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들, 그들의 노동시간 /2016.9

노동시간, 가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콜라비 운영집행위원



울 집값이 비싸다고 익히 들어오긴 했지만, 20년 넘게 서울에 살았어도 잘 몰랐다.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뉴스나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 쪽방에 사는 노인들 이야기를 언론에서 접하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다보니 와 닿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 올해 초, 살 집을 직접 찾아보면서 그제야 집값이 '비인간적으로' 비싸다는 것을 '체감'했다. 은행의 도움(?)으로 비싼 전세금을 치르고 서울 모처의 작은 아파트를 얻었다.

그 후로는 한동안 거리를 다니며 아파트 건물이 눈에 띌 때마다 '저 수많은 집들도 많이 비싸겠지?',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다들 나처럼 은행 대출을 받아서 사는 걸까' 따위의 생각이 절로 들었다.(참고로 필자는 현실 경제에 밝은 편이 아니다.) 


매달 얼마씩 갚아나가야 대출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을지 계산해보니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상황은 계산에 고려하지도 않은 것이다. 또 대출금을 갚는 동안 큰 병에 걸려 예상치 못한 병원비가 많이 들 수도 있다.


한편, 올해부터 새롭게 일하게 된 직장에서는 운 좋게도 하고 싶던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일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꽤 있긴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주말 이틀과 공휴일에 쉴 수 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나 칼 퇴근을 한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같은 업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고 (아직까지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직장이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남편과 이야기 나누고,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두 달 전부터는 우쿨렐레를 연습하고 있다. 다가오는 주말에 전시회 구경을 갈지,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한다. 일-가정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몸소 느끼고 있달까. 

앞으로 다른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이런 균형이 유지되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아이가 없는 부부라서 이런 여유가 가능한 것이겠지만 육아는 또 다른 문제이니 차치해둔다.)

이런 기분 좋게 균형 잡힌 일상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활을 유보하고 가능한 좀 더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따금씩 드는 것이 사실이다. 

좀 더 아침 일찍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으로 옮겨서 일한다면 지금처럼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대출금도 빨리 갚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빨리 집을 사거나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늘상 이런 고민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전문직(전문의) 종사자이다. 같은 업계의 다른 곳에 비해 급여가 적다고는 하지만, 잘 모르긴 해도 대다수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구구절절 늘어놓은 고민은, (적어도 내게는) 결국 어떠한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문직 종사자인 나조차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른 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는' 상황이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그렇다면, 더 많은 임금 대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적절한 여가를 즐기는 것이 당신의 행복에 이롭다는 캠페인을 열심히 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히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으로 주 40시간 노동시간 기준 월 126만270원이다(주휴수당 포함). 이는 1인가구 월 가계지출 160여만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법으로 규정된 최저임금 기준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듯하다. 

이러한 임금환경에서 노동자가 노동시간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고 한들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는 상황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경제적 여유와 일-가정 균형 사이에서 어떤 것을 택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더욱 긴 노동시간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시간 노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낮은 임금수준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획기적인 상승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려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일부(대기업 정규직, 전문직) 노동자들에게만 가능한 반쪽짜리 구호에 그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임금 수준이 어느 정도 담보된다고 해도, 주거비 문제와 의료, 노후 문제를 뒷받침하는 사회 복지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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