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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 2017.6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권종호 선전위원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 중에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농어촌 이주노동자 규모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미 많은 사건, 사고, 증언 등을 통해 알려져 왔지만 이번 특집을 준비하는 5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양돈장 이주 노동자들의 질식 사망 사고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경북 군위 양돈장에서 네팔 노동자 2명 사망지난 5월 12일 경북 군위군의 한 양돈장에서 네팔 노동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분뇨를 처리하는 정화조의 청소를 위해 들어갔다가 내부에 축적되어 있던 황화수소 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것이다. 이미 이러한 양돈장 황화수소 질식 사고의 위험성은 잘 알려져 안전보건공단과 .. 더보기
월 간 「일 터」/[특 집]

특집 2.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 2017.6

농어촌 이주노동자의 현실

 


권종호 선전위원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 중에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농어촌 이주노동자 규모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미 많은 사건, 사고, 증언 등을 통해 알려져 왔지만 이번 특집을 준비하는 5월 한 달 동안 발생한 양돈장 이주 노동자들의 질식 사망 사고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경북 군위 양돈장에서 네팔 노동자 2명 사망

지난 5월 12일 경북 군위군의 한 양돈장에서 네팔 노동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분뇨를 처리하는 정화조의 청소를 위해 들어갔다가 내부에 축적되어 있던 황화수소 가스에 질식해 사망한 것이다. 이미 이러한 양돈장 황화수소 질식 사고의 위험성은 잘 알려져 안전보건공단과 양돈협회가 재해 예방을 위한 업무협약까지 체결하고 교육과 현장지도를 하던 내용이다. 사고가 발생한 양돈장도 질식 위험 때문에 기계로 청소작업이 진행되던 곳이었는데 기계가 고장 나자 이주 노동자에게 수작업을 지시했고, 작업 전 내부의 가스 측정과 같은 안전조치는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 결국, 이주 노동자는 사업주에 의해 사지로 내몰렸고 두 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농어촌 이주노동자 수보다 처우 매우 열악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등록외국인 현황을 보면 2015년 9월 말 기준 농축산 분야 취업 비자로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5천627명, 어업 분야는 8천856명으로 총 3만4천483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2015년 기준이고 등록된 노동자의 규모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까지 시행되고 있는 현재의 농어촌 이주노동자는 훨씬 큰 규모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한 달 사이에 양돈장 질식 사망 사건으로 4명이 사망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인간적인 작업량

국가인권위원회의 ‘2013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작업량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고용주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36.0%), 일하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고(9.9%) 증언했다.

 

제구실 못하는 숙소 및 생활환경과 고용주의 비인격적 대우

이들이 머무는 숙소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또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임시건물 형태가 67.7%에 달했고, 그마저도 사용료를 받아 임금에서 제하는 경우도 13.0%였다. 또 잠금장치가 없거나(44.7%), 화장실이 없거나(39.9%), 창문이 없거나(26.7%), 남녀 구분이 안 돼 있거나(16.2%), 난방시설이 없는(11.8%) 등 숙소로서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 조사에서는 또 고용주로부터 폭언(75.8%)이나 폭행(14.9%)을 당하거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성폭력을 당한 경우도 30.8%나 됐다.

 

농업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침해 사례 폭로 및 노동부 규탄

2013년의 현실을 보고한 내용임에도 현재까지 개선된 바는 전혀 없다. 지난 2월 3일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공동대책위원회와 밀양 깻잎 밭 이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시민모임은 고용노동부 양산지청에서 농업이주노동자 노동인권 침해 사례를 폭로하고 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 최대의 깻잎 산지인 경남 밀양의 비닐하우스, 그 안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따야 하는 깻잎의 양은 하루 1만5천 장, 상자로는 15상자에 달했다. 보통 숙련된 노동자가 하루 10상자를 겨우 작업하는데 이주 노동자에게 할당된 작업량은 하루 10시간 이상 꼬박 작업해야 채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도 계약서상 근무조건인 8시간 기준의 최저 임금 수준에 해당하는 월 100~120만 원의 급여만을 받았으며 그러면서도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져 비만 오면 물이 새고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야 하는 간이 숙소 사용료로 매달 15만 원씩 지급해야 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몰아가는 악법들만 가득

이러한 상황은 밀양 깻잎 산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양주 상추, 태백 배추, 청도 미나리, 홍성 돼지 등 대부분의 농어촌 이주 노동자가 있는 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농한기에는 강제 휴직을 시키면서 임금을 안 주거나 숙소의 난방, 급수를 중단해 버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장에 데리고 가 일을 시키고 하루 일당 6만 원 중 2만 원을 사업주가 착복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농어촌 이주 노동자를 보호해 줄 제도도, 그것을 관리 감독할 고용노동부의 의지도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근로기준법 63조에 휴게, 휴일 적용 제외 대상,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보험 가입 적용 제외 대상,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 등 농어촌 이주 노동자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몰아가는 악법들만 가득한 상황이다.

 

농어촌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면서 보호받을 법이 없는 인간에게 똑같은 피와 살을 가진 다른 인간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