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성명] 삼성전자 폐암 피해자 이지혜 님을 애도하며

[추모성명] 삼성전자 폐암 피해자 이지혜 님을 애도하며 

- 삼성은 스물 아홉에 암으로 숨진 고인의 영정 앞에 사죄하라


오늘, 2015년 12월 27일, 또 한 분의 삼성전자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한 후 폐암에 걸렸던 이지혜 님(1986년생, 여성)이 3년 여의 투병 끝에 오늘 낮 12시 경 눈을 감았다. 이로써 올 한해에만 삼성전자 반도체, LCD 사업장에서 병을 얻어 숨진 노동자가 6명,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사망자 수는 총 76명에 달한다.


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안 생계를 돕기 위해 삼성전자 LCD 사업부에 취직했다. 2003년 12월부터 2011년 5월까지 7년 5개월 동안 삼성전자 천안사업장과 탕정사업장에서 근무했다. LCD 생산라인 내 ‘액정’ 공정에서 주로 GT(Glass Test. 액정의 불량여부를 검사하는 일) 업무를 담당했고, 인력이 부족할 경우 엣지(Edge. 액정의 가장자리를 연마하는 일) 업무도 지원했다. 생산 중인 LCD 판넬의 화질검사ㆍ가압검사 등을 하여 불량품을 찾아내는 일, 불량품을 폐기하는 일, 설비와 작업장 바닥을 유기용제로 청소하는 일 등을 했다.


어려서부터 7년 넘게 야간 교대근무를 수행했고, 업무 중 수시로 공업용 아세톤과 IPA를 취급하였다. 고온의 리페어 설비에서 제품을 꺼낼 때, 주변에서 설비 PM(유지ㆍ보수)을 할 때, 설비 변경을 위해 라인 내 설비를 해체할 때, 정전으로 인한 설비 셧다운이 일어날 때 등등의 상황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과 가스에도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연마작업을 할 때나 불량품 폐기 작업을 수동으로 직접 할 때는 각종 분진에 노출되기도 했다.


고인은 입사 전 매우 건강했고, 평생 흡연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퇴사한 다음 해인 2012년 말경부터 폐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다니다, 그 이듬해 2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항암치료에 따른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이어지던 중, 2013년 2월 고인의 오빠가 반올림을 찾았다.


고인은 반올림과의 상담에서 업무에 관한 기억들을 힘겹게 떠올렸다. 일하던 중 각종 유기용제 냄새와 무언가 타는 듯한 정체 불명의 냄새들을 계속 맡았다고 했다. “강력한 환기시스템으로 냄새를 맡을 새가 없다”는 삼성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못박았다. 안전보건 교육은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졌고, 국소 배기장치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동료들이 피부질환, 생리불순, 유산 등을 겪었다는 말도 했었다.


반올림은 2013년 7월 고인의 폐암에 대한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이 본격적인 재해조사를 벌인 것은 그해 11월의 일이었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현장조사는 2014년 4월에서야 이뤄졌다. 그때는 이미 고인이 주로 근무했던 천안사업장 3-4라인은 철거되어 남아 있지 않았고, 고인이 수동으로 했던 일들은 모두 자동화가 되어 있엇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2015년 1월, “정확한 유해물질 노출정보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산재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ㆍLCD 공장 폐암 피해자는 총 여섯 명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발표한 보상제도에서 “현재까지 국내외 반도체 역학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관련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질환군”으로서(보상지원 ‘나’군 질병) 폐암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현재 강행하고 있는 한시적 보상절차에서 폐암을 배제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ㆍLCD 공장에 다니다 폐암에 걸린 여섯 분 중 다섯 분은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채 이미 세상을 떠났다.


올해 9월 삼성이 교섭 약속을 파기한 채 자체 보상절차를 강행한 직후, 직업병 피해자 56명은 “삼성의 독단과 기만에 분노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안에 이지혜 님의 가족도 참여했다. 반올림은 그러한 피해자들의 분노와 절규를 담아 오늘로써 82일째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은 일방적이고 폐쇄적이며 한시적인 보상을 강행하고 있다. 독단적으로 정한 보상기준을 내세워 그로부터 배제된 피해자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삼성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언론들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해결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삼성은 언제까지 이들의 질병과 고통을 개인에게 전가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들의 고통에 눈 감은 채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거짓말을 양산할 것인가.


이지혜 님은 만 17세에 입사하여 10대 후반과 20대의 절반 이상을 삼성 공장에서 고된 노동으로 보냈고, 27세에 폐암에 걸린 후에는 고통스런 투병으로 보내다가 오늘 만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삼성의 독단과 파렴치, 언론의 차가운 외면 속에 또 한 명의 젊은 생명이 그렇게 꺼져갔다.


▪ 삼성은 이지혜 님의 죽음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라.

▪ 삼성은 독단적인 보상절차로부터 배제된 피해자들과 이 독단성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 절차를 마련하라.

▪ 삼성은 외부 독립기구가 참여하는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


2015년 12월 27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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