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진으로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년 / 2013.9·10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맞아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활동해 온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연구소 성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사진으로 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 

  선전위원회

 

 


  1. 창립까지의 과정 (이훈구)

1998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노동자에겐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생산라인은 U자로 바뀌었고 컨베이어 속도는 야금야금 높아졌습니다. 인력은 줄고 작업량은 늘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뒷전이 됐고, 기초질서 지키기 등 현장통제는 강화됐습니다. 노동자 쥐어짜기는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자본은 위기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이윤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일터는 참혹한 골병과 죽음의 현장이 됐고, 노동자는 기계처럼 일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반복되는 작업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들은 알아서 기어야 했습니다.

 

2000년 초부터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대우조선, 풀무원, 두원정공 등 개별현장에서 투쟁을 벼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경총 앞 노동조합, 노동보건단체, 정치사회단체 등이 산업재해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집회를 열고 노동자의 골병과 죽음에 대해 자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해, 강화된 노동강도에 맞선 전면적 반격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1월 대전 경하장에서 12일로 노동보건연대회의가 주최한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을 위한 전국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이 모여 노동강도 강화저지를 위한 공동요구안, 구체 대응방안, 공동투쟁 방안 등에 대해 현장의 현실과 고민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강도 맞은 노동을 되찾기 위한 실천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는 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이라는 책자 발간으로, 현장 곳곳의 집단요양투쟁으로 번졌고 골병과 산재사망은 자본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설정한 고용, 임금, 노동시간, 작업방법, 작업량, 노사관계 등 노동강도와 관련한 전면적인 유연화 공세에 맞서기 위한 현장정치 복원이라는 과제는, 2013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김재광)

200351, 무더운 봄. 113주년 세계노동절 대회에 그동안 보지 못한 시위대가 출현했습니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가 주관한 집회 대오였지요. 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정을 들고 죽음과 골병의 현장을 막연한 어느 때가 아닌, 지금 당장멈출 것을 촉구했습니다. 인도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이, 무엇을 당장 멈춰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현장노동자가, 이토록 많은 영정을 들고 독자 대오를 형성해 거리행진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음영으로 표현한 고인의 영정에는, 사망일시와 사고발생 원인, 사업장이 담겼습니다. 고인들을 앞세우는 것이기에 결코 허투루 할 수 없어, 생전 기록을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내 영정을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우며 많은 동지가 애썼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대규모 영정시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2년부터 터져 나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이 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현장의 전염병, 근골격계 질환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현장이 반드시 조직해야 할 고통/과제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투쟁을 계기로 전국의 현장 노동자,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전국투쟁을 도모합니다. 영정 시위는 그 투쟁의 하나였습니다. 참으로 무더웠지만,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3. 20031024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창립 (김재광)

20031024, 지금은 용산개발로 사라진 철도웨딩홀에서 연구소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웨딩홀이 출범 장소가 된 이유는 철도노조가 관리하던 곳이라 저렴했기 때문이었죠(^^). 158명이 연구소 창립의 발기인이었는데, 그 동지 중 일부는 현재 연구소 성원이고요, 다른 동지들도 대부분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출범은 한국노동안전보건운동에 있어 하나의 역사이자, 성과입니다. 연구소의 출범은 단순히 연구소의 성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구소 창립은 투쟁으로 성장한 전국의 현장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헌신과 바람의 결실이었습니다. 사진 속 동지들이 10년 전 그때와 같이 쌩쌩하지는 않지만, 연구소 창립선언문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명징하고 팔팔합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쟁취하고,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을 통제하여 진정한 노동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쉼 없이 투쟁할 것이다 

 

 

4. 집단 산재인정을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 (김재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에서 자행된 악랄한 노동조합 탄압으로, 13명의 조합원 전원이 집단 정신질환 직업병을 얻었습니다. 2005년 여름 하이텍 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산재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모였고, 사진에 보이는 4인의 대표단은 근로복지공단 정문에서 40여 일 넘는 시간 동안 노숙 단식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당시 많은 연대 동지들이 500인 동조 단식 투쟁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동조 단식 투쟁은 당시 처음 기획한 생소한 투쟁이었어요.

밤새 차량 경적과 모기와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40여 일 이라는 시간 동안, 물만 먹고 싸워야 했던 고통은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동지들이 있어 우리 투쟁은 즐거웠습니다.

 

 

 5. 한국 사회에 교대제 노동의 폐해를 알리다. (공유정옥)

2004년 연구소 회원들과 몇 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교대제의 문제와 대안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20064대 실천 의제 중 하나인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활동의 연장선에서, 2007[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란 책을 출판합니다. 책을 제작하며, 교대제가 노동자의 몸과 정신,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 수집, 외국어 자료 번역 등, 책을 하나 만들어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책이 당시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 각급 도서관에 쭉 깔렸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책이 나온 몇 년 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최초로 수면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기아자동차 노동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산재신청을 위해 온갖 자료를 다 읽어봤는데, 우리 노동자 시각에서 쓴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이 책이다. 꼭 읽어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그 책 저희가 만들었어요~^^”

지금도 교대제 개선을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종종 묻습니다. 몇 조 몇 교대로 바꿔야 좋은 거냐고. 하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좋은 교대제는 없습니다. 교대제 안에서 상대 비교를 한다 해도, 몇 조 몇 교대인지만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대제 문제는 결국 시간 혹은 노동자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니까요.

 

 

 

6. 세상에 나온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공유정옥)

20074월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구소는 이 사안은 최소 10년간의 투쟁이 필요한 싸움이며, 삼성 반도체뿐 아니라 전체 전자산업에 있어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해 1120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발족에 함께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이때 들은 바로는, 1984년 기흥공장이 만들어진 이래 최초의 집회(?)였다고 합니다.

그때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몇 사람의 백혈병 피해자가 더 있다고 듣긴 했지만, 당시는 정말 딱 황상기 씨 한 분만 계셨거든요. 더 많은 피해자를 조직해야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백 명이 넘고 이백 명에 육박하게 될 거라고는. 그런 끔찍한 상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7. 지역 운동체로서의 노둣돌 (손진우)

연구소 창립 5년이 흐르며, 무르익은 고민 중 하나가 노동자 건강권운동 확장을 위해 지역 운동체로 거듭나기였습니다. 08년 하반기 경기 수원지역에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하게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 경기, 부산지역에서 노동안전보건의 고민을 갖고 노동현장과 시민사회, 지역운동과 다양한 사안/의제로 만나 교류, 연대하는 활동이 확대/심화한 게 아마 이런 고민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8.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가 되기 위한 발돋움 (이숙견)

20135, 생산품 도난방지를 이유로 굳게 잠긴 작업장에서 일하다 화재 발생으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케이더 화재 참사 20주년을 추모하고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아시아 지역의 참혹한 노동안전보건의 실태(전자산업피해, 석면피해, 화재참사 등)와 이를 바꾸는 방안 (법률지원, 피해자조직화, 국제공동행동)을 마련하고자 태국 방콕에서 2년 만에 개최된 안로브 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사진입니다.

아시아 노동재해. 환경재해 피해자 네트워크인 안로브(ANROEV, Asia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회의는 2008년 삼성 백혈병 문제를 알리기 위한 계기로 참석한 이후 연구소에서 꾸준히 결합 중입니다. 전자산업의 유해위험성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며, 국제연대활동의 필요성에 공감이 커지며 연구소도 본격적인 국제연대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연구소는 다양한 국제회의 참석과 공동활동, 석면추방활동 등을 통해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해 왔는데요, 2012년부터 국제 연대팀을 구성, 가동 중이라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 같아요. 현재는 인도네시아 바탐지역의 전자산업 노동조합과의 연대, 전자산업노동자와 함께 하는 국제공동행동을 준비 중이고, 긴 안목으로 다양한 국제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9. 세상을 움직인 반올림 (이종란)

20116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에 대한 역사적인 판결 선고 직후, 법정 밖에 대기하던 수 십 명의 기자에게 둘러싸여 판결 결과에 대한 소회를 말하는 순간입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고 황유미, 이숙영 씨의 백혈병은 산업재해라고 판결하지만, 나머지 세 분, 고 황민웅, 김은경, 송창호 님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기각한다고 판결합니다. 산재신청 이후 4년 만에 받아낸 산재 인정 판결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편 증거부족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지 못한 세분 때문에 억울한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목이 메서 말을 하기 힘든 와중에 계속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던 것 중, 이런 말이 기억납니다. “아픈 노동자와 유족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현재의 산재 제도는 시급히 바뀌어야 합니다

 

반올림은 삼성에 맞서, 기적 같은 승소를 이끌었다고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산업재해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0. 10년 이후의 연구소를 그리며 (김정수)

2012년 연구소 총회에서, “십 년 뒤 나는? 십 년 뒤 우리는?”이라는 주제로 회원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과 연구소의 전망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연구소의 전망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이 독창적이고 기발했는데 명실상부한 전국조직 연구소, 국제적인 조직 연구소, 의료기관등 몇 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제기됩니다. 연구소는 이때 나온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전망을 마련하였고 두 번의 지역별 회원 토론을 거쳐 2013년 총회에서 연구소의 전망을 확정합니다.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고자 하는 (가칭) 노동안전보건센터, 노동시간에 대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이를 사회화하고자 하는 노동시간센터(),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연구소 전망을 현실화하는데 한 발짝 다가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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