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작업 중지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이 중요합니다/ 2015.5

지키고 살려내자 작업중지권

작업 중지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이 중요합니다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작업중지’라고 하면 주로 금속 제조업 작업중지를 생각하게 된다. 조선소나 제철공장처럼 언제라도 큰 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 사업장에서 아주 급박한 사고 발생 직전에 일을 멈추거나, 컨베이어벨트를 잠시 멈추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동안 주로 제조업 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작업중지권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다른 업종, 다른 형태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은 어떤 것이며, 작업 중지는 어떻게 가능한지 수소문하던 차에, 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에서는 수 차례 안전보건문제 때문에 작업을 중지하고 시정을 요구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철도노조 서울차량지부 이상이 지부장과 윤혜영 노안부장을 만났다.


안전보건문제로 작업을 중지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알려주세요.

아주 정식으로 ‘작업중지권’을 쓴다고 생각하고 사용한 사례는 아니었어요. 어느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가좌역 지반이 침하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차가 여기(수색,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정비하는 기지까지 들어올 수 없게 된 거죠. 비상상황에 어떻게든 열차를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조합원들이 급히 용산이나 서울역으로 나가서 정비를 했어요.

그런데 용산이나 서울역은 정비를 하기 위한 설비가 전혀 안 돼 있는 곳이잖아요. 정비차고가 없이, 철로 상에 열차가 세워져 있는 상태에서 정비를 하니 불편하고 어려운데다가, 정비 중인 바로 옆 철로로 기차가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거죠. 안전을 위해 법적으로 정비 시에 측선으로는 열차가 다니지 못 하게 돼 있거든요. 조합원들이 일을 하면서 끼임 사고나 충돌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느낀 거죠. 게다가 열차를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뛰어 나가 위험도 감수하고 일하는 조합원들에게, 회사 측은 야간 작업 시 숙소도 마련하지 않고 열차에서 자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이런 사정을 노동조합에 연락해왔고, 노동조합이 나서서 안전조치를 마련할 때까지는 작업을 못 한다고 거부한 거죠. 출장처럼 나가서 일하던 직원들이 모두 기지로 다시 돌아와서 대기하면서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버틴 겁니다. 결국 임시, 비상상황이니만큼 꼭 해야 하는 정비 내용을 약간 줄여, 조합원들이 너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했고, 임시 숙소를 마련한 뒤 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아마 2007년 경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전에도 이런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비상 상황, 임시 상황이라면서 노동자 안전은 뒷전이 되고 당장 일이 되게 하려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전에는 잠깐 위험하게 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문제 의식이 없었거나, 문제 제기를 못 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당시에는 하루 이틀만에 복구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며칠간 계속 그렇게 일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다고 느낀 거였죠.



석면 문제로 작업을 중지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2008~9년에는 석면 때문에 일시적으로 작업을 중단했던 적이 있었어요. 석면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이미 있었던 때였습니다. 열차 엔진룸이나 제동장치함에 예전에 석면이 많이 쓰였거든요. 노동조합이 최초에 문제제기했을 때, 철도공사 측에서는 열차에서 석면을 모두 철거했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아무래도 석면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 같다는 문제제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몇 군데에서 시료를 채취해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더니 정말로 석면이 상당히 많이 검출된 거예요.

모든 작업을 일시에 멈춘 것은 아니었고,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들을 거부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긴급하게 임시 산보위가 열려 다시 한 번 석면 철거 약속을 구체적으로 받아내고, 철거가 되기 전까지는 석면 방지용 보호구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보호구가 지급될 때까지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을 중단했지요. 사실 석면이 상당히 포함돼 있는 먼지를 압축 공기로 날리는 등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구형 차량 자체가 모두 퇴출되어 석면 문제는 없어졌지요. 노동조합이 석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 2년쯤 뒤에 조합원 중 폐암이 발생해서 산재 신청을 했어요. 결국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당시 분석 자료와 기록 등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두 번 정도 경험이 더 있습니다. 저희 일하는 곳에는 전차선이 따로 없었는데, 전기 기관차가 도입되면서 전차선이 설치되었습니다. 새로운 설비가 도입된 것이니, 그에 걸맞는 안전설비가 다 갖춰지기 전에는 일을 못 한다고 한 거죠. 예를 들어, 열차 측면에는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어요. 옛날 열차들은 공조장치가 위에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살펴보고 직접 소리도 들어보는 작업을 꽤 했었죠. 그런데 이제 전차선이 생겼으니 지붕에 올라가면 안 되는데, 사다리가 달려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올라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위험을 애초에 없앤다는 생각으로 사다리를 모두 제거하라고 요구했죠. 화물차에는 아직도 이 사다리가 달려 있어서, 일반인들 감전 사고가 대부분 이 사다리 타고 올라갔다가 발생하고 있어요.

전차선 관련해서는 지금도 청소 작업에서 문제가 있어요. 지금 청소 업무는 외주로 빠져 있습니다. 전차선이 도입됐기 때문에 이에 맞는 업무 매뉴얼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옛날처럼 물 뿌리면서 똑같이 청소를 하고 있어요. 감전 사고 위험이 높죠. 저희가 그런 위험한 작업 형태 사진 찍어서 회사 측에 문제 제기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아요.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지만 더 위험한 일을 많이 하는 비정규직이 보호는 더 못 받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고용 등에 밀리는 편이지요.

또 조합원 한 분이, 작업 중에 돌연사 하신 적이 있었어요. 열차 안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사망하셨는데, 뒤늦게 발견이 됐지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일하던 중 조합원이 사망했으니 원인이 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죠. 혹시 가스라도 발생해서 사망한 것은 아닌지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회사측 대응이 부적절했습니다. 원인 규명이나 이후 장례 절차, 산재 신청 등에 대해서 비협조적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모든 조합원들이 손을 놓고, 반나절 정도 작업을 중지했습니다.



보건 문제를 가지고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적절하게 작업중지권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을 개선해온 모범적인 사례로 보인다. 작업중지권을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철도 차량 정비 업무가 현재 회사 측도 인정할 정도로 아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죠. 노동조합이 작업을 중지하고 무언가를 요구할 때 공사 측에서 봐도 억지 주장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곳곳에 문제가 많아요. 서울차량지부 정비 차고가 지어진 것이 1969년 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현장은 주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정비를 하는데, KTX나 전동차를 정비하는 다른 사업소에서 서울차량지부 환경을 보면 놀랄 정도로 완전히 옛날 설비, 옛날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요.

사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 해서 발생하는 위험이나 불편함은 조합원들이 감수하고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회사가 정한 사규나 작업 수칙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노후한 작업 패턴이 유지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정비 기지가 따로 없고 옥외, 노상에서 정비를 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너무 넓고 조합원들이 정비할 열차를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죠. 다른 정비 사업소에서는 정비 받을 열차가 정비고 안으로 들어오면 거기서 작업을 하는데 저희 작업 방식과 대조적이죠. 이러니 빙판 사고, 전도 사고가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교대근무를 하는데, 노상에서 작업을 하니 야간 작업 시에 조도 확보도 충분히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미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이건 정말 안 되겠다’고 작업을 중단하고 요구하는 것을, 사측도 안 들어줄 수가 없는 것이죠.


완성차 사업장 등에서는 작업중지권 사용했던 것을 가지고 징계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했던 것 때문에 직접 징계를 내린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다른 건을 가지고 징계를 하면서, 징계 사유에 예전에 작업중지했던 내용을 같이 써놨더라고요. **월 **일에 업무 지시를 안 따랐다는 둥.

작업중지권 자체로 징계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징계 사유에 같이 끼어들어 있다는 것을 조합원들도 자연히 알게 되지요. 그러면 아무래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 특히 작업을 중단하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위축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 제기를 하는 거지요. 또 노동조합이 일단 제기를 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자고 하면, 이 지침을 조합원들이 잘 따라주기 때문에 계속 문제도 제기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중지권을 더 널리 알리고, 현장에서 잘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보장된 권리죠. 그렇지만 작업중지권 얘기를 하기에 앞서 ‘안전한 일터’에 대한 기준을 여러 가지로 풍부하게 만들고,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기준이 똑바로 서 있어야, 그 기준에 안 맞는다 싶을 때 멈추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예를 들어 지금보다 작업환경측정 기준도 훨씬 다양해지고, 각자 일하는 환경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강진단 항목도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처럼 좀 더 실질적인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열차 시트에 미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그게 우리 노동자들이나 승객들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고 궁금하지만, 이런 내용은 작업환경측정에 반영되지 않죠. 그러니 문제를 제기하려고 해도 막막해지는 거예요. 현장에서는 전자파의 건강 영향에 대한 우려도 많은데 이것도 제대로 기준도 없고 측정도 하지 않지요. 더 자잘하게는 야간 근무자들이 숙소에서 푹 잘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소음 기준치는 뭐냐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을 멈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작업을 중단하는 것 자체보다 왜 작업을 멈춰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 기준은 뭔지, 그래서 작업 중단 후 대책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그래서 일터는 더 좋아졌는지가 훨씬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소중하다. 작업중지권을 실현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안전한 일터’의 기준에 대한 이런 질문과 지적, 토론이 활발한 현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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