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가학적 노무관리, 노동자를 죽인다 /2015.7

가학적 노무관리 노동자를 죽인다

 

 

선전위원회

 

 

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인 김석진씨는 지난 2009년 1월 경 미포조선 굴뚝 농성에 참여했다가 중공업 경비대의 테러를 당하고 크게 다쳐 1년 여간 치료받은 뒤 복직했다. 그러나 복직 후 회사는 김석진 씨가 회사를 망하게 한다며 악선전을 하고, 그와 인사하거나 대화하는 노동자들을 개별 면담 등으로 압박했다. 같은 부서원 명의로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걸기도 했다. 젊은 직원을 감시, 미행자로 붙여 작업 중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따라다니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따라붙게 했다. 매일 집 앞에서 승용차를 세워둔 채 감시하여 가족의 사생활까지도 감시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3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던 김 조합원은 증상 악화로 2011년 병가 휴직을 내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했고, 2012년 결국 산재 승인되었다. (관련 기사 : 현대미포 김석진씨 우울증 산재로 인정) 고 양우권 이지테크 지회장 사례와 너무 흡사해서 가슴을 치게 된다. 지난 몇 년 사이 가학적 노무관리는 더 흔해지고, 더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버티던 노동자들이 결국 죽어나가게 된 것이다.

 

괴롭힘이 심할수록 황폐화되는 마음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무너뜨린다. 김석진 씨 사례에서처럼 우울증 등 정신건강이 특히 문제가 된다. 2014년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제 퇴출 프로그램인 CFT 근무자들은 신체화 증상, 강박증, 대민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편집증, 정신증 등 모든 항목에서 일반 인구보다 건강 상태가 나빴다. CFT 근무자 내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하다고 응답할수록 신체화, 강박증, 대 민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공포불안, 편집증, 정신증이 유의하게 증가되었다.

2012년까지 발표된 직장 내 괴롭힘의 건강 영향과 관련된 연구를 모아 통합적으로 분석해보니 연구 시작 시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던 참가자 들이 나중에 정신 건강 문제가 발생하거나, 건강 문제로 병가를 낼 위험이 유의하게 높았다.

 

6만2916명을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관찰한 13개의 연구를 모아 분석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구 시작 시점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 건강 문제가 생길 위험은 2.33배 (95% 신뢰구간 1.76~3.09)나 높았다. (Nielsen and Einarsen, <Work & Stress>, 2012, 26 (4) 참조)

 

직장 내 괴롭힘 중 가학적 노무관리만 분리해서 건강영향을 따로 살펴본 연구는 많지 않지만,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다른 직장 내 괴롭힘 과 마찬가지로 가학적 노무관리는 정서적 소진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가학적 노무관리를 심하게 느낄수록 이런 지표들이 더욱 나빠진다는 보고가 있다.

 

가학적 노무관리를 심하게 느낄수록 소진(burnout), 정서적 소진(emotional exhaustion)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가학적 노무관리와 우울증, 불안, 심리적 웰빙 지수, 삶의 만족도, 불면증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Martinko et al.,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J. Organiz. Behav. , 2013, 34, S120∙S137)

 

극심한 스트레스, 몸도 병든다

 

정신적인 학대인 '직장 내 괴롭힘'과 '가학적 노무관리'는 노동자의 몸도 병들게 한다. 병원 직원을 2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 2번의 설문조사에서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한 번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우울증 발생할 위험이 4.2배(95% 신뢰구간 2.0~8.6)나 높았던 것은 물론이고, 심장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2.3배(95% 신뢰구간 1.2~4.6)나 높았다. (Kivimaki et al., <Occup Environ Med> 2003, 60, 779-783쪽 참조) 

 

정신적 학대의 결과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발생해 만성적인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직무스트레스가 이들 질병의 위험을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아침 기상 시 타액 내 코티졸 농도가 낮았다.(Hansen et al., <Journal of Psychosomatic Research>, 2006, 60(1), 63-72쪽 참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은 정상적으로 아침에 가장 농도가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농도가 낮아지는 하루 주기 리듬을 가지고 있는데,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경우 이 차이가 줄어들고 이는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건강의 극단, 자살

 

이런 피해의 극단적인 형태가 자살이다. 가학적 노무관리 피해자들은 이런 학대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힘들다는 짙은 무력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학대가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느끼는 이런 무력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큰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발생하고, 강한 무력감을 느끼는 피해자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경쟁 체제에 기반한 가혹한 실적 관리에 압박을 받아 자살한 은행 지점장이나, 노동조합 만들었다는 이유로 인격을 모독당하다가 목숨을 던진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가학적 노무관리의 희생자다.

 

정신적 괴롭힘을 '경영' 수단으로 활용하는 폭력적인 노무관리의 피해자다. 어린이를 좁은 갱도에 몰아넣고 석탄을 채굴하던 18세기 자본주의가 신체적 착취의 극단이었다면, 노동자의 정신을 쥐어짜려는 시도는 지금도 극단을 향해 더 나아가고 있다.

 

행복하게 살 권리 쟁취하자

 

가학적 노무관리를 넘어 행복하게 일할 권리,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수반한 성과 경쟁, 감시와 사생활 침해를 동반한 노동자 관리는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가학적 노무관리를 처벌하는 입법안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의 행태와 발생 원인이 다양할뿐더러, '괴롭힘' 이나 '가학적 노무관리' 를 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순 등, <근로자에 대한 가학적 인사관리 등 관련 사례분석 및 입법례 연구>, 2014 참조)

 

그래서 먼저 근로기준법 상에서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취해져야 한다. 그리고 당분간은 각각의 사건을 이슈화하고 개별 사건들에서 사업주가 사법적으로 처벌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과, '가학적 노무관리' 를 문제화하고, 최소한의 제어를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하다.

 

신체적, 정신적 훼손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대안' 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기도 하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8명이 회사의 감시와 괴롭힘에 의한 집단정신질환으로 산재 승인된 바 있지만, 가학적 노무관리에 의한 노동자 피해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이런 끔찍한 광경이 현장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의 조직된 힘뿐이다. 우리는 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 공간 내에서 우리의 모든 인격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께 주장하고, 노동자에 대한 학대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의 힘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