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반올림 10년, 현장의 변화와 과제 / 2017.12

반올림 10년, 현장의 변화와 과제


공유정옥 회원, 반올림 활동가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눈뜨게 된 10년 

2007년 11월 반올림을 시작할 당시 한국 사회는 반도체 산업 안전보건에 관하여 관심과 지식이 거의 없었다. 반올림이 초기부터 산재신청을 통해 피해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여 단지 개인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진상 규명과 예방대책을 촉구해왔다. 그에 대한 반향으로 10년 동안 여러 연구·조사가 진행되었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화학물질사용 실태를 조사하거나 암 발생 양상, 작업환경유해요인 등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기업들은 정부의 권고나 명령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자문 및 점검을 받기도 했고, 여론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체적인 조사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많아졌다. 

반도체 제조에 1천 종 이상의 화학물질 성분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중 4분의 1은 CMR(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 물질임이 알려졌다. 약 40%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일부 성분을 모르는 채 사용 중이며, 노출평가도 극히 일부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반도체 공정의 특성 때문에 단시간 고농도 노출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생기며, 여러 공정의 공기 혼합 때문에 직접 취급하지 않는 화학물질에도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반도체 산업 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실태도 여러 번에 걸쳐 진단을 받았다. 2009년 반도체 3사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서울대학교), 2010년 삼성전자 반도체 노출평가와 노출재구성평가(인바이론), 2013년 불산누출사고를 계기로 진행된 삼성반도체 종합진단(안전보건공단), 2014년 한겨레신문 보도를 계기로 시작된 SK하이닉스 산업보건관리 평가(산업보건검증위원회) 등이 이에 해당한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관리 평가는 화학물질 관리와 작업환경측정, 노출평가 등 각 부문에서 127개의 개선 과제를 도출했고, 회사는 이를 100%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의 경우 2010년 인바이론을 고용하여 수행한 자체 평가에서는 작업환경이 매우 잘 관리되고 있어 개선할 지점이 없다고 결론 내렸으나, 2013년 안전보건공단이 수행한 평가에서 따르면 안전보건관리가 ‘통제 중심’이고 ‘형식적’이며 ‘전문성’이 부족하여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들리지 않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

안전보건관리가 성공하려면 사업주나 전문가의노력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에서는 노동조합이 산업보건 검증위원회와 그 후속 활동에 참여 중이다. 다만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체감하는 문제들을 제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회사가 줄 불이익이 두렵거나, 말해봤자 회사가 해결하지 않을거라는 예상 때문이다. 사실 최근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이런 고충 상담과 제보를 해오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안전보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과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이다. 심각한 질병에 걸리지 않은 한,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는 현직 노동자들은 공장 이야기를 바깥에서 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경로는 회사가 만든 선전 영상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다. 영상 속 노동자들은 ‘15년 동안 근무한 사업장인데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있지 않겠나’, ‘한 번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라 말한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어 노동자들이 안전보건관리 의사결정 및 실행에 참여할 경로가 부족하다는 걱정에 더하여, 일방적인 선전의 영향으로 기업이 조장하는 안전불감증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사회적 소통 시작과 실패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들을 향해 입장을 밝힌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업무환경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부정(否定, denial)’ 전략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아직 모른다’는 정도의 조심스러운 부정으로 임하는 데 비하여 삼성전자는 직업병 문제 제기가 ‘호도’이며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훨씬 공세적으로 대처해왔다. 삼성은 부정의 ‘과학적’ 근거를 스스로 생산하기 위해 청부과학자들을 고용하여 연구결과를 생산하기도 했고(2010년 인바이론 연구). 다른 기관들이 수행한 조사 결과를 호도하기까지 했다. 삼성은 자사 블로그에 2008년 이후 고용노동부 및 산하기관이나 서울대학교 등이 수행했던 각종 연구를 열거한 뒤 ‘이와 같은 다양한 과학적 검증 결과’ ‘회사에서 근무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고 요약하고 있다. 사실 이 조사연구들은 삼성전자의 화학물질관리가 부실하다거나 실제 작업 중 화학물질 노출이 빈번하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공장 안에서 발암물질이 측정되고 공정 부산물로 벤젠이 발생하고 있으니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꼬집는 내용이었다.

삼성은 직업병 위험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로, 반도체 산업의 암 발병률이 한국 평균보다 낮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취업 인구의 건강 상태를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하면 대개 전자의 건강이 더 좋은 것으로 나오는 ‘건강 노동자 효과’의 전형적인 사례일 뿐이며, 반도체 산업이 안전하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는 자료다.

또한, 삼성은 ‘반올림은 피해자가 2백 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계시지만 한 번도 구체적 명단을 공개한 바 없다’면서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고, ‘삼성이 죽음의 사업장이라면서 왜 본인의 자녀들이 계속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가’라며 삼성에 자녀를 입사시킨 부모들이나 건강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2016년 1월 ‘아시아 미국 언론인 연합’ 토론회).

결국, 지난 10년 동안 삼성이 보여준 것은 책임의 부정, 문제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피해자 비난 일색에 허위 주장까지 동원하는 일방적 선전(propaganda)이었지 사회적 소통이라 보긴 어렵다.


남은 과제

첫째, 반도체 작업환경이나 노동자 건강에 관련된 조사연구의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관련된 정보들이므로 전적인 공개를 기본원칙으로 삼고, 기업의 영업비밀은 정말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여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둘째, 대기업 사내 협력업체를 넘어 부품이나 폐기물 처리 등 생산 시스템에 종속된 업무를 담당하는 사외 협력업체들 대한 조사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유해위험성이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이전된 문제들에 대해 원청이 책임 있게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기업들의 사회적 대화와 소통 실패에 대해서는 기업 내부의 각성과 변화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의 무력함이나 이런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한몫 해왔다. 비판과 감시의 주체들이 더 많아지고 더 단단하게 뭉칠 필요가 있다.

넷째, 노동자의 단결권, 내부고발과 보호받을 권리, 위험작업 회피 및 중지권 등을 실현하기 위한 현장 노동자들의 운동이 더욱 진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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