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리포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실태 /2017.2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실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 중 노동안전보건 중심으로-

 

전지인 건강한 노동세상

 


1. 실태조사 배경 및 중요성

흔히 비정규직 노동자를 설명할 때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라고 하지만 실상은 ‘정규직보다 더 힘들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일하면서도 절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다. 실제로 이번 비정규직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정규직 2명이 하던 일을 비정규직 1명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규직 공정이 비정규직으로 넘어 가는 이유는 힘들거나 위험한 작업이어서가 대부분인데 그 힘들고 위험한 작업에 인원마저 축소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높은 노동강도와 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노동강도와 작업환경에 대한 불만족 응답 비율이 각각 46.0%, 38.8%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작업환경과 높은 노동강도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안전공단의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하도급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2007)]에서 51개 사업장 원청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하도급을 주는 이유의 40.8%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실제로 산업안전공단의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2007)]에 따르면 하청노동자의 산재가 원청 노동자보다 2.53배 더 많이 발생한다. 실제로 현 직장에서 업무로 인해 아프거나 다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의 40.8%가 산재를 경험한 것으로 응답했다.

 

그럼에도 원청 사업주는 위험업무를 하청에게 전가하고, 위험업무에 대한 사전 예방조치의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다. 이로 인한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원청은 사고 발생에 대한 보상 및 처벌 관련 법적 책임을 면하게 된다.

 

한국지엠에서도 지금까지 독자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가 실시된 적이 없었고, 비정규직 공정의 제대로 된 작업환경측정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도 실시된 적이 없었다. 결국 위험이 외주화 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조차도 비켜나 있어 그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 할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하청 사업주뿐만 아니라 원청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지엠지부와 비정규직지회가 합동으로 구성한 실태조사팀에서 실시한 첫 번째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실태조사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개선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하청 사업주뿐만 아니라 한국지엠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실태조사 결과 요약

한국지엠지부의 2015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실태조사 등의 사업계획을 확정하면서 원하청 연대의 첫 출발로 정책기획실은 비정규직 실태조사와 면접조사 계획을, 조직쟁의실은 비정규직 실태조사와 조직화 사업, 노동안전보건실은 원하청 안전보건 공동실태조사 사업을 제출했다. 이에 한국지엠지부에서는 정책기획실, 조직쟁의실, 노동안전실과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금속노조 인천지부, 건강한노동세상 등 공동실태조사팀 구성하여 2015년 12월말부터 시작하여 2016년 10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도 잠자는 시간을 쪼개고, 파업을 하면서 작업장을 순회하고 실태조사에 동참했다.

 

총 20여 차례 실태조사 회의와 수련회 2회, 간담회 5회, 노안실태조사, 노안교육에서부터 실태조사 조합원 설명회, 개선활동까지 이어져 원하청 공동대응의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

 

설문조사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상 재해는 높은 편이나 산재 혜택을 받는 경우는 매우 낮았다. 인원은 줄이면서 생산량은 늘어나 노동강도는 계속 강화되고 있었으며, 특정 공정과 업무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었다.

 

비정규직의 경우 중요한 시설과 설비는 모두 원청의 소유였고, 하청업체의 경우 인력관리 정도만 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독자적으로 노동안전에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법적으로도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용주인 한국지엠의 책임을 강력히 요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조치에 대한 체계적인 대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작업장 위험요인으로 공기오염이 1위를 차지하고 있고, 2위가 육체적 부담, 3위가 소음으로 조사되었다. 국소배기장치 설치 및 성능개선이 필요하며,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통한 대책마련, 소음방지 등 작업장 개선이 비정규직 업무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노동강도 부분이다. 인원이 부족해서 시간 안에 물량을 맞추기 어려워 배터리 서열작업의 경우 25㎏ 이상의 중량물 취급 작업을 하면서도 설치되어 있는 호이스트(소형의 화물을 들어올리는 장치)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또한, 차체공정에서는 인원축소로 인해 1명의 작업자가 2가지 공정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공정 간 이동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지게차 충돌이나 전도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처럼 인원부족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져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어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인원충원이나 생산속도의 조절이 시급하다.

 

휴게시설이나 냉난방시설도 매우 열악했다. 도장부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 휴게실 바로 옆이 박리작업을 하는 장소로 시너 등 유해물질 냄새로 가득한 공간을 분리하기는커녕 칸막이조차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에 의하면 인체에 해로운 분진 등을 발산하는 장소나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장소와 격리된 곳에 휴게시설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실태조사의 주된 공통요구였던 인원확충으로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실태조사에서 보여 준 희망은 절대적으로 열악하다고 느껴졌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작은 부분이지만 작업장에 의자가 비치되었고, 고장나서 방치되어 있던 각종 설비들을 수리하였다.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던 작업장 곳곳엔 안전 가드가 설치되었다. 불편하지만 각종 보호구에 대한 방안이 강구되었으며, 흡족하진 않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실이 마련되었다. 개선되지 않은 부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제기해 나갈 계획이다. 단 한 번의 노동안전보건 점검으로 작업장이 완벽하게 바뀔 수는 없다.

 

이번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꾸준한 감시자의 역할은 현장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몫이다.

 

3. 실태조사 후기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건강권 운동을 지속해오면서 더 열악하고 더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이주 노동자 등 약자의 건강권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 건강한노동세상의 활동목표였다.

 

더 힘들고 위험한 작업에 내몰리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산업재해에 노출된다는 비정규직의 건강권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불평등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꼈던 경험은 이번 실태조사가 처음이었다.

 

당장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생명과 직결되는 하청노동자의 건강권 만큼은 원청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지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의 합동 실태조사는 의미가 크고 이번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믿음이 우리 스스로에게 각인되기를 바란다.

 

현재는 2017년 한국지엠 원하청 공동사업단 ‘희망붕붕이’ 활동으로 이어가면서 겨울철 난방문제를 해결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활동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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