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지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대피권을 보장하라! /2016.10

지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대피권을 보장하라!

 

 

 

최민, 이숙견 상임활동가

 

 

 

지난 9월 12일과 19일 경주에서 각각 진도 5.8과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이번 지진을 직접 겪은 두 노동조합을 만나 경험을 들어봤다.

 

 

지진,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장 인터뷰
대형마트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고 빽빽하고 높게 물건이 쌓여 있어 지진 발생 시 위험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지난번 지진 때 홈플러스 경주점에선 진열 상품이 떨어졌고, 포항 죽도점 건물의 일부에는 균열이 생겼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장은 지진 직후, 회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점검했다.

 

“대형마트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라 소소한 안전사고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도 대응이 늘 철저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화재 시 울리는 사이렌 오작동이 종종 있어서, 실제로 작은 불이 났는데 오작동인 줄 알고 무시했다가 뒤늦게 대응한 적도 있었죠.”

 

다행히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회사는 지진 발생 후 안내 방송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가, 이후 직원들을 다시 들어오게 해서 수습하고 다시 근무하도록 했다.

 

지진에는 도움 안 되는 매뉴얼

“포항 죽도점과 경주점은 노동조합 지부가 없는 곳이라 직접 직원들에게 연락하고, 회사에도 조치와 대응을 묻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재난 매뉴얼에 제대로 된 지진 대응이 없더라고요. 어느 정도 강도일 때 어떻게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어서, 매뉴얼대로 했는지 따지기가 어렵더군요. 이번 지진 이후, 회사에서는 지진 안내 방송 문구도 정비하고 지진 발생 시 바로 대피시키도록 전 지점에 지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장관리자로서는 영업 중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2016.9.12 지진 발생 직후 홈플러스 매장 사진이라고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다.

 

 

위험을 감지해도 영업을 중단하는 것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영업이나 생산에는 최대한 지장을 줄여야 한다는 지상과제 때문에 벌어졌던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마을 주민들은 27분 만에 자체 판단 때문에 대피를 시작했지만, 인접한 산업단지 지역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25분이 지나고서야 구미시로부터 대피 통보를 받았다. 올해 7월 26일 세종 부강공단 렌즈 제조업체에서도 유해물질이 누출돼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인근 공단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으나, 소식을 늦게 접한 일부 노동자들은 사고 발생 2시간이 넘도록 작업을 계속했다. 뒤늦게 회사에 작업중지와 안전조치를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


그래서, 안전 문제로 작업을 중지하거나 스스로 대피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이런 판단이 늦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판단이 늦어져 발생하는 위험은 결국 현장의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다.


매뉴얼과 함께 노동자에게 힘과 권리를
홈플러스 역시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 이외에도 울산, 부산 지역의 지점에서도 고객과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었지만, 노동자들이 대피를 강하게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의 경우, 물건이 떨어지고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는 일이 있다 보니 회사에서 방송을 하고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근처 울산이나 부산 지역에서도 진동을 크게 느끼고 회사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안전하다는 얘기만 들은 거죠.”

 

최대영 부위원장은, 이번 지진을 경험하면서 구체적인 매뉴얼 보완과 교육·훈련 은 물론 작업중지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재난에 대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매뉴얼에도 지진 관련 내용이 훨씬 자세히 들어가야 할 것 같고요. 위험할 때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도 필요하죠. 그런데 단체협약에 반영이 안 돼 있고 경험도 없어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을 높이는 것이 안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고 실효적이다. 지진이 나면 지진매뉴얼을 만들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에 누출사고 매뉴얼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셈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작업중지권이다. 여러 전문가에 의하면 지진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만큼,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스스로 대피하고 고객도 대피시킬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윤보다 더 소중한 것은 노동자의 안전, - 현대차 지부 고선길 노동안전보건실장 인터뷰
9월 12일, 진앙으로부터 직선거리 32㎞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노동조합의 주도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전 공장의 라인을 멈추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2조(주간연속 2교대제)가 한창 작업 중이었다. 진도 5.1의 지진에 이어 한 시간 만에 발생한 5.8의 강진은 현장 곳곳의 건물을 뒤흔들었다. 작업자들은 지진에 대한 생경한 두려움으로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노동조합의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두 번째 지진 때, 현장에서 엄청난 강도의 지진을 느꼈습니다.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물건이 떨어지고, 빔이 휘어졌다는 제보가 노동조합에 빗발쳤습니다. 이후 추가로 발생 가능한 강진에 대한 두려움, 작업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회사의 조치와 노동조합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19시 44분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한 후 노동조합은 바로 회사에 재발 우려가 있으니 대책을 세우자고 제안하였다. 진도 5.8의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하자, 라인을 중지하고 현장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하였다. 하지만 회사는 시간을 끌며 회사 독자적인 자체점검을 통하여 생산가동에 큰 문제가 없으니, 작업중지는 안 된다는 입장만 반복하였다.

 

조합에서는 20시 50분부터 우선 작업을 중단하고 노사합동 안전진단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자고 회사에 수차례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10분만, 10분만 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3~40분이 지나도 답변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일방적인 자체진단을 한 결과, 작업을 중지할 만큼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회사의 자체진단은 생산이 가능한지에 대한 확인뿐이었고, 작업자의 불안과 두려움, 여진에 대한 가능성은 배제한 것이었죠.”

 

시간 끌던 회사, 처음으로 전 공장을 멈춘 노동조합!
공장별로 부분적인 작업중지를 한 경험은 있었지만 전 공장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사례는 조합 설립 이후 29년 만에 처음이다. 전 공장의 작업중지 조치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작업자의 안전보다 생산과 이윤에 목숨 거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현장 조합원들의 작업중지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에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21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작업중지권을 발동시키겠다고 회사에 통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상연락망을 통하여, '안전점검이 필요하니 라인을 정지해라, 모든 책임은 노동조합이 지겠다'라고 전달하였습니다. 결국, 21시 50분부터 전 공장이 멈추었고,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위해 다음날 8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였습니다.”

 

9월 19일 20시 30분경 또다시 진도 4.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자재히터가 휘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승용2공장 라인이 다시 멈추게 된다. 지진 안전대책, 지진 발생 시 작업자 즉시 대피권 요구 1968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대부분 건물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고 노후화된 설비가 많아 전반적인 지진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의 지진과 작업중지 이후 9월 21일 개최된 임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임시 산보위)에서 합의된 사항은 아래와 같다.

 

9월 19일 발생한 지진으로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2라인에 있는 자제히터가 휜 사진이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200여 개 중 15여 개입니다. 대부분 무방비 상태인 거죠. 중·장기적인 매뉴얼 마련이나 사전대책도 필요하지만, 즉각적인 대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작업자의 대피권 보장에는 소극적입니다. 결국, 지진 발생 시 즉각적인 대피를 시키지 않으면, 노동조합에서 작업중지와 함께 즉시 대피시키겠다고 통보하고 임시 산보위를 마쳤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경주~양산~부산에 이르는 ‘양산단층’은 활성 단층으로, 진도 5.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다른 여러 현장에서도 이러한 위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인 지진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진 발생 시 위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작업자의 즉각적인 대피권 보장과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