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통신 설치 노동자의 절실한 작업중지권 실현은 어떻게 /2016.12

통신 설치 노동자의 절실한 작업중지권 실현은 어떻게

- 희망연대노조 신희철 조직국장 인터뷰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죽어가고, 그 죽음 중 어느 하나 안타까운 사연이 없겠느냐만, 2016년에는 유난히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하는 죽음이 많았다. 구의역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19살 노동자의 죽음이 그랬고, 실시간 처리 압박에 시달리고 하루 평균 14시간씩 에어컨을 수리하던 엔지니어(AS기사)의 추락사가 그랬다. 두 사람의 남겨진 가방에는 컵라면과 먹지 못 한 도시락이 담겨 있어 그들이 긴 시간 노동했을 뿐 아니라, 그 긴 시간 내내 시간에 쫓기며 일했으리라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엔지니어의 죽음으로 우리는 이런 상황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전자제품 설치 및 수리 기사들, 통신 설비 설치 및 수리 기사들이 다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이들은 대부분 건당 수수료가 수입의 절반~100%에 해당하는 급여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 하고 있었다.


실제로 삼성전자 A/S 센터 노동자의 추락사 3개월 후인 9월 말, 의정부에서 통신 장비를 설치하던 기사가 전신주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11월 23일 언론에는 ‘인터넷 설치기사 추락사망에 SK 브로드밴드 두 달째 묵묵부답’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사망 사고 이후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사망사고에 대응활동을 해 온 희망연대노조 신희철 조직국장을 만났다.


설치 기사 추락 사망 2달, 원청은 묵묵부답

“9월 27일 전신주에서 추락했던 의정부 센터 SK브로드밴드 설치 기사의 경우, 조합원도 아니었고, 개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도급 형태로 되어 있던 분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한 의정부 경찰서에서조차 해당 하청 업체에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노동자로 본 것이다.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노동의 내용과 방법, 도구, 수수료 등을 모두 결정하는 게 회사니까 당연하다. 게다가 그 센터에서 그 전 6개월 사이에도 유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는 점에서 업체의 죄질이 나쁘다고도 판단했다.


그런데도 원청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개별 센터로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 뒤로 두 차례나 회사 측에 면담을 통해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6월에 삼성서비스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있었고, 9월에 의정부에서 SK브로드밴드 설치 기사 사망 사건이 있었다.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았고,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회사 측의 대응은 달라진 게 없었다.


사고 발생 일주일 뒤, 10월 5일 태풍 ‘차바’가 왔을 때 회사의 대응을 보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시, 울산은 ‘71년만의 10월 물폭탄’을 맞았다. 시간당 최대 139mm 폭우에 2명이 사망• 실종되는 등 ‘도심이 아수라장’이 됐다. 그런데도, 당시 폭우 속에서 작업에 위협을 느낀 조합원들이 작업 중지를 요구했지만, SK브로드밴드 울산 홈고객센터는 2~3시간 동안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시간당 139mm 폭우, 작업중지 요청에 ‘법으로 너무 그러지 맙시다’

“당시 조합원들이 캡쳐해 둔 업무용 그룹채팅 방을 보면, 도로가 침수되어 이동이 불가능하다, 재난이다, 바람 불고 시계가 엉망이라 이러다간 일 나겠다는 조합원들의 아우성에도 ‘우리도 확인 중이다, 센터도 물난리가 나서 정신없다’며 작업을 중단하라는 확인을 해 주지 않았다.


한 조합원이 ‘이 정도까지 상황전파했는데 센터에서 답을 안 주는 것은 차후 사고나 문제 생기는 것에 대해 센터에서 전부 책임지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단협 제29조와 산안법에 의거하여 작업중지를 요청한다’고 강하게 압박하자 관리자는 오히려 적반하장, ‘○○ 기사님 법으로 너무 그러지 맙시다’는 문자를 보냈을 정도다.“


출처_희망연대노조 10월 5일 태풍 차바 당시, 조합원이 작업중지를 요청했지만 관리자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청인 SK는 노동조합과의 대화는 거부했지만, 일부 변화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 뒤에 원청이 업무 프로세스를 일부 변경하긴 했다. 비나 눈이 내리는 악천후 상황에서는 기사가 정해진 작업 시간을 연기해서 작업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 작업 평가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지 않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안전보건공단에서 펴낸 ‘통신케이블 설치 근로자의 안전작업에 관한 기술지침’을 참고하라고 했다.


노사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자는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내놓은 안이기도 했고, 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한계가 많다. 꼭 비나 눈이 와야만 위험한 작업이 아니다. 통신 설치, 수리 작업은 고소 작업이 많다. 지하나 좁은 공간에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작업 시간도 일하기 좋은 시간이 아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처리해야 하다 보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어두운 곳에서 작업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상적인 위험에 대한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아예 없던 때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고객 애완견에 물린 노동자에 “치료 잘 받으세요”하는 회사

큰 사고만이 아니다. 자잘한 사고는 엔지니어들이 달고 사는 문제이기도 하다. 9월 추락 사고와 10월 태풍 사건 이후, 노동조합에서는 그 동안 조합원들이 겪었던 안전 사고를 조사했다. 그가 내민 안전사고 및 처리 사례 표에는 고객의 애완견에 물렸지만, 사측에서 ‘치료 잘 받으라’는 말 외에 아무 대응이 없어 자비로 치료한 사례도 있었고, 사다리나 전신주에서 낙상해 큰 부상을 입었지만 공상 처리한 경우도 있었다. 주택가 외부 통신 선을 철거하다 손을 베어 5일 입원했고, 회사가 치료비를 부담한다는 ‘공상처리’하였지만, 입원일수만큼 연차를 차감한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하면서도 조합원들이나 설치 기사/ 엔지니어들이 위험 상황에서 작업중지를 요청하기 어려운 것, 사고 발생 후 산재 처리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은 여러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고용 구조다. 일단 기본적으로 각 서비스센터들은 원청의 하청 업체들이다. 이 하청 업체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해서 ‘개인 도급’의 형태로 일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건설회사 다단계 하도급처럼 소사장제를 두어, 소사장이 몇 명의 기사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법인 신고를 내고 하도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2014년부터 노동조합과의 협상 과정에서(여기에는 희망연대노조 다양한 지부들이 포함된다), 소사장 재하도급은 2015년 내 근절하고, 점진적으로 정규직 채용을 지향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는데도 개인사업자를 남발하고 있다. 올해에도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던 분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노동자로 고용관계를 변화시키기로 합의해 변화를 만드는 중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우리 조합원이라 해도, 실적급이 전체 급여의 70%가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인사업자로 도급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 기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노동자들 스스로가 실적과 지표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심지어 관리자들의 압박도 조합원보다 이들 비조합원들에게 더 심하다. 개인사업자들과의 업무 채팅방에서 ‘직원들도 이 정도 실적을 내는데, 여러분은 더 해야 한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기도 한다. 이 하청업체 내에서도 2등 구성원인 것이다. 이러니 원청에서 악천후에 업무가 지연되는 것으로 불리한 점수를 안 매긴다고 했지만, 당장 이 분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 건당 수수료 임금 체계와 평가 제도를 고치는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처럼 둔갑시키는 위장 도급, 정보통신공사업법 상 정보통신공 사업자들만 가능한 업무를 그렇지 않은 일반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노동자들에게 부여하는 불법적인 도급 관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원청에서 참고하라고 한 안전보건공단의 지침을 사실상 지킬 수 없는 현재 하청 업체의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동료의 죽음을 보며 만든 노동조합

“노동조합의 요구는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 폐지 및 고정급으로 전환, 그리고 실적을 기본으로 하는 평가 지표, 그리고 이를 통한 압박을 중단하는 것이다. 사망 사고 후에도 업체들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또, 하청업체에 고소작업차(사다리차)를 지급하는 등 하청 업체 안전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렇게 안전한 작업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이런 모든 조건이 좋아진 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로 미뤄둘 수는 없다. 다른 한편, 작업중지권을 실효 있게 만드는 것 역시, 동시적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과제다. 실제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조합원들은 노동안전, 노동시간 문제에 공명한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권리,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등에 대해서 그렇다. 일하다 떨어져 사망한 동료에 대해, ‘사고가 날 때 나더라도, 안전장구는 차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라’고 말하는 관리자를 보고, 동료의 죽음을 저렇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어 노동조합 하게 됐다는 얘기들을 하신다.


지금까지 사실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잘 고민하지 못 해왔다. 작업중지권을 단체협약에서 어떻게 잘 다룰 수 있을지, 조합원 안전보건교육에서 이런 멈출 권리, 알 권리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연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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