 후원하고 있었다. 일하는 곳 외에도 다른 곳에 기부를 강요당하는 일이 왕왕 있다.

유리 씨는 세금과 후원금을 제외하고 한 달에 140만 원을 받으며, 그 금액으로 생계비를 해결한다고 했다. 당장은 부모님 집에 머물기 때문에 주거비가 들지 않지만, 독립을 생각하는 상황에서 낮은 임금은 독립을 주저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는 경력이 있더라도, 경력에 따른 보상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20대~30대 사회복지사는 빠른 이직을 고민한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 둘이 결혼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는 자조 섞인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기거나, 부양가족이 생길 때를 대비하기 어려운 경제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환은 개별 사회복지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 사업의 생태계가 얼마나 불안정하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과로자살의 문턱에서

사회복지사의 사회적 역할과 그들이 있는 현장을 떠올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착한 사람’ 혹은 ‘선의, 희생, 봉사’를 떠올린다. 타인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려하고, 이타적이고, 헌신적으로 사명감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이래야한다’는 관념이 오히려 사회복지사의 노동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다시 말해,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사회복지사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타인의 복지를 위해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하는 사람에게 사회에 헌신하고 감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와 규율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사의 과로 노동은 위탁구조라는 한 축과 동시에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문화가 만나 지속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가 이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감정노동 등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갈수록 사회복지서비스 영역은 확대되고, 기존의 자원으로 사회복지 정책이나 제도를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면, 여기서 발행하는 비용은 모두 사회복지사 개인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비용을 사회복지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사도 복지가 필요하다”라는 목소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사회복지사가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살지만 정작 자신의 복지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환경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삶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사회복지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의 복지 또한 함께 갈 수 있다.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자살의 안과 밖: 보이는 그물과 보이지 않는 괴물 / 2018.01

자살의 안과 밖: 보이는 그물과 보이지 않는 괴물

예동근 부경대학교


1. 폭스콘의 과로사와 투신자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다. 중국 대륙에 투자한 대만계 기업 폭스콘에서 14명의 직원이 연속 투신자살했다. 그 후 폭스콘은 기숙사 등 많은 건물에 자살방지용 그물을 설치했다. 기숙사 창문도 30초의 시간을 들여야 열리게끔 설계하였고, 심리상담원을 두어 실시간 상담을 할 수 있게 했다. 하루 자살 관련 상담 전화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당시 폭스콘의 최고경영자 테리 고우는 주주와의 연례 만남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업무에 지쳐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단조로운 업무와 일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90%는 개인 관계와 가족 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¹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공장 노동자의 상당수는 20~25세 사이의 연령대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고 사랑하는 이와의 분리 심리적 충격과 의지할곳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몇몇 노동자들은 보상금을 위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고 추가했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인 애플 회사도 비판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착취공장”, “자살공장”을 이용하여 돈벌이한다는 비난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010년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는 “폭스콘은 노동 착취 공장이 아니다. 식당과 수영장까지 갖춘 꽤 괜찮은 공장”이라며 “자살시도가 어이지고는 있지만 40만 명에 달하는 공장 직원들의 수를 고려하면 미국 전체 자살률보다 낮다”²고 답변했다. 이렇듯 공장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 요인에서 찾는다. 자살자의 성격, 우울증, 대인관계, 빚 등 개인적 요인들을 수없이 나열한다. 그리고 투신자살자의 동정론자들은 기업의 문화, 조직, 장기근무, 직장 내 스트레스 등 구조적 요인에서 찾는다. 기업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한술 더 떠 공업사회, 지식정보사회의 성격이 강할수록 자살은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2. 폭스콘이 요구하는 것은 스톰트루퍼

누가 젊은 청년노동자들을 보이지 않는 자살의 그물로 조이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 “고객제일”은 폭스콘의 사훈이며, 회사의 신조다. 고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요구한다. 보통 경쟁사들은 제품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같은 공장에 납품을 맡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폭스콘은 각각의 공장에 보안을 엄격하게 유지한다. 폭스콘은 업무 시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공장 내부에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고, 기숙사까지 있어 공장 밖으로 나갈 일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특히 폭스콘 공장의 근무 교대 시각에는 금속 탐지기를 거치고 몸수색을 받는다. 이런 철저한 비밀유지 덕분에 제조사들은 폭스콘을 신뢰한다.

룽화(龍華)에 근무하는 폭스콘 직원은 27만 명, 24시간 3교대로 각종 전자제품을 쉴 새 없이 생산하고 있다. 거대한 기지 안에는 생산 공장과 직원 숙소뿐만 아니라 식당, 병원, 잡화점, 은행, 소방서 등 70여 동의 건물이 모여 있다. 5만 명이 동시 식사할 수 있는 20여 곳의 대형 식당에서는 매일 15만 명분의 식사가 준비되는데 소비되는 쌀 양만 40t이 넘는다. 이 같은 광경은 생소하고 무섭다. 5만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에서 똑같은 작업복만 입은 낯선 사람을 보았을 때 무엇이 생각나겠는가? 은하제국의 스톰트루퍼가 떠오른다. 개인의 생각, 기호, 취미, 창의성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기계처럼 손만 놀려야 할 때, 20대 젊은 피가 솟구치는 청년들은 참을 수 있을까?

맑스는 이것을 “소외”라고 정의했다. 인간이 소외되면 투명인간처럼 되고, 주변 사람은 생소하고, 주변 환경은 두렵고, 삶은 무미건조하다. 지속적 감시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초조하기 쉽고, 얇아지는 지갑과 지친 몸을 바라보면 삶은 초라해진다. 더욱 무서운 것은 AI시대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스타워즈”의 출현을 알리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 폭스콘은 지금 지구에서 가장 많은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폭스콘과 유사한 세계적 기업들이 로봇생산에 경쟁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폭스콘은 4만 대의 Foxbots를 투입한다고 선포했다. 폭스콘 자살 사건 이후 각종 분쟁과 사회여론에 시달리었고 중국 내 인건비도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폭스콘 대표는 2011년에 “100만 로봇 시대”를 공언했다. 복잡한 전자제품에서 인간은 “정밀한 손”이란 우세가 사라지면 곧장 로봇에 대체될지도 모른다. 인간 노동자들이 “자살공장”을 탈출하면 모르겠지만, 그들은 더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3. 화웨이(華爲)는 천국인가? “자살문”인가?

2007년은 화웨이에 있어서 불행한 해 일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기업으로서 찬사를 받았지만, “자살문”이란 오명도 동시에 달고 있었다. <신주간>잡지는 “화웨이는 중국에서 가장 힘들게 일 시키는 기업”이란 제목으로 연쇄 자살 사건을 다루었다.³

화웨이 대표는 군인 출신이다. 조직문화는 군사화 되어 있다. 이 부분은 폭스콘과 비슷하다. 고학력자들을 뽑고 있지만, 신입사원들의 입사교육은 군사화 됐다. 교관도 중국 군인의 자랑으로 여기는 “국기반”(國旗班)에서 영입하고, 2주간 군사교육과 함께 회사교육을 한다. 회장과 사부(지도교수), 신입사원이 일체화된 “회사부일체” 세뇌 교육을 시킨 후, 회사와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기본훈련을 3개월 진행한다.

대부분 신입사원은 3개월 기간에 임용되지만, 그 압력은 매우 크다. 연쇄 자살 사건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화웨이 기업이 전자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하는 만큼, 최고의 엘리트들을 모집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방황하고, 짧은 시간에 평가받아야 하고, 수시로 잘릴 수 있는 위기감에서 생활해야 했다. 자살한 장루이(張銳)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비록 소프트분야에서 내공을 쌓았지만 통신영역에서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실습기간을 지나도 바로 잘리지는 않겠지만, 모든 사람이 경쟁하고 있기에 너무 힘들다.”

화웨이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간이침대”문화는 화웨이문화의 상징이고 자랑꺼리였지만, 연쇄자살사간이 일어 난후, “자살도구”란 오명을 받았다. 간이침대는 군인의 배낭처럼 수시로 몸에 붙어 있고, 전투도구로 인식되게 하였다. “간이침대는 절반의 집이다. 화웨이 사람들의 체력과 지력을 집에 보내지 않고 최대 한계로 빨아 먹고 있다.”

이처럼 고학력 엔지니어들, 중간 관리자 심지어 화웨이 회장도 우울증에 걸렸다고 자백하고 있다.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 보내는 이들은 여가시간이 없고, 심지어 애인과 만날 시간도 없어 길게는 두 달 뒤에야 애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위기론”을 주지시키며 회사와의 “운명공동체”를 강조하여 내부경쟁을 조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회사의 소속감을 강조하여 안정감을 찾게 하지만, 과도한 압력과 내부경쟁은 오히려 회사 소속감과 안정감을 상실하여 직원들을 소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처럼 모든 것을 회사를 위해 헌신하였는데,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던져졌을 때 어떤 기분일까? 화웨이뿐만 아니라 중국, 나아가 한국, 일본 등 IT, 게임관련 기업들도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다. 이런 직종 자체가 “자살 세포”를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화웨이가 존재하는 도시 심천 자체가 “우울증의 도시”, “자살의 도시”다. 이 도시에는 화웨이와 비슷한 거대기업 텐센트, ZTC 등 많은 IT기업이 있다. 한편으로 “IT도시”로 선망의 대상이고, 활기찬 도시, 꿈의 도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들시들 병들어 가고 있다.⁴⁾

2007년 심천시 위생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심천주민들의 정신질환률은 21.1%로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리고 우울증 발병률은 7%로서 당시 전 세계 우울증 발병률 3.1%를 초과하였으며, 불안장애 환자는 9.94%로서 10명중 1명이 불안장애 환자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시 심천의 연평균 자살자가 2,000명으로서 당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높았다고 한다. 10만당 자살률로 환산하면 당시 800만 심천인구로 볼 때 25%이다. 이는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한 한국보다 높은 수치이며, 서울의 자살율과 막상막하다.

우리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자살예방책을 찾으면서 “자살방지” 그물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안에 회사들이 사즉생의 결단으로 경쟁에 뛰어들고, 돌진하는 시스템은 자살을 탄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아닐까?

[노동시간 에세이-과로자살 거둬내기] 일본의 과로자살 다시보기: 덴츠의 기이한 시간과 지리멸렬한 시간 / 2017.12

일본의 과로자살 다시보기:

덴츠의 기이한 시간과 지리멸렬한 시간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두 차례의 과로자살사건

일본에서 과로사 문제는 198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과로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과로사가 비정규직에까지 확대되는 한편, 과로자살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과로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린 사례가 바로 덴츠의 1991년 입사 2년차 대졸 남성 신입사원의 과로자살 사건(이하 ‘1차 덴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96년 첫 재판에서 업무기인성을 인정받았으며, 2000년 상고심은 원심에서의 유족 측의 부분적 패소 부분도 파기 환송하였고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최고재판소 판결로 기록되었다. 이 판례는 이후의 과로자살 소송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덴츠 사측은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덴츠에서 25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전 사건과 이번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는 신입사원이었고, 스물 네 살이었다.

2016107일 유족인 어머니 다카하시 유키미(高橋幸美)의 기자회견 발표를 통해 덴츠에서 201512월 다카하시 마츠리(高橋まつり)씨의 과로자살 사건(이하 ‘2차 덴츠 사건’)이 발생하였고, 20169월 노동재해로 인정받았음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1차 덴츠 사건 이후 20136월 당시 30세의 남성 사원이 과로사한 바 있고, 20146월 간사이 지사가, 그리고 20158월에 본사가 노동기준감독서의 장시간 과중노동 관련 시정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입사 1년차였던 다카하시 씨의 201510월에서 11월 사이 1개월간의 시간외노동은 105시간에 이르렀다. 10월 이후 소속 부서 인원이 14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면서 담당 기업도 늘어났다. 그밖에도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각종 접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맡았고, 회식 후에는 선배 사원에게 늦은 밤까지 지도를 받기도 했다. 11월 들어서는 상사에게 업무를 줄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되려 폭언을 들어야 했다.

 

기이한 시간’: ‘자기신고제를 통한 덴츠의 시간기록 조작

덴츠에서 월100시간을 넘는 잔업으로 고통을 겪은 것은 다카하시 씨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30대 중견 사원들도 장시간 과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측은 월 잔업시간 상한을 원칙적으로 50시간으로 규정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시업 및 종업시간을 신고하고 상사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다카하시 씨의 유족과 대리인이 산재 승인을 얻기 위해 길게는 월130시간에 이르기도 했던 다카하시 씨의 잔업 시간을 계산한 방식도 사측의 자료가 아닌, 건물 입·퇴관 기록 등이었다.

덴츠 사원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직접 관리시스템에 입력하고 1개월분의 근무시간에 대해 관리자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그런데 명목상 규정상의 초과근무 상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 근무기록을 조작하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소정근로시간 대로라면 오전 930분에 출근하여 오후 530분에 퇴근할 터인데, 실상은 오전 840분에 출근하여 밤12시에 퇴근하는 것이었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분명 15시간20분 동안 건물 내에 있었는데, 기록상으로는 기껏해야 1~2시간 초과근무 한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해당 노동자는 업무 종료시간 이후 3~4시간 잔업을 계속하면서 그 중 3시간 정도를 자리 비움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사측에서 근무시간을 파악할 때 자리를 비운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해당 노동자는 밤9~10시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채 기록상의 퇴근을 한 후 다시 기록상으로그리고 사적인 이유로 제 자리로 돌아와12시까지 잔업을 하는데, 이 시간은 자기계발 활동 등 개인적인 용무를 본 것으로 기록된다. 일사불란한 조직문화 속에서 암암리에 만연된 근무시간기록 조작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성과압박과 내부경쟁 심화의 배경

덴츠는 오래 전부터 일사불란한 조직문화와 더불어 높은 업무강도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덴츠의 사원수첩에 적혀 있는 열 가지 수칙(이른바 귀십칙鬼十則)에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죽어도 손에서 놓지 말라’, ‘수동적인 인간이 되지 말고 항상 한 발 앞서 알아서 움직여라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덴츠의 성과압박 및 내부경쟁 강화와 이에 따른 장시간 과중노동 관행 지속의 배경으로 2001년 이루어진 주식 상장과 미디어환경의 변화 또한 꼽을 수 있다. 덴츠는 인터넷 광고부문에서 후발주자였다. 뿐만 아니라 TV광고수입의 감소로 인해 2009년 덴츠는 106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덴츠의 경영관리체제는 사원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방식으로 변해갔다. 이후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스마트폰 보급과 SNS 이용 증가라는 흐름 속에서 모바일 광고를 핵심으로 한 인터넷 광고의 매출 비중 증가가 약50%에 이를 정도였다.

다카하시 씨도 인터넷 광고 담당 부서에 배치되어 자동차보험 등의 광고를 담당하였으며, 자료 분석 및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문제는 덴츠가 대기업임에도 환경변화에 적응하려 시도하지 않고 중소영세기업과 같은 노동방식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의 광고와 달리 인터넷 광고는 조회 수 등을 근거로 사후적으로 대금이 지급된다. 인력 충원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덴츠는 업무량 증가의 부담을 기존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광고업계 괴물의 탄생과 그 군사적 기원

앞서 언급한 열 가지 수칙은 어떤 측면에서는 1990년대까지 승승장구를 계속해 왔던 상황을 반영하는 적극적인 사원상()이라 볼 수 도 있다. 그런데 단순히 적극적인 수준을 넘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도전정신을 강조하는데, 이는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덴츠의 초기 성장과정과 관련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덴츠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설립된 일본전보통신사를 전신으로 한다. 현재의 사명인 덴츠’(電通)는 한자로 전보통신의 줄임말인 전통이다. 일본전보통신사는 아시아 침략전쟁 기간에는 국책회사인 만주국통신사로 이어져 광고 업무 외에 정보기관으로서의 업무, 나아가서는 관동군과 만주국에의 자금조달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전 이후 해체된 만주국통신사는 미점령군(GHQ)과의 밀월관계 하에서 덴츠로 복원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 만주철도 직원이나 군 간부 등을 대거 받아들였으며, 전범을 포함한 기존 임원들도 그대로 기용되었다.

현재까지도 덴츠는 정부와 자본의 미디어 길들이기 혹은 언론통제의 핵심 고리이다. 덴츠는 광고업계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광고회사인데, 일본 내 전체 광고업계 매출 가운데 덴츠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수준에 이른다. 업계 2위 규모인 하쿠호도(博報堂)의 매출은 덴츠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미디어의 영향력, 특히 TV 영향력은 막대하다. 덴츠와 하쿠호도 2개사의 매출 가운데 이른바 일본의 ‘4TV 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70%에 이르며 이익규모로 치면 90%에 달한다. TV의 경우 활자매체에 비해 광고 의존도가 큰 데다, 광고주 모집의 상당 부분을 덴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덴츠 사건이 드러난 이후 10월 중순경 이시이 나오(石井直) 사장 명의로 사원들에게 한 통의 문서가 배포되었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 20161112일자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인사노무관리상의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개선의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정부는 물론 미디어로부터도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을 호소하는 듯한 논조 역시 띠고 있다. 덴츠는 정관계 주요 인물들의 자녀가 대거 연고채용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다른 기업에서 발생하면 화제될 만한 성희롱 사건 등이 조용히 묻힌 사례도 많다. 덴츠는 광고주와 관련된 스캔들을 무마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종 사건의 무마 의혹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준비된 역공세에 대비해야

1차 덴츠 사건은 노동성이 노동재해 인정기준 개정에 착수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노동재해 인정 또한 확대되었다. 문제는 사측의 대응도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관리직으로 하여금 사원 동향을 감시하여 노동재해 발생 시 재판에 이를 경우 제출할 반대증거를 수집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512월부터 의무사항으로 도입 실시된 스트레스 체크 제도와 관련해서도 노동자 개인의 자질이나 건강관리 등의 요인을 부각시키기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2차 덴츠 사건이 보도되고 정부의 과로사방지백서가 발표된 직후, 사측에서 조직한 학계 등의 인사들에 의해 과로자살의 원인을 개인화하거나 기업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식의 논조의 몇몇 언론 투고가 이루어진 것(물론 이들은 덴츠 만큼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시 사측이 항시적으로 방어 내지는 역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2016년 말 이시이 사장은 결국 사임하였으나, 덴츠는 건재하다.

2차 덴츠 사건 이후 덴츠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고, 기존의 노동관행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왜 하필 과로사방지백서 발표일에 맞추어 2차 덴츠 사건을 공개하고 이후로도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차 덴츠 사건이 여론의 커다란 주목을 얻은 이유는 사망한 다카하시 씨가 도쿄대 출신에 갓 졸업한 신입사원인데다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수요측 요인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베 정권의 필요라는 공급측 요인이 더 커 보인다. 덴츠를 노동개혁의 본보기로 삼아 재계를 길들이고 지지율도 챙기자는 것이다. 덴츠는 건드려도 쓰러지지 않기 때문, 혹은 쓰러지지 않도록 광고주인 정부와 재계가 뒷받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하여 일본 정부는 덴츠에게 안겨줄 광고 일거리가 아주 많다. 최근 근로감독 등이 강화되면서 규모가 작은 편인 외식업계와 IT업계가 자신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울상을 짓는 배경이기도 하다.

역공세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세월호 사고 이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일본은 과로사와 과로자살 뿐만 아니라 넷우익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를 다그치던 다카하시 씨는 자살 전 친지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살기 위해 일 하는 건지, 일 하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 ‘내일이 올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루겠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니 진심으로 죽고 싶다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된 뒤 인터넷 공간에서는 멘헤라를 비난하는 혐오성 댓글들 역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멘헤라정신건강(멘탈 헬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로서,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최근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전, 그것도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 과로사대책위를 구성하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과로사예방센터가 만들어지는 등의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는 저 앞의 어딘가에 복마전 혹은 지리멸렬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에서 과로자살이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매개로 한 죽음의 형식으로만 공식적인 재해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노동재해 인정만큼이나 문제를 개인화하는 흐름을 차단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에세이]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2017.10·11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선영 박사, 과로자살 연구팀


“오늘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7년 여름, 네팔 출신 미디어 활동가의 페이스북에는 며칠 간격으로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경산의 한 재활용 처리 업체에서, 충주에서, 화성에서, 그리고 저 멀리 제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 소식이었다. 같은 국가 출신 이주자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에 네팔 공동체는 술렁거렸고, 대사관은 노동자들을 위한 요가와 명상 수업, 현장 순회교육을 기획하며 급하게 자살 방지 대책을 모색했다.

이주민지원단체는 자살한 노동자들의 사연과 유서 공개를 통해 고용허가제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성토했다. 하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도 잠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자살’은, 그것도 대통령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살은 쉽게 잊혀졌다.


계속 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라는 저서에서 자살은 더 이상 정신병리학의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결정적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의 자살 또한 한국사회 이주노동제도의 변화 과정과 그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했던 현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과시킨 후, 11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시작하자, 단속추방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고, 연이어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참고: 오마이뉴스 “더이상 죽이지마! 강제 추방은 인간사냥”)

이들은 한국으로의 이주를 위해 본국에서 빌린 돈을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강제 추방의 위협에 놓이자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벼랑 끝에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들의 죽음을 딛고 시행된 고용허가제, 이 새로운 제도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출신 노동자가 “집에 가고 싶은데,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는다. 오직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참고: 한겨레 “지하철 자살 중국노동자 “체불조사” 보름 넘게 미적), 이후에도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네팔 출신 연수생 등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졌다.(참고: 오마이뉴스 “고용허가제 1년…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죽어간다”)

특히 네팔 노동자들의 경우 양국 정부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체결한 2007년 이후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의 자살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고용허가제 시행 14년째인 올해 8월에 자살한 한 네팔 노동자는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다.(참고: 오마이뉴스 “이주노동자 자살 급증, 무엇이 문제인가?”)


쓰고 버려지는 노동자들

유서를 남긴 이 네팔 노동자는 “건강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라고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Disposable women and other myths of global capitalism」(「쓰고 버려지는 여성들, 그리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다른 이야기들」)에서 멜리샤 롸이트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일회용 노동자로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는 이들의 죽음의 원인과 일상에서 보여지는 여러 삶의 측면을 통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유서에서 보이듯이, 이 네팔 노동자는 불면증의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노동 조건과 함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한국 경제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4년 10개월 동안 쓰이고, 고용허가제가 정한 그 기간이 끝나면 출국해야 하는 ‘일회용 노동자’로서, 그가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상당 부분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중국의 폭스콘의 노동자들이 “ 어쩌면 우리 같은 폭스콘 집원에게는 […]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겐 절망뿐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참고: 엔드루 로스 「엑소시스트와 기계」)라고 이야기 했듯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절망적 현실을 알리려 했던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간단한 조사와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대사관과 협의 하여 빠르게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본국에 있는 가족들도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문제를 제기할 여력도 기회도 없이, 그렇게 자살 사건은 마무리된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단기 노동력으로 들어온 이들이 죽음을 통해 노동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들의 육체는 빠르고도 신속하게 폐기처분 되어지는 것이다. 그 사이, 인천공항에는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고, 바로 얼마 전 이들이 목을 매고 숨을 거둔 그 공장은 새로운 노동력을 투입해 주야간으로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지난 6월 한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목을 매 자살을 한 공장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그 공장에서 이주노동자 자살은 2011년과 2017년 두 번이나 있었다. 공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자살한 이주노동자의 친구들은 그 사건 이후한동안 공포와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자살한 친구처럼 몇몇 동료들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과 극복방안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이야기 했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립감과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우울증이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사업주가 지정해준 기숙사나 숙소에서 생활을 하는데, 공장과 숙소가 외진 곳에 있는 경우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특히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상황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제한된 상황에서 주어진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니,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사업장 내에서의 관계, 작업 능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프랑코 베라르디가 “착취, 경쟁, 불안정성 등이 갈등적 사회관계의 효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 자아의 결함이자 개인의 하자로 내면화된다”고 얘기한 것처럼,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조건으로 인한 문제들이 개인화될 때 우울증은 더 심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때로는 친척들 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에서의 불안정성은 이중의 고통을 야기시킨다. 즉, 한국의 노동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가족들의 경제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맞물려 이중, 삼중의 고통이 되고,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아의 결함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결국은 현실의 탈출구로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박한 바램

동료의 자살을 두 번이나 경험한 이주노동자들의 결정은 돈을 모아 운동기구를 사서 함께 운동을 하고,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생긴 동료들이 있으면 같이 병원에 가고 보살펴주는 것이었다. 작업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로움도 함께 극복하고, 서로 도와주면 괜찮을 수 있다는, 이들의 바람은 참 소박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미 자살의 물결은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노동자로 만들어, 집단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고용허가제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국제노동이주가 한국에서 시작된 시점, 즉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유연하게 이용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도 또 한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죽지 않고 노동하고 싶은, 바로 그 소박한 바람을 위해서 말이다.

[노동시간 에세이] 처음 만난 일터에서 일 때문에 생을 마감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 2017.9

처음 만난 일터에서 일 때문에 생을 마감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최민 상임활동가, 과로자살 연구팀

잇따른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이미 잘 알려진 세 건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에서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마이스터고등학교 전자과에 재학 중이던 A 씨는 식품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조리육 포장 일, 힘들어도 참고 하던 중 회식 때, 나이가 많던 입사 동기에게 공개적으로 머리를 밟히고 뺨을 맞는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폭행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협박했다. 주말 동안 회사를 떠나 집에 있는 동안, 용기를 내 회사에 신고하고 현장실습을 중단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뒤 벌어질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나 컸다.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회사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¹

B 씨는 인터넷쇼핑몰을 전공했지만,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학교에서는 식당 취업을 추천했다. 하루 11시간 미만 근로를 한다는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잦았다. 정리하다 보면 퇴근 시간인 밤 10시를 넘기는 것도 일쑤, 보통 11시나 11시 반쯤 퇴근했다. 오픈 준비와 마감을 모두 해야 하는 ‘오마벌칙’은 막내인 B씨에게만 적용됐다. 취업 직후부터 시작됐고, 전체 근무일 중 절반 정도에 해당했다. 언어폭력이나 성적 괴롭힘도 심했다. 고인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욕먹기”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차라리 입대 해야겠다 결심하고,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 그 날, 그는 선배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은 뒤, 오후에 매장을 나가 생을 마감했다.

C 씨는 통신사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해지방어부서에서 일했다. 매일 달성해야 하는 통화 숫자와 해지방어율이 정해져 있었다. 회사는 매일 아침 전체 센터의 실적을 공지하며 수시로 압박했다. 각자의 실적은 상대평가로 성과급 결정에 반영되었다. 수습 기간에는 3등급이었지만 정식근무 이후에는 선배 노동자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실적은 9등급, 실적급은 4만 원에 불과했다. 해지를 방어하는 동시에 상품 판매 영업도 해야 했다. 이 역시 매일 실적 목표가 제시되고 있었고, 실적을 못 채우면 업무종료 후 남아서 영업 전화를 돌리거나 영업을 잘 한 사람의 콜을 듣고 공부해야 했다. 고객들에게 심한 말을 듣고 힘들어하는 날도 있었지만,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실적을 채우지 못해 상사로부터 받는 압박이 더 커보였다고 한다.²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부모는 참고 다녀보라고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틀 뒤 고인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현장실습생에게 가해지는 이중의 괴롭힘³

A, B 씨의 사례에서는 모두 일터 괴롭힘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일터 괴롭힘은 일터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위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누군가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뜻한다. 일터 괴롭힘 연구자들은 공통으로 일터괴롭힘의 바탕에는 권력 불균형이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일터 괴롭힘의 피해자는 지위가 낮거나, 사회적 약점을 가지고 있거나, 소수자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보통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괴롭힘의 과정에서 그 열등한 지위가 더욱 공고해진다.

그런 점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일터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 청소년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들 수 있다. 청소년의 나이에 따른 차별에 근거한 일터 괴롭힘은 현재진행형이다. 방화문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하는 한 현장실습생은 한 달 중 1주일가량 잔업을 하는데, 언제 어떻게 잔업을 하는지 미리 알 수가 없다. 퇴근할 즈음 갑자기 ‘오늘 야근해라’고 하면 거절하지도 못한다. 이렇게 갑자기 야근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애들’이다. 갑작스러운 연장 근무를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청소년이고, 어린 노동자는 어른 말씀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의 동기는, 다른 직원들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보완이 필요해서 ‘보완하세요’라고 쪽지를 보냈더니 ‘보완하세요?? 너 지금 몇 살이니?’라는 답을 받았다. 동기의 선배가 대신 사과했는데도, 상대방은 사과하지 않았다.

나이 어린 현장실습생은 성인보다도 쉽게, 일을 제대로 못 한다거나, 알려줬는데도 왜 따라 하지 못 하냐는 압박과 폭언, 폭력의 대상이 된다.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세차를 맡은 현장실습생은 첫 출근 했던 날의 기억을 묻자 ‘욕을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 첫날이니까 ‘당연히 잘 못 하고’, ‘잘 못 하니까 욕먹으면서 배우는’ 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청소년이라는 점 외에 ‘현장실습생’이라는 점은 이들이 일터괴롭힘에 더 취약하도록 강제한다. 현장실습생 취업률을 유지하려고 하는 학교 정책은 오히려 일터괴롭힘을 호소하는 학생에게 ‘참으라’고 강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다른 청소년 노동자보다 현장실습생을 일터괴롭힘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한 현장실습생의 담임 교사는 SNS로 ‘회사를 그만두면 학교에 대한 배신’이라고 문자를 보냈고, 선임과의 갈등으로 퇴사를 원하는 학생이 세 차례나 요청할 때까지 복교 요청을 묵살했다.

현장실습 자살자들의 자기평가 과정

일터 괴롭힘의 피해자는. 처음에는 열등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괴롭힘의 과정에서 ‘괴롭힘을 당할만한 사람’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일에 투입해버리면, 그 사람은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된다. 학력이나 성별 때문에 차별당하던 사람은 이를 비판했을 때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매도되거나, 차별을 못 견뎌 일을 그만두면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 일터괴롭힘 피해자는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며, 한 현장실습생 인터뷰에서 보듯이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를 실패자로 평가하고, 자신이 쓸모없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과정은 자살자가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인식하고 자살에 이르게 되는 자기 인식 과정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이런 자기 평가 과정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던 A, B 씨 사례뿐 아니라 과도한 실적 압박에무방비로 노출됐던 C 씨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사실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터에 ‘실습생’ 신분으로 취업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쉽게 만드는 밑그림이 된다. 거기에 C씨가 다녔던 전체 회사 차원에서 강도 높게 추진되는 실적 경쟁이나 압박이 이런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형민은 일부 자살에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성’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자살자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숙고하여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과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이 과정에서 자살자는, 자신이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기 죽음을 통해서만 문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⁴⁾

청소년은 특히 성인에 비해 사회적 자원이나 경험,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다른 선택지에 대한 사고가 제한적일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신이 죽음을 통해서만 문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왜곡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 자살은 특히 그들이 가진 자원이 빈약한 상황에서는 더욱,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좌절될 때 성인에 비해 더 심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한다는 기존 논의도 숙고해봐야 한다.⁵⁾

실제로 A 씨의 경우 회사에 직장 동료의 폭력을 고발했으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문제 상황을 직면해야 했고, B 씨의 경우 사직을 결심했으나 이에 대한 직장 상사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다. C 씨도자살 이틀 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날 자살 기도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힘들어도 이겨내 보라고 응대했다. 자살을 ‘차악의 선택’, 능동적인 행위라고 볼 때, 비교적 저임금에 구하기 어렵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던 이들임에도, 죽음을 결심한 순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처지처럼 느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현장실습생의 자살을 함께 생각하기

파견형 현장실습 그 자체가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런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부추기고, 대안을 구하는 행위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습생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일터에, 실습생이라는 취약한 상태로 내보내지고, 취업률을 유지하기 위해 학교는 사직을 가로막는다. 부모와 교사는 흔히 ‘참아보라’는 격려 이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 한다. 이런 다양한 모순이 응축된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질문들이 있다. ‘청소년’이자 ‘실습생’에게 가해지는 노동권 침해, 처음 맞닥뜨린 일터에서 겪은 압력과 스트레스, 가족과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폭력적인 질서. 이런 어려움은 다시 어떤 경로를 통해 우울감, 자살사고, 자살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저임금의 일자리, 졸업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일자리, 돌아갈 학교도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현장실습생 외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일터에서의 문제 때문에 자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건 정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에게 좀 더 고유한 문제일까? 대학신입생이나 사회초년생의 자살과 한국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자살은 어떤 측면에서 유사하고 어떤 측면에서 다를까?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자살을 되짚어 보는 과정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서 출발하여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 과정과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이로 인한 자기 평가와 자기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모두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청소년 노동자, 실습생 노동자로서의 노동권 침해와 이런 침해가 자살 사고나 자살 행동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청소년 자살’ 연구에서 다루지 못했던 현장실습 노동과정의 경험과 그 고통, ‘현장실습 대책 논의’에서 다루지 못했던 ‘자살에 이르는 심리적, 인지적 경로’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에세이] 과로자살의 위험을 거둬내기 위하여 / 2017.8

과로자살의 위험을 거둬내기 위하여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하반기 동안 '과로자살'에 대한 문제를 다룬 노동시간에세이를 연재한다. 앞으로 여러 필자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회복지사,이주노동자, 외국사례 등을 비롯해 여러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과로자살의 행렬 한복판에서

장시간 노동이 유발하는 문제들은 널려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과로자살을 들 수 있다. 과로자살은 과로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고의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일컫는다.

생경한 어휘다. 과로와 자살, 딱히 납득될만한 조합은 아닌듯하다.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과로자살을 사례로 드는 건 꽤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과로로 인한 자살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34세 사회복지 공무원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는 자살 전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할 만큼 격무에 시달리다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만 쌓여만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는 심경의 일기를 남기고 열차에 투신했다.

언뜻 드문 일이고 예외적인 사례라고 치부할 수 있다. 또한 자살의 원인은 다양한데 과로만으로 설명하는 건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억지스럽고 예외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지만, 그 해에만 4명의 사회복지 공무원이 잇따라 자살했다.

왜 과로자살이 반복 발생하는가?

비극의 공통분모는 한 사람이 2~3인분의 일을 짊어지게 하는 업무구조에 있었다. 현장에서는 사업은 늘어나는데 반해 정작 담당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깔때기 모양처럼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을 깔때기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이럴 때면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살인적인 초과에 시달린다.

과로자살의 원인은 업무적인 요인 외에도 개인 요인, 경제 요인, 제도 요인, 사회문화 요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장시간 노동, 과도한 업무, 병영적 조직문화, 직장내 괴롭힘, 억압적 노무관리, 가족 문제, 생활고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맞물린 비극이다. 한 사람이 목숨을 포기한다는 결정까지 수많은 복잡성을 고려하면 자살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특정 작업장에서 자살이 반복된다면, 공통의 구조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가설에 기초해 자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작업장을 분석한다면, 죽음을 야기하는 구조적 위험의 공통 요인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IT개발자, 드라마 PD, 대기업 연구원, 로펌 변호사, 지하철 기관사, 우편 집배원, 현장실습생, 은행원, 증권맨, 제약 영업사원, 대학교 교직원, 지자체 공무원, 서비스센터 기사, 항공사 승무원, 대기업 협력업체 직원 등 반복된 자살 그 자체가 과로사회의 구조적 위험을 드러내야 하는 이유다.

어떠한 시간 구조에 발을 딛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결은 달라진다. 시간 구조는 나를 구성하는 생각, 관계, 감정, 현재와 미래, 사랑, 행복, , 희망까지 모든 것을 모양 짓는 핵심 변인이다. 시간 구조가 어떻게 조직되고 구성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은 물론 사회의 질까지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장시간 노동은 우리네 삶을 쪼그라들게만드는 폭력 그 자체다.

새로운 현상으로서의 과로자살

우리가 과로자살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과로자살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업무에 기인한 자살은 있어 왔다. 그렇지만 과로자살 현상은 90년대 중반 이후 30~40여분 마다 1명 꼴로 자살하는 자살의 폭증이라는 맥락에서 진단하고 해결해야할 새로운 문제다. 이전의 과로자살과는 어떻게 다른지 유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실적 압박이나 성과 평가 같은 개별화된 경쟁 장치가 극단적인 경우 자살까지 내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과로자살을 유발하는 새로운 위험 요인들을 포착해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죽음의 스펙터클을 쓴 프랑코 베라르디는 끊임없는 경쟁이 노동자들의 삶을 한없이 불안정하게 만들어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내몬다고 지적한다. 매일 같이 서로 간에 전쟁을 벌이도록 하는 경쟁 구조는 극도의 스트레스, 무기력·절망감 등 정서의 사막화, 모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이데올로기가 폭력과 모욕을 그럴싸하게합리화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고 이러한 곳에서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노동시간 에세이] 플랫폼 노동시대, 크로노토프는 누가 쓰는가 /2017.7

플랫폼[각주:1] 노동시대, 크로노토프는 누가 쓰는가



정글 노동시간센터 회원


“아버지께서 들판을 가로질러 익사한 소년의 시신을 운반해오셨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 <몬태나주, 마일즈시티>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은 우리는 많은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소년은 누구이며 어쩌다 익사했나?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과거와 미래, 즉 ‘시간’에 관한 질문이다. 또 우리는 저 짤막한 문장에서 들판이 만들어지는 것을 본다. 문장 바깥에서는 소년이 익사한 물웅덩이도 보인다. 러시아의 문예이론가 바흐친은 이렇게 문학 속에서 나타나는 시간(chronos)과 공간(topos)이 응축된 내적 연관을 ‘크로노토프(Chronotope)’라 불렀다. 문학은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대신 시간과 공간을 지시하는 문장을 통해 읽는 이에게 인식되고 재구성되어 가시화된다. 그래서 크로노토프는 진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과 입장을 통해 그려지는 현실, ‘해석되고 구성된 동시대성’이라 바흐친은 말했다.


현실을 비추는 문학의 용어를 다시 현실로 가져와보자. 개인은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개개의 크로노토프들은 서로 갈등하고 포용하면서 공존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개개의 크로노토프를 통해 사회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크로노토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지면에서 주목하는 거대한 크로노토프는 ‘플랫폼’이며, 개개의 서사들은 바로 ‘플랫폼 노동자’다.


오늘날 플랫폼은 주로 스마트폰 앱으로 매개된다. 앱을 통해 남는 방, 자동차, 장비를 빌려줬다. 이것은 일종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노동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간성이 더해졌다. 플랫폼 안으로 서사의 주체인 개인이 대거 들어왔다. 에어비앤비, 우버, 메카니컬터크까지 가지 않더라도 카카오 드라이버, 배달의민족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현실화된 미래의 노동중개 형태인 플랫폼은 다음과 같은 희망을 제시한다. 미래를 스스로 일구고 싶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창업의 무한한 대지가 디지털 공간에 펼쳐진다. 이런 형태의 독립고용노동은 최고의 임금을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게 한다. 분초, 비트 단위로 일할 있다. ‘원하는 만큼 일하고 원하는 만큼 번다.’ 어느 배달업체가 (실제로는 자영업자 지위를 가진) 배달원을 구인하며 쓴 문구다. 플랫폼 안으로 수많은 개인들이 모인다. 그리고 그 주체는 각자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 서사들이 모인 전체 크로노토프의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


매사추세츠대 제럴드 프리드먼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시적 고용형태는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2008년 등 경제적으로 열악한 시기에 급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2006년 이후 미국 내 고용의 순증가는 모두 대체근로의 형태였다. 즉, 이런 고용관계의 변화는 노동자의 선호 때문이 아닌 사용자의 선호 때문이며 플랫폼 노동의 증가는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플랫폼 노동이 이전의 한시적 고용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속도’다. 이전에는 십분 만에 고용하고, 십분 만에 해고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를 가능케 한다. 이럴 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필연적으로 생긴다. 느린 사회적 합의과정을 요하는 법제도가 그렇고 느린 진화과정을 수반하는 노동자의 신체가 그렇다.


법제도를 먼저 생각해보자. 이미 한국에서도 배달업을 중심으로 플랫폼 노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비판자들은 말한다. 고용의 파편화는 사회계약의 폐지다. 사회보장제도의 기원은 노동력 재생산이며 이를 위해 노동자의 신체 보호가 제도화 되었다. 따라서 사회권이 보장되고 노동은 건강, 안전, 존엄이 보장되는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총론은 그럴듯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효과적일까? 렌느1대학 조세파 디링제는 이런 식의 접근은 도급인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는 사회법의 입법 목적을 약화시키며, 보편성으로 특수성을 희석시킴으로써 오히려 개별 법 적용의 필요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프랑스보다 삭막한 우리 현실에서는 플랫폼 노동이 단순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디지털 특고’다. 그러나 단순히 ‘디지털 특고’라는 틀로 본다면 플랫폼 노동 안에 있는 여러 고용관계의 차이가 은폐된다. (이 논의는 이 지면에서는 논외로 한다.)


영국의 우버(uber)[각주:2] 노동자들의 경우를 보자. 영국일반노조는 우버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이에 승소해 우버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최저임금 보장, 유급연가 사용권과 노동시간 제한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는 우버라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버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인격권이 종속됐으며, 이는 우버에 사용자성을 부과하는 주요한 논거가 되었다. 반면, 프랑스는 우버가 사용자인가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노동자의 노동은 고객을 향한다. 노동제공의 조건은 플랫폼이 정한다. 노동자의 급여는 고객이 지불한다. 플랫폼과 고객 모두 별점을 통해 노동자를 감독한다. 누가 사용자인가? 과연 한국의 법체계는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우버 노동자의 소송이 시사하는 또 다른 면은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 문제가 긴 노동시간과 낮은 소득수준이라는 것이다. 우버는 택시기사에 비해 우버 노동자의 소득수준이 높다고 선전했지만 이는 총매출이다. 연료비, 보험료, 차량유지비를 제하면 소위 남는 게 없다. 하지만 노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최저시급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일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플랫폼 배달노동자들도 다르지 않다. ‘원하는 만큼 일하고 원하는 만큼 번다.’는 선전은 살아갈 정도로 벌려면 죽을 만큼 일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신체의 문제, 즉 산업보건의 문제는 어떤가? 하트퍼드셔대 오슐러 휴스와 사이먼 조이스는 이렇게 정리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부실한 장비를 가지고 부적절한 근무환경에서 장기간 일한다. 직업적인 건강악화는 개인이 책임진다. 부적절한 도구나 안전장비, 독성 화학물질, 위험한 근무환경, 훈련 및 감독 부족 등에 의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뿐만 아니다. 일의 불안정성 및 예측 불가능성은 스트레스를 증대시킨다.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못해 심리 사회적 위기에 빠진다. 마감은 분 단위며, 임금도 그에 못지않게 초저가다. 그런데 쉴 수 없다. 쉬는 순간 무한한 경쟁자가 제 몫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에서 평판 관리는 노무 관리의 핵심이며, 한 두 개의 플랫폼이 시장에서 독점적 입지를 강화할수록 플랫폼의 노동자 지배력을 더욱 커진다. 동시에 그런 지배적 플랫폼 안에서 평판 관리는 노동자 내면의 욕망도 부추긴다. 대규모 시장 안에서 평판만 잘 관리하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안겨준다.


지난 세기 동안 나타난 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늘 인간의 불안을 드높였다. 기술 격변의 시대가 지나고 나면 우려와 달리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문제는 어느 시점부터 질도 낮고, 보상도 낮은 일자리로 유휴노동력이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동시간이 큰 폭으로 짧아지면서 고용이 유지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플랫폼 시대의 크로노토프가 누구에 의해 쓰이는 지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노동이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람들이 쓰는 크로노토프는 자기 주체적 서사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가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사회전체의 크로노토프는 특정자본가가 주체가 된다. 사회 보장은 사회계약이었고 그것은 근로계약을 근간으로 했다. 그렇다면 국가 권력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디링제는 법제적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임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 다른 하나는 통합적인 일반노동법을 구성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모르겠으나 한국의 경우 임노동자와 유사한 사회권을 플랫폼 노동자에게 인정하는 것은 아직은 실효성이 낮아 보인다. 노동조건에 순응해버리면 임노동자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산재보상법 개정 이후 개별 배달원이 산재 적용을 받도록 수정되었지만 보험료의 절반을 자부담해야하는 등 장벽으로 인해 실제 가입률은 형편없이 낮은 것이한 예이다. 그냥 안 하고 마는 것이다. 디링제 역시 노동자성 여부에 상관없는 일반노동법에 더 힘을싣지만 이것도 실효성이 있을 지 미지수다. 새로운 특수법의 입법이 늘 마법의 탄환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속도’다. 이들 법이 위키피디아가 아닌 이상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일종의 위키라면 당면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시민사회는 독일 금속노조에서 만든 대안 플랫폼인 Faircrowd.Work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플랫폼이다. 열 두 개의 대표적인 플랫폼을 리뷰하고 있다. 해당 사업체의 약관에 노동권 침해 요소가 있는지 ‘좋아요’로 보여주고, 실제 노동자는 플랫폼을 ‘별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플랫폼 시대에 플랫폼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가는 공적 플랫폼의 도입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형 알파고’가 농담취급 받는 현실에서 시장주의자들의 거센 반발과 냉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이 21세기에 부활한 노동중개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적 플랫폼으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플랫폼과 경쟁하는 방안도 열어두어야 한다.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노동은 시장에 진입하기 전 일시적인 시기를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한시적’이라는 단어는 ‘영구적’과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회보장과 소득보장의 권리는 일상에서 지워진다. 휘황찬란한 기술의 향연에 쉽게 압도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오래된 미래임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의 노동 중개상들은 디지털로 무장하고 제도의 빈틈을 파고든다. 달라진 속도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 플랫폼 노동자에게 사회는 무감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이것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지도 모른다.


  1.  국어사전에서 플랫폼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으로 정의함. 즉 승강장, 정거장을 뜻함. 기술의 발달을 통해 플랫폼이란 뜻도 다양해짐. 원래 플랫폼은 ‘plat(경계를 정한 공간)’과 ‘form(형태)’의 합성어이다. 즉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함. 최근 가장 일반적으로 쓰는 플랫폼의 의미는 ‘인터넷 정거장’임. ‘스마트 시대’에서 인터넷 사업자·콘텐츠 제공자·고객 등 다양한 주체들이 만나는 약속 장소가 바로 플랫폼. (참고: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23159) [본문으로]
  2. 우버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승객과 차량을 이어주는 서비스 [본문으로]

[노동시간 에세이] 야간노동, 교대제를 줄이려는 정책적 접근 /2017.6

야간노동, 교대제를 줄이려는 정책적 접근



김재광 소장



새 정부 들어서 연장과 휴일을 포함한 최대 허용 노동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전에도 강조했지만, 이는 '법규성'도 없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지침을 제대로 돌려놓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가 강조했으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은 법정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나 실 노동시간의 단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노동시간 관련하여 현 정부의 공약이나 현재의 논의에서 야간노동과 이를 동반한 교대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현 정부의 공약에서는 이른 바 '칼퇴근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교대제 노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교대제는 대부분 야간(오후 10시부터 상오 6시까지, 노동법에서는 이를 야간근로라고 지칭함)노동을 포함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간의 양뿐 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고용노동부는 교대제를 "근로자가 일정한 기일마다 근무시간이 다른 근무로 바뀌는 근무 상태 혹은 제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정상적인 낮 시간(오전7시에서 오후7시 사이) 이외에 이루어지는 노동시간"으로 확장하여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고용노동부의 정의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기업체의 15%, 30인 이상 기업체의 경우 33.6%, 300인 이상 기업체의 46.1%가 교대제를 운영(2013년 현재)하고 있어 노동시간의 양과 질의 문제를 언급하는 데 있어 상당한 고려가 필요한 영역임에 분명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교대제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 우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고사하고, 초과노동시간에 대한 기준과 규제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다른 문제를 접근하는데 엄두를 낼 수 없다 점이고, 둘째, 교대제는 고용과 연관되어 있어 이를 개선하려 할 때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며, 셋째, 24시간 돌아가는 생산과 서비스를 한국의 역동성인,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낮에 이루어지는 교대제는 실 노동시간의 단축과 고용 증진에 긍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한데, 오히려 이를 이유로 고용상황이 악화할 수 있는 점이 없지 않아, 이를 논의하기에 한국 사회의 상황이 녹록지 않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필수적인 영역을 제외한 생산과 서비스의 전 분야에서 24시간 노동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이를 근거로 한 야간노동의 폐지를 방향으로 삼아야 하며, 불가피한 야간노동에 대한 최대한 보호와 규제를 새 정부는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야간노동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도입될 정도로 야간노동은 종사하는 노동자는 수면장애, 위장장애, 우울감, 만성피로, 뇌심혈관 질병의 위험의 중가 암 발생 위험 증가, 안전사고의 위험증가, 가정 및 사회생활의 유대 약화 및 단절 등등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위험을 실질적으로 잠재적으로 안고 있다. 이에 국제노동기구, 세계보건기구 등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도 하루 빨리 노동시간의 양과 질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불가피한 분야의 교대제, 개선의 원칙


<야간노동>

- 가능한 야간노동을 안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다.

- 야간 연속근무는 3일 연속하지 않도록 한다.

- 고정된 야간노동을 용역, 파견, 하청화하는 것을 금지한다.

- 야간노동 교대조에서 상시 주간노동조로 전환될 때 반드시 휴일(24시간)를 가지도록 한다.

- 40세 이후는 가능한 주간노동으로 전환한다.


<노동시간, 노동 인력>

- 야간노동의 횟수를 최소화한다. 이를 위한 충분한 인력을 확보한다.

- 야간노동일수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휴일을 부여한다.

- 주 단위 노동시간과 최대노동시간을 미리 확정한다.

- 야간노동의 노동 강도를 완화한다.


<교대가 이루어지는 시간>

- 오전 6시 이전이나, 심야에 교대하지 않는다,

- 교대시간에 교통의 편의를 제공한다.

- 교대시간에 안전의 문제를 보장한다.


<야간수면>

- 야간노동이 이루어지는 동안 안정적인 가면(假眠)을 보장한다.   


<교대주기>

- 24시간 격일제(맞교대)를 금지한다.

- 짧은 주기 교대 방식을 선택한다.

- 교대근무와 주간 고정 근무를 일정한 시기를 두고 번갈아 실시한다.

- 정교대(오전-낮근무-밤근무 순) 순서를 지킨다.


<휴식시간>

- 야간노동 시 주간노동 시에 비해 2배 이상, 식사시간을 제외한 1시간 이상의 절대적 휴식시간을 보장한다.

- 3교대 근무 시 연속 2개의 교대근무를 해서는 안된다.


<휴일>

- 교대근무 시, 최소 1일주일에 1일이상의 유급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 월 1회 이상 주말에 유급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사회적 휴일 보장)


< 예측 가능한 일정>

교대 일정은 최대한 간단해야 하고, 예측가능 하여야 한다.


<업무내용과 형태>

야간노동 시 정밀한 작업이나, 안전 위험이 있는 작업은 금지하거나 최소화하여야 한다.


<작업환경>

- 야간노동 시 적절한 조명과 환기, 고립최소화, 적절한 구급시설 등의 요건을 확보한다.

- 야간노동 시 가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임금>

- 주간 노동만으로도 생활임금이 달성되도록 한다.

- 야간노동에 대한 부가 수당은 당연한 것이나, 이를 위한 노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령, 임산부 등 민감 집단에 대한 배려>

- 임신 중에는 야간노동을 금한다.

- 40세 이후 야간노동을 최소화 한다.

- 심혈관 질환, 위장장애, 수면장애, 간질, 야맹증 등이 있는 경우 야간근무를 금한다.

[노동시간 에세이] 법정 노동시간을 무색케 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 /2017.5

법정 노동시간을 무색케 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 




이혜은 노동시간센터회원



한국 노동시간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고 하면 모두 첫 번째로 장시간 노동을 들 것이다. 2004년부터 한국의 법정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그러나 하루 8시간, 주 5일은 사실 매우 상식적인 기준임에도 매년 OECD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2~3등이라는 발표를 접한다. 이러한 괴리는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을 정하는 근로기준법에 커다란 두 가지 함정 '허용되는 연장 근로시간'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문제에 있어 핫 이슈로 등장한 이 제도에 대해 대선후보마다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걸기도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나,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1주간 12시간 한도 내에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마치 일주일의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인 것처럼 보이나 휴일 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괴한 행정해석 덕택에 토, 일요일 각각 8시간을 근무할 경우 1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에 달하게 되고 이 관행이 암묵적으로 묵인됐다. 


이를 바로잡아 "1주"를 휴일을 포함한 7일로 명시하여 1주간의 최대 노동시간을 기존의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 지난 3월 국회에서 다루어졌으나 개정 방향은 합의가 되었으나 단계적 시행의 범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간 특례업종 제도 역시 개선 필요성을 주장한 지는 오래되었으나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이 '특례업종'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약 4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서 노동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이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보여준다. 그나마 최근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개선방안이 현행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표준산업분류에 따라 26개로 재분류하면서 이 중 10개 업종은 특례업종으로 유지하고 16개 업종은 제외하는 내용이다.


<특례 유지 업종>

1.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 운송업

2. 수상운송업

3. 항공운송업

4. 그 밖에 운송 관련 서비스업

5. 영상ㆍ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

6. 방송업

7. 전기통신업

8. 보건업

9. 하수ㆍ폐수 및 분뇨처리업

10. 그 밖에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특례 제외 업종>

1. 보관 및 창고업

2. 자동차 부품 판매업

3. 도매 및 상품 중개업

4. 소매업

5. 금융업

6. 보험 및 연금업

7. 금융 및 보험관련 서비스업

8. 우편업

9. 교육서비스업

10. 연구개발업

11. 시장조사 및 여론조사업

12. 광고업

13. 숙박업

14. 음식점 및 주점업

15. 건물, 산업설비 청소 및 방제서비스업

16. 미용, 옥탕 및 유사서비스업 


과연 이대로 언제쯤 처리가 될 것인지도 불투명하지만 제안된 상당히 많은 대상이 특례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이긴 하나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운송업을 특례업종으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건강뿐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되어 해외 대부분 국가에서 대중교통 운전자의 운전시간을 제한하는 것과도 거꾸로 간다. 몇년 째 해결하지 못하고 끌어오고 있는 문제이지만 새로운 정권에서는 운송업까지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법 개정이 통과되길 바란다. 또한, 특례업종이 일부 남게 되더라도 주당 60시간 등 초장시간 노동의 제한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로와 관련된 업무상질병 평가와 판단의 문제

한국의 산재보상보험법에서 과로와 관련하여 뇌심혈관질환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보통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으나 많은 의학연구에서 장시간노동과 직무스트레스가 뇌심혈관질환의 사망률 혹은 발병률을 높였다고 관찰한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은 다음과 같은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과로를 평가하고 있다.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고용노동부고시 제2016-25호, 2016.7.1., 일부개정]

Ⅰ.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1.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이하 “영”이라 한다) 별표 3 제1호 가목 1)에서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란 발병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연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를 말한다.

 

나. 영 별표 3 제1호 가목 2)에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 · 정신적으로 과로를 유발한 경우”란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의 근로자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하며,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ㆍ시간ㆍ강도ㆍ책임, 휴일ㆍ휴가 등 휴무시간, 근무형태ㆍ업무환경의 변화 및 적응기간,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다. 영 별표 3 제1호 가목 3)에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란 발병 전 3개월 이상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간, 작업 환경,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되, 업무시간에 관하여는 다음의 사항을 고려한다.

 

1)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

2)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서서히 증가하며, 야간근무(야간근무를 포함하는 교대근무도 해당)의 경우는 주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처럼 크게 급성과로, 단기과로, 만성과로를 평가하며 노동시간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만성과로의 기준이 주당노동시간 60시간 혹은 64시간에 달하는 점이다. 역시나 법정노동시간 40시간은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더 큰 문제점은 이 기준을 적용할 때에 이리 떼고 저리 떼어서 굉장히 협소한 평가를 한다는 점이다. 2016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에서는 뇌심혈관질환으로 근로복지공단과 재해자 사이의 행정소송 판례를 검토하여 여러 문제점을 찾아냈다. 


예를 들면, 업무범위를 매우 편협하게 해석하여 노동시간을 줄인다. 영업직원이 접대를 위해 주말 산행을 했다면 이를 노동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대기시간과 휴게시간 역시 노동시간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마땅한 휴게실도 없이 한밤중에 3~4시간 주어지는 휴게시간이 노동시간에서 완전히 제외되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규정에 제시된 노동시간에만 몰두하여 과로를 보여주는 여러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야간노동과 교대노동은 규칙적인 주간노동에 비해 강도가 높다는 것이 고용노동부 고시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업무량 증가나 인원 감축, 휴일 없는 연속근무 역시 과로의 증거로 고려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고시에도 급성과로에 대한 인정기준이 있으나 이를 인정하는 기준이 매우 높은 것인지 심한 육체활동이나 큰 심리적 스트레스 사건 직후에 발생한 뇌심혈관질환 역시 스트레스 요인을 찾을 수 없다며 인정되지 못하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현재의 규정을 산재보험의 취지에 맞도록 폭넓게 적용이 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과로의 평가 및 판정 지침의 개발이 다시 이루어져야 하고 업무관련성의 판단에 참여하는 질병판정위원,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직원 등에게 지속적인 교육 및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로에 의한 업무상질병 인정은 장시간 노동의 예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새로운 정부에서는 특히 이 문제에 대해 재해자, 노동단체와 노동조합 등 관련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