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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에세이] 영화 <인타임>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2015.8 영화 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김영선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우리는 자주 "시간이 없다"고 되뇌곤 한다.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박탈, 시간 소외, 시간 강박 등.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든 핵심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간이 부족할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텐데, 이번엔 영화에서 설명을 찾아보자. 영화를 보면 가끔은 정말 그런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속 가상세계가 우리의 현실을 진짜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의 초 현실이 꼭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를 만들었던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 은 상당히 섬뜩한 영화다.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에 배두나가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며 한국에서는 그녀의 출.. 더보기
월 간 「일 터」/[문화로 읽는 노동] 구)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노동시간에세이] 영화 <인타임>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2015.8

영화 <인타임>과 비슷한 우리네 자화상



김영선 노동시간센터(준) 회원


우리는 자주 "시간이 없다"고 되뇌곤 한다.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박탈, 시간 소외, 시간 강박 등.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든 핵심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간이 부족할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텐데, 이번엔 영화에서 설명을 찾아보자. 영화를 보면 가끔은 정말 그런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속 가상세계가 우리의 현실을 진짜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의 초 현실이 꼭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를 만들었던 워쇼스키 남매의 신작 <주피터 어센딩>은 상당히 섬뜩한 영화다. 세계적인 감독의 작품에 배두나가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한다며 한국에서는 그녀의 출연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사도 거의 없고 존재감이 미미한 배역에 그쳤다. 전체적으로 평점도 높지 않았고 관객도 많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영화에서 우주의 모든 행성은 여러 왕족이 지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브라삭스 왕족의 권력이 가장 막강하다. 지구 또한 아브라삭스 왕족이 지배하는 농장 가운데 하나다. 지구의 인간들은 '농장의 수확물'로 그려진다. 아브라삭스 왕족은 우주 행성들을 지배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수확물을 에너지 삼아 영원을 구가한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인데 시간 에너지는 수확물인 인간 생체에서 추출한 것이다. 아브라삭스 왕족은 인간 100명의 목숨이 담겨 있는 유리병을 이용한다. 유리병에 담긴 시간 에너지로 몇 번이고 세포를 교체하면서 10만 년을 살아간다. 이는 <매트릭스>에서 인체를 기계에 필요한 '배터리'에 비유했던 장면과 닮았다. 


영화 <주피터 어센딩>은 말미까지도 흐름이 다소 산만하고 늘어지기는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외계 왕족의 인간 수탈이라는 이야기를 자본의 노동 착취라는 관점에서 읽는다면 메시지는 더욱 명쾌해진다. 왕족은 자본을, 아브라삭스 왕족은 독점자본을, 행성은 공장을, 왕족들의 행성 쟁탈전은 자본들의 경쟁을, 지구의 인간은 노동자를, 수확된 인체는 잉여와 축적을, 유리병에 담긴 인체 에너지는 착취의 결과물을 상징한다. 우리의 시간 빈곤의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섬뜩할 정도다.


모든 비용을 시간으로 차감하는 세계


▲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인타임>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은 꽤 많다. 대부분은 시간 여행을 소재로 다룬다. 기억에 선명한 <백 투 더 퓨쳐>부터 최근작 <어바웃 타임>이나 <타임 패러독스>, <엣지 오브 투모로우>까지. 그런 걸 보면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바꾸고 싶은 욕망은 보편적인가 보다.이외에 산업화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재치있게 그려낸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도 있다. 나이를 역행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를 연대기적인 구성으로 그려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있다. 이 영화 또한 많은 사람이 회자하는 시간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상상력 넘치는 여러 영화 가운데 <인타임>은 시간 그 자체라 생명인 가상 세계를 그려낸 영화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영화이고, 여러 면에서 다시 볼만하다.


<인타임>의 핵심 역시 '시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에 대한 착취, 불평등한 시간의 분배가 핵심이다. 시나리오상 사람들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왼쪽 팔뚝에 새겨진 '카운트 바디 시계'에 1년을 제공 받는다. 팔뚝에는 년, 주, 일, 시, 분, 초 단위로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낸다. 이를테면, 커피 1잔은 4분, 버스 요금은 2시간, 권총 1정은 3년, 스포츠카 1대는 59년의 시간으로 구매할 수 있다. 시간(생명)과 재화의 교환은 전자화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비용은 자신의 시간으로 차감된다. 마이너스는 없다.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 13자리가 0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즉시 사망한다. 시간을 다 쓴다는 것은 생명이 다함을 의미한다. 영화는 이렇게 모든 비용이 시간으로 계산되는 가상의 미래 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한 장면을 보자. 주인공의 엄마 역 올리비아 와일 드는 은행에서 버스요금(1시간)과 약간의 여유 시간을 남겨 두고 밀린 이틀 치의 대출금을 갚는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려는데 버스 기사는 버스 요금이 올라서 2시간을 내야 탈 수 있다고 한다. 1시간 30분밖에 없었던 그녀는 '30분이 부족해'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2시간 거리를 필사적으로 뛰어야 했다. 그래야 일당을 받은 아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기다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만, 아들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시간을 다 써버린 그녀는 생을 마감하고 만다. 시간이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시간 낭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매일매일 노동을 해도 시간이 빠듯하게 주어지니 항상 시간 부족인 사람들은 부산스럽고 걸음걸이는 빠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생명인 세계'를 보여주는 <인타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 낭비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치 있게 그린다.


데이톤 사람의 모습은 우리네 자화상 


▲ 타임푸어란


<인타임>은 시간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데이톤'이라 불리는 구역의 사람들은 고작해야 하루 이틀 치의 시간(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종의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표상한다. 남자 주인공인 윌 살라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데이톤 출신이다. 


이에 반해 '뉴 그리니치'라 불리는 구역의 사람들은 몇백 년, 몇천 년에 해당하는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종의 '시간을 독점한 사람들'인 셈이다. 여자 주인공 실비아 와이스(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뉴 그리니치 출신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데이톤의 일상적 풍경과 뉴그리니치의 그것은 많이 다르다.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것을 시간의 소비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 이런 처지에서 데이톤 사람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매일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벌어도 벌어도 시간 부족에 허덕인다. 데이톤 사람들에게 매일의 고된 노동은 '생명 연장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들에게 쉼과 여유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데이톤 출신인 윌 살라스가 뉴 그리니치 지역으로 넘어가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윌 살라스가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식사 하는 내내 레스토랑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윌이 잘 생겼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걷는 속도나 먹는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빨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넘쳐나는 뉴 그리니치 사람들에게 바쁨과 서두름이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타임푸어의 세계에서 '시간 권리'란

쉼과 여유 부리기가 불가능한 데이톤 사람들! 그것은 영화 속 가상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에 휩싸인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지하철에서 빠른 걸음으로 달리듯 걷는 사람들. 뛰면서도 스마트폰으로 가장 빠른 환승 칸을 찾는 사람들. "지난 석 달 중 한번 쉰 게 고작"이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 느릿느릿 가는 자동차를 보면 숨 막혀 하는 사람들. 신호대기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이라도 하면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들. 이런 모습은 수도 없이 많고 흔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다. 시간 박탈, 시간 빈곤, 시간 기근, 시간 압박, 시간 강박 등 어떠한 것으로 표현해도 핵심은 여유 시간의 부족에 있다. 시간이 빈곤한 세계에서 주체적인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까? 이를 위한 시간 권리란 가능한 것일까? 


정말 가능한 문제설정일까? <주피터 어센딩>이나 <인타임>은 이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설정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보여주듯 시간 빈곤의 세계에서 자유시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든 것들은 허구에 불과하다. 자유시간이 가능한 세계, 그것은 비현실이다. 아브라삭스 가문이 지배하는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지 못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두 영화의 결말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인타임>의 윌은 '시간 은행'을 폭파해 그곳에 꼭꼭 쌓아 둔 수억 년의 시간-생명을 데이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들의 노동 시간 차이와는 별개로 말이다. <주피터 어센딩>의 주인공은 시간 착취의 근원인 아브라삭스 가문을 처단한다. 물론 두 영화의 초현실적인 결말은 작금의 현실과는 판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