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업중지권 기획]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2016.1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지난 2년간 ‘중대재해와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은 작업중지권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을 실천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고자 했다. 그 뒤 현장 활동가들과 워크숍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의 필요성과 상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 판례를 검토하면서 법적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2016년은 이제 구체적인 현장에서, 조직/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혹은 법적인 측면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중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법적 측면에서 배울 만한 점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이번.. 더보기
월 간 「일 터」/[기획연재]당장멈춰!-작업중지권 기획

[작업중지권 기획]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2016.1

작업중지권, 다른 나라에서는?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지난 2년간 중대재해와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은 작업중지권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을 실천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고자 했다. 그 뒤 현장 활동가들과 워크숍을 통해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과 매뉴얼의 필요성과 상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 판례를 검토하면서 법적 개선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2016년은 이제 구체적인 현장에서, 조직/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혹은 법적인 측면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중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법적 측면에서 배울 만한 점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이번 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한 국제노동브리프 20157월호의 "기획특집: 작업중지권"과 정진우 저, 산업안전보건법론(2014, 한국학술정보), 당장멈춰팀이 20153월 금속노동자 신문에 게재했던 해외의 작업중지권 사례 비교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프랑스, 작업 중지했던 사고가 다시 발생하면?

프랑스는 1982년부터 법적으로 노동자에게 자신의 생명 또는 건강에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 작업 상황으로부터 철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법에서 말하는 심각한 위험은 해당 상황이 관련 노동자의 사망 또는 영구적이거나 장기적인 장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사고나 질병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위험은 기계, 생산 공정,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업무 환경 뿐 아니라, 산업보건당국이 정한 안전보건 규칙에 위배되는 작업장 등과 같이 노동자의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다.

이 법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 사용자는 노동자가 위험작업을 중지하기 전에 공식 절차를 거치도록 의무화하여 작업중지권 사용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작업중지권을 전반적으로 제한하는 내부 규정을 정할 수 없다고 따로 못 박고 있다.

두 번째, 작업이 중지되면 사용자는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하는데, 만일 작업중지가 보고된 후에도 사용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 위험과 관련하여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면 사용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가령 작업중지 이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차 발생한 모든 사고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고 (inexcusable accident)’로 간주되어 피해 노동자에게 더 높은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세 번째, 위험작업 수행을 거부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처벌할 수 없고,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한 이유가 되는 위험이 시정되기 전에는 작업을 재개할 의무가 없다.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를 규정한 독일

독일 산업안전법도 한국과 유사하게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조치에 관한 예방 및 사후적 조치를 계획적, 조직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의무를 원칙적으로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장에 존재하는 위험요소에 대해서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에 앞서 사용자에게 안전조치를 취할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작업중지 요청과 유사하다. 특수한 위험상황, 직접적이고 중대한 위험에 직면한 경우에만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해당 위험을 통지하고 지시받기에 앞서 노동자 스스로 안전을 위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여기에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작업장을 즉시 이탈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그런데 독일 법체계에서는 산업안전법 외에 민법상으로, 근로계약의 경우 임금의 지급종속적 노동 제공이 계약 당사자의 주된 상호 주고받을 의무지만, 이 상호간의 의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사용자 측의 부수적인 의무로서 안전배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안전배려의무는 공법인 산업안전법과 별도로 사법(私法) 상의 노동보호에 대한 근거규정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민법상의 안전배려의무를 통해 사용자는 근로 제공이 이루어지는 장소 및 이를 위해 사용되는 장비나 기구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의무를 지게 된다. 즉 이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종속적 노동 제공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업장 환경이 충분히 안전하고 위험이 최소화되지 않으면, 돈을 받았더라도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안전배려의무의 내용은 무엇인가? 산업안전법 등의 안전관련 규정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래서 사업장에서 안전에 관한 노동보호법인 산업안전법 등이 위반됐을 경우 노동자가 노동 급부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있는 정유회사"안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일을 멈추시오"

출처_richmondstandard.com


캐나다, 작업중지권의 절차를 법에

캐나다에서도 법률상 상황이 개선되거나 활동이 변화되기 전에 노출되었을 경우 개인의 생명이나 건강에 즉각적이거나 심각한 위협을 야기할 것으로 타당하게 예상되는 모든 피하기 힘든 위험, 상황 또는 행위가 있는 경우, 위험 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캐나다의 법 규정이 특별한 점은 작업중지권 적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과 작업중지권 행사 이후 사업주의 의무, 사업주와 노동자가 위험에 대해 다르게 판단할 때 분쟁에 접근하는 원칙을 법에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위험 상황을 즉시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작업중지 결정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동의 할 때에만 번복할 수 있다. , 노동자는 위험하다고 생각해 작업을 중지했는데, 사용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윽박지르거나, 안전사고가 아니라 설비 트러블이었을 뿐이라며 작업 재개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방적인 사업주 판단에 따른 작업 재개와 이후 징계나 고발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통보를 받으면, 사용자는 즉시 노동자의 입회하에 상황을 조사해야 한다. 조사 결과 사용자도 위험이 존재한다고 동의하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위원회 또는 대표에게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통보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사용자가 조사를 한 결과가 노동자의 판단과 다르거나, 사용주의 조치 결정에 노동자가 동의할 수 없다면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렇게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지속하겠다고 통보하면, 위원회 또는 대표는 즉시 해당 노동자의 입회하에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 위원회는 위원들 중 노동자 대표 1인과 고용주 대표 1인을 지명하여 조사를 해야 한다. 이 조사 결과에도 노동자가 동의할 수 없다면,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하고 이번에는 노동부에서 개입하여 조사한다. 노동부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노동자는 계속해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 대신, 이 때 사업주가 다른 노동자에게 중지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 그 노동자는 해당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계속적인 작업중지와 그 이유를 통보받아야 하고,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대피권과 거부권이 따로 있는 중국

중국의 경우 법체계는 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동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국가라는 보고가 많기에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 해당하는 중국 안전생산법은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의 대피권과 작업거부권을 따로 구분하고 있다.

중국 안전생산법 52조는 노동자가 신체안전에 직접 위험을 미치는 긴급 상황을 발견한 경우에는 작업을 정지하거나 가능한 응급조치를 취한 후 작업 장소를 이탈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 조항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안전생산법 51조는 노동자가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을 강제적으로 명령하는 경우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따로 규정해두고 있다.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장소를 이탈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일반적인 작업중지권 보장이 실은 대피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최소한 중국의 법체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규칙에 어긋나는 지휘와 위험작업으로까지 작업 거부 권리를 확장하고, 규칙에 맞는 지휘와 안전한 작업을 하도록 하는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노동자에게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시사점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기준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겠지만, 제도적으로 법적 개선을 통해 현장에서 작업중지권 활용이 쉬워지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 정부가 산업안전보건 대책의 핵심 목표로 잡고 있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써 작업중지권을 적극 보장해야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사례에서처럼 대피권과 구분되는 거부권을 보장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날이 증가하는 서비스, 사무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분류될 수 있는 위험을 맞닥뜨리기보다는 주로 낮은 강도의 지속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10시간 근무 후 곧바로 회사 단합대회로 야간 산행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 사례나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판매 노동자의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대피권만으로는 이런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 법안처럼 대피권과 중지권을 분리하여보장하고, 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따로 명시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산재 발생 위험을 인지한 노동자들의 대피권이라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재 발생 위험이 있었느냐를 두고 법적 분쟁이 잦다는 점, 이로 인해 작업중지권 사용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캐나다처럼 사용자와 노동자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 편에서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 간 이견이 발생했을 때를 포함하여 작업중지권 실행 이후 조사 및 대응 과정을 산업안전보건법에 정비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처럼 중대재해의 원인을 제공한 기업에게 책임을 더 제대로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기업이 사고 발생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고, 이것이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프랑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업중지가 있었던 사업장에서 향후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중하여 처벌하거나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