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었다. 또 정비작업 시 다리에 대량으로 묻은 한 분은 범위가 넓고 증상이 심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으며, 다행히 조장이라 관련 업무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호전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정에 투입된 직후부터 석달 사이에 주로 증상이 생겼는데, 주기적 정비 과정 중에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전에 쓰던 토시는 효과가 없었고 열흘 전부터 몇몇 증상자에게 제공된 신형내화성 토시는 효과가 있어 이를 사용한 분들은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장에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여 작업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다가, 증상자가 여럿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달에야 안전관리자의 현장방문중에 얘기하여 보건대행기관에 전달된 것이다. 증상 양상으로 볼 때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으로 판단 되었고, 노출이 차단되면 증상도 비교적 잘 호전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부터 강화된 보호구 착용으로 증상자 수는 최근에 줄어든 것 같았고, 상담 시 발진이 남아있던 세 분도 다행히 불편감이 가벼워 노출만 피하면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해 보니, 신규 웨이퍼공정의 금속 가공유에 포함된 항균제 성분 이소티아졸론이 원인으로 생각됐다. 이는 일반적인 절삭유 성분은 아니고, 부식성이 매우 강하여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도 있는 강력한 피부자극물질이었다. 또 피부, 호흡기 알레르기 가능성도 보고되어 있어, 다른 질병 발생도 걱정되었다.


현 상태에서 질환의 치료요양보다는 원인 차단과 제거가 중요하니, 전 웨이퍼 공정 노동자에게 내화성 토시, 앞치마, 고글을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였고, 피부접촉 즉시 세척이 가능한 현장 세척실 설치를 권고하여 담당자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원인 물질의 대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최초로 도입된 공정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발생자가 많고, 사고로 심하게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크고, 다른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있어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으나, 담당자는 공정상의 불가능함을 얘기할 뿐이었고 상부에 보고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수시건강진단 항목에 해당하고 노동자 개인, 노동자 대표, 보건관리대행기관 등이 건의하면 피부증상자가 특수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를 노동부에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건강진단으로 근로자가 직접 요청 근로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당해 근로자 대신 요청 당해 사업장의 산업보건의 또는 보건관리자(보건관리대행기관 포함)가 수시건강진단을 건의하는 경우 시행할 수 있다.) 사실 수시건강진단을 해도 원인파악이나 사후관리는 같기 때문에 이 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건의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건강진단 얘기를 하니 담당자는 좀 더 심각히 받아들였다. 나는 두 달 안에 증상자가 없어지지 않거나, 새 증상자가 생기면 수시건강진단을 하기로 하고 대체물질 개발은 가능한 빨리 조치하며 이에 대해 매달 확인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내화성토시와 보호구가 전부 지급되었고 세척실도 설치되었으며 신규 증상자는 없었다.


두 달 후 상담 시, 세척실이 도움되어 증상자는 거의 없었는데, 절삭유가 묻은 작업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경우 가슴에 증상이 생겼던 경우가 두 명 있었다. 이에 매일 작업복을 교체하라고 안내했다. 물질 대체는 계속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달, 증상자는 더는 없었으며 다른 질병도 다행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공정상 물질 대체가 불가능 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수시건강진단의 필요성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위생기사로부터 그 사업장이 물질을 대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피부 질환 때문이 아니라 원가절감을 목적으로, 이미 시험가동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운 좋게 예전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이윤에 의해 무시되는 현장 속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물질 대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수시건강진단을 시행하여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더 인식시켜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음에는 사후관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천식의 경우 수시건강진단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증상이 약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사례와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현장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수시건강진단을 요구하거나 보건관리대행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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