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반올림 10년, 정부·법 제도의 변화와 남겨진 과제 / 2017.12

반올림 10, 정부·법 제도의 변화와 남겨진 과제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

  

산업재해 인정 투쟁의 경과와 성과

 

지난 1031일 제13차 집단 산재신청을 포함하여 반올림은 현재까지 전자산업 노동자 92명의 30여 개 질환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중 11명의 7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처분을, 법원은 10명의 6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판결을 했다.

최근까지의 산재신청 및 인정 사례들을 검토해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여전히 산재신청숫자와 산재인정 숫자 사이의 틈이 크다. 둘째, 법원의 산재인정 판단이 그 숫자와 내용면에서 근로복지공단을 계속 앞서고 있다. 전체 숫자만 보아도 법원은 총 17, 공단은 총 12건의 산재인정판단을 했고, 사업장과 질병 면에서도 법원이 인정 범위를 확장하면 공단이 그 뒤를 따르는 형국이다.

반도체 산재인정 판결들의 주요 특징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둘째, 유해물질 노출 정도를 추단하면서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문제와 같은 간접사실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였다. 셋째, 다양한 유해인자가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성(상가 작용)을 강조했다. 넷째, 업무환경의 유해성 입증을 어렵게 만드는 사정들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하였다. 다섯째, 희귀질환에 대한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을 완화했다. 20178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위에서 열거한 주요 내용이 대부분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더 진일보한 내용도 있다. 대법원은 먼저 산재보상보험이 첨단산업분야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현실적·규범적 이유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세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닌 법적규범적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리고 세 가지 판단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질병이 희귀질환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질환에 해당하고 관련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의학·자연과학 수준에서 발병원인 의심 요인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둘째, 특정 산업 혹은 사업장에서 특정 질환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거나 사업주 혹은 행정청의 잘못으로 업무환경을 알 수 없게 된 사정이 존재한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셋째,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 혹은 악화에 복합적으로 점점 더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알권리 투쟁의 경과와 성과

반올림은 활동 초기부터 노동자 알권리를 강조해 왔다. 반도체 등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확보되려면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보건 활동의 핵심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 기본 전제가 알권리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위험에는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취급한 화학제품의 이름·성분조차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반도체 공장 인근을 중심으로 지역 곳곳을 돌며 알권리 캠페인을 벌였고, 2013년에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과 함께 지역사회 화학물질 알권리 법·조례 제정 운동에 함께 했다. 2015년부터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노동자 알권리법 알권리법 연구사업을 벌였다. 고용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사업장 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알권리법 연구사업의 성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나왔고, 201510월과 201611월 두 차례에 걸쳐 발의되었다. 정보공개청구 소송의 주요 성과로 201710월 선고된 서울고법 판결이 나왔는데, 이 판결은 삼성반도체 공장 특별감독 보고서안전보건진단 보고서의 공개를 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171<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 지침>을 마련했는데, 동 지침은 공공기관에서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따라 보유·관리하는 안전보건자료 등에 관하여 국민이 정보공개법에 근거한 공개를 청구하는 경우에 적용함을 전제로,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공개한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남겨진 과제

전자산업 현장의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실효성 있는 감시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일회적 진단이 아닌 안정적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고, 공공기관과 전문가, 현장 노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감시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사내외 협력업체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도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제도적으로 위험 사업의 외주화를 더욱 제한하고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건강문제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증명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 대법 판결이 그 입증 정도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재해자 입증책임 원칙이 살아있는 한 그로부터 파생되는 기본적인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는다.

직업병 역학조사도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산보연, 직업성 폐질환 연구소 등이 시행하는 역학조사는 재해자 업무환경에 대한 자연과학적·의학적조사를 하는 것이고, 이는 업무상질판위가 내리는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규범적판단에 참고자료로 제공된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과학적 합리성을 갖출 뿐 아니라 질판위의 규범적 판단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역학조사는 어느 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상 질판위도 위원 구성부터 바뀌어야 한다. 법적·규범적 판단을 하는 자리에 자연과학·의학 전문가가 많이 참여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반도체 직업병 판결의 주요 내용, 특히 최근 대법 판결 내용이 질판위의 구체적 판단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질판위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건 법원이 정한 원칙들이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세세한 판단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 알권리 투쟁에 관하여는 우선 이미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노동자 알권리법)이 무사히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2017. 1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 지침>도 내용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진단 보고서의 경우, 동 지침이 비공개로 설정한 부분을 2017. 10.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공개하라고 명했다. 정보공개 심의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위촉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전문가를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는 내용이 없다. 얼핏 보기에 기술분야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안전보건, 노동자 알권리에 대한 전문성이 더 필요하다.

한편,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노동자 알권리법)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안전보건자료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훨씬 더 많은 자료를 사업주가 갖고 있다. 이들 자료에 대한 알권리 보장 방안은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현실화하는 문제는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과 그에 따른 활동에 긴밀하게 맞물려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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