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너무 위험해서 못해요!" "그럼, 나가!" (프레시안 2015.07.16)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8157

"너무 위험해서 못해요!" "그럼, 나가!"
[노동자 건강권 실태 ①] 위험 작업, 노동자의 '거부할 권리'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2015.07.16

 

 

 

지난 4월 한 달간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 건강권 실태 조사'를 진행한 노동 안전·보건단체들이 전국 산업 단지 노동자 건강권 실태 조사 결과를 <프레시안>에 보내왔습니다. 이 조사는 서울 구로, 경남 녹산, 울산 매곡, 대구 성서 산업 단지에서 일하는 중소 사업장 노동자 75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대구 산업보건연구회,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각 지역 단체들이 참여한 실태 조사 결과를 2회에 걸쳐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일 하다가 위험하다고 느낀 적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많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아울렛분회 윤유석 부분회장의 말이다. 주말에는 10만 명도 찾는다는 대규모 아울렛 매장에서 시설 관리 업무를 했기 때문에, 일도 많고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2014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특히 7, 8월에는 하루 최고 33~35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주의보였던 날이 많았다. 그 때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물류센터 외벽 도색 작업을 지시했다. 외부 업체에게 맡길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1층은 그나마 낮기 때문에 할 만했다. 그러나 약 7미터 높이의 2층은 높기 때문에 작업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비계나 '아시바 사다리'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페인트 붓을 장대로 길게 연결해 도색을 하라고 했다. 페인트 붓을 6~7미터 길이로 연결하라는 것이다. 어떤 곳은 안전 난간이 없는 2층 발코니에서 칠하기도 했다.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 도구인 안전모와 안전화를 요구했다. 회사는 그 요구에 한참을 뜸들이다가, 작업이 끝날 때쯤에야 선심 쓰듯이 가져다줬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을 보였고, 수 명의 노동자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한 노동자는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 구토를 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회사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쉴 공간이 없어서 길바닥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는 것이 전부였다. 병원비 지급 또한 거부당했다. 노동자들은 폭염주의보 속에서는 작업을 자제해 달라고 수차례 구두 및 메일로 요청했지만, 회사는 그 요청을 묵살하고 쓰러지면 회사에서 책임질 테니까 그냥 작업 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일하다 위험하다고 느낀 경우, "못하겠다"고 회사나 관리자에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걸까?

 

"못하겠으면 나가라는 식이니까요. 항의하면 해고라고 어디 써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지속적으로 외주화를 추진하면서, 신규 입사자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누구도 '위험해서 못 하겠다' 말을 못 하는 거죠. 더군다나 2014년 초에 외주화로 인한 권고 사직까지 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더 더욱 못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일하다 위험해도 회사에 개선 요구 못해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제조업이나 건설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윤유석 부분회장처럼 제조업에서 일하지 않는 경우에도 일하면서 위험한 일을 많이 겪는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는 노동자든,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경우에도 작업을 중단하기 어렵다. 이번 전국 산업단지 노동 건강권 조사에서도 '일하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2.6%가 노동자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작업 중단은커녕,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산업 단지 노동자들의 12.2%는 일 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다칠 것 같은 위험을 항상 느끼며, 41.7%는 위험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느꼈을 때, 회사에 개선을 요구했다는 응답은 21.7%에 불과했다. 절반 정도는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했고, 30.8%는 위험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고 응답했다.

무시하고 일했다고 응답한 88명 중 39명은 '개선을 요구해도 회사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37명은 '늘 있는 일이라서 매번 개선을 요구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불이익이 걱정돼서 개선 요구를 못 했다'는 답도 18명이었다(복수 응답).

 

제 역할 못 하는 정부와 사업주, 대신 노동조합에는 기대

 

정부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84.9%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사업주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응답에서도 58.0%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산업 단지 사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사업장이 산업 안전의 사각지대라는 것을 노동자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 관리자나 보건 관리자 등 산업 안전·보건 체계와 안전·보건 관리 규정, 안전·보건 교육을 모두 면제 받는다. 사업장 규모가 작아서 자체적으로 안전·보건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면 이를 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대책은 부족하기만 하고 지금으로서는 방치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 결과의 한 지표가 산업재해다. 고용노동부 산재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년간 산업재해를 당한 9만909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32.4%,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81.0%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00명 당 1.19명이 산재를 당해,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재해율 0.42%의 3배에 달한다.

 

공단 구조 고도화와 함께 산업 단지에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 산업 역시 산업 안전의 또 다른 취약 분야다. IT산업(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정보 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등)은 사업 규모와 관계없이 안전·보건 교육 의무가 면제된다. 사무직으로만 구성된 사업장은 산업 안전·보건 체계와 안전·보건 관리 규정, 안전·보건 교육을 모두 면제받는다. IT 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 질환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렇다.

 

노동조합 있으면 건강이 나아질까?

 

정부와 사업주에 대한 이런 실망감에 비하여, '노동조합이 생기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려 40.6%의 노동자가 '매우 그렇다', 42.3%의 노동자가 '그렇다'고 응답해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향한 이런 기대는 근거가 있다. 기존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자들이 집단 교섭을 통해 작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고, 작업 환경 및 유해 요인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며, 작업장 내 안전 문화를 조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기대는 아직은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산업 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조 조직률은 2%라고 한다.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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