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5.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 2018.06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19876월 항쟁 이후 대통령직선제 등 민주화를 일부 쟁취한 1988년의 여름. 고도성장과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참혹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해 72일 수은중독으로 15세 노동자 문송면이 사망했고, 원진레이온 섬유 공장에서 집단직업병도 발병했다. 숨길 수 없는 한국 노동안전보건의 민낯이었다. 

1987년 말 중학교 졸업을 앞둔 문송면은 집안 형편을 생각해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끌려 현장실습 명목으로 온도계·압력계 제조 공장(서울 양평동 소재)에 들어갔다. 낮에는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장 기숙사에 배정받지 못해 수은이 널린 공장에서 자면서 온종일 수은에 노출된 것이다. 입사한 지 2달 만에 두통과 전신 통증, 불면증, 피가 날 때까지 긁을 정도로 심한 피부 가려움, 14kg의 체중감소, 잦은 구토에 시달렸다. 

결국, 2월 초 문송면은 휴직계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했고, 굿까지 했지만 낫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3월에 찾아간 서울대병원에서 직업병을 의심하는 의사를 만났고, 수은·유기용제 중독으로 진단받았다. 회사는 시골에서 농약 중독이돼 아픈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사업주 날인이 없다" "서울대 병원은 산재지정 병원이 아니다"라며 산재신청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1988511일 자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리면서 노동부는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수은중독이었다. 6월에 겨우 산재 승인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노동운동가와 진보적 보건의료인들은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 장례위원회'를 결성하고 16일간 장례투쟁을 진행한다. 장례투쟁은 산재직업병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렸고 본격적인 직업병투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우리도 직업병 피해자"라며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다. 

원진레이온(경기도 구리시 소재)은 펄프에 이황화탄소, 황화수소, 황산 등을 써서 인견사(레이온)를 만드는 곳으로 종사자 1500여 명 규모의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보호할 보호구나 안전설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어 전신 마비, 언어 장애, 팔다리 마비 등의 병을 얻었다. <한겨레> 보도로 이들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났고 노동자들은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직업병 인정 투쟁을 시작했다. 노동부와 원진레이온 회사는 직업병 사태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대책위원회는 원진 노동자 고 김봉환의 장례를 137일간 치루지 못한 채 투쟁했고 1991년에야 비로소 이황화탄소 중독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이 만들어졌다. 1993년에야 투쟁이 일단락되었지만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으로 인정된 915명 중 현재까지 230명이 사망했다. 공장폐업과정에서 치료와 보상 그리고 자활사업을 위해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설립되었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은 87년 이후 폭발한 민주노조 성장 속에 시작된 진정한 의미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이었다. 이후 현장 변화와 제도 개선 등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1988년의 문송면과 원진레이온이 이름과 대상을 달리한 채 30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콜수'를 채워야 했던 여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주도의 한 고교 실습생은 프레스에 끼여 사망했다. 외주 업체 소속으로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던 '김군'은 문과 열차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문송면과 같은 청소년·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메탄올 중독이 2016년 삼성과 LG 핸드폰 부품 하청공장에서 발생해 7명의 불법 파견노동자가 실명했다. 

이제는 사례조차 찾기 힘든 수은중독이 2015년 광주 남영전구 공장 철거 과정에서 하청노동자 20여 명에게 집단 발생했다. 삼성 직업병 산재사망 노동자는 11년간 118명에 달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반올림의 농성투쟁은 이제 곧 1000(201872)에 다다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여러 노동안전보건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 취급하는 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 치료받을 권리 등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다시 사회적 의제로 전면화하고자 범사회적인 추모조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산재사망자에 대한 추모를 넘어,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지난 516일 추모위 발족을 시작으로, 6월에는 추모위원을 전국적으로 모집하고, 사업을 홍보할 계획이다. 71일에는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합동추모제, 2일에는 노동자·시민 안전보건의 달 선포 기자회견, 7일에는 서울에서 추모식과 추모문화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7월 첫 번째주는 사진전, 두 번째 주는 노동자건강권 전국 순회 뮤지컬 공연, 세 번째 주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과제에 대한 제 대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후 내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조형물 및 동판 건립을 할 계획이다.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2018년에도 여전한 산업재해와 산재사망 문제에 경종을 울리자.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사회,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사회를 30주기를 디딤돌로 함께 만들어 나가자.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사업에 많은 연대와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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