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당장멈춰’ 3년의 활동, 남은 과제들 작업중지권 연재를 마치며 / 2017.2

‘당장멈춰’ 3년의 활동, 남은 과제들 작업중지권 연재를 마치며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당장멈춰 팀 구성은, 3년 전 한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추석 연휴 직전, 한 대학교 구내식당 조리실에서 환풍기가 고장 났다. 일단 시설과에 수리를 요청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자꾸만 가스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어지러웠다고 한다. 가슴이 울렁거리거나 속이 메스껍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은 해야지’ 했던 노동자들은 일하다 심하게 어지럽거나 힘들면 돌아가면서 나가 바람을 쐬고 다시 조리실로 들어오길 반복하며 일했다.

 

다른 업무가 바쁘다고 환풍기 수리가 당일에 바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공교롭게 연휴가 시작되어 수리는 더 지연됐다. 결국, 연휴가 끝난 3일 뒤까지 환풍기는 고쳐지지 않았다. 집에서 쉬면서 몸이 좀 나았던 노동자 중 한 명이 결국, 연휴가 끝난 뒤 근무하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고 말았다. 일산화탄소 중독 진단을 받았다. 식당과 학교 측이 환풍기 고장을 방치해서 발생한 산업재해다.

 

이 학교 식당 조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조합원들이 상급 노조에서 활동하는 노무사를 찾아와 이때 얘기를 하면서 ‘죽을 뻔했다, 큰일 날 뻔했다’며 무용담처럼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니 왜 그 지경인데 일을 멈추고 환풍기 고치기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묻는 활동가에게 조합원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되물었다. ‘일을 멈춰도 되나요?’ 이전까지 책에서나 보던 ‘작업중지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이 에피소드 소개는 인권오름, 인권이야기에 2015년 12월 9일 실렸던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다양한 노동 현장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비단 이 식당 노동자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법에 번듯하게 들어있는 권리이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기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지 넉넉히 헤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사고를 직접 막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권리인 것도 분명했다. 대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작업중지권은 어느 정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작업중지권 행사를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인지 뜯어봐야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과 작업중지권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여러 행동(직접적인 현장 투쟁부터 법 개정 운동까지)을 함께하도록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나아가, 이런 논의가 현장을 들썩이게 하고, 생산량이나 품질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싸움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장멈춰 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인터뷰와 연구에 들어가면서, 「일터」 연재도 시작했다. 2014년 5월 특집기사로 시작한 작업중지권 기획 연재가 3년이 다 돼 간다. 「일터」 지면을 통해, 당장멈춰 팀이 만난 자동차 완성사, 부품사, 건설노동자, 항공기 조종사, 집배원, 설치노동자, 철도 정비 노동자 등 아주 다양한 현장의 작업중지 사례를 소개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는 작업중지권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현행 법체계에서의 법리적 쟁점은 무엇인지, 법적 개정을 한다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일터」를 통해 함께 나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오랫동안 먼 과제로 여겨지고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던 작업중지권 문제를 3년간 꾸준히 나눴다는 것 자체가 일정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3년 동안 고민해도 여전히 남는 과제들이 있다.

 

위험의 외주화, 더 위험한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권리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제철소나 조선소를 방문해 보니, 한 사업장인데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지가 달랐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작업중지권을 상당히 자유롭게 사용하고, 실제 사고를 예방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조합에서는 위험 상황을 발견하고 작업중지를 요청했음에도 작업이 강행됐던 사례를 보고하기도 했다. 야간에 비계 설치 작업을 강행해서, 며칠간 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나서야 겨우 멈춘 사례. 가스 배관 내부 용접을 해야 하는데 하청업체에 잔류 가스 측정기도 주지 않고 작업을 시킨 사례. 이 경우는 다행히 중대재해 문제로 사업장에 들어와 있던 근로감독관이 작업 중단을 결정했다.

 

2016년 한국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회자된 얘기가 ‘위험의 외주화’다. 더 위험한 이들 노동자에게 더 절실한 권리가 작업중지권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활동가들을 만나도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에 대해 냉소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작업중지권을 주제로 인터뷰를 시작한 지 3년이 된 지금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지금 작업중지권 얘기하게 생겼냐’는 것이다.

 

노출된 불안정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확보하고, 이 노동자들과 함께 위험한 순간 작업중지를 실천하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자는 작업중지권의 본령이 아닌가 싶다. 3년 동안 매달렸지만, 아직도 답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우리 팀에서 펴낸 매뉴얼에서 급한 대로 처방한 방법은 ‘고용노동부 위험 상황 신고 전화’를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위험하다고 생각되지만, 노동조합도 없고 작업을 중지하기 부담스럽다면, 노동부의 판단과 권위라도 활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서 곧바로 작업을 중지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차선일 뿐이다. ‘현장의 위험은 노동자가 가장 잘 안다’는 원칙에 비추어보아도 역시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게다가, 작업중지권을 당장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권리일 아니라 나아가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고용노동부 신고 전화는 불만족스러운 대안이다.

 

뚜렷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질문을 좀 다르게 하면, 해야 할 일이 보이기도 한다. 불안정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고 단위 사업장에서 싸우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그 투쟁을 어떻게 지지하고 지켜줄 수 있을까?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권유하는 대신, 우리는 어떤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할까? 아직 남아있는 숙제다.

 

기계를 세우는 것을 넘어서는 권리로

 

서비스 노동자가 훨씬 많은데도, 파업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아직도 금속 노조 남성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거리에 나서는 모습인 것 같다. 작업중지, 작업중지권의 이미지 역시 그렇다. 하지만 ‘더 위험한 일’과 ‘덜 위험한 일’이 따로 있지 않고, ‘서로 다른 위험’이 있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위험에 노출되는 수많은 노동자 모두에게 작업중지권은 소중하다.

 

당장멈춰 팀의 활동도 처음에는 금속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스스로 ‘위험이란 무엇인가’, ‘어떤 조건에서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금속 노동자들을 만났다. 금속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금속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특히 노동조합의 안전보건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금속 노동자 못지않게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건설 노동자 사이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안전보건 문제를 가지고 작업을 중지한다는 개념이 훨씬 옅다.

 

또 다른 원인은, 우리가 위험을 주로 추락, 협착, 전도 등 재래형 위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을 경우, 위험은 위험으로 인식되지도 않고,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인 작업중지권 행사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작업중지권을 금속 제조업 밖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은 업종을 넓히는 것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위험’의 특징 때문에 ‘작업중지권을 써야 하는 때’에 대한 기준을 넓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면을 통해 여러 번 강조했던 대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통화거절권 역시 작업중지권으로 해석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현장의 싸움, 넓은 연대가 필요해

 

3년간 작업중지권을 가지고 현장도 만나고, 토론회나 간담회도 열고, 이슈가 되는 곳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앞장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던 노동자들이 ‘송곳’ 취급을 받으며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동조합이 있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도, 회사에 찍히거나, 소송과 징계 등 개인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런 탄압은 여전해서, 2016년 옆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돼, 자극 증상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을 조퇴시켰던 충북 콘티넨탈 지회장이 결국 징계를 받기도 했다.

 

안타까웠던 것은 이런 싸움들이 잘 알려지지도 않고, 개별 사업장, 개별 활동가의 전투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작업중지권이 ‘생소한 권리’로 남아있는 만큼, 다양한 사업장에서, 다양한 위험 상황에서, 작업 중지를 통해 사고를 예방한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례들로 작업중지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2015년 갑을오토텍 지회에서 위험작업을 중지시켰던 노조 간부를 회사가 고소했을 때, 당장멈춰 팀이 사회단체들의 연대를 조직하고, 본사 앞 집회 등을 함께 했던 경험은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작업중지권 연재를 마치며

 

당장멈춰 팀이 지금까지 사례를 모아 분석해 알리고, 해외 사례를 살피고, 법안 개정을 고민하는 등 근육을 단련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작업중지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지원과 연대를 아끼지 않고 다 할 생각이다. 그래서, 개별 현장, 특별한 노동자들의 선도투가 되어버린 작업중지권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편적인 투쟁으로 만들고자 한다. 작업중지권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는 곳, 싸움을 만들어 가야 하는 단위에서는 언제든 연락 부탁드린다.

 

현장 활동으로 나아가려는 도약의 시점에서, 약 3년간의 작업중지권 기획 연재를 마친다. 2014년 9월, ‘작업중지권의 법리적 쟁점’을 다룬 「일터」 특집에서 ‘당장멈춰 팀의 활동이 지금은 꿈같은 소리로만 들리는 작업중지권 복원을 위한 첫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지만, 시작이 반이다. 함께 고민해준 독자 여러분, 본인들의 아픈 이야기, 생생한 현장 이야기 나눠주신 여러 현장 노동자들께 감사드린다. 더 큰 싸움으로, 이겼다는 소식으로 만나길 바라며,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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