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노동이야기]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 / 2014.10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그의 노동은

'건축 설계사 인터뷰'


최민 선전위원장



초과노동 200시간, 병 나는 게 당연


30대 후반, 이승현(가명) 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제법 큰 규모의 건축 설계회사에서 10여 년째 일하고 있다. 자기가 배우고 싶은 대학에 가고, 전공 살려 대기업에 취직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니 꽤 안정적인 인생이다. 


그런 이승현 씨가 얼마 전 아주 호되게 열병을 앓았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걸을 수조차 없었다. 뇌수막염이 아닌가 걱정됐지만 아직 취학 전인 아이가 셋이었다. 부인은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혼자서는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아파, 주말 내내 집에서 끙끙댔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앓고 나니 열은 떨어졌는데 월요일 출근하자 온몸에 반점이 올라왔다. 덜컥 겁이 나서 그제야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했다. 다행히 열이 떨어졌으니 특별한 치료는 필요 없다 했고, 그 뒤로 잘 회복되었다. 


아직 어린 셋째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은 것 같다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았냐는 의사 말에 이승현 씨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전 달 초과 근무가 200시간이었다. 주 5일, 40시간 근무로 치면 근무 시간을 모두 합쳐도 200시간이 안 돼야 맞다. “초과 근무가? 정규 근무 빼고? 어떻게 하면 그 시간이 나오지?” 하는 질문을 혼잣말처럼 계속 터뜨리는 내게 덤덤하게 답한다. 


“새벽 4시에 퇴근하고, 그날 아침에 다시 9시까지 출근하면 그렇게 되지요. 주말에도 출근하고요. 그 와중에 3일 휴가도 다녀왔다니까요. 물론 매일 그렇게 사는 건 아니죠. 그렇게 어떻게 살겠어요. 1년에 3-4번 정도 큰 프로젝트 할 때만 그렇게 심해요. 1-2달 정도?”


1년에 3-4번, 각각 1-2달이면 1년에 절반은 이렇게 산다는 거 아니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당연히 저도 쉬고 싶죠. 전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아프고 나니 정말 몇 달 쉬고 싶더라고요. 와이프한테도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나 이렇게 못 살겠다, 쉬고 싶다. 그런데 와이프는 불안한가 봐요. 한 번 쉬면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저는 사실 몇 달 쉬어도 충분히 재취업하거나 새로 시작할 자신이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안 그런가 봐요. 힘들어서 쉬고 싶다는데 말리더라고요.”



회의하다 회사에서 자살했다는 선배 이야기


“사실 저보다 더 심한 사람도 소개해 드릴 수 있어요. 주변에서 누가 심장병이라더라, 누구는 자고 일어났더니 죽었다더라 이런 흉흉한 얘기가 많아요. 일의 양이 많기도 하고,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도 심하죠. 최근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소식은, 저희랑 비슷한 규모의 꽤 큰 회사에서 임원진 회의 하던 도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회의실 창문으로 걸어가 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를 바이러스성 열병에 걸리게 했던 것은 병나기 직전 그가 이끄는 팀이 맡았던 경쟁 입찰이었다. 


“공공기관에서 건물을 짓기로 했어요. 이 경우에는 설계만 가지고 먼저 공개 입찰을 했지요. 거기서 설계를 선정하게 되면, 그 설계를 가지고 다시 건설사를 입찰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이때는 건축 설계랑 건설사랑 개별로 선발하는 거죠. 설계에 세 개 회사가 경쟁 붙었는데 다행히 됐어요. 병나도록 일했는데 떨어졌으면 속상했겠죠.”

 

다행히 이승현 씨는 경쟁에서 이겼지만, 나머지 두 회사에서도 그의 회사와 비슷한 규모의 팀이 꾸려져 그들도 한 달에 200시간 초과 근무를 했을 것이다. 그 중 한두 명은 이승현 씨처럼 병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랬는데도 입찰에서 떨어진 그 회사 팀장은 회의 도중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투명하게 결정한답시고 이렇게 경쟁을 시켜요. 서류 심사 같은 걸로 2팀으로 미리 줄여서 경쟁시킬 수도 있는데 괜히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거잖아요. 꼭 이렇게 안 해도 돈 줄이고 투명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 같은데. 나 시키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런 계획 세우는 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만 일해서 그래요. 자기들이 일을 만들면,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는 거죠.” 



어디 가세요? 퇴근 하세요?

 

발주자가 이렇게 설계사와 건설사를 따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설계와 시공을 한 업체에 맡기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 일명 턴키(Turn-key, 일괄수주) 방식이 있다. 자체적으로 설계 회사도 가진 재벌기업이 아니면, 건설사가 설계회사와 팀을 이뤄서 경쟁에 나선다. 이렇게 되면 설계비와 시공비가 모두 합쳐져 입찰 규모가 어마어마해지고, 건설사가 이 경쟁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러면 건설사까지 그의 상사가 된다. 건설사에서는 대리를 한 명 파견해 설계회사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감시한다. 


“턴키 설계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모아 큰 방을 하나 쓰거든요. 20명 정도가 한 방에서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하는 거죠. 그러면 건설사에서 대리를 한 명 보내요. 사실 그 사람이 정말 대리인지도 모르겠어요. 비정규직, 알바 쓰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튼 대리 한 명이 나와서 뭐 하는지 아세요? 그 턴키 방 출입구 앞에 책상 하나 갖다 놓고 앉아서 엑셀 파일 만들어, 우리 턴키 팀 직원들 출퇴근 시간을 적는 거예요. 설계하는 기간 동안 그 일밖에 안 해요. 

밤에 나가려고 하면 ‘어디 가세요?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뇨, 커피 마시러 가요.’ ‘에이, 가방 가지고 가시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이런다니까요.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그 때 바로 퇴근하셨죠?’ ‘아니요.’ ‘에이, 제가 보니까 안 들어오시던데.’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하하하.” 


유머감각이 있는 이승현 씨는 건설사 직원과 설계회사 직원 사이의 실랑이를 능청스럽게 흉내 내며 재밌게 얘기했지만, 12시 전에 퇴근하면 일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니냐고 설계회사 사장이나 팀장에게 항의하고, 심지어 설계팀 직원들이 불성실하다는 이유로 계약금보다 덜 지급하려는 건설사의 횡포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이승현 씨도 젊었을 때는 건설사 직원이 말려도 ‘나는 피곤해서 더는 일 못 한다, 사장이나 팀장이랑 얘기해라’ 하고는 집에 가버리곤 했다. 그러나 사정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제 저도 슬슬 간부급이에요.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달라져요. 연차가 높아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 받는 평가 중 충성도 부분이 늘어나요. 젊은 직원은 그 사람이 회사에 충성하냐 아니냐는 안 중요하고, 일만 제때 잘하면 되거든요. 그 때는 저도 건설사 직원 신경 안 쓰고 집에 일찍 가고 그랬죠. 나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임원이 되어 갈수록, 능력 못지않게 충성도가 중요한 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못 하죠. 아래 후배들이 그렇게 집에 가면 저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출처 : v3wall.com


아직은 욕심도 있고, 꿈도 있어요


모든 건축 설계사가 이승현 씨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회사 내에서도 그는 큰 기획을 담당하기 때문에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예를 들어 그가 이번에 기본 컨셉을 잡고, 큰 틀의 설계를 해서 입찰을 따내면, 그다음에 일을 이어받아 구체적이고 자잘한 설계를 하는 팀도 있다. 그 팀은 일도 적다. 대신 돌아오는 성취감, 회사에서의 인정, 급여도 적다. 


“그래도 저는 아직은 버틸 수 있고, 욕심도 있으니까 이렇게 남아서 오버하며 일하는 거죠. 아직은 할 수 있고, 좀 더 해내고 싶으니까. 회사 내에서도 좀 더 편한 부서가 있고 나가서 제 사무실 내고 다세대 주택이나 작은 상가들 설계하면서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게 재미있어요.”


이런 욕심과 꿈이 이렇게 경쟁적이고 이렇게 쥐어짜는 시스템에서도 승현 씨가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동력일 것이다. 이승현 씨가 지금 직장에서 법정 노동시간만큼 일하면서도 꿈과 열정을 담아 설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몇 달은 쉬고 싶은 것 역시 승현 씨의 꿈과 욕심이다. 이런 꿈과 욕심을 일에서의 꿈과 욕심과 함께 채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숙제가 많아진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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