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이것은 '학대'다 /2015.7

이것은 '학대'다

- 사례로 본 가학적 노무관리

 

선전위원회

 

 

"책상에 앉혀두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나와는 얘기도 하지 말고 밖에서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직원들은 나와 눈 마주치기도 어려워했습니다."

 

지난 5월 10일 자살한 양우권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이 생전에 나눈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고 양우권 분회장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두 차례나 해고를 당했는데, 결국 3년에 걸친 길고 어려운 법정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2014년 2월 두 번째 징계 해고까지 '부당해고'라고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회사는 그를 원래 일하던 제철소 현장 대신 제철소 밖에 있는 행정사무실로 출근시켰다. 거기서 회사는 그를 책상에 앉혀둔 채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다. 홀로 남아서도 투쟁을 이어가던 그였지만, 다양한 방식의 학대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없었다.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다

  
이런 행태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내 폭력의 한 유형으로 심리적 괴롭힘, 감정적 학대, 집단적 따돌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앞뒤 꽉 막히고 폭력적인 '진상 상사'가 폭언과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대우를 하는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르거나 친한 동료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다른 동료를 왕따 시키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자칫 노동자들 사이, 개인적인 문제에 기인한 정신적 괴롭힘이나 감정적 학대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통일된 정의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보통 괴롭히는 사람과 피해자 사이에 불균등한 권력 관계가 있으며, 더불어 괴롭힘 행위가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벌어진다. 또 피해자 스스로가 열등한 위치에 처해 있음을 알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는 것 등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공통적으로 뜻하는 것들이다.

 

'가학적 노무관리'란 이런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회사나 상급자가 인사 관리,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채택한 경우다. 가학적 노무관리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이나 경영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학적 노무관리'란 '상사가 관여된 적대적인 언어적 비언어적 행위가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는 하급자의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인 상사-부하직원 혹은 경영 조직 자체-노동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정의할 때처럼 '피해자의 인식'이 '가학적 노무관리' 여부를 정의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의 구체적인 양태로는 공적인 조롱, 무례한 언사나 태도, 사생활 침해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회사가 괴롭힘을 정책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가학적 노무관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학적 노무관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노동조합 활동 탄압 도구로 활용되어온 사례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조 탄압'이나 노사 간의 격렬한 투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달성하기 위해, 성과를 높이기 위해, 고객 만족을 위한다는 다양한 핑계로 노동자 학대를 '경영 수단'으로 활용한다.

 

괴롭힘 양상 또한 과거와 달리 해고 대상자에 대한 구조조정형, 정규직·비정규직·파견직 등 고용형태의 차이에서 생기는 노무 관리형, 과도한 경쟁과 성과주의에 따른 괴롭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채용부터 근로관계 종료까지의 전체 인사·노무관리 과정에서 '학대'와 '괴롭힘'을 자본과 경영의 목적에 따라 지속적이고 공공연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노동자들의 인식을 '가학적 노무관리'라고 부르고자 한다.

 

앞으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가학적 노무관리의 유형을 분류해보고, 이런 폭력이 얼마나 우리 노동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자.

 

1) 노동조합 탄압의 도구

 

EG테크 양우권 열사 사례는 각종 학대와 괴롭힘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한 전형적인 예이다. 과소 업무량을 주거나, 조직적으로 왕따 시키기, 반대로 도저히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는 등 다양한 전술이 사용되지만, 결국 조합 활동을 포기하도록 하거나, 조합원이 사직하도록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노동조합 활동 탄압에 이런 괴롭힘을 도구로 활용한 역사는 매우 길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8명이 집단정신질환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노동 조합원에 대한 폭언, 폭행과 괴롭힘이 집단 정신질환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직접적인 폭력 사태도 심각했지만, 정신적인 괴롭힘도 무시무시했다. 조합원들에게만 업무를 과도하게 분배하거나, 부서 내 회식에서 배제하고 비조합원 직원들이 말도 걸지 못 하게 했다. CCTV를 설치해서 감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합원 근무처에서 관리자가 커튼 뒤에 숨어서 감시하는 일까지 있었다.

 

몇 년 전 이마트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노동자 개인을 감시하고, '문제인력'을 파악하기 위해 면담을 진행하고, 문제인력으로 찍히면 분산된 사업장에 배치하도록 했던 것도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괴롭힘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2) 괴로우면 나가라, 퇴출 프로그램

 

D증권에서는 저성과자들의 실적 향상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전략적 성과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8개월간 3단계에 걸쳐 저성과자들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실제 성과를 높이는 것보다, 퇴직을 강요하고 구조조정을 우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적 향상을 도와준다면서, 실효성 없는 업무를 시키거나 실제 영업과 관련 없는 우편물 분류나 회사 도서관 사서 등의 업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경력 20년이 넘는 영업직 노동자가 갑자기 우편물을 분류하거나, 회사 식당 옆 도서관 사서 역할을 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회사의 목적이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끝난 후 대상자 18명이 모두 사직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KT 사례다. 2014년 11월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는 KT에서 CFT(Cross Function Team)에 근무하는 221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CFT는 명예퇴직 신청 거부자들을 모아 만든 팀으로 사실상의 인력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명예퇴직 요구를 불응하면서 기존 업무에서의 배제, 계속적인 면담 요구, 조직구성원들로부터의 집단 따돌림 등의 비인격적 조치가 행해졌다고 응답했다. 원거리 발령, 업무 전환배치 등도 대표적인 괴롭힘 수단이다. 이런 가혹한 수단을 활용해가며 KT는 한국 기업 구조조정 최대 규모의 명예퇴직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

 

 

 

▲  2014년 발표된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 

 

3) 학대와 괴롭힘으로 실적 압박

 

2014년 겨울, 한 통신사업체 고객센터 상담원이 자살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업체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상품 판매를 요구하고, 회사 스스로 정해놓은 규정마저도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시하도록 조장했다고 고발했다. "고객센터에 단순 문의하는 고객들에게 전화, IPTV, 홈CCTV 등의 상품 판매를 강요하고 목표건수를 채우지 못하면 퇴근을 하지 못합니다. 목표건수 역시 회사에서 강제로 정한 내용입니다…. (중략) 가입실은 휴대폰이나 070전화(핫라인)을 통해 녹취를 남기지 않고 가입을 시켜도 쉬쉬할 뿐 제재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가입시키고 보자는 거니까요." 당시 희망연대노조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 내용에 따르면 일부 콜센터에서는 회사가 정해준 영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퇴근 시간 이후, 자신의 '콜'을 수십 번씩 되풀이해서 들어야 하는 자아비판 시간도 가져야 했다고 한다.

 

이윤과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 시스템이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사례에서처럼 실적을 높이게 하기 위해 퇴근을 막고, '자아비판'의 형태로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는 것은 명백한 가학적 노무관리에 해당한다.

 

가학성, 노동의 일반적인 특성이 돼 버렸나

 

최근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감정 노동의 경우, 노동자 권리 보장은 약화되고 '고객 중심' 분위기가 강화 되면서 일 자체로 노동자가 괴로워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가학성이 노동의 일반적인 특성이 돼 버린 것이다.

 

판매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미스터리 쇼퍼'가 대표적인 사례다. 감정노동에 대한 통제방식으로 암행감찰을 채택한 것인데, 이 감찰 결과가 평가로 연결되어 고과 반영 혹은 재교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암행감찰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억압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한다. 

 

또, 이런 암행 감찰은 노동자 사이의 유대감과 신뢰를 깨뜨려, 또 다른 직무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회사의 노동자 미행·감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한 대기업 영업 노동자는 노동자들 사이에 '미행 감시 제보자는 결국은 우리 주변에 있는 같은 동료'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미행 감시로 인해 동료들 사이에 불신이 생기고, 관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직 보신을 위해 상급자가 학대 조장

 

르노·삼성 자동차에서는 직원 A씨가 동료 직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 당했던 것을 신고했다. 회사는 피해자인 A씨에게도 사직을 종용했고, 이에 A씨는 가해자와 인사팀 관련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임원은 A씨에 대한 조직적인 따돌림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A씨를 적극 돕던 직원 B씨까지 근태불량을 이유로 징계처분을 내렸다. 조직에 누를 끼치지 말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거나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다. 성희롱/성폭력 사건과 조직 보신을 위한 가학적 노무관리가 결합한 셈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12월 1심 재판부는 가해자에게는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으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한 회사 측 인사 담당자와 사업주에 대한 부분은 기각하였다.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퇴사를 종용하고 조직적 따돌림을 조장한 임원의 행위가 "관리, 책임자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불이익 원칙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가학적이고 부당한 노동행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판결이다.

 

다양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자본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는 이미 우리 노동 현장에 널리 퍼져있다. 우리가 인내하고 넘어가던 학대 장면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러한 장면들을 연출한 치떨리고 간악한 자본의 노무관리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힘을 모아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옆에 있는 동료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피폐한 사회에서 자본이 원하는 대로 허우적대며 연명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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