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 노동자 이야기 / 2017.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나지 “못 한” 노동자 이야기



이강 회원



한 알루미늄 제제 처리 업체. 2조 2교대, 죽음의 맞교대를 하는 곳을 상담 차 방문했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 수축기 혈압이 230까지 올랐고, 당 관리도 잘 안 된 분이 있어 상담을 요청했다. 6개월 전에 한 번 뵈었지만 어떻게 관리하고 계시나 보고 싶었다. 그간 다행히 혈압약 투약은 시작했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분 오늘 병가세요.” 회사 담당자의 말이었다. 더 설명을 안 하는 담당자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다. 난 밀려오는 상담자에게 상담을 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들었다. “쓰러지셨어요.” 간신히 말을 뗀 담당자였다. 귀가 번쩍 뜨여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2주 전에 일하다가 회사에서 쓰러졌다는 답을 해왔다. 곧바로 산재 신청을 했냐고 물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저희도 잘 모르고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계시고 의식이 없단 말만 들었어요.” 라고 옆 동네 얘기하듯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분의 아들이 회사에 다니고 있고 우리와 여러 번 상담을 했던 분인 것을 알게 됐다. “아드님과 통화해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차 부탁했지만 담당자는 거절했다.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의(이하 질판위) 판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재로 승인될 여지가 꽤 높은 분이었다. 맞교대에 지난 8년간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해왔다. 마음이 걸려서 그날 밤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고 사측에 직업환경의학의로써 제언 사항을 문서로 작성했다. 요지는 사업주에게도 산재로 신청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제일 깨끗하고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공상 처리를 한다 해도 현재 2주째에도 의식이 안 돌아왔다는 것은 향후 위중한 경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럴 경우 언제든 노동자 측에서는 마음이 바뀌어 산재를 신청할 수 있고 그러면 향후 산재 은폐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다는 강한 말도 포함했다. (실제로 직업성 질병의 경우 질병판정위에서 승인을 내린 그 시점부터 산업재해로 치기 때문에 그 시점으로부터 1개월 이내 공식화한다면 은폐는 아니다)


담당자에게 통화를 했으나 그는 이런 언급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통화 내내 그는 웃음을 흘리며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자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정확한 노동 시간을 알기 위해 (질판위에서는 최근 4주, 12주의 과중 업무가 산재 승인에 중요한 요인이다) 업무 일지를 달라는 요청도 가볍게 거절당했다. 통화 후 심장이 쿵쿵거리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 날 메일로 제언서를 보냈지만 별 효력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날 내가 관리해야 하는 노동자를 못 만났고, 가족과 통화도 못 했다. 향후 또 사측에 그 분의 상황을 물어보면 아마도 담당자는 불편해할 것이다.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어쩌면 우리 보건관리 기관과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번 뇌심혈관 질환 사례에 특별히 더 신경이 쓰였던 것은 전에도 그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도 주야 맞교대를 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였다. 한 노동자가 야간 근무 후 집에서 자다가 뇌출혈이 왔다. 난 사측에 노동자의 가족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상태보고서에 이 상황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기록을 남겼다. 이후 사업장에서는 우리 기관과 계약을 해지했다. 공장 이전이라는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런 사례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기여를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뇌출혈이나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뇌심혈관 질환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받는 것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뇌심혈관 질환은 눈에 보이는 ‘사고’로 인한 산업 재해는 아니지만 과중업무가 크게 기여해서 일어난 산업 현장의 질환으로 산업 재해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주야 맞교대를 하는 곳, 일주일에 하루도 간신히 쉴까 말까 하는 곳은 더더욱 그렇다. 개인의 건강 상태 기여도? 물론 있다. 하루에 담배 두 갑 피고 라면만 먹는 사람이면 업무보다 개인 생활 관리가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더라도 하루 12시간 근무에 주야 맞교대를 하고 있다면 업무 기인성을 높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작은 공장들을 순회하고 노동자를 상담하는 게 내 일이다. 이 밑바닥 일선에서 이런 예민한 문제들에 직면할 때마다 산업보건의 모순을 피부로 경험한다. 분명 산업보건기관은 산업안전보건법 하에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녕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일은 사업주가 법에 명시된 그 의무를 다 이행했다는 생색내기에 그치고 말 때가 혹은 그쳐야 할 때가 부지기수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제 하에, 사업주의 생색내기 수단으로 변질되기 십상인 이 산업안전보건법은 어쩌면 법철학 상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법이 가진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우리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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