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Z 노동이야기]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2015.12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 주제전문 사서에게 듣는 도서관 노동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예전부터 궁금했다. 한 도서관 안에는 몇 권의 책이 있을까? 도서관의 그 많은 책은 누가 선별하고 구매해서 채워놓은 것인지, 그리고 책등마다 쓰인 암호 같은 번호는 누가 다 붙이는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일반 대학도서관 같은 곳을 기준으로 하여 대략 50만~100만 권 정도의 책이 있어요. 도서관의 성격에 맞게, 이용자의 필요에 맞게 책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채워 넣는 일, 바로 사서가 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각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가 어떤 책을 골라서 채워 넣는지에 따라 그 도서관의 성격이 디자인된다고도 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19일 서울에서 만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사서 김인희..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2015.12

도서관에 가득한 책, 누가 다 채운 걸까?

- 주제전문 사서에게 듣는 도서관 노동이야기

 

 

정하나 선전위원

 

 

 

 

 

예전부터 궁금했다. 한 도서관 안에는 몇 권의 책이 있을까? 도서관의 그 많은 책은 누가 선별하고 구매해서 채워놓은 것인지, 그리고 책등마다 쓰인 암호 같은 번호는 누가 다 붙이는 것인지 말이다.

 

"한국의 일반 대학도서관 같은 곳을 기준으로 하여 대략 50만~100만 권 정도의 책이 있어요. 도서관의 성격에 맞게, 이용자의 필요에 맞게 책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채워 넣는 일, 바로 사서가 하는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각 도서관에 일하는 사서가 어떤 책을 골라서 채워 넣는지에 따라 그 도서관의 성격이 디자인된다고도 할 수 있겠죠?"

 

지난 11월 19일 서울에서 만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사서 김인희(가명)씨가 시원하게 대답해 줬다. 십만여 권의 책들 속에서 일하는 김인희씨는 도서관에서 '주제전문 사서(주제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사서는, 많은 자료와 문헌을 잘 조직해서 정보이용자가 필요한 자료를 잘 찾을 수 있도록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중 주제전문 사서란, 특정 주제에 관한 자료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전문도서관? 주제전문 사서?

 

"저는 사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에요. 원래는 법학도였지요. 졸업한 지 꽤 지난 후에 사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서교육원에서 1년간 문헌정보학이랑 도서관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사서 자격증을 취득하였어요. 주제 전문사서는 별도의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일하는 법학 전문도서관처럼, 한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특히 주제 사서를 필요로 하곤 하는데, 그때 채용요건으로 나오는 걸 참고해 말씀드리자면, 정사서 자격증을 가진 사서 중 학사·석사를 문헌정보학 외의 전공을 한 사람들이 주로 합니다. 다루는 주제에 대한 심화한 지식이 있어야 하니 그런 것이지요. 저 같은 경우는 말씀드렸다시피 법학·법률을 좀 아는 쪽이니 여기에서 법학 주제 사서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인희씨가 일하는 곳은 '법학 전문도서관'이라 일반 도서관이랑은 다소 다르다. 해당 도서관은 현재 약 13~14만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분야의 책도 갖춰놓기는 했지만, 법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전문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곳이라 아무래도 법학 자료의 비중이 더 높다.

 

"법학 분야라고 해도 단순하지가 않죠. 헌법·형법·민법·상법·행정법·노동법·세법 등 엄청 종류가 많아요. 여러 가지 법학 자료 중에서 꼭 알아야할 핵심적인 게 있을 텐데, 근데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자료'라는 것은 그 도서관을 찾는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죠.

만약 이용자가 일반 시민이라면 '생활법률'과 같은 실용 자료를 많이 갖춰야 하겠지만, 저희처럼 법학 전문도서관은 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를 위한 곳이니 또 다르지요. 이처럼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도서관이 제공해야 하는 자료의 종류와 정보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약 70여 개의 전문도서관이 있다. 모든 분야의 책을 되도록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전문도서관의 경우 인문·철학·과학·의학 등 특정 분야 전문 서적과 자료를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해당 분야 연구자와 같이 특정 이용자들을 위해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 많은 부모에게 주목받고 있는 어린이도서관 역시 전문도서관의 한 종류이다. 방송사 안에 있는 음악자료실 역시 음악 전문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들이 중앙도서관 외 몇 학문 과목을 특화해 해당 단과 대학 안에 전문도서관을 두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로펌이나 의료기관, 미술관 혹은 기업들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료를 모으고 검색할 수 있게 전문도서관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을 채우기 위해 사서가 하는 일

 

"대부분의 도서관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수서·정리·봉사 이렇게요. 첫째 수서(收書) 업무는 어떤 도서나 자료를 갖출 것인지 기준을 가지고 선별하는 일입니다. 사서 업무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도서관의 성격은 수서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신간 도서나 자료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도서관에 이미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도 잘 알아야 하겠지요. 그래야 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고루고루 갖출 수 있게 되니까요."

 

수서 업무는 팀장급 되는 사람이 주로 맡는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직접 수서를 하기도 하지만, 이용객들에게 부정기적으로 신청도서를 받아 책을 고르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문도서관으로서 보유도서를 잘 선별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법학 도서 외에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어려운 전문자료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수서를 잘해서 들어온 책들을 이용자들이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게끔, 잘 분류하고 종류별로 '정리'하는 업무가 있어요. 청구기호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 책등에 라벨링이 되어 있잖아요. 청구기호 중에서 제일 먼저, 책의 내용에 따라 주제를 정하는 분류기호를 부여하고 전산 목록화 하는 일도 바로 정리업무이지요. 자료가 단행본인지, 시청각 자료인지, 정기간행물인지 등 자료 성격에 따라 별치기호를 달아주고, 한국 십진분류표(KDC) 혹은 듀이 십진 분류법(DDC, 국제공인 기준)을 기준에 따라서 자료의 주제에 맞게 분류번호를 주는 것이죠. DDC를 예를 들면 사회과학은 300번대인데, 그중에서 법학은 340번대이지요. 주제에 잘 맞게 이 분류를 잘해서 정리해 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 그래야 전산 검색어를 넣어 문헌을 찾을 때도 이용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거든요. DDC 분류기준을 따르는 대학도서관의 책인데 KDC를 따라서 정리·분류를 했다든지, 미국의 계약법을 다룬 책인데, 민법 안에 계약법이 속해 있는 한국의 법체계에 맞춰 분류기호를 틀리게 넣는다든지 하면 안 돼요."

 

인희씨는 수서나 정리 업무보다는 데스크에 앉아 주로 도서관 이용자들을 직접 응대하는 봉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서관 장서 중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를 절차에 따라 대출해 주고 반납을 확인하는 것, 도서관의 전반적 이용안내를 해주는 것도 담당한다. 이 외에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로서 '참고' 봉사 업무도 한다. 이용자에게 각 주제에 관한 자료 조사를 도와주는 것이다.

 

"대출·반납이나 서가 정리 같은 일들은 사서 아닌 단기계약직 분들이 주로 많이 하세요. 제가 하는 일 중 참고 봉사 업무는 저희 도서관의 주 이용객인 연구자들이 연구주제에 맞춰 요청하는 자료를 찾아주는 일이에요. 한 달 평균 50~60건 정도 요청이 있는데 법학 주제사 서인 만큼 제가 무엇보다 신경 써서 잘해야 하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이민법 자료를 달라고 하시는 선생님이 있으세요. 그럼, 저는 한 번 더 질문해요. '혹시 연구전공이 어떻게 되나요?'하고 여쭤보면 '헌법 중 행복추구권 쪽으로 논문 쓰려고 합니다' 등의 대답이 나오거든요. 그럼 그 주제에 맞춰서 키워드 세부검색해서 나오는 자료리스트랑 파일을 직접 전달해 드리는 것이지요."

 

책을 위해 존재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며

 

고객 응대를 하는 서비스 업무가 주는 피로도 왜 없겠느냐마는, '더 친절하게 이용자를 대하라'라고 하는 상사의 말이 인희씨에게는 그렇게 부대끼는 업무지시는 아니라고 했다. 현장업무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힘듦보다는 자료보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공간의 특성이 주는 불편함이 오히려 거슬린다.

 

"도서관들이 대부분 밤늦게까지 열지만 몸에 무리가 오는 교대근무나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 도서관은 주간 조가 9시~오후 5시까지 일하고 야간 조가 오후 2시~오후 9시까지 근무하도록 되어 있는데, 저는 주간 조 전담으로 일해요.


도서관 내부 온도습도 같은 게 사람이 아니라 책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여름에 너무 춥거나 겨울에 너무 건조하거나 이런 게 좀 불편하지요. 그리고 손목이 좀 나가는 경향이 있죠. 책 중에서도 법전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걸 자주 드니까 아무래도 좀 그런 게 생기죠."

 

정보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현재 일하고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법학 자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인희씨는 전반적으로 사서 일을 즐기고 있었다. 더욱이, 특정 자료가 필요한 이용자에게 적절한 연구자료들을 잘 찾아서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자 보람이라니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인희씨는 앞으로 소장자료를 선별·선정하는 수서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마쳤다.

"일하는 곳이 법학 전문도서관인 만큼, 연구에 필요한 희귀한 자료를 잘 찾아내고 갖춰 단골 연구자들에게도 좋은 연구재료를 제공하고 싶어요. 또, 다른 곳에서도 우리 도서관에 자료 공유를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그게 바로 전문도서관의 주제 사서가 할 일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