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 (매일노동뉴스)

창립 30주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노동자·시민과 함께하길김형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형렬
  • 승인 2018.09.13 08:00







2018년 11월1일부터 3일까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올해는 문송면군의 수은중독 사망,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3903

<일터> 통권 175호 / 2018.09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5호 / 2018.9

특집 : 일터 괴롭힘 끝낼 수 있을까? 

4 직장갑질119 300일, 이제 정부가 답할 때   

10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13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18 [지금 지역에서는] 

석면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가 우선이다!!

20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대만 대법원, RCA 산재판결에서 의미있는 선례 남기다

22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24 [연구 리포트]

출판산업 내 숨은 노동 일러두기

30 [사진으로 보는 세상]

32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36 [현장의 목소리]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40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44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우리는 시(時)쓰는 버스 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4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48 [노동자건강상식] 

장염에 대하여

54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보일러공의 악성중피종 

52 [발칙 건강한 책방]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 맞다!

54 [이러쿵저러쿵]

반올림과 같이 걷는 걸음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긴급논평] 행정의 무지와 보신주의가 삼성의 반복되는 화학사고를 부추긴다

[긴급 논평] 행정의 무지와 보신주의가 삼성의 반복되는 화학사고를 부추긴다


지난 4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는 논란이 필요 없는 명백한 화학사고입니다. 하루빨리 그에 걸맞는 환경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합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와 관련한 환경부의 대응계획을 묻는 ‘삼성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1. 이번 사고를 화학사고로 볼 것인지 아닌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결정한 바 없다. 현재 검토 중이고 사고원인 조사결과가 나오면 판단할 예정이다. 

2. 화학사고로 규정되면 그에 따른 즉시 신고의무 위반 등 화관법 위반사항을 조사, 조치할 방침이다. 

3. 이산화탄소는 화학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화학사고 규정에 해당되는 물질이긴 하다. 하지만, 질식사고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인지, 산소결핍에 의한 것인지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또한, 경기도 관계부서는 명확한 근거도 없고 확인된 사실도 없음에도 환경부에서 화학사고가 아니다라고 규정했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설 명분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습니다. 화학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관계부서가 민관합동조사단에 대한 참여를 스스로 차단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질식사고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에 의한 중독인지, 산소결핍에 의한 것인지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는 환경부의 답변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에 불과합니다. 산소결핍에 의한 질식이면 화학사고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산소결핍 상황 자체가 이산화탄소라는 화학물질의 유출로 벌어진 것입니다. 

「화학물질관리법」 화학사고 즉시 신고에 관한 규정 2조 3항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화학사고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화학사고"란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 결함·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하여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되어 발생하는 일체의 상황을 말한다.

이산화탄소라는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사람이 다치고 사망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이산화탄소 누출사고는 논란이 필요 없는 명백한 화학사고입니다. 환경부는 수많은 화학물질 질식사고에 대응했던 지금까지의 활동을 스스로 부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화학사고 발생할 수 있는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화학사고의 예방과 대비체계는 우리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화학사고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명확한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환경부는 더 이상 사고의 본질을 외면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정부부처의 역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8. 9. 14.

삼성반도체 이산화탄소 누출 노동자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


20180914_긴급논평_환경부는_화학사고로_규정하고_즉각적인.hwp


특집3.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 2018.09

슈퍼갑질, 인권유린 끝낸다!

보건의료노동조합 가천대길병원 강수진 지부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의사

최근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다 태움으로 자살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후 병원에서 일터 괴롭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일터 괴롭힘, 태움이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만난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지난 19년간 극심한 슈퍼 갑질을 견뎌왔다. 최근 정부에서 병원 내 태움 등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 대책을 확정한 바있는데, 실제 현장에서의 상황이 어떠한지 이야기를 듣고자 강수진 지부장을 지난 8월 23일에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가천대길병원의 노동 환경은 어떠한가요?
"병원이 다 비슷하겠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상명하달식의 업무수행, 그리고 병동이나 부서별로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해왔어요. 서로 소통하지 않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조직 문화가 많았고, 업무를 수행하면서 기준이 되는 업무 지침이 없었어요. 관리자들 역시 업무 지시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기준이라고 하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같은 법과 제도일 텐데 관리자들이 이런 것들을 잘 모르니 현장에서 지켜질 리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천대길병원의 상황은 일터 괴롭힘을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봐요."

강수진 지부장은 명절 이후 받게 되는 대체휴일이나 임시공휴일과 관계없이 늘 일해왔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대체휴일은 진료부 재량에 따라서 업무를 하도록 공문이 내리는데 실제로는 모든 부서가 다 근무를 했어요. 정부에서의 대체휴일이 가천대길병원에서는 적용이 되고 있지 않는 거죠."

강수진 지부장은 근무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간호사들의 경우 병동에서 본 업무 시간에 앞서 30분 ~ 1시 정도 먼저 출근해서 일하는 게 다반수였다고 하였다.

"출근 전과 일 마칠 때 인수인계를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업무가 미진했던 거에 대해서 지적도 받고 교대를 해도 문제가 없도록 중요한 사항들을 공유하는데 길게는 2시간 정도 걸려요. 그런데 이 추가 노동에 대해서 수당이나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않고 있어요. 병동 뿐만 아니라 외래에서도 전혀 수당이나 보상 없이 일을 하고 있어요. 문제는 저희 병원이 외래 접수를 당일 접수로만 받기 때문에 늘 외래환자들이 많거든요. 결국 보상이 없이 추가 근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강수진 지부장은 쉴 틈 없이 오전에 외래 환자들을 보다 보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아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바로 오후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말하였다. 병동에서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관련되어 있는 다른 부서도 퇴근이 늦어지고, 모든 직원이 평균 1시간 정도 초과근무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병원의 슈퍼갑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고 한다.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회장 생일에 전 직원 축하 동영상을 만들고 공연을 해야 하고, 회장의 사택(私宅) 관리와 사택 내 행사에 직원들을 동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온갖 갑질로 병원 노동자들은 마음에 멈이 들어 가는데 회장은 단 돈 18원에 VIP 병실을 이용하며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고, 잊을만하면 비리를 저질러 언론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라고 한다.

- 태움, 갑질 문제도 결국 인력 부족의 문제로 시작된 것 아닌가요?
"네 아무래도 인력 부족이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그래서 최근 병원 측과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요. 초과근무를 하고 노동강도가 높은 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인력 부족이 원인인데요. 병원에서는 보조 인력의 확충을 비정규직으로 하
고 있어요. 1년 계약으로 고용하는데 몇 개월의 교육 기간을 거쳐 업무에 익숙해지려고 하면, 바로 계약이 끝나서 다른 사람을 재교육해야 하거든요. 이런 과정 자체가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어요."


강수진 지부장은 인력 부족이 낳는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에 투입되면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일을 빨리 배워야 해요. 선배간호사들 역시 주어진 업무량은 이전과 같거나 더 많아졌는데, 추가로 신규 간호사를 가르쳐야 해요. 이렇다 보니 선배간호사들 입장에서 후배간호사들을 잘 가르치기 보다 혼내고 강압적으로 업무를 빨리 배우게끔 하게 되는 상황이에요. 후배를 보듬어주거나 세심하게 가르쳐주는 분위기가 잘 안 되거든요."

강수진 지부장은 태움도 인력부족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하였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다 보니까 많은 간호사가 1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병원을 그만 둬요. 사직이 줄을 잇다 보니까 임신순번제처럼 사직순번제라는 것도 생겼어요. 신규 직원이 충원되어야 그 사람이 그만둘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기간이 교육기간 포함해서 5~6개월 정도 걸리니까 바로 퇴사를 못 하고 대기하는 경우도 생겨요. 상황이 이래서 연차도 못 써요."

- 노조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앞서 얘기한 노동강도, 업무환경, 조직문화 등 전반적으로 기존 기업노동조합에 대한 불만 등이 누적되어서 제대로 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가천대길병원은 기업노동조합 간부가 누구의 사위, 누구의 조카 이런 식으로 병원 경
영자의 친인척으로 엮여 있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허수아비라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의료기관 평가에 대한 불만도 있었는데 평가 준비를 위해서 서류 업무는 늘었지만, 인력이 보충되지 않으니 우리에겐 노동 착취로 다가왔어요. 제대로 된 시설 개선도 하지 않고 평가 기간에만 반짝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평가 기간이 끝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거든요."


강수진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평가를 준비하고 마쳐도, 병원에서는 애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전 직원에게 모두 만원만 지급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고충을 말해도 책임지고 해결해주는 부서장은 없어요. 부서장은 인사팀에게 미루고 인사팀은 정해진 기준이나 지침이 없으니 고충 해결을 다시 부서장에게 미뤘죠. 기존에 있던 노동조합에 찾아가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어
요. 그래서 우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찾아갔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보건의료노조 인천지부를 만나게 해줘서 노동조합을 결성했어요."


한편, 가천대길병원은 민주노조 설립 이후 노조 간부의 밤 늦은 퇴근길을 미행하고, 업무시간 내내 바로 곁에서 감시하는 등 노조탄압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또, 노동조합 가입 활동을 병원 보안요원(외주용역)을 동원하여 가로막고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일부 관리자가 조합원에게 고성을 지르며 방해하거나, 많은 동료가 보는 앞에서 위세를 떨며 큰소리로 하대하며 비속어로 언어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
러한 병원의 노조 탄압으로 가천대길병원 노동자들은 극도의 위화감과 공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 노조가 새로 결성되고 시작한 변화가 있었나요?
"공식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교섭하려고 할 때도 기존의 기업노조가 있고 새 노조가 있으니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긴 해요. 예를 들어 임산부는 야간
노동을 공식적으로 못하게 되어있지만, 본인이 원하면 동의서를 받고 있는데요. 여긴 임신하자마자 동의서를 들이밀면서 출산 마지막 달까지 근무하기도 했어요. 임신 초기와 말기에 사용 가능한 근로시간 단축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그림에
떡이었어요. 하지만 임산부의 야간 노동 문제를 우리가 계속 제기하니깐, 이제는 동의서를 받고 있지 않고 임산부는 야간 노동에서 제외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 조합원이 우리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임신하고 밤에 일하기 막막했는데 밤에 일하지
않게 해주어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가천대길병원, 슈퍼갑질 중단해야

공짜노동, 인권유린 등 슈퍼 갑질을 당하며 일해왔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일터 괴롭힘 없는 현장을 위해 특별근로감독과 기획 수사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하루 빨리 가천대길병원이 반인권적 노동탄압과 슈퍼 갑질을 중단하고 노동조합과 이전과는 다른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집2.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 2018.09

일터 괴롭힘 대책에 대한 평가

재현 선전위원장


노동자들이 일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터 괴롭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과 제도로 처벌하거나, 예방 대책 마련 등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은 일터 괴롭힘을 단순히 일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넘어 노동조합을 파괴하거나, 노무 관리를 하는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노동·인권 운동 진영은 일터 괴롭힘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시작으로, 그 실태는 어떠한지, 일하는 사람들의 개선 요구는 무엇인지, 해외 사례는 어떠한지를 연구하고 법과 제도, 현장에서 운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해왔다.

2017년에는 노동조합·현장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 등이 모여 직장갑질 119를 만들고 전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터 괴롭힘 신고를 받고 해결하며, 근본적인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방안과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고민하고 활동해왔다. 한편 정치권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7월 18일 정부가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발표하며 그동안 방치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한국 일터 괴롭힘, EU국가들 2배

정부는 한국의 일터 괴롭힘 피해율이 업종별로 EU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3.6~27.5%로서 2배 이상 높은 점, 일터괴롭힘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연간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점, 일터 괴롭힘에 따른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심각한 점, 직장 괴롭힘 피해자의 자녀가 학교 괴롭힘의 피해자로 대물림되는 점 등을 이번 대책을 마련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을 정의함으로써 문제에 개입할 계기를 마련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터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노동자 등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또 정부가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터 괴롭힘에 노출되기 쉬운 불안정 노동자(파견 노동자, 일부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이 대책을 적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노동자가 일터 괴롭힘을 인지했을 때 신고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이 사회에서 일터 괴롭힘 문제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특정 개인, 회사의 일로 치부되어 오면서 피해자들 역시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8월부터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나 직장 동료 등 누구든 범정부차원으로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사건을 접수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정부는 이번 기회에 사용자에게도 일정 책임과 역할을 당부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사업장에서는 일터 괴롭힘 신고·대응부서를 설치하거나 지정(노사협의회, 인사·감사부서 등 활용) 하도록 했다. 하지만 범정부차원의 신고센터 설치가 예정한 일정보다 늦어지면서 정부가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사용자가 일터 괴롭힘 사실을 인지 또는 신고 접수 시 해당 사건을 조사하도록 의무화했다. 만일 사업장에서 일터 괴롭힘 관련하여 관련 법 위반행위를 인지 · 신고 접수한 경우 정부가 직권조사를 실시하며 그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 과태료 부과 등도 이뤄진다.

또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한 사업장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필요 시 임시건강진단명령 등 조취를 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임시건강진단명령이 물리적 상해 위주로 진행되는 점을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확장해서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일터 괴롭힘 피해 노동자 또는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자 및 신고자에 대한 징계, 해고 등 보복행위 및 불리한 조치를 금지하도록 했다. 또 피해자의 심리·경제·법률 지원프로그램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재해 문제에 있어서도 보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자살, 우울증, 법정싸움 등 지원 넓혀

그동안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부상, 질병, 우울증 등을 산재 보상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협소했다. 또 법률적으로는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범죄 피해자가 된 경우 손해배상 청구소송만 지원했다. 앞으로는 복직 소송 및 보복소송에 대응할 때도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가해 입증자료가 부족해 소송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를 위해 행정청이 직권·현장조사, 감사자료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제는 일터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가 피해자 의견을 들어 가해자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사용자가 피해자 불이익 처우 금지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 등 관련 법령을 어길 경우 형사 처벌, 과태료 부과 등 책임을 묻는 기준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일터 괴롭힘 예방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취업규칙필수 기재사항에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의무, 예방 및 해결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가령 사용자 및 노동자의 일터 괴롭힘 금지 의무, 괴롭힘 예방 · 해결을 위한 사용자의 책무, 괴롭힘 발생 시 처리 절차 및 조치, 고충처리 시스템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사업장 실태에 맞는 자율적 예방·대응 시스템 구축을 위한 컨설팅 지원에도 나선다. 또 사용자의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실시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해 일터 괴롭힘 예방교육 표준안과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일터 괴롭힘과 관련하여 '간호사 태움' 문제가 불거졌던 서울아산병원처럼 병원 업종을 대상으로 TF도 수시로 운영하는 한편 '(가칭) 존중받는 일터 조성을 위한 노사정 선언'도 추진한다. 일터 괴롭힘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노동자 정신건강 연구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 대책을 실천하기 위해 일터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캠페인 등으로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을 추구한다. 무엇보다 국회 등과 논의해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터 괴롭힘 방지법 제정을 검토할 계획이다.

늦었지만... 이제는 구체화하고 실천해야

정부의 이번 대책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일터 괴롭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정부와 사업주의 역할과 책임을 강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관건은 정부가 대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예산과 인력 등 집행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 방향 정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구체화하고 집행 할 수 있을지 여전히 물음표를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결국 입법 기관인 국회가 법·제도 마련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과연 국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질적인 입법으로 나아갈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일터 괴롭힘 예방을 특별법으로 해결하려고 모색 중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이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중 하나로 일터 괴롭힘을 예방하고 문제에 따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왔다. 이 점에서도 정부와 국회가 시민사회와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특집1. '직장갑질119' 300일, 이제 정부가 답할 때 / 2018.09

'직장갑질119' 300일, 이제 정부가 답할 때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태프


오픈채팅방 [#후아] 이야기

"질문 있습니다. 직장 내 폭언, 폭행, 모욕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요? 말대답했다는 이유로 팀원들이 보는 곳에서 몇 차례 폭행 및 폭언을 당했습니다."

직장갑질119 공개채팅방 닉네임 [#후아]의 첫마디였다. 상사의 폭행에 고통받고 있다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물었다. 회사에 별도의 고충 처리기구는 없다고 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공개채팅방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아래는 그가 보낸 메일 일부분이다.

(팀장이) "개○○이", "개○○가", "시○" 등의 저속한 욕설을 반복하여 심하게 모욕했고, 모욕 행위에 너무 놀라서 자리를 피해 물러나는 저를 향해 부근에 있던 두꺼운 책을 고의로 투척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특수폭행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머리로 날아오는 책을 보고 순간적으로 피하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그대로 타격당하여 심각한 상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이는 선배 A가 목격한 사실입니다.

저와 선배 A·B 그리고 후배가 함께 있는 사무공간에서 저는 소모품 결재를 가해자에게 올렸습니다. 그러나 결재가 반려되었고 가해자는 저에게 '결재의 반려 사유에 대해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폭언을 하여 모욕을 주었고, 철제 쇠뭉치가 붙어 있는 플라스틱 칸막이 앞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던 저를 향해 고의로 발을 사용하여 있는 힘껏 칸막이를 가격하였으며 피할 사이도 없이 칸막이 상단 쇠뭉치에 의해 직접 흉부를 타격당하도록 하여 상해를 입혔습니다. 당시의 폭행상해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3주가 지난 현재에도 폭행당한 흉부의 통증이 지속하여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상사에게 네 차례의 폭행 및 폭언을 당했다. 상사의 폭행(폭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본인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신고는 어디에 해야 할지, 어떤 처벌이 가능할지 등을 물었다.

답변을 담당한 스텝은 필요한 자료(목격자진술, 녹취, 진단서), 팀장이 [근로기준법 제2조2호]에 의거한 사용자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 근로관계 중에 발생한 사건이니 노동부를 통한 진정을 추천한다는 의견 등을 전달했다.

일반적으로 이메일 상담은 3~4차례 이어진다. "정말 내가 신고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들기도 하고, 메일 답변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궁금한 내용이 추가로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후아]는 말이 없었다. 공개 채팅방에서는 이런저런 말을 섞었지만, 추가적인 메일을 보내지는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온 메일. [#후아]는 회사 내에서 문제를 풀고 싶다고 했다. 폭언은 여전하지만 신고를 하는 것이 망설여진다고도 했다. 회사는 보수적이었고, 임원의 막강한 입김과 위계질서 문화가 있는 조직이었다. 고소하면 회사가 팀장을 두둔할 수도 있고, 피해자인 본인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우려된다고 했다.

때마침 조현민의 '물컵 갑질'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우리 회사에도 조현민이 있다며 직장인들이 본인의 (준) 폭행 경험을 말하고 있었고, 언론도 직장에서 폭행당한 직장인들의 사례를 찾고 있었다. [#후아]에게 언론 제보를 권유했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원한다면 당연히 익명이 보장되니 염려하지 말라제안했다. 고민 끝에 인터뷰까지 했지만, 방송예정일에 다른 이슈들이 잡히면서 충분한 분량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후아]는 신경 써 준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언론 제보 이후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후아]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어떠할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공개채팅방의 상담을 보면서, 이 지긋지긋한 팀장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동료직원들과 마음을 모아야 하고, 노동조합이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수있을 것이라 답했다. 해당 사업장에 맞는 노동조합 담당자의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한 번 자세히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아직 그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없다.

직장갑질 천태만상

직장갑질119에는 [#후아]의 사례가 매일같이 들어온다. 2017년 11월 1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갑질 제보만 1만 1938개¹⁾다. 가장 많이 벌어지는 갑질은 '임금(25.7%)'이지만 '직장내 괴롭힘(13.5%)'과 '잡무지시(14.8%)'도 심각한 수준이다. 못 받은 임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 노동부에 진정 해서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출근해서 마주쳐야 할 상사 갑질에는 뾰족한 답이 없다.

'갑질'은 노동조합이라는 보호막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 비정규직, 여성, 청년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1987년 노조 설립 이전 현대자동차관리자들이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고, 군홧발로 조인트를 까던 장면이 2018년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반복된다. 직장내 괴롭힘과 잡무지시, 직장갑질119로 제보된 황당한 사연들에 '갑질'이라는 이름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

이름만으로 황당한 갑질백태. 갑질을 없애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노동조합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회사에 맞서고, 회사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처참한 수준이다. 2016년 기준 10.3%²⁾. 이마저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300인 이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55.1%인데 30인미만 사업장에서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2%에 불과하다.

노동 내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해지면서 정규직 관리자가 정규직 직원에게 하던 갑질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하는 갑질로 이어졌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돈 잔치를 하는 동안 가맹점주와 알바노동자는 '을'과 '병'이 되어 사투를 벌인다. 평생직장은 옛말, 3개월·6개월 호출노동이 난무하는 시대. 저항은 고사하고, 일을 구할 수만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회사가 부당한 일을 지시해도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참는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불온하게 취급받고, 양극화는 극심해지는 2018년. 운동장은 점점 더 기울어져 간다.

정부의 갑질근절 대책

한림성심병원 장기자랑, 간호사 태움, 항공사갑질, 대웅제약 갑질까지…. 연이은 직장갑질 폭로는 직장갑질119나 '블라인드앱' 등을 통한 '익명'으로 시작됐다. 1970년대 청계천과 1987년 울산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직장인들의 절규는 익명공간을 통해 흘러나왔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정부는 '갑질'을 '생활적폐'로 규정하고, 두 가지 대책을 내놓는다.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18.7.5)」과 그 후속으로 발표된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18.7.18)」이다.

2018년 7월 5일 발표 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이하 '종합대책'」은 갑질의 개념을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상대방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이 권한을 남용하여 을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라고 규정한다. 또한 △사전예방 △피해 신고 △적발·감시 △처벌·제재 △보호·지원 △민간확산을 주된 과제로 삼고 세부과제 18개를 제시한다.

익명 신고 시스템을 마련하고, 제보자 불이익 방지를 위한 방안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종합대책'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후속조치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8월까지 '범정부 갑질 신고센터'가 확대 운영되었어야 하고, 중앙행정기관, 광역지자체, 광역교육청, 지방공기업 등의 자체 기관별 신고센터도 개설되어야 했다. 둘 다 깜깜 무소식이다. 갑질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한 '대한법률구조공단 무료법률구조사업 시행지침'도 8월까지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개정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후속대책으로 발표된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이하 '근절대책')」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근절대책'은 10월 "관계부처 합동 가이드라인 발표"와 12월 "근로기준법 개정"을 골자로 한다. 직장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등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 예방 교육 의무화 등을 법제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7월에는 국가기관(근로감독관)의 직권조사를 실시하고, 근로자에 대한 심리상담 등을 지원하며, 8월에는 직장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무엇도 시행되지 않았다.

양치기 정부, 제발 좀 응답하라

'종합대책'은 10월 "관계부처 합동 가이드라인 발표"와 12월 "근로기준법 개정"을 골자로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 등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 규정하고,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 예방 교육 의무화 등을 법 제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후속 조치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7월에는 국가기관(근로감독관)의 직권조사를 시행하고, 근로자에 대한 심리상담 등 지원, 8월에는 직장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8월까지 '범정부 갑질 신고센터'가 확대 운영, 중앙행정기관, 광역지자체, 광역교육청, 지방공기업 등의 자체 기관별 신고센터 개설, 갑질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한 '대한법률구조공단 무료법률구조사업 시행지침' 개정. 하지만 어떤 것도 깜깜무소식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떠오른다. 대선공약이었으며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라던 최저임금 인상은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누더기가 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고용정책실장과 차관을 했던 이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 구성에서 진보정당이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등 상황은 '최저임금 인상' 때보다 안좋다.

발표한 지 한 달 반 만에 양치기 대책이 되는 '종합대책'과 '근절대책'이 하반기 근로기준법개정까지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문제 앞에서 유달리 굼뜬 정부가 과연 이번에는 힘 있게 '갑질 근절'을 할 수 있을까. 

직장갑질119는 부족하지만, 상담과 제보를 통해 직장인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알려내는 작은 숨구멍 역할을 해왔다. 육아휴직 차별을 언론에 제보하고, 근로감독관 갑질과 산업기능 요원에게 벌어지는 갑질을 공개했다. 해당 기관은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직장갑질119로 연락해 '제보자가 누구인지.',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

급한 불만 끄는 것은 만연한 갑질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합대책'이 제시한 것처럼 기관별로 신뢰 있는 제보 센터를 만들고, 익명 제보를 받으면 될 일이다. 이제 언론의 눈치는 그만 보시라. 공공부문이 앞서 '갑질 근절'에 나서야 민간영역으로 확대되지 않겠는가!

* 각주
1) <직장갑질119, 6개월의 기록> 보고서, 2018년 5월 22일 발행
2)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제외된 수치(5만3천명). 전교조 포함시 10.5%

[연구리포트] 출판산업 내 숨은 노동 일러두기 / 2019.09

출판산업 내 숨은 노동 일러두기

- 2018 출판산업 여성노동 실태조사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 여성위원회


출판산업은 여성노동자들이 전체 노동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은 결코 여성 친화적이라 할 수 없는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가부장적인 작업장 문화 아래 여성 출판노동자는 일상적인 차별적 경험을 토로하고 있으며, 과도한 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 부담에 언제든지 노출되어 있고, 여성의 생애주기와 무관한 노동 관행 때문에 ‘경력단절’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출판계 내부에서 날로 심해지는 노동의 외주화·비정규직화 추세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사적 사건을 교묘히 이용해 여성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낮은 노조 조직률과 소규모 사업장으로 파편화된 노동 환경 등으로 인해 출판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는 아직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성 출판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어떤 일들을 겪고 있는가? 일상생활에서는 또 어떤 삶을 경험하고 있는가? 여성 출판노동자는 노동, 가족, 일상 영역에서 어떤 생각과 욕구, 전망을 갖고 있는가? 특히 외주노동의 형태로 출판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경우에는 이런 사정이 더욱더 장막에 가려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18 출판산업 여성노동 실태조사를 요약한 『숨은 노동 일러두기』는 출판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의 노동세계와 생활세계에 관한 광범위한 기초 조사를 목표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구체적인 노동조건을 살피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노동 생활과 일상 생활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본 조사는 출판노동조합 산하 여성위원회의 제안으로, 연구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조사에서 집필까지 전체 과정을 공동으로 실시했으며 전체 조사 기간은 2015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이고, 연구 참여자(조사 대상)는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전현직 재직노동자(정규직, 비정규직)와 외주노동자를 포괄한다.

1. 산업적·노동적 측면

1) ‘영세 사업장’이라는 면죄부

출판진흥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실태조사에 응답한 3,606개의 사업장 중 2,761개의 사업장이 1∼4인 규모를 보인다. 이는 표본 중 76.6%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상당수 출판 사업장이 규모 면에서 ‘영세’한 사업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매출 측면에서는 서적과 교과서/학습지를 출간하는 출판사들―기성의 ‘출판업’ 의미에 부합하는―의 2014년 매출 규모는 약 4조 207억 원이었다. 전체 콘텐츠산업 매출액인 94조 9,472억 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는 그리 높은 수치라고는 볼수 없다. 또한 콘텐츠의 다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의미의 출판시장은 점차 위축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규모와 매출 면에서 출판산업은 ‘영세’하다고 보인다. 또한, 이와 같은 산업의 ‘영세성’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세성이 모든 면에서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된다고 규정하는 동시에, 상시 4명 이하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 일부 규정을 적용할 것 역시 정하고 있다. 얼핏 보면 4인 이하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들이 법의 적용을 피해 갈 여지가 많아 보이지만, 그 상세를 살펴보면 몇몇 규정을 제외하고 중요한 조문은 대부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근로계약서의 작성 및 교부, 해고의 예고, 산전후 휴가의 지급 등이 그러하다.

일부 참여자들은 ‘근로계약서 작성 유무’를 묻는 질문에, ‘5~10인 규모의 작은 사업장이라 작성하지 않아도 무방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근로계약서는 규모 여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작성하고 교부해야 한다. 한편, 근로계약서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잘 감시되고 관리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과도한 노동을 방지하고, 연차휴가의 제공을 보장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규정들이 현재 5인 미만의 사업장과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해고로부터의 보호 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들어 사업의 위험 부담과 노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별도의 (5인 미만) 자회사와 계열사를 만들어 관리하는 대형출판사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 자회사들은 기대 매출에 부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정리’된다. 본사의 경영주들과 ‘월급사장’인 자회사의 대표는 위험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겠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분사 경영 전략은 비단 출판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교묘한 방식으로 노동을 통제하고 수익을 높이려는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들을 포괄하여 보호할 수 있는 법제의 구축이 시급하다.

2)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방조하는 시스템

많은 출판노동자가 ‘체계 없음’을 출판업계 시스템의 특징으로 꼽았다. 규모가 작고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실무 교육을받을 시간 없이 곧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개별 노동자들이 ‘알아서’ 업무 방법을 습득하고 익혀야 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신간의 매출에 상당 부분 기대는 수익 구조는 ‘좀 더 빠르게’ 책을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매월 혹은 격월로 찾아오는 마감을 수행하기 위해 야근은 “어쩔수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이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 가는 것이다. 많은 출판사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초과노동(그리고 노동에서의 비용 절감)에 기대고 있다. 그저 회사의 고정인원들이 좀 더 많은 양의 일을, 좀 더 빨리 끝내주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경영의 부재’를 방증할 뿐이다.

본 실태조사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관행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으로 지목 되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더욱 더 질 높은 여가를 영위할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 자체가 불가능하게끔 만든다. 특히 양육을 하고 있거나 통근에 걸리는 시간이 긴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시간 빈곤’의 정도는 더욱 심했다. 퇴근하더라도 업무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운동하거나 몸을 챙길 시간이 부족하여 근골격계 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초래하고, 심한 경우 우울증과 ‘번아웃’을 동반하기도 한다. 마감을 바로 앞두고 있을 때에만 한시적으로 초과노동이 이루어진다고 추측해 보아도, 1~2달에 한번씩 ‘밀어내기식’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업무와 조직문화의 특성이 야근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야근을 부담 없이 시켜도’ 되게끔 방조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출판계에 널리 퍼져 있는 ‘포괄임금제’라는 임금계약 구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는 말 그대로 “연장·야간근로 등 시간외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지급하는 임금제도”이다. 법적으로 문제없이 야근을 시켜도 되기에, 인원을 충원하지 않고 초과노동으로 인력의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 일부 규모가 큰 기업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출판사업체들이 이러한 임금계약 제도를 택하고 있다. 

초과근로 수당 지급의 대상이 되는 5인 이상 사업장들 역시 이러한 임금계약으로 인해 사실상 5인 미만 사업장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출판업계의 노동이 ‘포괄임금제’의 성격에 해당하는 노동인지부터 다시 따져 보고, 정당한 초과근로 수당을 지급하거나 혹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야근을 줄여 가는 방향으로 노동 관행을 개선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출판계에 만연한 ‘포괄임금제’의 정당성을 묻고, 이에 대한 공론화를 기대해 본다.

3) 외주노동의 조건 개선

외주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7.2%가 여성이었다. 더 많은 표본을 조사할 경우 약간의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느 정도 실제의 비율을 반영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재직자를 중심으로 조사한 출판진흥원 실태조사의 ‘출판사업체 종사자 규모’ 항목에 따르면 남성 종사자는 48.9%(14,455명), 여성 종사자는 51.1%(15,124명)로 추산된다. 표본의 범위는 다르지만 이 두 자료를 놓고 보았을 때, 재직노동자의 성별 구성과 외주노동자의 성별 구성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조건이 불안정한 외주 부문에 더 많은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별화는 사회 전반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밀접해 보인다.

외주실태 보고서와 이번 조사 모두에서 공통으로 외주노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출산과 육아라는 점이 드러났다(외주실태 보고서에서는 직군별로 그 계기가 달리 나타났는데, 재직 경험이 있는 노동자의 경우, 출산과 육아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특정 부문의 ‘여성화’ 현상은 ①여성이 내부 노동시장으로부터 밀려나기 쉽도록 산업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 ②그리고 해당 노동이 ‘여성이 하기에 적합한일’이라고 인식될수록 이들의 노동조건은 고착되고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외주 계약 조건은 십수 년째 답보 상태이며, 작업비가 체불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외주실태 조사’ 당시, 작업단가의 책정 기준을 묻는 질문(중복답변 가능)에 ‘출판사의 관행’(287건)이라는 답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뒤이어 ‘작업의 난이도’(200건), ‘작업에 들이는 시간’(115건), ‘기존 작업 경력’(112건)의 순으로 답변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답변도 45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답변을 통해 유추컨대, 근거가 빈약한 기준과 관행에 따라 단가가 정해지고 있으며, 기존 작업 경력을 반영하는 사례도 많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외주자들의 노동은 ‘숙련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또, 주변의 외주자들이 어느 정도의 작업비를 받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은 이들의 협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현실을 반영한 표준 단가표와 표준화된 계약서의 마련을 제안하려 한다. 외주자들은 개별적인 협상 혹은 노사 집단의 협상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현실성 있는 단가 기준을 마련하고, 노사 양자가 참고해서 볼 수 있도록 ‘표준단가표’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표준화된 계약서에는 현실성 있는 작업 기간과 작업비 지급 일정 등을 명시하여야 할 것이다.

2. 성평등적 측면

1) 출판노동 = 특히 여성에겐 ‘불안정 노동’

출판업은 흔히 여성들이 많은 직종으로 여겨지고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출판진흥원 실태조사’의 ‘출판사업체 종사자 규모’ 항목에 따르면 남성 종사자는 48.9%, 여성 종사자는 51.1%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통념과는 모순된 결과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존재한다.

첫째, 남성의 경우 전체 대비 2.3%, 여성의 경우 전체 대비 3.1%의 비정규직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해당 조사가 외주 종사자의 규모를 측정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의 필진들 역시 “산업 특성상 종사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아웃소싱의 비중 또한 매우 높기 때문에, 통계 수치상 집계되는 상근 종사자 수 외에 실제 출판산업에 관여하는 종사자는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77쪽)는 점을 짚고 있었다. 2012년에 발표된 ‘외주실태 보고서’에서 여성 응답자는 전체의 77.2%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전수(全數)를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외주의 성별화가 얼마나 불균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남성 노동자들 역시 ‘권고사직을 가장한 해고’의 위협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결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을 맞닥뜨리면서(혹은 당장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존재라고 가정되면서), 더욱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체크리스트에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적용 여부에 체크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거나, 육아휴직 제공을 둘러싼 문제로 갈등을 벌이다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를 본 참여자도 있었다. 실제 육아를 하고 있는 참여자 중에는 본인 역시 경영주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규모가 작은 사업체에서는 노동자 1인이 맡는 업무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이로 인해 대체인력을 가용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출산 관련 제도에 따라 마땅히 수행되어야 할 일련의 일들은 ‘회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 내지는 손해’로 여겨졌다. 공기업, 공공기관, 그리고 최근에는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육아휴직을 활용하는 종사자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경우에는 언감생심인 일이다. 앞서 말했듯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 재직 중인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각종 복리후생 면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는 동시에, 법적/제도적인 면에서도 배제되기 쉽다. 기업의 복지와 사회적 복지 모두에서 배제됨으로써, 노동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이중, 삼중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게 고루 제도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규모가 영세한 사업체의 경우 지원의 규모를 대폭 키워야 할 것이다.

2) 차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사업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노동을 지속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상은 여성노동자들 스스로 ‘차별’을 인식하는 것에 서부터 어려움이 있었다.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없다’고 답한 경우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인터뷰 전반에 걸쳐 들을 수 있었던 사례를 종합해 보았을 때, 직/간접적인 차별이라고 해석되는 경험들이 적지 않았다.

차별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차별’이라고 명시적으로 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러한 차별들이 간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컨대 참여자들은 (나이가 어린)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손님이 왔을 때 차를 내가야 할지, 상사의 담배 심부름에 응해야 할지―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망설였다. 둘째, 차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몇몇지표의 경우,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다른 산업군과 다르게 의미화되어 있었다. 예컨대 임금의 경우, 노동자들 간에 임금 수준을 공유할 수 없기에 차별의 정도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중요한 지표인 승진의 경우, 영세한 사업체 규모상 승진의 기회가 많지 않거나 승진의 의미가 크지 않기에 이와 관련하여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셋째, 여성들이 많은 직군이기에 차별을 드물게 경험했다는 답변들도 있었다. 하지만 출판노동, 특히 출판외주노동의 열악한 노동 실태는 여성이 많이 진출해 있는 여러 직군들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를 넓은 의미에서 ‘차별’과 연결 지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여성노동자들이 ‘차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낮은 평가, 혹은 낮은 집단자존감(collective self-esteem)의 영향일 수도 있다. 몇몇 연구는 소수자 집단이 가지고 있는 낮은 집단자존감이 차별을 알아차리는 데에 방해가 되며, 오히려 차별적 인식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혔다.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내집단(ingroup)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심적 기제가 발동하기에,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차별의 원인을 (자신을 포함한)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3)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권리는 곧 노동권의 일부

출산과 육아의 경험만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성폭력 경험은 여성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동반하며,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위치와 여건에서 일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권리’가 곧 노동권의 일부라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성폭력은 직장 내의 성적/계급적 위계질서 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으로, 문제 제기의 어려움을 수반한다. 특히 직급이 낮거나 고용 형태가 불안정한 인턴·비정규직,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장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 규정에 속해 있지 않은 외주노동자의 경우,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성폭력경험이 있음을 말한 참여자 8명 중 6명이 성폭력 가해자로 ‘남성 상급자’를 지목했다. 이는 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업무와 관련하여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묻는 문항(복수 응답 가능)에 전체 응답자 166명 중 가장 많은 94명이 ‘직장 상사’를 꼽았으며, 67명이 ‘사업주’를 꼽았다(덧붙여 21명이 ‘직장 동료’를 꼽았다). 때문에 피해를 경험한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그냥 넘기거나, 우회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답했다. 문제를 제기한 경험이 있더라도, 어떤 공식화된 매뉴얼에 따라 처리되거나 만족스러운 결과는 없었다는 답이 많았다. 

성희롱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거나, 사업장의 규모가 사실상 가해자와의 분리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문제 제기가 어렵게끔 하는 요인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외주자에게 ‘근무 장소 변경’ 내지 ‘배치전환’이란 ‘계약해지’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같은 성희롱, 성폭력은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일 뿐 아니라, ‘노동권의 침해’로서 이해되고대응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적절한 징계 및 사후조치의 권한이 사업주에게 맡겨 있다는 점은 사후 대처의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주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효율을 중시할 때, 책임은 피해자에게 손쉽게 전가될 수 있다. 사업주의 인식 고양과 대처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 1차적으로는 예방교육 이수와 법적 제재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뒤에서 살펴볼 것처럼 사전예방의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 사후 수습이 아닌 사전 예방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화할 것을 명시해 두고 있지만, 이는 많은 출판사업장의 실정에 맞지 않고, 이를 이수하는 출판사업장도 거의 드물다. 1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근로자가 알 수 있도록 교육 자료 또는 홍보물을 게시하거나 배포하는 방법으로” 갈음이 가능하도록 예외를 두고 있는데, 2014년 기준 82.3%에 달하는 출판사업장이 10인 미만의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교육 자료나 홍보물로 이를 대신한 적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재직 중인 노동자들이 대다수 여성이라는 점을 근거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시행하지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같은 인식은 ‘성희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성희롱은 다른 성별 간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며, 직장 내뿐 아니라, 저역자, 거래처 관계자와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폭력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이를 규탄하고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법의 빈틈을 메우고 관련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조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살폈듯 성희롱, 성폭력은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뿐 아니라 저역자-노동자 간의 권력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저역자나 다양한 거래처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캠페인을 기획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출판사 저자의 경우, 판권면에 “이 책을짓고 만든 이들은 성차에 의해, 성정체성에 의해, 나이에 의해, 사회적 지위에 의해,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명시적, 암묵적 위계와 위계에 의한 폭력을 거부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줄 것을 계약조건으로 했다. ‘#문단_내_성폭력’에 연대하는 한 시인의 경우, 출판사와의 계약서에 “갑(작가)의 성폭력, 성희롱 그 밖의 성범죄 사실이 인지될 경우 을(출판사)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갑이 을로부터 성폭력, 성희롱 그 밖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 갑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문장을 포함해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사례들 모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서는 안 됨을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서로 간에 당부하는 의미인 것이다. 저자 측에서 출판사에 이러한 요구를 할 수도, 반대로 출판사 측에서 저자에게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좀 더 고안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3. 결론

본 조사는 실제 출판계에 종사 중인 출판노협 조합원들, 그리고 출판노조의 운동에 연구로서 연대한 사회학 연구자들이 함께 수행한 협동 작업으로서, 25명이라는 적지 않은 참여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적으로 연구하고 노동자 관점에서 서술한 첫 작업물이다. 연구자와 참여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간 행정의 조사에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출판노동계의 세부 실태와 노동자들의 관점을 포착해 낸 연구로서 그 의의가 있다.

본 조사의 연구자들은 사실에 대한 분석과 제시에 그치지 않고, 행정과 노동조합 차원에서의 정책을 제언하고자 했다. 독자들이 출판노동의 실태를 더 내밀히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동시에, 점진적 변화를 위한 주체로서 노동조합의 다양한 운동을 기획하고 이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각 파트의 내용을 읽고 모여 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토론이 본 조사에서 놓친 부분들을 보완하고 심화, 발전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2018.09

우리는 시(時) 쓰는 버스운전 기사를 만날 수 있을까

- 영화 <패터슨Paterson>, 2016

나래 노동시간센터 회원, 상임활동가

[영화 패터슨 스틸컷]


사무실 창밖을 넌지시 바라본다. 익숙한 풍경이 곧 선명하게 들어온다. 4차선 도로 위를 무심히 달리는 차 중 버스가 보인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사무실 출근을 위해 파란색의 기다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재빨리 내리기 위해 뒷문에 가까이 앉은 내 자리에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대를 잡은 버스운전 노동자다. 빨노초 신호에 맞춰 적절한 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속도를 내는 그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2017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패터슨>이 불현듯 떠올랐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이야기다. 스크린 속 패터슨의 삶은 단조롭고, 평온하다. 매일 아침 6시 10분과 15분 사이에 기상한다. 침대에서 일으킨 몸을 끌고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직장까지 걸어가 PATERSON(패터슨)이라 쓰여 있는, 그가 담당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기가 사는 도시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설정도 독특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건 그가 입고 있는 푸른색의 유니폼이다. 버스 운전기사인 그가 하는 행위 중 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시(時) 쓰기’이다.

꽤 단조롭고 단순 반복되어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에서 꿈틀대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그의 비밀수첩에 적는 시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영감을 준다. 출근해 동료에게 듣는 비슷한 푸념, 운전석 뒤로 오가는 버스 승객들의 다양한 이야기,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항상 들리는 단골 바(bar)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패터슨이 가장 사랑하는 동반자 아내 로라의 이야기 등 무궁무진하다.

이렇듯 패터슨의 반복되는 매일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패터슨을 오로지 패터슨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바로 매일 써 내려가는 시(時)이자, 그 시를 쓰는 바로 그 ‘시간’이다. 패터슨은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버스 운전 노동자인 것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순간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도 패터슨처럼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마음이 묵직해지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버스 운전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의 심각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5년 시행된 「버스운전노동자의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에 따르면 경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경우가 전체의 95.7%, 경기 광역버스는 70.1%를 나타냈다. 장시간 노동을 가중시키는 격일제, 복격일제 등 교대제 근무제도 문제다. 격일제란 하루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 복격일제는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을 말한다. 격일제의 경우 하루 평균 17~19시간 근무한다.

이들이 호소하는 노동, 건강문제는 심각하다. 기본적 욕구 해결을 위한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한국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국물을 잘 안 먹어요. 소변 때문에. 2, 3시간 가는데 소변 마려우면 고속도로에서 어떡할거야. 기사들이 그런 거 다 감안해서 물도 잘 안 마시려 해. 딱 맞춰서 가서 소변 볼 거 생각하고. 커피도 이뇨작용 땜에 안 마시는 사람들 많아요. 그만큼 힘들고, 우리가 다 모든 걸 신경 써서 해야 되고.” (인터뷰 H, 2018년 경기도 버스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연구)

작년 노동시간을 둘러싼 싸움이 크게 벌어졌다. 무제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지준법 59조 폐지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뜨거웠다. 노동자들은 정말 ‘죽지 않기’ 위해 장시간 노동 근절을 요구했다.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시민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2월 28일 특례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줄었다. 시내버스로 대표되는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버스업체와 정부는 대규모 인력채 용과 근무체계 개편이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중노동, 과로사 위협이 1년 연장됐다. 지금도 하루 10시간, 20시간 가까운 장시간 운전을 하고 있다.

만약 패터슨이 한국에서 일하는 버스 운전 노동자였다면 그 주옥같은 시(時)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 속에서 그의 푸른색 유니폼은 언제나 반짝였을까? 캄캄한 새벽에 출근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식판에 겨우 배고픔을 잊을 밥을 먹으며 다시 버스에 올라타는 한국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 2018.09

스마트폰 수리하는 여성 엔지니어의 하루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이유숙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는 많은 사람이 전화, 문자 연락부터 카메라, SNS, 게임, 인터넷뱅킹 등까지 사용하는데 필요한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 이유숙 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1년 중 많은 야외 활동가 휴가 등으로 인해 가장 일이 바쁘다는 8월에 진행하였다.

 


스마트폰 수리 노동자의 하루

“저는 삼성전자서비스 동인천 센터에서 애니콜 수리 업무를 하는 이유숙이라고 해요. 쉽게 말해 스마트폰 수리 엔지니어인데 제가 일하는 파트를 애니콜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우리 센터에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TV, 청소기, 컴퓨터도 고치고 있어요.”

이유숙 님은 아침 9시부터 18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빼고 하루에 20명~30명 정도 고객을 상대한다고 한다. 특히 동인천 센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고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업무 중에서도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간단 고장 업무가 제일 많아요. 충전이 안 되거나, 폰에 이상이 있어서 전원을 껐다 켜야 한다든가 하는 업무도 많고요. 기계가 고장 난 거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문제로 방문하는 분들도 많아요.”

이유숙 님은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열리지 않아서 고쳐달라는 고객, 불량 어플을 삭제해달라는 고객 등을 하루에도 수없이 만난다고 한다. 한편, 아무래도 제일 많이 방문하는 고객은 액정이 깨져서 오는 분들이라고 한다. 

“여름엔 사람들이 바깥 활동이 많아지니까 휴가에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분들도 많고 더운 곳에서 과열로 인해 오작동하는 경우고 있고요. 여름에도 8월이 제일 바빠요. 6월에서 8월까지 이름을 성수기라고 보고요. 반대로 2~4월은 그나마 비수기인 것 같아요.”

서비스센터는 간단 점검은 기본 무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고객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받는다고 한다. 다만, 자재를 사용해서 수리해야 하는 경우엔 소비자보호원에서 정한 가격에 맞춰 고객이 비용을 지급한다고 한다.

노동 시간과 휴가 시스템

“서비스 센터는 아침 9시에 오픈하는데 우리는 8시 40분까지 출근해요. 아침에 조회도 있고 업무 준비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하루 30분씩 고정 연장수당이 있어요. 퇴근은 18시인데 바로 퇴근해요. 6시 즈음 되면 콜 전화를 안 받거든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1주일에 3~4번은 바로 퇴근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팀장님한테 눈치가 보여서 정시 퇴근을 못 했어요. 연장 근무를 해도 왜 연장 근무를 했는지 굉장히 까다롭게 심사해서 줬거든요.”

휴식의 경우 토요일에 정상 근무를 해서 일요일과 평일 1일 대휴를 쓰고 있지만, 이 역시 개인 약속이나 모임 등과 관계없이 매월 초 무조건 정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여름 휴가도 따로 없어서 기본 연차에서 사용하게 하는데 회사가 상황이 어렵다고 노동자들에게 9월부터 연말까지 남은 연차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된 일

“사람들이 대학 때 전공인으로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무역 전공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그만뒀어요. 그러다 2010년도에 입사를 했는데요. 시에서 직업 교육 많이 하잖아요. 그거 교육 받다가 일하게 됐어요. 입사할 때 조건이 운전할 줄 알고 IT 관련 업무에 대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했는데, 제가 사실 몇 년 동안 남편이랑 PC방을 했었거든요. 그때 경험을 많이 인정해줬어요. PC방이 프렌차이즈 회사라서 기술직 사원이 돌아가면서 지원해주고 그랬는데 제가 성격상 남한테 뭐 맡기고 그런 거를 안좋아해서 매일 그분 귀찮게 물어보고 공부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죠. 다시 직장 구할 때는 고정적으로 월급 받는 직장에 가고 싶었는데 삼성이라고 해서 좋아했는데, 그때는 우리가 협력업체 일줄은 몰랐어요.”

이유숙 님은 당시 첫 월급으로 120만 원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외근직으로 TV, 컴퓨터를 고칠 때라 차 기름값 내고 밥 먹고 그러면 50~60만 원정도 남았다고 한다. 이유숙 님께 여성으로서 기술직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점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2010년에 조두순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고객들이 여성 엔지니어가 오면 편해하고 좋아할 거로 생각해서 30명을 뽑았어요. 삼성 연수원에서 3개월 합숙하고 27명이 졸업해서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지금은 3명이 남아있고 외근 일하는 사람은 1명이에요. 저도 작년 9월부터 내근직으로 옮겼거든요. 혼자 남으신 분은 이제 세탁기를 열고, 에어컨을 수리한다고 하는데 저는 냉장고나 에어컨 수리를 힘이 부족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유숙 님은 여성이라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기에 차별당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차별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혼자 냉장고를 뒤집어서 수리해야 하는데, 제가 그걸 혼자 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너는 냉장고 일 못 받으니까 남자들인 지저분해서 안하고 싶어하고 돈도 안 되는 더러운 일을 저한테 시켰죠. 같이 1시간 일하는데 남자들은 한 시간 일해서 2~3만원 받고 저는 5천원 받았거든요.”

이유숙 님은 여자라고 해서 남성과 다르지 않게 매일 피나는 교육을 해왔다고 말했다. 연수원 시절 아침 9시부터 저녁 18시까지 매일 시험을 봤고 입사해서도 매월 공부는 기본이고, 1년에 2차례 국가고시처럼 시험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진짜 사장이 삼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교육을 주관해왔던 삼성전자가 직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그룹 차원으로 진행했던 교육과 시험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한다.

업무가 바뀌면서 변화한 것

“외근 업무를 할 때는 여자라 힘든 게 많았는데 내근일 때는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무조건 고쳐달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어서 힘든 거 같아요. 무조건 고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무래 우리가 고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대화가 안 되는 분들이 있거든요. 카카오톡에서 사진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서 업데이트해 보라고 했더니 그걸 왜 자기가 하냐고 네가가 하라는 거에요.”

수많은 고객과 겪은 일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뭔가 일하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나 방식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은 일단 고객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요. 그래도 이야기가 잘 안 되면 팀장 상담을 유도해요. 그러면 팀장도 우리랑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래도 대화가 안 되면 우리 센터는 수리를 거부할 테니 매장에서 퇴장해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경찰 부르고요. 모든 센터가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센터 팀장님이 많이 배려해주는 데다 요즘 갑질이다 뭐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고 그래서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이유숙 님은 예전에는 무조건 목소리 큰고객이 이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사실 고객들을 이렇게 만든 건 삼성이에요. 옛날에는 소리 지르면 무료로 수리해줬 거든요. 돈을 깎아주기도 하고요. 요즘이야 경찰 부른다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제품을 그냥 던진다거나 하는 분들은 예전에 삼성이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길들여진 거에요. 삼성가서 일단 소리지르면 다해줄 거야 라는 인식이 팽배거든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

“일하면 가장 즐거운 건 아무래도 월급 받을 때죠.. 웬만한 제 나이 여자들보다 많이 받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또 월급이라는게 단순히 돈에 문제가 아니라 나 의 능력치를 평가받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내가 100만 원, 200만 원, 300만 원받는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300만원을 받는다는 것이 사회에서 300만 원짜리 능력이 있구나라는 인정받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만족도 있는 것 가고요. 사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도 자기만족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대화하면 아줌마라고 무시하거나 소외는 있었는지 노동조합을 하면서 나름 동등한 것도 있고 내가 아는 것을 피력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나의 단점을 커버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고,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많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누구보다 일에 대해 즐거움도 많고 만족도도 높은 이유숙 님이 일할 때 원칙 같은 게 있을지 궁금했다.

“글쎄요 저는 최대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말하는 조건에 부합한다면 최대한 무상으로 서비스를 해드리고 가급적 친절하게 수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일 많이 하는 분들은 한번 일할 때 평균 10분 정도 하는데 저는 고객이랑 대화도 많이 나누고, 웬만한거 물어보면 다 답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많이 못 하고 월급이 적기는 한데 그래도 앞으로도 이렇게 일하려고 해요.”

이유숙 님은 이러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앞으로 오래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포부도밝혔다.

“앞으로 저는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일하고 싶어요. 아이가 조금 지나면 다 크는데 그때는 저의 만족을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게 필요할 것 같아요. 노동조합 만들고 힘들었지만 회사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요. 예전에는 우리가 회사한테 아무 말도 못 하거나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귀는 생긴 거 같거든요.”

[현장의 목소리]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 2018.09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카톨릭대의료원분회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현장의 목소리는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노동조합을 찾아갔다.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노동자들은 선정적인 의상을 입어야 하는 강제 장기자랑, 관리자 이삿짐 나르기, 공원 조성 기부금 강요 등 부당한 갑질은 물론 병원 이익률과 반대로 가는 임금 인상, 임산부 강제 야간 노동, 장시간 과로 노동 등 부당한 업무환경을 바꾸기 위해 파업 투쟁에 나선 상황이었다. 지난 38년의 세월을 뒤엎기 위해 투쟁하는 조합원과 현지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조직국장 동지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8월 16일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하였다.

억눌린 분노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11년차 간호사, 7년차 간호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보 조직국장 현지현입니다.”

현지현 지금 노동조합은 1,300명이 가입 대상자인데 조합원이 900여 명 정도 가입해있어요. 간호사, 의료 기사, 방사선사 등 모든 부서에서 일하는 분들이 함께하고 있죠.

11년차 간호사 사실 처음 병원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는 망설였는데 우리가 몰랐던 병원 실상도 알게 되고 하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같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7년차 간호사 저도 비슷한데요. 널스케입이라고 전국에 간호사들이 이용하는 홈페이지가 있는데, 거기에서 저희 병원이 이슈가 됐어요. 그런데 그 이슈가 된 이야기들이 과장이 아니라 모두 사실이었다는 거에 분노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부당한 업무를 강제 당하며 일해왔다

7년차 간호사 병원이 인증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할 때마다 사직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다른 병원도 상황이 비슷한데 간호사 업무랑 관련 없는 일을 너무 많이 시키거든요. 가령 걸레로 병원 휠체어를 닦으라는 거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다 해요. 본격적인 준비만 두 달 정도 하는데 이때는 아침 데이 출근하면 밤 10시에 퇴근해요. 문제는 평상시에도 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말이 8시간 근무지 환자 보는 일이 교대 시간을 딱딱 맞춰서 끝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도 가끔 제시간에 딱 맞춰서 정시 퇴근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눈치를 많이줘요.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일찍 갈 거면 여기로 퇴근하지 말고 구석 엘리베이터 타고 퇴근하라고 하더라고요. 밤새워서 나이트 근무를 해도 다음날 데이 근무자들이 티 타임 할 때까지 남겨두고 집에 차 마시고 가라고 하기도 해요. 지금껏 아무리 힘들게 일했어도 그날 딱 하루 일찍 퇴근하면 그 병동은 퇴근을 빨리 한다더라 소문이 나요. 병원 자체가 간호사들이 집에 늦게 가야 일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니까 다들 이렇게 살았어요.

현지현 대구가톨릭대학병원이 환자들이 직접 간호사, 의사 의료 서비스나 친절도 같은 걸 평가하면 전국 상위권에 들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거든요. 그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그만큼 일하는 사람들이 높은 강도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11년차 간호사 노동조합이 있기 전에는 간호사들이 임신 마지막 달까지 나이트 근무를 하는 게 당연했어요. 저는 이 병원이 처음 다니는 병원이고 이직을 했던 적이 없어서 다른 병원에서도 다들 그러는 줄 알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임신한 노동자에게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거예요. 우리 병원은 지금까지 무조건 강제였거든요. 이 문제는 너무 심각해서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것부터 바로 바꿨어요. 그리고 전에 제가 몸이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병가는커녕 제 휴가랑 오프 이용해서 치료 받았어요.

7년차 간호사 대구에 대학병원이 4개가 있는데요. 우리 병원이 병상도 제일 많고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급여는 정말 작았어요. 그런데도 대부분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인데 다른 민간 병원보다 양심적으로 운영하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버티면서 일해왔는데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현지현 아무래도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 조합원들에게 갑질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제일 많았어요. 관리자들의 부당한 인사나, 간호사들 선정적인 장기자랑 시키고, 관리자가 이사하면 이삿짐 날라줘야 하고, 눈 오면 병원 눈 쓸게 하고 그런 것들이 심각했더라고요.

11년차 간호사 예전에 병원에서 공원을 만든다고 전 직원들이 기부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었어요. 제일 작은 구좌가 5만 원이었는데 최고 60만 원까지 할 수 있어서 다들 어쩔 수 없이 참여했어요. 그리고 끝전 기부하자고 해서 월급에서 끝전을 강제로 기부했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병원에 돈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고 기부했었는데 이것도 어이가 없어요. 또, 병원이 체계 자체가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임금명세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모르거든요. 같은 동기인데 월급이 다른 경우도 있어서 총무과 물어보면 너희가 재수가 없는 거라고 말하고 끝이었어요. 여기가 38년 된 병원인데 기본적인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죠.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시스템이 없었다

현지현 여기 병원은 직장 갑질 문제만이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더라고요. 지금까지 출퇴근을 주 5일 40시간으로 운영한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8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6~7시간 일해서 남는 시간을 토요일에 시키는 방식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토요일에 휴일, 연장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기본급으로만 일은 시킨 거예요.

11년차 간호사 아침에 출근했는데 만약 환자가 줄었잖아요. 그러면 병원에 다 왔는데 집에 가라고 그래요. 반대로 휴가나 오프여서 쉬고 있는데 환자가 많다고 출근하라 그래요.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왜 네가 마음대로 해외에 나갔냐고 뭐라고 하고요. 최근엔 조합원한 분이 파업 중간에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부서장이 환자 버리고 병원 나갈 땐언제고 휴가 가냐고 비난을 했다는 거예요. 외래팀장인 수녀님들은 노동조합에서 파업하면서 소식지를 냈는데 거기에 수녀님이 아니고 수녀라고 했다고 역정을 내더라고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최고 VVIP 에요. 만약에 본인이 일하는 병동에 입원이라도 했다 하면 기본적인 치료는 물론이고 물 떠다 드리고 심부름하고 수발들어야 해요.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현지현 작년 12월 27일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까지 7개월 정도 교섭을 진행했는데요. 4월까지는 병원 책임자인 의료원장이 교섭에 나오지 않겠다고 해서, 책임자가 나오라는 교섭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의료원장 나오고 파업에 돌입하고 나서 4차례 정도 교섭을 했고 지금까지 대화를 하는 상황이에요.

노동조합은 이번이 첫 단협을 체결하는 거다보니 핵심 요구안이라고 해서 10개를 논의하고 있는데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임금 문제가 안 풀려서 다른 사항들도 진전을 못 하고 있어요. 병원은 자신들의 제시한 임금 문제를 노동조합이 받지 않으면 이후 대화도 없다고 하고요.

끝까지 힘내서 투쟁해보자 다짐하고 있다

11년차 간호사 사실 다른 거보다 환자, 보호자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들 얼마나 힘들었길래 이렇게까지 나와서 투쟁을 하냐고 많이 응원해주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이 돼요. 파업 투쟁하면서는 사실 처음엔 3일이나 7일이면 병원이 교섭하겠지,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고 싸우면 싸울수록 병원의 실체를 알게 되니까 그래도 내가 11년을 몸담았던 병원인데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그렇네요. 마음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되는데 그래도 지금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되니까 힘내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요.

7년차 간호사 투쟁하면서 울컥했던 적이 많았어요. 우리가 누렸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 조차 누리지 못했구나. 지금까지 재단 좋을 일만 했구나 그런 걸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11년차 간호사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학교 졸업하고 여기가 첫 직장이고 다른 곳에 이직했던 적이 없어서, 우리 병원이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니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말았거든요. 가까운 지역에서 영남대나 경북대병원에서 파업한다고 해도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 하면서 우리끼리 툴툴거리기만 했지 이런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나 혼자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7년차 간호사 저도 지금까지 부당한 상황을 보면 투덜거리고 말았거든요. 만일 돌파구가 있다면 퇴사다 이렇게 생각했었고요. 다른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이제는 달라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다

11년차 간호사 조합원들 함께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서로 의지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앞으로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어요.

7년차 간호사 이때까지 힘들지만 버텨서 왔으니까 열심히 투쟁해서 꼭 같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지난 9월 2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분회가 병원과 잠정합의하였다. 파업투쟁 39일 동안 모든 조합원들이 한 마음으로 싸웠기에 이뤄낸 소중한결과이다. 노동조합은 이번 파업을 계기로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이고, 앞으로도 환자와 노동자 모두가 안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한 현장투쟁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 기본 합의 사항 *

▲ 기본급 정률 5.5%+정액 6만원 인상

▲ 갑질 전수조사, 부서장 상향평가 인사반영

▲ 주5일제 도입, 시차근무 폐지

▲ 간호사 1인당 환자수 10~12명 고정

▲ 배치전환 원칙 마련

▲ 육아휴직급여 지급, 임신기간/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 외주용역 금지 및 불법파견 정규직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 2018.09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해 오늘도 달립니다”

-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2004년 개봉했던 영화 <인어공주>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 배우 전도연과 박해일이 출연해 아름다운 섬마을의 풍광과 부모님의 과거 시절로 돌아가 비로소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극 중 전도연은 아름답지만 거친 바닷속을 힘차게 헤엄치는 해녀로, 박해일은 섬마을의 몇 안 되는 가구에 반갑고, 슬픈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집배원)으로 나온다. 영화 속의 우체부 박해일은 아름다운 섬마을을 오토바이로 타고 다니며, 보람있게 살아가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2018년 집배원 노동자의 표정에 행복함을 찾기란 어렵다. 작년 19명, 올해 14명의 집배원이 노동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희망은 있다. 작년 한 해 장시간 노동 근절,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를 외쳤던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을 지난 8월 24일에 만나 집배 노동자의 장시간 중노동을 없애기 위한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았다.

허소연 선전국장은 집배노조가 출범한 2016년부터 함께 했다. 노동조합 일을 하기 전 대학교에서 학생운동하며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계기였다. 


[출처: 집배노조]


“집배노조 설립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됐던 건 토요택배 부활이었어요. 기존 노조 체계로는 우리가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없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장시간 노동, 중노동 근절은 몇몇 사람에게서 나온 요구가 아니었어요. 기층에 있는 우정노조 조합원들에게부터 올라왔던 요구였죠. 그래서 노조를 새로 설립하게 됐어요. 당연히 설립한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 상급단체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민주노총을 선택했죠. 그렇게 대중의 요구로 만들어진 노조이기 때문에 집배원의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가 가장 핵심적 요구였습니다.”

지금의 집배노조는 2016년 전국의 집배원 ‘전국우정노조’를 탈퇴한다. 그리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가입을 결정하며 집배노조를 세웠다. 변화를 갈망하는 움직임은 2013년 집배원장시간 중노동없애기운동본부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화됐다. 우정노조에서 나온 노조들은 기존 노조에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토요 택배 폐지, 장시간 중노동 폐지 등 같이 싸우자고 말이다. 

“집배원분들은 대안적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토요 택배가 재개됐지만 위원장 간선제 등 기층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이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정노조는 오랜 역사, 큰 규모인 대단한 노조죠.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복수노조가 7개가 있고, 직종별로 분리된 현실에 대한 책임은 제일 먼저 생긴 우정노조에 있다는 것도 같이 통감해야 할 부분이에요. 복수노조를 만든 사람들이 노조가 없어서 새로 만든게 아니고, 기존 노조에서 탈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우정노조를 탈퇴한 이유 분석을 철저히 해야죠.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노조가 많아서 관리하기 힘든 측면이 있겠지만 한편으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치열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집배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들을 받아 안고 활동하는 집배노조는 최근 새 식구를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여름에만 담양우체국, 북광주우체국, 춘천우체국 등 전국 곳곳에서 지부가 설립되고 있다. 

“공동의 승리경험이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함께 뭉쳐 요구하면 실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요. 기존의 긴 역사 속에서 그런 성취감이라고 할 게 많지 않아요. 집배노조 설립 초기에도 ‘될까?’가 있었죠.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장시간 중노동 쟁점화시키고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도 요구하고, 집배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도 꾸려졌죠. 그건 상층부의 제도이지만 실제 일하는 분들에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어요.


[출처: 집배노조]


정규직 집배원은 근속연수가 15년 정도로 길어요. 긴 시간 동안 일을 하며 바뀐 게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 뭔가 바뀐 거죠. 하다못해 관리자들이 집배원을 대하는 태도, 표정이 바뀐 거예요. ‘왜 바뀌었을까?’ 했었을 때 집배노조가 생기고 난 다음에 변화한 걸 체감하고 있어요. 최근 가입하신 분들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여태까지 보고만 있었는데 내가 가입하면 더 많이 바뀔까?’ 그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오시는 분들이요.”

허소연 선전국장은 한 가지 기억을 꺼냈다. 조합원의 99%가 남성, 평균연령대도 49세다. 한 조합원의 가족이 요즘 출근할 때 왜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가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거의 죽지 못해 나가는 표정으로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집배원 그만두고 자영업이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얘기를 하고, 가족들이 서로 안타깝고 미안해하고. 하지만 최근 들어 근무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진 않지만 본인이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하다못해 정수기 밑에 물이 떨어져 미끄러운 문제를 관리자에게 말할 수 있는 것, 택배 쌓는 팔레트 철이 어긋나서 일하다 다칠 것같은 문제를 과거엔 알아서 조심히 사용했다면 이제는 당당하게 바꿔달 라고 요구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집배노조는 장시간 중노동 근절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집배노조의 핵심 요구는 장시간 노동 해결이에요.제도적으로 근로기준법 59조에 우편업이 제외되긴 했지만, 공무원 집배원은 현역 공무원이라 무제한 노동이 허용돼요. 우체국은 무료노동, 중노동이 허용된 사업장이에요. 그래서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내가 일한 시간만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투쟁을 주요하게 하고 있어요. 과로사 관련해서 우정사업본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사업장이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형식적으로 하고 있어요. 사망사고 발생했을 때 체계적으로 보고하고 원인 분석을 내놔야 하죠. 사고다발 군을 미리 찾아내 예방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집배노조에서는 그런 걸 요구하고 있죠. 그런데 정말 황당했던 것 중 하나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안건 중 ‘잘 씻고 다니게 해라, 팬티를 잘 갈아입어라’ 이런 내용이 었더라구요. 그게 안건이었어요. 그게 뭘 뜻하는 걸까요? 집배 노동자들이 지저분하니 개인 위생관리 해라 이런거죠. 또 한 곳의 사례는 샤워시설이 고장 나서 1층 영업장으로 물이 새니까 아예 샤워를 못 하게 했어요. 그러면 안건 1번으로 샤워시설 문제를 다뤄야 하는거 아니닌가요? 모든 걸다 개인 책임으로 돌려요.”

이처럼 안전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여기는 우정사업본부의 태도는 노동자를 사고와 죽음으로 내몬다. 지난 8월 30일 부산지방우정청 거창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인력부족으로 시간에 쫓기면서 일 하는 바람에집배원들은 사고 위험이 높다. 그런데도 우정사업본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 토요택배를 비정규직 위탁배달원에게 맡기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것이다. 

“집배노조는 당연히 반대하고 있죠. 고용형태에 따라 누구는 토요일에 쉬고, 누구는 일하고. 토요 택배완전 폐지 요구는 같이 쉬고, 같이 일하자는거예요. 택배업은 40대 남성분들이 많아요. 이 분들은 IMF 이후 정리해고 당하고 자영업, 물류사업으로 갔던 분들이죠. 정부는 그걸 악용해 열악한 일자리에 이 분들을 몰아넣고 있어요. 악순환이에요. 장시간노동이 만연해 오후시간에 택배를 못 받고, 밤늦게 받아야 하고, 그러니 밤늦게 배달을 해야 하죠. 어디서는 끊어내야 해요. 우정사업본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배달, 물류 산업 자체가 바뀌어야 해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는 육체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정신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작년 7월 6일 한 집배원이 자신이 일하던 우체국 계단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틀 뒤 끝내 그는 숨을 거뒀다. 21년 차 집배원이었고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존 업무 구역에서 7년 일했지만 업무 구역이 바뀌고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은 단 3일 주어졌다.

“처음 과로사를 생각했을 땐 노조도 협소하게 뇌심혈관계질환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과로자살 비중이 뇌심혈관계질환만큼 높더라고요. 자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두는 분들도 많아요. 국민에게 서비스 제공하는 것과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괴리가 심해요. 대부분 정신적 스트레스는 고객, 관리자에게 받아요. 

그런데 우체국에는 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시스템이 없어요. 오히려 집배원에게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하죠. 이번에 기획추진단에서 집배원 1만5천 명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직무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게 나왔어요.”

우정사업본부를 비롯해 정부가 집배 노동자들의 노동안전, 건강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게 사실 가장 화나고, 일이 안 풀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우정사업본부는 개인이 건강관리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주장해요. 관리자들이 봤을때는 집배원들이 담배 많이 피고, 술 많이 마시고 그런거죠.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장시간 중노동 스트레스를 풀어낼 방법은 이분들에겐 가장 쉽게 담배와 술인 거죠. 사실 우정사업본부도 알 거예요. 원인이 장시간 중노동이란 걸요. 외면하는 거죠.”

근로기준법 59조 폐지를 위해 열심히 싸워왔던 집배노조 허소연 선전국장에게 노동안전 과제에서 장시간 중노동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높아져야 해요. 그러려면 노조가 기본적으로 임금인상, 복지증진을 해야죠. 문제는 노조가 어떤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만날거냐예요. 적정의 일을 하면서 삶을 잘 유지해나가는데 요즘 화두죠. 이걸 위해서라도 노조는 장시간 중노동 관련 의제를 계속 가져나가야 해요. 안전 문제도 부차적인 게 아니죠.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노조에서 장시간 중노동, 안전 문제를 계속 다루는 것이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어요.”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 2018.09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①

이이령 운영집행위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검토해 몇 차례 기고하였고, 최근에는 국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면개정과 관련해 다른 국가들의 산안법을 살펴보고 있다. 첫 시작으로 독일의 안법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독일과 한국은 법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고, 산안법이 다루는 범위가 워낙 넓어 전부 살펴보기엔 한계가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산안법 전면 개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쟁점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하려 한다. 독일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 인력에 대한 법, 화학물질 관련 및 위험성평가 등은 산안법 외에 따로 있어 추후에 다루기로 한다. 독일 법은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13년 발간한 「독일 노동법전」 등을 참고하였다.

폭넓은 법 보호대상과 사업주 안전보건조치의 원칙

‘일하는 사람’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도입하였음에도 이에 대한 정의가 부재해 결국 법 보호대상에 일부 직종만 추가 포함되었으며,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장실습생은 여전히 제외되었다. 독일 산안법 2조 정의규정에서, 산안법 적용대상인 ‘취업자’는 노동자, 군인, 공무원, 법관, 장애인을 위한 공장에 취업중인 자 등을 포함하며,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자’도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 일반적 원칙 <독일 노동법전>, 한국 노동연구원, 2013.

사용자는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일반적 원칙에 근거하여야 한다.


1.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이 최대한 예방되고 현존하는 위험이 가능한 한 최소화될 수 있도록 근로형태가 조직되어야 한다. 
2. 위험은 그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3.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서는 기술, 노동의학, 위생 및 기타 노동학술상 확립된 이론이 고려되어야 한다. 
4. 산업안전보건조치는 기술, 근로체계, 기타 근로조건, 사회적 관계, 작업장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적절히 연관시킬 목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5. 개인을 위한 보호조치는 다른 조치보다 후위에 있다.
6.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취업집단에 대하여는 특수한 위험이 고려되어야 한다.
7. 취업자에게는 적절한 지시가 부여되어야 한다.
8. 직·간접적으로 성별에 따른 효과를 미치는 규정은 생물학적 사유에 의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또한, 독일 산안법에는 사용자가 산업안전보건조치를 취함에 있어 지켜야할 일반적 원칙이 기술되어 있다. 최대한의 건강 예방과 위험의 최소화를 위한 근로형태 조직, 위험의 근원적 제거, 공학적 제어 등 보다 개인보호구는 후순위 조치라는 점, 기술·근로조건·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산업안전보건조치의 계획 등이다. 이는 ILO 산업안전 분야 협약의 원칙들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원칙적인 수준일 수 있으며 처벌 규정은 없지만, 중요하고 실제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이기에,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5조 (사업주 등의 의무) 등에도 이런 원칙이 기술되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은 근무시간 중에, 파견노동자 교육도 원청의 의무

국내 산안법 및 하위 규정 상 안전보건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지만, 정작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외에 안전보건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 도입 시에는 못 받는 경우도 많다. 독일 산안법 상 사업주의 안전보건교육은 취업자의 근무시간 중에 충분하고 적절히 해야 하고, 채용 시 · 업무 범위 변경 시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업수단·기술 도입 시에도 시행해야한다. 그리고 독일 산안법 상 파견근로자 안전보건교육의 의무는 사용사업주에게 있다. 그렇다고 파견사업주의 산안법 상 다른 의무가 제외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 중 원청의 책임 확대가 주요내용 중 하나이나, 제64조에 의하면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안전보건교육 책임은 장소 및 자료의 지원에 한정된다. 독일과 같이 안전보건교육의 의무에 대한 원청의 책임도 명확히 규정해야 산업재해 예방에 더욱 일관적이고 실효성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험 업무 재개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와 공동 결정 하에

독일 산안법 9조에서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는 작업장을 즉시 이탈할 수 있고, 이 위험이 지속되는 경우 사용자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노동자에게 업무 재개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위험상황에서 사업주의 안전보건대책 계획 및 시행은 사업장 ‘종업원평의회’01와 공동결정 하에 이루어진다. 국내는 작업 중지 후 위험이 여전하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업무 재개를 요구하여 2차 사고가 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작업중지 명령과 해제에 대해 국내 산안법 전면개정안에서 일부 진전된 절차가 마련되긴 했으나, 현장 안전보건에 대한 해당 작업 노동자 및 노동자대표의 주체적 참여 보장이 여전히 부족한 국내 산안법에 이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위험 업무 재개에서 일부 살펴봤듯이,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에 있지만 한국 산안법에는 거의 없는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 개인 및 단체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및 사업장 공동결정권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 2018.09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요긴한 것이 없어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실제로 그렇게 일이 해결된 후 자신감을 표현하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잇몸까지 쓰는 상황이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잇몸을 써야 할 상황이 온다면 훨씬 조심해서 써야 한다. 잇몸까지 상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를 외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얼마 전 출장을 나간 곳에서 방아쇠 수지로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를 만났다. 에어건(air gun)을 온종일 쓰면서 방아쇠를 수시로 당기니 검지 쪽인대에 전형적인 방아쇠 수지가 생겨버렸다. 병원에 다니면서 주사도 맞아봤지만, 그때뿐이고 어차피 검지를 계속 쓰면 더 안 좋아진다는 이야기에 이제는 중지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왼손, 오른손, 검지, 중지를 번갈아 가면서 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럴 수 있었으면 아플 일도 없었겠다 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나오는 물건을 처리하는 동안 쉴 틈 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하고 조금만 신경을 못 써도 하자가 생기곤 하니 손가락이든 자세든 바꿀 틈 같은 건 없다고 한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똑같은 일에 검지 대신 중지를 쓰는 것, 이 대신 잇몸을 내어주는 것뿐이다. 식품 포장하면서 철끈을 돌려 묶느라 손목에 수근관 증후군이 생겼던 다른 노동자는 오른손을 수술받고 아껴 쓰는 동안 왼쪽 손목에 수근관 증후군이 생겨버렸다. 자동차 정비를 하던 노동자는 테니스 엘보우를 치료받는 동안 어깨의 충돌증후군이 심해졌다. 쉼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동안 노동자는 이가 깨지고 결국 잇몸마저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평생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 근골격계 질환이다. 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의 대부분은 전업주부든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자영업자든 자신의 직업과 관련성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분을 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 한국과 같은 장시간 노동 사회에서는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과정 상 그것이 자세와 관련된 것이든 잦은 사용과 관련된 것이든, 개인적인 특성에 의한 것이든 오랜 시간 근골격계가 변형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직업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근골격계 질환은 개인이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고 있다. 예를 들어, 사무직 노동자에게 요통이 발생했다고 하자. 오래 앉아서 근무하는 환경, 의자 및 책상의 좋지 않은 구조, 활동량이 적어 생기는 복부비만, 허리를 굽히는 자세 등 수많은 직업과 관련하여 파생된 요인들이 요통의 원인이 되겠지만 결국 그 노동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자비로 병원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다. 산재는커녕 공상조차 이야기하지도 어쩌면 생각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산재해줘야 하는거 아냐?’라는 전혀 진지하지 않은 농담을 상사로부터 듣기도 한다. 한편, 병원에서는 ‘너무 오래 안 좋은자세로 앉아있어서 그래요. 계속 앉아만 계시면 안 돼요. 한 시간에 10분은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세요.’라며 가장 중요한 원인을 당연히 가장 오랜시간을 들이고, 불편한 자세를 강제하는 노동자의 직업에서 찾는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러한 직업 관련한 근골격계 질환에 의한 사회 경제적 손실을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근로손실일수의 약 25%, 98억 유로의 생산 손실(2009년), 조기 은퇴하고 조기 노령 연금을 수급하는 이유 중 정신 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원인, 치료, 재활, 간병에 연간 250억 유로 사용 등 실제 사회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게 되는 손실은 어마어마했다. 이에 독일의 산업안전보건 종합계획에는 지속해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예방 대책이 있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직업 관련 손실이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명백한 재해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조차 공상처리를 강요하여 산재를 은폐하며, 질판위에서는 아직도 퇴행성 질환은 직업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나오고있는 상황이니 앞서 사무직 노동자의 예와 같이 직업 때문이지만 건강보험으로 치료되는 많은 경우는 확인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확인하려는 관심조차 없다. 이렇게 직업 관련 근골격계 질환의 크기조차 확인이 안 되고 대부분 자비로 치료하는 상황, 이가 없으면 알아서 기꺼이 잇몸을 내어주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어떤 사업주가 나서서 환경을 개선하려 할 것인가.

이제는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의 인정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고 이를 신청할 방법도 매우 간소화 시켜야 한다. 다른 질환보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이러한 과정을 간소화 시켜야 하는데, 이는 감기처럼 흔하면서 간단하게 진단할 수있는 질환은 동네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성 암이나 뇌심혈관계 질환과 같은 중증 질환과 꼭 같은 과정을 통해 확인될 필요가 있을까, 현재는 제대로 된 질환의 규모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직업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 근골격계 질환이 더 이상 건강보험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만큼의 재정 부담을 그 원인 제공자인 사업주에게 산재 보험금 인상 등으로 물어야 한다. 근골격계 사고의 예방, 작업 환경에 대한 인간공학적 개선, 작업 간 휴식 시간을 통한 근골격계 피로 회복 등의 대책은 관리 감독만으로 해결되기보다, 직업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의 부담을 사업주가 제대로 지게 될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