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 2015.5

[시간의 재발견-노동시간에세이]


행복과 통근시간

출퇴근 시간도 노동시간의 일부로 인정해야


노동시간센터(준) 김재광


한국은 세계굴지의 장시간 노동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 단시간, 단기간 일할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노동시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불안정성은 비단 일터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시간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노동시간센터(준)은 지난 기획 [노동시간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들]을 마치고, 일상에서  느낀 시간과 노동을 에세이로 풀어나가는 [시간의 재구성] 연재를 시작합니다. ‘노동시간’에 방점을 두고 재구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지난 가을 지속되는 전세난 와중에 다행히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서울인 듯 서울 아닌 듯 한 서울인 이곳은 주변에 텃밭이라고 하기는 상당히 넓은 경작지가 있고, 새로 들어선 교회 이름도 전원교회다. 말인 즉 공기는 좋으나, 참 외진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출근 시간이 40여 분 더 늘어 출퇴근 시간이 도합 2시간 40 여분이 되었다. 이 긴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려니 책도 읽어보고, 음악도 듣고, 이러 저러하게 의미 있게 써보려 앙탈을 부려보지만, 피곤하고 무료함을 이겨 낼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필요가 없는 직업인지라 그나마 다행이지 일반 직장이라면 아마도 우울과 무기력에서 못 벗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무언가는 다행히(?)나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질도 좌우하는 통근시간

OECD는 Well-being 측정 지표로 진작에 ‘통근시간’을 놓고 있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한 요소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OECD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길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국가의 평균 통근시간은 38분(편도)인데 비하여, 한국의 경우는 58분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리저스 그룹 조사(2010년)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 네 명 중 한 명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90분 이상을 버스나 지하철에 안에 있으며, 평균 통근 시간(편도)은 62분이며, 통근 시간이 2시간 이상인 직장인도 전체의 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0년 통계청 조사를 근거로 하여 추산할 경우 2015년 현재 출근 소요시간이 1시간 이상인 직장인의 수가 5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역시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택비용으로 인해 직장이 있는 도심에서 외곽으로의 이주하는 경향이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을 고려하면 그 수는 좀처럼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얼마 전 방영된 [MBC 다큐스페셜]은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 만성피로와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다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조사를 하였는데 출근 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는 집단에서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나 의학적으로도 1시간 30분 이상 출근 시간이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밖에도 장시간 통근으로 유발되는 스트레스는 혈압 상승, 근·골격계 질환, 적대감 증가 및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국의 ‘The Argus’지는 통근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영국 브라이튼 앤 호브 지역 주민 중 런던으로 통근하는 근로자들의 기대 수명이 평균 1년 단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은 생체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가족 및 사회관계까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출근시간이 1시간 증가하면 수면시간은 13분이 줄어들고, 이혼율은 약 53%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정치참여에 연관이 상당하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를 접하면 장시간의 출퇴근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앞서 밝힌 리저스의 조사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의 설문(복수응답)에 ‘운동과 몸매 관리에 시간을 보내겠다’(82.0%), ‘가족친구 연인과 시간을 갖겠다’(76.0%), ‘학술적 능력제고에 투자하겠다’(65.0%)로 답한 점을 비추면 장시간 출퇴근 시간이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통근시간 스트레스, 결국 노동시간의 문제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흥미로운 보고를 한 바가 있다. 보고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서울(강남 기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통근시간에 따른 행복상실을 분석한 결과 통근시간(편도)이 1시간인 수도권 통근자의 행복상실, 그 가치가 월 94만원이라는 것이다. 수치로 나타난 행복상실의 정도가 실로 충격적이다. 행복의 가치를 단순 산술화 했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삶의 질을 주요하게 결정하고 있다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 월 94만원이면 최저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이 보고의 조사에 의하면 대상자의 62.7%가 통근시간의 불만족 하며, 응답자의 69.8%가 통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으며, 46.6%는 업무효율에 지장을 주며, 29.6%는 이직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니 수도권 출퇴근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이렇듯 익숙하면서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과 그에 따른 건강상, 사회관계상의 문제는 교통체계의 혁신, 주택 및 거주 방식의 혁신 등도 있겠으나, 노동시간의 문제로 따지자면 우선 유연한 출퇴근 시간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집중된 출퇴근 시간을 피한다면 상대적으로 덜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들 출퇴근 시간 자체가 혁신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출근 시간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의 불가피한 시간으로 이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필요하다. 즉 통근시간의 전부 또는 일정 시간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그만큼 실 노동시간을 면제하는 것이다. 최근 ‘벼룩시장 구인구직’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응답자의 66% 정도가 30분 이내의(편도) 출퇴근 시간을 원한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30분 이상의 통근 시간에 대해서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면 장시간의 출퇴근 시간의 부담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상에 여러 가지 반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부담을 사업주가 분담하는 것이 옳지 않다’ 라든가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장거리 출퇴근자의 고용이 불안해 질 것’이라는 등등의 주장 말이다.



출퇴근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키자는 나의 발상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장시간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이로 인하여 건강과 사회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전혀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노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사회의 존립 이유가 누구를 일부러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곤란을 겪고 있으며 노동생산성에서도, 행복의 척도에서도, 사회관계 및 정치의 참여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장시간 통근시간의 문제를 모른척하는 것이 정당한지 묻고 싶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뿐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 그것에 부수하는 시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출퇴근, 휴식, 재충전) 모두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노동시간의 문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출처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 길 위의 미생)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