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밤을 잊는 그대에게 /2016.8

밤을 잊은 그대에게



권종호 선전위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1964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현재까지 50년 넘게 같은 시간, 같은 이름으로 방송되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멘트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공부 때문이건 이런 저런 고민 때문이건 모두 잠들었을 시간에 혼자 남은 외로움을 누군가 알아주고 있다는 뉘앙스가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밤잠이 많아서 지금 저 방송을 듣지는 못하지만 요즘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저 멘트를 되뇌이게 된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밤을 잊은 그대'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2014년 1월부터 '야간작업'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이 실시되면서 교대근무와 관련된 건강 영향이 조금이나마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여러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교대근무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 인구의 10~15%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 중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심야 택시, 버스 운전기사, 밤을 새며 운송하는 트럭 운전기사, 대리 운전기사 등은 아직 특수건강검진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교대근무 노동자는 주로 경비 및 보안 업체 노동자, 교대근무가 있는 제조업 노동자, 호텔 등 숙박업 노동자, 건물 미화 및 시설 관리 노동자들이다.


얼마 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진료실에 왔다.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보안업체 노동자였다. 생애 첫 직장으로 6개월간 교대근무를 해왔다고 했다. 이제 6개월이면 한창 교대근무에 적응 중이라 힘든 시기일 텐데 잠자는 건 좀 어떠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했다.


야간근무 중에 잘 시간은 좀 있냐고 물었다. 사업장, 근무 일정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야간근무 중에 사이잠을 보장해주는 사업장들이 있기에 물어봤는데 다행히 2시간 정도가 주어진단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때라도 꼭 챙겨 자라고 했더니 그 다음 한마디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일을 하라고 월급 받는데 그 시간에 자면 안 되죠. 양심적으로 근무 중에 잠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해줄 말이 너무 많았지만 야간 근무 중 휴식은 꼭 필요한 거고 건강을 위해 당연한 권리니 잘 수 있는 한 충분히 챙겨 자라고 해주고 문진을 마무리했다.


2002년 노동부는 '교대근무자 건강을 위한 9대 작업 관리 권고 지침'을 만들었다. 이 내용에는 야간작업 중 사이잠 및 수면 공간 제공을 포함해 고정적 혹은 연속적 야간교대 축소, 2교대 근무 금지 등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건강을 위해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 담겨져 있었다. 


민주노총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보장 수준 강화와 벌칙 조항을 포함하는 시행령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제부처와 재계의 반대로 권고안 조차 빛을 보지 못했다. 2011년부터 이와 관련된 내용을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지침'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긴 하지만 강제력이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장마다 교대근무 조건에 큰 차이가 있고 노동자들은 2교대 근무나 야간 고정 근무를 종용하는 사업장, 아침 교대시간이 새벽인 사업장, 사이잠 시간 및 공간이 전혀 없는 열악한 조건의 사업장에서 하소연할 곳 없이 견디다가 결국 너무 힘들어 그만두게 되는 현실이다.


'좋은 교대제'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교대제를 폐지하거나 그게 지금 당장 어렵다면 좀 더 '나은' 교대제를 마련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교대근무에 대한 제도적 규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야간작업이 직업적 유해인자로 여겨져 특수건강검진의 영역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는 좋지 않은 교대근무로 나타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확인하고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고정 야간근무만 가능한 사업장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에게 주간 근무로 전환은 퇴사 권고나 마찬가지이고 새벽에 교대하는 형태, 연속 야간 근무를 장기간 하는 형태 등을 전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제도적 차원의 접근이 절실하며 좀 더 나은 교대근무 형태를 강제하는 규제를 필요로 한다.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은 이러한 규제의 면죄부가 아니라 규제를 위한 디딤돌로 잘 활용되어야 한다.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인지, 고된 교대근무 일정을 들으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인지. 여전히 진료실에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되 뇌이고 있다. 수많은 '밤을 잊은 그대'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 야간작업 특수건강검진으로 교대근무자의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제도 확립의 기초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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