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 2017.12

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관내 영세한 업체 건강진단은 우리 병원의 몫이다. 지역 내 유일한 특수건강진단 기관이지만 인근 경쟁병원들의 영업망이 죽 훑고 지나간 뒤 이삭을 줍는 터라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를 맡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사실 편하고 사업장도 중간중간 둘러볼 수 있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덕분에 조그만 유리를 입으로(!) 불어 성형하는 공장, 소규모 도금업, 화장품 용기 따위를 제조하는 업체 등을 훨씬 많이 가보게 되었다.

 

가을에 방문한 이 업체는 수술복과 가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압도적이었다. 갠지스 강가의 빨래터를 본다면 이러할 것만 같다.

 

병원에서는 가운, 수술복을 아무렇게나 수거함에 집어 던진다. 수술복으로 음식물을 닦거나 수술적출물들이 묻는 경우도 있다. 가운에는 피고름이 튀고 베타딘 소독액이 묻어나온다. 가끔 심폐소생술을 하다보면 가운이 찢어지고 단추가 떨어져 나간다. 그다음엔 우리 모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수거함에 던져두고 잊을만할 때쯤 되면 가운은 다시 하얗게 표백되어 각이 잡혀 접힌 채 비닐에 쌓여 누군가가 가져다 놓는다. 떨어진 단추도 알아서 달려있고, 인턴이니 레지던트니 하는 글귀도 다시 잘 수놓아져 있었다.

 

그 생략된 이야기 속에 이곳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런 일감은 이문이 많이 남지 않는다. 대개 사회적 기업, 장애인 채용 기업들에서 맡는다. 혹은 종교단체나 사회봉사단체에서 운영한다. 고용된 여성 중에는 작업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청각장애인이거나 지적장애인들도 제법 있다. 그들은 종일 수술복에 묻은 이물질들을 털어내고 커다란 공업용 세탁기와 건조기에 넣고 돌린 뒤 다시 꺼내 일일이 다림질을 하고 또 하나씩 포장한다. 세탁소와 비슷하지만, 그 규모나 양이 상당하고 단순 반복적이다. 빨래 더미 위에 앉아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하다 보면 근골격계 통증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면 분진에 의한 호흡기 자극증상과 화학약품에 의한 비특이적 피부 자극증상 등도 발생한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다수인 사업장답게 다 같이 집에서 싸 온 고구마와 떡을 꺼내먹으며 또 감사하게 일을 하루하루 이어 나간다.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작업장 사진을 보여줬더니, 다른 직환의가 에드가 드가(Hilaire-Germain-Edgar Degas)가 그린 작품 중에 빨래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있단다. 발레하는 여자들 말고 빨래하는 여자들(?) 기억에 없다. 그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드가도 여느 화가들처럼 이쁜 정물화나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점차 민중 노동자들의 삶을 포착하여 그려내는 데 관심을 옮긴다. 발레 무용수들은 그 당시에 매춘부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삶을 누리며 퍽 곤란한 노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드가는 이런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에까지 직접 개입할 정도로 자신의 피사체들에게 공감하였다. 아마도 무대 뒤에서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여성 노동자들까지 같은 맥락으로 아꼈고 화폭에 담은 것 같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라고 세탁 노동자들을 다 아는 것처럼 감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의사 노릇을 위해 가운을 빨아주고 다려준 이분들의 노고에 대해 실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간 감사했노라고 고백해본다. 늘 그렇듯 우리의 일은 이것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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