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2018.10

목숨 걸고 일하는 청소노동자의 하루

- 마포구 청소위탁업체 노동자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사람들은 더 사용할 수 없어지거나, 가치가 없어진 물건을 쓰레기라 칭하고 버린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발생시키는 폐기물을 '생활폐기물'이라고 하는데, 환경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51,247톤, 1인당 0.97kg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쓰레기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치워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 거리 환경미화원들은 어둠이 내린 밤에만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의 유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9월 14일 오전 9시 마포구청 앞에서 피케팅 중인 그들을 만났다. 마포구 청소 위탁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인 이들은 민간위탁 폐지와 직고용 전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인터뷰는 배성훈 위원장, 신용진 조합원, 서복석 조합원, 김성민(가명) 조합원 총 4명이 함께 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한 건 작년 7월이다. 무엇보다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배성훈 "주 6일 야간근무를 합니다. 지금보다 당시엔 10명가량 적은 인원으로 일을 했고, 작업량도 훨씬 많았습니다. 관리직 빼고 22~23명 정도가 근무했어요. 아무리 짧게 끝나도 평일 10시간 근무는 기본이었어요. 저희가 토요일 휴무인데 쉬고 출근하면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12~13시간 일을 해야 했죠. 게다가 관리자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해주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죠. 하다못해 내 연차도 자유롭게 못썼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사측 탄압이 거셌습니다. 신입 직원 중 수습 하던 분들은 계약해지 당했고, 퇴사도 당했어요. 대부분 노동조합 가입을 하려는 분들이었죠. 노동조합 생기고 나서 회사는 신규직원을 10명가량 채용했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조합을 축소시키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소속 조합원이 8명이에요. 대표노조는 기업노조가 됐죠."


이들의 일과는 밤에 시작된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는데, 일요일 출근은 오후 4시 30분~5시에 하여 다음날 오전 6시~7시에 퇴근, 화~금요일은 저녁7시까지 출근해 다음날 오전 5시~6시에 퇴근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 얼마 전부터 일요일 저녁 7시에 출근해 오전 6~7시에 퇴근, 다른 요일에는 밤 9시에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쓰레기양도 어마어마하다. 뉴스타파 보도 영상(18년 1월25일)에 따르면, 마포구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의 경우 혼자서 하루 3톤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고 1805세대를 돌아야 한다. 5분에 쌀 한가마니(80kg) 무게에 이르는 폐기물을 쉼 없이 들어 올려야 겨우 일을 마친다.

휴일은 일주일에 토요일 단 하루다. 토요일 오전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1주일 치 피로를 푸는 잠을 취하고 나면 출근해야 하는 일요일 밤이 금세 돌아온다. 만약 토요일에 일이 있다 치면 그마저도 날린다. 사실상 이들에게 온전히 쉬는 날은 없다.

연속 야간근무를 해도 되는 걸까? 야간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절대 좋지 않다. 가장 흔하게 수면장애, 우울과 불안, 소화기계 질병을 일으키고, 오랜 기간 야간 노동에 종사할 경우 뇌심혈관 질환과 암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럼에도 이들은 6일 연속 야간근무를 한다. 서복석 조합원은 벌써 11년째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연속 야간근무 개수, 야간근무와 다음 야간근무 사이의 간격, 1주일 및 1개월에 가능한 야간근무 일수 등 세부적 규제가 없다. 단지 임금가산과 보상휴가만 명시할 뿐이다.

김성민 "불면증은 당연해요. 생체리듬이 바뀌니까요. 정말 힘든 건 생명의 위협을 매일 느낀다는거예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는데 말이죠."

서복석 "야간에는 시력이 저하돼요. 빛에 약해지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오래 못 쳐다봐요. 별것도 아닌 거에 신경도 예민해져요. 잠도 많이 못 자죠. 자더라도 깊이 못자요. 사실 야간 일을 하지 말아야죠."


하지만 마포구청은 문제를 제기한 노동조합에 주민들이 냄새와 청결 문제로 낮에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밤에 하는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야간노동으로 겪는 문제는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된다.

배성훈 "가족 모임이요? 상상도 못하죠."

서복석 "친구들하고 멀어져요. 모임에 가서 술 한잔해도 일찍 뻗어요. 2차 갈 생각도 못하죠. 모임에 가서 심지어 졸아요."


아픈 몸과 사회적 관계 단절은 정신 건강까지 위협한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이미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김성민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요. 동일한 곳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사유서를 써야 해요. 누적되면 징계도 가능하죠. 회사에서 노동자가 마음에 안 들면 해고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노동자로서 자존감이 날아가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휴게시설이 근무지마다 있지 않아 지하철 화장실이나 빌라 주차장 뒤편에서 눈치 보며 갈아입는다. 어둡기 때문에 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 옥탑에 탈의실이 가건물로 하나 있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거리가 멀어 불가능하다. 탈의실만 아니라 휴게실, 샤워실 등 필요한 공간이 없는 문제도 심각하다.

배성훈 "저희는 밥도 못 먹어요. 미화원 근무복을 입고 쓰레기를 수거하다보면 오물이 많이 묻어요. 냄새가 나서 식당을 못 가죠. 그래서 정말 배고픈 사람만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는 정도예요. 그러다가 저희가 문제 제기를 계속하니까 이제야 취업규칙에 있는 1시간 휴게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이들의 담당지역은 마포구인 상암동, 성산동, 합정동, 상수동, 창전동, 서강동 6곳이다. 유동인구도 많고 상업지구가 몰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성훈 "상암동은 다 빌딩이라 무거운 게 많이 나와요. 100L 쓰레기봉투에 150L 양의 쓰레기를 담아 버려요. 그리고 농수산물 시장도 어려운 곳 중 하나예요. 거긴 쓰레기 압축기를 쓰거든요. 젖은 쓰레기를 100L 봉투에 담아 버리는데, 80~100kg 정도는 나갈 거예요. 둘이서 낑낑대며 겨우 들죠. 시장에 가면 그런 야채 쓰레기가 엄청 쌓여있어요. 제가 올해 1월에 거기서 수거작업 하다 청소차 회전판에 손이 껴서 부러졌어요."

김성민 "쓰레받기나 빗자루 사용은 엄두도 못내요. 일단 큰 마대자루를 땅바닥에 놓고 손으로 막 쓸어 담아요. 봉투에 잘 담겨 있으면 좋은데, 편의점 봉다리 같은데 넣고 안 묶어 두는 게 많아요."



마구 섞여 있는 쓰레기, 묶여있지 않은 봉투, 날카로운 것 등 위험 물질이 섞여 있지만 알 수 없는 상황 등이 청소 노동자들의 안전을 항상 위협한다. 무게 제한 없이 담긴 무거운 쓰레기 뭉치를 청소차량에 직접 들어 던지고, 받는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 부상, 추락의 위험도 높다.

청소 차량 적재함에 쓰레기를 담고 발로 눌러 담으면 어느새 산처럼 높이 쌓이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아니라 한 번 실어 나를 때 무조건 많이 담는 게 중요하기에 무시한다. 전기선이 낮게 위치한 주택가를 치울 땐 긴장하게 된다. 밤이라 잘보이지 않는 전깃줄이나 나뭇가지에 걸려 추락하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적재함에 올라타 있다가 전깃줄에 얼굴이 걸려 입이 찢어진 동료도 있다.

배성훈 "발판에 매달려 이동하다가 사망 사건이 많이 생겼죠. 마포구청에 불법 아니냐고 물었는데, 서로 책임을 미루더라고요. 결국 신문고에 올려서 떼게 했어요. 그런데 다른 업체는 발판을 다시 붙여서 매달려 일하더라고요. 저희는 걸어 다녀요. 조금 거리가 있으면 운전석 자리에 탑승해요. 걸어 다니는 게 훨씬 안전해요."

이처럼 사고의 위험도 높고 중량물 취급의 반복 작업을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지만 산재처리는 꿈도 못 꾼다. 공상처리라도 해주면 다행인 현실이다. 산재 신청을 하겠다고 회사에 얘기했더니 인정 못 해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위탁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마포구청도 별 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포구와 업체를 상대로 민간위탁이 아닌 직고용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에 대한 조치를, 조합원 상대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올해 노동조합과 면담을 진행하고 나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징계처분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배성훈 "청소 노동자들에겐 안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항상 위험을 강요받았어요.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해야 해요. 야간근무는 매우 위험합니다. 야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가 많아요. 그리고 민간위탁 형태는 업체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인원수를 줄이고, 안전에 투자를 하지 않아요. 전문 경영인이 보다 나은 서비스와 질을 제공하기 위한다는 목적에도 맞지 않죠. 사실 소수 몇 명을 먹여 살리는 게 민간위탁입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죽여가면서요."

김성민 "저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도 일해요. 만약 구청 소속이었다면 험한 상황에서 최소한 한 시간이라도 작업중지 시켰을 거예요. 저는 저희가 하는 이 일이 공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산업안전보건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제대로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청소노동자들이 어떤 건강 문제에 처해있는지도 제대로 연구되고, 조사되면 좋겠습니다."

신용진 "우리가 다 같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면 조금씩 변화할거라 생각해요. 우리가 비록 소수노조지만 회사도 분명 우리 눈치를 보거든요. 함께 뭉쳐서 바꿔내는 게 우리 힘의 원천이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 좋겠어요."

서복석 "전국의 청소노동자분들 현실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게 어렵겠지만, 그래도 힘들다면 과감히 건강을 꼭 먼저 챙기시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연구리포트]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 2018.10

저임금 불안정노동자 ‘공급원’인 현장실습

- 반월시화공단 현장실습생 실태조사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16학년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는 전국 593개교 60,016명이 참여했으며 참여 기업은 31,404개에 이른다. 2017년 제주도의 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기계에 깔려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 이전에도 많은 죽음이 있었다. 2017년 12월 1일 정부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2018년 2월 발표한 개선안에서 ‘산업체 채용 약정형 현장실습’을 제시하고 있어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을 여전히 살려놓고 있다. 이 글은 반월시화공단에서 현장실습을 한 19명, 그리고 도제학교 학생 4명의 면접 조사를 토대로 한 실태조사 결과이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의 문제점과 이후 직업 세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은 25만 명이 일하는 큰 공단이지만, 한 업체당 20명 미만이 일하는 소규모 제조업체 중심 공단이다. 2015년 9월 민주노총의 ‘2015년 전국 산업단지 노동실태조사’ 결과에서 반월시화공단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위반은 92%였고 최저임금 위반은 40%를 넘었다. 2016년 3월 <반월시화공단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빈도수는 55.74%에 달한다. 이런 현장이 결코 좋은 ‘실습장’이 될 수는 없다. 현장실습생들의 첫 번째 일터, ‘실습’이라는 명분으로 일하게 되는 현장은 노동에 대한 불안과 혐오를 심고, 자신의 미래를 고통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들 뿐이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반월시화공단으로 현장실습을 하러 온다. 경기도 지역이 특히 많은데, 안산에 있는 한 공고의 경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반월공단 내 모두 213개 업체에 모두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보냈다. 그 외에 안산과 시흥지역의 공업고등학교들이 반월공단 내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많이 내보냈다. 전공과 관련이 없는 제조업 생산직이다. 그 외에 경기권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반월시화공단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내보내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학생들도 현장실습을 ‘취업’이라고 인식하고,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들도 현장실습을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받는 통로’로 인식한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이름만 ‘현장실습’일 뿐 실질적으로는 ‘조기 취업’을 하러 반월시화공단으로 가는 것이다.

1. 현장실습에 대한 학교의 준비와 대응

학생들이 직업계고를 선택한 이유는 주로 ‘내신성적’이었다. 면접 참여자 대부분이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할 때 직업계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적성과 진로 계획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성적, 친구, 취업률을 앞세운 학교 홍보물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또, 공부로는 뒤처지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는 것이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직업계 고등학교는 공업, 상업, 농업, 해양, 보건,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과를 개설하여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학교와 학과 특성이나 향후 진로와의 연관성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선택에 어려움을 느낀 상태로 직업계고에 들어오게 된다.

학생들은 재학 중에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각종 자격증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격증을 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 보니 자격증을 인정하거나 대우해주지도 않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대부분 ‘노동인권 교육’이 무엇인지 묻거나, 뭔가 배우기는 한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산업안전과 근로관계법”에 대해 의무적으로 15차시 교육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교육의 효과성이 의문이다. 대강당에 전체 학생을 모아놓고 외부 강사가 대규모로 교육하거나, 온라인으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에 필요하지 않은 자격증만 갖춘 상태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준비 없이 현장실습에 나간다.

면접자들은 ‘취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한다. 한 손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고 목에 사원증을 매는 일자리를 상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공단으로 출근한 이들은 바로 현실을 알게 된다. 실망하는 학생들에게 교사들은 ‘어디가든 똑같다’고 말한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고 취업으로 연결되는 확률도 높은 곳은 ‘성적 좋은 애들만 뽑아서 보내’는 곳이다. 성적이 안되면 기계과를 나왔지만 리조트에 가고, 설계를 하고 싶지만 도면은 구경조차 할 수 없으며, 기능장을 만들어준다 말했지만, 청소의 달인이 된다고 말한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돌아간 학생들에게 학교는 ‘청소’나 ‘껌 떼기‘를 시키고, 깜지를 쓰는 등 징계를 하기도 했다.

현장실습이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나간다. 3학년 2학기 수업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현장실습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학교를 벗어나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통해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적인 대우를 알게 된다. ‘억압받고 무서운 느낌을 일찍 알게 되어 취업을 망설이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다시 취업하지 않고 알바를 하거나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변경한다. 그런데 대학을 가더라도 현실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취업’을 유예하는 것이다.

2. 실습 현장의 실태

학교는 ‘현장실습’을 조기 취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학교-기업’의 연결망을 형성하려고 한다. 현장실습은 취업률 지표로 나타나고 학교의 실적과 연결되고, 기업은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현장실습을 나온 경우 학생들은 이곳을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는 것을 전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실습을 마친 후 일터에 대해 ‘무서운 느낌’을 갖고 졸업과 동시에 그만두거나, 대학진학을 모색한다. 대부분이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곳에 ‘조기 취업’을 했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게 된다.

게다가 실습지의 노동조건도 형편없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검토해보니 2018년 현재 월 임금 총액은 평균 169만원, 주당 노동시간은 무려 51.4시간에 달한다.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계산한 2018년 월 최저임금이 약 157만 원임을 고려한다면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사실상 최저임금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51.4시간에 이르는 주당 노동시간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도 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현장실습을 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수당을 기본급에 편입하는 등 편법으로 임금체계를 바꾸기도 했다.

무책임한 기숙사 공간도 이들에게는 매우 충격이었다. 지방에서 온 학생의 경우 기숙사 한 방에 16명이 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회사는 공장 사장실 옆방을 기숙사로 만들어서 밤에도 호출하여 일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면접자들이 경험한 일터는 노동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들이 매우 미흡하고 위험한 환경이었다. 이에 한 면접 참여자는 ‘무서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대다수는 현장을 떠난다. 그리고 현장을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자신의 미래를 이곳에서 찾지 않는다. 모든 면접자 중에 이곳에서 일을 계속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기에서 돈을 벌어서 자영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하거나, 혹은 다른 기술을 배워서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민을 준비하는 이도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현장실습을 왔다가 중도 포기한 경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대학을 가더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부유하는 노동자:시흥시 정왕동 1인 가구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세계,”(『산업노동연구』 22권 1호))에 의하면 결국2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제조업 공단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높다고 한다.

3. 졸업 후에도 현장에 남는 학생들은 왜?

일부 학생들은 졸업 이후에도 계속 현장에 남는다. 이들의 현장실습지였던 반월시화공단이 결코 좋은 일자리가 아닌데도 친구들이 떠나간 일자리에 계속 남아서 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방 출신의 경우 서울 근교에 온다는, 수도권에 진입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희망을 품고 현장실습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단 지방을 떠나오면 다시 돌아가지 않고 수도권에 정착하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면접자들은 그래도 집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반월시화공단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집에서 독립한다는 것도 매우 큰 기대감이다.

또 하나 남성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의 전망을 뚜렷하게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군대 가기 전까지 일하는 ‘임시직’ 일자리라고 생각하며 다니기도 한다. 졸업 이후에도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면접 참여자들의 경우 ‘뭘 할지는 군대 다녀와서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거나 ‘군대 가기 전에 돈을 벌어서 군대 다녀온 이후에는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의 임시적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구하기보다는 현장실습을 한 곳에서 그대로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월시화공단에 계속 남아서 일을 하는 이들은 ‘산업기능요원’인 경우도 많다. 산업기능요원제도란 기술 자격이나 기술 면허를 가진 청년들을 군 복무 대신 국내 중소기업에 근무토록 하는 병역대체 복무제도로서, 중소기업 인력난을 덜고 고교졸업생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2011년부터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위주로 운영을 하고 있다. 2016년의 경우 특성화고 등의 배정율이 무려 85.7%에 달했다. 그런데 일자리를 옮길 경우 노동자가 직접 다른 특례업체를 찾아야 해서 쉽게 옮기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헌신과 차별을 강요한다.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었고, 노동법위반 사실을 알아도 제보를 하기 어려워했다. 졸업 이후에도 3년간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도록하는 굴레이다. 

최근에는 일·학습병행제가 노동자들을 열악한 일자리에서 계속 일하도록 만든다. 일·학습병행제는 ‘기업이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해 현장 훈련을 하면서 동시에 전문대에서 이론 교육을 받게 하는 교육 훈련 제도’이다. 이 제도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6개월 ~ 4년간 직장에 다니면서 학교 교육을 받는다. 회사와 학교 간 협약을 통해 운영되며 비용은 고용보험 기금에서 지출된다. 다른 회사로의 전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해도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처럼 전직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노동자를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묶어둔다.

현장실습이 학생들에게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대부분은 현장실습 이후 현장을 떠나지만, 정부가 중소기업 구인란 해소, 고졸 취업 장려를 명목으로 만드는 일·학습병행제나 산업기능요원제도가 노동자들의 발목을 붙잡아서 이 열악한 일자리에 3년 ~ 4년간을 버티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간을 버틴 노동자들은 이 일자리에서 자신의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이곳을 탈출할 준비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고, 중소 공단의 일자리 질을 높이지 않고, 열악한 일자리에 노동자들을 붙잡아두는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젊은 노동자들이 이 현장에서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4. 왜 대안적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가

힘들고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면서도 현장실습을 하거나 혹은 현장실습 이후에도 반월시화공단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상황에 맞서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있으며, 친구나 동료를 만나서 자조 섞인 한탄을 하거나 혹은 장기적으로 이곳을 떠나는 것을 꿈꾸며 버틸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장 실습제도가 불만이 있어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어렵기 때문이며, 졸업 이후에는 산업기능요원제도나 일·학습 병행제도에 묶여 현장을 떠나기 어려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을 시작할 때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노동인권교육에서는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은 가르치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했을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학교는 문제가 생길 경우 ‘참으라’고 할 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한 회사에 16명 정도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고, 대부분 한 회사에 1명 내지는 2명 정도가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뿔뿔이 흩어져있기때문에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설령 산재를 당해도 회사에서 공상 처리하라고 하면 그래야 하는 줄 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노동조합’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이번 조사에서 놀란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대한 질문 자체를 어려워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론을 주의 깊게 보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의 경우, 학교에서 배우거나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을 인식하기 어려웠다.

5.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폐지해야 하고 새로운 직업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교육부는 2018년 현장실습에 대해 ‘교육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학생의 선택을 보장하도록 관련법을 정비했지만, 현장실습의 여러 유형 중 ‘산업체채용 약정형’ 중심으로 개선안을 마련하여 학교현장과 학생이 체감하는 변화는 미지수다. 포장지만 ‘학습 중심’이고 실제로는 조기 취업이기 때문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도구로, 산업체 입장에서는 저임금 노동력을 받는 통로 정도로 여기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중단해야 한다. 학교가 중심이 되어 학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현장실습을 운영할 수 있도록 현재 의 직업교육을 점검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권 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

현행의 산업기능요원 제도와 일·학습병행제도에 대한 성찰과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산업기능요원’, 일·학습병행제도의 ‘학습 근로자’라는 특수신분의 폐해가 심각하다. 일반노동자와 구분되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해당 노동자들은 자신의 회사에 상당 기간 동안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전직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학습과 특정기업근무를 분리하는 방향으로의 일·학습병행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조건에서 남은 병역기간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복무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기능요원 제도와 일·학습병행제도를 활용하려는 기업의 기준을 강화하고 별도로 특별 근로감독을 해야 하고, 전담 상담창구도 마련되어야 한다.

고졸 청년 진로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취업담당 교사가 전체 학생들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고용지원센터와 학교가 연계하여 전문 직업상담원을 배치하고, 학생들을 위한 진로 선택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과정에서는 담당 교사와 전문 직업상담원과 함께 취업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에서 고졸 취업에 대한 지원을 하고자 한다면 학교와 고용지원센터를 연계하는 직업상담원을 적극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취업을 ‘현장실습’, 혹은 ‘중소기업 생산직이나 사무보조’ 등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맞춤형 진로 및 취업상담을 해야 한다.

청년노동자들이 유입되려면 공단이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그대로 둔 채, 병역특례나 일·학습병행 제도 등 공단에 유입할 수 있는 외부적 유인만 강화한다. 중소기업이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유인이 생긴다. 최저임금의 실질적 인상이나 청년노동자들이 주로 취업하는 중소사업장에 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노후화된 공단을 청년노동자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재생’하는 것, 예를 들어 주거환경 개선이나 노동자들의 교육 훈련 기관의 확대 등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노조를 경험하게 하는 것, 노조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노동조합이 전교조 직업계 담당 교사들과 연계하여 노동권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노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현수막, 공중파 광고 등 최선을 다해서 노조를 알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노동조합 형식으로는 공단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는 어렵다. 개인이 가입할수 있는 형태로 노동조합의 형식을 바꾸어 노조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특집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치유활동가 허윤제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해서 현장에서 함께했던 활동,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치유활동가 허윤제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1일 충남아산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활동

"저는 2011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두리공감은 충남도, 아산시, 금속노조, 공동으로 활동하는 현장, 개별 등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첫 활동은 지역에 있는 유성기업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노조파괴 문제로 조합원들 정신건강 문제에 개입하면서였어요."

허윤제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인데 이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다치거나, 자살하는 경우를 해마다 보면서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죽지 않게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활동해왔는데 유성기업에서 한광호 열사 돌아가셨을 때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2차, 3차 피해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긴급하게 위기 지원 활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이 활동으로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노동자 개인적 원인이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나쁘게 하는 건 노동조건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이거든요. 회사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지난 시간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이후에 5년 동안 꾸준히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어요. 개인, 집단 상담은 물론이고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도록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사업단을 구성하게 하고 늘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어요.

그러다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일단 현장에서 상주하자는 생각으로 1주일에 2~3일 정도 내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저희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있으니까 경계심도 풀고 마음을 열고 각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갑을오토텍 역시 직장폐쇄 이후였는데 투쟁 과정에서 분임조를 운영할 때라 분임조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조합원들 상황을 같이 점검해보고, 몇 달간 집단 상담 등을 해왔어요."

유성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차량에 자살 도구를 가지고 다니거나, 정신을 차려 보니 베란다나 옥상에 있었다는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조합원에 대한 산재 인정을 촉구하고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임시건강진단 등을 요구했으나 관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현장 노동자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으나 아직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 역시 두리공감 활동가들이 함께해왔다.

모두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문제

"개별 기업이나 자본, 정부, 지자체, 국회, 전문가들까지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인 것 같아요.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게 만약 노동자가 일하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거나 다쳤다, 그러면 원인이 너무나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질병처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업무로 인해 우울증 증상이 있는데 가정에서의 분란 등으로 인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하면 정신건강의 원인이 현장에서의 상황 때문인지 개별적인지 명확하게 밝히기가 어렵잖아요. 이렇다 보니까 개별 기업은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개별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개별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있겠어요."

허윤제님은 일부 개별 기업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현장 내 자체적인 상담실을 마련해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대응하는데, 이 역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의 정신건강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니까 정신건강을 돌봐서 생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예요. 회사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회사가 운영하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해요. 상담 과정에서 개인 정보도 많이 요구하고 나한테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인사고과나 구조조정 등에 있어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가 자신을 보호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모든 이야기를 다하겠어요.

심지어 저희 두리공감에도 말씀을 꺼리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거든요."

허윤제님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은 노동조건이나 업무 스트레스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연구나 사례들을 전문가가 많이 발견해서 개별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이나 자본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아직은 고민이 부족한 문제

"유성기업 문제 이후로 노동조합에서 투쟁이 어렵거나 뭔가 돌파구가 없을 때 정신건강 문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는 중요한 일인데, 문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실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저희가 현장과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어요."

허윤제님은 이런 사례들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일상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거나, 고민하기 어려운 점이라며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해결하려면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일환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담당자도 세우고 이 문제를 적극 고민이 가능하도록요.

그런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 고민을 주도적으로 하는 주체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두리공감에선 이제부터라도 현장 주체를 발굴해보자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은 시작으로 상담, 치유활동에 대한 양성과정과 매뉴얼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상당히 고무적인 게 유성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해 보겠다 이야기 나오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투쟁할 시간도 없는데 뭘 이런 거까지 해야 하느냐 이야기도 있고, 주요 투쟁 일정에 밀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된 거예요."

허윤제님은 갑을오토텍의 경우 투쟁 백서를 만들고자 하는데 이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상담, 치유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주체 발굴 활동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가장 큰 원인

"현장에 가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태조사 등을 해보면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노동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생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인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여러 논문을 검토해보고 현장에 가서 봤을 때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계가 너무 힘들고, 고용이 늘 불안하고,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겠더라고요. 아직 사회적 인식이 기업이 잘 살아야 나도 잘산다고 생각하잖아요."

지금까지 활동의 성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라는 게 집단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우리를 탄압해서 힘들어도, 노동자들이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지 투쟁해서 이기면 괜찮아 지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제는 공동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인식한 거예요.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치유활동가의 의미

"제가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상담사라거나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는 활동이 현장과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그들에게 현장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과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치유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특집2.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 2018.10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행복하게 일할 권리!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본인의 일, 직업에서 자부심이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혹시 로또에 당첨되어 10억 원 정도의 돈을 받게 되더라도, 지금의 일을 계속할 생각인가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매년 500명~600명이 일과 관련된 이유로 자살하는 한국에서 얼마나 되는 노동자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2017년 프랑스 민주노조총연맹이 프랑스 노동자 19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4%는 '자신의 일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의 70.5%는 '일을 하면서 가끔 웃는다'고 답했고,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 이상, 자부심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절반이 넘었다. 39%는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지금의 업무를 계속하겠다고 응답했다.¹⁾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질병 예방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이렇게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활동을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까지 폭넓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라고 하면 흔히 우울증과 같은 중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을 떠올리게 된다. 일터에서의 정신건강보호 활동으로는 심리 상담이나 치료 지원, 직업병 인정 등이 제안된다. 직장 내 스트레스나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정신 질병이나 자살 사건에 대한 산업재해 승인과 보상 역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노동자의 정신건강 보호와 예방 논의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줄이기 위한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직무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과제로 인식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라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직무스트레스를 평가하는 여러 모델을 활용하여 ▲업무의 양과 요구가 적당할 것 ▲업무에서 노동자의 자율성을 가능한 보장할 것 ▲고용 불안정을 가능한 낮출 것 ▲직장 내 조직 체계를 공정하고 정의롭게 할 것 ▲업무환경이 심리적 안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것 ▲동료, 상사와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제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것 ▲평등한 조직 문화를 구축할 것 등의 과제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전사회적으로 높아지는 고용 불안정이나,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 요구, 노사갈등이나 노조 탄압에 업무를 활용하는 행태 등은 모두 노동자 정신건강을 저해하는 요인들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문제 제기가 더 높아져야 한다.

정신 질병에 대한 관심 역시 질병에 도달하기 전 상태인 소진 증후군, 병가 사용 증가, 업무 만족도 감소, 이직 의도 상승 등으로까지 확대돼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의학적 진단명이 아닌 '소진 증후군'도 업무와의 관련성이 증명되면, 산업재해로 인정되어 노동자가 산업재해와 관련된 각종 보상을 보장받는다.

실제로 2011년 스웨덴에서 총 451건의 번아웃 증후군 관련 질병이 산업재해 승인 신청됐고, 이 중 70건이 인정되었다고 한다.²⁾ 보상에서의 확장뿐 아니라, 직종별, 세대별로 질병 이전의 이런 실태에 대한 조사와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개선을 위한 정부, 기업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활발히 토론돼야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보호를 사업주의 법적 책임으로 

이를 위해,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사업주의 책임이라는 것이 법적 수준에서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사업주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보건조치' 조항에는 물리적 요인, 화학적 요인, 인간공학적 요인에 대한 조치는 담겨있지만, 정신건강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 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사업주의 의무를 가장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보건조치 조항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련된 조치 의무를 담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보건조치)
① 사업주는 사업을 할 때 다음 각 호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원재료·가스·증기·분진·흄(fume)·미스트(mist)·산소결핍·병원체 등에 의한 건강장해
2. 방사선·유해광선·고온·저온·초음파·소음·진동·이상기압 등에 의한 건강장해
3.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기체·액체 또는 찌꺼기 등에 의한 건강장해
4. 계측감시(計測監視), 컴퓨터 단말기 조작, 정밀공작 등의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5. 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6. 환기·채광·조명·보온·방습·청결 등의 적정 기준을 유지하지 아니하여 발생하는 건강장해
<추가 제안> 7. 업무 수행 및 이와 관계된 인적, 물적 환경에 의한 신체적 피로 및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건강장해


물론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가 부여된다고 현실에서 바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신건강 문제를 전체 산업안전보건관리의 영역 내로 포함하여 규율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유럽 기업체 조사를 기반으로, 유럽 나라들의 직장 내 심리적 위험요인 관리를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도 나라에 따라 심리적 위험을 관리하는 정책, 수단의 차이가 크고, 일반적인 산업안전보건관리가 잘 되는 나라가 심리적 위험관리도 잘 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노동자, 경영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계획과 주도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³⁾

개별 사업장의 과제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이 노사 간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사업장마다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직무스트레스나 정신건강과 관련된 교육 활동, 직무스트레스 요인과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조사·연구, 조사 결과에 기반한 스트레스 저감계획 시행, 시행 이후 평가와 새로운 목표 설정 등이 모두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사업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구체적인 할 일이 된다.

앞서 강조한 대로, 이런 활동이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체계 내에 통합되어 진행돼야 한다.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예방 활동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의 중요한 안건이 되고, 법적 의무로 실시되는 안전보건교육의 일부로 직무스트레스 교육을 진행되는 것이다. 직무스트레스 관리나 술·담배 의존 관리가 노동자 뇌심혈관질환 예방 활동과 통합되고, 근골격계질환에 따른 통증 관리가 다시 정신건강 증진 활동과 통합되는 사업장 보건관리도 모색돼야 한다.

또, 노동자들에게 주요 스트레스가 될 문제들에 대해 미리 회사 차원의 규정을 수립해두는 것도 중요한 예방 활동이다. 예를 들어, 사내에 일터괴롭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은 일터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처리를 신속히하고, 피해자를 도울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일터괴롭힘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인식을 높여 사건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일가정양립과 관련한 정책, 업무 평가 등 조직 체계상의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 미리 노사 합의로 수립되어 공표되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 정책과 법 개정에서 출발하자

사실 노동은 많은 경우 살아갈 힘을 제공한다. 급여와 복지 등 기본적 토대를 제공하고, 불안하거나 우울한 노동자에게도 규칙적인 일상을 부여해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일터는 살아갈 힘을 제공하기는커녕,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파탄내고,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던 노동과 자살이, 지금의 불안정한 노동 조건 아래에서는 지극히 가까워졌다고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노동자가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혼자라고 느끼며 폭력과 모욕에 노출되다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결국은 생산성과 이윤 대신 노동자의 몸과 삶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될 때, 혹은 최소한 노동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상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냉소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정부와 법적 차원에서 먼저 일터에서의 정신건강 문제를 지금보다 훨씬 폭넓게, 전향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 각주 
1) 황재훈, 프랑스의 번아웃 증후군 예방을 위한 시도, 국제노동브리프 2018.9,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재인용
2) 위의 글과 같은 재인용
3) https://osha.europa.eu/en/tools-and-publications/publications/management-psychosocial-risks-europeanworkplaces-evidence/view

특집1.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 실태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과 자살 실태

김인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어디엔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실시한 정신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15세에서 64세의 생산가능 인구에서 니코틴이나 알코올 사용 장애를 제외한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13.2%였다. 즉 15세에서 64세의 국민을 사망할 때까지 관찰하면 백 명 중 약 13명이 사망할 때까지 한 번은 정신장애를 앓는다는 것이다.

니코틴이나 알코올 사용 장애를 제외하고 평생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질환은 주요우울장애로 5%였으며 다음으로 특정 공포증이 5.6%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5%였다.¹⁾ 2017년 취업자 수가 2,700만 정도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강한 노동자들만이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많은 수의 노동자가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도 규모가 작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에 1~2위를 하고 있는 나라인 한국에서 2016년 전체 자살자 13,092명 중에 약 44%인 5,709명은 직업이 있었다. 이 중 서비스 종사자 및 판매 종사자가 1,38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단순노무종사자가 824명,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677명, 농림어업숙련종사자 677명, 관리자가 414명 순으로 많았다.

경찰청의 변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자살자의 36.2%는 정신과적 질병 문제로 자살을 하였고 23.4%는 경제생활문제로 자살을 하였다.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경우는 514명으로 3.9%에 해당하였다.²⁾ 주된 자살의 원인이 되는 정신과적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 역시 직장에서의 고용불안이나 다른 스트레스 요인 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 자살의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 규모에 비하면 업무와의 관련성이 인정된 정신질환과 자살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찰청에서 2016년 자살 사망자를 분류한 바에 따르면 88명이 공무원이었고 이중 약 25%인 22명은 직장내 문제로 자살을 하였고 26명은 정신과적 질병문제로 자살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³⁾ 민간기업 종사자의 경우에는 산재보험에 의한 보상 자료를 통해 그 일부나마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신청 건이 매년 200여건 정도로 전체 규모에 비해 적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공무원연금공단이나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에서 정신질환이나 자살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는 경우는 그 빈도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그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몇 가지 자료로 추정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이용득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월에서 11월까지 194건이 정신질환과 자살로 산재신청을 하였으며, 이중 112건이 승인이 되어 약 57.7%의 승인율을 보였다. 승인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적응장애, 급성스트레스장애/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였으며 우울장애의 승인율이 56.7%였고, 불안장애는 상대적으로 낮은 승인율을 보였다.⁴⁾



이 표에서 기타로 분류된 99건의 거의 대부분은 자살일 것으로 판단되는데, 기타로 분류된 정신질환 중 49건이 승인이 인정이 되어 승인율이 49.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살의 승인율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2017년 판정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판정이 이루어진 63건의 자살 사례 중에 23건이 업무관련성이 인정이 되어 승인율은 6.5%였다. 자살과 정신질환에 대한 승인율은 매년 증가를 하고 있는 추이를 보이고 있으며, 2018년에는 1월에서 8월까지 정신질환에 대한 승인율은 더욱 증가하여 75.7%에 이르고 있다. 즉, 업무관련성 판단에 대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청 건수와 양상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진단명에 따라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급성스트레스장애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심리적 외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건이 원인이 되어 발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말하는 트라우마는 직접 죽음을 목격하거나 본인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정도의 충격을 말하는데, 동료가 산재로 사망하는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경우들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2017년 노동절에 발생한 비극적 참사였던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사고 당시 많은 노동자들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2018년 4월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를 목격했던 노동자 7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았다. 산재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그런 전형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응급처치와 같은 심리적 응급 지원(Psychological First Aid, PFA)을 하고 조기 개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적응장애는 외상후스트레스와 함께 '외상 및스트레스 관련 장애'로 분류되어 있는 질환이다. 즉,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외상후 스트레스의 전형적인 증상이 모두 나타나지 않고 불안이나 우울이 나타나는 경우에 붙이는 진단명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적응장애의 승인율이 80%로 가장 높다.

전형적인 심리적 외상 사건이 아니더라도 폭언·폭행·성희롱이나 경영위기, 민원인과의 갈등, 업무 수행 과정에 나타나는 갈등, 원치 않는 일방적인 전환배치, 회사와의 갈등이나 업무 부적응, 괴롭힘 등이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적응장애의 주요 원인이었다. 노동자와 사업주의 진술이 다르거나 노동자들의 진술이 달라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힘들거라고 예상되는 사건들이 그 원인이 된다.

우울증의 경우에는 직업적 요인과 관련한 연구도 비교적 많이 되어 있고, 외국에서도 업무상 질병 포함 여부와 관련해서 이슈가 집중되어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외국의 다양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리적인 요구도, 낮은 사회적지지, 노력-보상 불균형, 불공정성, 위협, 폭력 및 괴롭힘, 남성에서의 직업 불안정성 등이 우울증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유병률이 높은 만큼 국내 정신질환 신청 사례 중에서도 가장 많은 건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신청 사례들도 주로 과도한 업무량,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정, 직장 상사나 동료·후배와의 갈등, 성추행이나 성폭행, 노사 갈등, 부당 전보나 부당한 업무지시, 법적 송사나 감사에 연루가 되는 등의 사건이 많았다. 노동자들의 우울증은 수개월 또는 수년간 지속된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외상성 사건이 촉발요인으로 작용하여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하는 경우가많다.

자살의 경우도 우울증과 유사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가장 흔한 사례 중에 하나가 상사와의 갈등이나 괴롭힘이며 일방적인 배치전환 역시 주요한 계기가 된다. 또한 팀의 인원이 변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업무의 내용이나 업무량이 변화하게 되거나, 마감이 몰리거나 클레임 등이 생기면서 업무의 속도나 활동이 변화하게 되는 등의 사건이 많다.

'비참한 사고나 화재의 체험, 목격', '신규사업의 담당이 되거나, 회사 재건의 담당이 된 경우', '고객이나 거래처로부터 클레임을 당한 경우', '근무형태의 변화', '퇴직의 강요', '심한 괴롭힘이나 따돌림', '승진에서 뒤처지는 경우', '성희롱을 당한 경우', '상사와의 갈등이 있는 경우' 등이 주요 사건으로 이야기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이러한 사건 자체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살은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기보다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무언가 스트레스가 될 만한 큰 사건을 겪고, 이를 극복해가면서 또는 이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좌절과 불안,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일들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하며 심각한 우울증상을 보이던 노동자들이 병가를 가고, 병가에서 복귀하여 다시 극복해보려 하지만 다시 절망감에 빠지게 되고 최후의 수단으로 사직서를 내게 된다. 보통 이러한 노동자들은 완벽주의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업무 성과도 굉장히 좋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상사는 이들의 사직서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치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든가 '당신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이 없다'면서 사직서를 반려하게 되고, 마지막 희망이던 사직까지 좌절이 되면서 노동자는 결국 자살을 택하게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체불된 임금을 받지 못해서 스스로 분신을 하는 노동자,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다가 크게 싸우고 바로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린 경비원,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을 맨 노동자, 지속된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퇴근 후 집에서 목을 맨 노동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교수의 폭언에 시달리면서 친구에게 농담조로 우울증 약을 달라고 하다가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한 전공의, 외국 지사에서 발생한 제품 불량문제 해결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다가 타지의 호텔에서 목숨을 끊은 노동자까지, 정말 다양한 죽음이 도처에 있다.

이러한 죽음을 살펴보다보면 자살 시도 자체가 가장 위험한 정신과적 증상으로 산재인정의 기준이 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⁵⁾에 해당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죽음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이 컸다. '그 정도로 힘들면 그만 둘 수 있잖아'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그만두면 된다는 판단과 실행을 못하는 상태가 자살 직전의 정신적 이상 상태'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이다.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최근의 대법원 판례들은 의학적·자연과학적 인과관계나 정신병적 증상을 자살 산재인정의 주요한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해석과도 관련이 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노동자의 부상·질병·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4.10.30. 선고 2011두14692 판결, 대법원 2015.1.15. 선고 2013두23461 판결 등 참조)

우울증이나 적응장애 같은 정신질환이나 자살과 관련한 사례들을 보다보면 이러한 스트레스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질환들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건강과 불건강한 상태라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건강이 좋을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좀 기분이 가라앉거나 심리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선후가 다를 수는 있지만 개인적 문제와 업무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일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겪을 수 있는데, 그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심리적인 회복력이 있거나 그 상태를 헤아리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조직적 지원이 있다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질환에 걸리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정신질환과 자살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직업안전보건에 있어서의 엄격한 '의학적 인과관계'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게 된다. 원인과 결과라는 일대일의 대응 관계를 벗어나, 개인적 요인과 직업적 요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인격권이라는 것이 근로계약 속에서도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를 명시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노동의 형태와 근로계약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노동자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커 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으로 가면 노동자이고, 퇴근하면 지역주민이라고 나누어서 정책적으로 개입을 하는 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 각주
1) 2016 정신질환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2) 2018 자살 예방 백서. 보건복지부
3) 2018 자살 예방 백서. 보건복지부
4) 정신질환 질병별 산재 승인데 대한 연도별 추이. 『정신질환 요양자료분석. 자살·정신질환 산재판정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용득 의원실. 2018년 10월』에서 재인용
5)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자살과 자해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을 해주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는 산재보험법 시행령으로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하는 법률과 시행령은 다음과 같다.
△ 산재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②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법 제37조제2항 단서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한다.
-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