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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 2014.8 [특집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담 : 김영선 국학중앙연구원, 송홍석 노동시간센터(준)정리 : 선전위원회 바캉스의 계절, 대기업들의 집단 휴가철인 8월이다. 의 저자 김영선 교수와 한국의 휴가 양태와 그 속에 숨겨진 휴가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휴가 ? 송홍석(이하 송)) 먼저, ‘휴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김영선(이하 김))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 최근 대기업들이 2주간의 집중 휴가제다, 연중 자율휴가제다, 휴테크다 뭐다 시행하는 걸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더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휴가의 모습이 노동자들 다수의 휴가 모습은 아닌..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 2014.8

[특집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담 : 김영선 국학중앙연구원, 송홍석 노동시간센터(준)

정리 : 선전위원회


바캉스의 계절, 대기업들의 집단 휴가철인 8월이다. <잃어버린 10일, 경영 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정치>의 저자 김영선 교수와 한국의 휴가 양태와 그 속에 숨겨진 휴가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휴가 ?


송홍석(이하 송)) 먼저, ‘휴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김영선(이하 김))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 최근 대기업들이 2주간의 집중 휴가제다, 연중 자율휴가제다, 휴테크다 뭐다 시행하는 걸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더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휴가의 모습이 노동자들 다수의 휴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는가? 

김) 그렇다. 이맘때쯤이면 안식, 배낭, 아이디어 휴가 등 다양한 휴가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통칭하면 리프레쉬 휴가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리프레쉬 휴가가 화려하고, 흔해 보인다. 언론에서는 이런 형태의 휴가를 유독 많이 부각한다. 대신 보편적으로 보장된 법정휴가의 문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재충전, 자기 성찰, 싱크 위크 등 재미있어 보이는 내용이 많지만, 거기에는 사실 생산성, 아이디어, 경쟁력, 자기계발 등 기업의 경쟁력을 전제하는 언어들이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은 휴가를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통제하고 막아왔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들어 기업들이 휴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휴가란 노동으로부터 면제된 자유시간이고 노동자가 알아서 쓰면 되는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 자기계발, 생산성, 아이디어를 위한 업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리프레쉬 휴가를 다녀오면 간단하게라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여기에는 마케팅, 아이템, 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리프레쉬 휴가 이면에 있는 진실이다.


송) 특별휴가니까 누구나 갈 것 같지는 않다. 

김) 특별형태 휴가가 누구에게 부과되는지 봐야 한다. 특별 휴가는 직장에서 특별히 실적이 높은 핵심 인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휴가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징표이고, 반대로 이런 휴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특별 형태의 휴가나 휴가 담론은 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휴가, 안 가는 건가! 못 가는 건가!


송) 특별 휴가는 차치하고 보편적 휴가인 연차 휴가마저 맘대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법정 휴가 일수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휴가 일수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1년 8할 이상 출근 시 15일의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하고 최대 25일까지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렇게 된 원인을 근로자들이 임금 보전을 위해 휴가를 모두 쓰지 않는다며 단순히 노동자 선택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김)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실 휴가 사용률(소진율)은 50%를 맴돈다. OECD 국가 평균이 70~80%인 것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은 4~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인 데 많은 국가는 2주 연속 휴가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적인 짧은 휴가는 노동자의 시간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었다는 징표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소득 보전이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업무과다, 여유 없는 인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이제는 돈을 적게 받아도 되니까 가족들과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임금과 시간이 직접 연계되는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소득 보존 경향이 높다. 그러나 직장에서 ‘소득보전’보다 훨씬 자주 언급되는 언어는 ‘상사/동료의 눈치’다. 업무량과 눈치는 하나다. “이 바쁜 와중에 출산 휴가 3개월을 다 써? 아줌마 다 되셨네!!”라는 팀장의 발언은 휴가권리를 철저히 봉쇄할뿐더러 ‘아줌마’라는 낙인까지 찍는다. 

‘상사/동료의 눈치’는 ‘팀제’라는 경쟁적 노동패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3~6개월짜리, 1년짜리 장단기 과제들을 여러 팀에 걸쳐 배치하는 경쟁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휴가요? 남들 이야기입니다~


송) 단 얼마간의 연차도 쓰기 힘든, 일주일 휴가도 배부른 이야기라 할 노동자들도 있다.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휴가의 양극화도 심화하는 것 같다. 

김) 기업의 규모 차이는 휴가 기간과 휴가비의 차이로 연결된다.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기간을 보장받는 만큼 휴가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은 여름휴가 전후로 연차를 더 붙여서 일주일을 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양극화는 고용 조건에서 비롯한다. 연차 휴가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다. 실제 비정규직이 쓸 수 있는 유급의 연차 휴가는 없다. 1년 미만의 계약기간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작업장에서 10년을 일해도 연차 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 복지, 작업복, 신분증 차이만큼이나 휴가의 차이도 크다.

그래서 휴가 부여 기준을 낮춰야 한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6개월 근무 시 연차휴가 1주일을 부여했다. 자유시간, 여가, 휴가를 시민의 권리로 여기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1993년 연차 휴가 부여 기준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선 한국 사회에서 1년을 근무해야만 휴가가 발생하는 기준은 자본 편의적이다. 노동자 중심적인 휴가 부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송) 지금은 누구나 입에 오르내리는 언어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휴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임금노동자인 나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가 필요한 만큼만 부여하고, 그 의미를 각인시켜 왔던 것 같다.

김) 주말 노동이 평일 노동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80년대 말까지 주말이란 관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주말이란 인식은 90년대 이후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 말까지 휴가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휴가를 도덕의 언어로 강력하게 통제한 것이다. 87년 이후 휴가가 하나의 권리로 등장하는 듯했지만 당시에도 ‘너희가 지금 먹고 놀자는 얘기냐’, ‘베짱이가 되려나 보다’, ‘과소비’, ‘낭비’ 등의 도덕 프레임으로 휴가권리를 억제했다. 


노동자들의 휴가 되찾기


송) 상품 소비적 휴가 문화도 문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에겐 고민할 필요 없는 손쉬운 방법이긴 한데, 뭔가 아쉽다. 다른 건강한 휴식, 휴가는 없을까?  

김) 상품의존주의 경향이 높은 것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짧은 휴가를 보내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휴가가 길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지만 휴가가 짧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짧은 시간에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는 상품 집약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휴가가 짧은 시간에 내가 아버지다움, 남편다움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적지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이런 기회인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위험도가 낮고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대체재가 별로 없다는 거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휴가 패턴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 노동진영에서도 ‘다른’ 휴가 방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과 가족휴가를 연계하거나 생태 운동, 먹거리 운동 등과 휴가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다. 휴가를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건강한 시민을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기획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송) 책 <잃어버린 10일>에서 노동자의 휴가 권리 찾기로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의 실현’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김) 한국에서 2주 연속 휴가를 쓰려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사회 휴가의 특징은  ‘비예측적이고 불연속적인 최소’ 휴가다. 기업의 생산성, 업무 흐름에 방해받지 않은 최소한의 휴가만이 주어진다. 2주 연속 휴가는 휴가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ILO의 권고 사항이다. 그래야 건강, 가족, 자유, 민주주의를 챙길 수 있고 이것은 시민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를 위해서는 시간권리를 합리적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