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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 노동이야기] 약 만드는 사람들 /2017.07 약 만드는 사람들- 제약공장 베테랑 A씨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약병에 가득 담긴 영양제를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보다는 이것을 먹으면 내 몸이 어떤 효과를 보게 될지, 혹여나 후유증은 없을지에 대한 생각이 앞서기 마련이다. 약국에 빼곡히 진열된 약과 건강보조식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제조되고 있다. 15년 넘게 약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A씨. 지난 6월 23일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치료실에서였다. 아팠던 얘기를 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조차 힘들었던 A씨. 그녀가 해왔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경기도 화성시 소재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A씨가 전해주는 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전자회사에서 기계 보는 일을 .. 더보기
월 간 「일 터」/[A-Z 다양한 노동이야기]

[A-Z 노동이야기] 약 만드는 사람들 /2017.07

약 만드는 사람들

- 제약공장 베테랑 A씨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약병에 가득 담긴 영양제를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보다는 이것을 먹으면 내 몸이 어떤 효과를 보게 될지, 혹여나 후유증은 없을지에 대한 생각이 앞서기 마련이다. 약국에 빼곡히 진열된 약과 건강보조식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제조되고 있다.


15년 넘게 약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A씨. 지난 6월 23일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치료실에서였다. 아팠던 얘기를 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기조차 힘들었던 A씨. 그녀가 해왔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개월이 지나고서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경기도 화성시 소재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A씨가 전해주는 약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전자회사에서 기계 보는 일을 하던 A씨는 지인의 소개로 비교적 보수가 괜찮았던 제약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느덧 15년째 몸담고 있다. 제약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업무 중 투피스 방진복, 마스크, 모자, 손 소독을 하고 일하는 멸균실의 작업과정을 먼저 들어 보았다.


"원료실에서 제조할 약에 들어가는 원료를 각각 만들고, 혼합실에서 이 원료들을 혼합해요. 그런 다음 제조할 약 모양으로 찍어내는 타정 과정을 거치고, 이 약이 큰 봉지에 쌓이면 무거워요. 큰 약봉지를 4시간 동안 10번 정도 들어서 기계에 갖다 부어요. 기계가 소분하면 약에 따라 다른 라벨을 작업자가 걸어줘야 해요. 쳐서 원료의 함량이나 모양 등을 선별해요. 선별된 약을 모아서 큰 봉지에 담긴 약을 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100정이면 100알씩 나누는 소분과정을 거치는데 포장하는 게 달라요. 병 포장도 있지만, 플라스틱에 비닐이 입혀져서 한 알씩 까먹게 되어있는 PTP 포장을 하죠."


제약회사라고 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자동화가 되어서 지나가는 약만 검사하는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자동화라고 해도 작업자의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작업량은 혼합된 약의 양에 따라 결정이 돼요. 기계로 할 때는 4시간에 1만 개 정도, 사람이 할 때는 4천 개 정도 뽑죠. 요즘은 기계화가 돼서 그 전보다 수월하긴 한데 기계가 병에 약을 소분하면 실리카겔과 비닐을 넣고 뚜껑을 일일이 닫아줘야 하는 반자동화예요. 라벨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사람이 일일이 검사하고 케이스에 넣어야 해요. 기계에서 약이 적거나 많은 경우에는 계정기를 흔들어줘야 합니다. 약이 100개면 100개에 맞는 마름모, 동그라미, 길쭉한 모양 등의 100개의 구멍에 약이 각각 맞게 들어가게끔 흔들어주는 거죠. 

그래서 자동화지만 손목과 손가락, 어깨에 무리가 가는 일이 많아요. 멸균실은 청정지역이라 먼지가 있으면 안 되고, 화장, 액세서리도 하면 안 돼요. 복장 자체가 답답하고,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엄청 시끄러워요. 멸균실에서 소분과정 중 약을 부을 때와 기계에서 하루에 2만 개의 약이 떨어질 때 약가루가 계속 날려서 마스크는 하지만 그것으로 다 차단이 안 되니 목도 아프고 비염을 앓고 계신 분도 많죠."


단순 반복 작업이라 언뜻 쉬워 보이지만, 계속하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A씨가 15년 동안 주로 근무했던 곳이 멸균실 밖 포장작업이어서인지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겹씩 포장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멸균실 밖으로 물건이 나오면 또다시 병 포장이나 소케이스에 10개씩 담아서 설명서를 넣어요. 요즘은 이 약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보를 넣는 바코드로 된 태그 작업(RFID)을 하고 라면상자 크기의 상자에 100정, 30정씩 넣어서 개수 확인하고 회사 로고와 약 번호 그리고 약에 대한 설명이 적힌 라벨을 다시 붙이고 상자를 들어서 옮기죠. 무게는 4kg 정도 되는 것부터 시럽제의 경우 25kg 정도 돼요. 4시간 동안 40~50상자는 들어 옮기는 것 같아요."


A씨가 멸균실 밖 포장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은 자동화로 없어졌지만 몇 년간 계속해 온 수축작업이라고 한다.

"수축이라고 해서 병 안에 약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을 집어넣고 거기에 설명서 넣어 코팅하듯이 기계에서 비닐을 씌워서 10개씩 포장하는 작업을 했는데 가장 힘들었어요. 기계화되기 전이었으니 둘이서 4시간에 4천 개, 온종일 7천~8천 개 하고 나면 녹초가 됐어요.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은 다들 힘들어 했고 저도 그때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제약회사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약이 굳어져야 하니 기계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엄청 더워요. 그리고 일일이 손으로 눌러서 비닐을 씌워줘야 하니 손가락, 손목, 어깨가 멀쩡하지 않았죠.

자동화 이후에 비닐 작업은 없어졌는데, 그래도 기계에서 병이 나오면 라벨이 잘 붙어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주사제라 크기가 작으니 한 번에 다섯 개정도 일일이 병을 들어서 봐야 해요. 8시간에 2만개를 들어서 보려고 하면 반복적 동작 때문에 손가락, 손목에 무리가 많이 느껴져요."


근무시간이나 휴식시간, 휴게 공간에 관해 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해요. 5년 전 안정된 기계화가 되기 전에는 잔업이 정말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줄었어요. 잔업이 많을 때는 거의 매일 했어요.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보통 저녁 9시나 9시 30분까지 했죠. 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인데 식사하고 탈의실 바닥에서 쉬죠. 작업 중간에 휴식시간은 없어요.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꼬박하는 거죠. 화장실은 중간에 교대로 갔다 오는데 대타로 일해 줄 사람이 없으니 화장실에 가면 동료가 힘들어져요. 보통은 반장들이 그 역할을 하는데 우리 회사는 이상하게 반장이 없어요. 그래서 동료들끼리 미안해서 서로 눈치 보여 자주 못 가고, 화장실 안 가려고 일하는 중간에 물을 아예 안 마시는 분들도 계세요."


인간의 생리현상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전근대적인 작업조건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약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스러웠다. 휴게 시간도 없이 4시간을 연속으로 반복작업 하는 것은 근골격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전적으로 사업주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이런 행태가 행해지는 현실을 개선할 방법은 없을지 물었을 때 그녀는 쓴 미소를 지었다.


"부서장 밑에 남자 관리자들이 있지만, 자신들은 여유 있게 일하면서 저희의 편의는 안 봐주더라고요. 전반적인 제약회사 분위기가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인데, 일반 여성 작업자를 대하는 태도가 강압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회사는 여자 반장도 없으니 더 심하고요. 작업자들의 생각이 뭉쳐져야 바뀔 텐데 사업주의 친인척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힘들 거예요. 많은 제약회사가 소규모로 시작해서 점점 커지면서 친인척으로 관계되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우리 회사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래서 아마도 노동조합 같은 낌새가 있다면 색출해서 그 사람은 사직해야 할 거예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 회사 문 걸어 잠갔다 하더라고요."


테니스 엘보,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근골격계 질병을 자연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주변에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 중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시는지 물었는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 손목터널증후군 같이 한 번쯤은 들어본 질병이고, 많이 아파서 일 못 하겠으면 그만두죠. 저도 일하다 허리를 다친 적이 있었는데 부서장이 와서 대놓고 산재 신청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밥줄 끊길까 봐 못했어요. 몇 년 전에 산업안전공단 같은 데서 한번 조사하러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분이 이 작업을 이렇게 계속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15년째 이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깜짝 놀라던데요."


개선할 것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도 약을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여쭤봤다.

"전문의약품을 주로 만들어서 많지는 않지만, 약 만드는 기계장비가 비싸서 한 제약공장에서 만든 약이 여러 제약회사나 상품명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만드는 약이 광고로 나오고 가끔 그 약 먹고 효과 봤다는 얘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죠. 처음에는 심혈관질환이나 간질환 환자들이 먹게 되는 약을 만든다는 사실에 나름 뿌듯하기도 했고, 이 약이 다 팔리는 걸 보면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제 몸이 이렇게 아프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렸다.

"단순반복적인 작업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꼼꼼하게 봐야할 것이나 노하우가 축적되는 경력에서 나오는 나름의 전문성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 작업자는 10년이 되면 호봉도 오르지 않고, 진급의 기회도 없어요. 남은 건 통증뿐이죠. 그래서 요즘 우울할 때도 있지만, <일터>처럼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알려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공감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제게는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산재보상보험법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거든요. 저처럼 아파하는 제약공장 노동자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쉬어가며 일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 제1항 제5호 및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56조 제1호에 따르면 근골격계 부담작업 2항에는 '하루에 총 2시간 이상 목, 어깨, 팔꿈치, 손목 또는 손을 사용하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작업'을 명시하고 있다. 산재보상보험법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도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는 또 다른 과제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에서 기본적인 법도 지키지 않으며 노동자를 병들게 하고 있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 사회는 묵과할 것인가. 제약회사에 몸담고 있는 이들과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