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에세이] ‘꿈 같은 휴가’의 꿈 /2016.12

‘꿈 같은 휴가’의 꿈



권종호 선전위원



2011년 독일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던 크리스티나 슈뢰더는 휴가를 짧게 썼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법에서 보장하는 14주의 출산 휴가를 채우지 않고 10주 만에 조기 출근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여성 단체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저출산 시대에 바람직한 가족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한 방송인은 ‘엄마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 아이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며 공개서한을 보내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아이를 낳고도 업무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야망이 너무 큰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보장된 휴가도 못쓰는 노동자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바람직한 가족 모델’,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지나친 야망’… 짧게 쓴 휴가에 대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오히려 ‘바람직한 공직자’, ‘자기희생’, ‘근면성의 표상’… 이런 말들을 꺼내기가 쉬울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휴가에 인색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는 1년 이상 근속 시 최소 15일, 근속 2년마다 1일씩 추가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모두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휴가를 쓰는 것이 동료에게 부담을 주거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쓰는데도 동료와 상사의 눈치를 보고, 휴가는 남게 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2013년 ‘근로자 연차휴가 사용실태‘ 결과를 보면 근로자는 평균 연차휴가일(14.2일) 가운데 8.6일을 평균적으로 쓰고 5.6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여행 사이트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주요 28개국 직장인 9,4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실제 사용 휴가는 8일로 6년 연속 전 세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보장된 휴가임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휴가 보상금이라는 기형적인 형태가 생겨났다. 사용하지 못한 휴가만큼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인데, 현재 한국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다. 그렇다면 앞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 독일도 이러한 휴가 보상금이 있을까? 휴가를 못 가면 금전적 보상이 당연하니 있을 법도 하지만 독일이나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에는 휴가 보상금이 없다

출처_익스피디아 트래블 블로그 https://travelblog.expedia.co.kr/9720


꿈만 같은 다른 나라 이야기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는 노동자에게 휴식과 행복을 충족시킬 기회이고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체할 수 없는 보상이다. 이러한 법적 강제와 휴가에 대한 배타적인 정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해받지 않는 독일의 법정 휴가를 1년에 최소 20일로 보장해주었다. 또한, 법에서는 이에 더해 근무일 10일을 연속해서 휴가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 5일 근무자가 주말까지 사용하면 한 번에 14일을 휴가로 보낼 수 있다. 하물며 이것은 최소한으로 보장된 휴가이며 독일 회사들의 통상적인 휴가 수준은 연 30일이다.


한국이라면 이렇게 휴가를 많이 보장하면 일은 누가 하나 걱정부터 앞설 것이다. 인력을 채용하고 업무를 맡기는 데 있어서 법정 휴가는 크게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정 휴가는 일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반납할 수도 있는 것, 남은 휴가는 금전으로라도 보상받으면 되는 것으로 의례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등 유럽의 법정 휴가는 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력 규모를 정하고 업무량을 정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직원들의 휴가가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적절한 업무분담과 효율적인 인수인계 방법을 만들어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 세계 휴양지에 넘쳐나는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과 그들이 휴가를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은 경제 수준의 차이라기보다 보장된 휴가 수준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노동자에게 휴가를 장려한다고 하지만

한국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연차휴가 사용촉진 조치가 명시되어 있다. 제정 당시 이 제도의 취지는 ‘그릇된 연차휴가 이용 관행을 바로잡아 연차휴가를 이용한 근로자의 건강과 문화적 생활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 연차휴가 금전보상에 따른 사용자의 경비부담을 낮추는 데 있는 것’이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사측은 지속해서 노동자에게 연차 사용을 장려해야 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7월 20일까지도 모든 연차 일수에 대한 사용 계획을 제출하지 않으면 사측이 임의로 정해서라도 연차를 준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이런 제도가 시행 중이었다는데 아직도 노동자들의 실사용 휴가는 60% 수준에 불과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제도는 강제성이 전혀 없다. 사측이 제도에 맞춰 시행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고 시행하지 않으면 종전대로 휴가 보상금으로 대체하면 된다. 현재 연차사용 촉진제 실시율은 33.3% 정도로 조사되고 있다. 강제성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휴가 보상금으로 받는 것이 낫다는 노조측의 생각이 반영되어서 그렇기도 하다. 실제로 연차사용 촉진제는 매우 악의적인 제도이다. 경총이 나서서 제도를 시행하라고 촉구할 정도이니 얼마나 악의적인 것일지 짐작이 간다.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겨울 휴가 계획을 물었다. 친구는 겨울엔 바빠서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 휴가 보상금이라도 받느냐고 물었더니 몇 년 전부터는 그것도 못 받게 되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연차일수에 해당하는 휴가 계획서를 일단 다 받아 가는데, 일이 바빠서 결국 그 일정에 못 쓰게 되더라도 회사에서는 연차 사용을 권했으나 본인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서명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약자인 노동자는 상사의 눈치, 인사상 불이익, 업무 차질 등을 모두 감수하면서 연차를 편하게 쓸 수 없을 뿐 아니라 회사가 일정을 정해주는데도 못 쓰고 결국 본인 의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서명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연차사용 촉진제도는 이렇게 회사가 연차사용을 촉구한 근거가 있는 경우 휴가 보상금을 주지 않도록 해주어 연차를 반납하고도 휴가 보상금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


마음껏 휴가를 누리는 꿈을 현실로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 이름만 그럴싸한 연차사용 촉진제도는 현실적으로 연차 사용을 전혀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휴가를 갈 테면 가보라는 식의 강요 후에 사측의 휴가 보상금 지급을 면제해주는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 노동자의 연차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차사용 촉진제도처럼 강제성도 없고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많은 제도가 시급히 폐기되어야 한다. 그 대신 연차가 휴가 보상금과 같은 형태로 대체될 수 없는, 노동자의 휴식과 건강, 행복 추구를 위한 불가침의 권리로 보장되는 강력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휴가 보상금을 통한 노동자의 수입 증가는 사라지겠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보장된 휴식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이 바빠서 휴가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은 인력 충원, 업무 감소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사측에서 휴가 사용을 위해 자발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휴가가 먼저 강력하게 보장되어야 이로 인한 업무 차질을 걱정해 사측에서는 인력 충원과 적절한 업무 분담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 꿈같은 휴가를 죄책감 없이 확실하게 보장받는 것, 노동자가 휴가를 통해 삶의 여유와 행복을 누릴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더는 꿈이 아닌 꿈같은 휴가의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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